E,AHRSS

가톨릭

최종 변경일자: 2016-09-12 20:52:47 Contributors

이 항목은 카톨릭, 천주교, 로마 가톨릭, 로마 카톨릭 등으로도 검색해도 모두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종교에 관한 문서! HELP!

이 문서는 실존하는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서술을 포함하며, 수정 시 편향된 서술을 추가해서는 안 됩니다.
서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http]위키워크샵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감실(성체함)에 그려져있는 문양은 그리스도의 두 글자(그리스어Χριστός)를 합쳐놓은 문양이다.

목차

1. 원래 의미
2. 로마 가톨릭교회
2.1. 개요
2.1.1. 동방 가톨릭 교회
2.2. 특징
2.2.1. 가톨릭의 4대 교리
2.2.2.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
2.2.3. 피임과 낙태에 관하여
2.2.4. 개신교와의 교리적 차이
2.2.4.1. 가톨릭에 대한 오해
2.3. 문화
2.4. 역사
2.4.1. 대한민국에서의 가톨릭
2.4.1.1. 역사
2.4.1.1.1. 최초 전래(조선 후기)
2.4.1.1.2. 일제강점기
2.4.1.1.3. 해방 이후
2.4.1.1.4. 군사독재 시절
2.4.1.1.5. 문민정부~현재
2.4.1.2. 납세
2.4.1.3. 교구
2.5. 중국과의 마찰
2.6. 창작물에서의 가톨릭
2.6.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2.7. 비판
2.8. 어두운 과거
2.9. 관련 용어 및 관련 항목
2.10. 관련 인물
2.10.1.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유명 인물인 평신도
2.10.1.1.
2.10.1.2. ㄴ~ㅂ
2.10.1.3.
2.10.1.4.
2.10.1.5.
2.10.1.6. ㅊ~ㅎ
2.10.1.7. A ~ Z
2.10.2.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가상 인물인 평신도
2.11. 이단


1. 원래 의미

(adjective) Including a wide variety of things; all-embracing

catholic의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해석은 위와 같다. 형용사로서 해석해 보면 "폭 넓은 다양한 것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이라는 뜻이다. 의역을 하면 "보편적인"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기독교의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보편)교회가 존재하듯,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 공동체가 존재한다."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35 - 107?)

가톨릭(catholic)은 하나의 보편적 교회(또는 공교회)로 하나의 신앙 조직체, 보편적 기독교 신앙의 구성요소, 신학과 교리, 전례와 윤리, 사상적, 실천적인 특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용어이다. 어떤 교회가 위와 같은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공교회, 즉 가톨릭교회라고 불리울 수 있다.

아래 2의 항목에 해당하는 종파와 정교회는 각자 공교회임을 주장함과 동시에 상대 종파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있다. 개신교도 가톨릭주의를 주창하나, 기존의 공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종파는 로마가톨릭교회와의 갈등 때문에 '가톨릭'이라는 말 대신 다른 대체 용어(universal 등)를 사용하기도 한다.

2. 로마 가톨릭교회

Ecclesia Catholica Romana


예수 그리스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받는 사도 베드로.(시스티나 경당의 프레스코화. 1482년)

가톨릭식 십자고상묵주, 성경.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편의상 '로마 가톨릭교회'라고 부를 뿐이다. 가톨릭 내부에서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그냥 교회(Ecclesia) 또는 성교회(거룩한 교회)라고 부르며 굳이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들과 구분할때 가톨릭 교회(Ecclesia Catholica)라고 부를 뿐이다. 정교회가 내부적으로는 '동방 정교회'라고 하지 않고 '교회' 혹은 '정교회'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중국어: 天主敎會
일본어: カトリック教会
하카어: Thiên-chú-kau
베트남어: Giáo hội Công giáo Rôma
에스파냐어: Iglesia católica romana
포르투갈어: Igreja Católica
프랑스어: Église catholique
아프리칸스어: Rooms-Katolieke Kerk
아제르바이잔어: Roma-Katolik kilsəsi
벨라루스어: Рымска-Каталіцкая Царква
벵골어: রোমান ক্যাথলিক চার্চ
스니아어: Rimokatolička crkva
카탈루냐어: Església catòlica romana
덴마크어: Romerskkatolske kirke
독일어: Römisch-katholische Kirche
그리스어: Καθολική Εκκλησία
영어: Roman Catholic Church
바스크어: Erromatar Eliza Katolikoa
히브리어: הכנסייה הקתולית
힌디어: कैथोलिक गिरजाघर
인도네시아어: Gereja Katolik Roma
아랍어: الكنيسة الرومانية الكاثوليكية
루마니아어: Biserica Romano-Catolică
러시아어: Римско-католическая церковь
네덜란드어: Rooms-katholieke Kerk
폴란드어: Kościół łaciński
말레이시아어: Fiangonana Katolika

2.1. 개요

기독교의 한 종파인 동시에 최대 규모의 종파. 이름은 1에서 유래했다. 신자 수는 2012년 교황청 연감 기준 12억 2,862만여 명으로 전체 그리스도교 인구의 절반을 초과하며, 이는 세계 인구의 17.5%로 1/6이 넘는 규모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넘사벽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가톨릭이 뿌리뽑혔는데도 이런 신자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 자체가 종교를 터부시하는 만큼 타종교 역시도 중국포교는 쉽지않다. 그러나 가톨릭은 말 그대로 중국에서 뿌리가 뽑힌 상태이다. 중국 정부 자체에서 공인한 천주교회가 있지만 여기에 해당하는 신자들은 각종 조사들에서 당연히 제외된다. 그런데 이러고도 12억명이 나왔다는 것. 여타 종교, 종파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체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리 문제 등으로 갈라져 나간 경우에는 명칭부터가 가톨릭을 쓰지 못하게 된다.[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과거만큼 엄격하게 통제하지는 않게 되면서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이견을 보이기도 하지만, 덩치가 커져도 여전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해서 상당히 잘 뭉쳐 있다.

따라서 가톨릭은 바티칸부터 명동성당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 사막까지 원론적으로는 핵심 교리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2] 그러나 세상이 원칙대로만 돌아가지는 않아서, 당연히 일부에서 교리를 왜곡하거나 이상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물론 들킬 경우엔 얄짤없이 파문당하기는 하지만, 후술될 우스타샤의 문제만 보아도 완전히 같은 교리해석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상론에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렇다'고만 이해하면 된다.

워낙 신자 수가 많고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그 영향력은 타 종교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유럽[3] 종교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은 가톨릭 관련 내용이다. 현대에 들어선 개신교 등등의 라이벌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은 종교로서가 아닌 정치단체로서도 발휘되곤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가장 비근한 예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신적 일체감을 가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이다. 단순 인구로 보면 이슬람교중국보다는 적다. 물론 이슬람교도 따지고 보면 그리스도교 못지 않게 종파가 갈라져 복잡하다. 순니파의 숫자가 타 종파에 비해 넘사벽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그러나 엄격한 중앙통제구조를 갖고 있으며 국가를 초월한 조직이기 때문에, 상기의 표현이 무리는 없다. 단 '정신적 일체감을 가진' 또한 빠져서는 안 되는데, 초국가적 단일 조직이면서 체계가 잘 갖춰진 다른 경우로 UN이 있기 때문.

Catholic의 사전적 의미는 옛날에는 '공번(共繙)'이란 한자로, 현대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된다. 즉 Catholic Church는 세계 보편 교회라는 뜻이다. 영어 발음은 캐썰릭. Cat holic(캣홀릭)이 아니다 한편 정교회는 Orthodox란 명칭도 쓰지만 Ecumenical Church(세계적 교회)란 명칭도 자주 쓰며, 뜻은 가톨릭교회(보편적 교회)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에큐메니컬(세계적)이라는 용어와 가톨릭(보편적)이라는 용어 모두 굉장히 풍부한 뜻을 가진 어휘이지만, 둘다 '모든 민족, 모든 국가, 모든 지역이 믿을 수 있는 보편적(세계적) 교회'라는 엄청난 자부심이 묻어나는 간판이다. 둘다 내부에서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호칭할때는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교회라고만 말하는 것도 동일하다. 예를 들어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말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교회는 이것을 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등등. 따지고보면 이것도 여타 잡다한 수식어 없이 교회라고만 칭해도 자신들을 완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천주교라 불린다. 천주(天主)는 '하느님'을 한문으로 적은 것으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 유래되었다. 조금더 고풍스러운 표현으로는 '성교회'라는 표현도 있다. 성교회가 아니다. 성교회이다

편의상 ○○동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각 본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XX동 교회'식이다. 또한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천주교가톨릭이라는 명칭이 혼용되곤 한다. 이 덕분에 리그베다 위키의 정발명칭 우선 규칙에 맞출 경우 '천주교'가 맞나 '가톨릭'이 맞나 하는 토론이 벌어진 바도 있으며, 가끔 천주교와 가톨릭이 다른 것인 줄 아는 비신자도 있다.

'카톨릭'이라는 말도 쓰이지만 한국 천주교의 공식적인 표기는 '가톨릭'으로, 국어사전에서도 '카톨릭'이 아닌 '가톨릭'이 표준어로 올라가 있다. 이는 이 단어가 19세기 후반 개화기에 들어와 정착되었기 때문인데, 조선 후기 사람들이 catholic을 '가톨릭'으로 인식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천주교 선교사(신부)들이 라틴어를 공부하고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등을 사용였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 개신교의 용어는 언어적으로 영어독일어의 영향이 짙다. [[wiki: "Augustinus" 아우구스티누스]를 가톨릭에서 '아우구스티노' 개신교에서 '어거스틴'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을 영어식으로 캐톨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처음 외래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당연히 자신들의 언어를 기준으로 사용했다.

가톨릭의 어원은 그리스어 καθολικός 로 추정하는데 현대 그리스어 발음은 '가'톨리코슈(?)에 가깝다. # 이걸 그리스를 못가본 사람들은 카톨리코스라고 읽지만 요즘은 구글로도 확인 가능. 옛 그리스어 발음이 어떻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외래어 표기를 기원전후 발음을 기준으로 하는 건 아니니... 프랑스어 발음은 '까'에 가깝다#. 이탈리아어 발음도 "까"에 가깝다#. 라틴어에서 분화한 로망스계통의 언어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까'에 더 가까운 발음을 한다. 물론 지방이나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일례로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방언중에선 로망스 특유의 '까','빠','따' 와 같은 발음을 못하고 영어같이 '카','파','타' 로 발음한다. 결론적으로 영어나 독일어를 제외하곤 '카'보단 '가'나 '까'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한국어의 ㄱ/ㅋ은 어두에 올 때 양쪽 다 무성연구개파열음 /k/으로 소리나며, 차이는 무기음이냐 유기음이냐에 있다. 아래에 적힌 ㅂ/ㅍ나, ㄷ/ㅌ도 마찬가지. 성경/한국어 표기 문제를 참고토록 하자. 비슷한 예는 성경만 펼쳐보아도 수도 없이 나오는 페트로스(베드로), 파울로스(바오로, 바울). 옛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에도 키리에 엘레이손이 아니라 기리에 엘레이손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 발음은 기리에에 상당히 가깝다. #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카톨릭이 맞지만, 천주교 측에서 천주교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이며 라틴어 발음은 앞서 말했듯 '가'나 '까'에 가깝기 때문에 '가톨릭'이라는 표기를 요청했다. 1995년 제8차 정부언론외래어 심의공동위원회에서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관용을 존중하여, 가톨릭이 표준어로 확정이 되었다. #1 #2

세계사 교육의 영향으로 '구교'(舊敎)라고 불리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종교분열(가톨릭에서는 종교개혁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과 개신교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가톨릭으로서는 매우 억울한 명칭이므로 꼭 필요한 경우(ex: 신교-구교간 전쟁)를 제외하면 사용을 자제하는 게 매너일 것이다.

정교회에 반하는 개념으로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 항목에서도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는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자기 종파를 그냥 교회라고만 부르며, 굳이 다른 종파하고 구분하고 싶을때는 가톨릭 교회라고만 부른다. 즉 '로마 가톨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이라는 명칭은 정교회도 보편된(Catholic) 교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둘의 구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보편적인(Catholic)' 교회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교에서 '보편적인' 교회는 칼케돈 신조를 따르는 정통 종파인 가톨릭과 정교회 두 종파만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방 정교회'와 '서방 보편교회(=로마 가톨릭, 천주교)'는 서로를 단 둘뿐인 양대 정통 보편교회로 인정하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이라는 명칭이 틀린 명칭은 아니지만, 이 명칭만이 옳고 천주교를 '가톨릭'이라고 부르는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어원을 따지고보면, 천주교도 정교회(Orthodox, 정통 교회)라 할 수 있고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가톨릭=천주교로 합의가 되어있으므로 천주교를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교파를 보편된 교회(Catholic)라고 주장하기는 했다. 오늘날에 자신들을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 개신교인이 없어서 그렇지. 형평성을 따지자면 양측을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라고 둘다 지역명을 붙여서 부르던가, '가톨릭', '정교회'라고 둘다 지역명을 떼고 칭하는게 옳을 것이다.

2.1.1. 동방 가톨릭 교회

가톨릭에는 동방 교회들 중 가톨릭의 교리와 로마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여 가톨릭에 편입된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존재한다. 'Eastern Rite'라고 부르는데, 동방 가톨릭 교회들은 정교회의 전례와 교회법, 그리고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동방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교리는 가톨릭의 교리를 따르며 교황을 주교 중 으뜸으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톨릭의 동방 교회는, 더 세부적으로 알렉산드리아(콥트와 에티오피아 교회), 시리아,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들까지 있다. 오리엔탈 정교회들 중 일부가 가톨릭으로 귀일하여 생성된 교회들이다. 심지어 네스토리우스교에서 분열하여 수위권을 받아들인 칼데아 가톨릭 교회도 있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종종 가톨릭 십자가와 정교회 십자가가 합쳐진 형태의 십자가를 가톨릭에서 볼 수 있다. 가톨릭은 물론,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개신교 신자들 모두가 쉽게 놓치는 부분인데, 이 십자가는 동서 교회의 하나됨을 의미하기에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2.2. 특징

예수12사도 중 하나인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여겨지는 교황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교황은 프란치스코.

메이저 그리스도교 중에서 대표적이고 유일하게 성직자결혼이 금지되어 있다. 원래 유대교에 기반을 둔 만큼 성직자의 결혼이 원래는 허용되어 있던 만큼 결혼을 권장했으며, 12사도 상당수가 결혼했다고도 하니, 원래부터 성직자의 결혼에 딴지를 건 것이 아니다. 이런 규칙이 만들어진 원인은 나중에 교세가 퍼지고 나서 자식을 가진 성직자가 타락하는 경우가 많이 보고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금지시켜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성경에서 예수가 하늘나라를 위해 가 된 사람에 관한 칭찬(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 그리고 예수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 오롯이 하느님에게 바치기 위해 독신이었던 것을 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성직자가 결혼하여 그 자식이 성직에 종사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교회의 재산이 외부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모든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이 독신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동방 가톨릭 교회의 탁덕 이하의 성직자들은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직에 있을 때 배우자가 사망하면 재혼할 수 없다. 주교는 기혼자 중에서 서임될 수 없으며, 수도회 소속의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다. 한편 정교회사제의 결혼은 허락되지만 수도자나 주교의 결혼은 금지된다. 성공회는 주교의 결혼도 허락된다.

하지만 가톨릭의 경우에도 다른 종파(개신교, 특히 성공회와 정교회)의 성직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부가 되었을 경우, 그 이전에 결혼한 것은 인정하여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가톨릭에서는 이혼도 원칙적으로 죄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의 예를 보면, 다른 종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처자식이 있는 신부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주교 등의 고위 성직자가 될 수는 없고 평신부에 머물러야 한다. 정교회도 결혼을 허용하기는 하지만 이는 마찬가지여서 결혼한 자는 주교에 거의 못 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교구 신부들은 거의 다 결혼을 하고, 주교는 원래 결혼이 금지되는 수도 신부들만 되는 문제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황과 추기경 중에는 공공연히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두었던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알렉산데르 6세. 특히 르네상스 시절이 가장 심했는데, 그 경우에는 무조건 서자로 취급되는 게 안습. 그러나 체자레 보르지아라는 엄친아(실상은 패륜 막장 학살자) 케이스도 있거니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적자든 서자든 별 차이 안 두고 살았다.

교황청 휘하로 전 세계의 교구가 나뉘어져 있으며, 직급으로 분류되어 있는 계서제 형식으로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이 동일한 연락망에 속해 있다. 쉽게 말해 중앙집권식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것을 계서제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차원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은 전 세계 모든 미사의 말씀 전례에서 선포되는 성경의 구절이 같다. 아침 9시 미사에 성경 몇 장 몇 절을 읽는다면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나 포르투갈의 식민지 출신 국가든, 교황청이든, 미국 보스턴아일랜드계 중심의 성당이든, 남부 독일 바이에른이든, 멕시코, 브라질 같은 중남미든, 서울이든 대구든 전부 같은 내용을 다룬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 또는 라틴 예법을 사용하는 대다수 교회 한정이므로 동방 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전례 양식이 다르다. 또한 주일이나 주요 축일, 사순/대림시기를 제외한 날에는 주례 사제에게 미사의 목적에 맞는 일부 기도문과 독서 목록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므로, 성당이나 수도회, 집전 사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쨌든 같은 예법을 사용하는 교회라면 통일된 전례 양태를 보인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중세 시절 정해진 미사 양식에 따른 것으로, 카타콤에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시절에도 신부들끼리 해당 일의 성경구절을 짜맞추어 날짜에 맞게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이게 경신성사성에서 생각보다 잘 짜놨기 때문에 주일 미사에 3년 동안, 그리고 평일 미사에 2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 주요 성경 구절을 모두 통독할 수 있다. 1970년대 초에 이 독서 목록(라틴어: Ordo Lectionum Missae)이 나오자 개신교에서 참고하여 서정과라고 부르는 비슷한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성무일도까지 1년 동안 하면 거의 완벽하다. 이렇게 1970년 이후로 가톨릭은 공식적인 전례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읽는 종파이다.

그러나 미사와 성무일도를 통틀어 전례에서 절대 읽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구약성경오바드야서시편 중 3개 편이 있다. 오바드야서는 성무일도의 2년 주기 말씀기도에서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2년 주기 성무일도는 전세계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시험적인 버전이다. 또 흔히 성무일도에서 시편 150편을 모두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47편만이 사용된다.

월간 〈매일미사〉(1,000원)란 책에는 기도/독서/복음/영성체송 등 그날 미사의 핵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이 또한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로마 미사 경본(Missale Romanum)에서 따온 것이다. 덕분에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하러 갈 때 성경을 들고 가는 일이 거의 없다. 해외에서는 신자용 미사 전례서를 따로 발매하기 때문에 매월 1,000원짜리 책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이쪽이 더 적절하다. 교황청의 미사 지침에 따르면 신자용이든 사제용이든 모든 전례서는 고상하게 제본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매일미사처럼 갱지를 쓰면 안된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매일미사가 사제와 수도자를 막론하고 천주교 신자들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책이지만, 의구현전국사제단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함세웅 신부가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본당에서 매일미사 책을 구입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익숙해진 신자들이 크게 반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도 무료로 나와서 미사 때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런데 미사 직전에 핸드폰을 꺼주시기 바란다고 알리지 않나? 예배 때마다 각자 성경을 주섬주섬 꺼내서 목사가 부르는 구절을 찾는 개신교 신자들은 이를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고, 이걸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매일미사로만 대신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더러 있는 건 사실이다. 신자라면 웬만하면 집에 성경 1권쯤은 구비하고 틈틈이 읽도록 하자. 사실 가톨릭 성경은 인터넷에서 전문을 서비스하며 무료 앱도 있다 교황청에서 2013년을 신앙의 해로 지정했는데,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성경 매일 읽기는 물론 필사하기도 권장하면서 성경 읽기가 점차 강조되고 있다.

교파가 갈리는 개신교에 비해 시간적으로도 공간상으로도 종횡의 짜임이 매우 치밀한 셈이다. 그만큼 덩치가 커지는 바람에 보수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평도 있지만, 단일 조직으로서는 매우 철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계서제를 통해서 하부 조직에 대해 상당한 통제력을 보이지만 이것도 완벽하진 못한 듯, 광주대교구에서 집단 파문사태까지 이를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 물론 모든 종교든 사람이 하는 일인만큼 단점과 추태가 나타나기 마련인 법이며, 수십~수백 개 교파의 통제가 아예 안 되는 개신교에 비해 아주 잘 관리된다고 할 수 있다. 개신교도 일부 체계가 잘 잡혀있는 종파는 제외되지만 그것도 '종파 내'에서의 통제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개신교의 이런저런 문제점을 잘 자각하고 있는 목사나 신자들이 매우 부러워하고, 또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2.2.1. 가톨릭의 4대 교리

가톨릭 교회의 교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네 가지 교리를 4대 교리라고 하며, 이 교리는 환자의 경우 대세를 주기 위해서 가르쳐야 할 핵심교리이다. 평신도도 위급한 경우에 한해 아래의 네 가지 교리만을 가르치고, 대세(代洗, 정식 세례를 받기에는 위급한 병자에게 베풀 수 있는 약식 세례성사)를 베풀 수 있다.

사대교리는 4자로 된 한자(漢字)성어 형태로 말하는데, 다음의 4가지이다. 이는 가톨릭이 처음 전파될 당시 가톨릭 교리문답을 크게 4가지로 정리해서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1. 천주존재 (天主存在) :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시다.
  2. 상선벌악 (賞善罰惡) : 하느님은 죽은 후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
  3. 삼위일체 (三位一體) : 하느님은 다만 한 분이 계시지만 위(位)로서는 세 위를 포함하여 계시니,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4. 강생구속 (降生救贖) :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모든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제2위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사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써 구속사업을 완성했으므로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 구속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됨.

2.2.2.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

가톨릭은 신자가 되는 것도 꽤 번거롭고, 신자가 되어도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종교다. 가톨릭 신자의 의무가 몇 가지 정해져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주일과 의무축일 미사에 빠지면 안 된다. 한국에서는 의무축일을 4번으로 정해놓았는데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예수 부활 대축일(대부분 4월 1~2째 일요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4번이다.

  2. 금육과 금식을 지켜야 한다. 금육은 매주 금요일이고, 금식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금육은 날개 달린 동물 또는 4발 달린 동물의 고기나 국물을 먹지 않는 것이고, 금식은 하루 1끼는 먹고, 1끼는 간단히 요기만 하고, 1끼는 완전히 굶는 것이다. 다만 금육은 만 14세 이상부터, 금식은 만 21세부터 만 61세까지만 지키면 되고 그나마도 환자, 허약체질, 육체노동자, 여행자, 수험생 등은 사전 관면을 받으면 걸러도 된다. 하지만 사순절이나 성 금요일을 제외한 금요일의 금육의 경우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의무적인 것이 아닌,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행하도록 변경되었다. 서강대와 전국의 가톨릭대학교 학생식당 및 가톨릭계 초중고와 유치원 급식까지, 금요일 메뉴에서 육고기를 보는건 쉽지않다. 생선이나 오징어 등 다른 단백질원이 제공되곤 한다.

  3. 1년에 1번 이상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는데, 한국에서는 나이롱 신자 양성을 막기 위해 1년에 1번은 꼭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고 있고, 이 때 신자 수를 집계하여 서류상 신자인 사람들은 따로 냉담자로 분류해서 신자 수에 집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다. 3년 이상 판공성사를 보지 않으면 교적이 본당에서 교구로 이관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신자 통계에서 제외시키지는 않는다. 신자들은 판공성사를 본 뒤 성사표를 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다 신앙심도 풍부하고 성당도 매주 꼬박꼬박 나가는 사람이 판공성사를 못가서 냉담자로 처리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4. 1년에 1번 이상, 웬만하면 부활절성체를 모셔야 한다.

  5. 교무금을 내는 것도 신자의 의무. 천주교회에서 도움을 받는, 다시 말해 찢어지게 가난한 경우가 아닌 이상 수입의 1/60에서 1/10까지 자발적으로 액수를 정해서 무조건 내야 한다.

  6. 교회 혼인법을 준수하여야 한다.

이것이 가톨릭 신자가 지켜야 할 가장 큰 6대 의무이며, 이 외에도 전교하는 것 등 많은 의무가 교회법에 깨알같이 적혀 있다.

종교 중에서는 신자 관리가 대단히 명확한 편이다. 통계청이 실시하는 인구조사에서 집계되는 신자 수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신자 수보다 많은 유일한 종교. 이는 매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판공성사를 받지 않는 영세자를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냉담자로 간주하여 신자 집계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라고 오해하는데 그렇게 된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2.2.3. 피임과 낙태에 관하여

금욕배란주기관찰법을 제외하고, 콘돔, 체외사정, 경구피임약 등 거의 모든 "인공적인" 피임낙태를 교리로서 강하게 금지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유아 살해와 함께 낙태를 "가증할 죄악"이라고 규정한다. 극단적이고 엄격하게 받아드릴 수도 있지만, 낙태 금지 그 이면을 보면 어떠한 경우에 산모가 태아를 임신한 경우에는 그 태아는 엄연히 인격체를 갖고 있는 소중한 생명으로 보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간 생명의 탄생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는 순간 생명은 시작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조금 어려운 말로는 수정란은 인간 탄생의 연속성, 잠재성, 일치성이 내제되어 있다고 보기에 낙태는 명백히 인간 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라고 가르친다. 심각한 장애아라도 생명권을 있고 어떤 이유로도 낙태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강간이나 근친상간의 경우 역시 낙태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경우, 가톨릭의 해결책은 강간범과 성범죄자를 법에 따라 처벌하고 피해여성이 정상적인 삶을 사는데 필요한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외사정의 경우 그리스도교에서 피임 금지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인 창세기 38장 1-10절에서 문제가 된 행위가 바로 질외사정이었다. 배란촉진제 사용에 대해서도 교육할 때 겁을 준다.

피임 역시 마찬가지로 금지되는데, 교회법에서 살인, 유괴와 함께 교회와 직접 관련이 없는 행위에 대해 처벌 조항이 있는 드문 케이스. 여기에는 일반적인 낙태와 사후 피임약, 콘돔 등 질내 피임 기구 등을 이용한 피임을 전부 포함한다. 가톨릭교회의 성윤리에 따르면 자신을 내어주는 참된 사랑과 일치, 그리고 자녀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닐 수 있는 부부만이 성관계가 허용된다. 생명의 전달과 참된 사랑이 결여된 채 쾌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혼전 또는 혼외 성관계에서는 성관계의 본질과 의미가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으므로 당연히 콘돔 사용 등으로 피임을 시도한다. 부부의 경우도 물론 자녀를 원하지 않는 경우 인공 피임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콘돔을 에이즈와 같은 질병 예방을 위해서라면 허용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지적에 대해 교회는 역시 같은 원칙을 제시한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확산의 원인 중 하나는 일부일처제와 부부의 정결을 올바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HIV 보균자임을 알면서 실패가능성이 있는 콘돔을 사용하면서까지 성관계를 갖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성관계는 자기를 내어주는 참된 사랑의 표현이어야지 단순히 내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낙태가 더 큰 죄이므로 낙태를 피하기 위해 인공피임을 허용해도 되는가에 대해서도 바오로 6세 교황은 1968년 회칙 "인간생명" 14항에서 불임수술과 낙태가 모두 단죄되어야 한다고 단언하였다.

생명 윤리 분야에서 낙태죄를 범한 게 확실한 사람은 살인죄와 마찬가지이기에 자동 파문된다. 이러한 파문은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 죄를 범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따라서 그들의 도움 없이는 낙태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공범자들도 파문에 포함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성체를 비롯한 고해성사를 제외한 모든 성사가 전면 금지된다. 파문을 해소하는 방법은 각 지역 교회와 교구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전국사제 특별권한 제12조에 따라 모든 사제는 자동 처벌의 징계벌을 사면해줄 수 있다. 다만 교구장과 사도좌에 사면이 유보된 자동 처벌의 파문제재는 사면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모든 사제가 고해소에서 사해줄 수 있다.

2.2.4. 개신교와의 교리적 차이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 계열인 만큼 기초 사상은 같으나 세부적으로는 꽤 다르다. 또한 개신교는 종파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지므로 가톨릭과의 차이는 다욱 커진다.

우선 성경의 권 수가 다르다. 가톨릭은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을 합쳐서 73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개신교는 구약 중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면서 총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차이가 나는 7권의 경전은 가톨릭에서는 제2정경'''(제2경전)'이라고 호칭하여 정경에 포함하고,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호칭하여 정경과 분리하고 있다. 정교회는 구약 49권과 신약 27권을 합쳐서 7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성공회개신교와 마찬가지로 39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에서 사도로부터 내려온 전승인 성전(聖傳)'을 중시'''하고 있다. 기록된 성경과 달리,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교회의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과 실천적 관행을 성전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개인에게 말씀하신다고 가르쳐 성경 구절의 사적 해석을 허락하고 성전을 부정하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지 않은 성경 구절의 사적 해석을 위험히 여긴다. 어디까지나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라는 듯.

또한 '가톨릭' 자체가 없었던 고대인들은 선하게 살았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는 듯. 세례받지 못한 유아나 의로운 고대인들이 가는 림보(limbo)가 있다고도 했었으며, 단테신곡에서도 림보가 언급된다. 이 림보는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도 아니며, 참된 기쁨인 '지복직관(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누리지 못하지만 그 나름의 평화와 안정을 얻는다고 한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는 교황 첼레스티노 5세가 '고귀한 자리를 함부로 버린', 즉 자진 퇴위한 죄로 림보에 들어가 있다(그런데 현실은 훗날 첼레스티노 교황을 성인으로 인정했다. 축일은 5월 19일). 하지만 림보 자체가 신학적 가설일 뿐 '믿어야만 하는 교리'는 아니라는 주장이 현대 가톨릭 신학계에서 강력하게 주장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 신학자가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이탈리아 가톨릭 교리서에서는 림보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기존에 림보에 갔으리라 말하던 영혼이 실은 모두 천국에 있으리란 것. 그리고 유아 림보설은 결국 공식 폐기되었다. 림보에 대한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이나 교황청 등이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는 한 가톨릭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림보를 믿든 믿지 않든 아무 지장이 없다. 믿지 않아도 이단이 아니라는 뜻.

개신교와 갈라진 교리적 원인 중의 하나로 신앙과 선행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 개신교는 이신칭의(칭의론)라고 해서 오직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칭함 받는다고 하는데 반해 가톨릭은 '은총으로써 의로워진다'고 주장하며 이를 '의화'라고 부른다. 단순히 칭함 받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은총을 보존하려는 개인적인 노력, 즉 선행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천주교의 4대교리 중 하나가 바로 '상선벌악'. 개신교에서의 선행의 의미는 '구원받은 자로서 행해야 하는 의무' 혹은 '구원받은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위'에 가깝다. 유교식 표현으로는 '극기복례'를 일부 말하는 셈.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개신교 쪽에서는 몸(행위)과 마음(믿음)을 분리된 것으로 여기는 것에 반해 가톨릭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에서 기인한다.

때로는 개신교에서 칭의-성화-영화라고 해서 구원의 3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첫 걸음을 떼기위한 '칭의'를 강조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해진다는 면벌부가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믿음으로 의로워진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게 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삭개오. 그는 회개한 이후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4배로 갚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의롭다 칭함을 받을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므로 면죄부 따위를 구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게 되는데, 회개란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은 것이다. 이 회개를 단지 성당이나 교회에 나와서 할렐루야~ 나의 죄를 사하소서~라고 했으니 다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에 가서 목탁 두들기고 불경을 외웠으니 나는 불교적 깨달음을 얻어 해탈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즉, 회개를 면죄부로 사겠다는 말은 깨달음을 학위로 대체하겠다는 말이라 할수 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받는다는 기본 교리는 똑같고 사소한 표현과 관점의 차이인데 개신교 일각에서는 가톨릭이 행위구원론을 주장한다며 끊임없이 왜곡된 비판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99년, 가톨릭과 루터교회가 "의화(義化)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이며 이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의 실현을 위해 믿음의 징표인 선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구원관에 합의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으며, 2006년 감리교가 이 선언에 동참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외형적으로나마 점차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화해와 일치의 물꼬가 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 칼뱅주의를 신봉하는 장로회와는 절대 불가능할듯

그외 연옥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과 성모 마리아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있다. 연옥은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지옥에 떨어질 정도의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모자라는 사람을 위한 장소로, 일종의 속죄의 장소이자 천국으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이다. 즉, 대죄를 짓게 되면 지옥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게 되지만, 대죄를 인지하지 못하게 짓거나 소죄만을 지은 경우 연옥에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정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만이 사후에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시, 죄를 지은 순서로 사람을 1열로 세우게 되면, 어느 선에서 천국행과 지옥행이 갈라져서 아깝게 지옥에 가는 사람과 석연치 않게 천국에 가는 사람이 발생하게 되는데, 연옥은 이러한 비합리를 해소하게 해준다. 죄를 지은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고 진심으로 참회하게 되면, 죄의 용서는 받으나 그 벌은 남아있게 되는데 이를 잠벌이라 한다. 만일 살아서 이 벌을 다 갚지 않으면, 즉 기도와 선행 등으로 보속하지 않으면 남은 벌은 연옥에서 갚게 되는 것이다. 이 잠벌의 용서는 주교교황이 조건부로 주는 대사를 받으면 가능하되, 이를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양도 가능하다. 연옥에서는 더 이상 선행이 불가능하여 오로지 은총으로만 영혼이 정화되므로, 살아있는 신자들의 대사 양도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연옥에 머무르는 영혼은 자신의 기도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의 기도, 그리고 이승에 속한 이들의 기도로 천국에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연옥은 위의 림보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당장 성모송의 끝구절부터가 "저희를 구원하소서"가 아닌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이다. 사도신경의 구절 중 하나인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에서 알 수 있듯, 가톨릭 신자들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의 기도로 자신들이 도움을 받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모 뿐 아니라 천사나 성인들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하느님이나 예수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와는 달리,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빌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모성인은 신앙의 모범이고 공경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신교에서는 이런 성모 개념은 물론 성인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가톨릭과 정교회미사, 기도, 또는 마음을 다잡거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성호경을 긋지만, 개신교에서는 하지 않는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성호경 긋는 순서와 의미는 조금 다른데, 자세한 건 성호 항목을 참조. 그 외 가톨릭의 성당은 성상이 존재하며, 일반적인 십자가뿐만이 아니라 예수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형태의 십자고상을 사용하는데, 개신교의 경우는 예수가 없는 십자가만 사용한다.

가톨릭에는 7성사, 즉 세례 · 견진 · 혼인 · 성품 · 병자 · 고해 · 성체성사라는 것이 존재한다. 반면 개신교세례와 성만찬 이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품성사는 가톨릭 사제로 임명하는 의식이며 고해성사는 신자가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는 의식이다. 성체성사는 가톨릭 미사의 핵심으로 예수가 자신의 살과 피를 희생한 것을 본딴 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개신교의 예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사의 후반부에 성체를 신자들에게 나눠주지만 성체를 신자들이 함부로 다루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한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 신자, 신자가 아닌 자에게는 성체를 주지 않는다.

가톨릭 개신교
성경 73권 66권
구원의 필요요소로서의 믿음과 선행 분리하지 않음 분리된다고 봄
마리아 테오토코스(신의 어머니) 예수의 육(肉)적인 어머니
성직자 신부(금혼), 남성 없음, 평신도인 목사가 대체
수도자 수사/수녀(금혼) 성공회에만 있음
십자성호 있음 없음
성상 있음 우상으로 여겨 금지함
십자고상 사용 십자가 틀만 사용하거나, 십자가 또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성사 7성사 모두 인정 세례, 성만찬[(1년에 2~4회)만 인정
종파 단일 다양하게 존재

※ 선행을 통해 구원으로 직결된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믿음과 선행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선행=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야고보서에 '행함(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나와있듯이 선행 자체가 참된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며 굳이 이 둘을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가톨릭 교회에서는 개인이 착한 일을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개신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인간들을 구원한다는 명제 사이에 교회와 7성사의 역할을 집어넣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행위구원론 논쟁을 제쳐두고서라도 또 다른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 가톨릭은 '행위 구원론'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톨릭에서는 진심으로 믿으면 선행은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수도 이와 관련하여 말을 한 적이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루가 22:37~40, 공동번역성서)"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게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 즉 가톨릭은 '둘째 계명도 첫째 계명 못지 않게 중요한데, 둘째 계명을 안지키고도 그게 믿음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개신교의 믿음(신앙)은 마르틴 루터의 신학관인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서(sola scriptura)'와 관련이 있다. 종파에 따라 다르겠지만, 물론 개신교라고 해서 '예수님 믿기만 하면 대강 살아도 천국감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 목사가 혼인이 가능한 것에 대해 개신교에서 말하는 만인제사장설에 따르면, 목사는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평신도 사도직'이 존재한다.
※ 혼인성사는 성례(개신교에서 성사를 일컫는 말)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회에서 결혼 안 한 사람은 혼인한 게 아니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 교회에서 결혼예배를 드린다고 다 성례가 아니라, 교회의 표지로 교회에서만 할 수 있는 행사라야 성례로 본다.
장로교는 원칙적으로는 십자가를 교회 밖에서만 교회당의 표지로 쓰고, 교회당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로 본다. 물론 감리교나 그 영향을 받은 교단에서는 십자가 틀을 사용한다.
※ '테오토코스'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물론 마리아가 하느님보다 높다는 뜻은 아니고, 하느님을 낳는 은총을 누린 여인이라는 뉘앙스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의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또한 하느님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인성만을, 혹은 육체만을 낳은 것이라는 주장은 이단이 된다. 성자가 마리아에게서 인간의 육체를 취했다는 것은 맞으나, 그 결과로 마리아가 낳은 것은 단순한 인간이 아닌 인성과 신성이 겸비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인간만을 낳았다는 말은 정교회와 가톨릭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주장이다. 이런 교리가 정식화된 것은 초창기의 네스토리우스파 이단과 관련이 있다.


한편 주된 교리의 차이와는 별도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차이점으로 , 담배 등에 대한 허용이 있다. 개신교에서는 교파마다 교리가 다양해서 술담배 등에 대한 입장도 다양하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선 음주 및 흡연을 부도덕한 행위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목사 등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신자들도 되도록이면 담배를 멀리하는 편이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 담배에 비교적 관대해서 성직자들도 지나치지만 않으면 담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일단 미사 때 마다 포도주 한 잔씩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 돈 까밀로 신부가 시가포도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2.2.4.1. 가톨릭에 대한 오해

성당에 성모상이 있기 때문인지 성모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한 경우에는, "가톨릭에서는 삼위일체성모 마리아를 끼워넣는다"는 개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당연히 마리아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편견과 무식의 증거이지만, 이것도 역시 교리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문제.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가톨릭에서는 죽은 사람들도 영혼이 하느님 곁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교리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 바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이기 때문에, 또한 하느님인 예수가 성모님의 부탁이라면 틀림없이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최고위 성인으로서 공경하기 위해 성모상이 성당이 있는 것이다.

천주교의 교리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믿음의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자이고, 예수삼위일체 교리에 따라서 하느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둘의 대우는 엄연히 다르다. 상술했듯이 성모송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비는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 기도를 전달해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즉, 가톨릭을 성모 마리아를 믿는 종교로 착각하는 건 마치 연예인 매니저한테 말을 걸어 연예인에게 선물을 전달해달라며 건네주는 것을 보고, 연예인의 팬이 아니라 매니저의 팬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나치고 어긋난 성모신심은 교황청에서도 엄연히 금지하고 있는 이단적 교리다.

이런 연유로 가톨릭 신자들 앞에서 이 말을 했다가는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 있으니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이를 위 내용처럼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신자가 그리 많지 않다. 어차피 한국의 개신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위상은 매우 낮거나 없다시피한 경우가 많은 데다, '그게 숭배지 어째서 공경이냐'고 따지는 개신교 신자도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해봤자 소용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아래에 쓰인 것은 주로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위 항목에서 언급되었던 것들도 많지만, 이런 오해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했으며, 작성에 있어서 현직 교리교사의 간략한 의견과 함께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송용민 신부의 의견을 참고했다.

그 외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심층적으로 알고 싶다면 밑에 첨부해 둔 본문, <송용민 신부가 작성한 개신교가 가톨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오해>를 참고하자.

좀 더 신학적으로 가톨릭에 대한 오해 해소와 더불어 호교론(護敎論)을 펼치는 책으로는 볼티모어의 대주교였던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교부들의 신앙이나, 개신교 목사에서 가톨릭 신학자로 전향한 스코트 한의 저작들이 추천된다. 좀 더 부드럽고 생활 신앙적 가르침을 원하면 스코트 한의 저작들을, 강한 호교적/교리적 가르침을 원하면 <교부들의 신앙>을 추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깊은 교리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두 스타일 모두 깊이 음미해 보는 것이 더욱 좋다.

가톨릭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교부(敎父, 많은 가르침을 남긴 학자)들의 탄탄한 철학적 토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고전 저작 중에서는 <고백록> 등 철학자로도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작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이 제일 많이 권해진다. 특히 <준주성범>은 개신교에서도 신앙 교재로 쓸만큼 깊이 있는 고전 걸작. 단 평신도 사도직, 교리교육 봉사직 이상에게 추천될 정도로 찐한(?) 책들이 많으니 신앙생활이 익숙해진 다음 신부님/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차근차근 읽는 것을 권한다. 물론 고전 중에서도 <신심 생활 입문>이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 자서전>처럼 새내기 신자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일드한 책들도 있다.

2.3. 문화

흔히 개신교를 믿는 것을 교회 다닌다, 가톨릭을 믿는 것을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톨릭에서는 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아니다. 가톨릭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나오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동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교회 건물이 아닌 사제와 신자들의 모임을 일컫기 때문이고, 교회가 모이는 장소가 '성당'이기 때문에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개신교의 경우, 일제강점기만 해도 교회라는 단어를 가톨릭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하고, '교회당(敎會堂), 예배당' 등의 단어를 사용했으나, 이후 용법이 변화해서 현재와 같이 되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교리적으로는 교회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모임으로 정의한다. 오늘날에 가톨릭 교회를 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신교의 교회와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해외에서의 가톨릭 교회도 성당(cathedral)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해외에서 사용하는 cathedral이라는 용어가 교회와 성당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 항목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cathedral은 정확히 주교좌 성당, 즉 대성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구 내의 일반 성당들은 그대로 church로 표기한다. 개신교회 중에서도 과거 대성당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사용하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교회들에 cathedral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서양의 가톨릭 교회의 경우 제일 붐비는 일요일 오전 10시 교중미사를 무조건 대성당에서만 거행되는데, 그러다보니 외국인인 한국인들은 대성당의 존재만 알고 있어 서양도 한국처럼 개신교회와 천주교회를 구분하는 걸로 인지하는 듯.

또한 천주교 성당이면 어디를 가든지 동일성경구절과 동일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곳이다. 성당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 실내장식의 분위기 등 사소한 것들 뿐이다. 목사장로들의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른 개신교 교회와는 차이가 있다. 개신교의 경우 이사를 가더라도 이전까지 다니던 교회를 계속 출석하는 경우도 많지만 천주교의 경우 집 근처의 성당에 다니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물론 개신교의 경우 교회들마다 따로 헌금을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헌금 수입의 감소 등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교회 자체적으로도 신도의 이탈을 꺼리기도 한다. 가톨릭에서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로, 이사를 갈 경우 호적처럼 교적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옮기도록 되어 있다. 물론 권장하는 사항은 아니지만 거리가 애매한 등의 경우 그냥 원래 다니던 성당을 다니기도 한다. 공식적으로는 주소에 따라 다녀야 할 성당이 강제로 정해지기 때문에, 원래 소속이 아닌 성당에서 하는 공적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가다. 예를 들어 판공 성사를 다른 성당서 보더라도 인정은 하나, 성사표(성사 신고서)는 원 소속 성당(본당)에 내야 한다. 물론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잠깐 다른 지역으로 갔을 때 그 지역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리는 정도는 허용한다. 여름휴가철만 되면 주보나 매일미사에 주요 휴가지 근처에 있는 성당 목록이 실릴 정도다.

가톨릭의 성격에 대하여 조금 극단적으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당신이 머리를 밀고 불교 승려 차림으로 성당으로 와서 미사에 참례한다고 해도 크게 상관 안 할 것이다. 물론 주위에서 관심은 많이 받겠지만 적어도 성당 관계자인들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인식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가톨릭은 신자들이 교리와 그 권장사항을 따르길 권장하지만, 신자들이 그 권장사항을 지키지 않는다고 신앙을 박탈하는 경우가 현대에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가톨릭에서 '콘돔 사용을 금지하자'고 주장하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의 가톨릭을 다니고 있는 신자들이 콘돔을 사용하든 말든 신앙에는 전혀 침해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왜 콘돔 사용을 금하는지 그 뜻에 대해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며, 그 뜻에 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해성사를 할 순 있어도, 현실에서 그런 사유로 가톨릭에서 따로 처벌하는 일은 찾기 힘들며 성당에서 추방되는 경우도 없다.

파문은 옛날에는 분명 신앙 외적인 부분에서도 한 사람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처분이었지만, 현대의 파문은 일시적으로 교회를 통한 은총을 유보하는 것에 가까우며, 복권될 기회도 충분히 준다.

가톨릭에서는 포교행위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물론 가톨릭도 전교를 하기는 하지만, 지정된 수도회의 수사/수녀와 여기서 오래 훈련 받은 (대략 3개월 이상 교육 과정) 소수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해당 교구의 철저한 통제 하에 시행한다. 교육만 성실히 받으면 그 외 자격 조건은 없다. 하지만 대부/대모가 될 수 있는 견진 성사를 받은 사람을 권하는 편이다(이끌어 오는 사람의 대부/대모가 되는 일이 많으니까). 18세 이하의 청소년도 포교단 할동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긴 하나, 한국의 교육 현실 때문에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곳은 보기 힘들다.

포교와 전도는 분명히 칭송받을 덕목이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그것이 곧바로 구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 뭐라 하기 전에 너부터 잘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전도는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참된 복음은 말과 설득보다 모범적인 행동과 그리스도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신자들의 삶에서 드러내는 실천이 곧 구원의 길이고 은총이고 선행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한국 사회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가톨릭 교세가 크게 확장한 데엔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두 번에 걸친 방한과 시성식 영향이 컸지만, 사회 약자를 돕고 정의로운 일에 나서며,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간접적인 포교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식의 막무가내식 협박성 포교와 달리 대중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도 있다.

미사 끝 인사에서 사제가 "복음을 전합시다"가 아닌 "복음을 실천합시다"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취지이다. 즉, 복음을 통하여 "바른 마음과 바른 성품으로 살아가자", 나아가 주 예수와 성인들을 본받아 삶으로서 나의 삶 그 자체를 복음(good news)으로 만들자는 것이 바로 가톨릭의 핵심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이교도의 종교 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적 존중 차원에서 이들의 예식을 비난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으며, 전통 예식이라도 종교적인 의미가 퇴색된 경우에는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지난 시대에 저질렀던 탄압과 무자비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결과. 또한 그러한 문화를 가톨릭 속에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에는 미사 중에 국악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고 한복 입은 아기 예수성모의 상도 있으며, 아프리카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글빙글 돌고 춤추면서 야외 미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신부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에도 불교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해서 폭넓게 학습하는 과정까지 있다.

그만큼 문화에 대한 개방성이 개신교에 비해 매우 크다. 광주광역시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실제로 철학이라는 과목 명으로 해당 고등학교의 재단인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수사가 강의를 하는데, 개신교는 물론이거니와 이슬람, 불교, 유교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생물 과목을 강의하는 교사가 신부님이라는 것. 당연히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그런 거 없다. 이 학교는 지나다니다 보면 웬 동네 아저씨 같은 분이 전대 교장 신부님이 수레를 끌고 다니며 제초작업이나 나무를 다듬곤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제사 역시 허용한다.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단, 신위나 신주, 제방은 금하며 사진을 놓는 것만 허용된다. 사진이 없어 제방을 놓아야 하는 경우는 신위(神位)라는 글자를 빼고 이름만 써야 한다. 이는 유교에서 조상 혼백의 개념이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유교에서 조상의 혼백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고 가문의 길흉화복과 전혀 무관하며, 단지 자식으로서 예를 갖추는 것뿐이다. 공자가 "괴력난신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고 못 박은 것도 이런 취지이다. 조상의 혼백이 길흉화복과 연관된다는 믿음은 도교와 불교, 민간신앙이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유교에서도 조상이 돌아가시더라도 예를 다해 잘 모시면 선한 행동이 보답받는다는 정도의 믿음은 있지만 그 정도는 타협 가능한 수준이고, 기복만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에서도 대차게 까인다. 오로지 보상 정도로만. 일본에서는 신사 참배도 동일한 맥락으로 허용한다고 한다. 사실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은 서양에서도 있다. 마을 어귀의 가족묘지에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정도의 추모 의식이 그것이다. 다만 묘지가 아니고 집에서, 묘비가 아니고 신위 앞에서, 묵념이 아니고 절을 하고, 저녁음식이 아닌 제사상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 우상숭배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791년 순교한 윤지충 바오로의 공초에서 이러한 개념이 상충하면서도 대립하는 요상한 컬처 쇼크를 볼 수 있다.

문초관 : 네 죄목은 신주를 불태운 것. 죽을 죄를 지었지?
윤지충 : 천주학 역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누가 나무 쪼가리가 내 부모라고 가르쳤나?
문초관 : 여기가 서양이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여기는 조선이다.
윤지충 : 조선에서도 5대째 되면 신주를 불태웁니다.
문초관 : …4대까지가 성현이 정한 육신의 도리이다.
윤지충 : 그거 누가 정한 건가?
문초관 : ……매우 쳐라!

그래서 사실 쉽게 합의가 되는 문제일 수도 있는데 공연히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 상당한 수의 순교자가 발생한 것도 영향이 있다.

지금의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 역시 교회 공동체의 일로 승화시켰고, 심지어 설이나 추석 때 성당에서 합동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특히 설날에는 합동 제사가 끝난 뒤 주임신부가 세뱃돈을 나눠 주기도. 본래 주임신부 개인 사비로 나눠주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

이렇듯 현대의 천주교는 지역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관용적이고 현지화도 상당한데, 이는 천주교의 지향점이 '어느 국가 어느 민족이라도 믿을 수 있는 '''보편된(catholic) 교회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논란이 되는 작품인 다빈치 코드에 대해서도 그저 픽션적인 작품이라는 단순한 결론만 내려두고 신경쓰지 않는다. 금서라고 칭하거나 반박하는 일도 없다. 수많은 공의회를 통해 공짜로 홍보해 준 모 종교단체와 많이 비교된다

2009년에 교황청에서 다윈진화론에 대하여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미 1950년경에 교황 비오 12세가 "진화론은 인간의 발전에 유용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발언을 상기하면서, 이에 대해 창조론은 그에 발맞춰 다른 방향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교황청 부속기관인 로마 산타 크로체 대학의 신부이자 교수인 주세페 탄젤라 니티도 4세기에 활동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에서도 진화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며 교황청의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는 가설 이상의 사실"이라고 밝히며 "진화론이 가톨릭의 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언급만 없다 뿐이지, 사실상 교황청진화론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영혼은 하느님이 창조했다"는 주장만큼은 굽히지 않고 있는데 이건 가톨릭의 근본을 뒤흔들 문제라서 어쩔 수 없다.

가톨릭에는 수도회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특정한 구역에서 특정한 목표만을 추구하는 사제/수도자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메이저 수도회는 예수회, 아우구스티노회, 프란치스코회, 베네딕토회, 도미니코회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자 수도회가 약 30여 곳, 여자 수도회가 약 130여 곳이 있다. 생각보다 매우 많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신부수녀는 교구 소속 신부이거나 교구에 파견된 수녀이며, 수도회 소속 신부/수녀는 대외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회이거나 특정한 목적의 외출이 아니면 수도회 밖으로 나오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보기가 힘들다. '봉쇄수도원'이라고 하여 평생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닌, 그만큼 철저한 구도(求道)와 봉사를 한다는 뜻이므로 오해는 하지 않도록 하자. 수도회를 다룬 작품 중에서는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매우 추천할 만하다.

2.4. 역사

오랜 역사만큼이나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종교이다. 십자군 전쟁 등 전쟁에 관여한 적도 많았고,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대희년(大喜年)첫 성사에서 나열한 가톨릭이 저질렀고 반성하는 만행 목록에 들어가 있다. 이 외에도 마녀사냥 등 굵직한 일들을 반성하고 사과하였으며, 이에 정교회권과 이슬람권이 크게 반색했다고 한다.

카노사의 굴욕이 흔히 교권이 왕권을 압도한 사건이라고 알려졌지만 후에 교권과 왕권은 아비뇽 유수에 의해 역전된다. 카노사의 굴욕 사건의 당사자인 하인리히는 나중에 '힘만 있으면 대립교황을 내세우고 정통교황을 발라버려라' 하는 오래 써먹힌 전법을 제대로 구사하였다. 이는 도리어 교황의 정치적 생명력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십자군 전쟁 중반부까지는 교권이 강력해졌다가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면서 교권이 끊임없이 추락해서 교황아비뇽 유수를 당한 역사도 있다.

마치 중세교황서유럽을 지배했던 시기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는 중세 내내 교황과 황제가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였다. 그 사이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순전히 이익에 따라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거나 아예 베네치아 공화국처럼 양쪽 모두에게 확실히 선을 그어버렸다.

과거에는 정교회와 함께 초대교회를 이루었으나 서로마의 서방교회에서는 성령성부성자 양측으로부터 나온다는 교리를, 동로마의 동방교회에서는 성령은 오직 성부로부터 나온다는 교리로 갈등을 겪었다. 그러던 726년 동방 황제 레온 3세가 성상 파괴령을 내려 반감이 증대된 것에 성직자 결혼 문제, 정치적 문제가 뽕짝되고 내내 불화를 겪다가, 1054년 로마에서 온 추기경 사절단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미카일 케룰라리오스가 서로를 파문한 것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되었다(1차 교회분열). 이후 동방교회는 정교회의 이름으로, 서방교회는 가톨릭의 이름으로 역사가 갈라져버린다. 흔히 정교회가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종파라거나, 그 반대의 형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엄밀히 말해서 가톨릭과 정교회의 공동역사이고, 두 교회 모두는 초대교회의 적법한 직계후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사실 이거 때문에 두 종파의 신자들 모두 부심이 장난이 아니다. 이후 십자군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버린 사건 때문에 감정은 더더욱 극도로 나빠졌고, 두 교회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동서 교회의 분열은 분열이지 특정 교파가 분리독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훗날 벌어지는 소위 종교개혁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분열 이전의 초대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공동역사이지, 둘 중 한쪽만의 역사는 아니다. 또한 '정교회는 가톨릭에서 떨어져나갔다'거나 '가톨릭은 정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갔다'는 말 역시도 정답은 아니다. 정교회와 가톨릭 모두 초대교회의 직접적인 정통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원래 가톨릭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 등이 소위 종교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옛 공의회의 결정을 무시,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이름 하에 몇몇이 떨어져 나가 개신교를 만들긴 했지만(2차 교회분열), 전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이쪽이 다수.

종교적 권위가 거의 힘을 잃은 오늘날에도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권위는 범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건 단순히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교황을 범그리스도교의 수장으로 보느냐 마느냐와 같은 신앙/교리적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정치/사회적인 문제이다. 일단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거시적인 측면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톨릭은 그리스도교 단일 종파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장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히 가톨릭(25%)-개신교(51%)로만 나누자면 현재에도 미국개신교 국가라고 불릴 만하지만, 종파로 파고들면 가톨릭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최다종파인 가톨릭이 2위 종파인 남침례회의 4배가 넘는다.

물론 가톨릭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 예컨대 이슬람 같은 곳에서는 서로를 정통교회로 인정하지만 워낙 가톨릭에게 쌓인 게 많은 정교회권, 유난히 가톨릭에게 츤츤거리는 북유럽, 요즘 그쪽은 거의 모든 종교에게 츤츤거린다. 그런 거 관심없는 일본 같은 곳에서의 가톨릭에 대한 대접은 구색맞추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추기경이 2명이나 있었다. 라이트노벨 〈놀러갈게!〉 14권 극초반부에 평범한 일본인들이 교황과 가톨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는 바티칸그리스도교의 테마파크로, 로마 교황을 대체가능한 마스코트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종교에 무지하거나 관용적인(?) 일본인다운 인식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조차 정치/사회적으로 가톨릭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낮지 않다. 교황청에서 새로운 사회 회칙을 발표하거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언급을 할 경우 언론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장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콘돔 사용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했을 때 각국의 언론사들의 반응만 보더라도. 2000년 묵은 조직의 위엄

2.4.1. 대한민국에서의 가톨릭

대한민국의 7대 종단(한국종교인평화회의)
개신교 불교 천주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국민족종교협의회
대한민국/종교

한국에서는 개신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눈에 띄는 일이 별로 없지만, 사실 교파 별로 따지면 한국에서 가장 신자가 많은 교파는 가톨릭이라고 한다. 개신교는 장로교, 감리교 등 많은 교파로 갈리고 불교도 조계종, 천태종 등등으로 종단이 갈리는 데 비해 가톨릭은 그 자체가 단일 종파이기 때문.

신자 수
전체 국민 비율 %
조사 연도 종교없음 불교 개신교 가톨릭 기타
1985 57.4 19.9 16 4.6 2.1
1995 49.3 23.2 19.7 6.6 1.2
2005 46.9 22.8 18.3 10.9 1
출처 :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1985, 1995, 2005)

2.4.1.1. 역사

2.4.1.1.1. 최초 전래(조선 후기)
사실 한국인에게 가톨릭이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 때로, 당시 조선인 포로들 일부가 가톨릭에 귀의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땅에 전파된 것은 조선시대 후기로 몇몇 실학자들이 서양 학문을 배워오는 과정에서 한국에 전해졌다. 외부 선교사를 통해서 들어오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례이자 선교를 가지도 않았는데 자생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가 생겨난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정확히는 17세기 중국 베이징의 천주당을 방문한 사신들에 의하여 '서학(西學)'으로 소개되었고, 18세기 후반에 남인 계열의 실학자들에게 신앙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당시에 들여온 책이 <천주실의>. 마테오 리치가 한문으로 지은 것이 언문(한글)으로 옮겨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었다.

초기에는 서학(서양의 학문)으로서 몇몇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이 시기에는 천주교가 아닌 천주학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 연구회(?)를 지금은 명례방 공동체라고 부른다. 역관 김범우 토마스가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내주었다. 가톨릭교회에서 이 집터를 매입하여 세운 건물이 다름 아닌 현재의 명동성당이다. 하지만 모여서 서적을 읽고 연구/토론을 거치며 교리를 습득하고 신앙을 가지는 사람이 생겨났다. 정식으로 신부가 파견되기 전까지는 교인들 사이에서 임의로 주교신부를 뽑아 신앙활동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교회법상 허용되지 않는데, 초기 신자들도 이를 나중에야 알게 되어 부랴부랴 베이징 교구에 요청,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하게 된다.

후술할 조선의 천주교 박해 수난사, 대한민국의 민주화 투쟁과 더불어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점 중 하나가 이것이다. 즉,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이며, 이는 가톨릭 역사상 거의 유일한 경우라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한국의 이런 독특한 천주교 역사에 대해 언급했다. #

최초의 영세자, 즉 최초로 가톨릭 교인이라 승인받은 이승훈 베드로는 베이징까지 가서 서양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조선으로 돌아와 여러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 가톨릭 교리상으로는 신자도 세례를 줄 수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임종이 가까운 환자처럼 급박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며, 이마저도 완전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영세자의 상태가 호전된 뒤에 반드시 충분한 보충 교리를 받고 사제에게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세례성사 참조. 이후 베이징 교구와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최초로 한국에 몰래 들어와 전교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부터 가톨릭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조선조에 들어온 후 크게 4번, 즉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이때 최초의 한국인 신부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했다), 1866년 병인박해에 걸쳐 강력한 박해를 받았다. 물론 크게 피바람이 분 것만 4번이었다는 이야기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박해와 처형들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1866년의 병인박해가 혹독했는데 이 때만 최소 8,000여 명~최대 20,000여 명이 순교하였을 거라 추정될 정도로 조선의 박해는 매우 가혹한 것이었다.

당시 조선의 법집행 체계는 해이해진 국가조직 때문에 많이 흐트러져 있어서, 가톨릭 신자라도 주교신부 급이 아닌 이상 평신도는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뇌물로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순교를 택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니 흠좀무.

최초의 순교자는 김범우 토마스로서, 1785년 체포되어 고문의 후유증으로 2년 후 순교하였다. 바로 앞에서 설명한 '명례방'의 장소를 제공한 중인(中人)이었다. 정약용 등은 양반이라서 가벼운 문초 후 방면되었지만, 만만한 중인이라는 이유로 시범케이스로 목숨을 잃었다.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 후반이니, 조선 조정의 박해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801년 이전 박해의 성격은 순전히 종교 박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우선 조선왕조 시대에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종교라는 개념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시점에서 종교임을 부정하는 현대의 유교와는 달리, 과거의 유교는 '진정한 종교는 유교뿐'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것은 '종교'라는 단어 자체가 과거 유교에서 쓰이던 것과는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인데, 성리학자들이 성리학을 종교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불교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로서의 관념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에 쓰이는 서양 단어 religion의 역어로서의 종교가 아니며 말 그대로 학문이라는 개념으로만 존재했다는 것인데, 이처럼 종교라는 개념이 없는데 종교의 자유, 국교, 종교탄압 같은 개념을 적용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또한 정조를 비롯한 지배층들은 서학이 유행할 당시 가톨릭의 교리를 불교의 일부 종파라고 여겼을 정도로 당시에는 그냥 세상이 어지러우니 생겨난 사학 중 하나로 취급했으며 이것이 전체 신자에 대한 큰 탄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 시기의 천주교 박해는, 초기에는 혹세무민에 대한 처벌 수준에 불과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앞선 문화 항목의 중반부, 제사 관련 부분 - 윤지충 바오로와 문초관의 대화를 다시 참조해 보자.

그러나 황사영 백서 사건 이후에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처형되는 신자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명백한 간첩행위 및 반역행위의 죄목이 되었기 때문. 예전에는 적당히 장형이나 귀양으로 끝났던 사안도 얄쨜없이 사형장으로 끌려 가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조선을 일컬어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땅', 심지어 "순교하러 가는 곳"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그 살벌함을 짐작할 만하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는 중국, 조선 등으로 파견되는 신부주교를 전담하여 관리했는데, 1839년 기해박해 때 처형된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대 교구장), 모방 나 베드로 신부,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 등이 조선 최초의 프랑스인 순교자로서 유명하다. 이중 모방나 베드로 신부는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를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양성, 마카오로 유학보냈다. 최방제는 유학 도중 병으로 죽었지만, 김대건과 최양업은 무사히 살아남아 신부가 되었다.

병인박해 기간 중에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벤 곳이라는 잠두(蠶頭)봉은 그 뒤로 머리를 자르던 산이라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6년 한국 천주교에서 사들여 성지로 조성하게 되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당산철교를 건너다 보면 철교 북단 동쪽에 바짝 붙어 있는 작은 바위산이 있고, 바위산 정상에 성당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절두산 순교성지이다. 아담하게 조성한 야외공원과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기 때문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서 구경할 만하다.

1886년 프랑스와 수교 이후 프랑스가 적대국이 아니게 되어 천주교가 간첩 및 반역행위가 아니게 되었고, 프랑스 측의 요구로 가톨릭을 선교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선교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박해 때 싸그리 다 죽었고, 개항 이후에도 여러 차례 교난을 겪으면서 진통을 겪는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전쟁이 벌어질 때까지 대부분의 시골에서는 양반-상놈 체계가 잘만 유지되었음을 상기하자. 국가에서 탄압해제를 선언했다고 해도, 깡촌에서는 가톨릭을 믿는다는 이유로 이웃 주민들이 구타, 약탈, 강간,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이렇게 100년 동안이나 계속된 박해의 후유증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또한 프랑스 등 외국에서의 전교 지원 또한 미미하여 미국을 앞세운 개신교에 세력이 밀리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혹독한 박해를 겪고도 자생하여 교회를 유지시킨 역사는 바티칸 등 세계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탄압당한 신자들은 복자성인의 대열에 들어가기도 하였는데,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한국을 방문하면서 여의도광장에서 당시 순교자들 중 103명을 한꺼번에 성인으로 시성한 것도 이러한 평가가 배경에 깔린 것이다. 복자나 성인으로 추대되려면 교황청에 의해 한명 한명 지루할 정도로 철저한 심사를 거쳐 추려 낸다는 점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 103명은 아주 굉장한 숫자이다. 또한 한꺼번에 시복/시성된 숫자로서도 가톨릭 역사상 최대이며, 시성된 장소가 로마 교황청이 아니라는 것 가톨릭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 가톨릭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역사이다. 그리고 2014년 8월 16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 제1차 시복(124명) (즉,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을 했다.

그렇지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801년 박해의 원인이 된 황사영의 백서 사건은 지금도 말이 많다. 이 황사영은 다산 정약용의 큰 형인 정약현의 사위였다. 이 백서 사건 덕에 이루어진 가톨릭 박해로 정약현의 아우인 정약종은 처형되고 세례는 받았으나 실질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정약전, 정약용까지 18년씩이나 유배를 당하게 된다. 어쨌든 이 사건에서 유럽 군대를 동원하여 조선으로 쳐들어 와 종교적 자유를 허용해달라는 건 누가 봐도 매국노가 할 짓이다. 그것도 군함 수백 척과 정예군 5~6만 명을 보내달라고 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고작 2천 명도 안되었음에도 그 난리가 났던 걸 생각해보면, 이 정도 병력이 침략하면 조선은 임진왜란급 전란에 시달렸을 것이다. 물론 당시 프랑스나폴레옹유럽 각지와 멀리 아이티를 비롯한 곳에서 싸움을 벌이느라 조선에 이 많은 병력을 보낼 형편은 못 되었지만, 병인양요 급의 파병은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다.

황사영 백서는 의금부 관리들이 보고서를 올린 뒤 백서를 문서궤에 넣어 보관하기에 앞서 한 부 베껴두어 세상에 전하게 되면서 내용이 「벽위편」이나 「동린록」과 같은 척사관계 기록에 포함될 수 있었다. 그 백서의 사본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손에 들어와 1860년대, 다블뤼 안 안토니오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제5대 교구장. 병인박해순교, 1868년 시복,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때 시성되었다)가 조선 가톨릭회사에 관한 비망기를 작성할 때에도 주요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신부들이 병인박해와 같이 이 사본의 내용을 들먹이면서 병인양요의 명분이 되었으니 기어코 조선에 전란을 가져오게 했다. 약 1천여 명의 사상자 및 규장각 서고를 비롯한 무수한 문화재를 프랑스가 약탈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된 셈이다. 당시 실권자인 안동 김씨들이 가톨릭 박해에 크나큰 명분으로 삼아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안동 김씨의 당시 실권자 김조순은 "천주교인에 대한 대규모 처형은 민심을 요란하게 만든다"고 보류했는데, 다른 안동 김씨인 김구주를 비롯한 이들이 "천주쟁이들이 크나큰 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김조순에게 거듭 간청하다가 이 백서 사건이 드러나면서 제대로 기회를 잡았다. 결국 온건책을 쓰던 김조순도 백서 사건을 전해듣고 충격과 공포에 빠져 결국 강경책을 쓰게 한다. 결국 황사영은 산 채로 온 몸이 찢겨져 죽었다. 나아가 지방 유생들 등 '가톨릭은 양놈 군대의 침략을 권유하는 사교'라는 전국적인 인식이 퍼져 가톨릭 혐오에 이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이 때문에 그를 순교자로 기리면서도 천주교회에서는 황사영의 이러한 외세의존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서울대교구 굿뉴스 홈페이지 가톨릭대사전에는 "한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황사영의 ‘대안제시’를 반민족적 행위로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 민족주의가 성립되지 않았던 상황 아래서 제시되었던 그의 ‘몽상’을 반민족주의로 규정하는 데에는 재고가 요청된다. 그러나 그의 '대안제시'는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는 신앙의 자유라는 좋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력의 사용, 국가생존권의 부정이라는 좋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추진 중인 124위 시복시성에 황사영, 그리고 그를 도왔던 황심, 김현빈 등은 결국 최종 시복시성 대상자에서 제외되었다. 이유는 "황사영순교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교회 밖, 즉 국가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제외했다"고 한다. 그들은 1990년 최초로 시복시성 계획 당시에는 명단에 있었지만, 2000년대 최종 확정 과정에서 제외되었다. 이외에도 배교 행위가 강력하게 의심되는 정약용과 정약전도 보류되었는데, 말이 보류지 사실상 시복시성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다.

또 하나 수치스런 역사는 딱 100년 후 벌어진 1901년 이재수의 난이다. 제주도에서 프랑스 신부를 주축으로 행패가 워낙 심했기에 제주도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제주도 내 가톨릭인 3백여 명을 살해할 정도로 그만큼 반감도 장난 아닌 걸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재수 항목 참조. 100년 가까이 묻혀진 이 사건은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잠깐이나마 알려졌다. 당시 이 영화를 "반가톨릭 영화로 봐야 하는가?"라는 등의 논란이 가톨릭 내에서 있었다고. 제작비 40억원으로 만들어 5억원 남짓 벌어들이는데 그친 흥행 실패 말고도 평도 매우 나쁜 작품으로 괜히 묻혀진 게 아니니 찾아서 볼 필요는 없다.

그 외에도 개화기 시절의 외국인 신부라는 특권을 남용하여 조선 관청에 난입하여 죄수를 탈옥시키고 주민들을 폭행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도 신부들이 대놓고 천주교 신자를 옹호하는 등, 구한말의 천주교는 매우 안 좋은 쪽으로 기록을 계속 남겼다.

그러나 2011년 서울대교구에서 안중근 토마스 의사 등 551명을 추가로 시복시성하겠다고 나섰는데, 여기에 황사영이재수의 난 때 사망한 교인 중 24명이 포함되어 있어 비판을 받았다. 참고로 개신교에서도 조선인들을 죽인 무장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에 탑승하여 조선에서 효수된 미국인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 목사를 순교했다며 '토마스 교회'를 세우고 찬양하고 있다. 둘 다 별 차이없이 욕먹을 짓. 이에 대한 천주교계 내부에서의 반발까지 거셌는지, 결국 황사영이재수의 난 때 죽은 교인 중에 누구에 대해서도 시복시성 절차를 진행시키지 않았다.

박해 당시의 경험 때문에 한국 천주교 측에선 개고기에 대해 친숙(?)하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불교에서 개종한 이들의 상당수는 아예 거부한다고.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내면서 개고기를 먹으며 목숨을 이어갔다는 야사가 있다고 한다. 신학교의 식단에 개고기가 올라오기도 하며, 성당이나 천주교 단체에서 여는 음식 바자회에 개고기 음식이 올라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동학도 교리 때문에 천주교의 이단 중 하나라고 유교 지배층들에게 탄압받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참고로, 2014년 8월 16일에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 제1차 시복(124명)을 했고, 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 제2차 시복시성(133명),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시성(81명), 총 214명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황사영(본인), 황심, 이재수의 난으로 숨진 사람(1명), 한국전쟁 중에 공산주의자들이 살해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 단, 김현빈, 정약용, 정약전, 이재수(본인), 안중근은 없다. 이에 대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는 "현재 기초자료 수집 단계에 불과하며 앞으로 10여 년간에 걸쳐 진행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학적 측면에서 유교와 천주교와의 화해, 더 폭넓은 신앙적 시야가 필요한 연구가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2.4.1.1.2. 일제강점기
진정한 복지부동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보여준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해서 이는 정치적인 일이니 막지 않는다고 했을 정도. 신사참배 자체가 교황청에 의해 허용된 것은 1936년의 일인데, 교황청이 허용하지 않았던 시기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신자들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독립운동을 밀고하는 등, 추악함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외국인 신부들이 개별적으로 조선인을 도와준 사례가 종종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인(서양인)으로서의 개인적 영향력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민족운동을 하는 성직자들에게 국가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며 경고를 주거나 대놓고 징계에 처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자식을 신부로 키우려 했던 안중근 토마스 의사를 교회 차원에서 애써 외면하였던 사실도 었었다. 1972년 안중근 의사 탄생 100주년 기념 미사명동성당에서 성대하게 봉헌되는 등,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자체는 예전부터 많이 이루어졌지만, 교회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건 1990년대부터의 일이다. 교구장이 프랑스인이었던 일제강점기 때는 아예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애매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걸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교세 확장에만 몰두하며 조선과 조선인에 대해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던 뮈텔(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 주교와 외국인 선교사들이 당시 조선 천주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제사 문제로 박해를 당한 영향도 있겠지만 이는 너무나도 종교의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한 처사였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의 가톨릭을 친일적이라면서 비판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가장 욕을 많이 먹은 것은 신민회 105인 사건.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이자 가톨릭의 지도자이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 일가족과 가깝게 지냈며 사형 직전의 안중근에게 종부성사를 해주었으나, 그 때문에 2개월간 명령 불족종으로 미사 집전을 금지당한 빌렘 신부에게 후술할 정보를 알게 되었다.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사촌동생 안명근 야고보로부터 '조선인들이 데라우치 마사다케 총독 암살을 꾀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안중근의 동생 야고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것을 눈길을 헤치고 가서 일본군 아카보 장군에게 밀고하여 이것이 105인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이 고해성사의 내용을 누설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퍼져 있는데, 가톨릭 측에서 그것은 부정하고 있다.

3.1 운동 또한 일제강점기 초기 조선총독부의 철저한 감시와 탄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던 종교계가 주도한 독립운동이라 민족대표 33인이 전원 종교계 인사들이었다. 이 중 천도교개신교가 주류를 이루었고 불교 역시 만해 한용운과 백용성이 참가했지만 그때까지 조선 최대 종교라 할 수 있었던 천주교는 단 1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장 큰 원인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10대 교구장이자 최초의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이전에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대표격인 서울대교구(강점기 당시 경성대목구)장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어서 민족운동보다는 교회의 교세 유지에 더 큰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풍전등화와 같던 교회의 운명을 보존하려는 교황청의 노력과 맥락을 같이 하기는 했지만, 당시 나치공산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는 회칙을 반포한 교황 비오 11세나, 표면상으로는 나치에 굴복하였지만 비밀리에 유대인들을 구제하려 노력한 교황 비오 12세의 행동과도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내내 보여준 이러한 친일행각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개신교로 개종했다는 설도 있고, 이 때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서 이후 군사독재 시대 민주화 운동에서 천주교가 종교계에서는 가장 앞장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철저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정교분리)이긴 했다. 이게 교회의 자발에 의한 것이 아닌, 군국주의 국가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거란 게 문제였지만. 몇몇 교구에는 아예 본당에 일본 헌병이 들어와 사제들에게 "너님들은 군대를 가세요. 주님의 뜻입니다" 따위 소리까지 당당하게 지껄였다고 할 정도였다.

위의 이유 외에도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조선 정부가 탄압을 했던 병인박해 등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던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탄압을 가했던 나라를 굳이 독립시키자고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도 지방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했던 의민단 등 평신도 차원에서의 독립 운동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4.1.1.3. 해방 이후
해방 이후에는 미국쇼미더머니에 힘입은 개신교의 약진에 크게 뒤쳐진다. 이승만도 개신교도였고, 군사정권에 쫓겨났던 장면이 천주교 신자라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방 이후 북쪽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공산주의가 들어옴에 따라 간도의 연길교구(연길교구는 조선인 신자가 많다는 특성상 조선관구에 속해 있었다)와 함흥교구, 평양교구의 신자, 수도자, 사제들은 모진 고난을 받았고 심지어 만주의 수용소에 끌려가 모진 고통을 겪은 독일인 수도자들도 있다. 이때 원산에 있던 덕원자치수도원은 남쪽으로 내려와 왜관 근처에서 수도원을 다시 재건한다.

2010년 1월, 덕원수도원장 신상원 보나파시오 사우어 아빠스를 비롯한 함흥교구, 덕원자치교구, 연길교구의 순교자 38위에 대한 시복재판이 열렸다. 이 외에도 평양교구장 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를 비롯한 평양교구 순교자 26위에 대한 시복시성도 추진되고 있다.

2.4.1.1.4. 군사독재 시절
조정의 인정받지 못해 박해를 받았던 조선 말과 저항 운동에 소극적이었던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 천주교가 변화된 모습을 보인 것은 군사독재 시절로 평가된다. 군사정권 시대에 들어서는 박정희 정권의 군사정권과 민주주의, 인권탄압을 반대하면서 정부와 큰 대립각을 세우며 크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1971년, 故 김수환 추기경이 전국으로 생방송되던 성탄 자정 미사 강론 도중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1971년 성탄 미사에서 대놓고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왜 나라를 위해 유익한 일입니까?" 라며 대놓고 돌직구를 날렸던 것. 이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교황청에 연락해서 김수환 추기경의 직위 해제를 요구했을 정도. 물론 교황청에서 이를 귓등으로도 들었을 리가 없다. 바티칸을 무슨 동네 뒷길로 알았나 봐?

당시 군사정권과의 갈등은 상당히 심각했는데, 대표적으로 1974년 당시 원주교구장 故 지학순 주교가 체포되었던 사건 등이 있으며, 지금까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진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의구현사제단도 이 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도 박정희 정권보다는 직접적 대립은 적었던 것 같지만 그래봐야 군사정권이었으므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이 절정으로 치닫고, 시위 주동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피신하고 있던 명동성당으로의 공권력 투입이 임박할 때 김수환 추기경이 남겼던 말은 역사적 명언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를 다 넘어뜨리고 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사회 전체가 군사정권 아래 숨죽이고 있던 시절, 그와 여러 사제들의 용기 있는 언행이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앞서 말한 자발적인 신앙 전래, 박해 수난사와 더불어 한국 가톨릭 교회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역사 중 하나이다.

2.4.1.1.5. 문민정부~현재
김수환 추기경은 1970~80년대에 시국관련 발언을 자주 해서인지 주변에서 정치를 좋아하는 줄로 안다고 하였다. 정작 본인은 그때마다 "성직자가 언제까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며 한탄했다고.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될 때 "아~ 이젠 목소리 높여 민주화를 촉구하지 않아도 되고, 정권과 팽팽하게 대립할 필요도 없겠구나"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참고: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 문민정부가 가져다 준 여유). 하지만 나중에 한국통신 노조 체포한다고 전두환도 안 쳐들어간 명동성당에 최초로 쳐들어간 걸 생각하면...

더군다나 김수환 추기경은 시위대 탄압에 항의하여 함께 단식투쟁하던 신부들에게도 "난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하더라도 사목자가 사목현장을 오랫동안 비워두고 무슨 일에 몰두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사목자의 본분은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돌보는 것이다. 그 본분에 소홀하면서까지 정신을 빼앗길 만한 일은 사목자에게 없다. 과거 전주교구 신부들이 유신정권에 대한 항의 표시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을 때도 이같은 논리로 농성을 중단시켰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가톨릭이 보수적인 성향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참고: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 명동성당 경찰병력 투입과 노동운동).

2000년대 이후 유입되는 신규 신자의 수가 우리나라 종교 중 가장 많다. 2위는 불교. 개신교의 몇몇 관습에 실망한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요인가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다만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개신교가 14만 명 감소한 데 비해 가톨릭이 2백만 명 이상 증가하였다. 이는 10년 동안 70% 이상 증가한 수치인데, 새로운 종교인을 거의 가톨릭이 흡수한 셈이다. 과거의 경향과는 달리는 무교인이 종교인으로 바뀌는 경향은 점점 줄어드리라 예상되므로 가톨릭의 성장세는 다소 완만해질 것이다. 2009년 12월에는 인구 대비 신자 수가 사상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 주교회의 차원에서 반대 태도를 표명하였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생명보호'라는 교리의 실천을 이유로 들고 있다. 예를 들어 배란주기관찰법피임수단으로 인정/권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 사업 예정지에서 시국미사를 개최하고 전국의 가톨릭회에서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등의 활동은 이러한 결정에 따른 것인데, 2010년 12월 8일에는 정진석 추기경의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으로 교계 안팎에서 갈등 상황이 빚어진 바가 있다. 정진석 항목 참조. 2012년 5월 10일, 정진석 추기경서울대교구장 사임 신청을 교황청이 수락하였다. 후임 서울대교구장으로 염수정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가 서임되어 6월 15일에 취임하였고, 6월 25일에 착좌 미사식이 거행되었다. 다만 정진석 추기경의 추기경직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선종 시까지 계속 유지된다. 2014년 2월 22일에는 서울대교구 염수정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공식 임명되었다. 이로써 한국에서 3번째 추기경이 탄생하였다.

2014년 5월 7일 발표된 '교회 통계 연감 2012'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는 약 531만 명에 달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사순, 대림시기 판공성사를 6회 이상 안본 신자는 성당에 안나오는 신자인 냉담자로 분류하여 일단 통계에 표시한다. 한국의 신자수는 전 세계에서 47번째, 아시아에서는 5번째로 많은 숫자다.(#)

2.4.1.2. 납세

가톨릭은 한국의 모든 종교단체 중에서 개신교의 한 갈래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와 더불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여 온 단 둘뿐인 종교이다. 2006년 회계법인에 의뢰하여 스스로 외부감사를 받은 뒤 그 결과를 언론에 뿌리기도 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종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

신자들이 낸 헌금과 교무금 등도 모두 종교기부금으로 처리하여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처음엔 교무금만 하더니 어느새 주일 헌금까지. 각 교구별로 원천징수해서 납부한다는 듯. 다만 신자입장에서 소득공제를 받기는 껄끄러운 편인데, 절차가 까다로운 게 아니라 믿음의 문제 때문이다. 특히 헌금은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신에게 온전히 드리는 중요한 행사인데, 거기에서 세속적인 소득공제 등등을 받자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이 느껴지기 쉽기 때문이다. 때문에 알면서도 신청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다만 만일 그게 문제가 있는 행위였다면 가톨릭 측에서도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았을테니 판단은 각자 내리도록 하자.

총 16개의 교구중 12개 교구에서 세금을 낸다. 안내는 네곳중 두곳은 제주교구와 군종교구. 제주교구는 사람이 적다보니 헌금이 절대적으로 적어서, 그리고 군종교구는 특성상 수입 자체가 없다보니 제주교구를 제외한 다른 교구들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매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이 끼어 있는 주일의 헌금은 모두 군종교구로 간다. 이때 군종교구에서는 각 성당에서 신자들의 기부금도 받는다. 나머지 두곳은 평양교구와 함흥교구로 이들에 대한 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편 성직자들과 수도자들도 세금을 내며, 4대보험에도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은퇴하면 국민연금을 수령한다.

2.4.1.3. 교구

한국 가톨릭교회에는 17개 교구가 존재하며 교황청 직속의 면속구와 종교구가 각각 1개씩 존재한다. 17개 교구는 면속구와 군종교구를 제외하면 모두 3개의 관구에 나뉘어 속한다. 관구는 하나 이상의 교구들이 하나의 대교구를 중심으로 뭉쳐 지역교회로서의 연대를 이루는 것으로 중심 대교구의 대주교가 관구장을 겸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교구의 대주교는 동시에 서울관구 관구장 주교를 겸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교계제도가 확립된 것은 1962년이다. 그 이전에는 정식 교계제도 설정 이전에 임시적 성격으로 '대목구(Apostolic Vicarate)'체제가 설정되어 있었으며, 대목구장들은 사실 관할 대목구의 주교가 아니라 명의주교로 주교품을 받은 후 실질적인 대목구 관할 업무를 맡았다.

덕원자치수도원구, 평양교구, 함흥교구, 서울대교구 황해감목대리구, 의정부교구 일부(개성본당 및 관할 공소), 춘천교구 일부(평강본당, 포내본당, 이천본당 및 관할 공소)는 북한 치하로 넘어가 '침묵의 교회'라 하여 현재 실질적으로 관할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아래 취소선으로 표시.

여담이지만, 몇몇 교구의 관할구역은 법원 관할지역과 똑같다. 광주관구는 아예 광주고등법원 관할구역이라 할 수 있으며, 수원교구 내의 성남, 안양대리구는 아예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과 안양지원 관할구역과 동일하다. 대전관구도 이 지역 자체가 대전지방법원 관할구역이다. 이 외의 지역은 약간씩 차이가 있다.

  • 서울관구
    • 서울대교구(주교좌 명동성당)
      관할구역 : 서울특별시
      • 황해감목대리구(옛 감목대리구청 장연성당): 1942년 폐지, 2008년 부활.
        관할구역 : 황해도
        황해감목대리구는 서울대교구의 월경지이다. 원래는 아니었으나, 서울대교구 중 경기도 한강 이북 지역을 의정부교구로 분구하면서 월경지가 되었다.
    • 인천교구(주교좌 답동성당)
      관할구역 : 인천광역시, 경기도 김포시, 부천시, 시흥시(북부), 안산시(대부동)
    • 수원교구(주교좌 정자동성당)
    • 의정부교구(주교좌 의정부성당)
      관할구역 : 경기도 의정부시, 고양시, 동두천시, 양주시, 파주시, 연천군,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
    • 춘천교구(주교좌 죽림동성당)
      관할구역 : 강원도 춘천시, 강릉시, 동해시(북부), 속초시, 고성군, 양구군, 양양군, 인제군, 철원군, 평창군(북부), 홍천군, 김화군, 이천군, 통천군, 평강군, 회양군, 경기도 포천시, 가평군
    • 원주교구(주교좌 원동성당)
      관할구역 : 강원도 원주시, 동해시(남부), 삼척시, 태백시, 정선군, 영월군, 횡성군, 평창군(남부), 충청북도 제천시, 단양군
    • 대전교구(주교좌 대흥동성당)
      관할구역 :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남도
    • 평양교구(주교좌 서포성당) - 서울대교구 대주교가 대리
      관할구역 : 평안남도, 평안북도
    • 함흥교구(주교좌 없음) - 춘천교구 주교가 대리
      부서져서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없다! 사실 원래 함흥교구는 원산대목구로서 원산성당을 주교좌로 하였는데, 1940년 원산대목구가 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로 분리되면서 1945년까지는 일제의 탄압으로, 이후에는 북한의 탄압으로 주교좌 본당을 짓지 못하였다. 그나마 있던 원산성당은 1949년 폐쇄되었다.
      관할구역: 함경남도(원산시, 고원군, 문천군, 안변군 제외), 함경북도
  • 대구관구
    • 대구대교구(주교좌 계산성당)
      관할구역 :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산시, 경주시, 구미시, 김천시, 영천시, 포항시, 고령군, 군위군, 성주군, 울릉군, 청도군, 칠곡군
    • 부산교구(주교좌 남천성당)
      관할구역 : 부산광역시, 경상남도 김해시, 밀양시, 양산시
      • 울산대리구
        관할구역 : 울산광역시
    • 안동교구(주교좌 목성동성당)
      관할구역 : 경상북도 안동시, 영주시, 문경시, 상주시, 울진군, 영양군, 봉화군, 영덕군, 청송군, 의성군, 예천군
    • 마산교구(주교좌 양덕성당)
      관할구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주시, 통영시, 거제시, 사천시, 고성군, 하동군, 산청군, 합천군, 의령군, 남해군, 거창군
    • 청주교구(주교좌 내덕동성당)
      관할구역 : 충청북도(제천시, 단양군 제외)
  • 광주관구
    • 광주대교구(주교좌 임동성당)
      관할구역 :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 전주교구(주교좌 중앙성당)
      관할구역 : 전라북도
    • 제주교구(주교좌 중앙성당)
      관할구역 : 제주도
  • 교황청 직속 교구
  • 옛 조선관구 소속 교구 : 연길교구(1907년 북만주대목구에서 조선대목구 관할로 편입 → 1922년 원산대목구 관할로 편입 → 1928년 연길지목구로 독립 → 1937년 연길대목구로 승격 → 1946년 심양관구로 편입, 현재는 심양관구 길림교구 소속)

2.5. 중국과의 마찰

바티칸중국과는 수교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 공산당은 종교를 모두 공산당 아래에서 관리 감독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당에서 종교인을 임명하고 있다. 문제는 가톨릭 사제들도 공산당에서 자체적으로 임명한다는 것. 이것을 '중국 천주교 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고 한다. 이 천주교 애국회에 속하는 걸 거부하는 신부들은 감옥에 가거나 가택 연금된다. 공산당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겠쏘! 닷씨는 하겠쏘!(?)

가톨릭 사제들은 모두 교황의 정식 승인을 받아 교황청에서 임명해야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신부를 뽑아 임명해놓고 가톨릭 사제라고 우기는 막장스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주교 서품도 교황청의 승인없이 공산당에서 해버린다. 본디 성직자 서품, 특히 주교 서품은 교리상 교황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이러한 만행은 교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사실 교리를 떠나서 이런 일은 정상적인 근대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중국의 가톨릭교도들은 당이 관리하는 교회에는 나가지 않으며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가톨릭의 종교활동이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하교회는 탄압의 대상이며, 적발될 경우 바로 감옥행이다.

때문에 바티칸에서는 공산당이 자체적으로 임명한 신부들을 정식 가톨릭 사제로 인정치 않고 있으며, 외교관계도 수립하지 않고 있다.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상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에 "교회를 수하에 두려는 '국가단체'는 가톨릭 교의와 양립불가"라는 입장을 천명하였다(참고: 중화인민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서한).

다만 교황청으로서도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대체적으로는 공산당 애국교회의 사제와 주교들을 사후 승인하는 방식으로 인정하고 있긴 하다. 특히 주교에 관해서, 일단 애국교회 소속으로 서품을 받았어도 교황청에 순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주교들을 사후 승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사를 전달하지 않은 주교들도 있다는 듯. 이들 애국교회 소속 주교들은 가톨릭 교리에 따라 불법적이지만 분명히 주교다. 서품 자체는 유효하다는 것이다. 교황청의 이러한 엄청나게 파격적인 대우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은 무단 사제·주교 서품을 그치지 않고 있어서 슬슬 교황청 내부에서도 서방세력과 연계하여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2.6. 창작물에서의 가톨릭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은연 중에 떡밥으로 많이 이용되며, 현실과의 갭이 크다 못해 100억 광년 정도 거리가 있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창작물 중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 혹은 가톨릭을 참조한 세력인 경우 주인공의 꽉막힌 소속집단으로 자주 출현한다.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이 아닌 경우가 당연히 더 많으며, 이런 경우는 제3 세력으로 등장하거나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른 종교나 기독교 종파에 비해 체계가 계급적이고 뚜렷하게 잡혀있기 때문에 구현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회는 미국 대통령 최다 배출 종파라는 나름의 위엄이 있지만, 영국만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여 거대 세력으로 설정하기가 어렵고, 루터파든 청교도든 개신교는 종파 수도 많고 조직체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톨릭과 비슷한 시스템의 정교회는 인지도가 없다. 구세군의 경우는 뚜렷한 조직체계와 군대를 연상시키는 시스템 때문에 잘다루면 그럴듯한 물건이 나오지만 인지도가 없다. 즉 뚜렷한 조직체계와 많은 신자수를 거느린 종교중에서 가톨릭만큼 만만하게 없다. 또한 중세시절의 파문, 마녀사냥, 면죄부, 종교개혁 등 악역으로서의 이미지도 뚜렷한 편이고, 적이든 아군이든 일단 출현하면 '이교도' 같은 대사를 자주 내뱉는 배타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대의 가톨릭이 다른 기독교에 비해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한숨. 사실 정상적인 가톨릭 성직자,수도자가 주인공이면 재미가 없다

신부나 수녀, 교황님이 마술을 쓴다거나 바티칸이 전투종족을 양산해 내는 곳으로 나오기도 한다. 특히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 로마 정교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가톨릭은 주적인데, 주인공인 카미조 토우마학원도시, 그리고 이들과 손을 잡은 영국 청교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다. 세계 제3차대전을 겪은 후 아군 포지션이 되기는 했는데 비중은 심하게 적다.

다른 형태로 가톨릭계 사립 여고가 주 무대인 낭만적인 작품도 있다.

2.6.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09년에는 실제로 퇴마사를 교황청 내에서 단체로 육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 오타쿠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 전에도 신자들 중에서도 알 사람은 많이 알았던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사실 성직자 과정 중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알고보면 딱히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신품성사 중 7품급 가운데 '구마(驅魔)품'이 3번째 품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또한 구마기도는 묵주기도 등의 다른 기도를 하되 청하는 바를 '구마'로 하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일반 신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성직자에게 특별히 유보되는 것은 한국에서 흔히 '엑소시즘'이라고 불리는 장엄구마식인데, 이 장엄구마식은 남용할 때 폐해가 너무 큰 관계로 반드시 해당 교구장의 허락을 받도록 교회법으로 규정했다.

이 장엄구마식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성직자들이 흔히 알려진 '엑소시스트'들이며 현재 한국 가톨릭 성직자 중 엑소시스트라 할 만한 사람은 최소한 두 명, 청주교구가 지정한 구마사제 김웅렬 주임신부와 인천교구의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도 구마경험이 많고 관련 강론도 한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다른 교구에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단지 알려져 보았자 대다수 신자들에게 좋을 것 없을 뿐. 모든 사제는 서품을 받기 전에 장엄구마식을 배운다고 한다.

가톨릭에서는 세례를 받은 신자 누구나 구마능력이 생기는 것으로 보며, 신심의 차이로 그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마기도문을 일반 신자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또 의외. 다만 이는 장엄구마식에 쓰이는 기도만 해당한다. 미카엘 대천사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긴급한 구원의 기도 같은 것에는 사실상 구마를 청하는 기도도 많다. 심지어는 수호천사들에게 악마로부터 보호해줄 것을 청하는 기도도 있다. 다만 좀 더 추상적인 개념에서 악으로부터 보호를 비는 것과, 구체적으로 대상을 영적인 악의 존재로 지정하고 물러갈 것을 명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성령쇄신지도신부들도 뛰어난 구마능력을 갖고 있다는데, 정신과에 가야 할 사람이 엑소시즘 권한을 받은 성직자에게 올 가능성이 많거니와, 현대 가톨릭은 그러한 정신이상 증세에 대해 악마의 영향을 고려함은 마지막 가능성으로 미루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2.7. 비판

미국과 유럽 등지의 가톨릭 교회에서는 종종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 사건나 금전 비리 문제 등이 터져 나와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성소자 부족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무리하게 신학교 입학 요건을 하향 조정하는 등 부적격자들을 신학교로 불러들여 서품시켰는데, 그 결과가 줄줄이 터져나온 사제들의 성추행·아동성학대 사건과 비리로 이어진 것. 또 아일랜드의 케이스처럼 사제들의 권위가 전통적으로 매우 세서 권력을 남용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네딕토 16세가 이런 문제를 덮어주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베네딕토 16세가 직접 이런 의혹에 반박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서구에서는 의외로 시민들의 가톨릭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한 편이다.

꼭 이런 문제가 아니라도 영미권에서는 반가톨릭주의가 꽤 강한편이다. 가톨릭은 권위주의적이다 라는 고정관념이 사람들의 틀에 박혀 있기도하고 영국부터가 국가적으로 성공회를 밀고, 미국 역시도 개신교 주류 문화권이다보니 가톨릭 신자들이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왔다. 영국의 경우 아일랜드가 가톨릭으로 국가정체성을 잡다보니 곱게보이지도 않았고, '중세=닥치고 암흑시대, 가톨릭=암흑시대를 만든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중세 가톨릭을 만악의 근원 취급하는건 유럽권에서 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이긴 하다. 이와중에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는 개혁적이고 근현대적고 과학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물론 한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러한 인식은 미국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국내 그리스도교가 프로테스탄티즘의 비중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프로테스탄티즘은 현대적인 종교라는 인식 때문에 가톨릭을 밀어내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21세기 들어서 프로테스탄티즘에 실망한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태가 많아져서, 내부적으로는 위기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만들어진 신>에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어떤 대통령 후보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충분한 능력과 자격은 갖추었지만 흑인이거나, 여성이거나, 가톨릭 신자이거나, 유대인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무신론자일 경우, 그에게 투표하겠냐고 묻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가장 부정적인 답변이 나온 파트는 무신론자인데, '가톨릭'이 여기에 후보로 올랐다는 것 만으로도 미국사회내에서 차별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현대에는 영국 자체가 종교색이 많이 희석되어서 영국 내 차별은 많이 줄어들었다. 미국의 경우도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이민자가 늘어나고 이들이 자녀를 많이 낳는 경향이 있어서 가톨릭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

또 한국에서 논란을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문제가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자들의 사회활동에 대해서는 권장하는 편이다. 실례로 천주교가 국교였던 적이 있는 이탈리아는 현재에도 그리스도교 계열의 정당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그 정당들 대부분은 천주교 계열이다. 독일 같은 경우도 기독교민주동맹을 통해서 가톨릭 교회가 정치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허용할지라도, 성직자들이 정당을 만들거나 선출직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교황청은 성직자 및 신자들의 사회활동을 위한 사회교리서를 통해 교회가 허용하는 사회활동의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조항에서 정치활동은 사제가 아닌 평신도(신자)들의 몫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오래 전부터 "사제들도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따라서 이런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사례를 볼 때 요즘 논란이 되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느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교회법에서 어긋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 천주교회 내의 비공식 조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한국 천주교회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 천주교회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정부 비판, 4대강 사업 비판 등은 주교회의에서 대체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과 입장을 같이 하는 편이다. 참고로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일제강점기 시절 등의 부끄러운 역사 때문에,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걸 요구당하면 대체로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고 가톨릭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정치성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기 힘든 게, 가톨릭 교회는 참여정부 시절 사학법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반대했는데 의외로 한기총과 연대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부권 사용을 종용했고, 그러지 않을 경우 법률 불복종 운동을 하겠다고 정부를 협박했다. 당시에도 내부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주교회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편들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논란이 있었고, 특히 가톨릭 교리상 별 상관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가톨릭 계열 재단법인 등 높으신 분들의 이기적인 밥그릇 챙기기라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주교회의가 이런 흐름을 총괄하고 결정권도 있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를 통해 당시 사학법 개정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재밌게도 당시 정치적인 사학법 반대 입장을 주교회의에서 통과시킨 건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였다.

0203.jpg
[JPG 그림 (Unknown)]

2014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발간한 책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 천주교는 황사영에 대해 내심 옹호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반역 및 국가전복을 기도한 황사영 백서 사건이나 사회적 정의와 상관없이 자기보신주의만 내세워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뮈텔 주교를 비롯하여,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수치스런 역사다. 또한 천주교에서 국내의 천주교 성지들을 성역화하는 사업을 벌이면서, 천주교 성지 중 다른 종교 시설들과 겹치는 곳들을 천주교만의 성지로 바꾸는 짓을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천진암/주어사터를 놓고 불교계와 벌이는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 있으며, 서울 서소운 역사공원을 천주교 중심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천도교측에서 발끈하고 있다. 사실 서소문 역사공원의 경우 현재 천주교에서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울시에서 '관광지 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본문에 링크한 유튜브 영상에 보이듯이 스타트는 가톨릭에서 한 게 맞다. 문제는 교황방문 이후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관광 상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이곳은 천주교 순교자만 처형당한 게 아니라,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녹두장군 전봉준을 포함한 동학농민운동의 중요 인물들이 처형된 곳이다. 거기다 여기서 처형당한 천주교인 중 하나가 황사영 백서 사건의 당사자 황사영이다. 특히 천도교는 일전에 교조 최제우의 순교지인 대구 관덕정에도 천주교가 성지화 사업을 벌여 성당을 지으면서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는데다, 서소문 역사공원 사업과 관련해 '겉으로는 역사기념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순교 성지 관련 시설 건립에 필요한 예산 확보"란 말을 쓰는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번 사태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참조 영상

2.9. 관련 용어 및 관련 항목

2.10.1.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유명 인물인 평신도

세례명이 있다고 모두 신자인 것은 아니니 가급적 신자임이 확실한 사람만 기재 요망.

2.10.1.1.

2.10.1.2. ㄴ~ㅂ

2.10.1.3.

2.10.1.4.

2.10.1.5.

2.10.1.6. ㅊ~ㅎ

2.10.1.7. A ~ Z

  • BoA(키아라) : 키아라는 클라라의 다른 이름.
  • G.NA(지나)
  • J.ae(크리스티나)
  • JK김동욱(사도 요한)
  • K2(루카)

2.10.2. 리그베다 위키에 항목이 존재하는 가상 인물인 평신도

설정상 진지하게 가톨릭 신자일 경우에만 추가바람. 평신도가 아닌 경우 신부, 주교, 추기경, 교황, 수도자 등의 항목 참고.

  • 각시탈 -오목단
    덕택에 채홍주수녀 코스프레를 간파하고 역으로 낚아 버렸다. 세례명은 에스더.

  • 굿 닥터 - 차윤서
    고 1때 성당 오빠를 짝사랑했다는 설정도 있고 병원 부속시설 성당에서 기도하는 장면도 있다. 여담이지만 배우인 문채원도 가톨릭 신자라서 성당에서 기도하는 연기가 자연스럽다.

  • 나는 친구가 적다 - 타카야마 마리아
    본인은 자기가 수녀라고 착각하고 있으며 신앙심이 대단하다.

  •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 토도 시마코
    토도 집안은 대대로 쇼구지(小寓寺)라는 유서 깊은 사찰의 주지 스님을 맡아 올 정도로 독실한 불교 집안이지만, 시마코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장래에 수녀가 되기를 원한다. 불교 집안의 딸인 시마코가 가톨릭계 학교인 릴리안 여학원에 다니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 쿠보 시오리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릴리안 여학원 고등부 졸업 후 수녀원에 입회하기로 되어 있다. 시오리와 친하게 지내던 1년 선배 사토 세이는 뒤늦게야 이것을 알고서 큰 충격을 받았다.

  • 엑스맨 - 나이트 크로울러
    악마같은 외모와는 달리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한번은 교황 후보까지 오르기도 했다.

  • 마음의 소리 - 조석
    작가가 가톨릭 신자인만큼 작가의 오너캐도 작중에서 가톨릭 신자로 나온다. 세례명은 안 밝혀졌다.

  • 본즈 - 실리 부스
    이 항목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가장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가톨릭 신자. 템퍼런스 브레넌과 가끔 신의 존재와 신앙을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

  •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 빼뽀네와 그 부하 공산당원들
    공산당원이라면서 아들에게 유아 세례도 주고, 대부도 서고, 틈틈이 할 것은 다 한다.

  • 제이슨 본 시리즈 - 제이슨 본
    본 얼티메이텀에서 등장하는, 제이슨 본이 원래 데이비드 웹 대위였던 시절의 군번줄에 가톨릭이 종교 항목에 표시되어 있다.

  • 죠죠의 기묘한 모험 - 시저 체펠리, 리사리사
    프로필상에 적혀져 있다.

  • 철권 - 미겔 까바예로 로호
    승리할 때 하는 대사 중에 "고해성사 볼 일이 생겼군…" 이 있다.

  • 춤추는 대수사선 - 마시타 마사요시
    경찰 임용 시험을 앞둔 카시와기 유키노에게 묵주를 선물하면서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알렸다.

  • 퇴마록 - 현승희
    박신부와 친구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일단은 가톨릭 신자이다. 다만 본인 자체가 애염명왕의 현신(...)

  • 회색도시 - 배준혁,장지연
    장지연에게 성당에서 수화를 배웠다고 하고, 회색도시2 3부에서 성당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세례명은 그레고리오. 장지연 역시 교인이며 배준혁과 같이 성당 봉사를 하기도 한다. 세례명은 스텔라.

  • CSI - 길 그리섬
    냉담 신자. CSI 2기 6화에서 드러난다.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자신의 성당에 다니는 용의자를 보호하려는 신부에게 그리섬이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서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이에 신부는 "저는 신자뿐 아니라 냉담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리섬이 "제가 왜 가톨릭 신자였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신부는 "형제님이 저를 'Father'라고 부르시는 것을 듣고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신부가 보호하려고 했던 용의자가 진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게 되지만, 용의자의 형이 진범임을 알았던 그리섬은 신부가 있는 성당을 찾아가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신부는 미사에 참례할 것을 권한다. 이에 그리섬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하느님과 과학, 가족은 믿지만 종교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그리섬에게 "형제님은 여전히 가톨릭 신자처럼 죄책감을 느끼는군요."라고 말하였다. 그리섬은 이후 아래 항목의 사건의 희생자와 내연 관계였던 신부의 자백을 계율을 어긴 성직자의 죄책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사건을 다시 조사하여 신부의 무죄를 입증했다.

    CSI 7기 5화에서 성당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캐서린에게 가톨릭 교리와 묵주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묵주를 보고 "내 어머니 것과 같은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2.11. 이단

사실상 이단이 존재하기 힘든 구조이지만 일부에서 존재한다. 이 중 나주 성모동산은 관련되기만 해도 자동파문이니 신자라면 크게 조심해야 한다.

아래는 이단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자체적으로 주교를 서품하여 파문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은 집단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로부터는 교회 독립을 선언하지도 않았고 교황청에서도 이들에 대해 이단으로 단죄하기보다는 화해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분파를 말한다. 바꿔 말하면 바티칸, 혹은 이들 분파의 의지에 따라 이단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
  • [1] 성공회의 경우 한자말로 풀어쓰면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이건 한자문화권 한정이다. 원어로는 Anglican이다.
  • [2] 동방가톨릭의 경우 전례와 규율이 라틴교회(흔히 말하는 가톨릭)와 다르지만, 교리는 라틴교회와 완전히 동일하다. 물론 외부인이 보기에는 전례나 규율이나 교리나 다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 [3] 다만 그리스와 동구권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