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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석

최종 변경일자: 2016-04-03 18:59:04 Contributors

목차

1. 교실 등에 배치된 의자를 통칭하는 것
2. 논란의 인물 & 범죄자
2.1. 개요
2.2. 사회 활동(2004) - 종교 자유 투쟁
2.3. 학업 활동
2.3.1. 고백 사건
2.3.2.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묘사 의혹
2.3.3. 맥아더 동상 사건
2.3.4. 영화 동아리 제명
2.3.5. 서울대 제적
2.4. 직업 활동
2.4.1. 강의석 닷컴(2010)
2.5. 사회 활동(2008~2011) - 군대 투쟁
2.5.1. 박태환 기고 사건
2.5.2. 단편영화 '군대?' 제작
2.5.3. 국군의 날 누드 시위 사건
2.5.4. 서해교전 전사자 폄하발언
2.5.5. 입대 거부로 징역 선고
2.6. 옥중활동(2011-2012)
2.6.1. 수감자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
2.6.2. 출소(2012)
2.7. 출소 이후(2013-)
2.7.1. 단편영화 미션스쿨
2.7.2. 2차 국군의 날 누드시위
2.7.3. 다큐영화 애국청년 변희재
2.8. 사상과 평가
2.8.1. 군대투쟁 관련 평가
2.8.2. 주변인 또는 유명인들의 평가
2.9. 참조
2.10. 관련 사이트
2.11. 관련항목

1. 교실 등에 배치된 의자를 통칭하는 것

강의석은 각 강의실에 배치된 좌탁 중 의자를 칭하는 다른 단어다. 물론 2항 때문인지 강의석이 의자의 의미로 쓰이는 것은 많이 줄어들었다. 존재 자체가 모든 교실에 있어 사실상 민폐가 되었다. 강의석이 강의석에 앉아 있다.

2. 논란의 인물 & 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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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義錫 1986. 08. 25 ~


2.1. 개요

Kang We-suck(강위썩)강 "우리는 후졌다" 혹은 강 "우리는 빤다"[1][2]

학생운동가 출신 사회운동가로 학교 내 종교 강요 정책 폐지와 반기독교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종교 문제로 학교에 반발함으로써 처음으로 화제에 올랐다. 1986년생이다. 미션스쿨에서 종교 강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사회운동가로 대우받을 만했지만...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이해하기 힘든 기행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군대 관련 문제에 대해 논란거리가 있기도 하다. 백괴사전에서 유머를 위해 곡해하지 않고 의외로 꽤나 정확하게 기술해놓은 인물 중 한 명이다. 아마 그 존재 자체가 유머인 듯

그의 활동들은 종교 자유 운동병역 거부 운동, 재소자인권운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네이버 프로필에 의하면 키가 182cm라 한다.

2.2. 사회 활동(2004) - 종교 자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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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그가 입학한 대광고등학교는 개신교에서 설립한 미션스쿨로, 채플 규정이 있었다. 이것은 신입생들도 알고 있었고, 따라서 강의석 군도 입학하기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같은 채플이 있는 이화여대숭실대 같은 대학과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적은 일반 고등학교라는 것이 문제였고, 따라서 이 요소 때문에 나중에 대법원 판결에선 학교 측이 패소하게 된다. 연세대채플 안들으면 졸업장이 안나오는데? 대학은 선택이지만 고등학교는 대개 뺑뺑이로 가는 거니까.

각설하고, 강의석은 고등학교 1~2학년을 다니며 무리 없이 적응[3], 3학년에 가서 학생회장이 된다. 그런데 대입 수시 모집을 앞두고 갑작스레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시위에 들어간다.

당시 대광고는 무신론자와 비 개신교인에 대한 차별 규정이 있었고, 강의석이 투쟁하면서 이 점이 언론에 알려져 논란이 된다. 대광고의 학칙에 의하면 무신론자는 학생 임원이 될 수가 없고 개신교인만이 가능했으며,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비 개신교인들을 은연중에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종교 강요도 있었는데 가령 영락교회까지 가서 예배를 드리게 한다거나, 주된 쟁점이었던 채플 강제 참여[4] 등이 있었다. 강의석은 이러한 종교의 자유를 문제 삼았는데, 이것은 언론과 대중이 보기에도 대광고 측에 문제가 분명히 있었으므로 강의석의 투쟁은 상당한 공감을 일으켰다.

저 당시 언론에는 그의 집안이 독실한 불교 집안이고 이 영향으로 그가 저런 운동을 하게 된 거란 말이 있었는데, 정작 강의석은 훗날 저 당시 무신론자였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는 덧붙이길 종교투쟁 당시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았고 신앙심을 가지기 어려워서 고민이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데 강의석의 종교 자유에 대한 시위에 가려 무시되는 부분이나, 도덕적으로 볼때 강의석이 "대광고 학생회장이었을 때 사실 무신론자였다."고 밝힌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대광고 학칙에 의하면 무신론자는 학생회 임원이 될 수가 없었고, 개신교인만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강의석은 학생회장이기 전에 그가 개신교인이라고 주변사람들과 학교 측에게 말했다는 말이 되고, 이는 무신론자인 그가 개신교인으로 행세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또한 그는 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실은 개신교 신자가 아니고 무신론자"라고 밝혔는데, 이것은 2년 동안 그를 개신교인이라고 생각한 학우들과 학교 측에 대한 배신이었으며, 또한 그렇게 알고 찍어준 투표자들을 기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학생회장이라는 타이들이 대학 입시에 상당한 유리하게 반영된 것을 감안한다면, 강의석에게 패배해서 학생회장이 되는 데 실패한 상대 측 학생에게 큰 피해를 입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선거로 치면 입후보 자격을 거짓말한 것이고 이것으로 당선된 것이므로, 이는 이는 도덕적으로 심각한 결함을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잘못된 권리의 억압에 대해 본인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긴급피난'이라는 반론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긴급피난은 형사상 용어로서 위법한 권익 침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 위법성을 조각해 주는 사유일 뿐 결코 위헌적 사유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원칙은 아니다. 그러므로 행위 당시 학교 측의 위법성이 증명되지 않은 이상 긴급피난은 성립될 수 없다. 게다가 주변인들을 거짓말로 속이면서 학생회장으로 출마한 행위가 긴급피난의 요건인 '위난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으로 인정될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그의 행위는 단순한 작위적 위규행위일 뿐이다.

다만, 조직이 사회적 원칙을 어기고 구성원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그 구성원이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면 이는 단순히 개인의 부도덕으로 비난받기 이전에, 그 원인이 된 조직의 억압이 먼저 비판받아야 할 것이라는 정도의 변명은 가능하다.

학생회장이 된 뒤 얼마 안 있다가 그는 학교 측에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며 채플 규정을 폐지하라고 요구한다. 이때 학교 측은 강의석에게 전학을 하라고 권고하였고, 강의석은 이를 거부하면서 맞선다. 학교는 그를 제적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소동을 듣고 매스컴에서 줄을 지어 다루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교 인 류상태 목사가 그를 지지했다가 해직당하기도 했다.

매스컴이 지켜보는 것을 안 강의석은 삭발까지 하면서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개신교에 비판적인 언론 매스컴에 의해 그는 영웅으로 다루어졌다. 그 결과 여론에 밀린 데다 재판에서도 패배한 학교 측은 종교 문제가 없는 학생만 받기로 방침을 변경했고, 그 과정에서 강의석은 유명해졌다.

대학 진학 후 강의석은 자기 이름으로 장학금을 제정, 모교의 후배들을 돕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지만 학교 측에서는 완강히 거부했다.

당시 종교 수업은 대법원 판결에서 보여지듯 문제가 있는 사항이었고, 당연히 학교 내에서도 그게 문제가 있다면서 내심으로는 반발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있었기에 그걸 바꾸려는 시도는 상당히 뜻깊은 행동이었다.[5]

해당 사건에서 대광고 재단이 강의석에 대해 전학, 제적 등의 요구를 할 정도로 강경한 입장이었으니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었을 것이라 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또한 강의석의 제적과 류상태 목사의 해임을 통해 학교의 입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보복당할 것임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 학교 내에서 공개적 지지가 없었으니 강의석이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보긴 힘들며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강의석의 행동은 종교관련 규정에 반대하기 위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대안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2.3. 학업 활동

  • 바로 아래의 내용들과 이 항목 전체의 몇몇 사항들은 강의석의 누드시위 직전부터 유포된 '강의석의 실체'라는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입증 안 된 사실이나 부풀리기도 있지만 강의석 본인이 부분 사실이라고 인증한 몇몇 사건[6] 또는 목격자가 많은 사건들[7]도 있다.

고2 마지막 모의고사 때, 시험제도에 비판을 하기 위하여 일부러 오답을 찍어 13점을 맞은 적이 있다고 한다. 고3 때 퇴학을 당했으나, 퇴학처분무효 가처분 신청 및 소송으로 학생신분을 유지한다.

3학년 때 종교자유 시위를 했을 때 대학문제로 비난이 가해지는데, 대학 수시에 합격하기 위해 쓴 수였다는 것이 주된 비난이다. 이에 대해 강의석의 발언과 이후 행보를 종합해보자면, 합격하기 위해서인 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강의석의 밝힌 바를 통해 정확한 동기를 추정한다면 그가 처음에 밝히길 판사가 되고 싶다고 하였으므로 서울대 법학과는 그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의석은 뒤이은 인터뷰에서 서울대에 합격한다는 것의 의미가 일반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하려는 학생들과는 달랐다고 주장하며 그 자신이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합격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으로 언론에 비춘다. 하지만 서울대 면접관에게는 이것을 밝히지 않은 채 다르게 말했다고 하므로 그의 정확한 동기가 무엇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참조)

2004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리더쉽과 봉사활동 전형으로 특례합격했다. 서울대 재학중에 당시 학교 내부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일명 고백 사건# (본인의 해명)과 맥아더동상 사건과 같은 일련의 일들로 스누라이프 같은 서울대생 커뮤니티에서 까는 글이 많다.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에 설명.

고백사건에 대한 첫 번째 링크의 경우 강의석을 비판하는 글에 대해 강의석이 답글을 남긴 것인데, 비판자는 다음의 논거들로 강의석을 비판하고 있다.

1) 대광 고등학교에서 임원을 하려면 우선 학교의 방침의 체제에 순응하고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해야한다. 강의석이 만약 대광고의 종교 강요하는 방침이 잘못되었다고 여기고 이것을 바꿀 생각이 있었다면 그가 이러한 선서하는 것을 거부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맹세를 스스럼없이 하고 임원이 되었고 임원이 되자 선서한 것을 어기고 학교 운영 방침을 바꿀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행동들에 문제가 있다.
2) 그는 서울대에 가는 목적이 서울대를 폐지하고 싶어서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면접관이 서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목적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것을 밝히지 않았고 훗날의 인터뷰에서 이것을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면접관들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저 학교 임원할때 보인 태도와 마찬가지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신념을 감추고 왜곡시키는 것을 한 것 아닌가.[8]
3)강의석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였다. 그런데 이 종교적인 목적의 학교 운영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인데 이를 비난하는 것은 곧 강의석은 자신의 권리를 존중해달라고 하면서 다른 이의 권리는 묵살하는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이중적인 태도이다.[9][10]
4) 그는 서울대 법대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였고 이것이 휴학의 원인인데 이를 미화하여 기자들에게 발언하였다.
5) 박노자의 글을 읽고 학교 체제를 바꾸자는 결심이 섰다는 글에 대해 비판하며 북유럽의 현실을 한국의 이상적인 모델이라는 무비판적인 수용을 해선 안 된다고 하였다.

이 비난글에 강의석은 리플을 다는 데 엉뚱한 답을 한다.

우선 논지와는 상관없는 성적을 말하면서 자신이 학창시절의 업적을 이야기한다. 그 뒤 그는 역시 아무런 관련 없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과 정치가가 꿈이라는 등의 자기소개성 이야기를 한 뒤 박노자의 비판에 대한 언급만 한다. 그 뒤 면접에 대해서도 뜬금없는 교수 재임용 사태에 대해 말하려다 잊었다며 저 비판과는 상관없는 논지의 이야기를 한다. 즉 강의석의 대답에서 직접적인 대답은 박노자의 비판에 대해서만일 뿐 다른 부분에서는 전부 논점에서 이탈한 대답을 한 것이며,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의 비판 리플이 올라갔다.

2.3.1. 고백 사건

강의석이 강의실에서 어느 여학우에게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였으나 차였다고 하는 사건이다. 그녀는 에 남자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녀는 부담을 느끼고 거절했다.

후에 강의석 본인이 이 사건에 감명을 받았는지 그 경험을 소재로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시놉시스여기에. 또한 이 사건 때문에 휴학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강의석은 부인했다.

2.3.2.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묘사 의혹

강의석이 자신의 싸이 미니홈피에 여자친구와의 성관계를 체위를 비롯하여 자세한 묘사를 하였다는 사건이다. 소문에 의하면 이 여친은 강의석의 같은 대학 동기이며 강의석이 미니홈피에 관계시 체위를 묘사하고 소감을 썼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강의석'을 포탈사이트에 입력하면 연관검색어에 여친이 검색될 정도로 널리 퍼진 사건인데 정작 강의석 싸이를 찾아보면 그런 내용의 글은 없다. 누군가가 강의석 싸이에서 이 사건에 대해 질문 댓글을 달자, 강의석 본인이 싸이에서 해명하기를 여친과의 경험을 쓴 적은 없고 꿈 얘기를 한 것을 오해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출소 후 인터뷰에서 성경험 글 자체를 쓴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2.3.3. 맥아더 동상 사건

강의석이 수업 중에 갑자기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질문을 했다는 사건이다. 2005년 2학기 전공 시간에 미국인 법학 교수를 초빙한 특강시간이었다. 질문시간에 강의석이 질문자로 선택되자 'Do you know General MacArthur?(맥아더 장군을 아는가?)'[11]라고 했다. 교수 입장에서는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교수가 맥아더 동상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알고 있었으므로 나름대로 이 사람의 질문의도를 간파하고 진지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진지하게 듣고 있던 강의석이 대답이 끝난 뒤 한국어로 "한국에서 맥아더 동상 철거문제로 많은 논란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말했다. 그 질문에 수업 담당 한국인 교수가 번역을 안 하고 가만히 있었고 듣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대폭소를 했다. 수업을 듣던 학생이 말하길 "맥아더 아냐고 물었을 때 그 얘기 다 했는데 쟤가 그냥 쇼맨십으로 질문한 거라 답은 듣지도 못한 것이다."라고 한다.

2.3.4. 영화 동아리 제명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영화 동아리 '씨네꼼'에 가입하여 잠시 활동하였으나, 얼마 안 가 활동을 중단했고 결국 제명되었다. 여기에 대해선 강의석과 씨네꼼 측의 증언이 서로 엇갈리는데, 일단 강의석의 증언에 의하면 동아리 전체 회의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제명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반면 씨네꼼 측의 증언에 의하면 강의석이 자기가 보는 영화만이 진짜 영화라는 식의 태도로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독단적인 주장을 펼쳤고 내부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국 출석을 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2.3.5. 서울대 제적

군대투쟁 당시에는 복학했다가 재판을 받은 이후인 2011년, 강의석은 서울대 법대에는 더 이상 적을 두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제적당한 것이다. 언론에서 서울대에 취재해본 결과 학과측에서 전화를 걸어 휴학하거나 등록 안 하면 제적이라고 했더니 등록 안 하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2.4. 직업 활동

그는 휴학기간 동안 택시 운전수, 권투선수 활동, 호스트바 등에서 일하였다. 단식투쟁하던 시기에 찍힌 사진만 본 사람들이 강의석이 호스트바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했지만, 단식투쟁 이후 찍힌 사진들을 보면 꽤 준수하게 생겼다. 항목 맨 위 사진 참조. 덕분에 소수지만 얼빠(…)도 있다. 강의석이 이렇게 계속 이슈가 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12] 잘생긴 얼굴 때문이기도 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 얼빠(?)들이 진심으로 한탄하는 부분은 강의석이 호스트바에서 일할 때 손님으로 가지 못했던 것. 사실 거의 지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13] 여담으로 이때의 소개 멘트는 "감미로운 목소리와 섹시한 엉덩이 의석이에요"

해당 직업 활동에 투신할 때마다 인터뷰에서는 "뭔가 한 번 해보겠다."는 투로 말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때려쳤기 때문. 물론 젊은 시절에 이것저것 해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아무렇게나 직업을 자주 바꿔대면 주변에서 별로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14]

군대 투쟁 직전까지도 강의석은 권투 훈련을 받았고 또 2005년 한국권투위원회의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권투선수 자격증을 따는 등의 건강한 모습을 보이나 병역 신체검사를 앞두고 갑자기 연약한 두개골 문제가 발견되어 4급 공익요원으로 판정받는다. 본인 증언에 의하면 당시 권투를 하다가 맞았는데 그 이후로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연약한 두개골로 인한 뇌출혈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4급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군대 입대를 앞둔 까닭인지 군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2.4.1. 강의석 닷컴(2010)

군대 누드 시위 이후에는 신림동 서울대 앞에 작은 심부름 센터인 '강의석 닷컴'을 만들어 몸소 사장이 되어 떡볶이 등을 나르는 일을 하기도 했다. 2012년 출소 후 인터뷰에 따르면 '강의석 닷컴'은 돈만 엄청나게 날리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친구의 누나에게'라는 제목의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기도 했다.

2.5. 사회 활동(2008~2011) - 군대 투쟁

아래 기고사건 이전 2008년 3월 인터뷰부터 군대 반대 인터뷰를 하게 된다. 실천은 9월 박태환 기고 사건부터이다. 병역거부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강의석을 검색하면 그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냐는 질문글이나 추측글이 있는데 강의석은 종교가 없고 무신론자이다.

그가 군대 무용론을 지지하게 된 경위는 "2008년 1학기에 성공회대에서 한홍구 교수의 '군사주의와 한국사회'라는 수업을 청강하면서 병역 거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고[15], 고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군대라는 것이 조금도 쓸모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2.5.1. 박태환 기고 사건


대학내일 기고 칼럼에서 박태환에게 '너도 군대 가'라는 기고를 통해 군대를 가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그 뒤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서 면제[16] 받자 박태환도 현역으로 복무해야 한다고 말하며 앞뒤가 안 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7]

서울법대 전 학생회장인 차진태는 윗 글에 대해서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어떤 평화주의자들의 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 "그는 반드시 자신의 폭력성을 조절, 통제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2.5.2. 단편영화 '군대?' 제작

위의 박태환에게 보낸 기고 칼럼에서는 2009년 2월 완성이라 했지만 누드시위 이후에 본인의 미니홈피에서 공개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약 20분 영상.

강의석은 그 이전에도 학내 아프리카 봉사활동 후 '아프리카?'라는 단편 영상물을 제작한 경험이 있다. 영화에 관심 있다고 하는데 아래 맥스무비 인터뷰를 보면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5.3. 국군의 날 누드 시위 사건



이렇게 붉은색 페인트로 몸에 칠을 하고 시위한 것은 2008년 9월 30일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서 시위한 것이다. 군대 무용론 항목의 사진도 동일한 날의 시위.




본격적으로 2008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 때 누드 퍼포먼스를 하였다. 헌데 이게 그냥 국군의 날 행사가 아니라 건군 60주년 기념 국군의 날 행사였던 것이다. 과자로 만든 모조 소총을 하나 들고 누드차림으로 탱크를 향해 탕탕탕 하고 과자를 먹는 퍼포먼스였다. 언론의 관심을 다시 받는 데 성공은 하지만, 이때는 종교 투쟁 때와는 달리 안 좋은 여론이 많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바로 다음날 최진실 자살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시위 자체가 조용히 묻혔다.(…)

이게 나름대로 근성이었던 게, 국군 퍼레이드 전에는 테러를 대비한 수색을 하게 되어 있고, 특히 강의석 퍼포먼스의 경우 사전에 예고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방부 측에서는 이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강의석은 퍼레이드 시작 12시간 전부터 중앙분리대 관목 사이에 참호를 파놓고 숨어 있었다.(…) 숨겨진 군사적 재능


국군의 날 당시 "평화는 맛있다!"는 뜻에서 나눠준 쿠키.
근데 이건 어쩌면 평화는 씹어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뭐야 이거

2012년 인터뷰에 따르면 이 일을 벌인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이 전부 전쟁에 미치고 살상무기에 미친 사람이 아니란 걸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었어."라고.(…)

2.5.4. 서해교전 전사자 폄하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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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경, 군대문제를 토론해보겠다고 만든 싸이클럽 '군대?'에서 자신에게 날을 세우는 네티즌에게 서해교전뿐만 아니라 독립군, 의병, 6/25 당시 군대까지 모두 싸잡아 쓸모없다는 폭력적 주장을 내세웠는데 이게 논란이 되자 자기 주장이 담긴 장문이랍시고 문제의 아래글을 올렸다. 이런 미친놈을 다 보겠나…


2008년 10월 13일, 강의석은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서해교전(=제2연평해전)의 전사자들을 "개죽음"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유가족들은 강의석에게 사죄를 요구하였다.(유족 공식입장/유족 인터뷰)

2.5.5. 입대 거부로 징역 선고


강의석 미니홈피 사진첩에 '곧 가게 될 곳'[18]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사진이다.[19]

그는 누드시위 사건 후 생계를 위해 심부름 센터[20]나 분식집 일을 하였다.

2011년 입영(정확히 말하면 현역 입대가 아닌 공익근무요원 대상자에게 일괄적으로 부과하는 1달짜리 기본훈련)을 거부하면서 재판을 벌이게 된다. 그는 '군 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싶다', '사법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군대 때문에 며칠 차이로 못 치르게 되었다.'[21] 등 군대거부에 대한 신념과는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발언을 하였다. 때문에 재판부는 그가 진심으로 군대에 대한 신념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하였고 신념은 자유이나 행동은 제약이 있으며 헌법이 정한 국방의 의무는 국가를 존립할 수 있게 하는 기본적 의무이며 분단상황을 고려하면 의무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그에게 2011년 6월 2일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되었다.

재판부가 "진심으로 군대거부에 대한 신념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강의석이 군대반대운동을 중지한 지 대략 2~3년의 시간이 흘렀고, 검사와의 면담 당시 그의 진술은 군대반대나 평화운동이 아닌 철저한 개인적인 이유였다. 요약하자면 며칠 뒤에 사법시험 봐야 하는데 군대 가면 시험 못 보잖아요가 전부였다.(…) 언론에 조명된 것과 달리 "군 법무관으로 복무하고 싶다"는 주된 주장이 아니었다. 판결 결과에 따르면 그저 "만약에 가게 된다면 사법고시를 붙어서 군 법무관으로 가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아니, 2년을 끈 판결 때문에 사법부에 회의를 느끼고 4년 전부터 법조인의 꿈을 접기로 결심했다」고 선언하더니예언가냐? 판결이 2년 늦어지는건 어떻게 알고 4년 전부터 꿈을 접겠다고 결심했어? 그새 생각이 바뀌었나? 자기가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있어…2012년 출소후 한 인터뷰에 따르면 "감옥가는 걸 연기하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이렇게 입대 거부로 온 법정에서 말을 이리 꼬고 저리 꼬고 하니 이건 누가 봐도 정말 군대거부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즉, 단순한 병역기피를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게 아니냐는 것. 당연히 여론도 "차라리 가기 싫으면 그냥 가기 싫다고 말해라"며 냉담한 반응이다. 근데 3년 전엔 정말로 "그렇다. 군대 가기 싫다."[22]는 반응이었다.(…) 다만 군대도 아니고 공익인데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다는 데서 나름의 '진심'은 있었을지도...

이때 기자가 MC몽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로써 강의석이 사법시험을 보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인데 현행법상 징역살이 한 뒤 5년간은 시험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 2017년에 폐지될 예정이기 때문에 강의석이 자격조건을 갖출 땐 사법시험이 이미 사라지게 된다. 진작에 법무관 시험이나 준비하지 로스쿨 GoGo!

2.6. 옥중활동(2011-2012)

2.6.1. 수감자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

2011년 9월 20일, 기사화 되면서 알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그가 수감돼 있는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 면회를 다녀온 "강씨가 지난 14일 아침식사부터 끼니를 거르기 시작해 6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고 19일 전했다. 그를 면회한 권연대 오창익의 페이스북에 전하면 전반적인 수용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길 '어두운 생활거실의 조명을 더 밝게 해달라', '격주 토요일에만 가능한 운동을 매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안 그래도 군대반대운동과 병역거부로 이미지가 막장화된 강의석에 대한 이미지와 여론은 좋지 않아서 '정치인이 되려는 스펙 쌓기'라는 비판이 더해지고 있다.

그리고 저 단식 투쟁이 잘 안 먹혀서 한차례 관뒀다가 2012년 1월 27일에 다시 시작했고 2월 9일에는 쓰러졌다고 한다. 결국 단식을 중단했고 서울구치소에서 신설 교도소인 전남 해남교도소로 이송된다고 한다. 구치소 관계자는 겨울에 기온이 크게 떨어져 수용자뿐 아니라 교도관들도 괴로웠고, 다른 재소자들은 문제 삼지 않았는데 홀로 제기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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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수감경력이 있는 김유식의 조언.

2.6.2. 출소(2012)

2012년 8월 14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출소 이후 현재 독립영화 워크숍이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2.7. 출소 이후(2013-)

2013년 1월 21일, 선정성으로 논란이 된 강민경 CF를 꼬집어 더 선정적이고 노골적으로 만들어 자기 유튜브에 올림으로써 논란에 올랐다.#
“남녀 단둘이 있으면 할 게 뭐 있나? 선정성보다는 여자가 남자 면도해 준다는 가부장적인 컨셉이 더 문제인 것 같은데. 기껏해야 둘이 뽀뽀하는 건데 이것도 못 봐 준다면 표현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초딩들도 다 아는 거 쉬쉬하지 말고 피임교육이나 확실히 했으면 좋겠다”며 제작배경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만들어진 물건은 강민경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고 피임기구를 꺼내며 "오빠가 지켜줄게"라는 발언을 하며 조롱했다.

최근에는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생겼는지 '매주 1편씩 만드는 영화!'라는 슬로건과 함께 유튜브에 동영상을 게시중인 듯하다. 그리고 VIMEO 계정으로 영화홍보를 위한 영상하나를 올려놨는데 판단은 보는 사람이 알아서 할 것. 청계천 길바닥의 그것들과 같은 찌라시를 보는 듯한 이 기분


영화감독으로 정식 데뷔를 했는데 이번에 야심차게 영화를 촬영한다고 한다. 이 영화에 강의석이 배우로 캐스팅해서 등장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허경영. 참…#

2.7.1. 단편영화 미션스쿨

대광고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하려다가 지원금이 끊겨 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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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Unknown)]

대충 정리하자면, 영화 <미션스쿨>의 제작에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지원금 2천만원을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종자연 측이 갑자기 자금 지원 약속 당시에는 없었던 요구사항들을 제시하였고 이에 지원금 송금이 두 달째 연기되다가 결국 종자연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원 계약 파기 통보를 받았다. 이 사태로 인해 종교 자유 투쟁 당시 한 배를 타며 신뢰를 쌓았던 종자연에게 제대로 통수를 맞았다는 게 강의석 측의 주장. 그러나 강의석이 주장한 예고편, 인터뷰, 설명회 등에 대한 요구가 제작비를 지원하는 입장에서 과도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굿펀딩에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자금을 마련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마감일이 지나도록 목표액의 6.35%밖에 채우지 못해(₩635,000/₩10,000,000) 실패했다.

2.7.2. 2차 국군의 날 누드시위

2013년 국군의 날 전쟁기념관 앞에서 또다시 시각테러 누드시위를 저질렀다.# 같은 날 4시 시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라 한다. 제발 이제 그만 더 이상은 naver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한국은 전쟁을 기념한다(Korea Celebrates the War)이라고 국문이랑 영문으로 적어 놓은 팜플렛으로 시위를 하였는데, 문제는 이 '기념'이라는 의미 풀이에서 페이스북에서 난리가 났다. 강의석이 주장하는 기념관의 기념은 탄생이나 결혼의 축하의 의미로 한국은 전쟁에서의 죽음을 무슨 결혼 축하마냥 기념을 한다는 말을 하였다.

기념관은 어떤 사건이나 혹은 인물을 잊지않고 기억하기 위해 박물관 형식으로 유품이나 관련 물건, 사진 등을 진열해 놓는 곳에다가, 기념관은 영어도 Memorial Hall이고 기념관에 쓰인 기념도 Celebrates의 의미가 아닌 Memorial의 의미이다. 국군의 날 창설 기념은의 기념은 Celebrates가 맞지만 그것은 국군창설 기념을 축하하는 거지 전쟁을 기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국토 방위에 힘쓰는 국군의 창설 기념식을 무슨 전쟁을 축하하는 뜻으로 보고 있는 부분을 보았을 때, 진짜 답 없다고 봐야 한다.[23] 이렇게 해서 강의석은 단어의 뜻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다시 한 번 까이기도 했다.

2.7.3. 다큐영화 애국청년 변희재

2015년 4·29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 출마를 선언한 변희재 인터넷미디어협회 회장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다. 2015년 3월 19일 경향신문 ‘애국청년’ 변희재 일상 담은 다큐 영화 나온다···강의석 제작


2.8. 사상과 평가

"또 사람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생각도 들었어. 사실 친구들하고 스몰토크를 한 적이 없어. 고등학교 다닐 때도 학교와 집만 오가면서 친구들과 공부 이야기나 학생회 이야기만 했어. 고등학교 졸업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여자 친구에 대해 물어본다든가 술을 한 잔 할 경우도 없었고…사람을 잘 몰랐던 것 같아. 종교 자유가 있고 법이 완전해도 사람들은 힘들어 하겠구나 그때 깨달게 된 것 같아. 서로간의 비교, 열등감, 연인관계 등으로도 힘들잖아. 그래서 3학년 때부터 이런저런 고민이 시작됐고, 하고 싶은 일을 찾다보니 택시기사를 하게 됐지."
- 스스로에 대한 평가

2.8.1. 군대투쟁 관련 평가

고등학교 당시의 종교 자유 문제는 나름대로 설득력도 있고 지지도 얻었다. 서울대 수시 입학 이후로 약간 의심하는 여론은 생겼지만 미션스쿨,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나 헌법상 종교의 자유 보장이라는 명분의 측면에서 지지자가 많았다. 그러나 서울대 입학 이후의 여러 기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고 어그로를 끌며 를 양산했다. 현재 일부에서는 과거의 강의석을 지지해서 과거의 그가 나았다고 말할 정도다.

다만 알고 보면 종교 자유 투쟁 때에도 "종교 교육" 자체를 부정했던 강의석의 "주장"은 상당히 극단적이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현실에서는 "학교 선택의 자유" 정도로 받아들여져 매듭 지어지기는 했다.

군대 문제에서 강의석은 양심적 병역거부 외에도 군대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강의석은 아예 세상에 군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군대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군대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징역형도 대체복무도 거부할 정도로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다(#). 누드시위 당시에도 연행되면서 외친 주장이자 어떤 인터뷰나 강의석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인데 "사람들이 입대는 국방의 '의무'라고 하는데 그건 정부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 "국민을 위해 국가나 군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나 군대를 위해 국민이 희생되고 있다.", "군대에 가는 것은 국가 폭력에 동참하는 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대체 복무에 대해서도 "군대는 원래 갈 필요가 없는 곳인데 뭘 대체한다는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대한다.

강의석이 설득보다는 우격다짐으로 주장한 데다가 그로 인해 여론과 이미지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소수자 운동일수록 대중에게 설득이 필요한데 강의석이 선택한 비호감적 방법과 극단적 방식은 대중을 설득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가의 기고기사를 참조해보면 이쪽 운동가의 강의석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볼 수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측에서도 주장의 일부분은 평화주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본다.[24]

비판적인 관점에서는 나중에 안 좋은 의미로 정치인이 되려는 수작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의 보수 및 수구파와 단체들로부터도 민족반역자, 친북좌파, 빨갱이 새끼라는 모욕과 비난을 받아왔으며 일부는 대한민국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놈 따위는 필요 없다, 민족반역자, 매국노, 빨갱이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25]사실 좌우 양쪽에서 까이는 경우가 흔한 경우가 아니다 어쩌면 좌우합작?

사실 정계에 진출한다고 해도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 1인 정당 만들어서 나올 것이다. 인지도도 낮고 무엇보다 유교 사상의 영향이 일부 잔존하는 한국 사회의 통념상 외설적인 것을 꺼리는 사회에서 저런 누드시위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그저 혐오스러운 것 정도로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군대 현역 및 전역자들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군대 부정론 및 기피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군입대를 앞둔 복무 예정자와 현역으로 복무 중인 군인 그리고 지금은 군대를 전역하여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전역자들로부터 국가와 민족의 반역자 새X, 매국노에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더러운 놈, 우리도 갔는데 지만 내빼서 안 가겠다고?라는 격앙된 반응이 대부분. 일각에서는 한때 군대 신체검사도 받았으면서 결국에는 미국으로 도피하여 미국인으로 귀화한 스티브 유와 비교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인간적으로는 늘 자기 자신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하는 자기우선주의자라는 평가가 강하다. 한편 고2 때 모의고사 13점을 일부러 맞은 일이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선생님이 "네가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걸 아는데, 네가 한 행동이 주변 친구들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봐라. 다들 며칠 밤씩 못자고 공부해서 시험 보는데 네가 이러면 다들 얼마나 허탈하겠냐."라고 말했으나, 이때 강의석은 악영향도 있겠지만 최우선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만 이 부분은 강의석이 '자기우선주의자'(또는 이기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보기엔 미흡하다. 시험 제도를 비판하겠다는 것은 개인이 판단할 문제고, 그 실행으로써 자기 시험을 망치는 것 역시 자신이 원한다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다. 시험 제도를 비판하겠답시고 다른 사람이 시험보는 걸 방해하기라도 했다면 자기우선주의자(이기주의자)라고 욕 먹어도 싸겠지만 자기 시험을 어떻게 보건 그거야 자기가 알아서 할 문제겠지... 이에 대해서 '주변인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까지 끌어들여서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법대 갈 성적이 나왔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철학과를 선택했다'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법대 갈 성적이란 것을 아는데 철학과에 가버리면 주변에서 얼마나 허탈하겠냐'고 까야 할 것이고, 법대 가고 싶은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하겠지. 시험도 자기 등수 오른다고 좋아하지 않을까? 남들은 고기 좋아하는데 자기는 야채 좋아한다는 사람에게도 "주변 사람들이 허탈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니까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게 될 것이다. 강의석의 자기중심주의를 까고 싶으면 가지가지 운동하겠다고 벌인 가지기자 뻘짓거리들도 충분하니, 꼭 다른 논리까지 만들어낼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종교투쟁 때도 혼자서 단식, 군대투쟁 때도 혼자서 누드시위를 했다. 이를 지적하는 기사가 있다. 다 같이 한다고 했지만 모은 사람들은 서로의 뜻을 모아 큰 뜻을 이뤄 나가야 하는 동반자가 아닌 그저 자신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하수인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다. 강의석과 함께했다는 사람의 소감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나 있다. # 부분 인용하자면 "자길 돕겠다고 나선 사람들한테 일을 맡기면서 감사하다거나 죄송하다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좋게 말하면 우물쭈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리더보다 명료하고 리더쉽 있는 리더라고 말해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호기심 반 도울 겸 반 해서 간 저는 기분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즉, 사회부적응자라는 비난도 들었을 정도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상당히 서툴다는 것.

2.8.2. 주변인 또는 유명인들의 평가

당시 서울법대 전 학생회장인 차진태는 "강의석은 언론을 통해 주목받는 데 성공한 경험 때문에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양식을 고치기 힘들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위해 본인 스스로 더욱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고교 때의 종교자유 단식투쟁, 권투, 호스트바 등은 지극히 폭력적인 행위이며 그 피해는 본인에게 간다"며 강의석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프리미어 인터뷰에서 허지웅 기자가 세간의 평가를 정리하기를 "종교자유화 투쟁 이후 강의석의 행보들 탓에 순수성을 의심받는 것 아니겠나. 제기하기 편한 주제들 뒤에 숨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 한다", "지금의 논란은 단순히 주제의 화제성 때문이 아니라 예전의 그 강의석이라는 기억이 소환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개인 강의석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논의하기가 이미 어려워져 버렸다. 어떤 면에선 자초한 것이고,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라고 정리했다.

88만원 세대 공저자 박권일은 "강의석은 어렸을 때는 '세계평화'를 고민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개인의 행복'을 찾게 됐다고 말한다. 이렇게 '세계평화'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고민이 '개인의 행복'이라는 작은, 그러나 실존적인 고민으로 단번에 환치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포스트모던적'이라는 것"이라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른 20대가 저렇게 하다간 십중팔구 망한다는 거다. 저건 고등학교 때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현재 서울대 법대를 다니는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일 뿐이다."라고 평가를 끝맺었다.(#) 허지웅 기자의 세간의 평가 정리와 비슷하다 볼 수 있다.

2.11.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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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 본인이 자기 명함에 이런 식으로 표기했다. 사실 영어 공부가 부실했던 7~80년대 시절에는 석자를 진짜 SUCK로 표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마도 그 시절처럼 영어 단어 뜻을 모르고 소리 나는 대로 적어내서 그렇게 됐거나 (Duck이 '덕'이고 S가 ㅅ이니까 석은 Suck이라고 적으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 아니면 뜻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지은 것 같다. Suck은 형편없음, 또는 "빤다" 라는 뜻을 의미하기도 한다.
  • [2] 로마자 표기법을 제대로 따르면 Gang Ui-seok이다. 'Gang'의 영단어 어감이 안 좋으므로 'Kang'으로 써도 되겠지만.
  • [3] 대광고와 연계된 교회에서 찬양과 전도활동을 하기도 했고, 교회 장학금도 받은 사람이다. 이에 대해 강의석 본인은 허위사실이라며 부인하기도 했다. 교회 장학금은 사실을 알게 된 뒤 돌려주었고, 학생회장 장학금만 받았으며, 찬양인도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 [4] 그러나 다른 대광고 졸업생의 증언에 의하면 "예배는 강제되지 않았고,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으면 남아서 휴식할 수 있었으며, 채플은 성적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라고 한다.
  • [5] 이때까지만 해도 강의석은 나름 상식있는 행동을 했다. 강의석이 망가지는 것은 이후의 일.
  • [6] 고백사건, 영화동아리 제명이 그 예.
  • [7] 고백사건이나 맥아더 동상 사건 등.
  • [8] 1과 2에 대해 '개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옹호가 있지만, 강의석이 진학한 곳은 다른 학과가 아니라 법대다. 물론 법대 지망한다고 무조건 법을 지키려는 방향으로 사회에 나가려는 것은 아니지만, 강의석은 아래 군대 문제에서 군 법무관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군 법무관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다면 과연 강의석이 선서를 어기고 목적을 숨긴 과거가 군 법무관이 되기는커녕 그 과정을 통과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것이다.
  • [9] 종교의 모든 외부 활동의 목적은 종교적 목적이 수반된다. 순수한 의미로 외부 활동만 하라는 건 종교 단체에게 아무 외부 활동도 하지 말라는 얘기랑 똑같은 말이다. 이게 문제라면 종교 단체들은 그 어떤 봉사활동도 심지어 재난 구호활동도 할 수 없게 된다. 단순히 말해서 그냥 종교 간판만 달고 봉사활동만 해도 간접적으로 선교활동 효과가 된다.(과도한 선교 활동으로 숱한 어그로를 양산하고 있는 일부 예수쟁이들과, 아프리카 오지에서 묵묵히 봉사 활동을 했던 이태석 신부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학교를 비롯, 각종 사업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애초에 무리인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 [10] 강의석이 그런 생각을 갖추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왜냐하면 타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성향이 강의석의 활동에서 자주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대 문제에서 그는 "평화를 위해 우리가 먼저 군대를 해체하자. 그러다 나라가 망하고 죽고 노예가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하며 타인의 자유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 [11] 두 유 노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엉터리 문법이다. 'Do you know 사람 이름'이라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냐고 물을 때 쓰는 표현이기 때문. 아무리 미국인 교수라도 맥아더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일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Have you heard of General MacArthur? 혹은 'Do you know about/of General MacArthur?'라고 질문해야 맞다.
  • [12] 워낙 어그로 끄는 짓들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 [13] 아래의 맥스무비, 주간경향 기사를 참고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거의 최소 두 번인 듯하다.
  • [14] 그나마 순화해서 이렇게 표현했지 실제로 미친놈 취급 받을 것이다.
  • [15] 그는 이전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이때 사상적으로 군대 무용론을 확정하게 되었다.
  • [16] 정확히 말하면 공익근무요원의 한 분야인 예술체육요원에 편입했다.
  • [17] 정확히는 '예술체육요원 혜택을 반납'한 뒤 '현역병의 신분으로서' 군복무를 거부하라고 말했다.미친놈 맞네
  • [18] 정확히는 '곧 2년간 있어야 할 곳'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검찰의 구형량이 정확히 징역 2년이었다. 예지력 돋네 법원의 선고 형량은 징역 1년 6월이지만.
  • [19] 이 곳은 롯데월드 3층에 있는 감옥 모형의 포토세트로 정식 명칭은 개구쟁이감옥이다. 감옥의 창살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 고무로 되어 있어서 양 옆으로 늘이면 들어갔다 나올 수 있게 된 구조다.
  • [20] 앞에서 말한 '강의석 닷컴'이 강의석의 사업체 사이트였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문을 닫았다. 그것도 언제 문을 닫았는지 모를 정도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강의석 본인의 증언에 의하면, '교통사고 한 번 나니까 망하더라'고…
  • [21] 입영연기 사유 중에는 사법시험도 있기 때문에 먼저 입영연기를 하고 사법시험을 치를 수 있다. 이에 대해 강의석의 주장은 "합법적으로 입영연기를 하는 방법을 몰랐다"였다. 입영연기 방법은 병무청 공식 사이트에서도 안내를 해 주고 있는데 과연 정말로 몰랐을까…
  • [22] 여기서 또 강의석의 병크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부분에 다른 국적을 선택했다고 입국 거부 조치 당한 연예인을 언급했는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 문제의 연예인은 결코 다른 국적을 선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국 거부를 당한 게 아니다.
  • [23] 어떤 면에서는 강의석이 celebrate와 memorial의 차이를 몰랐다기 보다는, 국군의 날 행사를 '전쟁을 찬양하려는 행위'로 몰아붙이려는 의도에서 celebrate라는 단어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북한과 주변 강대국의 안보 위협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것도 이것대로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할 말 없는 병크이긴 마찬가지.
  • [24] 사실 평화주의자들의 군대반대 운동, 군대무용론은 생각보다 오래된 운동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평화주의자들이 징병거부를 해서 후방의 재건사업에 투입되는 등 대체복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 [25] 사실 강의석은 진보 계열에게도 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