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고승덕

최종 변경일자: 2017-05-25 17:13:10 Contributors

논란 중인 인물! HELP!

이 문서가 다루는 인물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논란이 있습니다.
문서 열람 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高承德

대한민국의 법조인, 방송인, 정치인 그리고 못난 아버지

목차

1. 이력
1.1. 정치 이력
2. 가족
3. 방송 및 주식 관련
4. 공부법과 자기계발서 관련
5.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
6.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 이후 근황

1. 이력

1957년 11월 12일
1964.3~1970.2 광주 대성초등학교 졸업
1970.3~1973.2 광주 무등중학교 졸업
1973.3~1976.2 서울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6.3~1980.2 서울대학교 법대
1978년 대학 3학년 재학중에 사법시험(20회)에 최연소 합격
1979년 대학 4학년 재학중에 외무고시(13회) 차석 합격, 행정고시(23회) 수석 합격
1980.2 법대 수석졸업

1980.3~1982.2 사법연수원 수료(12기)
1980.3~1982.2 서울대 법대 석사 (헌법학 전공) 졸업
1982.9~1983.6 예일 대학교 LL.M[1] 로스쿨 졸업
1984 ~ 1986 수원지방법원 판사 재직
1986.9 ~ 1987.6 하버드 대학교 LL.M 로스쿨 졸업
1987.9 ~ 1989.5 컬럼비아 대학교 J.D 로스쿨 졸업
1989~1992 미국 로펌인 '베이커 & 맥켄지' 뉴욕 사무소에서 재직

1992 서울시 고문 변호사
2004 경향신문 경영자문위원 및 칼럼니스트
2006.11~2007.11 투자자문회사 (주)로드투자자문 대표

1993 서울시 공무원교육원 행정소송실무 강사
1997.9~1998.2 국민대학교 국제거래법 강사
1999.5~2001.8 제주국제대학교 겸임부교수
2004 사법연수원 증권거래법 강사
2005.9~2008.8 이화여자대학교 법대 겸임교수

2012.3~(2014년 현재) 중앙대학교 청소년학 박사과정 재학중
2012.8~(2014년 현재) 대안학교 '다애학교' 교사
2014~(2014년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 청소년복지전공 석좌교수

1982 한국 변호사 (1978' 사법시험)
1982~1989 미국 4개 주 변호사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워싱턴 디시)
2003 일반자산운용전문인력 (펀드매니저)

1.1. 정치 이력

2007.11~2007.12 이명박 대선 선거캠프 전략기획팀장
2008.5~2012.5 국회의원(18대)

1999년 송파구 갑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공천받았으나 출마를 포기한다.

2007년 말에 방영된 YTN돌발영상에서 고승덕은 양념승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4년 현재는 그렇게 많이 쓰이지 않는 모양.

2008년 서초구 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무난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2년 1월에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를 폭로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이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해당 프로그램이 주목받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아래에 있는 영상도 그렇고 은근히 채널A와 인연이 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뒤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교육감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는 정당 당적으로 적어도 후보 등록 1년 전에는 포기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교육감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2. 가족

19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있던 시기에 첫 결혼을 했다가 1남 1녀(1987년생)를 두고 2002년에 이혼했다.

상대는 3살 연하의 화가이다. 거기다가 포스코(포항제철) 창립자인 故 박태준의 차녀였다. 둘 다 유학생 신분인 상태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이혼 원인은 전처와 고승덕 쪽의 의견이 다르다. 전처에 따르면 이혼 원인은 고승덕의 정치적 활동 때문. 1999년 장인어른 박태준이 당시 김대중 정부의 공동여당인 자유민주연합의 총재였으나 그 사위인 고승덕이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천을 받았다. 원래는 새정치국민회의 공천을 받으려고 했으나 당 내 반발로 인해 공천이 어렵게 되자 한나라당에서 영입해간 것. 이에 박태준 총재가 노발대발하자 공천을 자진 반납하면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2004년에 재혼했다. 부인 이무경씨는 10살 연하의 경향신문 기자 출신이다.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아버지의 무관심을 폭로해 필수요소를 새로 만들어내고 선거과정에 큰 영향을 주었던 딸 캔디 고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3. 방송 및 주식 관련

역시 이름이 알려진 것은 고시 3관왕 시절. 고시계에서 고승덕의 기록은 거의 불멸의 기록 수준으로 2014년 들어서는 고시 3관왕을 기록한 인물이 역대 2자리 수를 넘어가지만 합격자 숫자가 바닥을 기던 당시에는 단 2명만이 존재하던 기록이었다. 참고로 1번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조카사위이자 장관도 역임한 바 있는 덕진이었다.

이 인지도를 바탕으로 전문 방송인 수준으로 방송 출연이 매우 잦아지게 되었다. 특히 1995년 SBS의 코미디전망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기가 크게 상승했으며 이때 유행어로 밀었던 멘트가 '안녕하십니까? 못 먹어도 고'. 이는 당시 변호사가 TV 예능프로에 출연한 최초의 사례였다고 한다. 1998년에는 KBS 2TV 생생경제연구소 프로그램의 MC가 되었는데 이는 당시 변호사가 TV 예능프로의 진행자를 맡은 최초의 사례였다고 한다. 또한 2002년부터 SBS 솔로몬의 선택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재연 장면에서의 취객 연기는...

2000년에는 한국경제TV에서 '천재 고변호사의 증권고시패스' 진행을 맡았다. 2003년에 일반자산운용전문인력 자격을 취득하고 자기 이름을 건 펀드를 출시하기도 했는데... 이건 흑역사가 되었다. 일명 '파동이론' 응? 을 내세우며 잠깐 인기를 끌었으나 2000년대 중반 당시가 국내증시 역사상 손꼽히는 활황기였는데도 오히려 손실을 보았다. 정작 고승덕은 파동이론을 책으로 펴내 높은 수입을 거뒀다. 주식 갤러리에선 뉴비감별&초보자 낚시에 이 책을 써먹었다 후술 하겠지만 넷상에서 흑역사라고 까이는 것과 달리 객관적으로 큰손해를 입었다고 밝혀진 바 는 없다. 수익률은 평범한 편이었지만 크게 수익을 내지 못하자 정치적 반대진영과 네티즌들이 흑생선전 혹은 놀림거리로 삼은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고... 자세한 전체적인 기간을 두고 객관적 자료가 있는 작성자가 있다면 추가바람.

2002년에서 2005년 사이에 주식 관련 자기개발서를 5권 정도 써냈다. 하지만 고승덕이 자신의 이름을 직접 걸고 펀드를 개설했다라고 하는 것과 손해를 입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고승덕이 출시한 '고승덕펀드'는 '펀드매니저 실명을 펀드명칭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업계 자율규제와 '투자자문과 운용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법령을 어겨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고승덕은 실제로는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경고받은 사실이 없었다.

2007년 11월 7일 당시 민주당 노식래 부대변인이 논평에서 “고승덕의 투자상품이 지난 1년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하자 고승덕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사실이 없고, 2006년 1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1년 동안 대표이사로 있는 로드투자자문사에서 운용자문하는 투자상품(한국투자증권로드주식형신탁)의 수익률이 연 16%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노 부대변인은 아무런 확인도 없이 신공격할 목적으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발표했다"고 밝히면서 노식래 부대변인을 영등포 경찰서에 고소하였다.

2007년에 코스피시장이 50.5%나 상승한 호황이었지만 고승덕변호사의 펀드는 15.8%의 수익률을 거둬 사실상 시장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참조기사

그 외에도 2013년에 MBN에서 '고승덕의 집중분석', 한국경제TV에서 '고승덕의 인생2막 행복포트폴리오' 를 진행했다.

4. 공부법과 자기계발서 관련

고시 3관왕 그랜드슬램이라는 기록을 바탕으로 2003년부터 공부법 관련한 자기개발서를 쓰기 시작했다. 고승덕이 솔로몬의 선택 등으로 대중적으로 친밀한 이미지를 가졌을 때 교육열이 강한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의 교육감 출마는 비판의 목소리도 컸지만 반면에 그의 지지율이 선두인 굉장히 모순적인 양상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당표명이 금지되어있고 동시에 진행되는 지자체장 선거에 비하여 관심을 받기 어려운 교육감 선거의 경우는 준깜깜이 선거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초기 고승덕의 높은 지지율은 공부법이 인정을 받아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인지도가 높아서라는 평가도 많았다. 실제로 고승덕의 지지율은 학부모 세대인 30~40대가 아닌 어릴 때 솔로몬의 선택을 보고 자란 20대 청년 세대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의 화려한 스펙과 고시 3관왕 커리어가 입시위주 교육 체제하에 있는 대한민국 학부모의 완벽한 롤모델인 그가 교육감에 출마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부모들도 이러한 억지 공부가 별로 효과가 없음을 자기네들 스스로 이미 학창시절에 겪어보았을 터인데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다. 허울 뿐인 야간자율학습이나 시키고 학원이나 보내봐야 공부 안할 애들은 그냥 공상의 시간만 보낸다.

그의 공부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공부법이라는 것이 한국의 기형적인 교육시장이기에 먹히는 것이지 그 공부법 자체로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의 뒤틀린 교육 시장을 일개 개인이 뒤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그가 권하는 이런 공부 방법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긴 하다. 고승덕 본인이 EBS의 한 육아 프로그램에 나와서 방학이 기회이므로 아이를 6시간 재우고 나머지는 전부 공부를 시키라는 강의를 한 적이 있어 나중에는 이러한 공부법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다.

어쨌든 고승덕의 공부법은 콩나물 공부법, 고승덕 공부법이라고 포털에 치면 나온다. 그의 책을 대충 요약하면 책 1권을 7번~10번 반복해서 읽으면 나중엔 빨리 읽게 된다는 것과 그냥 앉아서 계속 해라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공부법이 능률적이냐 비능률적이냐를 떠나서 막상 고시생들에게 남은건 7-5-3-1과 4-2-1[2]이지만 말은 쉽지만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숨만 쉬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 참 쉽죠?

문제점은 고승덕식 의지드립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강의에 따르면 하루 17시간(1주일 119시간)씩 공부를 하면서 식사시간도 아까워서 밥을 갈아서 먹었다고 하는데 괜히 따라한다고 흉내 내다가 위장만 버리거나 며칠 후에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매우 크다.

5.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

6.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 이후 근황

고승덕은 2014년 9월 24일 "서울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로서 이번 학기에 청소년역량개발이란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청소년 문제에 전념하겠다고 한다. #

----
  • [1] 미국법학전문대학원은 1년 과정인 LL.M과 3년 과정인 J.D 등으로 나뉜다.
  • [2] 각각 1차 과목을 7일, 5일, 3일, 1일마다 1회독 하라는 것과 2차 과목을 4일, 2일, 1일에 1회독 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