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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최종 변경일자: 2015-03-10 16:37:11 Contributors

목차

1. 전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1.1. 커리어
1.2. 그 후
1.3. 수상
1.4. 기타
2. 대한민국의 작곡가
2.1. 개요
2.2. 특징
2.3. 작품 목록


1. 전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이름 김동성
생년월일 1980년 2월 9일
신장 175cm
체중 68kg
주종목 1000m, 1500m

쇼트트랙의 전설.
1998 나가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997,2002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1]
2001/2002시즌 월드컵 챔피언
채지훈을 뒤이었던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에이스

1.1. 커리어

첫 세계무대였던 1997년 나가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경기고 3학년 시절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1000m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중국의 리자준과 경합을 벌이다가 칼날 들이밀기로 짜릿하게 금메달을 획득했다.[2] 또한 계주 은메달을 따는 등 화려한 전적을 쌓으면서 한국 쇼트트랙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쇼트트랙 선수로써 신장이나 체격이 딱 알맞게 좋은편으로 스피드, 지구력, 강한 정신력 등 당시 선수들보다 한 단계 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국제 무대 데뷔 이후로 중-장거리 최강자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선수들이 좀처럼 힘을못쓰는 500미터에서도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과 은메달을 한개씩 획득했을정도로 약한편이 아니었으니 거의 올라운더라고 봐도 될정도.

상당한 실력파이지만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인생의 전환기가 일어나게 된다.


1500m 결승전에서 1위로 올라오면서 자동적으로 1위가 되는 듯 싶었지만 어떤 섬국의 코쟁이이상한 액션을 한 코쟁이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실격을 줘 그의 쇼트트랙 인생에서 엄청난 파란기를 일으켜오게 된다. 그 당시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김동성이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심판이 실격을 줬기 때문에 어이상실한 표정으로 태극기를 힘없이 들고 있다가 바닥에 떨어뜨리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때문에 2002년 이후 한동안 국내에서 반미감정이 극에 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조선일보뜬금없이 김동성을 까다가[3] 욕을 바가지로 퍼먹었다. 것도 두번이나.


본격_김동성_스피드핵_사용.flv (김동성의 분노의 질주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4]

물론 이 뒤에 열린 몬트리올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안드로메다의 기량을 전부 표출하였지만[5] 이미 올림픽은 전부 끝난 뒤였다. 스포츠에선 세계선수권 역시 위상이 크지만 대중적인 인지도 등은 세계선수권보다는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이 더 크다는 걸 생각해보자면...

이로 인해 아폴로 안톤 오노와 함께 한국에 있어 쇼트트랙 관련으로 가장 유명해졌다.

이 일이 있던 뒤에 동두천시청팀에 입단을 하였으나 부상과 코치, 스태프 간의 갈등으로 쇼트트랙계를 잠시 접고 연예계에서 활동. 하지만 이것도 신통치 않아서[6] 결국에는 2003년 말에 다시 선수로 복귀하였다.

...근데 마침 빅토르 안의 포텐셜 오버+잔부상 덕분에 국가대표로 다시 뽑히지는 못했으며 2005년에 은퇴하게 된다. 솔트레이크 올림픽만 잘 넘겼어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까지는 현역으로 활동했을 거라는 의견이 많았다.[7]

dongsung_ans.jpg
[JPG 그림 (Unknown)]



위의 분노의 질주 사건에 대해서 본인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진에서 말한 것처럼 2바퀴 이상 추월당한 선수는 탈락하기 때문에, 1바퀴 반 차이가 나자 거기에서 더 벌리지 않고 일부러 1바퀴 반 차이를 계속 유지하면서 달렸다고 한다.
정말 화가 많이 났었던듯.

1.2. 그 후

은퇴를 하면서 '더이상 자기와 같은 선수들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심판이 되어보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은퇴하자마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영어를 배우던 와중에 워싱턴 DC에 있는 포토맥 스포츠센터에 있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면 어떻겠냐는 건의를 하였고 이 조건을 승낙해 현재는 코치로 일하고 있다.

이 덕분에 코치직을 계속 맡을 것으로 보였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자기가 8년 전에 겪은 아픔이 그대로 반복되는 바람에 결국 다시 심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현재 코치를 하러 미국에 가 있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국내 쇼트트랙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이 없다. 지금은 스피드로 전향했지만 원래 쇼트트랙을 했던 이승훈은 존경하던 선수로 김동성을 꼽았다. 또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대부분의 선수가 운동을 시작할 무렵이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과 전이경이 메달을 따며 선전한 것을 보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야구박찬호 세대, 골프박세리 세대, 축구에서의 4강 신화 세대라는 것.[8]

그런데...

미국에서 제자 폭행의혹이 일고 있으며 현재 김동성은 억울함을 주장하며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코치 자격을 일시적으로 박탈당한 상황이었으나... #

2011년 인터뷰에 따르면 자격 정지가 된 다음 날 곧 자격 정지가 풀렸다고 한다. 김동성에 의하면 미국 빙상계에서 의도적으로 한국 인사들을 물먹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여러가지로 한국 출신 빙상 인사들이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며 이번에 그것을 확실하게 뿌리 뽑겠다며 변호사까지 선임한 상태라고. 참조기사 그리고 8월 16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를 디스한 적이 있지만], 선배로서 응원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 걸 보면 딱히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기사 내용을 보면 빅토르 안 개인에 대한 비난보다는 파벌 사건으로 인한 빙상연맹의 이미지 실추가 후배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강하다. 소치 올림픽 해설을 하면서 이런 발언도 한 것을 보면 그도 당시 안현수의 귀화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일 지도 모른다. 안현수가 김동성을 뒤이었던 대한민국의 에이스였음은 물론이고 김동성은 비록 같이 있었던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현수가 국가대표 첫해에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주었던 선배였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최연소로 병역 특례를 받은 사람이다. 1996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16살에 일찌감치 병역 특례를 받았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KBS 해설위원으로 나온다.[9] 오노 같은 짓을 하는 선수를 응징한다 근데 하필이면 악연이 있는 선수가 미국 NBC 해설위원으로 나서서 두 해설위원의 라이벌 구도가 재현되었다. 그러나 오노가 해설 잘하라며 스타벅스 커피 건네주더라는 기사를 보면 김동성이 이에 대해 '이놈 철들었나봐요.ㅋㅋㅋ'라고 농담까지 하니, 이제는 어느정도 감정이 풀린 것으로 보인다.[10]

1.3. 수상

  • 올림픽
금 2002 솔트레이크시티 1500m[11]
금 1998 나가노 1000m
은 1998 나가노 5000m 계주

  • 세계선수권
금 2002 몬트리얼 종합우승
금 2002 몬트리얼 500m
금 2002 몬트리얼 1000m
금 2002 몬트리얼 1500m
금 2002 몬트리얼 3000m
금 2002 몬트리얼 5000m 계주
금 1998 빈 3000m
금 1997 나가노 종합우승
금 1997 나가노 1000m
금 1997 나가노 3000m
금 1997 나가노 5000m 계주
은 1999 소피아 1000m
은 1999 소피아 5000m 계주
은 1998 빈 5000m 계주
은 1997 나가노 500m
동 1998 빈 종합3위
동 1998 빈 1500m
동 1996 헤이그 5000m 계주

  • 팀 세계선수권
금 1997 서울
은 2000 헤이그
은 1998 보르미오
은 1996 레이크 플라시드
동 2002 밀워키

  • 동계 아시안게임
금 1996 하얼빈 5000m 계주
금 1999 강원 1500m
금 1999 강원 3000m
은 1996 하얼빈 500m
은 1996 하얼빈 3000m
은 1999 강원 1000m
동 1996 하얼빈 1000m
동1999 강원 5000m 계주

  • 기타대회
2005 제86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쇼트트랙 500m 동메달
1999 월드컵 1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1000m 금메달
1999 월드컵 1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500m 금메달
1999 월드컵 2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5000m 금메달
1999 월드컵 2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3000m 금메달
1999 월드컵 2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
1999 월드컵 2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1000m 금메달
1999 월드컵 3차대회 쇼트트랙 남자계주 금메달
1999 월드컵 3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3000m 금메달
1999 월드컵 4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500m 은메달
1999 월드컵 4차대회 쇼트트랙 남자 1000m 금메달

1.4. 기타

2013년 7월부터 MBC 프로그램 맛있는 TV에서 블로거들 사이에서 인기인 맛집들을 섭외없이 방문하여 진정한 맛집인지 검증하는 맛집 검증단으로 활동하고있는데, 아무래도 운동선수 출신인지라 국내에서 손꼽히는 맛칼럼니스트들에 비해 음식에 대한 표현력이나 분별력이 확실히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인인 시청자들의 입맛을 대변한다는 입장으로 검증을 한다고 프로그램 자체에서 밝혔다.


2. 대한민국의 작곡가

kimds.jpg
[JPG 그림 (Unknown)]


1955년생.

경희대학교 및 동대학원 작곡과 졸업

쾰른국립음악대학 버클리음악대학교 수학

2.1. 개요

한국의 존 윌리엄스[12]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중견 작곡가가요CF, 애니메이션, 뮤지컬, 드라마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서 작곡과 편곡 및 연주로 명성을 쌓았다.

2.2. 특징


그의 넓고 다양한 작곡 스펙트럼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국내 사극의 전설로 회자되는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1996)의 OST와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최고의 인지도를 가진 작품인 아기공룡 둘리(KBS, 1987-1988)의 OST가 모두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용의 눈물 OST야 워낙 유명해서 그의 인지도를 올라가게 만든 1등 공신일 정도지만 KBS판 아기공룡 둘리 OST 역시 알고 보면 명곡들이 엄청나게 포진[13]할 정도로 퀄리티가 뛰어나니 극과 극의 스타일을 가진 분야들을 넘나들며 명곡들을 만드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1996년 그가 전곡 작곡 및 프로듀싱한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OST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으며 왕과 비,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등의 OST를 프로듀싱 및 작곡하며 사극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설사 그의 이름은 모른다 쳐도 큰 스케일의 장중하고 화려한 한국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그만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은 기억하는 이가 많다. 하지만 김동성 본인은 실제로 사극을 잘 시청하지 않으며 작품의 콘셉트가 정해지면 상상을 통해 음악을 구성할 뿐 드라마 자체에는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극의 파급력이 워낙 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사극 작곡가' 라는 별칭도 있지만 실상 본인은 그닥 달가워 하지는 않는 듯.

최근에는 작곡에 있어서 사극 다음으로 뮤지컬을 지향점으로 활동중이다. 특히 뮤지컬 쪽은 가장 열정을 쏟고 싶어하는데 지금까지는 뜻대로 그러질 못해서 미련이 많았던 듯.[14] 덕분에 최근에 뮤지컬 작품으로 참여한 남한산성은 그가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뮤지컬의 흥행성적도 괜찮았으며 이 작품을 통해서 2010년 한국뮤지컬대상 작곡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독일 쾰른국립음대와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수학한 김동성은 국내대학에 실용음악과 설립을 주도한 1세대로 현재 영석, 한상원, 원영 등 쟁쟁한 중견 작곡가들과 함께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과에서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2.3.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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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2년도 세선에선 무려 6관왕! 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관왕을 해낸선수는 쇼트트랙 역사상 김동성 혼자다.
  • [2] 김동성이 0.053초 앞섰다(...) 경기 결과가 나오고서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심판에게 몇 번이나 되물어봤던 리자준의 모습이 당시 방송을 탔다. 이후 모든 쇼트트랙 선수들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 칼날을 들이밀게 된다.
  • [3] 해당 만평은 비난 이후 삭제되었다고 함
  • [4] 이때 김동성이 왜 저렇게 초반부터 치고 나갔냐는 질문에 "초반부터 너무 견제가 심해서 몸싸움 하기 싫어서 그랬다" 라는 "참 쉽죠?" 급의 답변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몸빵이 싫으면 장기레이스라도 그냥 빨리 치고 나가버리면 됩니다. 어때요 정말 쉽죠? 이 작전은 중국인선수가 따라하려다 개털려버린 적이 있다(...). 아저씨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닌데요.그와중에 해설자의 경기중과 경기후 해설이 상당히 이중적 극혐...
  • [5] 위의 영상은 그 당시의 영상이며 이 대회에서 6관왕(종합성적 포함)을 하여 당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이 딴 8개의 금메달 중 혼자서 6개를 쓸어가버렸다.
  • [6] 아이스크림 광고를 찍기도 했고 쟁반노래방에 나와서 신나게 쟁반에 얻어맞는 등(...) 예능에서 주로 활약했다. 심지어 트로트 음반까지 냈었는데 아무도 낸 줄 모를 정도로 쫄딱 망했다.
  • [7] 토리노 올림픽 때는 MBC해설위원을 봤다.
  • [8] 또한 이들 중 여자축구를 제외한 대부분이 1987~90년생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밴쿠버의 메달리스트들과 골프의 신지애, 최나연, 축구의 기성용, 이청용 등이 대표적.
  • [9] 캐스터는 축빠들에게 락커룸으로 유명한 이재후.
  • [10] 라고는 하지만 꽤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린 모양으로 강연에 초청되어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까지 오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긴 하다.
  • [11] 실격처리
  • [12] 말이 필요없는 할리우드 영화 음악계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분이다. 항목 참조.
  • [13] 동명의 오프닝 타이틀곡은 말할 것도 없고 동요급으로 유명한 '비누방울', 도우너 테마곡인 '타임 코스모스', 심지어는 라면과 구공탄 역시 그가 작곡한 작품이다.
  • [14] 1987년 석화와 함께 한 뮤지컬 <송 앤 댄스>와 <토요일 밤의 열기>에는 음악감독과 편곡자로서 참여했고 뮤지컬 창작곡은 아기공룡 둘리가 유일한데 이때문에 1988년 동명의 TV 애니매이션 음악 작곡도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 [15] 사실 왕과 비에서는 따로 새로운 OST를 만들지 않고 용의 눈물의 OST를 그대로 써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