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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녕

최종 변경일자: 2014-06-10 14:15:53 Contributors


지 이 분과 닮은 것 같다

대한민국 여자 양궁 신궁 계보
서향순 김수녕 조윤정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금메달
서향순 김수녕 조윤정


대한민국 양궁을 대표하는 사상 최고의 선수.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차지한 양궁의 전설이다. 별명은 신궁(神弓).

1971년 4월 5일 생.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여기 저기를 이사다니다가 최종적으로 정착한 곳이 충주. 여기서 양궁에 입문했고, 소년체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양궁 신동의 등장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청주여고 1학년 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1988년 처음으로 데뷔한 국제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2관왕에 올랐다. 서울 올림픽에서는 개인전이 거리별 성적을 합산해서 메달 색깔을 가리는 방식이었는데, 총점 344점을 기록하면서 팀 동료이자 선배인 왕희경, 윤영숙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단체전에서는 선배들과 힘을 합쳐서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때 김수녕의 나이는 만 17세.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1988년부터 1992년 사이가 김수녕의 진정한 전성기였다. 1989년과 1991년 세계선수권 2년 연속 2관왕,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단체전 금메달, 1989년 거리별 공인 6종목 모두 세계신기록 보유. 이게 겨우 20대 초반에 거둔 성적이다. 그야말로 양궁계의 먼치킨, 넘사벽. 참고로 세계선수권 2년 연속 2관왕은 김수녕 이후 단 한 사람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 시절에 세운 세계 기록은 하도 많아서 본인도 기억을 못 한다고. 흠좀무. 김수녕 선수가 현역 생활동안 세운 세계신기록은 30개가 넘는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당연히 국가대표가 되었는데, 여기서 무적의 김수녕은 뼈아픈 패배를 맛 본다. 팀 동료인 조윤정과의 결승전에서 패하면서 은메달을 차지한 것.[1] 물론 단체전에서는 또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본인의 세 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대회부터 흔히 양궁 대회 방식으로 알고 있는 토너먼트가 도입이 되었는데, 이 토너먼트의 긴장감이 생각 이상었다고 한다. 마침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패배가 너무 아쉽기도 했고, 또 이룰 것은 다 이뤄서 목표도 사라졌기 때문에 그냥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게 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면서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아가는가 싶었는데, 1999년에 전격적으로 컴백을 선언했다. 어린 선수 위주의 대표팀이라서 경험 많은 선배가 필요하다는 협회의 판단 아래 협회에서 복귀를 권했다고 한다. 6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김수녕은 올림픽보다 더 어렵다는 한국 대표 선발전을 뚫어내고 다시 국가대표가 되었다. 인생의 경험도 늘어서 과거처럼 지는 것을 싫어하는 김수녕이 아닌 좀 더 여유롭게 활을 쏘는 김수녕으로 변했고, 그 결실은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맺어졌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까지 올랐지만, 4강전에서 윤미진에게 패하면서 3,4위전으로 밀렸다. 3,4위전에서는 북한의 최옥실을 누르고 동메달을 차지했는데, 원숙해진 김수녕은 집 장식장에 동메달도 걸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단체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여자 양궁의 신화를 이어갔다. 이로써 김수녕이 차지한 메달의 수는 모두 6개, 이 중 금메달을 4개가 되었다. 이 기록은 역대 한국 선수 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리고 이 대회를 끝으로 진짜 은퇴했다.

김수녕의 장점은 대담성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를 신조로 삼아 이미 지난 성적에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 때문에 평정심을 잃지 않고 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치열한 승부욕은 전성기에는 불패의 모습을 만들어 냈고, 결혼과 출산 이후 복귀한 시점에서는 승부욕을 달인의 달관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륜으로 승화시키면서 그야말로 진정한 신궁으로 자리잡았다. 역대 어떤 양궁 선수가 나와도 신궁이라는 호칭은 오직 김수녕에게만 준다는 점에서 김수녕이 가지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실질적인 고향인 청주시에는 김수녕 양궁장이 있고, 세계양궁협회에서는 20세기 최고의 여자 양궁 선수로 김수녕을 선정했다. 2012년 현재는 세계협회에서 일하면서 전 세계를 순회하며 지도하고 있다.

은퇴 이후에는 올림픽 시즌때마다 MBC의 양궁 종목 해설위원으로도 만나볼 수 있는데, 해설에서는 위에 서술된 대담성 항목이 무색해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대한민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기 직전이 되면 울먹거리면서 거의 해설을 진행하지 못하기 때문. 평생동안 쓸 멘탈을 선수시절에 다 끌어다 썼다 카더라 이로 인해 처음에는 시청자들에게 해설로서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나중에 들어서는 어차피 한국팀 선수가 금메달도 땄는데 뭐 그냥 그러려니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일부 스포츠 마니아들은 '김수녕이 울었다' 라는 말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랑 같은 의미로 쓰는 경지에 이를 정도.

2014년 1월 9일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공주의 전담 코치를 맡는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에 나온 내용으로 보면 대한양궁협회에서 여러 명의 후보 명단을 보내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골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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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당시 경기장면을 보면 결승 후반까지 점수가 비슷하다가 마지막 두 발이 점수가 좋지 않게 나왔다. 자신의 점수를 보고 아쉬워하는 표정보다는 웃어넘기는 표정을 지은 것으로 보아 금메달을 양보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진짜 속내는 김수녕선수 본인만 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