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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최종 변경일자: 2018-01-02 01:03:38 Contributors

북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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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국가 웬수 怨讐 원수
1대 2대 3대 4대 5대
김두봉 최용건[1]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북한의 역대 최고권력자[2]
1대 2대 3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2011~)

102011.jpg
[JPG 그림 (Unknown)]

이름 김정은(金正恩)[3][4]
본관 전주 김씨
국적 북한
배우자 리설주 (2011년~현재)[5]
신체 168cm, 100~120kg(추정치)
학력 스위스 베른공립중학교(1998년~2000년)[6]
김일성종합대학 학사
직책 조선노동당 위원장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생년월일 1984년 1월 8일 [7]
재임기간 2011년 12월 17일 - 현재


목차

1. 개요
2. 김씨 왕조의 후계자
2.1. 등장
2.2. 그의 출생과 가족관계
2.3. 학력 그리고 성격
2.4. 김정운?
2.5. 일본 언론의 착각과 실수
2.6. 슈퍼주니어 예성과 동일인물?
2.7. 제위 계승의 성공
2.8. 김일성대출금유산(?)
3. 포스트 김정일 체제
4. 그의 행보
4.1. 2010년
4.2. 2011년
4.3. 2012년
4.4. 2013년
4.5. 2014년
4.6. 2015년
4.7. 2016년
4.8. 2017년
5. 통치능력은 있는가?
5.1. 부정론
5.2. 긍정론
6. 김정은의 위대한 업적(?)
7. 개혁개방(?)
8. 김정은의 평가
8.1. 아동지원(?)
9. 건강 문제
10. 패기머리
11. 세계에서 풍자되는 김정은
11.1. 별명
11.1.1. 북한
11.1.2. 한국
11.1.3. 중국
11.2. 김정은 욕설사건
11.3. 3대 전시 치적 건물

1. 개요



드로우 마이 라이프 '공화국 원수' 계급이고,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목받은 그의 셋째아들. 북한의 당·정·군에서 공식 직함은 각각 조선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패드립을 칠 수 있는, 인류 최악의 흑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쓰고 있는 천하의 개쌍놈이자 인간말종.[8]

김정은의 어린시절 [9]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이 죽으면서, 근•현대 공화정 체제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3대 세습으로 만 27세의 너무할 정도로 젊은 나이에 권좌에 올랐으며 이때문에 최연소 국가수반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모셔오던 늙은 기성 정치가들과는 비교할 것도 없이 젊고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외국 학생들과 함께 유학도 해서 집권 직후 북한의 정치, 사회, 외교 등에 변화가 일지 않을까 하는 세계인들의 주목도 잠시 있었지만 현실은 시궁창. 아래 서술되는 내용이 전부 그 시궁창에 관한 사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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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예전에 조선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 아리랑 공연 관람 중 찍은 사진 용모 등을 볼 때 할아버지 김일성오마주했나 추측된다. 아버지 김정일 또한 젊을 때 김일성을 오마주했고 김정은도 선전을 위해 김일성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고 언론에서 추측한다. 실제로 김정은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 몇 달 전만 해도 머리 스타일과 체격이 달랐다. 언론에서는 김정은이 일부러 후덕하게 용모를 바꾸도록 폭식을 시켰다는 분석이 있었다. 고위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외모 가꾸기 차원에서 성형수술이 있었다고 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여섯번이나. 물론 북한은 이러한 성형설을 극력 부인. 그게 사실이라면, 차라리 미남[10]으로 성형하지 왜 이랬을까 싶겠지만 절대군주제의 전제국가 상태로 퇴행한 북한의 상황에서 북한 민중에게 김정은을 이미 신격화된 예전 지도자의 핏줄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북한 민중에게 김일성이나 김정일에게 하듯이 김정은도 신격화된 존재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충성을 강요한다. 역사상 한 왕조의 후계자가 민중에게 존경을 받던 부왕의 복장이나 외모를 흉내내어 민중에게 어필하는 일은 흔하고 특이한 일도 아니며, 몇세기 이전 왕정 국가에서도 종종 있었다. 당연히 21세기인 지금은 입헌군주 국가는커녕 어디 부족 단위 국가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행태.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의 말에, 김정은의 인상을 "어렸을 때보다 얼굴에 살이 많이 붙었다"면서 김 위원장으로부터 "많이 먹어 관록을 붙이라", "위에 있는(높은) 사람이 가늘어선(말라선)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며, 지도자의 풍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배불리 먹이고 재워 살을 찌운 듯하다고 한다.[11](그런데 이 할배는 북한정권의 상황이 바뀔 때마다 말이 자주 바뀐다. 떡밥제조기.) 갑작스럽게 살을 많이 찌워서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아직 31세 정도로 나이가 젊어서인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이 바로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김정일. 그리고 현재 그의 형 김정남이 그렇듯이 중장년이 되고 나서고 그마저도 확률이 100%가 아니다. 비만이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곧 인생 자체에 무조건적인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면 비만이었던 사람들은 전부 단명했을 것이다.

담배도 일찍부터 시작했는데 흡연은 몰래 했지만 음주는 대놓고 했다고. 김정일 가족과 측근들이 참석하는 연회 때 간부들은 앞다퉈 10대인 김정은에게 술을 따르러 왔는데 김정은은 김정일이 보는 앞에서 그 술잔들을 거리낌 없이 비웠다고.

김정일은 김정은이 15세 때부터 "남자는 술을 잘 먹어야 한다"며 음주를 허용했고 담배는 "일찍 배우면 키가 안 큰다"며 피우지 말라고 지시했다.[12] 김정은은 이 때부터 조니 워커 최고급 상품을 즐겼고 러시아 보드카 가운데 최고급인 '크리스탈' 1병을 단숨에 들이켰다고. 담배는 툭하면 어른들에게 떼를 써서 얻어 피웠다. 후지모토도 2000년 어느 날 한 초대소(별장)에서 정은(당시 17세)이가 검지와 중지를 세워 입에 댄 채 '이거 하러 가자'고 꾀어내 후지모토와 브 생 로랑을 몰래 피웠다는 증언을 남겼다.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승용차는 벤츠 600. 좋아하는 스포츠는 농구. 부친인 김정일의 호칭은 파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김정일을 지칭할 때는 '윗선에서'란 표현을 썼다고 한다. 기쁨조 무용수를 볼 때마다 관심을 보였다고. 한 번은 기쁨조 공연을 봤을 때 가슴이 큰 여성이 있었는데 "야, 가슴 크다"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2014년 3월 10일 제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 되었다.

2. 김씨 왕조의 후계자

2.1.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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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사실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김일성부터 김정은이 아닌 김정남을 귀여워했고 김정은은 찬밥신세였다. 이 기사내용대로라면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 기사가 과장이라고 쳐도 일단 김정은의 친모 고영희가 정실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므로 신빙성은 높다. 언론노출과 해외 출입이 잦았던 김정남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고 김정은은 어느 순간 스위스에서 대학을 다니는 모습이 알려져서 반짝 주목을 받았으나 당시에는 누구도 이 소년이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전혀 몰랐다. 다만 김정일 곁에서 요리를 했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일찍이 저서를 통해 김정운(당시에는 '정운'으로 알려져 있었다)[13]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점쳤다. 북한 권력 핵심층과 가까이 일하다 보니 빨리 알았던 듯. 당시에는 대부분의 북한학 학자들도 '3남인데 설마 그럴 리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그런데 2010년 9월 28일 열린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이 김정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임명받아 김정일의 공식적인 후계자임을 공표했다. 세계 최연소 대장. 물론 이 대장이란 칭호의 의미는 직접적 군 지휘권보다는 정치적인 의미가 크다. 북한군에는 대장과 원수 사이에 차수 계급이 따로 있고, 그 차수급 장성이 십여 명이다. 심지어 마오쩌둥의 손자 마오신위도 아직 소장일 뿐이다. 이쪽은 40세. 더군다나 인민해방군에는 준장 계급이 없다. 즉 인민해방군의 소장이란 한국군의 준장으로 장성 중 최하위직.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중장 계급이긴 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2004년전사()로 입대하여 1년 반만에 중장으로 진급했다고.

더불어 김정일의 후계 구도가 공식화하면서 대의민주제를 형식상으로나마 표방하는 국가라 3대에 걸친 권력 세습이라는 (진짜 군주정 국가를 제외하면)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이는 현실이 되었다.

사실 2세 세습까지는 성공한 국가들이 좀 있는 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싱가포르와 중화민국.

  • 싱가포르 : 리콴유 → 고촉통 → 리셴룽. 리콴유가 아들 리셴룽에게 직접 세습하기 뭐하니 두었던 허수아비 총리로, 자세한 내용은 싱가포르 참조. 아래의 대만과 달리 싱가포르는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백만광년 정도 떨어진 자기 식대로 정치를 고수한다. 따라서 리셴룽의 아들 중 1명이 싱가포르 4~5대 총리에 오를 가능성이 현재로는 높고, 그러면 3세 세습이다.[14]
  • 중화민국(대만) : 장제스옌자간장징궈로 2세 세습에 성공. 물론 이쪽도 싱가포르처럼 중간에 옌자간(바지사장)을 1명 두었다가 바로 장징궈(장경국)으로 넘어갔다. 장징궈는 집권 말기에 야당 활동을 허용하고 지방자치제도의 근원안을 만든 뒤 계엄령을 해제했으며, 사후(1988년) 총통(대통령)직을 승계한 리덩후이총통선거를 직선제로 바꾸고 입법의원 선거가 총선으로 바꾸면서 민주 정치를 확립했다.)

  • 고 민주공화국: 자이레의 모부투 정권을 전복시킨 초대 대통령 로렝-데지레 카빌라가 암살당한 이후 그 아들 조셉 카빌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부자, 우리나라의 박정희, 박근혜 부녀, 인도의 인드라 간디 모자, 파키스탄의 부토 부녀 처럼 2대가 나란히 최고집권자에 등극한 경우는 있지만, 이들 국가는 아버지(또는 어머니)의 후광만 입었을 뿐, 민주적 절차를 통과해 집권했으므로 위의 경우와는 비교불가.

물론 신격화를 동반한 김일성-김정일 세습의 막장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싱가포르와 중국은 서구 언론에서 아시아 민주주의 위기의 진원지로 칭하는 국가이다. 능력 있는 일당 독재로 국가가 부유해지면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국가 경영의 책임을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방임하는데 반해 민주주의는 선거권을 가진 시민이 가장 피곤한 정치 제도다. 전 국민적 레벨의 시민의식, 교육 수준, 가치관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며 시민의 끊임없는 권력자 감시제도 등이 모두 있어야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싱가포르나 중국 같은 경우와 같이 대다수의 시민들은 정치나 국가 경영에 무지해도 소수의 엘리트들이 착실한 개념을 갖고 국가를 경영하면, 민주주의보다 더욱 효율적인 국가 성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성공 사례(?)들이 많을수록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확산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 그리고 이런 국가들의 성공 사례를 빌미로 독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무능한 정권들이 아시아에 활개를 칠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재 정권은 초기에는 개념으로 경영하더라도 점차 견제가 없는 상황에서 독재자나 그 측근들이 부패하는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 공식에 빠진다.[15][16]

2.2. 그의 출생과 가족관계

한국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 유성옥氏에 따르면 실제로는 1984 1월 8일 생이지만 북한에서는 1982년생으로 선전한다. 조작의 이유로는 김일성의 탄생년인 1912년과 끝자리를 맞추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 권력승계 뒤에는 생일을 1월 1일로 선전하는 중. 김정일도 원래는 1941년생인데 김일성과 맞추기 위해 1942년생이라고 조작한 전력이 있다.

김정일과 고영희의 아들로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은 고영희의 아들이 아니라 현 비서인 김옥의 아들이라는 설이 나왔다. 탄생년을 맞춘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는 김정일과 김정일의 가족에 당 내부 아주 고위층들만이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지만, 북측에서 사실이라 확인한 바는 아직 없다. 고영희 소생의 김정철이 유전자 이상으로 매우 여성스럽고 몸도 약하며 고영희가 김정철 이후에 딸을 1명 출산한 이후로 더 이상 출산을 못하여 김옥이 낳은 김정은을 자기 아이로 키웠다는 것.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 같다는 이유로 김정일은 김정철을 멀리했다고. 김정일은 김정은에게는 매년 성대한 생일잔치를 열어줬지만 김정철에겐 생일(9월 25일)이 막내딸 김여정의 생일(9월 26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같은 날 몰아서 공동 생일상을 차려줬다 한다.

장남 김정남이 마카오 등지에서 측근들에게 이야기한 말이 교민 사회에 퍼지면서 한국 기자가 김정남을 취재할 때 물어보기도 했지만, 김정남 자신은 부인했다. 그런데 기자가 만난 측근들은 부인하지 않았으니 진실은 어디에? 또한 김정은은 야심이 매우 큰 인물로 김정일 몰래 김정남을 암살하려는 시도도 했었다고.

참고로 고영희는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의 딸이었고 1960년대 대규모 북송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이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의 혈통적 순수성에 흠이 되지 않도록 조총련의 위상이 격하되는가 하면 고영희의 출신에 함구령이 내려졌다고...

하지만 이미 소문은 소문대로 나 버렸고, 현재 김정은의 가장 큰 흠이 되었다. 정실 부인도 아닌 김일성의 허락을 받지 않은 여자, 게다가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취급받는 남조선계 출신(제주도)+재일교포 출신으로서 일반인이었다면 최하위계층 대접을 받을 인물인 것이다. 김일성가의 후손, 즉 '백두혈통'의 순수한 혈통이 아니라는 점이 김정은에게 큰 약점으로 따라다니고 있다.

2.3. 학력 그리고 성격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유학하며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았다. 이에 대해 실제로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닌 건 김정은이 아닌 형 김정철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으며, 형제가 함께 유학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베른 국제학교에서 김정은의 성적은 자연과목이 6등급 가운데 3.5등급이었고 문화·사회·독일어에서도 낙제를 겨우 면했다. 영어도 고급반에 들어갔다가 따라 못가서 보통반으로 내려갔는데, 독일어보단 영어가 나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학과 체육은 꽤 잘했고, 특히 농구경기에는 강한 승부욕을 보였다고 한다. 학창시절 성격은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고, 여자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성인잡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 선생에게 걸린적은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NBA의 광팬으로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간직했다고 한다.

한편 김정은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스위스인 동창생은 김정은에 대해 "그 녀석은 좋은 녀석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일본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를 좋아하는 남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학은 북한판 합동군사대학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5년제)을 나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호전적이라고 한다.

스위스에서 땄다는 학위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은데 스위스 주재 북한 대사관의 아들로 신분을 위장하여 취득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격은 대담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는 다혈질적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그의 성격들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는

한때 김정일 측근들은 김정철•김정은 형제를 각각 '큰 대장 동지'와 '작은 대장 동지'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은은 열살 무렵 이모 고영숙(고영희 여동생)[17] 이 자신을 '작은 대장'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 "왜 내가 작은 대장이냐"고 따졌고 이후 김정은의 호칭은 '작은'이란 수식어가 빠진 '대장 동지' 또는 '김대장 동지'가 되었다고 한다.

또 김정일 일가가 백두산 초대소에 1주일간 머물 때 하루는 온 가족이 산 정상에 올랐는데 김정은이 갑자기 후지모토 곁에 다가가 "산 내려갈 때까지 참을 수가 없어. 후지모토, 저쪽으로 같이 가자"며 으슥한 곳으로 후지모토를 데려가선 근처에 화장실이 보이지 않자 후지모토에게 '동반 노상방뇨'를 권유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백두산엔 북한이 김정일 생가라고 선전하는 '백두산 밀영'이 있어 산 전체가 성지나 마찬가지인데 후지모토는 "북한 일반 주민들이 보기엔 정신 나간 짓이었다"며 "나 혼자 그러다 발각됐다면 총살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고...

어릴 적 화가 나면 구슬을 형의 얼굴에 던지고 60세가 넘은 김일성의 부관을 발로 툭툭 차며 '땅딸보'라 놀리는 등 버릇없고 거친 면모도 있다고 한다. (자기도 땅딸보면서...) 후지모토 겐지와의 인터뷰 참조.

아버지를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애육원에서 고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실제로 성격이 여린 편이라는 말도 있고그리고 고모 숙청, 연기라는 말도 있다. 전문가인 강명도 교수의 의견으로는, 김정은 자신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일찍 떠나보냈기 때문에 고아들을 보고 자신의 어린시절이 생각나서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에 눈물을 흘린 것 같다고 한다. 그런 놈이 핵을 만들어 세계를 협박해? / 애초에 고아가 생기지 않도록 정치를 똑바로 했으면 될 것을...

2.4. 김정운?

그동안 이름이 김정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렇게 알려진 당시에도 '김정은을 잘못 쓴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측한 후지모토 겐지도 '김정운'으로 소개하였다. 일본어로는 '은'이든 '운'이든 'ウン'으로 옮기기 때문에 모종의 착각이 있었던 듯. 실제로 그의 저서에서 그가 직접 쓴 한글을 보면 'ㅜ'와 'ㅡ'가 자주 뒤바뀌어 있다. 북한에서는 이 두 발음이 남한에 비해 구별이 힘든 것도 이유 중 하나.[18][19][20] 일본에서 2003년 발간된 만화 '김정일입문' 서두의 계보를 보면 생뚱맞게도 金正雄(김정웅)으로 표기했고 'ウン' 발음으로 되어 있다.[21]동생 김여정은 아예 한자표기도 없던 걸로 보아 북한 매체는 이름이나 한자표기는 거의 안했던 듯 하다.

그리고 한 대만 사진작가가 북한에서 기록한 벽보에 김정으로 쓰여 있었음을 촬영하여 인증해 정부에서도 김정은이 맞다라 확인하고, 그 뒤로는 언론에서도 김정은으로 쓴다.기사


북한에서는 구름처럼 떠돌아 다닌다는 느낌을 주는 구름 운(雲)이 연상되는 글자를 주요 인물의 이름에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원래는 '운'이 맞지만 '은'으로 개명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북한말로 '은(銀)'이라는 말은 '보람 있는 값이나 결과'라는 의미를 뜻한다고 하므로 은으로 개명했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이후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한자 이름까지 金正으로 보도하자(#) 중국, 일본 언론에서도 종래의 '은'에 해당하는 銀, 殷 대신 恩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22]

여담으로 이름이 김정으로 드러나자 남한의 김정은이 무척 속상했다고. 대성통곡 그래서 배우 김정은은 농담으로 자신의 한두 살[23]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북한의 이 김정은에게 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2.5. 일본 언론의 착각과 실수

하도 신비주의(?)가 강해서 일본 언론은 그의 얼굴을 찾으려고 발악했는데 TV 아사히에서 특종이라고 찾아낸 얼굴김정은이 아닌 남한의 일반인의 사진이었다. 참고로 일본 네티즌들은 믿고 낄낄대다가 오보 파동 나자마자 TV 아사히를 놀렸다.

그런데 피해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명예훼손 합의금이라도 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돈을 빌리러 오거나 비꼬는 바람에 직장도 잃고 잠도 못 잘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문제의 사진에 비해 초췌해진 모습이 SBS '큐브'를 거쳐 방송에도 나왔다. 하지만 이 사람은 TV 아사히로부터 한 푼도 못 받았다. SBS에서 전화로 TV 아사히에 문의했으나 대답을 회피했다. 아사히 TV는 자국에서도 정정보도에 인색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 일부 일본의 환빠 비스무리한 사람들은 요코다 메구미가 사실은 김정은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 요코다 메구미가 덴노의 후손이라 일본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고 싶은 김정일이 요코다 메구미를 납치하여 김정은을 낳았고 김정은은 그로 인해 한일혼혈이며 일본에 호의적이라는 것.[24] 불쏘시개 책도 있다

2.6. 슈퍼주니어 예성과 동일인물?

스위스의 한 언론매체는 슈퍼주니어 예성을 김정은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U 활동 당시 앨범자켓사진이다. 김정은이 그런 걸 찍을 리 없잖아 당시 김정은의 이름을 김정운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해당 매체들은 예성의 본명인 김종운과 김정운을 혼동했다. 아마도 발음상 외국인들은 헷갈렸을 수도. 조사를 어디서 한 걸까 이 때문에 예성은 당시 실시간 검색순위 1위를 굳게 지키기도 했다. 본인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2.7. 제위 계승의 성공


요즘들어 저 종간나새끼가 박수를 건성건성 친단 말이지비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25]

2010년 1월 8일의 그의 생일날 북한에선 TV에 연간 김일성 출생일, 한국전쟁 휴전일, 공산당 창단일로 딱 3번 트는 행사용 노래 '축배를 들자'를 틀었다. 그의 어릴적 생일 축가로 지어진 노래 '발걸음' 또한 가사를 개사하여 북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자주 불러서 여러가지로 후계자의 윤곽이 확실하다. 끝내,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세계 최연소 국가 지도자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왕위를 계승중입니다. 아버지

하지만 이 '최연소 국가지도자'가 최종적으로 왕위 계승(현재는 계승 후 정권 안정)을 무사히 마칠 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한다. 기반을 다질 여유가 충분했던 아버지 김정일과는 결정적인 간극이 있어서다. 전문가들이 대부분 동의하듯이 북한은 불안정하고, 김정은의 기반은 극히 불안하다.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맨날 나는 정치판에서 구를 대로 구른 정치인도 조금의 실수로 파멸하거나 심지어 생명까지 날아가는데 한번 생각해보자. 김일성 세대와 비교적 되는 세월 동안 짬밥을 같이 먹어가며 성장한 김정일조차도 김일성이 사망하자 황장엽이 반기를 들었음을 보면 더욱 그렇다. 북한에서 황장엽 같은 사람이 혼자 뿐일까?

김정일도 세습으로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그는 1967년 산파 숙청 때 일선에서 활약했고 69년 조선노동당 선전부 부장이라는 요직을 맡아 훌륭하게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차근차근 기반을 쌓아 삼촌 김영주와 이복동생 김평일을 밀어내고 1인자의 자리에 올랐는데, 그런 그가 공식 후계자가 된 것이 33세이며 당 중앙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달성한 상태였다.

높게 잡아도 20대 후반에 아무런 공적도 없는 김정은과는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르다. 거기에다 권력 승계에는 정치력도 중요하지만 현 북한의 상황으로 봤을 때 군부지도력이 중요한데, 김정일은 아버지인 김일성이 꽤 장수해서 아버지의 후광으로 권력을 굳힐 (+ 아버지를 사실상 대리한) 시간이 충분했지만 김정은은 아버지인 김정일이 오늘내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나 할아버지 후광도 적게 받았기 때문에 김정일이 사망한 현 시점에서 이제야 군부 관련 감투 하나 얻어받은 김정은이 얼마나 장악할 지가 의문이다. 수틀리면 내전으로 치닫을 수도 있다.

김정은의 세습에 북한 내부에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거 순 낙하산 인사인데?" 하는 분위기라는 것. 실제로 2010년 9월에서 10월 무렵엔 김정은 1명뿐만 아니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일가를 모조리 비난하는 삐라가 평양에서 돌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남한에도 동요로 널리 퍼진 ' 세 마리'를 개사한 것이 유명하다. 원수를 빼도 십여 명의 차수가 있는 북한군에서 대장 계급인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란 설이 있다.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 사이 김정일이 중국을 뻔질나게 드나듦도, 2010년 9월 말의 인민회의에서 소위 '후견인'들을 요소요소에 배치시킴도, 다 지지 기반이 불안해서였다. 김정일이 사망한 시점에서 김정은이 도요토미 히데요리 꼴이 날 지 아무도 모른다. 도요토미도 대영주들한테 충성 서약 요구하고 결혼 동맹 추진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부탁하는 등 싸바싸바했지만 끝내 그가 죽고 난 뒤엔...

또 북한은 2010년 9월 29일 공개한 조선노동당 당규 내용 중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인민 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으로, '사회주의 완전 승리'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로 고치는 등 호전성을 줄이고 정권 유지에 급급한 행보를 보인다.

김정일이 사망한 이 시점에서 김정은의 권력 체계가 부실해진다면 북한엔 헬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이 다분하고, 그 불똥이 국내에 튀지 않으리라곤 누구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이미 4.19, 5.16, 10.26, 12.12, 6.29와 같은 대내적 급변사태가 여태까지 숱하게 터졌지만 남북관계에 딱히 큰 변동이 없었던 점을 들어 북한 체제가 이제까지 그 어느 때보다 허술한 요즘 상황에서 남한에 도발하긴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도쿠가와 막부가 무리한 전쟁으로 나라를 피폐하게 한 도요토미 측과 반대 노선을 걸은 경우를 가정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남한에의 무력도발을 정체성 유지의 중요한 카드로 생각할 만한 북측의 주요 군벌들을 생각해 보면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임은 맞다. 더욱이 "선군정치"는 부친의 "유업"(...) 실제로 김정은 본인이 비교적 순조로이 정권 이양을 이뤄도 정체성과 명분을 강화하고 내부 불만을 식히는 의미에서 도요토미 테크를 타면 남측에 강경책으로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시사in의 주장에 따르면,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생전 김정일의 총애를 받던 그 딸 김설송이 원래 유력한 차기주자였으나, 2008년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의원이 당시 한나라당 당내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하면서 여성 후계자 계획이 지지를 받기 어려워져, 대안으로서 김정은이 부상했다더라.# 물론 반박도 있다.

2.8. 김일성대출금유산(?)


해석 : 파이가 없어 엉엉

앞으로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빚을 상속한 덕택에 정말 제대로 곤욕을 치르게 생겼다. 자세한 것은 북한의 국채 참조.

3. 포스트 김정일 체제


잘 할수 있갔니?
걱정 마시라요. 아바이가 말아먹은 나라, 더 말아 먹을 게 있겠슴메?

김정은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김정일의 모습. 이 당시 아들이 뿌듯하다는 듯이 웃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인간적인 표정을 보여주는데 이 부자의 행각을 생각해보면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이른 나이에 정권 전면에 섰다. 12월 19일 조선중앙TV의 특별 방송에서도 김정일 추모위원회에서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리면서 권력 서열 1위로 차기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남한의 전문가들은 1994년 당시 김정일의 승계 과정보다 훨씬 불안정하지만 김정일이 구축해놓은 시스템과 중국의 지원으로 체제 붕괴나 내전까지는 이르지 않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김정은의 지지 기반이 미약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김정일이 해왔던 1인 절대 독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요직에 있는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 등의 심복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세력 분포에 따른 집단 지도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박남기처럼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하면 많은 숙청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물론 위 문단의 예측과는 달리 장성택은 모두 잘 알다시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유력한 심복으로 지목되었던 김경희 역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며 사실상 잠적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항목 참조.

김정은의 상황을 김정일과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1. 김정일은 수십년간 정치 일선에 나섰으며 김일성 말년에는 계승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사실상 실권을 장악했다. 김정은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 3년에 지나지 않으며 계승은 받았으나 실권은 어느 정도 장악하나 모른다. 직책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다다.
    • 하지만 '김일성-김정일의 직계 혈통'이자 '차기 지도자'로 김정일 생전에 인정받았으니 겉으로 보이는 직책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은 혈통이 지배하는 전제 왕국이다.
  2. 김정일은 원숙한 나이였으나 김정은은 20대 젊은이일 뿐이다.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보다 나이가 많은 간부들은 아직 많다. 김정은은 나이 든 간부들을 숙청하려 들 테고 이 때문에 권력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 다만 김정일이 생전에 김정은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이들을 미리미리 치워놨기 때문에(...) 이점은 있다. 김평일, 김정남은 해외를 떠돌며 사실상 유배된 상태고, 김정철은 몸이 너무나 병약해서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상태인 데다가 권력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장성택은 이제 숙청되었다. 김정일처럼 확고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딱히 강력한 대항 세력은 없다. 오히려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최소 몇십 년은 살 테니 '구심점'이 될 수 있다.
  3. 김정일은 김일성의 첫번째 아내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적장자(嫡長子)였으며 이것을 자신의 우월한 혈통성으로 내세우는 데 널리 써먹었다. 반면 김정은의 어머니는 재일교포 무용수 고영희다. 게다가 김정은은 장남은커녕 아들 중에서 막내다. 북한은 실질적으로 내팽겨쳤지만 공산주의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마치 나치처럼 철저하게 혈통의 순수성을 따지고 조선시대 유교 사회처럼 신분을 중시하는 해괴한 사회인데 브라이언 마이어스의《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를 읽어보기 바란다. 고영희의 신분은 북한에서는 오랑캐 기생 출신의 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인지 김정숙과는 달리 고영희는 우상화 신격화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 다만 그렇다고 김정일의 다른 자식들이 딱히 혈통 면에서 김정은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도 북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존재는 아니었다. 그리고 고영희의 혈통이 그렇게 걸리면 날조하면 된다. 단, 이 경우 총련 등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4.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에 충분한 홍보 기간이 있었으나 김정은은 몇 년 간의 홍보에도 아직 대중에 명확하게 각인된 인물이 아니다. 김정일도 그리 대중에 많이 나서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현재까지는 김정일 이상으로 비밀스럽게 움직이며 대중에 나서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북한 정치에서 일반 대중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지만 김정은은 아직 할아버지나 아버지 수준의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정일이 어느 정도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면서 권력을 잡았다면 김정은에게 있는 것은 진짜로 '조상의 후광'밖에 없다는 것.
    • 2014년 현재 김정은은 안정적으로 후계에 성공했고 특히 장성택을 제거하는 위업(…)까지 달성했다. 이제 김정은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은 최룡해 뿐인데 그 최룡해마저도 2014년 1월에 김정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연설을 했다.
  5. 아무리 '김일성 숭배'에 익숙한 북한 사람이라도 난데없이 얼마 전에 나타난 새파란 20대 청년에게 복종하라는 것을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게다가 집권 얼마 전의 북한의 화폐개혁 같은 실정이 벌어진 탓에 민심이 매우 나빠졌다. 그래도 김정은은 김일성이 살아 생전의 외모와 같은 점에 희망을 걸지만 글쎄? 실제로는 1984년 생인 김정은이 북한에서는 1982년 생으로 취급하는 것 도 1942년 생인 김정일과 정확하게 40년, 1912년 생인 김일성과 정확하게 70년의 연령차가 난다는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포상과 처벌을 번갈아가며 남발하고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그리고 사람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급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예 그냥 어린 김정은을 계속 내세워야 이놈 저놈으로 실권자가 마구 바뀌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을 할 확률이 높다
  6. 김정일은 어린 시절에는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이 때문에 최소한의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태어날 때부터 장군가의 인간으로 철저하게 우대를 받고 길러졌기 때문에 현실 감각과 정치 감각이 제대로일지 의심스럽다. 김정은은 조선의 숙종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미츠처럼 날 때부터 지배자인 자이므로 왕조 시대의 인간을 현대에 집어던져놓은 것과 같을 수도 있다.
    • 그러나 주체사상 도입 이후 사실 상의 절대왕정국가가 된 상황에서 현실 감각을 운운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고 설레발이다. 애초에 북한 사회 자체가 다른 민주주의 사회 내지는 공산주의 사회와는 이억만리 떨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건 없다.

사망 발표 직후엔 일단은 김정일 장례에 모든 관심이 집중해서 별 탈은 없지만 장례가 끝나는 순간부터 북한 내 정권들의 존폐 여부에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현재 집단 지도 체제 안에서 김정은의 정권 안정에 변수를 줄 수 있는 건 오극렬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달려 있으며 김정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형 김정남은 물론 누나인 김설송도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여기에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까지 가세할 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새파란 30세 독재자가 넘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들이 기다린다.

그러나 남측에서 이렇게 호들갑떠는 것과는 매우 무관하게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계승이 순조로운 듯하다. 상중임에도 상당히 빠르게 인사를 정비하는 모습이 보여서다. 대표적으로 25일 군부를 이끌고서 조문을 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모부이자 핵심 실세로 예상하는 군부에 아무 직책이 없었던 장성택이 대장 직위를 달고 조문하는 모습이 잡혔다. 이 점은 현재 북한의 실세 장성택이 군부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니 김정은 체제가 군부에도 작용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게 김정일의 생전 지시인지, 아니면 김정은 독단적으로 결정한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김정일이 생전 '자신과 닮았다'라고 한 발언처럼 김정일만큼의 정치 능력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2012년 4월 11일 열린 제4차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조선로동당 총비서 대신 제1비서라는 직책을 신설하여 취임해 조선로동당의 당권까지 장악했음을 공식화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김일성의 직책이던 '조선로동당 주석' 자리를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자신을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취임했던 전철을 그대로 우려먹은 것. 그리고 4월 13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다시 국방위원장 대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했다니 이뭐병. 그런데 북한 사람들 사이에선 어감상 '국방위원회 위원장보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더 높게 느껴서 애비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 패륜아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아버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남겨서 자신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하나란 추측도 했으나 국방위원장직 역시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만들어버림에 따라 헌법을 바꿔서 총비서가 아닌 제1비서로서 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취임한 것에 비추어보면 향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중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 그의 행보

4.1.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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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북조선에 필요한 것은 총알이 아니라 식량이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건 그냥 김일성이 했던 말의 변조다. "쌀은 곧 공산주의다"라는 말이 그것. 당연히 달라지기는 커녕 김일성 시절보다 식량사정은 악화된 상태다.

2010년 11월 5일에는 중국 기반의 북한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약칭 조평통) 부위원장인 오익제가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등장한 김정은을 '청년대장'이라고 부르며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오익제는 남한의 천도교 교령으로 1997년 8월 월북했는데, 월북이 아닌 납북이라는 주장이 아직도 있다. 월북 시기가 황장엽의 남한 망명 시기와 겹치는 데다가, 오익제의 가족들이 전부 북한에 있다는 점을 써 북한 정부가 황장엽 월남에 보인 북한 내부의 동요를 막기 위하여 북한에 있는 오익제의 가족을 이용해 오익제를 끌여들인 뒤 남한에 못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이제 막 정치판에 발을 디딘 뉴비인 김정은의 권위 높이기 일환으로 발표한 글임이 확실한데, 오익제가 직접 썼는지 아니면 다른 높으신 분들의 계책인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2010년 11월 12일 북한에서 김정은의 초상화를 배포하기 시작했다.백괴사전에 의하면 남한에도 초상화를 배포했다 카더라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가 김정은의 후계 체제 확립을 위해서라는 주장이 많다. 자세한 것은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 참조. 그러나 내부 결속을 위해 노린 정책이 오히려 북한 내부에서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북한 주민들은 당장 쌀값과 중국 화폐 환율이 올라서 큰일이며 지식인과 군인 계층에서는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어린애'라 평가한다고. 내부의 여론은 '이게 다 김정은 때문이다'로 흐른다고 한다.

4.2. 2011년


2011년 2월 21일에는 군부대 시찰 중 쌍안경을 들고 부대를 둘러보는 김정은의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몇몇 언론사에서는 위의 사진으로 "김정은이 망원경을 거꾸로 들었다!"며 그의 의도적으로 미화된 군 경력에 조소를 보냈으나 안타깝게도 대세의견은 똑바로 든 게 맞다는 쪽이다.

로동신문의 경우처럼 오탈자라도 나면 돌리던 기기도 멈추고 이미 해외 대사관으로 보낸 신문마저 국제택배로 반송받아 전량 폐기 처분할 만큼 선전물들의 검열 자체가 지나치게 충실한 북한의 사정을 보면 틀리게 씌웠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그러니까 쉽게 말해 김정은 개객끼라는 단어는 못 싣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후궁기쁨조를 뽑기 시작했다고. 아버지와는 취향이 많이 달라서 김정은표 기쁨조최하 168cm부터 선발대상이라 한다.지 주제를 알아야지 중국 인터넷 계시판에서는 20대에 일국의 왕인 김정은이 부럽다는 글이 많다..절반은 비아냥이고 절반은 순수한 부러움.


김정일 사망 뒤로는 일단 장례 주관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12월 28일 진행한 영결식에서 영구차 진행방향 오른편에 정계를 대표해 ①김정은-②장성택-③기남-④태복이, 왼편에 군부를 대표해 ⑤리영호-⑥영춘-⑦김정각-⑧우동측이 호위를 한 것으로 볼 때 이들이 당분간 북한 정권의 핵심으로 권력 승계를 주도할 것으로 여겨진다. 사족으로 우동측은 장례식 이후 보이지 않아 숙청설이 나돌았는데 알고 보니 뇌출혈로 전신마비가 왔다 카더라.(...)

다음날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한 중앙추도대회의 주석단에도 이들 8명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영림 총리를 비롯한 지도부 인사들이 맨 앞자리에서 행사를 주관했다. 공식 추도 기간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인 12월 30일 소집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는 김정은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했다.

4.3. 2012년


추이코프 가라사대 돼지에 포를 올리랬더니 포에 돼지를 올렸네.
아니 가뜩이나 나이들어 박물관으로 모셔드려야할 전차에게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거야???


조종석이 멀쩡할려나?
돼지가 철 속에 있으니 스팸
잘 어울린다. 못먹어서 부은 조종수?
이보라, 동무 이거 오똫게 조종하는 거네?
Ready to Roll Out!
붉은 돼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깨알같은 김해 표지판
움직이는 탱크가 신기하다. 천하장사???
이봐, 어디 가는거야? 너희 나라로 돌아가!
부산김해경전철중앙고속도로를 타며 대놓고 훈련 중. 뒷모습이나, 윗사진들과 동일한 복장 등으로 보아 김정은이 맞는 듯하다.깨알같은 춘천-부산374km의 압박 하단의 사진은 PT-76경전차인데 김정은이 이걸 타고 몸소 조종 및 사격솜씨를 뽐낸 바 있다. 국내 뉴스나 유튜브에 보면 동영상도 있는데 기동간 사격까지 하면서 백발백중 다 맞는다.(...) 당연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진짜 조종이나 사격은커녕 진짜 탔는지도 의심스럽다. 탑승했다해도 안에 미리 조종수와 사수가 탑승한 상태일 수도 있고, 고도의 CG를 쓴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반 편집을 해놨다.

1월 1일 아침에 우선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에 참배했고 곧이어 근위사단인 서울류경수제105전차사단을 방문했다. 소위 첫 '현지 지도'를 군부대 방문으로 한 것은 아버지처럼 선군정치 노선을 이어가겠다는 대내외 과시용으로 기획한 듯하다.

또 이 날 저녁에는 은하수관현악단이 개최한 2012년 신년음악회를 관람했고, 이 음악회를 같이 관람한 군부 인사들 중 김정일 사후 숙청되었다라 여기던 오극렬의 이름이 나와 숙청설이 거짓임을 확인했다. 이 음악회 관람도 김정일 생전의 현지 지도 관습을 따른 것이라 김정은의 향후 정치 행보도 김정일 집권기와 비슷할 듯하다.

2월 경부터 이제 어머니인 고영희의 우상화 작업을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일본 산케이 신문 측에서 '김일성은 생전에 천한 무용수 출신의 자식 김정은을 손자로 인정한 적 없다'라는 '내부 정보통의 발언'이란 것을 근거로 이 작업에 태클을 걸었다. 국내 신문사들도 산케이 신문의 발언을 근거로 신나게 보도기사를 써내려가는 모양이지만 정작 그 '출처'인 산케이 신문기사는 어느 기사에서도 없다.(...)그래봤자 틀렸다해도 믿을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것은 함정(산케이 기사원본 구글 번역기 버전) 아직 확실히 확인한 사안은 아니다.(이번에도 헛다리라면 '일본 언론의 착각과 실수' 목차로 옮겨갈 것이다.)

'우리는 핵이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음식은 남조선에 헌상시켜라'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산케이 신문이 북한 고위 간부에게 들었다고 한다

평안도를 제외한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마당에 수조 원을 미사일 사업에 투자하여 북한 주민의 기아와 빈곤이 더더욱 악화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주변국의 만류에도 무작정 강행하려는 모습이다.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물려준 숙청의 전통을 계속 잇고, 심지어 업그레이드한 듯하다. 김정일이 죽은 뒤 100일의 추모 기간 동안에 술을 마시다 걸린 인민무력부 부부장이 김정은의 지시로 박격포 부대의 폭격을 맞아 형체도 안 남고 끔살했다는 말이 나돈다. 그야말로 공포로만 세상을 지배하는 철권 독재자의 전형적인 모습. 그런데 박격포가 아니라 장성택처럼 중기관총으로 박살을 냈을 가능성이 크다. 박격포로 처형하면 군중에게 구경을 시키기 힘들어서 공개처형의 가장 큰 이유인 전시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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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끝내 이런 짤이 나왔다.(…) 나 빡쳤어 날래 박격포 가져오라우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4월 13일에는 국제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은하 로켓을 쏘아올렸으나 공중폭발하면서 실패해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이 간나들 모조리 아오지라우 사실 불꽃놀이였다 카더라


4월 15일에는 김일성의 생일 100주년을 맞이해 김일성 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열병식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연설해 화제가 되었다. 김정일과 달리 매우 긴 (20여분 가량의) 연설을 하였는데 이는 김일성과 비슷한 이미지를 심으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목소리와 말투까지 김일성을 비슷하게 흉내낸다는 주장이 있다. 관련자료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김일성의 옛날 연설을 모델 삼아 그대로 훈련한 듯하지만 발성도 불안정하고 음색은 중저음이긴 했으나 단조로운 톤으로 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최고 지도자다운 진중함이나 무게감이 없었으며 연설 중 군중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몸을 뒤뚱거리는 모습은 정서 불안까진 아니더라도 현재 자신의 자리와 지위에 어색해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봐도 목소리나 발음을 빼면 좋은 연설 자세는 아니다. 카메라를 의식하고 쳐다보기도 한다. 한 월간지에서 그의 음성분석 기사를 다루었다.

이후에도 김정일이 그랬던 것처럼 대규모 공사 현장의 현지 지도나 군사 훈련 참관, 군부대 시찰, 음악회 관람 등의 대외 활동을 하면서 비교적 온화한 이미지로 자기 관리를 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5월 9일에 만경대유희장(놀이공원)을 현지 지도했을 때는 노후화된 놀이기구들과 엉성한 화단 관리, 심지어 길가에 핀 잡초까지 모든 것을 까버리는 디스로 자신도 한 성질 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 뜯어 고치라우!

끝내 심복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맨 오른쪽 군복 입은 인물)에게 유희장 운영을 중단하고 건설 부대를 동원해 전면 개축하라고 지시했다.


리본 돼지, 로리콘 돼지남 하하, 안 돼. 모두 총살이야..

김정은 사진에서 특히 울며불며 매달리는 건 김정은이나 김정일 때 1번이라도 그들을 직접 대면하거나 만져본(?) 인민은 바로 평양으로 거주지를 옮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탈북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대한민국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사례가 실제적으로 확인된 바는 한 번도 없다. 또한, 호위총국에서 근무하며 김정일을 근접 경호했던 한 탈북자는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며,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는 3차까지 예비 인원을 두고 철저히 준비한다"며 "결코 즉흥적으로 누구를 만나거나 하는 일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 지방 거주자가 평양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것은, 김일성상 수상자이거나 공훈 혹은 인민 칭호를 받은 경우에 한정한다.

2012년 6월에는 북한 각지에서 뽑힌 수만 명의 조선소년단 대표단을 평양으로 데려와 소년단 창단 66주년 기념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 행사를 통해 집권 이래 2번째 공개 연설도 했고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개최한 은하수관현악단의 기념 연주회도 관람했다. 이러한 행보는 1990년대에 태어난 청소년 세대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의 발로 같다. 참고로 여기 참여한 상당수 아해들의 부모들이 소년단 창립기념회에 참석하려는 과정에서 하류층으로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라 드러나자 말 그대로 하류층(...)으로 전락했다는, 참으로 훈훈한 후문이 있다.차라리 가만히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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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페도돼지 패도 돼 뒤에 깨알같은 장성택

이 행사와 발맞춰 한국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국제아동절'을 기념해 6월 1일에 수도 평양 중심부의 만수대지구에 신설한 경상유치원을 시찰하고 놀이기구도 기증했다. 민심을 얻기 위한 연출이겠지만 어색함이 너무 심하다. 그런데 이 시기는 황해도 지역의 경우 식량부족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고(함경도 쪽은 소금이 부족하다고 한다.) 해외에 나가있는 관료들을 들볶아도 벌써 2만명이 굶어죽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락시설 시찰이나 하는 행보가 불합리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백두혈통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땅은 평양과 평안도라서 그렇다. 조부때부터 지지기반이 되어온 평양,평안도 지역 주민들의 민심은 극도로 살피고 지원을 쏟지만 다른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되든 그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조부 김일성때부터 계속 그래왔기 때문에 과거 통치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김정은도 똑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평양에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충성계층만 모아놓은 만큼 다른 지역 주민들은 믿을 수 없는 동요계층이자 천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문도 발표했다던데 그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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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들어서는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및 모란봉악단 시범 공연 등 여러 공식 행사에 웬 미모의 여성과 동반하는 모습을 자주 북한 언론이 보도했다. 이 여성의 신분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으며 서방 정보 기관에서는 처음에는 여동생 김여정으로 추정했으나 점차 김여정이 아니라 김정은의 부인이라는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

그리고 2012년 7월 16일에는 군부 최측근이던 리영호를 총참모장, 정치국 상무위원,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그가 맡던 모든 공직에서 해임시켰고 후임으로 그 직후 차수로 진급현영철임명했다.

명목상으로는 위에 언급한 우동측처럼 지병 문제 때문이라지만 숙청일 가능성도 높고, 숙청이라면 선군정치 노선을 완화하려는 시도인지 아니면 내부 권력 투쟁에서 패배인지도 미지수다. 일단 현재까지의 관측은 야전 군인의 대표인 리영호가 당 간부 세력의 대표이자 장성택과 친한 최룡해에게 밀려났다는 관측이 우세하며 이것은 그 사이의 선군정치 대신 노동당이 군 위에 서는 김일성 시대의 정치 체제로 회귀한다는 표시라고 한다.

7월 18일 12시에는 북한 언론에서 일제히 '중대 발표'를 거쳐 김정은에게 공화국 원수 계급을 부여했다고 보도했다. 공화국 원수는 김일성 및 김정일이 생전에 갖고 있던 군 계급으로 야전 군인 출신에게 부여되는 인민군 원수보다 격이 높으며, 리영호 숙청과 맞물려 김정은 본인이 조선인민군을 장악한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뜻으로 보인다.


7월 25일에는 위에 언급된 김정은 곁의 젊은 여성이 김정은의 부인임을 북한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보도하였다. 이름은 리설주이며 은하수관현악단 가수 출신으로 1989년생이라고.

또 6월에 대규모로 개최한 소년단 행사에 이어 한국전쟁 휴전일인 7월 27일을 즈음해서 전국의 전쟁 참전 노병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2번째 대규모 행사를 열었다. 이 날은 북한에서 정신승리 전승절이라는 국경일로 지정해서 예전에도 기념 공연이나 정치 집회가 꾸준히 열었지만, 평양 바깥에서까지 노병들을 초청해 행사를 연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노년층을 상대로 어필하기 위한 전략인 듯하다.

이어 8월 말에는 청년절(8월 28일)을 기념해 6월의 소년단 행사, 7월의 전승절 행사와 마찬가지로 전국에서 가려뽑은 청년 단체 회원들을 평양에 모아 또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다. 이것도 역시 청년 세대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가뭄과 뒤이은 홍수, 태풍 등으로 입은 피해가 막대한 상황에서 상당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는 대행사를 연속으로 세 달이나 치름은 분명히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행보다. 이 때문에 이런 행사의 연속이 김정은의 기대와 달리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도 있다.

참고로 6월 말에서 7월 말까지 내린 폭우와 7호 태풍 카눈으로 북한이 입은 피해는 조선중앙통신의 공식 보도에 따르면 사망 169명, 부상 144명, 실종 400여명, 주택 8600여 채 완전 및 부분 침수, 농경지 피해 약 647km², 이재민 212200명이다. 그리고 15호 태풍 볼라벤으로 온 피해도 사망 48명, 부상 혹은 실종 50여명, 주택 6700여 채 완전 및 부분 침수, 농경지 피해 495km², 이재민 21180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나마 이 공식 통계도 상당 부분 축소 발표했다라 추정하는데도 남한의 수십 배에 달하는 피해라서 식량난과 주택난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7월 들어서 부인을 동반하고 여기저기 현지 시찰을 다니면서 주민들의 충성심을 독려한다. 7월 말에는 위에서 언급한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를 초청하여 탈북죄를 용서하고 북한에 다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하는 등 유화적인 모습도 보이는 듯했으나...

8월에 한미연합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시작하자 이에 맹비난을 쏟아붓고 연평도 포격 사태의 도발 부대를 비롯 전방 군부대를 친히 순시하며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강경한 발언을 연일 발표하는 중이다. 하지만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사망 때는 조전을 보내고 분향소까지 마련하는 등 역대 김씨 일가 특유의 이중플레이 구사는 여전하다.

2012년 하반기에 들어선 뒤로는 정치/군사 분야보다는 주로 사회복지, 교육, 스포츠, 여성 분야에서 힘을 쓰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복지 시설(강성원이나 류경원, 평양제1목욕탕, 해맞이식당 등)의 공사 기간 중 현지 지도를 나왔다는 기사가 북한 언론에 꽤 자주 뜨면서 '인민을 위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 관리를 시도하며, 9월에는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해 기존의 11년제 의무교육 체제를 12년으로 1년 늘이고 모두 무상화한다는 정령을 발표했다. 류경원을 방문했던 11월 3일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어 11월 초순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결성했고, 그 위원장에 고모부 장성택을 앉혔다. 북한 스포츠 위상의 대내외 홍보는 이미 런던 올림픽 때부터 시작했지만, 이렇게 국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양각도체육촌 같이 체육단들의 최신 전용 훈련장과 체육인들이 먹는 식품만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식료품 공장을 세워 운영함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사례는 지난 정권에서도 꽤 드물어서 주목받는다.

여성 분야에서는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면서 공식적으로 밀어주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이미 북한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지만, 따로 어머니날을 만들면서 기혼 여성의 위상을 높여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공장 지배인과 교사, 유치원장 같은 직책의 여성들 뿐 아니라 다산 경험이 있는 여성들에게까지 로력영웅 칭호를 수여한다는 정령을 발표했고, 이전의 조선소년단 창립 기념식-전승절 기념식-청년절 기념식과 마찬가지로 북한 각지에서 엄선한 여성동맹원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어머니날 제정 기념 행사를 대규모로 치렀다.

물론 군사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는데, 조선인민군의 3대 최고 직책인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을 모두 대장 계급으로 맞춘 것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우선 10월에 총참모장 현영철이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되었음이 밝혀졌고, 이어 11월 말에 김정각 차수가 맡던 인민무력부장 직책이 격식 대장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김격식은 인민무력부장 보임 후에도 차수 진급을 못하고, 이어 12월에는 총정치국장 최룡해까지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김정은이 지나치게 남발한 차수 계급 특진을 줄이면서 장성 계급의 인플레이션을 억제해 보려는 의도라고 추측한다.

12월에 접어들며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 1주기를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4월에 발사했다가 실패한 은하 로켓을 이 시기에 무리하게 재발사하려는 모습도 관측되었다. 결국 12월 12일에 한국과 서방 언론들의 발사 실패 예측과 올해 안에 발사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관측을 모두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로 만드는 재발사를 강행했고, 로켓에 탑재한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북한과 적국이거나 사이가 안좋은 나라들(한국과 미국, 일본 등)은 충공깽.

그리고 북한 언론들은 당연히 이를 '김정일의 위대한 유산이자 김정은의 고귀한 업적'이라고 미친 듯이 선전하고, 12월 말에는 위성 발사 공로를 치하하는 뜻에서 무려 101명의 위성 개발과 발사 관계자들에게 북한 최고의 영예인 공화국영웅 칭호를 뿌려댔다. 이들은 연말 동안 평양에 머물면서 김정은이 국가 연회장인 목란관에서 2차례나 마련한 공식 연회를 비롯해 이런저런 정치 집회와 축하 공연, 평양 시내 주요 시설 답사 등에 참석하는 등 매우 후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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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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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짜장면 곱배기에 빼갈 한 병 가져오라우! 동무. 탕수육이랑 군만두도 잊지 말라우!
여보세요? 아빠 나야... 외로울까봐 고모부 보냈어

위성 발사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진을 외신에 공개했고, 합성 충동을 크게 자극받은 양덕들이 상황 화면 대신 강남스타일이나 야동 등을 넣는 식으로(...) 반짝 필수요소로도 썼다.

1년 동안 로켓을 2번이나 쏴 올린 업적(?)병크을 인정해서인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 1위 온라인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온라인 투표결과를 실제 선정에는 안 반영하기에 아쉽게도(?) 2012년 올해의 인물에는 18위를 차지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뽑혔다.

대부분의 북한의 고위층 인사들처럼 서울 말투를 쓴다.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공개연설을 했는데, 평안도식 사투리나 북한식의 과장된 억양 없는 평이한 서울말투를 보여주었다. 김정일이 매우 공개연설을 꺼린 것과는 대조적. 북한의 문화어는 기방언으로 만들었으니 서울말과 비슷하고, 북한의 고등 교육기관에서는 대부분 문화어를 쓰니 그다지 이상한 것도 아니다.

4.4. 2013년

1월 1일이 되자마자 김일성김정일처럼 신년사를 발표했는데, 대중 연설을 꺼려해서 주로 서면으로 발표했던 김정일과 달리 할아버지인 김일성처럼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자신의 신년사 낭독 장면을 녹화방송했다.

신년사의 내용은 예전의 그것과 같이 국수주의 자뻑 일색이었지만, 농업공업을 집중 육성하고 과학 기술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김정일 집권 말기의 노선을 이어가리라는 메시지도 있었다. 다만 중간중간 더빙된 박수소리가 나올 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건물로 보이는 사진만 휑하게 잡혀 영 어색하고, 단조로운 말투와 뒤뚱대는 몸짓은 여전해서 별로 권위가 없어 보인다는 지적을 받는다.(…)

새해 첫 일정은 작년처럼 금수산태양궁전에 안치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에 하는 참배로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신년음악회 참석을 이었다. 다만 작년에는 은하수관현악단 신년음악회에 맨 먼저 참석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창단을 지시한 모란봉악단 공연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신년사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연초부터 해외에 개방의 움직임을 조금씩 보인다. 구글 회장 에릭 슈밋이 전 뉴멕시코 주 주지사 리처드슨과 방북해 북한의 인터넷 현황과 이용 실태 등을 조사했다. 또 독일 유력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정부에서 독일 경제학자들과 법학자들에게 비밀리에 개방의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 기사에 김정은이 직접 지시를 했다는 내용은 없지만, 적어도 최고 권력자의 승인이나 묵인이 있어야 가능한 행보여서 북한이 '체제는 굳건히 유지하되 경제는 개방하는' 중국식 개방 정책의 도입에 앞서 간보기를 하는 듯하다.

체육 부문 육성 정책도 여전히 추진하는지, 11일에 각 체육단들에 체육 기자재를 선물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19일에는 1월 1일 이래 처음으로 대성산종합병원의 건설 현장 현지 지도를 나왔고, 26일에는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군협의회를 지도했다는 기사가 나와 주변국과 관련한 외교안보 부문에서도 뭔가를 주문한 듯하다.

당 지도 면에서도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파고들기 위해서인지, 28~29일에 평양에서 한 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 개막식과 폐막식에 모두 참석하고 개회사와 폐회식 연설, 폐회사를 직접 낭독하는 등 자신이 직접 이 대회를 주도한다라 어필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세포는 당원 조직 중 가장 말단 당원을 일컫는 문화어로, 최하급 당원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지도력을 과시하는 한편 이들이 자신에의 충성심을 유지하도록 독려하는 의도인 듯하다. 그리고 대회에 초대한 세포비서들에게 일괄적으로 평양 관광을 시켜주고 가려 뽑은 7명에게는 로력영웅 칭호를 주는 등 포상 작업도 같이 했다.

2월 초에는 제3차 핵실험을 선언하고 준비 중이라 발표했으며, 2012년 12월 대장으로 강등했던 최룡해를 다시 차수로 복귀시키는 등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2013년 2월 12일 오전 11시 57분 50초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모험을 감행했다. 이 핵실험을 신호로 다시 군부를 밀어주려는 모습인데, 우선 15일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령장급(장성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38명에게 소장, 10명에게 중장 진급 명령을 내렸다.

김정일의 생일이었던 2월 16일에는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열린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고, 20일부터 22일까지는 사흘 연속으로 군부대 시찰과 훈련 참관, 군부의 정치위원 강습 회의로 보이는 전군당강습지도일군회의 참가자들과 기념 촬영 개최 등 군 관련 일정을 소화했다. 또 은하 로켓 발사 때와 마찬가지로 핵실험에 참가한 관계자들을 평양으로 초청해 시내 관광과 정치 집회, 인민극장에서 개최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의 축하 음악회 등의 행사에 동원한다.

21일에는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핵실험 관계자들에게 공화국영웅(100명), 김정일훈장(17명), 김정일상(19명), 김정일청년영예상(50명)을 비롯한 여러 칭호와 훈장, 메달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번 정령에는 직접적으로 수훈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대신 수여자 숫자만 있어서, 실험 참가자들의 인적 사항에 기밀 유지를 꾀한 듯하다.

하지만 은하 로켓 발사와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연이어 두고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대립각을 잔뜩 세우는 시점에서 매우 특이한 이벤트도 있었는데, 2월 26일에 전 NBA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미국의 묘기 농구팀인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를 이끌고 방북했다. 이 팀은 이틀 뒤인 28일에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북한 선수들과 친선 경기를 가졌는데, 이 경기는 김정은이 직접 관람했기 때문에 3월 4일 밤에 조선중앙텔레비전을 거쳐 녹화방송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 시절 로드먼의 팬이었다고 하며, 로드먼과 나란히 귀빈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면서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할애비나 애비보다 영어를 어느 만큼 하는 모양. 로드먼은 다음 날인 3월 1일에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와 여타 관계자들은 며칠 더 평양에 머물며 다큐멘터리 촬영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농구 강습, 관광 등을 진행한다. 여기까지는 대외적 뉴스고, 실제로 로드먼의 북한 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접대라 카더라.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이 영국 외교관의 발언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오바마가 직접 전화를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이것이 긴장완화의 전제조건중 하나라 언급했다고[26].


스마트폰을 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대만 HTC사의 제품인 듯하다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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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를 주재하는 사진인데, 배경에 미본토타격계획, 북한군 전력 현황 등이 드러나 고의인지 실수인지 논란이 있었다. 모종의 메시지를 담은, 다분히 연출한 사진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제 컴퓨터가 보인다


미국도 때리겠다는데 대남협박이 빠질 수 없다. 오른쪽 벽면과 컴퓨터 모니터에 서울(!) 지도가 보인다. 잠깐,옆에 있는건 혹시...



일본도 피하지 못했다. '일본침략군배치'라고 쓰여 있다.

2013년 9월 다시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하여 만났고, 로드먼에게 자신의 딸 이름이 김주애라 밝혔다 한다.#

2013년 12월에는 고모부이자 후견인으로 알려졌던 장성택을 실각시키고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을 공개 총살형에 처하더니 12월 12일에는 장성택마저 반역죄를 씌워 총살하는 등, 체제 구축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2가지 해석이 있는데, 하나는 이렇게 실세였던 장성택을 바로 처형할 만큼 김정은이 당정군을 장악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성택을 이렇게 급히 서둘러 처형할 만큼 뭔가 권력투쟁이 심각했다는 뜻이다. 북한 전문가들의 다수는 대체로 전자의 설을 들지만, 후자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결과적으로 전자이든 후자이든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과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넘사벽임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장성택을 숙청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설들과는 별도로 장성택이 중국과 물밑 접촉을 시도하다가 김정은과 그 측근들에게 반역죄로 거슬렸을 것이라는 대북전문 매체의 보도도 있다. 당 중심 체제에서 자신을 내각 총리로, 김정은을 당 총비서로 개편한 내각 중심 체제로 바꾸겠다고 중국정부에 의향을 타전했다가 발각 당했다는 것.

처형 직후 곧바로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시찰했다. 비록 고모부라도 반역자는 한순간도 애도할 필요가 없고 할 일이나 하겠다는 냉혹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깃든 시찰이다.

거기에 장성택 처형 이틀 만에 대대적인 포상을 실시했다.# 이날 김정은은 '김정일훈장', '노력영웅', '김정일상' 등 북한에서 줄 만한 대부분의 표창을 마구 뿌렸다. 군부 내에 잔존한 장성택 지지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포상이다.

한편 장성택의 누나인 장계순을 포함한 일가인 장용철 전 말레이시아 대사와 전용진 전 쿠바 대사와 그들의 아들인 20대 중반의 태령, 태웅을 포함한 장성택 일가의 처형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4.5.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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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쉬마려
어? 세뱃돈 5만원이 부족한데? 아 맞다, 고모부....
저 녀석, 왜 나오자마자 필살기를 쓰는 거지?
오빤 푱양스타일 어?해당 사진은 저팔계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걸 보고 잘 모르는 사람이 저팔계가 불쌍하다고 옹호 하는데, 서유기 고증에 따르면 저팔계 역시 강간범인데다가 식인까지 한 천하의 개쌍놈이라 김정은과 동급이다. 유유상종

2014년 들어서도 군사훈련을 연일 지속하는 한편, 장성택 처형 후 시작된 권력구조 개편을 지속하고 있다. 2014년 4월에는 군의 전투준비태세 미흡의 책임을 물어 북한군 최선임자이던 최룡해를 총정치국장 자리에서 해임하여 다시 조선노동당으로 돌려 보내고, 대신 황병서를 발탁하여 총정치국장에 임명했다.



뜨는게 신기하다
기름이 남아있는것도 신기하다
2014년 5월에는 대대적인 공군 전투기술 훈련을 개최했는데, 이때 전용 항공기리설주와 함께 탄 모습을 북한 언론에 공개하여, 비행기를 절대 타지 않았던 자기 아비와는 다르다는 점을 어필하기도 했다.[27]

근데 문제는 출발은 평양순안국제공항[28]이지만, 목적지가 다름아닌 남포 근방 온천군이라는 점이다. 직선거리로 약 50km.[29][30] 아무리 자기과시한다 해도 그렇지 50Km밖에 안되는 거리를 비행기로 가냐;; 고속도로따위는 장식입니다. 미제 놈들은 그걸 몰라요. 어 기름이 다 어디로 이만갑에 따르면 비행기를 타고 외국 방문시 다른 나라 국가원수 들이 사열받는게 부럽기는 한데 누구도 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돼지새끼를 초청해 줄 외국 정상이 없다보니 '나도 사열 받아보고 싶다는' 이유로 갔었다고 한다.

2014년 7월 김일성20주기 추모대회 때 다리를 절뚝거리며 등장했다. 과도한 비만통풍, 혈전 때문이라고 하며 이후 계속 영상에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다 9월 내내 자취를 감췄기 때문에 건강 이상설이 파다했다. 그리고 끝내 9월 말에는 북한에서 직접 '몸이 불편하신'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서 건강 문제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행ㅋ벅ㅋ
원인은 에멘탈 치즈를 하도 먹어대서(...).[31]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자라온 탓에 그 맛을 잊지 못한 김정은이 북한에서 만든 에멘탈 치즈를 맛보고는 "원래 맛이 나지 않는다"라며 대단히 화를 냈고 그 때문에 북한 관계자가 스위스에 에멘탈 치즈 제조법을 전수받으러 갔다고 한다. 신분을 위장해서 스위스 치즈제조를 배우는 학교에 등록한 북한인 2명은 걸려서 추방되었다고 전해진다. 인민은 굶어죽는데

UN이 반인권혐의로 국제형사법정 회부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 하지만 상임위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회부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다가 국제적으로 고립, 지탄 받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아서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북한은 김정은 회부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기사
2014년 10월 10일 기준 김정은의 사망설이 돌고 있다. 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은 금수산 궁전 참배일로, 북한에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매년 참석해오던 행사를 갑자기 참석하지 않고, 인천 아시안 게임때 북한 실세 3인방이 기습 방한을 했던것을 근거로 김정은이 쿠데타의 희생양 혹은 사망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으나 과거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선례를 보면 어디 장기간 짱박혔다가 다시 공식석상에 나타나기를 반복했던 때가 있었고, 그리고 그 때마다 한국에서는 사망설이니 실각설이니 신나게 떠들었다.(...). 13일 최윤희 합참의장이 김정은이 일단 "우리가 아는 것은 통치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사망설은 입지가 좁아졌다.


로동신문은 지팡이를 짚고 위성과학자주택지구[32]를 둘러보는 김정은의 사진을 공개하며 40일 만의 두문분출을 깬 김정은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올해 만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지팡이를 짚고 돌아다녀 건강이상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는 실정. 한때 BBC에서도 계절과 맞지 않은 사진의 배경(8월로 추정) 때문에 조작설을 제기했으나 북한 주재 영국대사가 김정은은 멀쩡하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90라인들이야 저러는 게 생소하고 죽은 게 아닌가 하며 두근거렸겠지만 7,80라인과 그 이전 세대들은 그 인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심심할 때마다 짱박히던 걸 보아와서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김일성만 해도 생전에 죽었다는 사망설이 짱박힐 때마다 나와서 유력한 사망설이 대여섯번은 넘게 나왔고 그 때마다 이젠 통일 되네 군대 안 가네로 기쁨과 기대가 엇갈렸다. 특히 1986년에는 북한에서 아예 휴전선에 배치된 대남 확성기를 통해 김일성이 불의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떠들어대는 통에 진짜로 김일성이 죽은 줄 알고 온 국민이 기뻐했다. 공중파는 물론 조선일보 같은 대형 신문사까지 호외를 뿌려댔을 정도.그 중에는 통일이 임박했다며 기뻐하다가 며칠 뒤 김일성이 살아서 몽골 방문을 한게 확인되자 극심하게 실의에 빠진 나머지 쇠약해져서 세상을 떠난 실향민도 있었다.
지팡이 없이 공개활동에 나섰다. #

4.6. 2015년

2015년 설 연휴인 2월 18일, 최전방 부대를 독려하면서 10월 이내로 전쟁 준비를 끝마쳐야 한다는 발언을 했으며, 설 연휴가 끝나는 20일과 21일에도 포격 훈련을 감독했다.최근에 백악관을 악의 소굴이라고 말했으며 미사일까지 발사했다.[33]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2015년 3월 12일, 키 리졸브 훈련이 끝나는 날 북한이 동해 상으로 미사일 7발을 발사했다 하며, 김정은이 참관했다고 한다.

2015년 4월 2일자로 김정은이 기쁨조를 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현대판 술탄이 따로없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11255

2015년 8월에 자유아시아 방송은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하여 "중국×들에게 역사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을 똑바로 알게 해주겠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이 2013년 이후 냉각된 북중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자유아시아방송

8월 15일 부터, 남한보다 30분 늦은 '평양 표준시'를 발표하고 실행하도록 했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과 북한이 쓰던 표준시가 도쿄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인데, 30분 단위로 시간대를 변경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고 개성공단에서 북한 표준시를 쓰므로 남북교류에도 장애가 있기 때문에 문제시 되고 있다.자유아시아방송

4.7. 2016년


4.8. 2017년

2017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기념으로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하였다. 자신의 권좌를 위협할 가장 큰 정적이었기에 이전부터 신변의 위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왔으나, 공항에서 독극물로 암살한다는 대담한 수법에 전 세계 외신이 들끓었다.

5. 통치능력은 있는가?

5.1. 부정론

집권 이후 줄곧 김일성과 김정일이 했던 국내 통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평안도 지역에만 인프라를 올인하고 민심을 신경쓰고 공포정치와 널뛰기하는 인사조치까지 똑같다. 이 정도만으로는 개인의 능력을 알 수 없지만 일단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김정일 시절보다 험악해졌는데 최소한 김일성-김정일 라인까지는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서까지 통제를 무시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3차 핵실험은 중국에게도 상당한 위협감을 주며 그 사이에도 김정은이 조용조용 지내려는(…) 중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가니,[34] 일반 중국 국민부터 공산당 수뇌부까지 북한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남한과의 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극도의 긴장상태를 만들어냈다. 남한이야 정권교체와 함께 대북정책이 강경하게 변했다고 해도, 과거 대북지원을 받던 시절에서 10년도 안 지났는데 마치 그런 시절이 없었던 것처럼 호전적인 태도로 돌변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민간인의 생명까지 뺏는 무력도발까지 감행했다. 그나마 북한을 현상유지시키는 통치력을 그나마 능력이라고 과장해서 평가해도 외교능력에 있어서는 도저히 능력이 있다고 볼 수가 없다. 2014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중국과 삐걱대던 외교관계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북-중 경제협력사업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급기야 중국이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를 통한 물류 통로를 개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러시아의 항구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해봤자 북한이 지금처럼 호전적인 태도를 유지하면 전쟁이 일어나 투자회수를 못할 위험이 높은 데다가 도저히 통제도 안되고 예측도 안되는 북한보다는 차라리 러시아가 낫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통치 스타일은 비슷하나, 정치능력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훨씬 떨어지는 편이다. 젊은 나이의 통치자로서 대한민국에서도 은근 기대하는 바가 컸으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김일성은 오랫동안 빨치산 항일무장투쟁 활동을 하며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알았고 자신이 만든 나라로서 아들이나 손자보다 훨씬 의욕적이었고 늘 나라와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또 김정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에 나서기 시작했고 김일성이 죽은 1994년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며 나름의 내공을 쌓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0년에 갑툭튀해서 정치감은 전혀 없는 상태에서 2011년 겨울, 최고지도자가 된다. 그래서 무식하게 고모까지 죽이며 공포 정치로 자신의 정치력을 커버하는 것이다.

5.2. 긍정론

과거의 시스템은 답습해도 적어도 정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은 있는 듯하다는 평가도 있다. 먼저 1년 만에 자신의 지도력을 해칠 만한 노련한 군부실세인 리영호를 숙청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별 혼란 없이 당과 장악하는 면을 봐서는 아예 권력장악에 쑥맥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장성택을 처형한 뒤, 대규모 체제이탈 망명사태가 벌어지고, 숙청이 벌어지리라는 예상이나 보도가 이어졌으나 2014년 4월까진, 체제가 흔들리는 징후가 없다. 도리어 장성택의 심복이라며 숙청설이 나돌았던 여러 인물들(예를 들어 강석주)을 유임시켰다라 확인했고, 4월의 당직-내각개편에서도 장성택 잔당 숙청및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상했으나 급격한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내각이 돌아감을 확인했다.

민심의 불만도 교묘히 컨트롤하는 노회한 모습도 있는데, 2013년에는 전년(2012년에) 대규모 수해로 식량난이 극히 악화해 특히 봄철의 보릿고개에 인민의 불만이 폭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다. 그러나 2013년 김정은은 고난의 행군으로 수십만을 굶겨 죽였던 지 애비와는 달리 신성불가침이었던 군량미를 대규모로 풀어서 인민의 불만을 교묘히 넘겼다. 뿐만 아니라 2013년 초의 박봉주의 시장 개혁조치가 일단 성공적이라 평가받고[35] 식량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중국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긴 뒤에 받아온 외화로 비료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등, 김정일처럼 산을 깎는 다락밭 개간 같은 뻘짓없이 합리적으로 식량증산에도 힘쓰는 등의 모습이다. 일단 미국의 평가로도 식량난 10년후에는 거의 극복할 것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김정은이 먹고사는 문제를 지애비보다는 신경쓰는 것 같다. #

북한이 사실상 신정 일치 국가인 만큼 김씨 일가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거의 없고, 또 회담 등을 빼면 북한 밖을 거의 나가본 적이 없는 김정일과 달리[36] 발달한 서구물도 좀 먹어봤으니보다는 외국에서 오래 생활 해봤으니 세상 물정에도 그리 어둡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또한 김정일이 왕조국가의 서열을 무시하고 첫째 둘째 아들을 제치고 셋째아들을 골랐음을 보면, 김정은에게 뭔가 싹수가 보였기 때문에 물려줬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 싹수가 지금은 최악으로 군림하였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3년 안에 쫓겨나리라고 했지만, 죽을 때까지 권좌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처음 10년 정도만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 자기 할애비나 애비처럼 종신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6. 김정은의 위대한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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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배고픈참에 마침 돼지가 와서 기뻐하는 북한 주민들

그래도 청년 시절에 문화예술계 쪽에서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10년 넘게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왔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북한에서 아무 경력도 없다가 갑자기 띄워주려다 보니 넣을 게 없어서 별 해괴한 선전을 해댄다고 한다. 3살 때부터 백발백중의 사격실력을 갖췄다든가, 140km 이상의 거리를 승용차로 운전했다든가, 7살 이전에 전차 등의 중장비를 조종했다는 양판소, 무협지 수준의 소설이 북한 측의 선전 내용이라고.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선전보다는 그나마 현실적이다.

그 밖에 김정일이 발에 땀나게 중국, 러시아 등을 오가며 껀수를 벌어오면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의 공이 컸다는 식으로 밥을 떠먹여주었다. 정말 눈물 나는 자식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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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이게 뭐지? 먹는 건가? 그래 다 처먹어라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바로 2009년에 북한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는 컴퓨터 수치제어 공작 기계의 핵심 기술인 춫,C&C,본격적색경보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이다. 북한 언론에서는 이것을 김정은의 치적이라 주장하고, 과학 기술에 능한 지도자라며 CNC 홍보 노래까지 만들어 북한 주민들에게 전파한다.

하지만 CNC 기술은 이미 1940년대말~1950년대에 미국이 개발해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공작 기계의 기본 기능으로 여길 만큼 매우 보편화 되었다. 물론 미국이 1940년대 개발했다고 이 기계가 만들기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일본은 1967년, 한국은 1987년이 되어서야 자체적인 CNC 개발에 성공했다. 게다가 이것을 못 만드는 나라도 많은데 굳이 안 만드는 이유는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CNC 공작기계를 수입하는 것이 개발하는 것 보다 싸게 먹혀서라고 한다. 어쨌든 이 기술을 2010년에 와서야 '과학 기술의 혁명'이라고 선전하여, 북한이 시대에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드러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CNC 절삭가공기계 개발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생산된 제품의 품질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CNC 양산 가공품 보다 더 열악할 것이라 예상된다. 혁명? 그런거 없다.

탈북자를 사살하라는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때문인지 2010년, 2011년에는 남한으로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많이 줄었다. 탈출이 힘드니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남한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는 줄었지만 중국으로 탈북하는 숫자는 여전한 듯. 하지만 중국에 탈북자 체포를 강력하게 요청했고 공안이 빡세게 잡아 들이고 있어서 섣불리 남한으로 가려는 시도 자체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가 중국에 계속 정체되고 있는 상황. 이런 중국 공안의 행태가 계속되자 미 의회기구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성명을 내기도 했다.

사실 김정은이 탈북자에 대한 강경한 수를 둔 것은 2000년대 후반 들어 탈북하는 인물들의 양상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탈북하는 인물들은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 북한을 나와서 돈을 벌거나 혹은 대한민국으로 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탈북에도 일정한 비용이 들게 되고, 이러한 비용이 계속 상승하면서 탈북할 수 있는 계층 자체가 점점 한정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북한의 체제에 염증을 느끼는 내부 분위기가 점차 팽배해지면서 탈북자들의 양상이 크게 변화한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에 탈북한 인물들 상당수는 북한 내에서 중류 계층 이상에 속하는 인물들고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없는 자들이다. 이들이 탈북한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주로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ㆍ사회적 이유로 탈북을 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미래가 없는 사회에서는 잘 먹고 잘 살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

이처럼 탈북을 하는 계층이 점차 심 성분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북한 체제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기반 자체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체포되거나 송환되는 탈북자들의 처벌이 오히려 경제사회적 계층이 높은 인물들에 대한 처벌의 강도가 높은 것만 봐도 탈북자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탈북자에 대한 잔혹한 처벌 명령은 그가 북한 내의 현 탈북자 상황의 의미와 특성을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7. 개혁개방(?)

매번 시찰을 나올 때마다 "세계적인 추세"를 강조하는 등 여러 모로 선대와는 다른 행보 때문에 중국식으로 체제는 보수적으로, 경제는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노선을 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물론 진짜로 개혁/개방을 펼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릉라인민유원지 시찰때 모습. 당연히 여기도 평양에 있다.
얼굴이 밝아서 묘하게 합성같다


김정은 곁의 안경 쓴 남자는 류훙차이(劉洪才) 중국 대사. 그 곁의 선글라스 낀 아주머니(…)는 김경희.아이고 나 죽네... 남한에서 대통령과 미국 대사가 나란히 놀이 기구를 탔다든지 했다면 말이 좀 많았을 것이다. 지네들이야 조중동맹의 일환이니 뭐니 하겠지만 이 만큼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심하다는 방증. 그 밑의 한 서양인은 놀랍게도 영국 외교관으로 밝혀졌다고. 영국은 평양에 대사관을 둔 서방국가들 중 하나로, 영국과 북한과의 관계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37][38]

나이가 젊은 탓인지 인터넷이나 미디어 노선, 놀이동산 건설 같은 오락 노선에 뜻밖으로 많은 공을 들이는 듯하다. 하지만 이게 대부분 평양과 평안도 지역에만 집중된데다가 보수적이면서 식량난까지 겪고 있는 북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반응이 나쁘다. 그래서 이런 저런 불만이 나온 게 귀에 들어갔는 지 # 김정은 "유원지건설 반대하는 자들 무자비하게 내쳐라" 격노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40여 개 대규모 놀이공원과 체육시설 등을 새로 세웠고, 이 가운데는 원산 마식령 스키장과 "남포 해수 수영장"(...) 등이 있다. 진짜 암군포스 그 자체.(...) 특히 연건축면적 1만8379㎡에 달하는 대형목욕·체육시설인 류경원 건립에 중국 투자를 끌어들이면서 10년간 석탄·광물 수출로 대납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자원도 헐값에 넘겼다라 알려졌다. 또 기사 제목처럼 위락시설 건설 자재를 가정집 건설에 돌리면 좋겠다는 내각 제안에 격노했다고.(...) 평양에는 워터파크도 세운다.#

조금씩 배급되는 식량의 질을 개선하는 듯 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쌀밥 먹는 사람이 50%도 안되는 판국이니, 갈 길이 멀다. # 장성택 숙청 이후 참모들에게 사마충의 명언(?)을 뒤튼 듯한 쌀 대신 고기를 공급해 식량난을 해소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게 웃기려고 한 말인지 아니면 정말 그러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아리송하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저 기사에선 장성택 측근도 술김에 숙청한 것이란 말도 있다.

실제로는 그냥 북한의 실권자들이 내세운 허수아비일 뿐이고, 대표적인 개혁파 장성택의 숙청은 군부와 개혁파의 정면대결에서 군부의 승리를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세상 물정 몰라 사리분별 못하는 애를 하나 앉혀 놓고, 군부 실력자들이 옆에 붙어 정보를 차단해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사실상 실세로 군림한다는 뜻.

그 자신이 북한 교육과정을 거친 엘리트가 아닌 탓인지, 김일성종합대학 등에 적용되던 '직통생 입학'과 '병역 면제' 등의 특권을 폐지하고, 그 뿐만 아니라 2011년 신입생을 아예 받지 않고 대학생들을 아파트 공사에 동원하는 만행을 벌였다. 제 딴에는 공정한 지도자 코스프레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북한을 지탱해오던 특권 핵심 계층의 지지를 깍아먹는 정책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8. 김정은의 평가

아직 집권 기간이 짧아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서는 인상이 옅은 편이나 그 뒤를 이어 전세계 공인 최악의 독재자 아이콘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다만 북한 내에선 세외 부담이 줄어든 데다가 수산물 수출 금지를 하며 장마당의 단속도 덜하는 등 나름대로 민생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서 생각보다 괜찮은 지도자란 평을 듣는다고.(KBS 스페셜 <북한, 어디로 가나>도 참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2009년 화폐 개혁의 영향으로 김정일의 평가가 엄청 나쁘다 보니 그 반대급부로 김정은의 인기(?)가 높아진 감이 있지만... 물론 아직 집권 초반인지라 나중에 어떨지는 모른다. 거기에 은하 로켓 발사도, 12월의 2차 발사에서 성공했으니 자랑질도 늘었다.

성격은 변덕이 엄청나게 심해서 아무도 종잡을 수가 없다. 갑자기 뜬금없이 포상을 마구 뿌리면서 선심을 쓰다가도 어느순간 돌변해서 줄줄이 숙청도 벌이며, 심지어는 이러한 행태를 단 몇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도 한다. 일례로 탈북자들을 김정일 정권 때보다도 더욱 탄압하면서 인민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발언도 했으며, 장성택을 사형에 처하자마자 곧바로 표창을 거의 남발 수준으로 마구 뿌렸다. 게다가 경미한 범법자[39]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뒀다가 은혜를 베푼답시고 뜬금없이 석방시키는 짓을 되풀이한 적도 있었다.정치범 수용소에 넣었다 뺐다... 정말 희망고문이다.[40] 김일성과 김정일이 보여준 행태라서 딱히 이상할 건 없다. 파악 당하지 않으려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로 군림하면서 측근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스타일 그대로다. 이런 모습은 김일성이 스탈린으로부터 배웠던 것이기도 하다.

이게 권력 유지에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도덕적으로 어떤 방법일지는...... 말할 필요가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정말로 최악이다.

8.1. 아동지원(?)

특이하게도 어린이를 상당히 좋아한다.(로리콘?) 위에 나온 것처럼 조선소년단 대표단을 열면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부유층이나 중산층만 아니라 하류계층을 중점으로 모아서 했다. 2013~2014년 초반에는 고아원과 유아 복지 시설을 대폭 늘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운영하도록 별도로 명령을 내리는 등 빈민층 아이도 신경쓰고 있다. 처음에 공산주의를 내세웠던 북한은 공공복지에 투자를 많이 했고 김정일 때도 고아원을 짓는 등 신경을 썼지만 나라가 쫄딱 망해가면서 우선 순위에서 밀렸는데 김정은이 다시 신경을 쓴 것이다. 이에 대해서 탈북자를 지원하던 주성하 기자가 꽃제비 수가 줄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꽃제비 지원을 할 필요성도 없어진다고 할 정도다. 단순한 쇼 이상으로 무언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전에서도 지속적으로 어린이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지도자가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서방, 한국 등 국가에서도 그렇게 자주 어린이와 만나지 않는데 김정은은 어린이와 자주 만난다. 당장 이 문서의 김정은 사진을 보면 의외로 어린이와 함께하는 사진이 많을 것을 볼 수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선군정치와 비밀주의, 엄숙주의를 바탕으로 근엄함을 내세우며 군부대를 주로 시찰한 것과 차이가 있다. 단순히 이미지 메이킹으로 그냥 만나보고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꼭 붙어있고 웃으면서 대하는 등 어린이를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막 나가는 독재자라도 애들을 좋아하고 관련된 지원을 해주는 타입은 드문 편이 아니니 딱히 선량한 면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보육원 어린이에게 한 답변이 화제다.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깨알같은 예능감

9. 건강 문제

fuckinghog.jpg
[JPG 그림 (Unknown)]


저놈의 몸에 지방이 돌아온다
안겨있는 아기는 무슨 죄나 레슬링 기술 베어허그를 시전 하는지도

이 항목의 내용만 보면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당장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지만 김씨 백두혈통 집안만 전문으로 연구해온 전문병원[41]이 2개나 있는데다가 진짜로 좀 이상하다 싶으면 전용기[42] 타고 우방국이나 중립국으로 날아가 그 나라 유명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를 받기 때문에 그리 쉽게 죽을 인간은 아니다.게다가 욕도 많이 먹는다 사실 이 집안 족속이 죽었다는 말은 북한 중앙텔레비전에 리춘히가 검은 상복 입고 나와서 펑펑 울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믿으면 안된다.(...)대남 확성기로도 뻥을 칠 정도 게다가 김정일도 저 나이 때 저 정도 병은 달고 살다가 죽었다. 김정은보다 더 심했는데 김정일은 19살 때부터 비만에 지방간을 달고 있었다.

  • 2013년 김정은의 신체는 키가 172센티미터, 몸무게는 90킬로그램으로 추정되었다.

  • 2014년 2월 6일, 북한전문언론 데일리NK에서는 2014년 2월 공개된 김정은의 사진을 내과전문의 박현종 원장에게 문의하여 '100킬로그램 정도'로 보인다는 분석을 기사화했다.

  • 2014년 5월 8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이 살이 많이 쪘다는 기사를 썼다. 고모부를 숙청한 이후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폭음과 폭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아니 괴로워 할거면 애초에 하질 말던가 100kg으로 추정되던 체중이 120kg으로 불었다고 한다.

  • 2013년 기준으로 BMI 지수는 26.12에서 30.42로 추정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은의 2013년 당시 상태를 과체중으로 보았다. 보통 한국에서는 BMI 지수 25부터 비만으로 보는데, 원래 표준은 BMI 30부터다. BMI 35부터가 고도비만. 즉 2013년 당시의 김정은은 비만으로 볼 소지는 있어도, 고도비만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셈이었다. 하지만 2014년에 나온 위의 기사들을 보면, 2014년 현재 김정은은 국제 기준으로도, 대한민국 기준으로도 고도비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의 키를 170cm라고 두고, 저 위의 기사들이 추정한 체중이 맞다고 하면, 2014년 5월에 측정한 김정은의 bmi 지수는 41.52. 110kg 정도로 추정해도 38.06이다. 다만 bmi 지수는 피측정자의 체지방량, 근육량을 고려하지 않은 지수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운동선수들은 근육량과 골격 때문에 bmi 지수가 높게 나오고, 내장지방이 있다 해도 체중 자체는 정상인 사람들은 bmi 지수가 낮게 나온다. 하지만 저 새끼는 운동선수들처럼 키가 크거나 근육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앉은 자리에서 처먹기만 하고 남에게 시키기만 하며 살았으니 가관이라 하겠다.

  • 게다가 이 자는 현대인의 건강을 좀먹는 삼신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 비만, 흡연, 음주. 비만의 경우는 그냥 비만도 아니고 저 젊은 나이에 벌써 지혈증에 걸려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은은 어린 시절부터 음주와 흡연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 음주, 흡연이라는 건강에 안 좋은 삼신기를 모두 장비해서, 젊은 나이임에도 김정은의 건강이 나쁘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판국이다. 특히 비만이야 고도비만만 아니면 큰 문제는 없다지만 음주와 흡연은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2014년 신년사 음성을 분석한 결과, 4초 간격으로 숨을 허덕거림을 포착해 건강 이상을 의심받는다. 찍히는 사진마다 뒷짐을 지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데 이건 숨이 차서 그런 거라고.기사

  • 일본의 대북인권 단체 '구출하자 북한 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는 "김정은이 2008년 초 당뇨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발표했다.기사
  • 201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20주기 추모식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였으며, 상당히 컨디션이 나쁜 표정으로 등장했다. 포경수술을 한 직후라면 저렇게 다리를 전다 하더라 또한 이마에 흉터를 입은 것도 노동신문 사진에서 관찰되었는데, 특별히 숨기거나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어디 넘어지거나 부딪쳐서 생긴 상처일 가능성이 높다.아마도 술마시고 다만 아직까지는 건강 문제가 대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30대 초반의 한창인 청년이 당장 나자빠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김정은이 불편한 몸 이라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 2014년 10월 현재 한달 가까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의 건강이상설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에도 불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듯. 이 때문에 대외적으로 사망설에 쿠테타설까지 난무하자 북한입장에서는 꽤나 곤란했던지 최룡해를 포함한 최고위급인사가 급작스럽게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인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는 김정은 건강이상설에 대해 부인했다.
    조총련의장은 김정은이 매우 건강한다고 말했다. #

  • 생각보다 건강이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최근 김정은을 치료하고 돌아온 독일과 프랑스 의료진이 자국 정보기관에 다리뿐만 아니라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으며 내분비계 및 핵심 장기에 이상이 있다 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에도 통보되었는데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의 수명도 그리 길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병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불치병이 아니라면 김정은 본인이 작정하고 열심히 몸관리하고 치료를 잘 받으면 기대 수명이 늘어나겠으나, 한창 기반다지기 해야 할 독재자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 의문.

  • 정신이상설까지 나왔다. #

  • 좌골 신경통을 앓고 있다는 설이 있다.

  • 급격히 불어난 몸에 이상이 와서 위 밴드 수술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 신부전증으로 투병중이라는 설도있다. #
  • 10월 14일 40일만에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기사참조[43]
  • 10월 16일 노동신문은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기사를 실었다. #
  • 발목낭종 제거 수술을 했다고 한다. #

  • 2015년 6월에는 머리에 새치가 많이 나타난 것이 관찰되었다.#

10. 패기머리

김정은의 기괴한(…) 헤어스타일은 북한 내에서는 '패기머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헤어스타일은 김정은만의 전유물은 아닌데, 주민들 특히 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는 정보가 있다.참조 실제로 2014년 황병서 방남 당시 황병서를 수행한 경호원들이 모두 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다.채널A(동영상)

또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두발규제 때문에 북한 남학생들은 김정은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도록 당국에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지 않으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린다고 한다.데일리NK

이 제한은 학생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다. 교원(교사)에 대한 헤어스타일 통제는 북한 남학생과 맞먹는다. 북한의 '공식 이발소'는 무조건 이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버린다.(…) 사설 이발소가 있지만 값이 몇배나 비싸고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조선일보

여담으로 남한 언론에서는 이 같은 보도를 비판적으로, 혹은 해프닝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어차피 남한 학교도 모양은 좀 달라도 두발규제가 이 정도로 심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이러한 정책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니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남한 기준에서는 학생 두발규제는 특별히 이상한 정책은 아니다. 황병서 경호원들은 어차피 군인 신분으로 추정되니까, 이 역시 헤어스타일 통일이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남한으로서는 고작해야 성인에게 규제가 확장된 것으로 자유가 좀 억압된다고 비판할 수 있을 뿐. 근데 어차피 두발규제가 긍정적이라면 성인에게 까지 확대되는 것도 부자유스럽다고는 해도 완전히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라고 북한에서는 어거지를 쓰고있다.

11. 세계에서 풍자되는 김정은

/풍자 참조

11.1.1.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과는 달리 젊은 나이인 채 북한의 지도자에 올라서 그의 어린 점을 비꼬는 별명이 많다.

  • 열흘이 : 김일성의 지시는 1년을 가고, 김정일의 지시는 1개월이 가지만 김정은의 지시는 10일밖에 안간다는 점에서 그의 미숙한 정치력을 비꼬는 은어.
  • 멍은이 : 멍청한 정은이의 준말.
  • 18장군 : 그의 생일인 1월 8일을 욕설로 비하하여 부르는 말.
  • 꼬맹이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 쇠매 : 북한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애니메이션 소년장수 주인공의 이름에서 온 별명. 덧붙여 리설주의 별명은 소년장수의 히로인국화.
  • 설주 남편 :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뜯개문 : 물건을 뜯어내는 도구를 가리키는 북한 북부 지역 사투리 '뜯개'에서 딴 유행어. 김정은 지시문이 "주민들로부터 뭔가 뜯어낼 구실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
  • 둘째 며느리 : 북한 속담 '둘째 며느리를 맞아보아야 첫째 며느리가 무던한 줄 안다.'에서 유래한 별명. 김정은을 김일성, 김정일과 비교해 그보다 못하다는 걸 의미.

11.1.2. 한국

김정은은 김일성의 목 뒤의 이나 김정일의 곱슬머리와는 달리 신체적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이 없으니 그냥 그의 체형을 비꼬아서 부르는 일이 많다. 그냥 돼지라고 부른다든지...돼지를 모욕하지 마라! 돼지는 먹을 수 라도 있지 이건 식용이 불가능하다.

  • 돈종 (豚宗), 돈조 (豚祖)돈줘??
  • 김돼지, 돼정은
  • 씹돼지
  • 핵돼지
  • 좆돼지
  • 돼지새끼/새끼돼지 :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달리 젊은 나이에 권력에 올라 쓰는 별명.
  • 꿀꾸리우스 : 김정은의 라틴어식(?) 호칭
  • 뚱땡이우스 : 김정은의 라틴어식(?) 호칭 2
  • 노애비우스 : 김정은의 라틴어식(?) 호칭 3
  • 애비.D.짐 : D의 일족에 대한 패러디 그리고 패륜패륜열매의 애비.D.짐 이라고도 부른다. 고모고모부~~ 총살타!!
  • 어금니 : 어떤 유머사이트에 올라왔던 것으로 이 항목 가장 처음 사진을 자세히 보면 얼굴과 머리가 어금니를 닮았다.(...)
  • 인간 쓰레기
  • 천하의 개쌍놈
  • 체고조넘 : 남북 간 갈등이 있을 때마다 북한에서 배에다 힘을 주고 말하는 최고존엄을 들리는 대로 받아 부르는 별칭. 또는 최고/존엄에서 존엄 부분만 살짝 비틀어서 최고 저[44]이라고도 한다.[45]

11.1.3. 중국

진싼팡(金三胖) : 김씨네 셋째 뚱땡이.

11.2. 김정은 욕설사건

2011년 북한의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 게시판에 희대의 명문 김정일미친놈 김정은개새끼가 올라왔었다. 세로드립을 썼기에 사이트 관계자들의 검열을 무사히 통과했다고 하며 자세한 것은 우리민족끼리 테러 사건 항목 참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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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권자의 경우 김씨 일가지만, 사회주의 헌법상 원수는 김두봉과 최용건이 먼저이다. 물론 이들이 실권을 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 [2] 여기는 역대 최고권력자(=조선노동당 당수)를 기재한다.
  • [3] 스위스 유학 당시에는 "박은"이라는 가명으로 재학.
  • [4] 한때 金正雲이라는 설도 있었다. 자세한 건 하단 참조.
  • [5] 대강 2011년 후반에서 2012년 초반에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건 리설주 항목 참조.
  • [6] 언론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중퇴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7] 일단은 1984년생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어찌보면 절묘하다.
  • [8] 하지만 결코 농담만은 아닌게, 웬만하면 패드립을 치면 달리는 욕설 댓글이 김정은에게 패드립치는 댓글에선 달리지 않는것만 봐도...... 아니, 두말할 필요 없이 귀귀 항목에 들어가보자. 귀귀의 불타는 불꽃 패륜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아, 물론 김정일이 아닌 다른 인물 소멸 때문에 허용된 사례지만.
  • [9] 다만 강명도 교수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사진 속의 어린아이가 반드시 김정은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우상화를 위해선 뭐든 할 나라니까.
  • [10] 김정은의 다이어트 후 예상도를 보면 나름 잘생겼다. 김일성도 젊었을때는 그럭저럭 잘 생긴 편이였다.
  • [11] 지금도 일부 후진국에서는 뚱뚱한 사람을 부유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풍조가 있고, 19세기 유럽에서는 비만일수록 고상해보인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일부러 살을 찌우기도 했다.
  • [12]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정은을 '대담하게'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그가 김정철을 상대적으로 맘에 안 들어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 [13] 일본어를 배운 사람은 알겠지만 '은'이나 '운'이나 일본어로 ウン이 된다. 대외비였던 것을 일본인인 후지모토가 말하면서 이렇게 알려졌나 추측된다.
  • [14] 실제 이 때문에 몇몇 정치학자들은 싱가포르를 '잘사는 북조선'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 [15] 보다 자세한 건 국가 막장 테크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당연히 북한도 있다.
  • [16] 그리고 싱가포르나 중국의 독재도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시간대라 그렇지 역사적으로 보면 아직 100년도 못 채운 젊은 독재정권들이다.
  • [17] 스위스에서 김정은 형제를 돌보던 중 1998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일종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데, 일부 기사에는 2013년 데니스 로드맨 방북시 김정은이 관계자에게 은연중에 이모의 안부를 물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18] 남한 한국어의 ㅡ는 /ɯ/, ㅜ는 /u/로 원순/평순의 대립이 확실한데 비해 북한 문화어는 ㅡ를 원순 모음으로 발음한다. ㅐ와 ㅔ의 구분처럼 두 음의 변별력이 무너진 것. 자세한 사항은 문화어 참조.
  • [19] 거기다가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에서 ㅡ는 u로 표기한다.
  • [20] 참고로 로마자 표기명도 Kim Jong-un이었으니...슈퍼주니어 예성의 본명이 '김종운'인 관계로 서구권에서는 한때 오해도 생겼다고 한다.
  • [21] 일본어 화자의 청취 감각으로는 한국어의 '은, 응, 운, 웅'이 모두 'ウン'과 같게 들리기 때문에, 북한의 공식 한자 표기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되는대로(…) 아무 한자나 때려박은 것으로 보인다.
  • [22] '정운'으로 알려져 있었을 때의 한자 표기는 '正雲'으로 표기해 왔다. 물론 북한 당국의 한자 인증(?)이 없었기에 일단 자의적으로 표기했다.
  • [23] 인터뷰에서는 한두 살 차이라고 했는데 실제 배우 김정은은 1974년생으로 북조선 돈종황제와는 10살 차이.
  • [24] 아마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영희가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것을 바탕으로 루머를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 [25] 실제로 장성택의 사형과 관련하여 북한 보도문에 있는 내용이다.
  • [26] 아무리 비상식이 존재하는 정치판이라 하더라도 아직 20대후반 내지는 30대초반의 속된말로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애송이'와 정세를 논할 정도로 비정상은 아니다. 당장 시진핑 중국주석이 대한민국을 방문해 여성 국가수반박근혜대통령은 만났지만 김정은은 방문은 커녕 중국에도 초대하지 않은 사실만 봐도 그렇다. 여담으로 시진핑 주석은 "북한의 김정은의 나이가 내 딸 또래인데 내 딸뻘 나이의 어린아이와 어떻게 정세를 논하란 말인가?"라고 했었다고 한다. 참고로 시진핑은 김정은보다 무려 30살 위다!
  • [27] 김정일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인지 비행기를 평생 타지 않았다고, 오히려 열차를 이용했다. 그래서 정상회담할 때 평양으로 직접 오라고 한 거냐
  • [28] 평양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 [29]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비행기 항로로 꼽히는 제주-여수 구간도 최소 170km는 된다는 걸 생각해보자.
  • [30] 굳이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입하자면, 대통령청와대에서 서울공항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뒤, 여기서 전용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을 갔다고 비유하면 될 것이다.
  • [31] 항목을 참조해도 알겠지만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는 스위스치즈이다. 다만 지방 함량이 대단히 높은 고칼로리 식품이라 많이 먹는 건 좋지 않다.
  • [32] 위성과학자주택지구라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단순히 아파트를 좀 많이 지어놨겠거니 싶겠지만, 실제로는 소규모의 신도시를 하나 만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 보도를 보면, 주택 지구 내에 중고층 아파트 24개동 학교, 유치원과 같은 교육기관, 병원 약국 등과 같은 의료기관, 공원, 각종 행정기관들이 완비된 곳이다. 이는 위성(미사일) 과학자들을 단순이 잘 대우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33] 사실 백악관 드립은 꽤 오래된 드립이다. 2013년 한창 전쟁 위협할 때 백악관 불바다 만든다고 헛소리를 지껄였던 게 그 증거. 그리고 미사일도 심심하면 발사한다.
  • [34] 북한의 도발은 일본의 재무장화의 명분이 되고 한국의 군비 증강에 영향을 주며, 미국의 아시아 개입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곧 아시아 전체의 군비 증가 및 전쟁 위험성 증가로 이어진다.
  • [35] 이 때문에 장성택의 가신이었던 박봉주가 주군인 장성택 처형에도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이 조치는 성공적이었다.
  • [36] 김정일도 김평일과 마찬가지로 북한 정부와 몰타와의 협약에 의해 몰타에 유학한 바가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11221/42772496/1
  • [37] 아이러니한 건 영국과 불편한 관계인 국가들. 프랑스는 한국전쟁에서 남한의 편에서 북한과 싸워준 나라인 데다가 북한과는 단 1번도 외교관계를 수립한 적이 없으며(물론 영국도 한국전쟁에 UN군으로 남한 편에서 참전했었다.), 아르헨티나는 일단 외교는 수립했었으나 1977년 방화사건으로 외교를 단절했다. 그렇다고 북한이 아르헨티나를 적대한 건 아니고 오히려 북한은 이후 1990년과 2007년에 아르헨티나에 관계 재개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북한/외교 항목 참조. 다만 영국은 북한 외에도 쿠바와도 공식수교중이고, 남북한 동시수교이지만 북한보다 남한과 친하게 지낸다.
  • [38] 두번째 아이러니는 1990년에 북한에서 아르헨티나에 관계 재개를 희망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당시 카를로스 메넴 정권의 아르헨티나는 친미외교 중이어서 씹혔는데 정작 오히려 포클랜드 전쟁으로 국교단절한지 10년도 안 지난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관계를 재개했다.응?
  • [39] 북한 기준으로 범법자일 뿐이지 다른나라 기준으로는 범법자도 아니다. 예를 들면 탈북이나 기독교 등.
  • [40] 근데 북한에서는 꽤 예전부터 잦았던 케이스 중 하나이긴 하다.
  • [41] 1976년에 설립된 장수 연구소와 1982년 설립된 만수무강 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장수 연구소는 자연요법과 한의학,만수무강 연구소는 서양의학전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들 기관의 진짜 이름은 각각 북한 기초의학연구소와 임상의학연구소다. 평양의대 안에 있다.
  • [42] 비행기 싫어하는 김정일도 아플 때는 탔다고 한다.
  • [43]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배경이 참 푸르고 푸르다.(...) 10월의 북한이라고 볼 수 없기에 8월에 찍은 사진과 영상을 공개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44] 저를 돼지 猪로 치환하면 원래 별명과도 맞아 떨어진다.
  • [45] 최근엔 북한 주민들도 김정은을 비꼬는 뜻에서 김정은을 최고존엄이라 부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