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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코마네치

최종 변경일자: 2015-04-08 00:50:47 Contributors

루마니아의 전설적인 미녀체조 선수. 루마니아의 영웅, 원조 체조요정.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

이름Nadia Comăneci (나디아 코머네치)
국적루마니아
생년월일1961년 11월 12일 ~
배우자버트 코너

목차

1. 수상 내역
2. 소개
3. 불운한 삶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1. 수상 내역

  • 올림픽 한정

1976 몬트리올 이단 평행봉
1976 몬트리올 체조 개인 종합
1976 몬트리올 평균대
1976 몬트리올 마루운동
1976 몬트리올 단체 종합
1980 모스크바 균대
1980 모스크바 루운동
1980 모스크바 개인 종합
1980 모스크바 단체 종합

이외에도 세계선수권 등 기타 쩌리대회에서 입상도 수십차례...

2. 소개

선수시절 타임지 표지. 그녀는 완벽했다(she's Perfect)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체조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을 따낸 전설적인 체조선수.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만점을 7번 받아서 금메달 3개를 거머쥔 엄청난 먼치킨. 연기를 할 때 완벽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무표정으로 일관해 '작은 바위 덩어리', '냉정한 작은 벼룩' 등의 별명을 얻기도…. [1]

1976년 7월 18일 제21회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체조경기장. 루마니아 대표로 참가한 14세의 소녀 나디아 코마네치가 2단 평행봉 경기를 펼쳤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2] "코마네치"를 선보이며 착지했고, 사람들은 그제서야 '코마네치의 마법'에서 풀려났다. 그런데, 마법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경기점수가 전광판에 오르자 장내는 순간 술렁였다….

완벽한 경기를 펼친 소녀의 점수는 고작 1점. 사람들은 당황했고, 급기야 코치가 어이없는 점수에 항의를 하기 위해 일어섰는데, 그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열 손가락을 펴 보이며 일어나 외쳤다. "1점이 아니라 10점! 10점 만점에 10점이오!" 1점으로 표기된 이유는 당시의 전광판이 한 자릿수까지 표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그 누구도 "완벽"한 연기를 펼칠 수 없다 하여 9.9가 만점인 것으로 "암묵적"으로 되어 있었는데, 최초로 그 벽을 깨 부쉈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리듬체조 우승자인 소련의 마리나 로바치 선수는 모든 연기에서 만점을 받았다. 바꿔 말하면 만점을 한 번이라도 놓치면 그 대회에서 금메달은 물 건너간 것

그 후로도 6번 더 10점 만점의 연기를 선보였다. 완벽한 연기를 생애 7번이나 펼쳤다는 말이다.

2008년부터 점수 체계가 바뀌어 현재는 10점 만점 제도를 쓰지 않고 있다.


리즈시절 비디오


많은 사람들이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으로 기억하는 이 광고는 실제 올림픽에서의 연기가 아니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코마네치가 연기한 평행봉 체조에, 광고 방영때였던 2005년 당시 미국의 최고 유망주였던 나스티아 리우킨(Anastasia Valeryevna "Nastia" Liukin, 1989~)의 연기를 합성시킨 영상이다.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연기 모음

보통 사람들에게는 76년 대회의 10점 만점 이미지가 강하지만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도 금 2, 은 2개를 차지하는 등 올림픽 2연속 금메달리스트로 활약했다. 아쉽게도 그녀의 특기인 이단평행봉에서는 중간에 평행봉에서 떨어지면서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워낙 젊은 나이에 먼치킨 실력에 도달했기 때문에 76년 이후에는 금방 목표를 잃었고, 루마니아 체조협회와 그녀의 코치 벨라 카롤리가 불화로 둘 사이를 갈라 놓았기 때문에 잠시 훈련을 하지 못해서 살이 급격히 불기도 하는 등 슬럼프로 고생했다. 슬럼프로 고생하고 있던 그녀에게 벨라 카롤리 코치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이로써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에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코마네치 개인에게는 76년 대회보다는 슬럼프를 이겨내고 금메달을 휩쓸었던 80년 대회가 더 값지고 기억에 남는 대회였다고 한다.

조금 더 알고 싶다면 이쪽을 참고해도 괜찮다.

3. 불운한 삶

청년기 이 체조요정의 단 하나의 불행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아닐까?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가족들에 의해 검열삭제를 당했다는 루머가 있다. 그러나 코마네치는 2010년 한국 내한 당시 인터뷰에서 이 루머를 강하게 부인했고, 다른 인터뷰에서도 사람들의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저런 루머가 있기는 했지만, 워낙 먼치킨인 선수였고 하니 루마니아 정부에서도 처음에는 영웅 대접을 하면서 잘 대해주었다. 그런데 유년 시절부터 자신과 함께한 국가대표팀 코치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그녀의 삶에도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루마니아 정부는 그녀를 연금하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였고, 국제대회 출전도 불허하였다. 그렇다고 생필품을 잘 공급해 주는 것도 아니라서 그녀의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끌어내기 위한 구국전선의 행진이 한창이던 1989년 루마니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 당시 여권비자도 없었지만 "나디아 코마네치"라는 이름 하나로 사천리로 망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전설"과 다른 싸구려 옷에 서투른 영어에다...무엇보다 늙어버린 얼굴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은 급속히 식어버렸다.[3] 미국으로 망명 온 후 처음에는 엄청난 환영을 받았지만 늙어버린 얼굴 때문에 체조 요정의 환상이 깨지자 사람들은 그녀를 곧 퇴물 취급했고 명성과 능력에 걸맞지 않는 싸구려 행사에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며 거의 막장으로 추락해버린다.[4] 사실 코마네치가 미국에 오자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은 이유는 세기의 연인이었던 체조 요정에 대한 환상이 깨져서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망명을 도운 콘스탄틴 패니트라는 작자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코마네치는 세간에 도는 불륜설을 극구 부인하며 패니트는 그저 매니저일 뿐이다라고 주장했지만, 패니트의 부인이 남편이 집안을 돌보지 않고 코마네치하고만 돌아다닌다며 울며불며 인터뷰를 하는 등 여론은 코마네치의 망명을 애정의 도피로 몰고 갔다.[5]

미국에서도 코치 생활을 뛰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캐나다로 이주해서 지내는 등 고생스러운 30대를 보내게 되는데, 지금의 배우자이자 84년 LA 올림픽 평행봉 금메달리스트이자 그녀 인생의 백마 탄 왕자인 "버트 코너"를 만나게 된다. 체조에 관한 모든 것과는 연을 끊고 살겠다고 다짐하던 코마네치에게 코너는 스포츠는 명예와 영광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설득시키게 되고, 이에 감화된 예전의 경험을 살려 체조 지도자로 부활했다. 이 둘은 96년에 루마니아에서 결혼했다. 이미 생긴 얼굴 주름은 어쩌지 못해 다른 미녀 스포츠 스타처럼 연예계에 진출해서 떼돈을 벌지는 못했지만...그래도 주름살만 지우면 여전히 미인상이다.

지금은 기부 활동을 중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첫 아이를 출산하는 등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또한 남편 버트 코너와 함께 체조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고, 스페셜 올림픽 부위원장, 인터내셔널 짐내스트라는 스포츠 매거진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지금은 흑역사였던 청년기와는 달리 체중 조절과 메이크업의 변화 등으로 이전보다 회춘했다. 80년대에는 영어 인터뷰만 있으면 서투른 영어 실력 때문에 슬금슬금 눈을 피하면서(...) 무뚝뚝하게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은 영어도 잘한다. 참고로 루마니아와 미국 국적 모두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자. 한국에는 1990년, 2004년, 2008년, 2010년 총 4번 내한했다.

여담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에게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알려진 아놀드 슈워제네거와는 절친인데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1991년 한 호털에서 남편과 슈워제네거와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그만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갇혔는데, 당황한 그녀가 슈워제네거에게 "당신은 터미네이터니 어떻게 좀 해봐요."라고 외치자 슈워제네거가 직접 고장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버렸다. 프런트 직원들은 슈워제네거가 몸소 연 문틈으로 그를 포함해 셋이 나오는 걸 즉석에서 보며 얼어붙었다. 말 그대로 터미네이터의 현실 재림이었을 분위기.

4.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 1983년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미국 영화 '나디아(Nadia)'가 미국에서 개봉하였다. 국내에서는 1988년 7월에서야 서울올림픽을 얼마 안두고 개봉했고 꽤 빠른 1989년 토요명화로 방영된 뒤로 여러번 방영된 적이 있으나 지금 구하기는 매우 힘들듯...나디아로 검색하면 애니메이션 나디아만 나올뿐이고 그런데 영화 자체는 왜곡이 많은 B급 수준이라 미국이나 한국이나 흥행이나 평은 그저 그랬다. 그래도 개봉 당시 코마네치가 무척 스트레스를 받아서 운동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6] 그녀가 쓴 자서전인 '미래의 금메달리스트에게'도 있으니 읽어보는 것도 좋다.



  • 참고로, 일본 예능 전국 공통의 필살기이자 비트 타케시의 상징인 코마네치!는 이 코마네치가 맞다. 1980년대 기타노 타케시가 코마네치를 보고 방송에서 그 어린 체조선수의 여성미를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코마네치가 입은 레오타드형 체조복의 하이레그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손을 양쪽 사타구니에 대면서 코마네치!라고 한게 꽂혀서 계속 써먹다보니 거의 故 이주일 선생의 "콩나물 팍팍 무쳤냐?"급의 유행어가 된 것. 관련 영문 칼럼 초난강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때 일본식 개그를 보여주겠다며 따라한게 바로 이 것이었다. 현장에 있던 강호동 등의 한국 연예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참고로 코마네치에게 로열티로 200만엔을 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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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0년 내한 당시 인터뷰에서 코마네치가 언급하길 공산주의 시절 루마니아의 사회 분위기상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고 이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경기장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경기에 임했는데 후에 코마네치가 이런 풍조 역시 고도의 집중력과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한 체조 훈련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 [2] 체조 경기는 국제 대회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을 선보이면 자기의 이름이 그 기술명이 된다. 홍철의 '여1' '여2', 양학선의 '양1'도 마찬가지.
  • [3] 망명했을때 그녀의 나이는 20대 후반이였지만 얼굴은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빨리 늙어서 안타까운 미녀.
  • [4] 이때 찍었던 속옷 광고 사진은 지금 봐도 안습
  • [5] 이 때문에 90년대 초에 국내 신문에 보도된 코마네치에 대한 기사는 부정적인 기사가 대부분이다. 거짓말쟁이에 식충이에 철부지에(...)
  • [6] 영화에서는 76년 대회 이후의 부진 때문에 그녀가 스트레스 받아서 자살하려고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코마네치의 자서전에는 이를 해명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