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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혼

최종 변경일자: 2015-03-24 21:58:55 Contributors

남자가 밤중에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여자를 보자기에 싸서 훔쳐가는 행위. 한 마디로 납치 되시겠다. 과거에 있던 악습의 하나로, 현대에는 엄연한 범죄다(법적인 내용은 상위 항목 참조). 구형법에서는 본죄를 영리목적약취유인죄와 같이 규정하고 있었으나[1] 새로 형법이 제정되어서 '결혼목적 약취유인죄'로 이를 분리하여 그 형을 감경하였고, 2013년 형법을 고치면서 다시 추행목적약취유인죄에 들어갔다. 보통 옛날에는 납치할 때 여자를 '보자기나 보따리로 싸서 어깨에 둘러매고' 데려가 보쌈이라 '카더라'.

일반적인 납치와는 달리 돈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데리고 살려던 목적이 강하다. 아무래도 정절이 중요했던 시기인지라 데려가서 덮쳐버리면 기정사실화(?)라서 포기하고 살아준 경우가 많았으니... 연려실기술에서도 나오는데 조선 초기, 왕족인 이백온(?~1425)이 하륜의 첩실을[2] 보쌈하고자 수하들을 내보냈다가 걸려서 이 일이 빌미라 유배되어 거기서 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사실 이백온은 이 사건 말고도 여색을 너무 밝혀서 여종을 겁간하다가 이에 분개하는 여종의 남편을 잔혹하게 죽인 사건[3]도 저질러 유배를 당한 일도 있었고, 온갖 사건과 사고를 일으켜 끝내 이 사건이 터졌을 땐 여러 번 봐주던 세종도 격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만 있었던 문화는 아니며 약탈혼이라고 하여 신부를 납치하여 결혼하는 풍습이 일반적인 문화권도 있었다. 실제로 중동지방에서는 율법상 결혼 전 성행위 금지를 강조하였는데 이때문에 약탈혼으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현대의 이슬람 국가는 여기에다가 자칭 이맘의 혼인, 이혼절차 집행을 통한 말이 납치혼이지 강간이나 다를바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고대~중세 몽골에서도 납치혼은 흔했는데 시집가는 신부를 도중에 가로채서 납치해 결혼하거나 이미 결혼한 여자를 약탈해오는 일이 많았다. 게다가 몽골에서는 남자가 납치혼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는 듯. 칭기스칸의 어머니 호엘룬도 원래 결혼할 상대자에게 가던 도중에 예수게이에게 납치당해 칭기스칸을 낳았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호엘룬의 원래 정혼자쪽에서는 후에 칭기스칸의 아내인 보르테를 납치했다.[4] 이 때문에 보르테가 낳은 첫째 아들 주치는 칭기스칸의 아들이 아니라는 의심을 강하게 받았다. 하여튼 2대에 걸친 수난 때문인지 후에 칭기스칸은 이러한 약탈혼을 금지했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악습이지만, 과거엔 과부나 이혼녀, 소박맞은 여성들을 재혼[5]시킬 때 쓰기도 했다고. 성종 때 과부재가금지법을 만들어 재혼을 금지한 유교 사회에서 대놓고 재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면서 과부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사실혼을 시키는 것이다. 서큐버스와 같은 맥락일 수도 있다. 이렇게 짜고치는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연인관계인 상대가 아얘 처음 부터 다 짜고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시늉만 하는 경우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정도도 있었다.

사실 고려조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재혼은 금지가 아니였다. 그러다가 성종 때에 재혼이 금지되었고[6] 초반엔 양반가문 일부에서 지키다가 후기엔 정도가 강해져 재혼은 무조건 금지되는 분이기가 됐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만 해도 근대 사회가 배경인데 재혼 금지 풍토를 소재로 한다. 이것은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재혼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기성세대 사이에 알음알음 있다.


설화 속의 인물인 봉이 김선달에서는 남자를 보쌈해가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설화에서는 시집 가기 전 점을 봐서 이 여자가 시집을 가서 과부일 상이라고 하자 몰래 남자를 납치해와 강제로 약식 혼례를 하고 합방을 시킨 뒤 그 다음날 새벽에 남자를 죽이려 했다고. 그러면 그 여자는 이미 결혼을 한 뒤 과부가 된 셈이므로 정식 결혼에서 과부가 아니다.(사기꾼 김선달한테는 얄짤없지만.)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정조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조선시대 이미지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설화. 하지만 실제로는 몇몇 지역에서 비슷한 옛 이야기가 있으니, 조선시대라도 부모 마음이 마음인지라 딸이 청상과부를 하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있는 집안에서는 시도하는 일이 있었던 듯하다.이와 관련해서 90년대 중후반에 방송했던 역사 프로그램에서 조선시대 보쌈을 다룬 적이 있는데 이때 남자 보쌈도 다뤘다. 이 일화에서 피해자는 효종이라 흠좀무. 평복을 하고 밤 길을 걷다가 납치되었는데 첫날밤에 응하는 척하면서 밖에 대기하던 납치범들을 때려눕히고 도망쳤다고. 무예 좀 하던 효종이라서 가능했다.[7]

눈물을 마시는 새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발케네 지방에서는 전통적인 결혼 방식으로 좀 잘 사는 집안이라면 이 발케네 전통의 결혼식을 한다. 이는 발케네가 도둑놈들의 땅이기 때문이다. 이를 '신부 절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반적 보쌈과는 다른데 위의 일반적 보쌈이 납치라면 이것은 가문간의 전쟁에 가깝다. 특성상 몰래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가 신부 절도가 일어나리라 아니, 서로 세력을 끌어모아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전통적인 방식이기에 그냥 평범하게 하는 결혼도 많다. 신부 절도는 보통 정말 못 합의하거나, 명문가의 세력과시용이다. 합의 결혼일 때는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설렁설렁 하며, 강제로 하려면 사상자가 나올 만큼 치열하다고. 여담으로 날붙이는 사용 불가라는 규칙이 있으며, 그게 규칙의 전부다. 또한 신부 절도에는 온갖 협잡이 있다. 배신자[8]는 기본이고 이중 배신자, 공개 배신자, 신부 바꿔치기[9], 심지어 신랑 절도도 있다는 듯하다. 그 밖에도 너무 많아서 말하기 힘들 정도라, 여러 모로 무서운 동네.

보쌈의 가장 심한 케이스로는 알라 카추가 있다.

납치혼을 일반적인 보쌈에 빚대는 농담이 있다. 예를 들면 할머니보쌈이라든가 장군보쌈이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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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본 형법(=구형법)에서는 한국에서 결혼목적약취유인죄가 존재하던 시절에도 계속 영리목적약취유인죄에 이를 규정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다시 구형법 시절로 돌아간 셈. 다만 일본의 그것과의 차이점은 일본에는 결혼목적약취유인죄의 경우 친고죄가 적용되나, 한국은 추행목적약취유인죄로 다시 합치면서 친고죄 조항을 삭제하였다.
  • [2] 그냥 써있으니까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하륜은 세조의 할아버지인 태종을 한낱 대군에서 왕으로 만드는 과정 중 태종 본인 다음으로 역할이 컸었던 사람이었다. 즉 킹메이커이자 1등 공신인 셈. 세조 당시에는 은퇴했지만 아직도 공신으로써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의 첩이었으니 아무리 왕족이라도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제였다.
  • [3] 원칙적으로는 종이라도 못 죽이니 당연히 중죄다. 게다가 그 과정과 손속이 너무 잔인하여 말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가해자가 왕족이니 처벌은 엉성했고 대강 무마했지만...
  • [4] 이때 보르테가 강간당했다는 말도 있고 납치혼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보르테 입장에서는 다 똑같겠지만.
  • [5] 엄밀히 말하면 정식 혼례를 치루지 않았기에 사실혼
  • [6] 신하들은 세번 결혼하는 삼가금지를 하고 재가는 허용하자고 했지만 성종은 재가를 금지했다.
  • [7] 이게 재위중의 일인지 그 전의 일인지는 불확실. 만약 재위 중의 일이라면 흠좀무.
  • [8] 배신자로 상대편을 꽉 채워서 시작하자마자 이기는 것이 발케네인들의 꿈이란다. 상대방도 그걸 바라기에 난 적은 없다...
  • [9] 신방에 결혼하기 힘든 결함이 있는 여자를 넣어놓고 대신 데려가게 하기. 이걸 겪었다라 인정하면 도둑의 치욕이기에, 얄짤없이 데리고 살아야 한다니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