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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최종 변경일자: 2016-07-18 20:05:23 Contributors



大邱廣域市 / Daegu Metropolita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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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Unknown)]
대구광역시
大邱廣域市 / Daegu Metropolitan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885.60㎢
광역시도 대구광역시
하위 행정구역 7자치구 1군
시간대 UTC+9
인구 2,492,583명
(2015년 2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2820.35명/㎢
광역시장 권영진
초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교육감 우동기
재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슬로건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대구
시화 목련
시목 전나무
시조 독수리
시청 공식 사이트


브랜드슬로건 컬러풀 대구. 색채가 “다양한, 다채로움”을 의미하여 젊고, 밝고, 멋지고, 화려하고, 활기찬 도시 이미지를 제공하여 다양한 모습의 발전적인 대구를 표현했다.


마스코트 '패션이'. 한국의 전통적인 비천상(飛天像) 문양의 미적감각을 21세기 세계적 섬유패션도시로 발전하고자 하는 대구광역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캐릭터이다. 모 갤러리에서는 김치를 담그다 집에 불이나 뛰어내린 듯한 모양이라고 한 때 대차게 까였는데 2000년 3월 3일부터 쓰였다. 그러나 현재 대구광역시의 섬유산업은 침체기에 있으며 그나마 이시아폴리스(원래 이름이 봉무어패럴밸리)를 통해 부흥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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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 대구광역시에서 현재 내세우고 있는 캐릭터 '함박이와 생글이', '미소친절 대구'를 홍보하기 위해 탄생되었는데 얘들이 사실상 대구광역시 진 마스코트이다. 패션이가 반쯤 흑역사이고 섬유산업의 침체기인데다가 대구광역시에서도 이 쪽을 홍보하는 등 전체적으로 밀어주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종의 홍보 캐릭터인데다가 정식으로 마스코트라고 공인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대구광역시 공식 마스코트는 패션이가 맞다. 패션이보다 디자인이 귀여워서 함박이와 생글이를 마스코트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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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Unknown)]

▲ 대구광역시 SNS 통합계정 '다채움' 마스코트 '다채우새' (다채움+새), 대구를 상징하는 새인 독수리를 형상화한 캐릭터로 SNS나 블로그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최근 스티커 이모티콘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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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도심. 사진 한가운데의 기와집은 달구벌대종이 있는 종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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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 소박한 대구광역시청사. 인근에 있는 중구청이나 논공에 있는 달성군청보다 작다. 사진 왼쪽 지상 3층 건물이 시의회(옛 시청), 오른쪽의 건물 달랑 1동이 대구광역시청사의 전부다... 사실 시청 동쪽 동인네거리 근처에 대구광역시청 별관이 있는데 몇몇 부서는 그 곳에 있다. 2000년 전후로 타 지자체가 유행처럼 청사 확장 및 호화 청사 건립을 하는 중에도 그대로 옛 낡고 작은 건물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전시행정식으로 예산낭비하는 여타 지역 청사에 비교하여, 세금을 건물에 낭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평도 있다.


목차

1. 개요
2. 역사
3. 행정 구역
4. 지명
5. 지형 및 날씨
5.1. 지형
5.2. 기후
6. 교육
7. 군사
8. 정치
9. 경제
10. 문화
11. 교통
12. 인구
13. 이모저모
13.1. 경산과의 통합
13.2. 대구신서혁신도시
13.3. 그 밖의 얘기
14. 대구광역시 관련 유명인물
14.1. 실존 인물
14.2. 가상 인물
15. 자매 결연 도시
16. 대중문화 속의 대구광역시
16.1. 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한 게임
16.2. 현인의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
16.2.1. 가사
16.3. 동명의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
16.4. 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한 기타 창작물

1. 개요

대한민국에서 동남부에 위치한 광역시이자 부산광역시에 이은 영남 제2의 도시.시청 공식 웹사이트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 다음 순위의 광역자치단체이다.[1][2]

경상북도는 1896년 8월 4일 을미개혁때 13도제 실시로 처음 생겼고 이때부터 대구가 경상북도의 수부도시가 되었다. 해방후 1981년에 직할시(광역시)로 승격된 뒤로도 북구 산격동에 있는 도청을 바로 옮기지 않아서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에 더이상 속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상북도청이 있으며, 경상북도는 경상북도대로 자기 관할 구역 내에 자기네 도청이 없는 상황이 근 30여년간 지속되었다. 대구시 입장에서도 경북도청 효과를 최대한 빨아먹을수록 이익이니 아쉬울 것은 없었다. 이유는 어디로 옮길지 결정이 안 나서. 논의 자체는 몇번 있었으나 당연히 서로 내가 하겠다고 나서면서 몇 번이나 흐지부지되었고, 결국 2008년에야 안동시, 예천군으로 이전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전은 2015년 7월에야 이루어질 예정.

무뚝뚝하고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의외로 지역의 특성을 가미한 개성있는 고유 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세련된 도시이다. 온통 서울에서 내려온 체인점 브랜드로 도배되어있는 한국에서 그래도 "다른 번화한 도시에 왔구나.", "의외로 향토 문화가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일본의 나고야나 오사카가 도쿄와는 또다른 멋과 매력을 가진 고유의 도시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 역사

대구광역시 행정구역 변천사
대구부
(大邱府, 1895)
현풍군
(玄風郡, 1895)
경상북도 대구부
(1914)
경상북도 달성군
(達城郡, 1914)
경상북도 대구시
(大邱市, 1949)
경상북도 달성군
대구직할시
(大邱直轄市, 1981)
경상북도 달성군
대구광역시
(大邱廣域市, 1995)

자세한 역사 및 행정구역 변천과정은 대구광역시/역사 항목 참조.

4. 지명

현재까지 남아 있는 대구의 지명들 중에서는 후백제고려의 주요 격전 중 하나였던 공산 전투로 인해 기인한 이름들이 많다. 당장 유명한 팔공산부터가 원래 이름이 공산이었던 것을 이 전투에서 고려군이 대패해 왕건의 여덞 장수가 죽었다고 해서 후일 바꾼 것이다. 아래는 공산 전투에서 유래한 지명 중 현재까지 남은 지명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전부 믿기는 힘들어도 그만큼 공산 전투가 이 일대 지명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 팔공산이 있는 동구 지역이다.

  • 팔공산(八公山) : 동수회전의 배경이 된 공산에서 왕건의 신숭겸, 김낙 등 8명의 충성스러운 장수가 순절 하였기에 후일 팔공산이라 이름하였다.

  • 왕산(王山) : 지묘동 신숭겸 장군 사당인 표충사의 뒷산인데 적병에 포위되었던 왕건이 이 산으로 올라가서, 능선을 타고 세 번 만에 피신한 곳이다. 그래서 왕건이 죽을 것을 이 산 때문에 살았다 하여 왕산이라 했다고 한다.

  • 일인석(一人石) : 태조 왕건이 왕산을 거쳐 피신한 곳이 동화사 뒤의 염불암이다. 여기 일인석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왕건이 거기 숨어 앉으니, 수도하던 도승이 첫눈에 왕건인 줄 알고, 그에게 “이 자리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곳인데, 그대는 누구인가? 내려오라”고 했더니, “내가 바로 왕이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도승은 절을 하고 길은 안내해 주었다. 그 후 염불암 옆의 그 바위를 왕건이 혼자 앉아 있었다 하여 일인석이라 부른다고 한다.

  • 독좌암(獨坐巖) : "독지바우"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봉무동 노인회관 북쪽 5m 지점의 개천가에 있다. 이는 태조 왕건이 지묘에서 참패하여, 충신 명장을 잃고 왕산으로 달아나서, 팔공산의 염불암 옆 일인석에 앉아 있다가, 다시 파군재를 넘어 봉무동에 있는 독좌암이란 바위에, 홀로 앉아 쉬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 파군재(波軍재) : 불로동에서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리는 길목에 있는 재를 가르키는데, 신숭겸 장군의 군사가 1차로 견훤군에 패해서 흩어진 곳으로 알려진 파계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아랫 파군재라 하고, 2차로 패한 동화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윗 파군재라 한다. 파군재삼거리에는 크고 아름다운 신숭겸 장군의 동상이 있다.

  • 해안(解顔) : 불로동 마을 앞을 해안이라 하는데, 동촌면이라 하기 이전에 해안면이라 했다. 태조가 패잔병을 이끌고 들판을 지나면서 몹시 걱정했는데, 마침내 무사히 통과하여 수심이 가시고 얼굴을 펼 수 있었다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라 한다.

  • 반야월(半夜月)과 안심(安心) : 왕건이 견훤에 쫓겨 해안 땅을 거쳐 지금의 반야월에 이르니, 밤은 반야(한밤중)이고 달이 떠있었다고 해서 반야월이라는 지명이 생겼고, 이곳에 와서야 겨우 안심했다고 하여 안심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전한다.

  • 실왕리(失王里) :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왕건이 나무꾼으로부터 주먹밥을 얻어먹고 허기를 면했다. 나무꾼이 나무를 다 하고 돌아와 보니 사람은 간데 없고, 그가 왕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왕을 잃었다고 붙인 이름인이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와서 수치스러운 이름이라 하여‘시량’으로 고쳐 불렀다고 전하며, 변음되어‘시랭이’라 불리기도 한다.

  • 미리사(美理寺) : 이 곳의 전투에서 신숭겸, 김낙 두 장수가 장렬히 전사했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워 연등을 하고 두 장수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한다.

  • 살내천 전탄(箭灘) : 고려와 백제의 군대가 개울 양쪽에서 서로 대치하여 격전을 치를 때 쏘는 화살이 쌓여 강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 무태(無怠) :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대구시 북구 서변동을 지나 연경동 지묘 3동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서변동 일대를 지날 때 왕건이 군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고 태만하지 말라.”라고 당부했다고 해서, 지금도 이 지방은 무태(無怠)라고 불려지고 있다.

  • 연경(硏經) : 왕건이 연경동 부근에 이르렀을 때,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낭하게 들려와 감탄한 마을이라 하여 연경(硏經)이라 불려 진다고 한다.

  • 나발고개 : 진군을 계속하면서 지금의 지묘 3동에서 지묘 1동으로 가는 고개에서, 적진을 향해 진군의 나팔을 불었다고 하여 나발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견훤의 군사가 왕건의 군사를 둘러싸고, 쳐들어가며 나팔을 불었다고 해서 나발고개라고도 하고, 왕건의 군사를 깨뜨린 견훤 군이 이 고개를 넘으면서 나팔을 불었다고도 한다.

  • 탑들 : 지금의 지묘 1동 앞들을 탑들이라고 하는데, 옛날 동수대전에 전사한 신숭겸장군의 원찰인 지묘사의 탑이 남아 있던 곳이라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 지묘동(智妙洞) : 왕건을 위기에서 구한 신숭겸의 지혜가 오묘하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 불로동(不老洞) : 왕건이 도망치다가 이곳에 이르자 어른들은 피난가고, 아이들만 남아 있어 붙여졌다. 또는 노인들은 피난가고 젊은이들만 남아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어쩐지 젊은이들은 다 전쟁터 끌려갔을 것 같고 애들만 남아있었던 게 맞을 지도 마이너한 바리에이션 중 하나로는 왕건이 불로동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대접받고는 이곳사람들 모두 늙지 않고 무병장수하길 기원한다고 덕담을 해서 유래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또 있다. 왕건이 견훤에게 패해 똥줄빠지게 도망치다 문득 뒤 돌아보니 체력이 떨어지는 늙은 병사들은 다 낙오하고 젊은 병사들만 겨우 따라오고 있더라 해서 불로동이란 얘기도 전해진다.

  • 반월당(半月堂) : 왕건이 반야월과 안심을 지나 현재의 대구 중심 네거리인 반월당에 도착했을 때 달이 기울어 반달이 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달이 떠 있을 때 이곳에 당도하였다 하여 반월당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때 반월당이라는 백화점이 있었기 때문에 반월당이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는 말도 있다. 반월당 백화점의 반월당도 공산 전투의 그 반월당에서 따왔을 지도

  • 안일사(安逸寺) : 대구 앞산에 있는 절인데 왕건이 반월당을 거쳐 이곳 절에 이르렀는데, 이곳의 승려가 왕건을 극진히 대접하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편안하게 모셨다. 왕건을 비로소 이곳에서 안일을 맛보았다고 하여 후에 이 절을 안일사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 왕굴 : 앞산에 있는 동굴이다. 공산전투에서 패해 견훤에게 쫓긴 왕건이 3일 동안 숨어 지냈던 곳이다.

  • 임휴사 : 달서구에 있는 이다. 일설에 따르면 정신없이 도망치던 왕건이 이곳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조금 쉴수 있었다고 한다.

이 길을 복원하여 지묘동 신숭겸장군유적지에서 안심역에 이르는 팔공산 왕건 길(팔공산 올레길과는 다름)이 만들어졌다.
관련 기사1 관련 기사2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부 져서 쫓겨가던 왕건의 도주 경로에서 붙은 이름들이다. 이쯤 되면 도시의 지명들 자체가 살아 있는 왕건 안습 전설로 불러도 될 지경이다.영원히 고통받는 형님폐하 그런데 몇 년 전에 동구에서 왕건 도주를 이용한 축제를 열려고 하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카더라.(...) 이쯤 되면 도시 자체가 왕건의 안티인지 빠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외에도 지묘동에는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데 그쪽 주민들은 신숭겸 이름을 이순신 이름보다도 더 자주 듣고 자란다. 근처 학교 교가에도 언급될 정도. 드라마 태조 왕건이 한창 인기 있을 때는 신숭겸 장군의 전사를 재현하는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후삼국 시대 갑옷으로 무장한 수백명의 인원까지 동원한 대형 축제였다.

5. 지형 및 날씨

5.1. 지형

유명한 대구분지 지형으로 시가지의 남과 북에 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다. 북쪽엔 팔공산, 남쪽엔 비슬산이 있다. 그래서 시가지가 동과 서로 계속 뻗어나가다가 현재는 더 이상 뻗어갈데가 없는 상황이다. 동으론 경산시와 부딪히고 서로는 낙동강이 막아서 이제 남은 곳이라곤 저 멀리 남서쪽의 달성군 지역 정도다. 다만 현재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K-2가 이전한다면 동구 쪽에 상당한 개발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유명한 수성구 역시 70년대 이후 시가지가 동쪽으로 확장되다가 갑자기 발전한 지역이며 동대구역 또한 60년대 말 대구역의 역할을 분담키 위해 당시에 시가지 동쪽 끄트머리에 만든 철도역이다. 그런데 동대구역이 대구역을 잡아먹고 현재는 대구역보다 크고 아름다운 역이 되어 버렸다.


대구 지형의 특징은 다른 대도시와 비교했을때 시가지 내부에 평지지역이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계획도시가 아님에도 산을 두르거나 타고 돌아가는식의 구불구불한 도로가 거의 없으며 시가지내엔 국우터널, 두리봉터널, 앞산터널 외에는 터널이 없다. 그래서 이 길이 막히면 저길로 돌아가면 되며 과장하자면 목적지까지 코너 한번만 돌면 갈 수 있을 정도로 도로 사정이 좋다. 그래서 대구에서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들이 최소 두 가지 이상의 루트를 제시하며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본다. 그리고 어느 루트를 택하든 거리는 비슷해서 그때그때 안 막히는 쪽이 요금이 적기 때문에 선택이 쉽지 않다. 도로망 또한 격자형과 방사형이 교묘하게 섞인 형태다. 대구 광역시의 도로가 이렇게 잘 설계된 이유는 서울과 부산 등 다른 대도시는 인구가 폭증하고 나서 도로를 이미 존재하는 건물들에 맞춰 닦은 반면 대구는 인구 급증을 겪기 전에 미리 일제강점기의 측량 결과를 토대로 도로를 계획해 그에 맞춰 시설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세금 낭비라고 평가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당시 공무원들의 혜안이었던 셈. 그리하여 이런 평지 지형에다가 잘 닦인 도로 때문에 시민들이 대중교통보다 자가운전을 선호하는 편이며 대신 지하철 노선이 많이 필요하다. 가까운 부산의 경우 산지가 많아 산과 산 사이의 협곡(?)을 따라 노선을 깔아도 된다. 3호선이면 부산 대다수 도심을 커버 가능. 하지만 대구의 경우 산이 별로 없어 노선 하나가 커버해야할 범위가 넓어지며 노선을 깔자면 복잡한 편이다.

게다가 시가지의 정중앙에 위치한 시내 동성로와 중구 일대의 접근성이 지나치게 좋아서 동성로 중심의 굳건한 단일도심체제가 늘 유지되고 있다. 대구와 비교해 인구가 100만명이나 적은 대전광역시는 동쪽 은행동과 서쪽 둔산신도시의 2도심 체제이다. 부산광역시의 경우도 남포동에서 서면으로 중심지가 옮겨졌고, 울산광역시도 성남동에서 삼산동으로 중심지가 옮겨졌으며, 광주광역시금남로에서 상무지구로 중심지가 옮겨졌으나, 대구만 동성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2014년 기준) 도시철도 3호선의 건설로 북쪽으로는 칠곡 3지구 지역과 남쪽으로는 수성구 지산동 일대가 독자적인 시내로써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또한 두류네거리와 감삼네거리 사이의 광장코아 지역과 몇몇 대학로 ; 남동쪽의 경산으로는 영남대학교, 서쪽의 성서로는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북쪽으로는 대구보건대학교/대구과학대학교, 남쪽으로는 영남대학병원 대학로를 중심으로 새로운 번화가들이 발생하는 중이다.

주요 하천으로는 대구 북쪽을 가로지르는 금호강과 대구 시내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다 금호강과 합류하는 신천이 있다. 신천에 대해 "조선 후기에 판 인공 하천"이라는 속설이 있지만 이는 잘못 와전된 이야기이다. 해당 문서 참고.

5.2. 기후


여름 때 특히 아주 살인적인 더위를 안겨다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공식적인 최고 기온 기록은 섭씨 40도(1942년 기록)이다.
  • 다만, 이 부분은 기록에 따라 1~2도 정도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후 다른 지역에서 이따금 섭씨 40도를 웃도는 기온이 발표되었음에도 여전히 대구가 가진 최고 기온 타이틀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첫손에 꼽힌다. 그래서 대구를 여름에 처음 찾은 외지 사람들은 그 폭염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을 가다가 대구를 지나면 계기판에 뜨는 실외온도가 갑자기 35도 이상을 찍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

대구가 이렇게까지 뜨거운 이유는 먼저 위 문단의 지형과 가장 큰 관련이 있다. 하필이면 많이 막힌 분지 지형이기 때문. 사방팔방이 대부분 산으로 가로막혀 있어서 뜨거운 열기가 대부분의 대구 주변에 이르기까지 통풍이 당최 잘 안 되는 것이 1차적인 원인. 거기다 대도시가 되면서 매년 더위에 결국 참다 못해 에어콘을 도입하면서 점차 도시 자체의 열섬 현상도 기온을 올리는 데 한몫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여름이면 기본적인 기온 보다 체감 온도가 더욱 더 달아오르기에 사람들이 힘겨운 것.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드문 35도 이상의 폭염이 대구에선 상당히 흔한 편이다. 덕분에 대구시민들 중에서 이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사람도 있다. 덥부심

  • 전국적으로 더운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1994년 여름의 경우, 대구는 타 지역보다 더욱 더 더워서 평균기온이 7월 30.2도, 8월 29.1도를 기록했고, 특히 7월 4일부터 25일까지 22일 연속으로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거의 살인적인 수준의 더위가 이어졌다. (이 때 대구에서 여름을 나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원래 대구 여름철은 그냥 대구 도시 전체가 찜통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더위지만, 1994년엔 특히 너무나 뜨거운 더위에 병원에 실려간 사람들, 화상을 입어서 치료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무척 많았을 뿐더러 자칫하면 도시 전역이 마비 되기 직전이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긴 셈. 더위에 익숙한 대구 사람들임에도 1994년 이후 에어콘을 설치하는 집이 점점 늘어나기도 했고, 이때의 더위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길거리에서 땀띠가 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아니 비결이 뭐요?"라고 행인들이 캐묻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994년의 더위는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전까지는 노인이나 어린이 아니면 개울가가 아니라면 소매없는 셔츠 차림이나 남자들이 양말없이 맨발로 샌들을 신는 것이 금기시되었지만, 94년에는 하도 더워 그런 금기도 없어져버렸다. 1994년에는 이 무더위 중 39도를 넘는 날도 몇 차례 있었을 정도였다. 이 뜨거운 온도는 아스팔트에 떨어진 계란이 반숙이 된다거나(...) 양계장 닭 집단 폐사 등 여러 사건을 일으켰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1994년의 살인적인 여름에 40.0도의 한국 최고 기온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체감 온도는 이미 42도를 넘었을지도(...).

덕분에 대구 사람이 서울로 올라왔을 때 서울 사람이 덥다고 헉헉대는 걸 보고 맘껏 웃어주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사실 워낙 더운 여름을 자꾸 겪어서 익숙해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뜨거울 때만 열을 어떻게든 식혀서 넘기는 데 익숙하지만, 이게 전혀 아닌 사람이 대구의 여름을 겪게 되면 당연히 감당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체질적으로 더위에 금새 적응 하는 사람이야 종종 있다.

게다가 대구 국제 육상 대회는 또 여름에 개최된다. 간혹 뉴스에서 대구 날씨에 외국 선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여주는데... 동유럽이나 북유럽 선수들은 죽어나는 표정인데 반해, 적도지역의 아프리카 선수들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너무 좋다, 마치 고향에 있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단 이와 같이 대구의 날씨 하면 더위부터 떠올리게 되지만, 변덕이 죽 끓듯이 심하다는 표현 내지는 청개구리 같다고 해야할 정도로 차이가 심해서 한여름에 의외로 서늘한 날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저 살인적인 1994년의 바로 전해인 1993년 여름철만 해도 대구가 더이상 덥지 않으려나 할 정도로 비교적 서늘했다. 1993년 여름은 1994년과 반대로 전국적으로 서늘한 편이었는데, 이 때 대구의 평균기온은 7월과 8월 모두 22.9도였다. 1년 전보다 같은 기간의 평균기온이 무려 7도 가량이나 낮았다. 이 때 서울은 23.3도, 23.2도였으니 이 7, 8월은 서울보다 더 기온이 낮았던 것이다!

이는 대구의 지형과 위치와 관련이 있다. 분지지형이니 북태평양 기단이 강하게 발달하면 사방에서 내려오는 열기가 더욱 강해지지만, 북동쪽의 오호츠크해 기단이 발달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북쪽은 산지이고 동쪽은 열려 있는 지형이므로, 북쪽이나 북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태백산맥 서쪽과 마찬가지로 기온이 많이 오르지만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기온이 의외로 많이 오르지 않는다. 이럴 경우는 서울이나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비해 오히려 더 서늘해진다. 그래서 여름철에 기온이 많이 오를때는 타 지역에 비해 기온이 훨씬 높지만, 의외로 기온이 덜 오르는 경우도 있어서 7, 8월의 평균기온을 타지역과 비교하면 호남지방의 전주나 광주와 비슷하고 서울과 비교해도 1도 정도밖에 높지 않으며 제주도보다는 조금 낮다.

제주도 쪽은 여름철 평균기온은 높은 편이지만 극단적으로 온도가 높게 올라가는 편은 아니다. 역대 최고기온을 보면 제주 37.5℃ vs 대구 40.0℃로 대구가 훨씬 높으며, 제주시보다 여름 평균기온이 더 높은 서귀포의 경우 역대 최고기온은 35.9℃에 불과하다. 1981년~2010년 7월 평균기온 대구 25.8도, 전주 25.8도, 광주 25.6도, 서울 24.9도, 제주 25.8도 / 8월 평균기온 대구 26.4도, 전주 26.2도, 광주 26.2도, 서울 25.7도, 제주 26.8도. 서울로 간 대구 출신자들은 서울이 더위에 시달리면 고향에 있는 가족, 친지, 친구들은 더 더운 곳에서 고생할 것이라며 걱정하기도 하는데 의외로 대구가 더 서늘한 경우도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2012년 6월도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 2012년 6월 서울은 관측이래 최고의 6월 더위를 겪었지만(덧붙여 가뭄까지) 대구의 기온이 오히려 더 낮은 날이 많았다.#

하지만 2012년 7월 들어선 비교적 서늘하던 대구도 폭염에는 얄짤없었다.(...) 7월 중순 경부터 폭염경보에 휩싸였고(다른 대부분 지방은 폭염주의보 수준...) 경산, 밀양, 경주, 합천 등의 영남 내륙 도시들과 함께 가장 푹푹 찌는 무더위를 겪었다.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

2013년 8월 폭염에서 울산광역시이틀 연속 40도를 기록하면서 대구의 아성을 위협했다. ㅎㄷㄷ

한편 1990년대 중반 푸른 대구 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나무 심기 운동과 전국 최초로 담장 허물기 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났고 이는 상당한 효과를 보았으며, 덕분에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가장 더운 도시 이미지를 조금은 벗는데 성공하였다. 은근히 자존심 상한다 이곳 도시도 좀 본받을 필요가 있다. 근데 한 도시는 분지 지형이 아니라 평야라서 생각만큼 효과를 못 본다는 게 큰 문제!!! 또한 관측망의 확대로 밀양, 합천 등의 최고기온이 대구보다 더 올라가는 경우가 잦아 이쪽이 더 더운 도시로 꼽히고 있다. 물론 광역시 레벨에선 여전히 가장 더울 때에는 가장 기온이 많이 올라기는 한다. 그래도 덕분에 상당수의 지방단체에서 대구의 푸른 대구 운동을 벤치마킹하였다.

겨울은 크게 춥지는 않은 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안 춥다는거지 춥긴 추운데, 바다의 영향으로 겨울에 온화한 해안 지역을 제외한 내륙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편이다. 서울의 1월 기온과 대구의 1월 기온을 비교하면 4~5도 정도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위도가 낮은 지역에 있는 영향도 있지만 열섬현상으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지 않는 것도 한 이유가 된다. 겨울철 기온은 중부 내륙지방에 비해서도 물론 높지만, 주변 남부 내륙지방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다. 다만, 내륙지방 치고는 바람은 강한 편. 연평균 풍속은 2.7m/s인데 내륙지방에서는 높은 편이다. 요약하자면 여름은 엄청덥고 겨울은 평범하다. 그러나 여름이 너무 더워서 겨울이 상대적으로 춥게 느껴진다.

여름철 더위와 함께 대구 기후의 특징 중에서 손에 꼽을만한 다른 한가지는 비도 잘 안오고 눈도 잘 안오는 소우지(小雨地)라는 점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 내외로 대구 일대는 예로부터 한국의 3대 소우지로 꼽혔고, 가뭄이 드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3대 소우지로 개마고원, 대동강 하구, 대구분지를 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함경북도 해안지방도 대구 일대보다 강수량이 적다. 대구사는 사람으로써 대구에서 눈이 쌓이는 날은 1년에 하루이틀뿐이다. 눈이 쌓이면 축제가 일어난다(..)

대구는 홍수가 나는 일이 드물다. 5월~9월은 강수량이 많지만 나머지 달은 강수량이 적고 맑은 날이 많다. 겨울철 강수량이 특히 적어서 눈도 적다. 1980년내까지만 해도 눈이 많이 오는편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차량보급으로인한 온난화로 눈이 안오게 되었다. 눈이 적기는 해도 부산보다는 많이 오는 편. 종종 눈이 쌓일 정도로 오지만 지형이 평탄하고 도로가 잘 되어 있어 부산만큼의 헬게이트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부산은 어쩌다 한번 눈이 내려 얼어붙으면 산이 많은 지형과 한 쪽 위주로 난 도로망에 눈길에 익숙하지 않은 운전자들 크리까지 겹쳐 도시 기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한다. 눈이 잘 오지는 않지만 한 번 내리면 폭설이 되어 내린다. 가장 최근에는 2012년 12월 18일 에 눈이 많이 왔다. 12월만으로 한정하면 대구에 60년 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이 날 폭설로 대구에 60년 만에 눈이 가장 많이 왔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사실 1월이나 2월에 그보다 눈이 더 많이 온 때가 여러 차례 있었다. 12월 눈으로는 60년 만의 폭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눈이 잘 오지 않는 덕택에 공군으로 지원하여 대구에 있는 K-2(육군부대도 있기는 하다. 헬기대대 하나와 공병중대 하나가 K-2 기지 안에 위치해 있다.)로 발령받거나 육군으로 지원하여 대구 제50보병사단 본부나 제2작전사령부 등으로 온다면 적어도 대한민국 국군 최대의 적 중 하나인 제설과는 인연없는 군 생활을 보낼 수도 있다 카더라.

그러나 그 대신 여름에 쩔어주는 기온과 함께 말려 죽어나가는 것이 뭔지를 느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전방 지역도 사실 여름에 충분히 덥다. 다만 대구 보다는 꽤 나을 뿐... 여름 체감 온도는 대구만한 곳이 없다고는 하나, 전방으로 갈 수 록 알다시피 겨울에는...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끔 운 나쁘게 대구 지역에서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 군복무 중 이 때 걸리게 되면 대구라도 제설작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좀 오래 된 자료이기는 한데, 1953년 1월 18일, 대구에 50cm 이상의 눈이 왔다. 한국의 대도시 중에서는 가장 눈이 많이 쌓인 기록으로는 가장 많은 눈이 내린 것.

다만, 2000년대 들어 서울, 부산, 광주, 대전에서 눈 기록을 갈아치우고, 포항에서도 역시 눈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대구만큼은 2000년대 들어 20cm 이상의 눈이 내리지 않고 있어 예전의 눈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대구에서도 언제 어떻게 폭설이 내릴지 모르는 일이므로 원래 눈이 잘 안 온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또한 대구는 소우지다 보니 평소 제설에 관련된 물품이나 기반이 상당히 취약한 편이기 때문에 일이 한번 제대로 터지면 제설 작업과 도구를 충분히 상비해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더 고생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12cm의 눈이 쌓였던 2012년 12월 28일, 대구의 모든 교통수단이 정지되어 도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적이 있다.

옛날에는 맑은 날이 많고 일교차가 큰 이유로 사과포도 등의 작물이 잘 자랐고 대구 능금은 특히 유명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사과나무가 들어온 곳이다. 미국인 선교사가 1900년에 심었던 나무의 자손목이 시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다. 기후 조건이 알맞았는지 나이 드신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에도 '능금' 농사가 활발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급속한 온난화와 함께 진행된 도시화로 사과 농사를 짓는 지역이 많이 축소되었다. 달성군 지역과 팔공산 인근을 제외하면 과수원 찾기도 힘들다. 그러나 교과서 편찬위원들의 귀차니즘과 타도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여전히 대구의 특산물은 사과이다. 다만 실제 생산량과 별개로 조건상 사과 재배에 아주 유리한 분지 지형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6. 교육

대학교 등 주요 교육 시설이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에 과거부터 교육도시라는 이미지가 잡혀 있다. 하지만 대구 시내에 있던 대학교들 중 상당수가 경산시으로 부지를 옮긴 상태여서 대구의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 대학교들 중 실제로는 부지가 경산에 있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결국 경북대학교는 대구에 있고대구대학교는 경북에 있는 현상이 발생했다. 경북대학교가 지어질 당시에는 경북대의 부지가 대구땅이 아니라 경상북도땅이었기 때문이다.

경산시는 행정구역상으로 경상북도 안에 있긴 하지만 대구 바로 옆에 있고 시내버스로도 쉽게 그것도 구간요금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며 지역번호도 대구와 같은 053을 쓰는 등 같은 생활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보통 경산에 있는 대학교들까지도 '대구의 대학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성구가 대구의 교육메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명문고교나 학원 등 교육시설의 다수가 수성구에 몰리다 보니 다른 구에선 위화감도 토로한다.

2014년 수학능력시험에선 전국 만점자 12명 중 수성구의 경신고에서 4명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아래는 대구의 대학들 목록. 실제 위치는 경북(경산)이라도 대구권으로 포함되는 학교들 포함.

7. 군사

한강 이남에서는 대전권(대전광역시, 계룡시, 논산시), 광주권과 함께 중요한 군사도시이다.

  • 제2작전사령부(무열대) - 구 제2야전군사령부, 제50보병사단 본부, 제5군수지원사령부 등의 육군 부대

  • 주한미군 미8군 부대 -
    • 캠프 워커 - 남구 봉덕동. 후문 주변이 대명5동, 대명9동이지만 네이버지도나 다음지도 등에서 봉덕3동의 구역을 보면 기지 거의 대부분은 봉덕3동에 속해 있다. 그리고 대명동에 있는 대로변의 문은 후문이며, 봉덕동 쪽에 있는 문이 정문으로서 길은 더 좁지만 출입하는 차량이나 사람이 훨씬 많다. 참고로 정문 바로 옆에 영어유치원이 붙어 있으며 옛 졸업생 경험담(꽤 오래된 졸업생)의 기억에 따르면 건물 창문으로 차량 격납고와 트럭, 험비 등이 다 보인다고 카더라.(...) 시설은 초대형 PX,패스트푸드점'들',볼링장,대형 수영장,전문 카페,레스토랑,골프장 등 수도 없이 많으며 거의 컨트리클럽 수준(...). 우리나라 주둔지와는 굉장한 차이를 보인다.

    • 캠프 헨리 - 이천동
    • 캠프 조지 - 대명동

이 때문에 대구 시내인 동성로 일대에선 주말이 되면 클럽들이 밀집해 있는 로데오거리 쪽으로 영어강사인 척 하는 미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캠프워커는 후문 바로 앞에서 지하철로 4정거장, 또는 정문에서 버스로 15분이면 동성로로 갈 수 있어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시내에 나와 민간인인 척하는 미군이 자주 보인다.그래봤자 군바리 티 다 난다. 때문에 기지 부근의 술집은 정문쪽에 소수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거나 그것도 한국인을 상대하는 가게로 바뀌었다.

참고로 제11전투비행단의 경우 동대구역 바로 인근에 있어서, 처음 도시를 찾는 외지인의 경우는 도시 한 가운데에서 전투기가 날라다니는 광경에 기묘함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이는 애초에 제11전투비행단이 대구 외곽에 지어졌으나, 시가지가 끊임없이 확장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비행단 부지를 먹어버린 케이스다. 그래서 동구, 북구쪽은 낮에 전투기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 끝에 2013년 3월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그해 10월 특별법이 시행되어 K2가 이전하게 되면 소음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K2 이전지 대상 선정 및 새 공군기지 건설 등으로 그 시일은 장기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K2이전이 이제 더 이상 꿈만은 아니라는 점에 고무적이라 할만하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전진기지 중 하나였으며 지금도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전쟁 당시 대구로 밀집한 인재들, 특히 예술가들은 이 후 대구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도 과거에 대구에 있었으나, 1996년 대전의 자운대로 이전했다. 동부정류장 맞은편 지금은 이마트 만촌점과 메트로팔레스 아파트가 있는 곳이 옛 국군간호사관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그런데 대구 사람들 중에 옆동네사관학교가 있다는 건 알아도 과거 대구에도 사관학교가 있었다는 것을 나이 지긋하신 분들 조차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더 나아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가 주한미군의 정밀실사결과 대구에 배치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지은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다른 지역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고 대구와 대구 인근 지역만이 최적의 배치 조건을 갖추고 있는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

8. 정치

대구경북을 합쳐서 일명 TK라 불리며 새누리당계 보수정당의 득세가 가장 강력한 지역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조선모스크바라고 불렸을 정도로 좌파적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 비율을 보면 사회주의계열이 압도적으로 활동이 활발했는데 그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실례로 6.10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 가운데 오설의 경우, 조선공산당 초창기 인물로 경북 안동의 양반집안 출신이었다.

이 때문인지 1946년에 대구 10.1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 건국 이후에도, 나아가 제1공화국기, 제2공화국기 까지만 해도 대구는 진보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었다. 경북지역 선거를 보면 알 수 있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부정투표가 무척 심했었는데 대구지역으로만 친다면 조봉암이 무려 72.3%이승만 27.7%을 압도했었다!

1960년 2.28학생민주의거의 시발점이 된 지역도 대구였으며 제2공화국 시기에 '혁신정당'이라 할 수 있는 사회대중당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지역도 대구였다.

이런 대구의 정치 성향이 점점 친보수적으로 바뀐 원인은 한국전쟁 당시 남하하는 북한을 피해 대구로 몰려든 피난민들의 영향과 북한군의 대구 포격, 그리고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양민학살, 이후 지역발전 등이 있겠다. 당시 양민학살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 경상도 전역으로 특히 경남(부산)지역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1987년 이전까진 '나름대로' 야권 지지성향이 남아있었다. 심지어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구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무려 8석을 확보할 정도로 생각 이상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유명한 노동운동가 전태일도 대구 출신이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부터 점점 보수성향이 굳어져가 오늘날까지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 되었다.

새누리당 지지율이 높은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지만 2000년대 들어 비 새누리당의 지지율도 20% 내외로 꾸준하게 기록하는 등 의외로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층도 어느 정도 고정된 편이다. 다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새누리당의 넘사벽 지지율로 인해 그리 돋보이지 않을 뿐이다. 거기다 새누리당이 TK 지역을 텃밭으로 여기고 매너리즘에 빠져 지역을 홀대한다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야당의 지지율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가 40.4%의 득표를 하기도 했다. 비록 이한구 후보에 밀려 낙선했지만 지역감정을 어떻게든 깨고싶다는 여론이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김부겸은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일약 대구 야당 세력의 희망이 되었는데, 결과만 보면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가 57%로 당선되었으나 김부겸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간판으로 40.3%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해 확실히 과거에 비해 야권의 입지가 강해졌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 특히 수성구 지역에서는 김부겸 후보가 권영진 후보를 거의 근접하는 투표율을 얻었으며 재18대 총선 때 출마한 수성갑에 한정하면 오히려 50.1%로 권영진을 이겼다. 물론 김부겸 후보가 한 때 한나라당 소속이기도 했고 대구시장 선거 공약이나 프레임 등이 새누리당과 별 다를바 없는 포지션을 취했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당시 권영진 후보와 공약, 프레임에서 별 차이가 없었으며 오히려 김부겸 후보쪽이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공약으로 내기도.

하지만 김부겸의 원래 당적은 통합민주당이었다. 즉 노무현, 김원기, 정길 등의 대표적인 야당 정치인들과 함께 했었던 것. 게다가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이 되었을 때 공천을 받아 경기 군포에서 당선된 뒤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한나라당 내의 극우 성향 인사들과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킬 정도로 개혁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기본 성향은 새누리당과 다를 수밖에 없으며, 애초에 非새누리당계가 이 정도 득표율을 기록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2016년 총선 때 수성갑에 다시 도전한다는데, 현직인 이한구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판세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새누리당이 텃밭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여 어중이 떠중이를 공천할 경우 김부겸 후보가 박빙을 벗어난 격차로 이긴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의외로 노동당같은 좌파정당 지지율이 제일 높은 지역이기고 하다.

2013년 5월 18일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김범일 대구광역시장과 이재술 대구광역시의회 의장이 참석하였다. 1980년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만에 영남권 광역자치단체장 중에서는 최초로 기념식에 참석한 것이라고 한다.

9. 경제

대구광역시/경제 참조. 이 지역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대표 기업이 별로 없는 만큼 대기업이 전무하고 인구 대비 양질의 일자리가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자체 경제권이 바닥 수준이라 타지로 유출되는 인구가 많은데 대부분 일자리를 찾기 위한 청년층이다. 아니면 인근 지역으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근 지역을 제외한 순수 대구 경제권은 1993년 이래로 20년 넘게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에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인근 지역을 포함한 대구경북 광역경제권으로 보면 의외로 중위권이지만 대구경북 인구도 2000년대 초반 530만에서 2014년 현재 520만 이하로 떨어졌고 인구 감소률도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렇게 장밋빛 측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구의 경제를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대구의 사정을 모른 채, 모든 희망과 자신감을 떨어트린 채 자조하는 것도 결코 도움이 되기는 커녕,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달성군 현풍면과 구지면을 중십으로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한창 도로 및 산업부지 건설에 들어가있으며, 국가산업단지에 기업과 공단들이 들어서게 되면 대구가 다시 한 번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해볼 수도 있다. 구미, 포항, 창원 등이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하고 대규모 공단과 기업들이 입주함으로써 신생공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향후 대구경제에 적지 않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하여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등 4개 핵심 센터를 준공한 데 이어 국책연구기관 10개, 의료기업 60여 개를 유치하는 등 틀을 갖춰가고 있다.

2014년에는 삼성이 참여하여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유치했으며, 2015년에는 정부 제3통합전산센터, 대구 도학동 유치에 성공했다.

아울러 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신서혁신도시에 한국가스공사, 한국장학재단, 국감정원, 국사학진흥재단, 국산업단지공단, 앙교육연수원, 국감정원, 국교육학술정보원, 국뇌연구원, 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국정보화진흥원, 앙신체검사소, 용보증기금 등 12개의 공공기관, 공기업이 입주 및 입주예정에 있다.


2016년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 현지법인에 의해 완공되기 때문에 신세계가 지역의 고용 안정 및 활성화에 일정량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0. 문화

11. 교통

12. 인구

  • 2015년 2월 주민등록인구통계: 2,492,583명#

인구총조사는 통계청에서 직접 각 가정마다 방문하여 조사하는 통계이므로 실제 인구보다 적게 작성되는 경향이 있다. 통상 지역 인구를 언급할 때에는 안전행정부에서 발표하는 주민등록인구통계를 주로 사용한다.

13. 이모저모

13.1. 경산과의 통합

행정구역 개편, 경산시 항목에도 있지만 경산시는 사실상 대구광역시의 위성도시, 베드타운그것보다는 아예 한 몸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NO.1과 동시에 부도심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우선 지역번호(053)가 같다. 경산 시군 통합 이전엔 구 경산시만 대구 지역번호를 썼고, 구 경산군은 자체 지역번호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통합 후 구 경산군 지역도 경산시 지역의 지역번호를 따라가게 된 것이다.] 사실상의 '대구-경산 통합 요금제'로 시내버스 요금도 같다. 무엇보다 두 도시 간에는 시내버스 시계외요금이 없다. 아울러 대구광역시 시내버스는 경산 외 타 지역으로 가도 구간요금이 없으며 대구-경산 사이 환승도 가능하다. 다만 택시는 그런거 없었다. 2호선이 영남대까지 연장되기 전, 사월역에서 정평역까지 가는 거리를 택시를 탔는데 시외요금이라고 5000원 내놓으라는 기사분들이 한두명이 아니었다. 실제로 사월역과 정평역은 한 정거장 거리 밖에 안된다.

대구와 경산은 경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연담화가 진행돼서 예전부터 꾸준히 통합 논의가 제기되었다. 특히 경산시에서는 1994년부터 '대구경산통합추진위원회'를 시민들이 만들어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대구 동구, 대구 수성구, 경산-청도 국회의원들은 선거철이 되면 대구-경산 통합 공약을 내세운다. 경산-청도 의원들도 이에 뒤질세라 대구-경산 외에 청도 통합 떡밥도 던진다.

문제는 경상북도에서 광역자치단체로 독립해버린 대구와 달리 경산은 경상북도 산하 기초자치단체인데 경산이 경상북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포항, 구미, 경주에 이어 대략 도내 4위이다. 때문에 세수 감소를 우려해 쉽게 넘겨주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경산시 넘겨주는 건은 경상북도지사가 동의를 해줘야 하는데 과연.. 그래도 현재 전국적으로 통합 여론이 빗발치고 있어서 언젠가는 통합이 될 확률이 높고 무엇보다 대구-경산 시민들도 절반 이상이 통합에 긍정적이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서 '대구 경산 통합'을 치면 자동완성 검색어로 뜬다. 유사한 광역권 통합인 '대전 금산 통합', '부산 김해 통합' 또는 '부산 양산 통합'은 자동완성 검색어로 나오지 않는 것과 대조적인 것이다.

13.2. 대구신서혁신도시

혁신도시 홈페이지
대구혁신도시 홈페이지
동구 신서동 422만제곱미터 일대에 행정 신도시인 대구신서혁신도시가 건설 중이다. 경상북도 혁신도시는 김천시 율곡동(농소면, 남면 일원이었으나 2013년 11월에 율곡동으로 편입) 105만평.. 강원권, 전북권, 충북권, 제주권은 광역시 배출을 못한 광역자치단체라 혁신도시도 1개밖에 못 받았지만 달리 대구가 경북에서 분리되어 권역 내 혁신도시 2개를 받았다. 특히 불균형발전의 특혜를 업고 광역시를 쭉쭉 늘린 부울경권은 부산, 울산, 경남이 따로 1개씩 챙겨서 총 3개를 먹는 걸 보면 어째 균형발전인데 광역시 배출도 못하고 연명하는 곳에는 더 적게 배정되는 아이러니. 혁신도시가 세종특별자치시와 더불어 수도권 인구의 분산을 꾀하려는 목적인데 일단 순조롭게 공사 중에 있다. 대구 혁신도시에는 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단지공단(부산에 동남권본부, 구미에 대경권본부가 있다), 신용보증기금, 한국장학재단, 한국사학진흥재단, 중앙교육연수원(구 교육과학기술연수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가스공사, 한국감정원, 중앙신체검사소, 중앙119구조본부(신서혁신도시가 아닌 달성군 구지면 대구국가산업단지 안에 조성)까지 총 11개 기관 본사가 이전했거나 이전할 예정이다. 주변에 주거지구, 상업지구, 도로, 상수도 등 기반 시설이 공사 중에 있으며 2015년~2016년 완공 예정이다. 이 때문에 대구도시철도 1호선 안심역에서 하양역까지 연장 공사가 확정돼 2018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13.3. 그 밖의 얘기

  • 지역감정에 근거한 지역비하어로서 배트맨이 활동하는 도시 '고담'의 이름을 따서 고담대구가 있었지만 인구에 비해 치안은 매우 좋다. 토착 폭력조직인 칠성파가 건재하지만 타지의 폭력조직들처럼 그 세력이 크게 줄면서 유혈분쟁이 필요 없을 만큼 축소, 음지에서 토착세력화 돼서 딱히 큰 사고는 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담대구라는 이름이 유행을 타게 된 건 고담대구가 유행어가 된 2000년대 초반 디시인사이드의 방임과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소재만 노리는 인터넷 언론이 빚어낸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당시 아무리 해당 게시물을 신고해도 아무 조치도 없었으며 고담대구 붐이 가라앉자 호남비하로 대상이 달라진 뒤에도 달라진 게 없다. 방임과 방조는 종이 한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

    여기서 엽기적인 사건은 강력범죄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치안상황 보다는 돌발적인 해프닝에 가깝다. 그리고 희한한 범죄가 많다는 그릇된 편견이 있지만 그 빈도가 타 지역보다 딱히 높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게다가 보도되는 빈도도 다른 소도시에 비해서 광역시가 더 높고 돋보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기도 대한민국 인구 서열 4위의 대도시인 만큼 진짜 강력범죄나 흉악범죄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범죄야 전국 인구 절반인 수도권에서 많이 터지는 건 당연하고 그래서 국비로 경찰서도 무지막지하게 늘려놨다.

  • 2012년 도검소지자에 대해서 년당 세금부과 개시를 먼저 시작하는 곳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 상태이다.

  • 2009년부터 달빛동맹을 지속하고있다. 달빛동맹이란 대구-광주 지방자치단체 협력을 가리키는 말로서 달구벌의 '달'과 빛고을의 '빛'에서 한 글자 씩 따와서 명명한 이름이다. 호남권 중에서 교류가 많지 않았던 광주광역시와의 지자체 간 협력이 잦아들고 있다. 근데 엄밀히 따지면 '달구벌'의 '달구'는 닭의 옛말인지라, 달빛동맹의 달빛은 moonlight 가 아니라 chicken light...즉, 닭빛이 된다. 이후 민관협의체로 굳어진 상태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공장을 전라도로 뺏어가니 대구기업들을 다 죽이니 하는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 1998년 경북도의회 한 의원이 “호남은 건설 경기도 좋고 백화점도 생기고 호황이라 카더라”는 대구건설업자들 사이의 소문이 맞냐는 소리가 나오고 대구시의회 의원들을 건설 현장에 동행해 사실 확인까지 시켜준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같은 오해를 풀기 위해 시작되었다. 뭐 실제는 관급 공사 입찰 방식이 추첨제로 바뀌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기 위해 기존 건설회사들이 면허를 여러 개 등록한 것이었다고...

    대구시장과 광주시장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 1일 시장 대행 체험을 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갖기도 하고, 각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행사에도 참여하는 등 침체된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방안으로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2013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식 행사에 김범일 대구시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두 지역의 초중고대학프로 야구팀의 정규교류전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 2013년 현재 5천억원이 넘는 채무를 변제했다. 2013년 9월 중순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대구시 총 부채는 2조3천324억원으로 2005년말 현재 2조8천442억원보다 무려 5천118억원이 줄어들었다. 이는 매년 600여억원 정도의 채무를 지속적으로 감축한 것이다. 대구시 채무의 건전성은 대체로 높다는 평가다. 김범일 대구광역시장은 “예산대비 채무비율이 70%대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다. 현재는 32%까지 떨어질 정도로 안전행정부가 인정하는 채무관리의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며 “앞으로 5년간 2천596억원을 추가로 감축하는 등 건전 채무 관리 기조를 유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일제강점기 당시의 로마자 표기명은 Taiku. 해방이후에는 Taegu였으나, 현재는 Daegu로 정착했다. 참고로 라틴어로는 Taeguensis다.

  • 함박이와 생글이가 마스코트가 안되었다면 생선 대구가 마스코트가 될 뻔 했다 카더라(...).

  • '나티'라는 신 섬유를 개발 중이던 아버지의 추락사와 딸의 귀국, 이복동생을 둘러 싼 갈등, 아버지를 따르던 후배,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형사, 그리고 그들이 '나티 프로젝트'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는 줄거리의 영화를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는데 알고 보니 사기였던 사건이 있다. 그때 MBC 뉴스에서도 영화 촬영을 한다고 소식을 전했다가 다음날 사기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대구 울린 영화 '나티 프로젝트'소동 `나티 프로젝트' 제작사 대구본부장 체포

  • 달성공원 역시 대구의 명물. 특히 90년대 만화방을 주름잡던 만화가 이미라인어공주를 위하여를 읽어본 사람들이 실제로 달성공원에 성지순례를 가보기도 했다.

14. 대구광역시 관련 유명인물

흔히 그러듯이 출생, 성장 모두 포함.

14.1. 실존 인물

14.2. 가상 인물

15. 자매 결연 도시

daeguimg01.jpg
[JPG 그림 (Unknown)]


16. 대중문화 속의 대구광역시

16.1. 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한 게임

16.2. 현인의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으로 수성구 고모동이 배경이다. 1948년 박시춘이 이 곳에서 형제봉을 바라보며 영감을 작곡했다고 알려 져 있는데 원래 제목은 '비 리는 고모령'이다. 망우당공원 인근 인터불고호텔 진입로에 있는 만촌자전거경기장 옆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있는데 1991년 수성구의회가 세운 것이다.

16.2.1. 가사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몇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눈물어린 인생고개 몇구비드냐
장명등이 깜박이던 주막집에서
손바닥에 그린 하소 졸아가면서
오늘밤도 불러 본다 망향의 노래

16.3. 동명의 악극 '비 내리는 고모령'

매년 가끔 수성아트피아에서 상영한다. 그 밖에 1969년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16.4. 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한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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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대구광역시는 인천광역시와 동시에 광역시(당시엔 직할시였지만)가 되었지만, 광역시 설치 근거가 된 법률의 제목이 <대구직할시및인천직할시설치에관한법률>이라서 인천광역시보다 선임(?) 대접을 받고 있다. 인구는 2000년경에 추월당했지만(2014년 10월 기준으론 약 40만 명 정도의 차이가 있다)…게다가 인천광역시는 서울특별시와 가깝기 때문에 제3의 도시라는 존재감을 어필하기가 좀 어렵다.
  • [2] 일본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가나가와 현이 오사카 부보다, 그리고 (가나가와 현에 있는) 요코하마 시가 오사카 시보다 인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오사카를 도쿄 바로 다음에 놓는 경우가 그것이다. 요코하마 시민들은 당연히 요코하마가 2인자라고 생각하지만 가나가와 현이 도쿄 도와 바로 붙어있기 때문에 제대로 묻혔으며 각종 미디어와 연구 자료에서도 요코하마는 무시하고 도쿄-오사카-나고야삼대장으로 취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