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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스트

최종 변경일자: 2016-04-25 22:08:06 Contributors


DC.jpg
[JPG 그림 (Unknown)]

GSTAR 2011에 전시된 모델.

cx-1.jpg
[JPG 그림 (Unknown)]

tv일체형 모델 cx-1이 후에 발매되었다.


CPU SH-4 128bit 그래픽스내장 RISC CPU
(히타치사의 CPU. PDA용으로도 쓰였다.)
그래픽엔진 PowerVR2 for DC
메모리 Main - 16Mb
Video - 8Mb
Sound - 2Mb
사운드 수퍼 인텔리전트 사운드 프로세서
모뎀 33,600bps
미디어 GD-ROM
데이터 세이브 VMS(Visual Memory System)
약칭 DC, 드퀘 드캐

목차

1. 개요
1.1. 개발 당시 기대감
1.2. SONY와의 관련성
1.3. XBOX와의 관련성
2. 역사
2.1. 발매 전
2.2. 발매 직후 , 초기
2.3. 중반
2.4. 후반
2.5. 몰락
3. 후대의 평가
4. 기타 특이사항
5. 발매된 게임
5.1. SEGA
5.2. 타회사
5.3. 미출시

1. 개요

세가에서 세가 새턴의 차세대기로 발매했던 게임기. 1998년 11월 27일 일본에서 가장 먼저 발매되었다. 드림캐스트라는 이름은 D의 식탁, 너미 제로 등을 제작했던 노 켄지[1]가 지어준 이름이며, Dream(꿈)과 Broadcast(방송)의 합성어로 '꿈을 방송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부르는 약칭은 도리캬스(ドリキャス)

탄생부터 플레이스테이션과의 연관성을 빼 놓을 수가 없다. 플레이스테이션의 3D 지원 때문에 고배를 마셔야 했던 탓인지 3D 성능은 새턴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2D의 강점 역시 이어받아 발매 당시엔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최초로 모뎀을 내장한 게임기이며[2], 전용 웹 브라우저나 온라인 기능 등을 지원했던 것도 특징.

구조는 아케이드 게임 기판인 NAOMI의 마이너 체인지 버전이었다. 드림캐스트가 NAOMI의 마이너 체인지 버전이 된 이유는, 드캐가 원래 아케이드 게임을 집에서라는, 세가가 그동안 이루어 내려고 했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서로 간에 상호이식을 위해 이런 구조가 된 것이다.

1.1. 개발 당시 기대감

개발 당시에는 여러 모로 큰 기대를 모았으며, 특히 만화인 베르세르크를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게임이 사상 최초로 발매되면서 이후 게임들이 대거 개발될 거라며 성공을 점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처음 등장했을 때 세가타 산시로의 바통을 이어받은 듯한 광고모델로 실제 세가 전무였던 유카와 전무를 내세우면서 광고 캠페인에 들어갔지만, "세가새턴 해라!"는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특유의 찌질함 덕분에 기존 팬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못 끌어냈다.

그리고 소니의 화려한 플레이스테이션2 마케팅도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억누르는데 성공했다. 당시 소니는 PS2가 드림캐스트보다 10배 이상의 폴리곤 능력이 있고 성능 자체가 비교가 안된다는 식으로 홍보[3]해왔기에 사람들은 왠지 PS2 나오면 성능이 떨어지는 드림캐스트는 망할거라고 예상하였다. 실제로 발매되고나서 보니 PS2 게임개발의 어려움과 DC보다 출력 부위의 퀄리티가 떨어져 TV상에 표시되는 화상의 텍스처와 색감이 실제보다 데이터보다 떨어져 보이는등...(비싼 기계인데 DC급의 부품은 써야 되는거 아니냐는 비난도 들었다) 이렇게 초기에는 DC보다 그래픽이 나빠보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무튼 PS2 자체가 나쁜 기계가 아니었기에 소니의 마케팅은 그야말로 성공. 세가 새턴때의 앙숙이였던 세가를 완전히 눌러버리는 쾌거(?)를 달성한다.

또한 드림캐스트의 패배 원인중 하나는, 그 당시 아타리 7800 이후로 구현에 성공한 플스2의 하위 호환 기능.[4]이 기능이 초반 마케팅에 상당히 먹혔다. 당장 지금의 게임 수는 부족할 지 언정, 플레이스테이션의 게임을 즐기다 보면 곧 명작들이 나올거란 기대감 때문.

원래 DVD를 넣으려다 포기한 것도 결국 악재로 작용했는데, 나중에 플레이스테이션2는 "이건 DVD플레이어예요."라는 핑계로 구입한 경우도 많았지만 드캐는….

1.2. SONY와의 관련성

재미있는 점을 보자면, 소니가 플레이 스테이션 3D 게임을 노리고 제대로 된 게임기로만 만든 점[5]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드림캐스트[6]가 DVD기능을 탑재한 PS2에 그대로 처참하게 밀렸다는 점.

소프트를 보면 세가의 하드인 만큼 걸작이라 칭하는 타이틀이 대거 등장했으나... 이미 게임기 자체가 묻히고 있었기 때문에 베르세르크 말고 다른 게임이 나왔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 결국 하위호환과 보다 향상된 성능으로 등장한 소니의 PS2와 겨루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 별난 이름처럼 세가의 꿈을 안은 채 침몰하고 만다. 아무튼 대성공한 PS의 후속 기종의 등장으로 서드파티 제작사들이 드림캐스트용 게임 발매를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로 들어서자 상당한 소프트웨어의 부재에 시달렸고, 그 상황을 세가 스스로가 커버하려 했기 때문에 한달에 레이싱, 액션, 퍼즐 같이 몇개나 되는 게임을 세가 브랜드로 발매하는 등의 사투를 벌였다. 발매 리스트를 보면 제정신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그리고 이 기기의 실패로 세가는 가정용 게임콘솔 사업에서는 완전히 철수, 소프트만 만드는 회사가 돼 버렸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기존 구매자들에게 유상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으나, 2007년 9월 28일부터 새턴과 함께 그마저도 중단, 이제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

하지만 2001년 3월 하드웨어 생산이 완전히 중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몇 편씩 소프트웨어가 발매되었다. 심지어는 발매 중단된지 6년뒤인 2007년 2월에도 타이틀이 발매되었으며 이로부터 7년후인 2014년 3월에도 정식 라이센스는 받지 않았지만 인디게임이 발매되었다. 세가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마지막 게임인 '카라스'는 2007년 3월 출시.

1.3. XBOX와의 관련성

컴퓨터와 유사한 하드웨어와 윈도우 기반(드림캐스트는 윈도우CE를 탑재) OS로 인해 엑스박스의 선조급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엑박 패드의 트리거도 드캐 패드를 계승한 제품이고 은근 드캐의 후속작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세가가 하는 걸 보고 답답해서 MS가 엑박을 만들었다는 농담도 있다.[7]

실제로 엑스박스 개발에 드림캐스트 개발진들이 참여 혹은 피드백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애초에 구엑박 시절 당시 드림캐스트 하위 호환까지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걸 보면 엑스박스가 드림캐스트의 정신적 후속기라고 봐도 무방할거다..(정작 세가 인수는 MS가 안하고 사미가 해버렸지만..)

사실 하드웨어의 아키텍쳐는 괴악한 지금까지의 세가 게임기의 모습을 탈피해서, 상당히 합리적인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최종적으로 추가파츠 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메가드라이브나 보조 프로세서로 떡칠을 한 세가 새턴와 비교하면 상식적인 구조다. 만일 세가가 드림캐스트의 후속기를 발매할 수 있었다면 그 이후의 물건은 하위호환을 기대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다.

그리고 본래 세가는 나오미의 게임을 드림캐스트 이외의 게임기에 이식할 것은 전제로 하지 않고 게임기와 나오미를 설계했기에, 나오미 기판은 드캐 이외의 게임기의 이식에는 맞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드캐의 몰락이후 타사의 게임기에 게임을 이식하기가 꽤 어려웠고, 이후에 기판을 생산할 때에는 타사의 게임기로 이식하기 용이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2. 역사

2.1. 발매 전

세가 새턴은 일본에선 초반 잘 나갔던 기세와는 달리 중반, 파이널 판타지 7의 발매로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고, 북미에선 초반부터 아예 플레이스테이션에게 원사이드하게 밀렸다. 이 기색이 확실해지자 세가는 바로 다음 콘솔을 준비하는데, 플레이스테이션을 누르기 위해 자신들의 하드웨어 노하우와 과거의 실패 경험 등을 이용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콘솔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이제 갓 시장에 진입한 초보인 소니와는 달리 거의 20년 가까이 콘솔을 만들어 왔던 노하우를 총 집합해 보자는 것. 세가 새턴의 괴팍한 구조로 인해 얻은 교훈으로, 콘솔의 구조를 최대한 쉽게 만들고 소프트웨어계에서 거의 레전설급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아 Windows CE를 드림캐스트에 맞춰 바꾸고, 이렉트 X를 통한 개발이 가능하도록 한다, 당시 개발자들 사이에선 드림캐스트는 말도 안되게 개발이 쉬운 기종으로, 이는 곧 드림캐스트의 서드파티를 끌어당기는 요인이 되었으며 루머에 따르면 에픽은 언리얼 엔진을 드림캐스트에 이식하는 작업을 단 1달만에 하기도 했다고 한다...[8][9] [10] 거기에 새턴의 호환 기판인 STVMODEL 1MODEL 2의 힘에 밀려 아케이드와의 연동이 잘 되지 못했던 점을 반성, 나오미를 적극 밀어주기 시작했다.

1997년, 5월 E3에서 세가는 세가 새턴의 충격적인 실패로 인해 세가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 이른다. 그리고 동시에 게이머들 사이에 급속히 루머가 퍼져 나갔는데. 세가가 나오미라는 이름의 아케이드 보드를 제작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블랙 벨트와 듀랄이란 개발안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3dfx부두파워PC CPU가 들어간 블랙 벨트, NEC과 POWERVR2 기반의 듀랄. 세가 아메리카와 세가 본사의 신경전이 벌어졌고, 결국 9월, 민간에 공개된 스펙은 당시 돌던 루머인 듀랄에 기반한 것이였다.

그 해 10월 경, 세가는 비디오 게임 관계자들에게만 드림캐스트를 카타나라는 이름으로 시연했는데, 이 당시 시연했던 게임이 모델 3로 제작했던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 커드 레이싱이였다.[11]이 때 기술시연이 꽤 잘 되었었고, 쉬운 개발 환경이 꽤 먹혀들어 캡콤, 남코 등의 굵직한 회사들이 연달아 개발 의사를 밝히게 된다.
이후 사람 얼굴 모델링의 시연도 했는데, 이 얼굴 모델링의 모델이 된 인물은 당시 세가 간부였던 이리마지리.[12]

1998년 3월, 도쿄게임쇼에서 드림캐스트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고 나타났다. 이는 세가의 차세대 기종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정이 된 순간이였으며, 동시에 첫 게임으로 D의 식탁의 후속작인 D2가 발표 되었다. 그해 5월, 세가의 드림캐스트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1000명이 참가했고, 120곳의 서드파티가 개발 의사를 표현한 이 기자회견은 드림캐스트의 미래를 아주 밝게 비추어줬다.

2.2. 발매 직후 , 초기

1998년 11월, 일본에서 드림캐스트가 발매된다. 드림캐스트는 발매 당시 준비해놓은 15만대의 물량을 발매 당일 매진시켰고, 오히려 급한건 세가 자신으로 NEC이 Power VR을 죄송 ㅠㅠ , 물량이 없삼이라며 물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기까지 했다. 물론 동발 타이틀인 버추어 파이터 3tb 등의 이식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런 문제따위 정말 가벼운 장애물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드림캐스트는 파죽지세로 팔려나갔다. 뛰어난 성능에도 매우 저렴한 가격[13], 그 어느 경쟁 기종이 나오더라도 드림캐스트를 막지 못할 것 같았다.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도 드림 캐스트는 소니에게 있어서 재앙이다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


1999년 3월에는 소니가 PS2를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실기가 공개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컨셉만을 스리슬쩍 보여주는 이 행사에 비디오 게임 관계자가 1500명정도 모일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이때 드림캐스트는 한창 보급에 열을 올리는 시기였고 본격적으로 미국 런칭도 준비하는 등 무척 잘나가고 있었다.

드림캐스트의 맥을 죽일 필요가 있었던 소니는 이때 DVD 재생기능과 PS1과의 하위호환 기능을 처음으로 공개하고[14] 이 밖에도 이모션 엔진, 천만 단위의 폴리곤 등의 구라스펙을 소개하자 [15] 이렇게 보니까 소니도 존나 비겁하네... 세가는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연말 시장에 모든걸 걸기 위해 D2, 쉔무, 바이오하자드 코드: 베로니카 등의 대작을 차례차례 발매하기 시작한다.

2.3. 중반

일단 세 작품 중 처음으로 1998년, 1999년 연말 시장에 나타난 D2쉔무. 하지만 이들 타이틀은 기존 드림캐스트 사용자들만 샀고, 콘솔 판매량 견인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특히 700억의 개발비를 들였던 쉔무의 실패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일조를 하게된다.

결국 세가의 계획대로라면 최소한 1999년 중순쯤에는 게임들의 높은 판매량으로 엄청난 추진력을 얻었어야 했지만 그저 그런 가속만 붙은채로 플레이스테이션2와의 정면승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가격인 $299와 비교하면 확실히 저렴한 $199라는 가격, 게임기로서의 성능, 게임 개발의 간편함 등 드림캐스트는 플레이스테이션2에 비해 거의 압도적이다 싶을 정도였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만 해도 '플레이스테이션2를 드림캐스트가 이길 수도 있다.'는 얘기가 하드코어 게이머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2000년 3월, 플레이 스테이션2가 발매. 그 뒤 큰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2.4. 후반

사실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에 큰 기대를 걸고 시작하지 않았다. 소니 전자도 아닌 일개 사업부인 SCE가 제작했고, '무슨 그룹의 기대작' 이런건 아니였단 소리.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발매 후 6년 간 플레이스테이션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일으켰고, 플레이스테이션의 후속기라는 이름을 잘 활용하면 소니 자체에 큰 이득이 될수 있는 상황이였다. 이 때문에 하위 호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개발한 하드웨어 설계, 당시 소니의 주력이자 잘만 이용하면 떼돈을 벌 가능성이 높은 DVD를 게임기에 탑제한 소니의 큰 도박이 성공하여 드림캐스트에게 큰 독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또한 플레이스테이션 게이머들이 드림캐스트라는 다른 회사의 게임기를 사기보다는 플레이스테이션2를 사서 플레이스테이션1 호환기능을 이용하여 집에 갖고 있는 게임들을 플레이 하면서 앞으로 나올 플레이스테이션2의 대작 게임을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도 드림캐스트의 몰락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일례로 그나마 드림캐스트에서 높은 판매량을 보인 <바이오하자드 코드 : 베로니카>의 경우에도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원래 플레이스테이션의 프랜차이즈였는데 다른 기종으로 독점 발매하다니 이건 배신이다!' 혹은 '바이오하자드는 원래 플레이스테이션1의 프랜차이즈였으니 당연히 후에 플레이스테이션2로 이식되겠지' 같은 반응을 보였던 플레이스테이션 게이머들이 많았다. 이 같은 전개는 훗날 게임큐브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독점으로 발매될 때에도 다시 한번 똑같이 발생한다.


2.5. 몰락

세가는 죽지 않기 위해 드림캐스트에 온 힘을 다했다. 세가가 드림캐스트 포기 발언을 한 2002년 전까지, 드림캐스트는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왔다. 무2, 젯 셋 라디오, 소닉 어드벤처 2 등 대작 소프트들의 잇달은 발매, 온라인 서비스 세가넷[16] 가입시 드림캐스트 무료 증정(!!!), 말도 안되는 가격 인하 등... 그야말로 극한의 벼랑끝 정책을 펼쳤다. 싸게 기기를 파는 대신 소프트를 많이 팔아 이득을 남기려는 정책이었지만 손해만 점점 커지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이미 플레이스테이션2가 드림캐스트보다 9배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었던 상황에서 세가는 북미 시장에 올인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2001년 1월, 플레이스테이션2가 북미에서 발매되고, 북미에서도 PS2 판매량이 청신호를 보이면서 결국 세가는 뭘 해도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걸 인식하게 되고 같은해 드림캐스트에 대한 생산 및 지원 포기를 선언한다. 결국 드림캐스트를 끝으로 세가는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림캐스트는 세가가 만든 마지막 가정용 콘솔로 끝을 맺었다.

3. 후대의 평가

실패한 콘솔,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실패한 콘솔 중 가장 성공적인 콘솔.

세가가 만든 하드웨어 중 가장 정상적이다. 어찌보면 메가드라이브 - 세가새턴으로 이어지는 라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플레이스테이션플레이스테이션 2의 과도기를 채워주는 플레이스테이션 1.5와도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세가새턴 - 엑스박스를 이어주는 게임기이기는 하지만 실패한 이유로 세가의 말도 안되는 마케팅 능력이 꼽힌다. 사실 세가는 드림캐스트의 마케팅에 있어서는 중박 이상을 쳐줬던 편이다. 특히 북미 런칭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이끌었던 기세는 가히 화룡점정. 하지만 메가드라이브 - 세가새턴에서 이어진 세가의 연이은 실수들이 드림캐스트의 발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이 실수들로 인해 세가에 쌓인 안좋은 이미지들이 드림캐스트의 발목까지 잡아버린 셈.

4. 기타 특이사항

  • 컴퓨터용 모니터에 연결할 수 있는 VGA-BOX라는 것이 발매되었는데, 상당히 좋은 화질을 보여주어 게이머들의 호평을 받았다. 즉 드림캐스트는 이후 HD를 위시한 고화질 게임기의 원조급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예 이걸 지원하지 않는 게임도 몇 몇 있고, 물론 당시에는 와이드 비율을 가진 모니터가 드물기는 했지만 와이드 화면을 지원하는 게임의 경우 모니터에 연결하면 와이드 화면 옵션을 쓸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 SNK와 어떤 계약이 오간건지, 네오지오 포켓과 연동이 가능하다.
  • AVGN의 말에 따르면 세가가 만든 하드 중 최초로 제대로 된 물건. 위에서도 말했듯이, 어느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 이 기기의 심볼 때문에 사이교우지 유유코는 일본에서는 드림캐스코, 대한민국에서는 바보드캐유령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원작자도 노렸다고 했다. 흠좀무
  • 드림캐스트를 기동할 때 나오는 소리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들었다고 한다.
  • 드림캐스트의 패드는 방향키가 십자키인데 이걸 아날로그 스틱과 묶어 특허를 내서 빠져나갔다.
  • 어클레임 저팬/타이토에서 발매한 드림케스트용 소프트 '스피릿 오브 스피드 1937'은 공식 판매량 87장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공식적으로 드림캐스트용으로 나온 마지막 게임은 2007년에 발매된 카라스이다. NG:DEV.TEAM이라는 독일의 아마추어 2D 게임 제작그룹에서 지금도 꾸준히 네오지오로 제작한 자신들의 게임을 드림캐스트로 포팅하여 판매하고는 있는데, 정식 퍼블리싱은 아니다.
  • EA에서는 드림캐스트용 게임을 단 한 개도 제작하거나 발매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EA는 (어찌 보면) 북미시장에서 드캐가 말아먹게 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다. 그리고 모 게임기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 요상하게도 당시 일본시장에 음반CD로 나온 규격인 MIL-CD[17]를 지원했는데, 이 CD로 인해 드림캐스트의 복사가 제대로 뚫렸다. 하지만 GD의 1.2GB 용량에 비해 MIL-CD란 물건은 800MB밖에 되지 않아 복사는 제대로 되지 못했다. 게임큐브와 같이 거의 복사를 완벽하게 막은 물건. 후에 이 MIL-CD 규격을 지원하지 않는 드림캐스트가 나왔지만, 이때는 이미 2002년, 플레이스테이션2의 세상이 된지 오래였다. 다만 립을 뜨는 사람이 적절하게 2CD로 나눠서 하던가 하는 방식으로 뚫리게 된 건 마찬가지. 아무튼 CD장수가 늘어나면 단가(?)가 올라가 마진이 안남기 때문에 대부분의 해적판이 세가가가의 경우처럼 동영상과 음성을 삭제해서 용량을 줄여서 시장에 내다팔았다. 참고로 게임큐브는 복사를 돌리려면 상판을 아예 뜯어야 한다. 참고글
  • 드림캐스트 포기 선언 이후 세가가 엑스박스드림캐스트의 완벽 호환을 지원하는게 어떠냐고 제의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드림캐스트 게임들의 인터넷 연결 기능을 넣는 걸 거절하면서 이 제의는 불발되었다.
  • 2009년에 니코니코 동화에서 드림캐스트에 코어2듀오를 다는 마개조 영상#이 화제가 된 적 있다. 그리고 이걸 보고 따라하다가 멀쩡한 드케를 도시락으로 만든 사람도 있다
  • 안드로이드로는 2013년 12월에 reicast라는 에뮬레이터가 나왔다. 듀얼코어 이상, ICS 이상의 기기에서는 꽤나 잘 돌아간다고. 다만 아직 텍스쳐가 깨지는 문제라던가, 전화오거나 화면끄는 상황에서 다시 게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등의 문제는 있다.
  • 세가의 명운이 걸려있던 기기였던만큼 다방면에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었다. 특히 축구계에서는 유럽의 빅 리그마다 드림캐스트를 가슴에 새긴 팀이 하나씩은 있었을 정도였다.[18]
  • 각종 게임기나 게임회사를 의인화 하는것으로 유명한 모게임에서 의인화 되었다. 자세한건 텐노보시 우즈메 항목 참조.

5. 발매된 게임

5.2. 타회사

5.3. 미출시

하프 라이프 1,블루쉬프트 (한롬에 같이동봉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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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 이노 켄지는 세가빠로 유명해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너무도 사무적이었던 소니에 비하면 세가는 인간적이어서 좋았다고.
  • [2] 사실 모뎀을 가장 먼저 내장한 게임기는 애플 피핀 이지만, 몇만대밖에 못팔고 망해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 내장형이 아닌, 별도로 구입해 장착해야 하는 게임기는 이미 여러개 있었으며, 세가의 전 기기인 메가드라이브세가 새턴도 이에 포함된다.
  • [3] 물론 PS2의 성능이 전체적으로 드캐보다 나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흥보한 정도만큼은 아니었다. 이것조차도 사실 플2는 드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는 텍스쳐압축,트루컬러 텍스쳐등을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에(플2의 표준 텍스쳐 컬러는 8비트-256색이다) 플2 후반기의 게임도 텍스쳐 부분은 드캐에 비해서 떨어진다.
  • [4] 슈퍼 패미컴이 넣을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 이 시도는 결국 슈퍼 패미컴의 고속 연산 능력이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 [5] 플레이 스테이션은 음악CD나 비디오CD가 돌아가지 않는다.플스1은 미니 플스 등 후기 기종에 한해서 제대로 된 음악 CD가 돌아간다.♢비교적 초기번대인 5500번대도 음악CD 돌아간다♢
  • [6] 아주 단순한 수준의 음악CD, 비디오CD 그리고 MIL-CD의 포맷만 지원한다.
  • [7] 엑박후속기인 XBOX360이 구조상 드림캐스트와 비슷하며 라이벌 기종을 관광시키고있다는 점에서 정신적 역습이라고 봐도 무방할지도 모른다.
  • [8] 이 때문에 드림캐스트의 패드부엔 Windows CE의 로고가 박혀있다. 드림캐스트가 엑스박스의 전신이라 보는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
  • [9] DirectX 덕분에 세가가 지원은 중단한지 몇년이 지난 지금도 드림캐스트를 통해 동인 게임이 많이 제작된다.
  • [10]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착각하기 쉬운 부분인데, 드림캐스트는 본체에 OS를 내장하고 있지 않다. OS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면서 읽어들여 구동되는 구조이고, 따라서 개발사가 OS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여서 모든 게임 소프트웨어가 Windows CE를 사용한게 아니다. 세가 게임의 경우 세가의 자체 API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고, 성능도 세가 API를 사용하는 경우에 더 잘 나왔다고 한다. 당장 나오미 기판으로 만든 게임들이 Windows CE를 썼을리가..
  • [11] 하지만 쉔무 개발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 [12] 드캐 말기에 세가팬을 울린 걸작이자 선더포스 시리즈 역적 대장 센스가 빛난 세가가가에서는 인명 한자중 入을 人으로 바꿔서 히토마지리라고 나온다(...)
  • [13] 처음 발매 가격이 29,800엔으로 전 세대 기종인 세가새턴이 44,800엔, 플레이스테이션이 39,800엔에 런칭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헉 소리 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 [14] 이는 그 당시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능으로 인식되었으나, 나중에는 드림캐스트의 몰락에 큰 일조를 하게 된다.
  • [15] 당시 소니에서 발표한 드립 중 하나가 파이널 판타지 8의 무도회 댄스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재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 [16] 보통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나 xbox live, 닌텐도 네트워크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 [17] CDP에 넣으면 그냥 음악CD지만, MIL-CD 규격을 지원하는 기기에 넣으면 뮤직 비디오가 함께 나온다
  • [18] EPL아스날 FC, 라 리가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세리에 AUC 삼프도리아, 리그앙(당시명은 르 샹피오나)의 AS 생테티엔 등.
  • [19] 세가 토이 제작. 그래픽은 PS용으로 나온 다른 도라에몽 게임보다 훌륭함.
  • [20] 처음에는 세가 직영 온라인 쇼핑몰인 세가 다이렉트롤 통한 한정판매였지만 세가 팬들의 성원끝에 일반판으로도 출시.
  • [21] 드캐 칩을 지원해준 NEC의 자회사로 드캐 말기 숱한 에로게를 전연령 이식한 회사이기도 하다. 정작 센티그라 시리즈는 망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