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마이크 타이슨

최종 변경일자: 2016-01-27 21:35:59 Contributors


Warning: include_once(/home/wiki/wwwroot/r1/lib/../plugin/raw.php): failed to open stream: No such file or directory in /home/wiki/wwwroot/r1/lib/pluginlib.php on line 308

Warning: include_once(): Failed opening '/home/wiki/wwwroot/r1/lib/../plugin/raw.php' for inclusion (include_path='.:/usr/share/php:/usr/share/pear') in /home/wiki/wwwroot/r1/lib/pluginlib.php on line 308

전성기 시절. 타이슨의 목 둘레는 약 20" (50cm) 이다.

1_L_1244621494.jpg
[JPG 그림 (Unknown)]



aEw1rdo_460sa.gif
[GIF 그림 (Unknown)]


"이건 그리스 비극이군. 문제는 내가 주인공이라는 거야."
- 자신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남긴 한 마디]

목차

1. 개요
2. 복서로서의 인생
2.1. 출생과 성장
2.2. 핵주먹 타이슨
2.3. 몰락
2.4. 감옥행
2.5. 핵이빨
3. 복서로서의 평가
4. 은퇴 이후의 삶
5. 기타
6. 타이슨의 패러디
7. 관련 링크


1. 개요

Michael Gerard Tyson

미국의 前 복싱 선수.

프로 통산 50승 6패 2무효 44KO.[1]

2. 복서로서의 인생

2.1. 출생과 성장

2살때 아버지가 집을 떠난 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소년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더 화이팅에도 언급되는 비둘기 사건[2] 은 실화로, 사람 패는 맛(...)을 깨닫고는 싸움질을 일삼았던 듯. 하지만 어린 시절에 유약했단 건 사실이 아니며[3] 강도짓을 일삼는 등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과 나이프로 찌르며 놀았다(...)고 하니 정상인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삶이었다.

2.2. 핵주먹 타이슨

명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와의 만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복싱을 시작했다.

헤비급 복서로서 매우 작은 신장인 5피트 10인치-약 178cm-로 헤비급 복서로는 엄청난 언더사이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 트레이드 마크가 된 체중 이동을 통한 강렬한 연타로 1985년 데뷔 이후 연전연승을 거듭, 결국 1986년 11월 26일 약관 20세의 나이로 레버 버빅를 쓰러뜨리고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덕분에 당시 국내에선 핵주먹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미국 링 네임은 아이언맨 Iron Man 마이크 타이슨.

복싱 역사상 강력한 챔피언은 여럿 있지만 그처럼 센세이셔널한 인물은 없어, 아직도 호사가들이 최강 논쟁을 벌일 때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타이슨의 강점은 양훅의 파괴력은 물론 전무후무한 수준의 전진스텝 그리고 정말 뛰어난 헤드슬립과 위빙,페인팅,풋웍 등 헤비급으로는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인파이팅에 있다. 인파이터라면 당연히 맷집에 뛰어나겠거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위압감 이전에 거의 맞지 않는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였는데,[4] 그를 상대한 대부분의 장신 헤비급 복서들이 대부분 타이슨보다 리치가 길다보니 잽으로 찔러넣고 거리를 유지하는 전법을 구사했지만 타이슨은 종전의 선수들과는 달리 멈춰서 잽을 보는 대신 경지에 오른 헤드슬립[5]으로 광속으로 잽을 무력화시킨뒤 들이대면서 원투를 치는 선수였기에 아웃복서들은 타이슨의 무시무시한 스피드와 스텝에 추풍낙엽처럼 완파당했다. 거기다 작은 키에 비해 힘이 좋고 작은 덕에 펀치를 항상 올려치는 궤도였기 때문에 막아도 가드가 들리고 맞으면 턱이 들린다.

2.3. 몰락

그러나 빠른 성공만큼 몰락도 급히 닥쳐왔다.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아니 아버지이던[6] 커스 다마토가 레버 버빅과의 타이틀매치를 앞두고 사망한다[7]. 소년원에서 처음 만나 복싱을 가르치고 출소 후에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복싱 뿐 아니라 글과 예절등을 가르치면서 타이슨을 머리 빈 복서가 아닌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려 했던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다. 멘토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면 커스 다마토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주었던 존재였다. 타이슨에게 커스 다마토는 단순히 트레이너라든가 멘토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했고 커스 다마토 사망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어리숙했던 그를 노리고 사기꾼들이 접근했다. 커스 다마토가 살아 있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당시 타이슨에게는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 아부꾼만 가득차게 되자 점점 타락하여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대중의 이미지도 나빠졌다. 대중의 이미지만 잃게 되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커스 다마토 사후 타이슨의 기량 역시 정체, 아니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를 다잡아줄 사람이 없어지고 트레이닝을 게을리하기 시작하자 커스 다마토가 그토록 강조했던 위빙과 헤드슬립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타이슨 특유의 스타일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커스 다마토의 죽음과 함께 타이슨의 몰락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8]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복싱 팬들은 커스 다마토가 몇년만 더 살았더라도 복싱의 역사가 달라졌을거라며 아쉬워하고는 한다.

그리고 1990년 2월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WBA, IBF 헤비급 통합타이틀 전에서 당시 무명에 가까왔던 제임스 더글러스를 맞아 10회에 KO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패배로 그동안 37승 무패로 승승장구하던 타이슨의 커리어에 금이가기 시작했으며 권투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보나 인생 전체를 보나 이 경기를 기점으로 몰락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무하마드 알리와 레이 레너드같은 전설들을 만든 전설적인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는 타이슨이 다마토 사후에 어깨 근육을 보면 연습량이 부족한게 티가 난다고 언급했고.. 크루저에서 헤비로 올라온 홀리필드가 타이슨을 이길수있단 말도 했었다.
뭐, 말은 그렇게 했어도 홀리필드는 더글라스를 KO시키고 벨트를 얻었지만 정작 타이슨을 피하였고, 복싱에 복귀한 조지포먼과 붙었기는 했지만.

2.4. 감옥행

이 때쯤 발생한 유명한 강간 사건은 돈을 노린 꽃뱀의 소행이라는게 거의 확실했지만,[9] 이로인해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3년 형을 살기도 했다.

형을 살고 나온 후 다시 재기에 나서서 1996년 9월 6일 WBA 챔피언 자리를 다시 되찾는다. 그러나 헤비급 강자 에반더 홀리필드에게 TKO로 패하며 타이틀을 내주고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2.5. 핵이빨


그리고 홀리필드와 리매치를 가지며 타이틀 탈환에 나서는데.. 이 리매치에서 복싱사에 길이 남을, 홀리필드의 귀를 깨무는 사고를 일으키고 Bite Tyson 핵이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10]과 더불어 사실상 은퇴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후 몇 번을 복귀했으나 연전연패를 거듭, 마침내 2005년 6월 12일 케빈 맥브라이드에게 TKO 패배를 당한 직후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3. 복서로서의 평가


한국에서는 최강자 떡밥의 단골손님이지만 실제 복싱 매니아들 사이에선 잘 봐줘야 프로복싱 전체를 통틀어 역대 top 50 끝자리에 들까말까하는 복서이다.[11] 당대 최고 실력자인 홀리필드, 레녹스와 싸워 모두 패했고 무엇보다 자기 관리를 잘못하여 전성기가 3년이 채 안될 정도로 짧았던게[12] 가장 큰 이유. 격투 스포츠의 메인스트림인 미국에서도 타이슨의 평가에 대해 마찬가지긴 하지만 신체 능력과 기량 만큼은 확실히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약물 중독과 수감으로 몰락하기 전까진 무적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헤비급인 체중으로 라이트급선수의 스피드로인해서 나오는 폭발력은 그 어떠한 선수도 흉내 낼 수없는, 그 만의 엄청난 강점. 미국에서도 역대 최강의 복서를 꼽을때, 타이슨의 커리어 전체는 언급되지 않으나 타이슨의 전성기는 반드시 언급되는 수준.
미완성 복서로서는 사상 최강이었음이 확실하기에 팬들은 만약 복서로서 완성 되었다면 권투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고들 얘기하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

스타성 하나는 대단해서 복귀 후엔 90년대 당시 경기당 평균 대전료가 3000만 달러가 넘었고 홀리필드전에선 한 경기 대전료가 5000만 달러를 넘겼을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흉폭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경기 스타일은 물론이고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빨도 대단해서 당시 엄청난 팬(+안티)들을 몰고 다녔다. 인터뷰에서 공개 자위를 해도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꽉 채울 수 있다고 장담했을 정도. 사실 지금까지도 복싱 헤비급의 마지막 월드스타이자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복싱 최고의 슈퍼스타는 타이슨였다. 이때문에 전성기의 나이에 3년 형을 살아 복서로써 치명적인 공백이 있음에도 출소와 동시에 다시 등장했고 WBA 타이틀까지 획득한 것.

4. 은퇴 이후의 삶

성격 탓에 아내를 두들겨 패고 천문학적인 위자료를 지급한다거나 그야말로 엄청나게 낭비하면서[13] 결국, 2003 년 파산신고했다. (...) 참고로, 복싱하면서 번 돈만 3억달러, 즉 3000 억이 넘었다. 타이틀 획득 후 16년만에 파산인 셈이니 단순계산으로 1년에 200 억씩 펑펑 쓴셈. 현재는 이벤트에 얼굴 내비치는 것으로 먹고사는 중. 하지만 내 평생 최고의 펀치는 로빈(마누라)[14]에게 날린 바디 블로우라고 하는 걸 보면 그 인생에 한점 후회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요즘엔 말썽 안피우고 사람답게 살아서 많은 팬들이 안도해하고 있다. 홀리필드와도 화해한 상태. 토크쇼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고, 홀리필드의 조미료사업에 대해 서로 개드립을 날릴 정도로 친해졌다.[15]

2010년 1월 12일(한국시각)일자 WWE [[RAW]]에 아들과 함께 특별출현하였다. 자세한 것은 크리스 제리코 항목 참조.


최근 외국의 동물관련 프로에 출연해서 키우는 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오오 이젠 동물애호가로써 본좌 먹을 기세 사실 타이슨이 원래부터 새를 좋아했고 복싱 안할 땐 늘 새 키우기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경력이 워낙 길어서 이 분야에선 준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워낙 키우는 새가 많다보니 소음 때문에 가끔 다른 주민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승질 같아서는 그냥 선빵 날렸겠지만 예상과는 달리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양해해달라고 통사정한다고 한다.

2012년 갑작스레 파이크 리 감독과 뉴욕 브로드웨이와 라스 베가스에서 자기자신을 주제로한 원맨쇼를 진행했다. 공연 직전 그의 극장 앞에서 배트맨 상영관에서와 같이 총기난사를 하겠다는 글이 타이슨의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지만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2013년 토니상 오프닝에 타이슨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

2014년 현재는 쇼프로 단골 손님에 복싱 빅매치엔 빠지지 않고 관전하는 잘나가는 셀러브리티다.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에 언변도 좋아서 여러모로 성공적인 방송 연예인의 삶을 살고있다.

5. 기타


브래드 피트가 무명 시절에 타이슨의 전처와 데이트를 했다가 그에게 폭행당할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 타이슨과 그의 전처인 로빈 기븐스는 이미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였으나, 이혼하고도 교류는 있었던 것.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시즌8 16화에서 타이슨 본인 역으로 카메오 출연 했다. 우연히 지나가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는 부드러운 남자로 나온다.

그의 주먹박진영노래보다 약하다는 말이 있다

2009년 행오버와 2011년 행오버 2편에서 본인으로 카메오 출연을하였다. 짧은 출연이었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3년에 개봉한 실베스터 스탤론과 로버트 드니로의 주연인 영화 그루지 매치에도 카메오로 출연을 하였다. 그루지 매치가 앙숙이었던 두 복서가 30년만에 재경기를 한다는 내용인데, 영화가 끝나고 경기 매니저가 마이클 타이슨과 홀리필드를 불러서 재경기를 시키려고 설득을 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상대편 선수의 귀를 물어 뜯은 수아레즈에 대해서 열정때문이라는 말을 남겼다.(...)

어덜트 스윔에서 타이슨을 주연으로 한 애니메이션도 나왔다. 타이슨의 수양딸로 국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


프로레슬링 팬으로 알려져 있다. 슬매니아 14 시즌 무렵 WWF 얼굴을 들이밀었고 스티브 오스틴은 타이슨에게 뻐큐를 날린 일로 엄청난 유명세를 얻었다. 나름 애티튜드 시대 WWE가 WCW에 반격을 시작할 무렵을 이야기할때 빼먹으면 서운한 인물. 당시에 오스틴과 사석에서도 같이 다녔는데, 오스틴은 복싱 팬이고 타이슨은 프로레슬링 팬이라 서로 즐겁게 지냈다고. 오스틴은 자서전에서 타이슨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프로레슬링 팬이라서 그런지 메이웨더가 빅 쇼레슬매니아에서 이겼을때 "이건 아니다." 라고 의견을 표시하기도 했다.
UFC에서는 뛰어본 적 없는 복서임에도 불구하고(!) EA의 게임 EA SPORTS UFC 2에서 출연하게 되었다.

게임 내에서 가장 강력한 펀치를 가지고 있으며, 라이트 헤비급, 헤비급 두 체급에 등장 가능. 강철(Iron)버전과 유산(Legacy)버전 2가지로 등장하는데, 강철 버전은 현역 시절 모습으로, 유산 버전은 은퇴 후에 얼굴에 문신을 새긴 모습이다.

이 게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브라이언 헤이즈의 발언에 따르면, "역대 권투선수 중 가장 강력한 선수 마이크 타이슨을 종합격투기 게임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상상만 하던 일을 'UFC 2'를 통해 실현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한다. 마이크 타이슨 본인은 "EA 스포츠의 팬으로서 종합격투기를 게임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게임 속에서 뛰어난 UFC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펼치는 내 모습이 기대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6. 타이슨의 패러디

더 파이팅마쿠노우치 잇뽀는 타이슨이 가진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차용한 캐릭터다. 파이팅 스타일도 비슷하며 일보 역시 타이슨을 롤 모델로 채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커스 다마토와 타이슨의 관계는 압천 관장과 일보의 관계와 많이 닮아있다.

심슨에 나오는 테이텀은 타이슨의 패러디. 매니저인 루시우스는 타이슨의 프로모터인 돈 킹을 모델로 했다. 해댄 전적은 엄마를 계단에 밀어트린게 전부라 타이슨보다는 업보가 적지만. 극장판에선 아무도 안볼때 하반신 부분을 연타해대는 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2칙칙이 M.바이슨도 그의 패러디이다. 이름부터 사실 마이크 타이슨의 적절한 변형[16].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식한 악역이라는 컨셉에 타이슨을 연상시킬 요소가 너무 지나치게 많았던 탓에(이름, 흑인남, 복서, 너무 힘이 셈, 폭력을 남발해서 문제가 됨, 얼굴 모습) 이후 대대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외수판에서 베가, 발로그와 서로 이름이 바뀌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 타이슨의 선풍적 인기와 스트리트 파이터의 흥행 덕에 웬만한 격투게임의 흑인 복서캐릭터들은 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아랑전설마이클 맥스같은 경우가 대표적)


M.바이슨의 테마곡과 타이슨의 경기장면을 합친 패러디 영상. 타격음이 어색하지 않다

바키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언 마이클 역시도 그의 패러디인데, 여기에서는 꽤나 대우가 안좋다. 오토바이 몰고다니는 폭주족이랑 난타전을 벌이다가 매니저가 복서로서 미래를 걱정하여 강제로 판정패를 당하지 않나 교도소 3인방 콤비 파이터들에게 떡실신을 당하지 않나... 여러모로 안습하다.

수라의 문3부에서 리오스 킬레인과 그의 스승의 과거사는 타이슨과 커스 다마토의 관계과 비슷했다. 후에 매니저가 되는 남자도 완전 돈 킹과 판박이. 다른 점이라면 외견은 당연히 다르고 스승이 사망했을 때 타락하지 않고 절대로 패배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했다.

무서운 영화 4편에서도 타이슨을 패러디한 인물이 나온다. 권투 경기 중에 닥치는 대로 귀를 물어뜯어 뱉어 죽이는 괴수다....

고교철권전 터프에서 비슷한 모습의 권투선수와 매니저가 나온다. 여기서 초슈와 싸워 팔뼈가 동강나지만 오히려 깨끗하게 동강나서 잘하면 3개월 내에 회복되며 뒷골목과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도는 매니저와는 패배당한 순간 관계가 짤려서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네임드때문에 재기도 가능하다할정도. 오히려 패배가 많은 이득을 줬다.[17]

로쿠데나시 블루스의 주인공 마에다 타이슨은 프로레슬러 마에다 아키라와 마이크 타이슨 이름을 합친 것.

7. 관련 링크

----
  • [1] 특기할 만한 대목을 꼽자면, 데뷔후 38전째인 제임스 더글러스전에서 최초로 패했다. 즉 데뷔 직후 37 연승. 여기에 20전째 처음 판정승을 거뒀다. 말하자면 데뷔 직후 19연속 KO. 괜히 센세이션을 일으킨 게 아니다.
  • [2] 10살일 때 도둑질한 돈 700달러로 새들을 사서 길렀는데, 누군가가 그 중 한마리를 훔쳐 목을 잘라 놓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자 생에 최초로 싸움을 걸었다고 한다.
  • [3] 이건 데니스 로드먼 의 일화와 혼동된 듯 하다
  • [4] 위의 영상 1분 29초부터 보면 펀치를 바닥에 기는 수준의 낮은 위빙으로 피한다. 물론 그걸 무리해서 따라가려는 상대의 자세는 흐트러지고..
  • [5] 머리만 살짝 돌려서 잽을 무력화하는 방법. 만화에나 나오는 종잇장 한장 차이로 피하는 수준의 반응이 필요하다. 거의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의 V-ism 코디 트래버스가 보여주는 회피와 동급. 그덕에 제로3의 V-ism 코디는 손꼽히는 개캐다.
  • [6] 타이슨이 16살때 어머니를 잃자, 그를 양자로 받아들이면서 이끌어주었고 당시 타이슨을 유일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타이슨의 어머니는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을 돌보면 사람구실은 하고 살거란 희망을 가지고, 타이슨을 맡겼으며, 타이슨 역시 자신이 태어난지 얼마 안 돼 가족을 버린 건달인 친부보다 커스 다마토를 아버지로 따랐다.
  • [7] 마이크 타이슨은 당시 아버지를 잃었다고 크게 상심했다.
  • [8]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대환의 6부작 칼럼 참조. 아름다운 사제지간
  • [9] 아이러니하게 타이슨의 폭언으로 인하여 불리한 판결을 받았는데 그년과 그년의 어미를 죽였어야 했다라고 ..
  • [10] 그 무렵에 타이슨 비슷한 모델이 권투선수 차림으로 나와 어느 특정 회사 가방을 물어뜯는데,핵이빨에도 끄덕없다던 광고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애플 로고 모냥 물어뜯긴 귀모양의 초콜렛이 나온 건 덤. 이건 홀리필드의 굴욕인데...
  • [11] 모든 체급 역대 50위 순위는 결코 낮은게 아니다. 참고로 로이존스 주니어도 46위이고, 최근 자료는 아니지만 메이웨더는 48위다.
  • [12] 첫 챔피언이 된 시기가 86년도 이고, 더글라스에게 패한 때가 90년도이다. 데뷔에서부터 전성기로 잡으면 수감까진 6년
  • [13] 어느 파파라치는 그를 따라다니면서 돈을 그야말로 물 쓰듯 펑펑 쓰던 걸 봐서 머지않아 망한다고 예상했다(...)
  • [14] 전처 이름이 로빈 기븐스이다.
  • [15] 홀리필드가 만드는 조미료가 있다면 홀리필드 귀때기도 먹을만 했을꺼라는 드립을 쳤다. 거기에 홀리필드가 먼저 자기 귀때기맛을 타이슨에게 물어보라고 개드립을 날렸다.
  • [16] M은 마이크의 약자
  • [17] 여기 나오는 인물은 마이크 타이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마빈 헤글러에 가까운 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