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매트 하디

최종 변경일자: 2017-06-19 14:47:37 Contributors


하디 보이즈의 리즈시절 사진 왼쪽 ECW 벨트를 들고 있는 사람

WWETNA 소속 프로레슬러. 제프 하디의 형. 한 때의 별명은 죽지 않는 남자(The Man Who Will Not Die)그런데 밑의 항목들을 보면 그냥 죽는 게 더 편해 보이기도 하다., TNA에서는 냉혈한(Cold Blooded).

목차

1. 프로필
2. 프로레슬러 활동의 시작
3. 막장 각본의 희생양, 짧은 ROH생활
4. 짧은 푸쉬, 긴 푸대접
5. 동생인지 웬수인지
6. TNA로의 이적과 방출
7. 자살 소동 해프닝, 몰락, 재기?
8. 3년만의 TNA 복귀
9. WWE 컴백
10. 개인생활 및 인간관계
11. 주특기


1. 프로필


본명 매슈 무어 "매트" 하디(Matthew Moore "Matt" Hardy)
별칭 죽지 않는 남자
냉혈한
생년월일 1974년 9월 23일
신장 184cm [1]
체중 107kg
출생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캐머런
피니시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
아이스픽
다운폴
테마곡 Live for the Moment
Rogue and Cold Blooded

뛰어난 기량에 비해, 푸쉬를 거의 못 받은 불운의 선수
그러나 동생 뒤치닥꺼리만 하다 동생따라 흑화해버렸다.[2]

대체적으로 데뷔할 때부터 현재까지도 동생인 제프보다 인기는 늘 적었다. 애초에 화려한 공중기 위주의 제프와는 달리 매트의 경기 스타일은 그라운드 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테크니션 유형이기 때문. 이 때문에 아무리 용을 써도 제프보다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매니아들에게는 제프 못지 않게 엄청난 인기를 가지고 있다.

동생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연기력. 제프는 WWE에서 메인 이벤터로 활동할 적에도 마이크웍이 전혀 좋지 않았고, 기믹 수행 능력이라 해도 특유의 하디 보이즈 시절 모습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 WWE에서는 악역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반면에 매트는 의외로 마이크웍도 나쁘지 않고, 악역 연기도 수준급으로 잘 하는데 그 덕에 2002년 말~2003년 중반까지 매티튜드 기믹을 만들어 악역으로 꽤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09년 동생과 대립할 때는 상당히 비열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마지막은 찌질로 끝나서 문제였지

2. 프로레슬러 활동의 시작

동생 제프 하디, 리타, 그레고리 헴즈, 섀넌 무어 등과 인디레슬러단체 OMEGA를 결성하여 활약하다[3] WWF에서 태그팀 하디 보이즈(The Hardy Boyz)로 데뷔했다. 리타까지 합쳐서 팀 익스트림(Team Extrem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들리 보이즈, E&C, 하드코어 할리 & 크래쉬 할리 등과 함께 태그팀 디비전에서 활약하다가 인베이전 각본이 끝나고 이른바 '로스터 스플릿'을 실시해 선수를 로(RAW)와 스맥다운으로 나누면서 제프 하디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매트 하디는 찬밥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제프 하디가 로우에서 통합 챔프였던 언더테이커에게 래더매치로 타이틀을 걸고 도전하고 있을 때 매트 하디는 히트에서 RAW 출연권을 놓고 레이븐과 대립하고 있었다.[4] 아무튼 이러던 와중 랍 밴 댐과 제프 하디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전에 난입, 다 이겨가던 제프 하디에게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를 먹여 패배하게 만들고는 스맥다운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매티튜드[5] 기믹으로 활동했다.

이 시절에는 독특한 캐릭터성을 지닌 찌질한 악역으로 활약하며 재밌는 경기도 선사해줬으며, 추종자로 섀넌 무어와 크래쉬 할리를 대동하고 다니기도 했다. 심지어 (각본상)다이어트를 해서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에 참전, 크루저웨이트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때 링 아나운서의 소개 멘트는 매트 하디 Version 1.0이었는데, 버전 1.0에 걸맞는 구형 이미지의 타이탄 트론이 눈길을 끌었다.

그때 타이탄트론. 버전 1.0이란 매트가 등장할 때 하는 손모양이다. 매티튜드 기믹이 끝난 후에도 매트 하디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그런고로 영원히 버전업 불가

3. 막장 각본의 희생양, 짧은 ROH생활

한동안 스맥다운에서 활동한 뒤 다시 로에 돌아온 매트 하디는 케인의 케이티 빅 각본과 맞먹는 개막장 각본[6]을 받으며 나락으로 떨어진다. 여기에 에지 및 리타의 관계까지 악화되는 사태[7]가 겹쳤는데, 결국 돌연 방출당했다.

이 각본은 백스테이지에서 선수간 불화가 실제 스토리라인에 쓰인 유명한 사례로 레슬링 역사에 남았으며, 이때 처음으로 WWE에서 타 단체의 이름인 ROH가 언급되었다. 이후 매트는 진짜로 ROH와 계약해서 크리스토퍼 다니엘스, 호미사이드, 로데릭 스트롱과 세 경기를 가졌고, 로데릭 스트롱과의 경기가 부킹되기 직전 빈스 맥마흔의 인터뷰를 통해 섬머슬램 컴백이 확정되었으며[8] 이때부터 'I Will Not Die'라는 문구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명이 죽지 않는 자..

4. 짧은 푸쉬, 긴 푸대접

이후 섬머슬램에서 복귀했으나 거의 스쿼시 매치에 가까운 매질로 레프리 스톱[9]으로 패배하는 굴욕을 겪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대립은 지속되어 다음 RAW에서의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와 언포기븐에서의 스틸 케이지 매치에서 보여준 동생 못지 않은 익스트림함으로 많은 팬들을 그의 편으로 만들어 냈다. 그러나 05년 10월 3일 로우를 마지막으로 최종적인 에지와 대립에서는 패배, 스맥다운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2005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팀 스맥다운을 승리로 이끈 랜디 오튼을 축하해주다가 복귀한 언더테이커에게 로드 킬 당하는 역할을 맡지만, 본인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돋보이는 역할을 맡기 싫다며 언더테이커가 링 위로 들어온 순간 제멋대로 빠져나가버린다. 이 일 때문에 직접 언더테이커에게 훈계를 듣게 되고, 본인의 기대와는 달리 2006년 내내 복귀한 핀레이에게 초토화 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안습한 세월을 보내다가 2006년 후반이 되고 나서야 그레고리 헴즈와 대립하며 그럭저럭 좋은 퀄리티의 경기를 매주 내보내고, 하디 보이즈 재결합으로 다시 반응을 얻기 시작하는 등 푸쉬의 전조를 보인다.

그리고 2007년에는 MVP와 대립을 시작하면서 언더테이커, 에지 같은 선수들이 공백 기간을 가졌던 스맥다운에서 꽤나 높은 비중으로 활약한다(그래봤자 미드 카더 레벨이었지만). 하지만 MVP와의 대립이 절정에 치달았을 무렵에 부상을 당해, MVP에게 두들겨 맞고 실려나가는 것으로 흐지부지 대립이 끝나는가 했더니, 슬매니아 24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 난입해 MVP를 공격하는 것으로 대립 플래그가 재가동. 결국 내내 갈망했던 US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쉘턴 벤자민에게 빼앗기고 ECW로 이적해서 마크 헨리와 ECW 타이틀을 놓고 대립, 언포기븐에서 기어이 승리를 쟁취하여 ECW 타이틀을 손에 넣는다.[10]

여기까지가 매트 하디의 최전성기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2009년이 시작하자마자 잭 스웨거에게 ECW 타이틀을 뺏기고 로얄럼블에서도 잭 스웨거에게 패한다. 그걸로도 모잘라서 제프 하디 VS 에지의 경기에 나와서 제프에게 체어샷을 먹임으로서 에지에게 밸트를 뺏기는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프 하디가 일을 벌려놓은 것을 모두 자기가 처리해왔지만 정작 자신은 제프 하디의 부록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제프 하디를 배반했다고 말을 하면서 악역으로 전환, 레슬매니아 25에서 동생과 익스트림 룰스 매치를 펼친 끝에 겨우 승리.[11]계속 찌질이 노릇을 하다가 래쉬에서 제프 하디와 아이 큇(I Quit) 매치를 가져 패배하며 대립이 끝났다.

이후 제프 하디와 CM 펑크의 대립에 난입해서 제프를 도와주며 다시 선역으로 전환했다. 사실은 제프 하디가 조만간 WWE를 떠날 계획이었기 때문에 하디 보이즈의 상품을 팔기 위해선 매트 하디를 선역 전환시켜야 했었던 내막이 있다.

그리고 계속 선역으로 활동하던 중 악역으로 전환한 바티스타에게 말을 걸다가 두들겨 맞는 등 서서히 자버로 전락했다. 2008년 초반에 랜디 오튼도 대립 상대인 제프 하디를 도발하기 위해서 매트 하디를 두들겨 팼었는데, 안타깝게도 매트 하디는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만드는 2류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사실 팬들에게 나름 인기도 있고 이미지도 좋은데 WWE 내에선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하긴 빈스 맥마흔의 편애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

5. 동생인지 웬수인지

2010년 제프 하디가 WWE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TNA로 간데다, 이 빌어처먹을 웬수놈동생이 약물크리[12]까지 뜨는 바람에 당시 WWE 내에서의 맷의 입지는 바닥까지 떨어져서 푸쉬는 고사하고 '죽지 않는 자'라는 자신의 이명처럼 정말 그냥 콱 죽고만 싶은데 죽지도 못하는 남자가 되었다. 안습

이런 자버 취급이 계속되는 동시에 영국 투어 스케줄이나 기타 등등의 문제로 WWE 수뇌부와 마찰이 갖았고, 결국 스맥다운을 비롯한 각종 쇼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2010년 10월 16일 방출이 결정됐고 매트 하디는 트위터를 통해 '취직보다 방출당하는 게 더 힘들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6. TNA로의 이적과 방출

이후 3개월간 버로우를 타다가 2011년 1월 TNA의 PPV 제너시스를 통해 랍 밴 댐을 상대할 이모탈의 미스테리 멤버로써 데뷔, 편파판정빨로 운좋게 승리를 챙겼고 메인이벤트에서도 동생을 돕기 위해 등장, 미스터 앤더슨을 공격하려 했지만 랍 밴 댐에게 저지당한다.

WWE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숀 몰리(발 비너스)는 매트 하디의 TNA 데뷔에 대해 '재능도 없으면서 슈퍼스타인 것처럼 까분다. 앞마당에 트램펄린 두고 방방 뛰던 놈들이, 오메가 멤버들 모두 그래!'하고 비난했으며, 매트 하디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고 맞받아치며 한바탕 키배가 붙었다. '동생 때문에 계약한 주제에'라며 까는 걸 보면 TNA에 데뷔했다가 빠른 강퇴를 당했던 몰리의 입장에서 매트 하디의 손쉬운 TNA 데뷔가 탐탁치 않았던듯.

동생 제프가 타이틀을 잃은 뒤로는 무슨 생각인지 제프가 TNA 챔피언 시절 차고 다녔던 전용 디자인 벨트를 대신 차고 다니면서 AJ 스타일스를 배신한 릭 플레어와 함께 활동하기 시작, 냉혈한(Cold Blooded)이라는 별칭을 내세우기 시작했는데 레슬링팬의 의견은 "냉혈한이라는 별명이 이렇게 안 어울리는 경우는 처음 본다."

TNA에서는 WWE 출신 스타들을 더 이상 영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입돼서 그런지 선수들이 꺼렸다는것 같다. 자기관리에 실패하여 상당히 살이 쪘는데도[13] 회사에서 영입했다는 것 또한 이유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 당시의 맷은 한국 프로레슬링 관련 커뮤니티 등지에서 멧돼지, 매트 하디 사칭 돼지 등으로 불리곤 했으며, 미국에서도 Fatt Hardy로 불렸던 듯. 동생 제프도 꽤 살이 붙은 모습이었던지라 프갤에서는 이 형제들을 하디즈를 사칭하는 돼지들로 취급했었다. 다만 실력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존중받고 있었다하며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는지 몸도 그럭저럭 괜찮아지고 있었던 중.

하지만 불성실한 태도 및 다른 레슬러들과의 불화가 문제가 되어 징계를 받아 출연하지 못하게 됐으며, 징계 기간 동안 음주운전으로 사고까지 내자 TNA에서 '이 때다' 싶었는지 칼 같이 방출시켜버렸다.

7. 자살 소동 해프닝, 몰락, 재기?

실업자가 된 후로 맛이 가버린건지 2011년 8월 30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어떤 '독립체'(Entity)가 자신의 집에 나타났다며 괴이한 영상을 올렸다. 얘기를 하던 와중 뒤에 사람 그림자가 지나가자 여자친구의 재촉에 총을 든채 집 안을 살피는 영상인데, 영상을 찍고 있는 여자친구는 내내 불안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으며 겁에 질려 울기까지 한다. 이후 독립체가 자신의 집을 파괴했다고 횡설수설하며 집 안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도 추가로 올렸다. 도대체 무슨 정신상태로 이 영상들을 올린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건 제 정신은 아니라는 것. 덤으로 이 영상들을 올린 직후 집 계단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 뒤로 며칠동안 잠잠한가 했더니 이번에는 동생 생일날에 유튜브 채널에 자살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담긴 클립을 올려서 팬들 속을 뒤집어놓았다. 풀 타임 레슬러로 더 이상 활동하게 되는 것은 어려워졌지만, 스스로 죽었다 살아나는 피닉스처럼 갱생을 하겠다는 뜻이 담긴 영상이었는데 팬들까지 엿먹이는 관심병적 발작이었다는 평이 절대적이다.

덕분에 베스 하디(제프의 아내)와 쉐인 헴즈에게까지 욕을 먹었고 사과 동영상도 올렸다. 지금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팬들의 질타와 격려에 하나하나 정성스레 응답해주고 있다. 트윗질할 시간에 살을 빼라고[14]

하지만 음주운전으로 걸린지 한 달 남짓만에 또 음주운전 혐의로 적발됐으며, 여기에 더해 WWE의 후원으로 재활센터에 다니던 도중 경찰의 기습 방문에 마약 소지 혐의까지 걸려서 제대로 망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대접 못 받은 데에 대한 울분과 동생 뒤치닥거리를 비롯한 여러 문제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잃을 것이 없는 상태까지 가니 제대로 터져버린듯.

그나마 동생이 일단은 정신차리고 있고 매트 하디도 재활센터에 다시 입소했다. 2011년 12월 재활 프로그램을 완수한 후 독립단체에서 활동하다가 2012년 9월 ROH와 계약해서 악역 스테이블 S.C.U.M의 멤버로 활약하다가 팀 해체 후에도 여전히 악역으로 활약 중이다.

8. 3년만의 TNA 복귀

2014년 6월 16일 TNA 홈페이지를 통해 6월 27일 뉴욕에서 진행될 임팩트 레슬링 녹화를 통해 3년만에 TNA로 복귀한 후 동생 제프 하디와 하디즈를 재결성하여 활동한다고 전해졌다. 7월 24일 방영분에서 제프 하디의 소개로 공식 복귀. 세그먼트 도중 당시 태그 팀 챔피언인 더 울브즈[15]가 들어와 도발, 31일 방영분에서 태그 팀 챔피언쉽으로 복귀전을 치루었다. 꽤 나쁘지 않은 퀄리티였으며 경기는 패배.

9. WWE 컴백

WWE 레슬매니아 33에 제프와 함께 깜짝 컴백하면서 WWE 태그팀 챔피언십 트리플 쓰렛 래더 매치가 페이탈 4 웨이 매치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챔피언이 되었다.

10. 개인생활 및 인간관계

유망주로 모습을 비췄을 당시는 동생 제프 하디와 마찬가지로 똘끼 충만한 면모를 보였으나 잦은 부상과 그 후유증으로 현재는 예전만큼 화려한 플레이는 힘든듯 하다. 그래도 착실한 플레이와 성실한 이미지로 차근차근히 인기를 쌓아나갔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왔던 자서전에서는 '뭘 하든 간에 레슬링하고 관계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프로레슬링 외길 인생을 걸어 온 사나이.

성격이 쾌활한 데다 하디즈의 블로그를 보면 글빨도 괜찮은 편이다. 봉사활동도 꽤 다니고 있어서 이미지가 괜찮다. 동생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데 비해, 형은 동생보다 못한 재능을 가지고도 노력과 성실성으로 커버했다는 평도 있었다. 특히 동료 레슬러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아 대인배라고 불려도 좋을 정도고 특히 그레고리 헴즈(현재는 허리케인 헴즈)와 크리스 제리코와는 절친한 사이다.

반면 에지와는 상당히 사이가 나다. 원래 에지, 매트 하디, 제프 하디, 크리스챤 네 사람은 데뷔한 시기도 비슷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서 '넷이 언젠가 패거리로 뭉쳐서 함께 활동하자'고 말해왔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에지가 리타와 사귀게 되고, WWE는 설상가상으로 매트 하디를 방출시켰으니 하디 형제와 에지는 완전히 틀어졌다. 제프 하디는 에지가 맷을 막 배반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제 너와 절교하겠다고 에지에게 문자를 보냈지만[16], 나중에 가선 로에서 활동할 때 함께 여행을 하는 등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고 한다. 매트 하디와 에지도 일단 화해를 하긴 한 상황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냥 사이가 나쁘지도 엄청 친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이라고 한다. 매트도 더 이상 그 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트위터에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폴 런던과의 관계도 좋지 않은 편인데, 과거 WWE 디바 애쉴리를 둘러싼 삼각관계 이후[17] 꽤나 사이가 나빠졌다. 요즘도 한번씩 폴 런던이 맷을 까는 말을 하고 다니는 듯. 근데 맷은 이쪽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일단, 화해라도 한 에지와 달리 이쪽은 화해도 안 했다.

CM 펑크에게는 좀 쓰레기 같은 짓을 했다. 펑크가 언더테이커에게 월드 타이틀을 내줬을 때에는 '펑크가 복장 문제로 징계를 당해서 저렇게 됐다.'는 루머를 몸소 퍼뜨렸었고, 펑크와 리타의 교제설도 다름아닌 매트 본인이 직접 퍼뜨렸던 루머라고 한다. 아무래도 펑크와 동생 제프의 관계가 껄끄러운 것 때문에 직접 거들어준게 아니었을까 싶긴 하지만.

2010년에는 만취 상태에서 당시 WWE 디바였던 이브 토레스[18]에게 저급한 농담을 건넸다가 초크로 실신당하는 굴욕을 겪기도.

11. 주특기


하디 보이즈 시절 사용하던 특유의 태그팀 무브로는 포이트리 인 모션,이벤트 오메가, 오메가 이벤트, 스핀 사이클등이 있다.

피니쉬 무브는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 매트 하디의 오리지널 무브다. 하디 보이즈 시절 제프 하디나 리타도 곧잘 사용했지만 둘 다 자신들의 본 피니셔(스완턴 밤, 문설트)의 셋업 무브로 사용했기에 기술이 약해보이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매트 본인이 그렇게 사용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제프와 리타는 리버스 DDT 자세로 시전하는 리버스 오브 페이트(Reverse of Fate)를 개발해 사용했다.

2005년 WWE에서 방출당해 인디 단체를 전전하던 시절 스카라는 서브미션을 사용한 적이 있다. 상대에게 더블 언더훅을 거는 동시에 양 다리로는 상대의 몸을 감싸 바디 시저스를 거는 기술로 제대로 걸리면 도무지 빠져나올 방도가 보이지 않는 막강함을 자랑한다. 이 기술은 TNA에 온 다음 아이스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피니시로 사용했다.

----
  • [1] 실제 자서전에 실린 내용이다.
  • [2] 사실 매트도 멘탈 면에서는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다. 본래는 동생 못지 않은 돌+아이라고. 그러나 한 때 외도를 걸어간 동생과 달리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멘탈이 좋은 선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절친자신의 여친과 불륜을 맺어서 피해자가 된 경우도 있고......
  • [3] 형제가 자서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시기 주변을 돌아다니며 스폰서를 받아내고 모든 이벤트를 총괄, 기획하며 단체를 이끌어 나갔던 사람이 매트 하디였다.
  • [4] 물론 레이븐 역시 경력이나 명성에 비한다면 박대에 가까운 취급이었다.
  • [5] Matt + Attitude를 합친 신조어. 이 기믹을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현대판 사이비 종교 교주 기믹이다.
  • [6] WWE 사상 최악의 각본이라 불리우는 리타의 임신 각본. 실제 연인사이였던 매트와 리타 사이에 케인이 난입하여 리타를 스토킹하고 매트를 인질로 삼아 케인이 리타를 덮쳐 리타가 케인의 아이를 임신했다라는 각본으로 케인과 매트 두 사람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깎아먹었다.
  • [7] 리타의 임신 각본 이후 진짜로 매트와 리타 사이가 벌어져 리타와 엣지가 눈이 맞아버렸다.
  • [8] 이때 ROH 광팬들에게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야유를 먹었다. 제프 하디가 ROH에 처음 나왔을 때보다 더했을 정도. 겨우 ROH 알바로 3경기 뛰고 돌아가려고 팬 페이보릿인 크리스토퍼 다니엘스와 호미사이드까지 이겼냐!라는 분노에 찬 반응.
  • [9] 한 선수가 경기를 더 이상 진행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심판이 재량으로 경기를 종료 시키는 것. 격투기로 따지면 TKO에 가깝다.
  • [10] 섬머슬램에서는 경기 시작하자마자 1분 만에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를 먹이고 핀폴을 따내는 듯 했으나 당시 헨리의 매니저였던 토니 아틀라스가 대놓고 매트를 끌어내려 반칙승으로 경기 종료, 언포기븐에서는 한 명씩 등장하다가 마지막 선수까지 다 등장한 뒤 5분 동안, 타이틀을 지키는 선수가 챔피언이 되는 룰인 챔피언쉽 스크램블 매치에 참전. 헨리와 매트 뿐만 아니라 차보 게레로, 핀레이, 미즈까지 참가했다. 매트는 이 경기 내내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핀폴을 당하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이다가 경기 종료 3분 전, 미즈에게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를 시전하고 임시 챔프 등극. 그 후, 여러 선수들이 핀폴을 노릴 때마다 끊임없이 방해하며 처절한 방어전을 펼친 끝에 드디어 진짜로 ECW 챔피언이 되었다. ECW 브랜드의 경기치고는 꽤 재밌다.한편으로는 매트의 끈질긴 방어를 보면 눈물이 난다. 왜 저런 선수에게 아직도 타이틀을 안 줘가지고......
  • [11] 경기 내내 제프의 익스트림 액션 희생양이 되었었다. 특히 두 개의 테이블 사이에 끼어 있다가 제프 하디의 스플래쉬 공격에 맞는 장면은 매트의 승리를 결코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경기 후반, 사다리 위에서 스플래쉬 공격을 실패한 제프에게 그의 목에 의자를 끼고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를 가하는 초절정 위험한 공격으로 겨우 승리를 거뒀다.
  • [12] 본래 형제는 부모님의 엄격한 교육 때문에 술이나 약물과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매트는 자서전에서 WWE에 데뷔한 후 만 25살에 마신 맥주가 생애 최초의 음주였다고 밝혔으며 지금도 약물이나 음주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에는 음주와는 꽤 가까워졌지만 반면 똑같이 20살 넘어 술을 마신 동생놈은 급속도로 술과 약물에 찌들어 커리어를 말아먹었다. 참고로 매트는 동생이 처음 음악활동 한다고 WWE를 떠났을 때부터 약물혐의에 대해 아낌없이 실드를 쳐줬다.
  • [13] TNA에 들어가기 전에 찍은 트위터 사진에서는 운동을 열심히 했다며 꽤 좋아진 몸매를 자랑했으나 막상 TNA에 등장했을 땐 그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쪄 있었다.
  • [14] 2014년 지금까진 배의 인덕이 그대로다. 크루저급 챔피언을 지낼 정도로 헤비급 치곤 호리호리했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로선...
  • [15] ROH 때부터 같이 활동했던 태그 팀. 멤버는 데이비 리차드와 에디 에드워드.
  • [16] 매트 하디가 강요한 일이었다고 나중에 밝혔다
  • [17] 리타와 갈라진 이후다
  • [18] 남편이 그 그레이시 가문의 헤너 그레이시다.
  • [19] 본래는 레그드랍을 다운폴로 불렀다. 2008년부터 레그드랍 대신 이 기술과 문설트를 사용했다. 2005 언포기븐에서 철장 위에서 레그 드롭을 사용 후, 꼬리뼈에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 사실 레그드랍은 헐크 호건처럼 그냥 사용해도 시전자의 꼬리뼈에 큰 부담을 주는 기술이다. 그런데 매트는 헤비급의 체형으로 이걸 꾸준히 공중기로 사용해 왔으니......이러니 모션이 안습되도 문설트를 쓸 수밖에 없지
  • [20] 오폭 전용기술이었으나 2008년 부터 성공률이 급증. 하지만 모션이 안습직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