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방덕

최종 변경일자: 2015-01-15 15:23:54 Contributors

龐德

후한마등, 마초 수하 장수이자 삼국시대의 무장. 삼국지의 인물이다.

생몰년도 ?~219년. 자는 영명(令明)이며 옹주(雍州) 남안군(南安郡) 환도현(豲道縣) 사람이다.

그는 군리, 주종사를 역임하다 서량의 마등의 밑에 들어가 공을 세워 교리가 된다. 곧 마초의 군에서 종사하게 된다.

205년 조조원담, 원상을 공격하고 있을 때 원상이 파견한 곽원과 고간이 관서지방을 공격했다. 마등은 원상과 밀약을 맺고 있었으나 종요의 설득으로 이를 파기, 마초가 군을 이끌고 종군하였는데 이때 방덕은 선봉을 맡아 고간의 부하 곽원을 직접 참하였다. 곽원은 종요의 조카였고 종요가 통곡하자 방덕이 사과하자 종요는 곽원은 국가의 적이니 사과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농에서 장백기가 반란을 일으키자 마등이 정벌에 나서 장백기를 격파한다. 이때 늘상 적진에 돌격하여 적을 격퇴했으니 그 무위가 마등의 군세 가운데서 으뜸이었다. 즉 마등군의 무력 에이스는 마초가 아니라 방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홍농은 장안의 동쪽에 있었는데, 장백기의 반란을 마등이 진압하는 것을 보아 실제로 마등의 세력권은 양주 뿐 아니라 장안 일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초가 후에 조조에 대항했을때 관동 연합군은 단숨에 동관까지 이르렀는데 동관은 홍농의 바로 근처에 있었다.

이후 마등이 조정에 불려가게 되자 마초를 따랐다. 조조의 공격으로 인해 마초와 함께 장로에게 갔지만 마초는 마대와 함께 유비에게 귀순한다. 참고로 이때 마초는 처자식조차 버려두고 갈 정도였기 때문에 방덕 역시 남겨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자 그에게 귀순했고, 무용을 높이 평가받아 입의장군, 관문정후의 관위를 받고 식읍 300호를 얻었다.

218년 후음이 완성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관우와 내통하자 관우가 북상하였다. 이때 조인이 번성에서 출진하여 완성을 포위했을때 방덕은 조인 밑에서 군을 지휘해 활약한다. 조인이 완성을 함락시키자 관우는 그대로 한수를 놓고 조인군과 대치한다. 조조는 곧 우금이 지휘하는 원군을 보내 조인군에게 합류시킨다.

이후 형주 공방전에서 조인이 있던 번성에서 관우와 싸우게 되는데, 그의 옛 주인인 마초와 그의 형 방유(龐柔)가 에 있었기에 그를 의심하는 자들에게 '관우를 못 죽이면 관우 손에 죽겠다'고 결사의 의지를 보였다. 전투 중에 관우에게 화살을 쏴서 이마를 맞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관우는 멀쩡히 살아남았다. 놀랍게도 정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아마 투구의 이마 부분에 맞은 것을 그렇게 기록했을 수 있다. 방덕은 항상 백마를 타고 다녔는데 그의 활약상이 대단하여 촉군은 백마장군이라고 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조인은 방덕을 번성의 북쪽 지역에 주둔시켜 두었는데 연이은 큰 비로 한수가 범람하자 방덕은 제방에 올라 물을 피했고 조인, 우금군은 수몰되어 큰 타격을 입는다. 그 뒤 배를 타고 공격해오는 관우를 상대로 분전한다. 이 때 부하 동형, 동초가 항복하려 하자 베어 죽인다. 이후 조인의 진영을 향해 작은 배를 타고 가다 뒤집혀서 물에 빠졌고 배에 매달려 버티고 있다가 관우에게 사로잡힌다. 관우는 방덕에게 형이 촉에 있으니 투항하는게 어떤가 하고 권하자 방덕은

꼬마야, 어찌 항복 따위를 논하느냐! 위왕께는 정병 백만이 있으며, 위의를 천하에 떨치고 계신다. 네 유비 따위는 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대적이나 가능할 줄 아느냐! 나는 나라를 위해 귀신이 될 생각이니, 적의 장수 따위가 되지는 않을 셈이다!

라고 말하니 관우가 노하여 참하였다고 한다. 애초에 방덕은 마초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버림받은 후 조조에게 투항한 것이다.


위의 그림은 명대의 화가인 상희(商喜)가 그린 관우금장도(關羽擒將圖)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을 메고 출전했다는 식으로 더 장렬함이 강조된다. 위장이면서도 나관중의 총애를 받아 지용겸비의 호걸임이 강조되는데 마초의 장안성 공략은 거의 방덕의 공이나 다름없는 일로 묘사된다. 형주공방전에서는 관우와 몇십합을 겨뤄도 승부를 내지 못할 정도의 실력을 선보인 데다가 팔에 독화살을 맞추어서 치명상을 입히기까지 한다.

참고로 방덕이 우금의 부장이라는 것은 연의의 설정이다. 실제로는 조인 휘하에 있었지만 같이 수몰돼서 혼동했거나 아니면 항복한 우금과 대비시키기 위해 우금 휘하로 그려진 듯 하다.

정사에서는 살짝 임팩트가 떨어지지만 용맹과 절개를 아는 멋진 무인으로 등장한다. 평양에서 원상군의 상장 곽원을 베고 번성에서 관우를 화살로 쏴맞히는 등 대활약을 이어간다. 마지막까지 지조를 지켰다는 점도 플러스가 되어 조조로부터는 우금보다 낫다는 평을 받았다. 정사에서 보여주는 무용은 관우의 맞수를 자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전장에서 적군 사령관의 목을 베고 늘상 적진에 돌격하여 용맹함이 삼군 중의 으뜸이라는 평까지 얻는다.

제법 불쌍한 사람이다. 마초를 위해 그렇게나 헌신적으로 활약하고 정말 마초에게 목숨걸고 진심어린 충성을 바쳤는데 정작 마초는 유비에게 투항할 때 방덕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물론 마초에게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 방덕을 유비에게 같이 데리고 가지 못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명백한 것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방덕은 그렇게나 충성을 바치던 주인인 마초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방덕은 어쩔 수 없이 조조의 부하가 된 감이 있다. 연의에서는 병 때문에 대 유비전에 출전하지 못한 것으로 처리되는데, 설득력이 있달까.

방덕의 후손으로는 아들 방회가 있는데 관우를 아버지의 원수로 여기고 있었다. 마침 종회의 부장으로 토벌전에 참가해서 촉한의 유선에게 항복을 받아내는데 일조했는데, 이 기회를 틈타 방회는 촉한 지역을 샅샅이 뒤져서 관이를 비롯한 관우의 후손들을 모두 찾아내 멸족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일개 부장급이 항복한 관리, 그것도 당대에 이미 전구국 스타(...)였던 관우의 후손들을 함부로 죽였다간 오히려 방회가 엄벌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고 어떻게든 말이 많이 나오기 마련인데 배송지가 주로 단 《촉기》외에는 관련 기록이 없어서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반론이 나온다. 부정하는 쪽에서는 종회의 난을 진압하며 성도가 불타는 혼란한 와중에 휘말려 사망했고 후에 와전된 것으로 추정한다.

거기다 2001년 중국의 학자들은 결국 방회에게 멸족당했다고 하는 관우의 67대손 관중진을 찾아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고 한다. 음?

이 사건의 진실이 뭐냐 하면 방회가 멸족시킨 관우의 후손은 관우의 차남 관흥의 후손이다. 그리고 찾아낸 관우의 67대손은 관우의 장남[1] 관평의 후손이다.[2] 즉, 방회가 정말로 관우의 후손을 멸족시켰다면 관우의 아들 중 둘째인 관흥의 후손을 멸족시킨 것이다. 아쉽게도 삼국지연의(모종강본 기준)에서는 방회가 방덕이 떠날때 우는 장면(74회), 종회가 촉 공략을 앞두고 소집한 장수들 중 1명으로 언급되는 장면(116회)만 나온다. 다만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방회가 관이를 포함한 관우의 자손을 멸했다는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이름 때문에 간혹 착각할 수 있으나 방덕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참고로 방덕공과 방덕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인물이며 방덕공은 오히려 방통의 숙부로 제갈량과 사돈이다. 방덕'公'이 아닌 것이다.

미디어 믹스

----
  • [1] 양자가 아니다. 연의의 설정.
  • [2] 관중진의 족보에서는 관평의 아내가 조운의 딸 조씨, 아들은 건안 18년(서기 213년)에 태어난 관월(關樾)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