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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최종 변경일자: 2018-05-14 01:11:22 Contributors



서울特別市 / Seoul Metropolitan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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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Unknown)]
서울특별시
서울特別市 / Seoul Metropolitan City[2][3]
국가 대한민국
면적 605.25㎢
광역시도 서울특별시
하위 행정구역 25자치구 424행정동
시간대 UTC+9
인구 10,002,979명[4][5]
(2016년 4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16,730.13명/㎢
특별시장 박원순
재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교육감 조희연
초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상징
시화 개나리
시목 은행나무
시조 까치
시청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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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그림 (Unknown)]

1947년에 제정되어 1996년 10월 27일까지 사용되었던 서울특별시 휘장.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맨홀 등에는 아직까지 꽤나 남아있기도 하다.[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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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Unknown)]

서울특별시 휘장(2008년 ~ 현재).[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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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서울특별시의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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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 슬로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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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Unknown)]

시민과 함께 세계와 함께 슬로건. [11]


서울특별시의 마스코트인 해치.

영어 Seoul
일본어 ソウル[12]
중국어 首尔 / 首爾
프랑스어 Séoul
태국어 โซล
몽골어 Сөүл
힌디어 सियोल]
아랍어 سيول
터키어 Seul
그리스어 Σεούλ
러시아어 Сеул
라틴어 Seulum

서울이 단순히 한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다.
- 주한 미 대사관 문관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 1960년
서울은 한국인들의 마음 속 고향이다. 말하자면 서울은 한국인의 심장이다. 지금까지 두 번 적에게 이 서울을 내줬으면 됐지, 세 번은 내줄 수 없다.
-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 1951년
역사를 거슬러 까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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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중구 태평로1가동에 있는 서울특별시청. 도로명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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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서울 도심의 야경. 창경궁[14] 중심으로 멀리 종로 도심이 보인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찍은 것 같다.어뜨케 알았지의생명연구원에서 늘 보이는 풍경인까

동대문디자인플라자.아저씨 거기서 뭐하세요(아저씨의 표정이 영좋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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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지리
4. 행정
4.1. 자치구
4.2. 사업소
4.3. 유관기관
4.4. 직할 및 산하기관
5. 교통
6. 언어
7. 수도로서의 서울
7.1. 행정수도 이전 논란
7.2. 통일 수도 논란
7.3. 안보 문제
8. 프로스포츠
8.1. 농구
8.2. 배구
8.3. 야구
8.4. 축구
8.5. 아이스하키
9. 기타
9.1. 이름 논란
9.2. 외국어 표기 논란
9.3. 유독 서울토박이가 적은 이유
9.4. 늙어가는 서울?
9.5. 행정구역 개편 문제 (분할론 문제 포함)
9.6. 이모저모
10. 각종 해외 매체의 서울
11. 주변지역과의 관계
12. 자매결연도시
13. 서울 출신 인물
13.1. 외국인
14. 역대 서울특별시장 목록
15. 참조

1. 개요


대한민국수도. 줄여서 서울이라고도 일컫는다. 현재 대한민국 유일의 특별시 타이틀을 달았으며, 수장인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나머지는 차관급이다. 참고로 세종특별자치시특별자치시로 세종특별자치시장은 광역시장이나 도지사, 특별자치도지사 등과 마찬가지로 차관급이다. 혹자는 세종특별시[15]라고 쓰며 세종특별자치시가 서울특별시와 동급인 줄 아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서울특별시는 아예 지방자치법 외의 별도의 법[16]으로 규정되어 있는 법률상 대한민국 최고의 도시이다.

'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17]라는 속담이 존재하듯 조선의 수도로 존재한 이래 수백년간 한국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 특히 1990년대 이후로 지방 도시가 쇠락하고 서울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더욱 높아지면서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가 되었다. 1960년대에도 그렇게 생각했다는게 함정 오죽하면 정부에서 혁신도시까지 만들어 각종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며 인구분산을 꾀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 인구는 약 1,000만명으로 위성도시나 다름없는 수도권 주변 도시들까지 포함하면 세계적으로도 손꼽힐만한 어마어마한 메갈로폴리스가 된다.

2. 역사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변천사
한성부
(漢城府, 1394)
한성부 한성군
(漢城府 漢城郡, 1895)
한성부
(漢城府, 1896)
경성부
(京城府, 1910)
서울특별자유시
(서울特別自由市, 1946)
서울특별시
(서울特別市, 1949)

서울특별시/역사 참고.

3. 지리

4. 행정

서울특별시는 특별시의 형태로 대한민국 광역자치단체 중 하나를 구성하고 있다.

4.1. 자치구

제일 위에 있는 서울특별시의 자치구 명단은 대한민국 행정부에서 쓰는 공식 서울특별시 구 배열 순서에 따른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코드도 이 순서. 선거를 할 때 종로구가 제일 먼저 나오는 이유도, 종로구를 '정치 1번지'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순서의 유래는 종로구부터 순서대로 알파벳 소문자 e를 그리듯 나오는 순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1995년에 성동구에서 떨어져 나간 광진구가 5번째인 것은 구 성동구와의 연계를 위한 것이다.[18]

4.2. 사업소

4.3. 유관기관

  • 서울특별시의회
  • 서울특별시교육청

4.4. 직할 및 산하기관

6. 언어

7. 수도로서의 서울

7.1. 행정수도 이전 논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신민당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처음 수도이전론을 제기하였고 박정희 정권도 1970년대 중반 극비리에 수도이전 계획을 연구하였다. 인구 집중을 막기위한 목적이 있었지만 서울이 휴전선에서 멀지 않았고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노출되어있는 군사적 배경이 더 컸다.[28][29]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계획과 다르게 통일 이전의 잠정적인 수도로서의 수도이전안이 구상되었던 것이다. 즉, 통일이 되면 서울로 원상복귀할 생각이 있었던 셈. 당시 구상안에 따르면 후보지는 대전 인근으로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와 상당히 비슷한 위치였다. 이후 1977년 7월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공론화되어 신행정수도 부지 선정과 도시계획까지 진행중이었나, 박정희의 사망으로 유명무실화 되었다.[30]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충청권으로 주요 행정기능을 모두 옮기는 수도이전을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며 시도하여 행정기능을 충남 연기·공주 지역으로 분산할 계획이었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31]에 따라 무산되고,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대체되었다. 이때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관습헌법[32]을 논거로 판단하였는데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학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33] 다만 판례 이전에 1991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에서 서울은 이 법이 정하는 범위내에서 수도로서의 지위를 가진다고 되어 있어, 성문법적인 근거도 갖고 있다.

결국 해당 사업은 수도이전에서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로 이름을 바꾸고 규모를 축소한 사업이 되었다. 충청남도 연기군을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로 승격시키고 공주시, 충청북도 청원군 일부를 합쳤다. 2014년까지 몇 개의 행정부처를 이전하여 행정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역간의 찬반 대립으로 여러 곡절을 겪었지만, 행정도시 건설안 자체는 확정되었다.

7.2. 통일 수도 논란

미래, 북한통일이 이루어질 경우에 지정학적 조건상 현재 서울의 위치가 한반도의 중앙이며, 남북을 통틀어 최대규모의 도시이고, 인구수로 따져도 서울 하나만 북한 전체의 절반이 넘으며, 남한의 현 수도이자 조선과 대한제국의 수도였던 만큼 통일한국의 수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통일 이후를 바라보았을 때 현재 양측의 수도인 서울평양을 제외하고 통일국가의 수도를 새롭게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이 경우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인 철원이나 파주[34] 등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특히 1990년대부터 경기도 지역인사들은 파주 통일수도론을 강력하게 밀고 있다. 그러나 현 남북관계를 봤을때 이는 김칫국 마시는 이야기이다.[35][36]

여담이지만, 북한은 분단 후 오랫동안 헌법에서 서울을 수도로 지정하였다그런데 왜 맨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했지?. 이는 양쪽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통성 주장, 영토의 수복, 임시조치로서의 분단에 대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을 계기로 서울 수도 조항이 폐지되었다. 대체 조항으로 평양이 수도와는 미묘하게 다른 의미로 보이는 혁명의 중심도시로 지정되었다.[37]

7.3. 안보 문제

만약 북한오판을 하기라도 한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국가 주요시설과 인구 절반 가량이 밀집해있는 서울을 우선적으로 노릴 가능성이 높고, 한 번 공격하면 적은 무기로도 피해를 심각하게 입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유는 북한의 장사정포,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의 사정거리는 최소 서울에 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38] 서울특별시는 수도라는 특성때문에 후방으로 취급받을 뿐(즉, 전방 군단이나 해안경계 상비사단 관할구역이 아닌 향토사단 관할구역)이지 사실상 전방이나 다름 없다.하도 사람이 체감을 못할뿐, 외국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서울특별시는 군사적 전방 지역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도시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휴전선까지의 거리는 불과 40km[39]정도다. 만일 서울이 수도가 아니었으면 서울은 향토사단 관할 지역이 아닌, 제1군단이 강북 서부지역을, 제6군단이 강북 동북지역을 관할하는 식으로 전방 군단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영등포와 강남은 51사단55사단이 양분하는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단, 현재의 17사단의 전신인 33사단의 위수지역이 영등포 일대까지 포괄했던 것을 미루어보면 양천구, 강서구, 구로구 서부 일대는 51사단 대신에 17사단 관할 지역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이것도 수도이전의 꽤 큰 떡밥이 되기도 했으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자칫 북한에게 우리가 킹왕짱 쎄니까 지레 겁먹고 피하는구나라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수도이전 반대론자들이 "서울이 전방에 있는 게 오히려 수도방어에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8. 프로스포츠

10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니 만큼 스포츠팀이 굉장히 많다. 프로스포츠의 경우 1982년 MBC청룡이 프로팀 최초로 서울 연고의 스포츠팀이 되었으며 이후 여러 종목의 프로팀들이 창단 혹은 연고이전을 통해 많은 팀들이 서울을 연고로 하고있다.

8.5. 아이스하키

  • 명 상무 (2013년)

9. 기타

9.1. 이름 논란

서울이란 이름은 수도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래서 한자어가 없었던 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역사적인 뜻도 아니고 그냥 수도를 뜻하는 말로 서울이라고 붙이는 건 좀 그렇다는 의견이 이미 1950년대부터 한창 많았다. 국어학계의 다수설은 서울이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에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서울/동음이의어 항목 참조.

외솔 최현배같은 한글학자는 생전에 이 서울이란 이름을 고치자고 이승만에게 1955년 건의했고 이승만도 생각 끝에 이름 공모를 했다. 그리고 '어른의 의중'을 잘 받들어 모시는 아첨배들이 우남이라는 이름으로 짓자고 주장했다. 요게 뭔고하니 바로 이승만의 호. 하지만 이건 이승만 본인이 거부해서 탈락.승만그라드가 될 뻔했다. 이승만은 한양에서 따온 한도를 밀었다. 그러나 1956년 시의회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당선됨으로써 이 계획은 유야무야되어 서울이란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9.2. 외국어 표기 논란

한동안 중국에서는 서울을 조선시대 시절 명칭인 한성(漢城, 간체:汉城)으로 불렀으며, 그 때문에 서울대학교로 보내는 편지가 한성대학교로 잘못 가거나 또는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고[44] 한성(漢城)의 중국식 발음인 한청과 서울과 발음상의 괴리로 혼선이 많이 생겼다는 이유로 서울시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때인 2005년 초 서울의 공식 중국어 표기를 首尔(서우얼)[45]로 변경했다. 이것은 발음이 서울과 유사할뿐만 아니라 으뜸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명칭이라고 서울시에서 설명했지만 중화권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협의도 없이 멋대로 首尔로 바꿨다고 불만들이 큰 모양. 이는 일부 중국인의 경우 최근에 서울의 정식 명칭을 한성(漢城)에서 서울(首尔)[46] 바꾼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아서인데 음차자에 불과 하지만 한나라 한(漢)자에 대한 반감으로 바꾼 것으로 생각한 것. 굳이 중국 발음에 맞춰서 한문 표기를 정할게 아니라 조선시대 문헌에도 언급된적이 있는 徐蔚(서울) 등으로 표기하고 우리가 北京을 베이징으로 읽어주듯이 중국에서도 seoul로 읽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중국 정부에서는 이 명칭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얼마 후부터 공식적인 표기를 汉城에서 首尔로 바꾸기 시작했고 현재는 이 명칭이 완전히 정착되었다.[47] 중국 국영통신사인 신화통신 보도에서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하여, "한국 수도의 중문 명칭으로 '首爾'을 사용하는 것이 국제관례에 맞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외국지명 번역 규정에도 맞다"고 한 것. 오오 관련 기사 실제로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면 이젠 汉城보다 首尔이 더 많이 뜬다. 궁금한 사람은 직접 검색해보기 바란다.

영어 표기 Seoul은 원래 불어 표기 Séoul에서 부호만 떼어낸 것이다. Séoul은 세(Sé)울(oul)로 분석되는데 불어 음운체계에서 한국어 발음과 가장 가깝게 철자를 고른 것이다. 그 후 한국에서 영어가 주된 외국어가 되면서 Seoul을 서(Seo)울(ul)로 오해하게 됨으로써 ㅓ를 eo로 적는 관습이 생겼으며 현재는 아예 공식화된 것이다.[48] 스페인어에서는 Seúl로 표기하며 독일어는 영어와 마찬가지로 불어 철자를 그대로 따르되, 부호는 뗀 Seoul로 쓴다.하지만 대부분 외국인들은 쎄울이라 읽는다……. 한편 예전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의하면 서울은 Sŏul이 되는데 그래서 영어권의 한국 지도에 Seoul(Sŏul)로 병기되어 있는 사례도 있다(또는 기호를 생략한 Soul). 이것은 영어 철자와 (매큔-라이샤워표기법에 의한) 현지어 철자를 병기한 것이다. 영어권의 이탈리아 지도에서 Rome(Roma), 러시아 지도에서 Moscow(Moskva)라 나온 것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유명한 도시들은 현지어 표기와 영어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물론 다른 언어 기준으로 해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London은 불어권에선 Londres가 된다). 즉 가끔 Soul이라 나왔다고 오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 지도제작자들이 정확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Soul Of Asia 드립을 치고 있다.

일본어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京城(경성-케이죠)라고 부르다가 1948년 서울특별시로 지정되면서부터 ソウル('서울'의 음을 딴 것)로 표기했기 때문에 논란이 없다.

9.3. 유독 서울토박이가 적은 이유

모 신문기사(1983년)에 따르면 조선시대 서울(한성부)의 특수한 인구구성 및 역학관계때문에 서울토박이가 적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한양은 애초부터 조선이 건국하면서 만들어진 계획도시이기에 그곳에 살던 토박이들은 성저십리양주군으로 쫓겨났으며, 지방 출신의 출세한 양반들이 올라와서 사는 곳으로 변모했기 때문. 유독 양반 계층에서 서울토박이 비중이 적었던 것은 원적지가 지방인 양반이 많았기에 가문이 쇠락하거나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낙향을 했기 때문. 반면에 중인과 상민들은 서울 사대문안에서 하급실무직 및 상업 등에 종사하거나 성저십리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울에 정착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개항 이후 외국상인, 지방출신 상인에 밀려 서울토박이 상인들은 쇠퇴하고 말았다.

양반들은 종로 북촌마을(계동, 재동)에, 중인들은 누상동, 사직동, 농민들은 신촌, 마포 도화동, 성북구 종암동에, 상인들은 마포나 용산에, 장의사들은 광희동에, 백정들은 혜화동에 모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경술국치 이후에도 서울토박이의 수모는 계속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 외곽의 토막집 지역에 살던 빈민층 토박이들이 만주 등으로 강제이주 당하기도 하였으며, 6.25 전쟁때는 피난을 가거나 인민군 등에게 강제노역과 굶주림으로 수난을 당하기도 했으며, 국군이 서울 수복했을때 상당수 시민들이 '인민군 부역자'로 오인받아 많은 수난을 겪었다.#[49] 경제 성장 이후로는 서울토박이 상당수가 강남, 분당,영등포 등지로 분산 이주하였다.

9.4. 늙어가는 서울?

대한민국의 고령화 추세에 따라 서울시도 역시 시내인구 평균연령이 높아지고 있으나, 경기도나 인천광역시에 비해서 고령화가 더 빠르다는 게 문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19세 이하 영유아 및 청소년층의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7.88%, 2012년에는 3.87%이고,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0.98%, 2012년에는 2.17%이다. 반면에 경기도의 경우 19세 이하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4.99%, 2012년에는 5.65%,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 비율은 전국 기준으로 1992년에는 0.71%, 2012년에는 2.23%이다. 위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19세 이하 인구 비중이 전국 기준으로 1992년 7.88%에서 2012년 3.87%로 대폭 감소했지만, 경기도의 경우 19세 이하 인구 비중이 전국 기준으로 1992년 4.99%에서 2012년 5.65%으로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이는 확실하게 서울이 늙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지역별 출생아수 통계자료를 봐도 마찬가지이다. 1992년에는 서울시 출생아수는 182,691명으로 전국 대비 25%를 차지했지만, 2012년에는 서울시 출생아수는 93,914명으로 전국 대비 19.38%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경기도는 1992년에는 출생아수 136,086명으로 전국 대비 18.62% 였지만, 2012년에는 출생아수는 124,747명으로 전국 대비 25.74%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서울시와 경기도 간에 고령화 속도가 차이 나는 이유로는, 서울시의 높은 집값 때문에 젊은층 인구가 대거 경기도로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50]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의 출산율은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기사

9.5. 행정구역 개편 문제 (분할론 문제 포함)

9.6. 이모저모

인구가 많아 선거구도 많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탓도 있고 (서울토박이의 비율이 상당히 낮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치적으로 '지역색'이 잘 나타나지 않는 편. 그러나 지역감정이 두드러지지는 않되 '대한민국 제 1의 도시'라는 자부심으로 타 지방을 무시하거나 타 지방에 무지한 성향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 이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말이 서울부심, 서울 촌놈.

정치적인 중심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데다가 언론의 관심을 받기에 유리해서 항상 갖가지 목적의 집회가 일어난다. 건수로만 보면. 유령신고(해당 집회 장소에 다른 사람들보다 며칠 전에 미리 신고 를 해놓고 실제 집회는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이 집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 많큼 집회건수가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걸 제외하더라도 많은 집회가 일어나기 때문에 준법집회로는 언론의 관심을 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불법집회가 자주 일어나고, 따라서 전경의 근무강도가 제일 높은 지역이다. 시위때문에 도로점거가 자주 일어나서 도로통제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서울이 그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행정적인 편의 및 선진성은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급속한 개발의 힘도 강하게 미쳤기 때문에 '한국적인 미'는 제대로 살아있다고 보기 힘들고, 개발 차원에서도 난개발의 측면이 많이 나타나 '잘 짜여진 계획 도시'라는 평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국적인 동양의 정취를 느끼고자 서울에 들른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개 '궁밖에 볼 게 없다'라는 평을 하곤 한다. 그래서 남대문시장같은 재래시장에 외국인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최근 각종 고건물들이 복원되는 추세이긴 하지만…

게다가 일반적으로 도시의 볼거리는 전통 종교시설들도 큰 몫을 하는데, 조선시대의 숭유억불로 인해 한양 사대문 안에는 제대로 된 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러한 전통 관광 요소에 큰 문제점이다. 탑골공원인 원각사지는 터만 남아있고, 조계사는 근대에 지어진 절에다가 터가 매우 좁아 가람배치조차 완전하지 않다. 봉은사는 원래 사대문 밖에 있다가 편입되었고, 많은 부분이 새로 지어진 절이다. 나머지 길상사 등 작은 절들은 너무 작거나 근래에 지어져 관광요소로 적합하다고 하기 힘든 편. 명동성당 등의 근대 기독교 시설 등도 도시 규모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그러나 유교적 종교건물이자 세계유산인 종묘가 남아있어 반드시 부족하다고는 볼 수 없다.

애초에 사대문 바깥쪽은 본래 논밭과 산만이 어우러진 녹지였다. 이 지역들은 예전에는 경기도 소속의 지역들(다만 한성부 관할의 성저십리는 일제때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도로 서울시에 재편입)이었다가 서울시로 편입된 지역들이었다. 지금은 사대문 밖 지역 중에서도 가장 호화롭고 부유한 지역인 강남 4구 지역도 경기도 지역 소속이었다. 도시로 변한 건 20세기 이후이니 사대문 밖에는 전통적인 볼거리가 없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인 뉴욕[51]이나 LA가 엄청난 관광객을 유치하듯이 서울도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사실 이미 서울은 도쿄나 상해, 심지어 시드니와 로마보다도 관광객이 많은 세계 10위권의 관광명소중 하나다. 게다가 관광객의 대부분이 쇼핑관광을 즐기다 보니 관광객 규모 대비 수익률이 높은 것도 주목할 만한 포인트.

볼거리는 약간 부족하더라도 각종 면세점과 백화점들은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고, 때마침 불어닥친 한류 열풍은 관광계의 큰손인 중국인들을 대거 포섭하면서 꾸준히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동아시아에서만 관광객이 찾아드는 것은 아니고, 구미계 관광객들도 300만명이 넘는 적당한 수준을 유지중이다.

2011년엔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세계 10대 도시중 9위로 선정했었지만 2010년 1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최악의 도시 3위[52]에 랭크 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다만 관광 도시로서의 기능은 한국 내에서는 제법 높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답답한 것은 사실.[53]

이 곳을 배경으로 한 노래도 많다. 이전 일제강점기에도 서울미치 같은 노래는 있었으나, 서울이 나온 해방 이후 최초의 노래는 1949년 나온 현인의 '럭키 서울'이다. 그 외에 티 김의 '서울의 찬가'와 '서울의 모정',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이선희의 '서울의 밤', 이용의 '서울'[54], 보아의 '서울의 빛', 소녀시대슈퍼주니어'서울' 등이 있다.

그밖에도 향토음식이 유명세를 탄다 싶으면 갖가지 마개조 바리에이션을 내놓는 걸로 유명하다. 당장 리그베다 위키에도 본고장식과 서울식의 차이를 써놓은 음식 항목이 꽤나 많다. 대개 원본보다 단맛이 강해지는 편으로 이게 역수출돼서 본고장 물까지 흐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기의 질은 상당히 안좋았다. 특히 도심, 영등포쪽은 매캐한 매연으로 숨막혔을 지경. 그 당시의 서울은 그야말로 잿빛 도시에 가까웠다. 그 이후 서울시내 공단 재개발, 경유 차량에 대한 환경규제 강화, 시내버스의 천연가스화 등의 노력에 힘입어 2013년 현재는 과거보다는 공기의 질이 많이 좋아진 편.

서울이 세계에서 6번째로 고층빌딩이 많은 도시로 선정되었다. 심지어는 도쿄보다도 많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선진국 주요 도시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었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많이 발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3년에는 야간에만 운행하는 심야 버스를 개통했다.

10. 각종 해외 매체의 서울

각종 해외 매체들에서 서울을 위시한 대한민국의 고증은 동네들에 비하면 거의 서프라이즈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비중도 상당히 적으나 2000년대부터는 현지 촬영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매체에 등장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이 나올 경우에는 십중팔구 서울이 나오게 된다. 과연 서울은 떠오르는 창작물계의 막장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태국 영화 로 스트레인저는 서울으로 여행온 태국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내용으로, 서울 올로케 촬영으로 진행되었다. 게스트하우스나 난타공연, 소주, 산낙지등의 친근한 소재들이 많아서 한국사람도 즐겁게 볼 수 있다. 영화는 태국에서 흥행했으며 영화 개봉 이후 서울을 찾는 태국 관광객이 35% 늘었다고.

미국 드라마 24에서는 서울에서 꽤 잔혹한 코렁탕고문이 자행되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대외이미지 관련 질의에서 로스트와 함께 언급되었다.

미국 드라마 LOST에서는 주연중 사람한국인 캐릭터라서 기본적으로는 고립된 섬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지만 권진수꽈찌쭈와 백선화의 전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서울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빈도와는 별개로 로케도 안한채로 고증은 개판... 서울이 등장한 장면 일부 캡쳐.이것은 벽에 쓰는 표시이다.

2012년에 개봉한 본 레거시에서는 한국 주재 공작원이 자살하는 장면에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거리와 서울 지하철 3호선오금역이 등장한다. 현지 로케이션이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장면이었고 흥행에서도 참패한 탓에 밑 두 항목만큼의 관심은 못 끌었다.
2014년에 발매된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에선 2054년 미군이 드랍 포드를 타고 강하하던 도중에 북한군 대공포화를 얻어맞고, 전차와 저거너트 강화복이 돌아다니고 수직이착륙기들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로 변한다.

소설과 소설을 원작으로 2012년[55]에 개봉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네오 서울'(NEO SEOUL)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네오 서울'은 2144년이라는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기 때문에 21세기 초인 현재의 서울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한반도에 세워졌다는 암시가 있다. 그나마 한글이 쓰여있는 간판이 전부다. 게다가 거리는 상하이, 집안은 와패니즈풍이다.

2015년에 개봉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도 서울이 등장한다. 2014년 4월에 대대적인 현지 로케이션을 감행했고, 유관기관의 지원과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속에서 촬영을 순조롭게 마쳤다. 촬영 비화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한국 촬영 관련을 참조할 것

11. 주변지역과의 관계

서울을 품 안에 끼고있는 경기도와는 애증과 라이벌 등으로 오가는 떼어낼 수 없는 필연관계.[56] 같은 수도권이라는 점 때문에 공통점이 있기도 하고 과거 경기도 일부지역이 지금의 서울지역으로 편입되는 등 여러가지 변화도 있다. 전국체육대회에서는 영원한 맞수로 각각 1,2위 상위권을 다투는 중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때는 두 지역이 단합하여 수도이전을 반대하였다.

인천과는 같은 수도권인 점 때문에 경기도에 비해서 비중은 낮지만 특히 바다가 없는 서울의 특성상 일부에서 인천 서해안으로 원정을 가거나 피서를 즐기기도 한다.

13. 서울 출신 인물

서울 출신 인물 목록이 없는 것은 그냥 무시하기 바란다. 다른 지자체 항목에 없으면 그냥 서울 출신이다 물론 외국출신 제외

13.1. 외국인

서울에서 태어난 외국인들도 있다. 보통 상사주재원외나 외교관, 연구원 등의 자녀이나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일본인도 있다(한 일본인.

14. 역대 서울특별시장 목록

  • 1대 : 김형민 (재임기간 : 1946 ~ 1948)
  • 2대 : 윤보선[57] (재임기간 : 1948 ~ 1949)
  • 3,4대 : 이기붕 (재임기간 : 1949 ~ 1951)
  • 5,6대 : 김태선 (재임기간 : 1951 ~ 1956)
  • 7대 : 고재봉 (재임기간 : 1956 ~ 1957)
  • 8대 : 허정 (재임기간 : 1957 ~ 1959)
  • 9대 : 임흥순 (재임기간 : 1959 ~ 1960)
  • 10대 : 장기영 (재임기간 : 1960)
  • 11대 : 김상돈 (재임기간 : 1960 ~ 1961)
  • 12대 : 윤태일 (재임기간 : 1961 ~ 1963)
  • 13대 : 윤치영 (재임기간 : 1963 ~ 1966)
  • 14대 : 김현옥 (재임기간 : 1966 ~ 1970)[58]
  • 15대 : 양택식 (재임기간 : 1970 ~ 1974)[59]
  • 16대 : 구자춘 (재임기간 : 1974 ~ 1978)
  • 17대 : 정상천 (재임기간 : 1978 ~ 1980)
  • 18대 : 박영수 (재임기간 : 1980 ~ 1982)
  • 19대 : 김성배 (재임기간 : 1982 ~ 1983)
  • 20대 : 염보현 (재임기간 : 1983 ~ 1987)
  • 21대 : 김용래 (재임기간 : 1988 ~ 1989)
  • 22대 : 고건 (1기, 재임기간 : 1988 ~ 1990)
  • 23대 : 박세직 (재임기간 : 1990 ~ 1991)[60]
  • 24대 : 이해원 (재임기간 : 1991 ~ 1992)
  • 25대 : 이상배 (재임기간 : 1992 ~ 1993)
  • 26대 : 김상철 (재임기간 : 1993)
  • 27대 : 이원종 (재임기간 : 1993 ~ 1994)[61]
  • 28대 : 우명규 (재임기간 : 1994)
  • 29대 : 최병렬 (재임기간 : 1994 ~ 1995)
  • 30대 : 조순 (민선 1기, 재임기간 : 1995 ~ 1997)[62]
  • 31대 : 고건 (민선 2기, 시장 2기, 재임기간 : 1998 ~ 2002)[63]
  • 32대 : 이명박(민선 3기, 재임기간 : 2002 ~ 2006)[64]
  • 33,34대 : 오세훈(민선 4, 5기, 재임기간 : 2006 ~ 2010(초선), 2010 ~ 2011(2선)[65])
  • 35,36대 : 박원순(민선 5[66], 6기, 재임기간 : 2011 ~ 2014(초선), 2014 ~ 현재(2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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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 서울 항목 자체가 동음이의어 문서였으나, 위키 게시판 총의에 따라 서울 항목은 이곳으로 리다이렉트 처리되었고 기존의 서울 항목은 서울/동음이의어 항목이 이어받았다.
  • [2] 그런데 Seoul Metropolitan City를 직역하면 서울광역시가 되어버린다 미군정법률에는 Independent City of Seoul로 되어 있었다.
  • [3] 참고로 서울시민은 영어로 Seoulite, 프랑스어로 Séoulien(남자)/Séoulienne(여자), 터키어로는 Seullu이다.
  • [4] 실감이 나지 않는가? 국토 면적 순위에서 대한민국 바로 다음에 랭크되는 헝가리 전체 인구의 수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권 인구는 2517만여명으로 세계 2위에 달하며, 이는 남한 면적의 75배가 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와 맞먹는 수치이다. 물론 호주 땅 중에 쓸 만한 땅이 얼마 안 되기는 하지만.
  • [5] 하지만 서울의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세에 있다. 거기에다 경기도에 신도시가 계속 들어서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도시권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 [6] 이 휘장은 1947년 당시 서울특별자유시(당시 서울시의 명칭) 를 둘러싸고 있던 8개의 산인 남산, 와우산,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무학봉, 응봉을 상징하는 8각의 외각 안에 도성을 나타내는 원을 넣은 모습이다. 참고로 도봉산, 관악산 등이 없는 이유는 이들 지역은 이 당시에는 아직 서울시 행정구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7] 서울특별시 이전의 명칭이었던 경성부의 휘장은 서울특별시/역사 항목으로 옮겼으니 참고바람.
  • [8] 그림은 1996년 10월 28일부터 사용된 것으로 한글 '서울'을 서울의 산, 해, 한강으로 나타내면서 전체적으로는 신명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간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을 상징한다. 자연, 인간, 도시의 맥락 속에서 녹색 산은 환경 사랑, 청색 한강은 역사 와 활력, 가운데 해는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함축하고, 이 세 요소를 붓터치로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서울의 이미지와 사람의 활력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 [9]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쓰였던 서울시 휘장 중 그림부분은 지금의 것과 동일하지만, 색상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글씨부분 글꼴은 2008년에 서울남산체로 변경.
  • [10] 35대 서울시정 슬로건, 2011년 11월 시민공모를 거쳐 선정되었다.
  • [11] 박원순 시장 2기에 들어서면서 서울시가 새로 밀고 있는 서울시정 슬로건.
  • [12] Souru. ソウル의 표기가 soul의 음차와 동일해서 번역기에서 일본어로 소울 뮤직이라고 소울음악 얘기하기 위해 쓴 ソウル의 태반이 서울 뮤직이라고 오역되는 경우가 잦다. 영어권에서도 soul과 같은 발음으로 불리기 때문에 soul과 Seoul을 바꿔 쓰는 말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근년부터 서울시의 영문 캐치카피는 Soul of Asia다.
  • [13] 앞에있는 건물이 구청사,바로 뒤에 있는 유리궁전이 신청사 이다. 어떤 외국인은 파도가 구청사를 덮치는것 같다고 말 했다.
  • [14] 가운데의 밝게 보이는 건물들이 창경궁, 그 뒤의 넓은 숲 부분이 창덕궁 후원 지역이다.
  • [15] 특별시와 구분하기 위해 주로 특자시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 [16]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
  • [17] 그런데 현대에는 말도 서울경마공원으로 온다.
  • [18] 위의 명단을 자세히 보면 현재의 서울의 11개 학군 목록과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만 학군이 설치된 순서하고는 다르다. (순서를 말하면 중부, 성동, 동부, 성북, 북부, 서부, 강서, 남부, 동작, 강남, 강동)
  • [19] 전통적으로 도심을 4대문 안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이렇게 되면 도심은 종로구와 중구만 해당된다 그러면 창신동이나 신당동처럼 과거 종로구,중구가 아닌 지역에서 편입된 곳은 어떻게? 실제로 종로구 창신동이나 중구 신당동은 4대문 안이 아니다. 사실 1975년 이전에는 종로구와 중구가 4대문 안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었으나 1975년 창신동, 신당동, 평창동 등이 종로구나 중구로 편입되어 지금은 종로구와 중구가 4대문 안 지역보다는 조금 넓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대문과 동대문이 서대문구나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위치하게 되어 버렸다.
  • [20] 이렇게 할 경우 용산구의 포지션이 서북과 동북도 아니니 애매해진다. 그러다보니 용산구가 스리슬쩍 도심에 편입… 은 아니고, 1914년 일제강점기일본 제국이 경성부 성저십리를 절딴내어 고양군으로 넘겨버릴 때 일본군 주둔지였던 용산 경성부로 남겨둔 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보면 용산이 도심이라는 말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궂이 용산구의 포지션을 가르자면 녹사평대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서북, 동쪽은 동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도심도 궂이 동북이냐 서북이냐를 가르자면 녹사평대로와 직결되는 우정국로-남대문로-남산3호터널을 기준으로 서쪽은 서북, 동쪽은 동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명동에서 남쪽으로 7km가량 내려오면 구반포역 인근이고 혜화역, 종로5가역에서 남쪽으로 8~10km가량 내려오면 서초역 인근이다.
  • [21] 이상 서울시 분할 떡밥에서 북서울로 구별되는 곳.
  • [22] 이상 서울시 분할 떡밥에서 동서울로 구별되는 곳. 이 경우 강동구가 추가되기도 한다.
  • [23] 일명 서은마라고도 불린다.서대문 마포 은평은 본디 한몸이니라
  • [24] 서초구가 강남권이지 웬 영등포? 하시겠지만 이는 서초구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 현재의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광주군에서 편입되어 성동구에 포함되었고, 서쪽은 시흥군에서 편입되어 영등포구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서초구는 영등포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현재의 서초구 지역도 영등포구에서 성동구로 이관되었고 그 후 성동구의 강남지역이 강남구로 분할되고 방배동을 제외한 현 서초구 지역과 현 강남구 지역이 동시에 개발되면서 강남화가 진행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방배동은 강남구 신설시 강남구가 아닌 관악구에 소속되었다가 이후 강남구로 편입되었다.
  • [25] 단, 강남과 강동은 뜻이 미묘하게 다르다. 강동은 서울에 편입된 한강 이남 지역 중 서울 편입 이전에 경기도 광주군 소속이었던 지역을 말하며, 따라서 서초구는 강동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애초에 지금의 서초구 지역은 서울 편입 이전에 과천, 시흥군 소속이었고 서울 편입 이후에도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영등포구의 일부분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것이다.
  • [26] 생활 면에선 강남구에 붙고, 행정 면에선 강동구에 붙는다. 좀 붕 뜬 감이 있는 포지션.
  • [27] 강 남쪽은 분명 강남쪽이나 이른바 강남4구와는 구분되는 포지션.
  • [28] 흔히 서울을 후방이라고 보나, 사실은 서울 한강이북 시계만 벗어나면 바로 전방 전투사단이 배치되어 있고 휴전선과 근접한데다 의정부, 동두천 등 기존 경기도 전방지역도 신도시화 되고 있어 인문지리학적 구분도 흐려졌기 때문에 특히 한강이북쪽은 아무리 서울 시가지라 하더라도 군사적 전방지역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 [29] 추가하자면, 밀덕 일각에서는 "전쟁나면 서울 강북지역은 일단 내주고 서울 한강이남에서 방어전선 구축하고 위로 올라가는게 아니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
  • [30] 당시 청와대 중화학공업기획단 산하에 행정수도이전팀을 설치하여 총9권 분량의 종합보고서 《행정수도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을 작성하였다. 1990년대 이후 신도시에나 적용된 개념들이 당시 도시계획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 [31] 2004. 10. 21. 2004헌마554
  • [32] 관습이라곤 하는데 사실 1950년대 초 625전쟁을 겪으면서 임시이긴 하나 이승만 정부에서 천도를 꽤 많이 했었다. 주로 도망가는 루트로 수원, 대전, 대구, 부산에 임시수도 찍고 일본까지 튀어서 망명정부를 구성할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 [33]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실효시킬 수 있으나, 법률이 다른 법률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 쪽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는 특별법 우선의 원칙·신법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서울특별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과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상호 모순이 있으면 후자의 효력이 앞선다.
  • [34] 조선시대에 광해군이 파주의 교하 지역으로 천도하려는 시도가 있기도 했다.
  • [35] 그러나 북한이 구태여 서울을 헌법상의 수도로 20년 넘게 지정했던 것을 감안할 때, 차후 통일 과정에서 서울을 수도로 하는 데에 북한 측의 반대는 없을지도 모른다. 서울이나 태극기대한민국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대한제국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공모전을 통해 북한의 국기가 정해지기 전까지 이북 지역에서 버젓이 사용되었다.
  • [36] 다만 북한의 경우 남침을 염두에 둔 상징적 이유였다. 고려시대 북진개척이라는 명목으로 평양을 서경으로 삼은 것이나 이승만 대통령 시기 북진통일이라는 명목으로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없는 북한 지역에도 도지사 등을 임명한 것과 마찬가지의 정치적 제스처. 실질적으로 고착화 된 뒤에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 [37] 북한 헌법의 '서울 수도'조항은 남한 헌법의 '한반도 영토'조항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 북한의 서울 수도조항은 사라졌지만 남한 헌법의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존속중. 국가보안법도 이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 [38] 북한 일부 무기는 계룡대까지 닿는다. 수도권도 위험한 셈.
  • [39] 김포국제공항에서 개풍군 관산반도까지는 겨우 28km에 불과하다.
  • [40] 괄호 안은 서울 연고 입성 년도
  • [41] 2012~13시즌~2014-15시즌 중반까지는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관계로 서울에서 배구를 볼 수 없었다.
  • [42] 웬 서울이 아닌 아산이냐 하고 갸우뚱 할 수도 있는데,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때문에 2012-13시즌~2014-15시즌에 아산으로 임시 연고이전을 했다. 그래서 정식명칭이 바로 이거다. 2015년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완료 후 다시 입주를 하면 수정바람. 아, 만약 팀이 다른 기업으로 매각돼도 수정바람.
  • [43] 2012-13시즌에는 구미시 박정희체육관을, 2013-14시즌~2014-15시즌 중반까지 평택시 이충문화체육관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2015년 1월 19일 경기부터 장충체육관으로 복귀. 우리카드와는 다르게 팀명에 임시 연고지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다.
  • [44] 이 문제는 한국쪽에서 문제를 야기한 것도 있다. 국제우편의 공용어인 불어나 영어를 적을 때 쓰는 로마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어를 적는 글자인 한글도 아닌 한자를 이쪽 주소로 쓰거나 알려주는 바람에 생긴 일 아닌가? 여담이지만 중국어 교과서에서 편지쓰기를 설명할 때 편지봉투 쓰기에 상대측 주소를 中国 어쩌고 써놓은 예도 볼 수 있는데, 중국어는 국제우편의 공용어가 아니다. 중국 내부 주소는 중국어로 쓰더라도 원칙대로라면 교과서에 있는 봉투에 표기된 국가명은 中国가 아닌 (P. R. OF) CHINA나 (R. P. DE) CHINE로 썼어야 맞다. 물론 한국의 우체국에서 그 한자를 알아보고 보내는 주지만 말이다.
  • [45] 尔는 爾의 간체자고, 원래 한국에서는 '이'라고 읽는 글자다. 다만 저 뒤의 글자는 한국에서 쓸 때도 예외없이 간체자 표기로 쓴다. 차라리 저 (원래는) 간체 표기를 표준으로 하는 '서울 울'이란 새로운 한자를 도입했다고 보는 게 편할지도. (거의 모든 관찬매체에서 서울을 저 표기로 쓰고 음 자체를 "서울"이라고 달아버리는 게 증거.) 그렇지만 정체를 사용하는 대만에서는 당연히 首爾로 쓴다.
  • [46] 중국어 표기법에 따른 발음은 '서우얼'이라고 하나, 한국 공공기관에서 서우얼이란 발음을 쓴 적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서우얼 표기를 막 만들었을 때 빼고는 없다. 전부 저 한자를 써놓고 음으로 "서울"이라고 달고 있다.
  • [47] 심지어 오랫동안 汉城으로 알고 있었던 중국 고위급 관리들도 한국 외교관한테 首尔로 쓴다고 한다.
  • [48] 불어로 그냥 u만 쓰면, y 즉 '위' 비슷한 발음이 난다. 따라서 음절 구분은 원래 Se-oul로 하였다. 실제로 영어를 비롯한 유럽권 언어의 사전을 보면, 이렇게 음절 구별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서(Seo)울(ul)로 공식화되었다. 여담이지만 한국인이 영어 등의 라틴 글자 사용 언어로 글을 쓸 때 한국의 다른 지명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나 해당 언어권에서 원래 쓰는 철자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경주를 Kyung-joo라고 쓴다거나), 서울은 그렇게 하는 경우를(굳이 예를 들자면 Suh Wool이라거나) 거의 찾기 힘들다. 해당 언어에서 쓰는 철자를 그대로 따라간다.
  • [49] 참고로, 본래 서울시민들은 남부지방에 비해 보수적 성향이 짙었는데, 6.25 전쟁으로 인민군의 점령치하로 들어간 서울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잔류파'가 되어 인민군 치하 3개월 동안 노역에 시달리고 굶주림으로 고생했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는 9.28 서울 수복 후 서울에 들어와서 "부역자 엄단 방침"을 선포했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민들 사이에 '도강파-잔류파 문제'로 서울은 오랫동안 갈등에 시달렸고, 세태는 험악해졌다(-여기서 소수의 '도강파'들은 소위 '애국자 행세'하면서 '잔류파'가 대부분이던 사람들을 '부역자'로 몰아붙혔다-). 때문에 서울 사람들이 이승만과 자유당을 좋아할 리 없었다.(이후 1956년 선거때 부통령 선거, 1958년 총선때마다 이승만과 이기붕, 자유당이 유독 서울에서만 선거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민들로부터 야유를 심하게 받았었다. 특히 서울시민들은 이기붕을 매우 싫어했었다고… 이는 1956년 대선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서울지역에 한정해서 이승만은 20만표, 조봉암은 11만표, 무효표(신익희 추모표) 28만이었다.#
  • [50] 정확히 말하면 집값 보다는 어린아이를 안전하게 키울만한 계획도시로 시가지 아파트가 부족해서다. 실제로 서울 주거지역의 상당수는 구릉지 구옥 및 다세대,다가구이던가 달동네를 재개발하여 언덕배기인 아파트단지이고 강남의 계획된 시가지도 주거지역 곳곳에 업무상업용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살아서 그 동네가 익숙한 장,노년층 이외에는 외부에서 들어와 살기 어렵다. 한번 서울시 지도 가지고 신도시(분당,일산)처럼 평지에 대단위 주거지구 및 공원 등이 어우러진 곳이면서 재건축예정지역이 아닌 곳이 몇 곳이나 있는가 세어볼 것. 대치/개포동 인근, 목동신시가지, 올림픽선수촌 일대, 중계동일대 신시가지, 가양동 정도?
  • [51] 서울처럼 사대문 안팎으로 유리궁전과 아파트가 비쭉비쭉 솟아있는 멋없는 도시는 아니다. 적어도 도시 발전의 역사는 그나마 보존되어 있다.
  • [52] 선정 이유는 "형편없이 반복적으로 뻗은 도로들과 소련식의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들, 그곳은 심각한 환경오염 속에 마음도 없고 영혼도 없다. 숨막힐 정도로 특징이 없는 이곳이 사람들을 알코올 중독자로 몰아가고 있다."라고 한다. 참고로 1위는 범죄와 오염이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2위는 혼란스럽고 추한 도시라는 평가를 받는 가나의 아크라.
  • [53] 하지만 이 조사는 론리플래닛의 공식조사가 아니다. 단지 론리플래닛의 회원 2명이 서울을 3위로 선정한 것일 뿐이라서, 조사의 신뢰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게다가 이 '2명의 회원'의 의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다른 회원들도 꽤 있다.'자세한내용'
  • [54] 허무송으로 더 유명하다.
  • [55] 한국에서는 2013년 1월에 개봉했다.
  • [56] 애초에 경기도 명칭부터 서울 경(京)이 들어갈 정도다. 경기라는 말 자체가 서울 주변이라는 뜻…
  • [57] 역대 서울시장 중 최초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시장이기도 하다.
  • [58]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경질되어 물러났다.
  • [59]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으로 경질되어 물러났다.
  • [60]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자 재향군인회 전 회장이기도 하다.
  • [61]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경질되어 물러났다. 이후 민선 2, 3기 충청북도 도지사로 행정장을 다시 지낸다.
  • [62] 하필이면 당선 2일 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시장 취임을 하자마자 삼풍 사고 복구로 시작하게 되었던 시장이 되었다.
  • [63] 시장 중 최초로 대통령 임명과 민선으로 시장에 취임하였던 사례를 가지고 있다.
  • [64] 윤보선에 이어서 사상 2번째로 서울시장 출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 [65]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 무효화에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 [66] 재보궐선거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