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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

최종 변경일자: 2015-04-08 08:42:33 Contributors

申昌源 / Shin Chang-won

신창원.jpg
[JPG 그림 (Unknown)]




"저 같은 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사랑을 주십시오."

"의적이 아니다. 그저 죽어 마땅한 죄인일 뿐. 10대들이 나를 우상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 번만 쓸어 줬어도 여기까지 안 왔을 것"

"새장 같은 공간, 그리고 온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 나약한 의지를 어찌할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절망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바삐 날아온 사랑이 있었다.. 이모님의 병상 소식을 접했을 땐 눈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울지 않는다. 해빙이 되고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면 밝게 웃으면서 풍성한 품으로 부를 걸 알기에 조용히 봄을 기다리겠다" (이해인 수녀에게) # 어록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데다가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교육을 잘 받지 못하다가 범죄에 빠지게 되었다. 흉악범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들의 집만 골라서 털고 다녔다.[1] 그가 범죄자가 된 계기는 그의 저서에 초등학생 5학년 때 선생님이 "돈 없으면 어서 꺼져."[2] 라고 말한 것이 자신의 마음 안에서 어둠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로이터는 신창원이 체포 되었을 때, 한국의 로빈후드라고 기사화했다.#[3]

목차

1. 탈옥 사건
2. 그 외
3. 자살시도
4. 참고자료


1. 탈옥 사건


1989년 3월 28일에 서울에서 후배 4명과 절도를 하고 나오는 과정에서 집으로 오던 집주인이 공범 1 김양훈에게 살해되어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받고[4],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1997년 1월 탈옥을 저질렀다. 노역작업 도중 손에 넣은 작은 실톱날 조각을 이용하여 하루에 조금씩만 긋는 수법으로 여러날을 거듭해서 지름 1.5cm의 쇠창살 2개를 끊었고 감방을 빠져나와서 외벽 환기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20m를 달려가서 교회 신축공사장 철담장 밑 땅을 파고 도주했는데 폭 30cm 깊이 0cm정도의 꽁꽁 언 땅을 탈주범이 단시간에 파내어 도구를 준비했으며 동료 죄수들을 포섭하였고, 심지어 교도소의 묵인까지 제기될 정도로 신출귀몰한 탈출이었다.

그 뒤 2년 6개월간 4만여km 의 거리의 도주를 계속하였으며,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체포 직전에 경찰의 추격을 따돌린 것만 무려 6번이었다. 연인원 97 만여명이 동원되었고 전국 6개 지역 지방 경찰청에 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부산에서 탈옥하여 거의 전국을 돌다시피 하며 도주를 하였는데 지나간 곳마다 해당 지역 경찰서 높으신 분들목이 날아갔다. 오관참육장? 특히 신창원의 담당 형사인 원종렬 경장은 원래 경사였는데 신창원 때문에 경장으로 강등 당하는가 하면 신창원을 잡기 위해 밤을 세워가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등 신창원으로 인해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죽을 고생을 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경찰의 진급적체를 해소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때 진급한 김석기 등이 나중에 경찰청장에까지 오르게 된다.

경찰이 쏜 총[5]에 맞고도 도주하여 살아남았는데다가 쥐를 잡아먹으며 박스 안에서 일주일을 넘게 버텨내기도 하다가 1999년 7월 16 일 전라도 순천에서 가스 수리공 김영근의 신고로 검거되었다. 이 사건 덕에 그는 방송을 타며 전국구급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어, 현상금이 5천만원에 달했다. 이는 당시 정부수립 이래 사상 최고액 현상금으로 2011년까지 매 년마다 산불을 일으킨 방화범 일명 '봉대산 불다람쥐'에 현상금 3억원이 걸릴 때 까지 갱신되지 않았다. [6][7] 그리고 신고한 수리공 김영근은 경찰관으로 특채되었다.#


174cm의 키에 미남형으로 그가 검거될 당시 입었던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의 티셔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한때 저 딱 달라붙는 티셔츠가 '신창원 티셔츠'라며 유행하기도(...)

검거된 뒤 징역 22년 6개월이 추가되었고 그는 흉악범을 가둬두는 청송교도소로 수감되었다.[8] 탈옥사건 이후로는 모범수로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2010년 6월에 강력범을 수감하는 청송 2교도소에서 일반 교도소인 제1교도소로 이감되었다고 하며, 상담사 자격증을 목표로 감옥 내에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2011년 시점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학사 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감옥에서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면 매우 논리적이고 지적인 문장과 내용이 인상적이다. #

2. 그 외


2000년 1월 4일 청송교도소로 이감을 왔을 때, 한 때 개신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했으나 목사방언을 강요하고 기이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개신교에 회의를 느껴 거부하였다고 한다.

탈옥 당시 신창원에게 우호적인 혹은 대리만족을 요구하는 여론이 신창원 신드롬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으로도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유즈맵이 나와서 해당 유즈맵이 언론의 지탄을 받은적도 있다. 지금이야 이슈가 잠잠해짐에 따라서 잊혀진 유즈맵중 하나가 있지만 원래 이쪽업계중에서 정치/사회적 떡밥을 소재로 하는 유즈맵도 적지않게 있다보니...[9]



여담이지만 박인권이 신창원 만화를 그려서 멀쩡한 사람 여럿 신창원 흉내낸다고 인생 망치게 했다. 신창원은 자기 미화하는 만화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했다고 한다(원문은 더 살벌하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다른 관점에 보면 한편으로는 미화일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박인권이 그린 신창원 만화는 여론에서 단순하게 일색하는 탈주범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의 유년기 시절부터 검거되기 직전까지의 그의 인생을 자세하게 그려놓았다. 때문에 그의 자신의 홀대하는 아버지와 새어머니, 돈이 없어 방황하는 그의 성장기가 담겨있고 독자들은 그의 범죄행위가 단순히 그의 잘못만이 아닌 환경과 주변사람들의 잘못도 있다는 동정심을 유발시킨다. 더욱이 아무리 악인을 소재로 한다하더라도 작품의 주인공은 주인공 보정이라는 특수한 요소가 들어갈수 밖에 없고 아마 박인권 작가 본인도 신창원의 범죄행위를 적나라하게 그렸다할지라도 만화 중간중간마다 빠지지않는 그의 인간적인, 사람을 동정하고 인간미를 좋아하는 모습을 단순하게 변명거리로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박인권은 만화 속 문구에 "신창원은 결국 범죄자이고 그는 검거되야할 사람이다."라고 굳게 명시하고 있다. 이런 문구의 의미는 역시 원인은 어찌됬든 범죄자는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 그가 다른 이유로 면죄부를 받아야할 인물로 미화할 생각은 없다고 보는것. 결국 정리하자면 만화 자체가 어느정도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으나 그것은 만화가 그의 인생을 자세하게 담으면서 그의 어려웠던 환경이 범죄자가 되게 만든 요인임을 보여줄수 밖에 없었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것이지 그런 것 마저 범죄자를 미화한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일듯 하다.




리즈시절 막갤에서 난데없이 신창원의 이름을 네이버 검색순위 1위로 올려놓는 검색순위 조작을 한 적이 있다. 전국구급 낚시로 사람들은 당시 신창원이 또 뭔가 저질렀나 의아해했다고.


법을 공부해서 국가와 교도소장을 상대로 4건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승소했다.

3. 자살시도

2011년 8월 18일 감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기도했다. 자살 원인은 한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고 한다.[10] 상당히 위중했으나 얼마 후 의식을 회복했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보도가 이어졌지만, 늦게 발견된 탓에 뇌손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8월 22일, 그가 1월달에 한국의 교도행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낸 편지를 문성호 자치경찰연구소장에게 보냈었다는 기사가 실렸다.참고 문 소장은 이 때문인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장기수에 대한 절망적인 수용 실태 때문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신창원의 편지

4. 참고자료

당시의 기사 :
#[11]

국가기록원 : #

호산나 신문 칼럼 : 탈옥수 신창원을 교회에서 밀어낸 것은?#

신창원 기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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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측에 의하면 신창원에게 털린 부유층들의 신고는 0건이라고 한다. 도난된 현금이 검은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잠복근무을 하던 경찰관이 신창원의 동거녀를 성폭행하여 파문이 났다.#

신창원 검거실패로 징계받은 경찰은 29명, 총경이상만 10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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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적어도 누구를 때리거나 죽이지는 않았다. 부자집의 경우 억단위로 터는게 보통이었다.
  • [2] 당시 초등학교,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 아니였기 때문에 돈내고 다녀야 했다. 이 말을 듣고 자신의 마음 속에 악마가 태어났다고 느꼈다고 한다. 21세기에 인권존중 받으며 초중등 교육을 마친 세대 시점에서는 세상에 그렇게 말하는 교사가 어딨냐? 라고 믿지 못하고 그냥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거짓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월사금' 안 냈다고 두들겨 패는 교사는 흔했다. 한국만화 검정 고무신에도 비슷한 장면을 볼수있다.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한 소설 "흰종이 수염"에서도 사친회비를 안냈다는 이유로 책보를 빼았고 부모님 모셔오라고 했다는 장면이 있다.
  • [3] 경찰은 흉악범을 영웅화했다고 반발했지만, 사실 신창원은 1989년 3월 28일에 후배 4명과 절도하고 나오는 과정에서 집으로 오던 집주인과 마주친 공범 1 김양훈이 살해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강도치사가 된 이사건 외에 절도 전과만 있는 절도범이다.
  • [4] 즉, 신창원 본인은 살인을 하지 않았지만, 살인을 한 자와 같은 패거리로 강도를 하였기 때문에 살인에 대한 죄값을 함께 치러야 하는 것이다.
  • [5] 이 총을 쏜 장본인이 원종렬 경장이다.
  • [6] 참고로 이 사람은 2011년 3월 검거되었다.
  • [7] 그리고 2014년, 유병언이 현상금 5억원으로 기록을 또 깬다(...).
  • [8] 2.6미터의 방에서 단독으로 수감중이었다고...
  • [9] 예를들면 마린뽑기의 변형인 ○○○ 대통령 뽑기류 일당백 유즈맵이나, 지역감정을 소재로 유닛이름을 작명한 지역감정류 디펜스 등...
  • [10] 사실 신창원은 복역 초기엔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감옥에 들어간 뒤로 그를 찾아온 건 아버지뿐이었다고 한다.
  • [11] 후배 공범 4명은 4월 1일에 체포됐지만, 신창원은 총상을 입고 도주한 뒤 나중에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