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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호

최종 변경일자: 2015-04-04 23:51:52 Contributors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48kg 금메달
1995 스웨덴 세계선수권 48kg 금메달
1996 샤오산 아시아선수권 48kg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48kg 금메달
1998 체코 세계선수권 54kg 금메달
1998 방콕 아시안게임 54kg 금메달
1999 우즈베키스탄 아시아선수권 54kg 금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 54kg 금메달
금라인

한국 레슬링의 전설적인 선수. 서로 다른 두 체급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비롯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다. 선수 이후에는 해설자로 나름대로 명성(?)을 날렸다.

1972년 10월 12일생. 청소년 시절에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선수였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유형 선수였지만 자유형이 자기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 그레코로만형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자신의 체급인 -48kg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국제 대회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1991년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권덕용에게 밀려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었다.

권덕용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한 후 그의 자리를 밀어내고 1993년부터 대표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1993년 세계선수권 동메달로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후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5년 프라하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 1995년과 1996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으로 올림픽 티켓을 획득하며 일찌감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심권호는 대진이 최악으로 걸린다. 2회전에서 라이벌인 러시아 선수를 만나게 된 것. 이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2:1로 승리한 후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위기 없이 결승까지 순항했고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4:0으로 승리하면서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따낸 100번째 메달의 주인공이자 애틀랜타 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 그리고 워낙 압도적인 기술과 경기 운영을 보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순항할 줄 알았는데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48kg이 애틀랜타 올림픽을 끝으로 폐지된 것.

졸지에 레슬링의 최경량급이 -54kg이 되면서 체중을 한 번에 6kg을 불려야 했고 그 결과 심권호는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체급에 적응한 후로는 다시 이 체급의 절대 강자로 부상하게 된다. 후배인 하태연과의 치열한 승부를 거치면서 대표팀에서 살아남는 데 성공한 심권호는 -48kg에서 그랬듯이 또 다시 -54kg에서도 같은 코스를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1998년 예블레 세계선수권 우승,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9년 아시아선수권 우승, 그리고 치열한 대표 선발전 끝에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에 선발되었다.

4년 전에 비해 원숙해진 심권호는 8강전에서 한 번 고비를 맞아 독일 선수와의 경기에서 5:4 역전승을 따냈다. 4강전에서는 북한의 강영균은 10-0 테크니컬 폴로 눌러버렸고 결승에서는 당시 -54kg 세계최강으로 여겨지던 쿠바 선수를 맞아 초반 상대의 방심을 틈타 8-0을 만들고 남은 4분 동안 끈질기게 버티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 당시 남은 4분은 심권호에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게 하였다고 한다. 이로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체급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뤘다면서 현역에서 잠시 은퇴해서 코치로 생활하다가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컴백했다. 대표선발전 1차 대회에서는 후배에게 졌지만 2차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오르면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했지만 협회가 이미 대표를 결정하는 바람에 올림픽 출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심권호 자신은 3연패라는 대업[1]을 이루기 위해 최후의 노력을 다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은퇴하게 되었다. 사실 심권호가 실력으로는 한 번 해볼 만 했지만 협회도 그렇고 레슬링계 내부에서 "그 정도 했으면 이제 후배에게 좀 양보하지?"라는 심리가 없지 않았다고.

레슬링 선수로서의 심권호는 한 마디로 굉장히 영리하고 기술에 능한 선수였다. IQ 145라는 명석한 머리로 상대의 작전을 이용하면서 지능적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잠시 방심한 척 틈을 보이다가 상대가 미끼를 물면 바로 공세에 돌입해서 가볍게 상대를 제압하는 힘을 가진 선수. 워낙 기술이 다양해서 상황에 맞춰서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다른 선수들이 하나의 주무기를 가졌다면 심권호의 레파토리는 대여섯 가지 정도 되는 선수였다. 여기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체급의 정상에 군림한 보기 드문 자기 관리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 레슬링 최경량급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은퇴 후에 2004 아테네 올림픽부터 해설자로 데뷔했다. 다만 해설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많은데 냉철함보다는 다소 격정적인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경기를 분석하고 전달하기보다는 상황에 맞춰 같이 흥분하면서 이른바 막말 해설로 많이 까였다. 대표적으로 정지현이 금메달 땄을 때 좀 과하다 할 정도로 흥분을 했다. 경기를 잘 못 풀어나가면 찰진 충고도..."야이씨 바보야!" 이 해설에 대해서 재밌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말에 대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결국 이때문에 사과방송도 해야 했다.

그래도 말주변도 좋고 레슬링계의 전설이기 때문에 자주 해설 외에도 예능 프로에도 반 고정으로 나왔다. 특히 몸을 쓰는 예능에서는 거의 100% 단골. 한 번은 어느 예능 프로그램 몸 쓰는 코너에서 쇠봉으로 만든 훌라후프를 출연자 중에 유일하게 돌리기도 했다. 코치로도 활동했지만 코치보다는 예능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출발 드림팀에 많이 나왔고 2012년에는 종편 채널A불멸의 국가대표에 고정으로 나오고 있다.

주택공사 소속으로 오래도록 뛰었다가 LH의 코치를 잠시 역임했다. 2012년 현재는 코치 대신에 일반 직장인이 되었다. 보직은 신도시 보상팀 팀장. 유명한 레슬러가 보상을 담당해서 그런지 험한 보상팀 임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마찰은 없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여자친구를 한 번도 못 사귀어 봤다는 소문이 있다(...). 위에서 서술한 흥분 해설도 성격이 지나치게 순수하고 멋없다보니 발생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레슬링을 잘했구나? 그의 싱글라이프가 화제가 되었는데 그의 무심한 듯 시크한 태도에 감탄 및 웃픈 감정을 표하고 그를 구출할(?) 처자 어디 없냐는 네티즌이 대부분이다. 남자의 로망 게다가 LH공사 부장이다! 본인 왈, 운동할 때는 계체량이다 머다 하도 빡시게 살다보니 좀 백수처럼 놀고 먹고 사는 게 꿈이어서 지금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2013년, IOC에서 2020년 올림픽부터 레슬링을 잠정 퇴출하겠다고 발표하자 아쉬움을 토로했다. '머리가 띵했다'. 다행히도 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으로 잔류하면서 한숨 돌렸을 듯.

160cm라는 작고 갸날픈(?) 체구 때문에 "내 남친이 심권호 정도는 이긴다"고 말하는 레슬링이라곤 전혀 모르는 여자들이 있다. 물론 남친들 입장에선 이게 웬 날벼락 이게 왜 말이 안되는지는 레슬링 항목과 무술 VS 무술, 레슬링 항목을 참조하자. 국가대표 레슬러 쯤 되면 아무리 체급이 차이나도 일반 사회체육인은 메트에서 걸레마냥 굴러다닐 수 밖에 없다.

2014년, 국제레슬링연맹에서 발표하는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입회하는 영광을 안았다.'심권호, 한국인 최초로 레슬링 명예의 전당 입회'


엄청난 실적을 쌓은 레전드지만,빠가 까를 만드는 케이스중 하나. 국뽕&환빠
2체급 그랜드슬램이란 엄청난 실적을 쌓았지만,국제대회 패배도 가끔 있었고,국가대표선발전에서 국내선수에게 패배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대회 무패의 흠잡을데 없는 무패의 챔프로 잘못된 소문이 돌고 있다. 심권호 선수의 독주로 48kg이 폐지됐다는 어처구니없는 낭설도 돌고 있는데,실은 여자레슬링이 창설과 올림픽 규모 축소화가 맞물려 체급을 줄이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에 불과했다.(I.O.C는 국가별 종목 쿼터제를 줄 정도로 올림픽 비대화를 막느라 대단히 골몰하고 있다.실례로 태권도는 8체급이 벌어지지만 국가별로 4개체급,역도도 8체급중 국가별로 5체급까지 출전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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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게 얼마나 대업이냐면 1회 대회부터 있었던 레슬링 종목에서 올림픽 3회 우승을 이룬 선수는 역사상 딱 다섯 명이다. 그 중에 위키러들에게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알렉산더 카렐린. 그리고 이들 다섯 명 중 중량급이 2명, 최중량급이 3명일 뿐 경량급 선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