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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안톤 오노

최종 변경일자: 2015-04-15 21:17:34 Contributors

이름 아폴로 안톤 오노|Apolo Anton Ohno
생년월일 1982년 5월 22일
국적 미국
신장 173cm
주종목 1000m|1500m

목차

1. 개요
2. 선수경력
2.1. 주니어 시절과 시니어 초기
2.2.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2.2.1.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 논란
2.2.2. 500m와 1000m
2.2.3. 문제의 1500m 그리고... 그는 왜 욕을 먹게 되었는가
2.3.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2.4.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3. 주요 수상경력
3.1. 동계올림픽
3.2.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4. 기타


동계올림픽 3회 연속 메달리스트(2002, 2006, 2010)
역대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최다 메달리스트 (8개)[1][2]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전종목 메달리스트[3]
2000/2001, 2002/2003, 2003/2004 시즌 ISU 쇼트트랙 월드컵 챔피언
2008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챔피언
최고의 연기자

1. 개요

1982년 5월 22일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나 시애틀에서 성장했다. 이름과 외모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겠지만 아버지가 일본인이고 어머니가 백인인 일본계 미국인이다.[4]

2000년대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들 중 한명으로 당대 최고의 선수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미국쇼트트랙 레전드로 치부될 정도로, 미국에선 국민영웅으로 대접받는 선수. 하지만 한국에선..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제무대에서 쓸어담은 수많은 메달들은 고스톱 쳐서 딴게 아니다. 한국 선수들이 실력적으로 가장 경계를 하는 해외선수 중 하나였고, 현시점에서 본다면 투박하긴하지한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보냈던 선수임을 감안한다면 수준급 테크닉을 가지고 있고 강한 체력이 주된 장점인 한국선수들에 결코 밀리지 않는 지구력을 갖췄으며 체격에 비해 힘도 있던 편이라 몸싸움이나 스퍼트에도 능한 편이었다. 덕분에 173cm라는 작은 신장을 가지고도 500m에서 꽤나 선전하던 선수였다.[5] 쇼트트랙 스케이터로서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춘 올라운드 스케이터라고 봐도 무방하며 모든 종목에서 포디움을 노릴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본 실력을 폄하할 정도로 평판을 엄청나게 깎아먹는 요소[6]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비매너적인 플레이에 있다. 상대선수와의 접촉을 피하지 않으며 반칙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교묘하게 손을 쓰는 점에 있어선 역대급 재능을 지닌 선수였다. 국내 선수와 지도자들의 발언에 따르면 쇼트트랙이란 종목 특성상 신체접촉이 잦을 수밖에 없고 이런 부분의 판단은 애매할 수밖에 없는데 오노는 정상적인 플레이와 반칙의 경계선에서 교묘하게 반칙성 플레이를 한다고.[7] 당연히 쇼트트랙 최강국인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와 엮이는 경우가 유독 많았고 결정적으로 김동성과의 악연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거의 공인 천하의 개쌍놈 포지션에 자리잡게됐다. 거기에다 묵묵하게 있어도 까일 짓을 했음에도 깨알같이 깨방정을 떨며 "김동성 실격될줄 알았다"라고 인터뷰를 날리는가 하면 뻔뻔하게도 자서전에 "김동성이 자신의 반칙을 인정하고, 나를 세계최강자라고 칭송했음ㅋ"라는,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거짓부렁까지 적어서 출판한 사실이 알려지고 부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그놈의 입방정 덕분에 더욱 더 까임을 자초한 케이스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할건 오노는 대표적으로 리자준, 왕멍을 비롯한 몇 중국선수들처럼 다른 선수를 고의적으로 다치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반칙을 범했던 선수는 아니었다.

2. 선수경력

2.1. 주니어 시절과 시니어 초기

오노가 12살이었을 무렵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시청하던 그는 쇼트트랙을 시청한 후 선수로써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한다. 특히 김기훈의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고 하며 자신의 우상으로 김기훈을 말하기도 했다. 아버지인 오노 유키는 자신의 아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으며 심지어 차로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오노를 대회에 출전시켰다 한다. 그의 재능을 본 유키는 1996년 아직 미성년자였던 오노를 레이크플라시드 올림픽 트레이팅센터에 보낸다. 이때 그의 나이 13살로 트레이닝센터에 들어간 선수 중에는 가장 어린 선수였다고 한다.

처음 트레이닝을 시작하였을 때는 굉장히 나태한 자세로 훈련에 임했지만 주변 동료들에게 땅딸막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훈련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다음해였던 1997년에 미국 주니어 대표팀에 발탁되는데 실패한다. 오노는 포기하지 않고 미국 시니어선수권대회에 참가해 14살의 나이로 1500미터에서 금, 300미터에서 은, 그리고 500미터에서 4위로 역사상 최연소로 대회 종합우승을 한다. 그 후 오노는 콜로라도로 트레이닝센터를 옮기며 성인급 선수들과 훈련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 나가노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19위로 대회를 마치며 쓴맛을 봐야했고 마음에 큰 타격을 입은 오노는 그 해 4월 자신의 고향인 시에틀로 돌아가 트레이닝을 그만두고 결국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던 오노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도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오노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해줘 콜로라도가 아닌 레이크 플라시드 트레이닝 센터로 돌아가 시니어가 아닌 주니어 레벨의 선수들과 다시 훈련을 시작한다.

2년 후 1999년에 세계 주니어 선수권에 출전한 오노는 1000미터, 1500미터에서 금메달, 500미터에서 은메달을 따며 대회 종합우승을 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그 후 미국 국내대회에서 두번째로 우승, 세계 선수권에서는 500에서 은메달을 획득해 종합 4위라는 성적을 거둔다. 2000년엔 자신의 3번째 미국 국내대회 타이틀방어에 실패하며 3위에 머무른다. 그리고 그 해 세계 선수권에서는 9위에 머무르며 다시 주춤하나 했으나 시즌 2000/2001, 자신의 첫 월드컵에서 종합우승(세계랭킹 1위), 자신의 4번째 국내대회 우승, 그리고 세계 선수권에서 종합 2위[8]로 좋은 성적을 거둔다.

2.2.1.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 논란

2001년 12월, 2002년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였던 니 데이비스가 쇼트트랙 선발전에 출전한다. 오노와 러스티 스미스는 이미 점수를 많이 따내 선발돼있던 상황이었다. 니 데이비스가 선발되려면 마지막 종목이었던 1000미터에서 최소 오노, 스미스, 그리고 론 비온도라는 경쟁자들을 재치고 우승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었고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 보였다.

허나 니 데이비스가 1000미터 우승, 스미스가 2위[9], 오노가 3위라는 예상을 뒤엎은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데이비스가 1위로 골인한 후 스미스와 오노가 함께 축하하는 장면. 이로 인해 데이비스의 친한 친구였던 오노와 스미스가 데이비스에게 1위를 양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데이비스가 1위를 하는 바람에 국대 선발에 실패한 토미 오헤어라는 선수는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의 주장은 오노가 데이비스와 스미스가 각각 1, 2위를 할 수 있도록 레이스 내내 의도적으로 비온도의 진로방해를 했다는 것. 결국 3일동안 오노, 스미스, 데이비스는 조사를 받게 되나 결국 셋 다 무죄판결을 받는다.대한민국의 의도적인 파벌사건도 아니고 판결이 나고 오노는 인터뷰에서: "나는 잘못 안했는데 괜히 시비검 ㅋ 암튼 무죄판결이라 기분 째짐" 이라고 한다.

2.2.2. 500m와 1000m

자국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자 자신의 첫 올림픽에 출전하여 500m에서는 일본선수를 밀어 실격당한다. 1000m에서는 결승진출에 성공하여 안현수중국산 반칙왕 리자준과 금메달을 놓고 경쟁을 했는데...



마지막 코너를 남기고 리자준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 리자준이 자빠지고 리자준에게 스케이트날이 걸린 안현수와 코너를 돌다 넘어지며 오노와 마티유 투르콧과 함께 충돌한다. 결국 꼴찌로 레이스를 하던 호주의 스티븐 브래드버리가 금메달을 따고 넘어진 후에 뒤늦게 날을 들이민 오노가 2위를 하며 은메달을 딴다.

2.2.3. 문제의 1500m 그리고... 그는 왜 욕을 먹게 되었는가

1500m 결승전에서 당시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였던 김동성과의 맞대결이 벌어지게 된다. 오노는 2위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성공했으나 김동성을 재치는데 실패한다. 결국 오노는 마지막 코너를 앞두고...


마치 김동성이 의도적으로 블로킹을 했다는 듯이 헐리웃 액션을 취한다.


결승선을 통과한 후 뭔가를 기대하는 듯 심판진을 쳐다보는 오노
오스트레일리아인 심판 제임스 휴이시는 이를 김동성의 반칙 때문인 것으로 판단하여 그를 실격시켜 결국 김동성은 실격당하고 오노가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오노는 레이스 후 인터뷰서 "그가 실격당할 줄 알았어요" 라고 한다.[10]

경기가 끝난 후 큰 논란이 불거졌고 이 경기에서 4위를 한 이탈리아 쇼트트랙선수 파비오 카르타는 "말도 안되는 일이다" 라며 판정이 잘못됐다 한다. 하지만 김동성의 실격 덕에 어부지리로 동메달 대신 은메달을 딴 리자준은 "심판진의 판정에 수긍한다. 그것뿐이다" 라고 한다... 곧 이같은 심판의 판정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11]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에게 '헐리우드 액션', '반칙왕' 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 상 미국에 대한 감정이 한창 안 좋을 때였던데다 우연찮게 그가 일본계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반일감정까지 섞이고 당시 기승을 부리던 애국심 마케팅까지 겹쳐 국내에서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았다. 초딩들 사이에서 윤민석이 지은 Fucking USA라는 노래가 거리낌없이 유행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리고 당시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안톤 오노의 헐리웃 액션 사건을 보도하면서 이 노래를 보도 말미에 BGM으로 까는 패기도 보여주었다!

이후 오노의 반칙보다 심한 반칙을 저지른 선수들이나 오심이 여럿 등장했음에도 오노처럼 전국민적인 까임을 당한 케이스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당시 오노에게 몰린 분노를 어림짐작 가능할 정도.[12] 인터넷에서는 가짜 오노 인터뷰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오노스럽다, 오노같은 등의 비속어의 의미를 담은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였다. 특히 오노의 헬멧 번호가 369였던 점이 알려지며 괜한 369 게임이 오노 게임으로 전락하기도 했다.[13]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노빈손시리즈에서도 이 장면을 써먹었는데 여기선 야비해보이는 턱수염을 기른 일본선수 '이노무시키'(...)가 한국 선수에게 할리우드 액션을 취해서 메달을 훔친다. 수염 드립부터 딱 오노다.

이 사건에 격분한 김구라황봉알은 없는 살림에 비행기 표까지 끊어서 오노의 아버지가 하고 있다는 이발소까지 찾아가 이발소의 한쪽 벽을 장식했던 오노의 사진에 "금메달 내놔, 개새끼야" 라고 적어놓는 영상을 인터넷 방송에 뿌려 화제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김동성의 말에 따르면 이 영상은 조작이었다고 한다. 오노 아버지는 오노와 항상 동행해서 김동성도 잘 알고 있었는데 영상에 나온 건 오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한다. 애초에 오노는 일본인 혼혈인데 그 동영상에 나온 아버지란 사람은 백인이라는 점에서 빼도박도 못한다. 아무래도 인터넷 방송국 측의 조작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황봉알은 결국 오노와의 만남이 불발이 되자 다음엔 장애인 올림픽에서 보자, 개새끼야 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고 돌아온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골을 넣은 뒤 펼친 오노 세리머니도 유명하다. 이천수가 오노 역을 맡아 헐리웃 액션을 시전했다.

이렇게 분노의 중심에 있었던 오노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분노가 가라앉았고 오노가 한국도 방문해서 철천지 원수와도 같을 것 같던 한국 국가대표와도 합동훈련을 하기까지 한다. 합동훈련 과정에서 같이 연습한 한국 선수들이나 홈스테이를 했던 배우 조재현의 입을 빌어 경기 외적인 모습들도 소개가 되면서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기믹도 살짝 추가 되는 등 (당사자도 한국 사람이 친절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립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2002년만큼 무조건 까이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일부 언론들의 공공의 적+반칙왕 드립은 여전한 듯. 그 염소수염 또한 여전 사실 경기장 밖에서 오노의 매너는 상당히 좋은편으로 알려져있다.

2.3.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당시 전성기에 있던 오노는 미국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미국 언론에서는 오노가 최소 2개의 금메달을 따낼 거라고 설레발을 쳤으며 그 중에 하나는 당연히 오노의 주종목중 하나인 1500m가 될 거라 했다. 그런데 어라 결승진출에 실패해 파이널B에 출전해야 하는 굴욕을 겪게된다. 본인도 조금 분했는지 일부로 락커룸에서 시간을 끌다가 늦게 경기장에 들어왔고, 정상적으로 입구를 통해서 들어간게 아닌 펜스를 넘어서 링크안으로 들어가 이탈리아 홈팬을 비롯해 경기장에 있는 많은 관중들에게 야유를 받았다. 결과는 B파이널 3위.


1000m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을 앞두고 미국 언론에서는 '한국의 안현수가 챔피언 오노에 도전하지만 금메달은 오노가 딸 듯 싶다' 하며 설레발을 쳤다. 허나 이 경기는 사실상 진짜 세계챔피언이었던 안현수[14] 대 한국의 신흥에이스 이호석[15]이었고 오노는 저 둘에게 차례로 추월당해 동메달을 그친다.

1500m와 1000m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오노는 500m에서 금메달에 재도전했다. 결승에서 자리배정을 기막히게 잘 받은[16] 오노는 스타트부터 골라인까지 선두를 유지해 금메달을 따낸다.


500m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
하지만 한 가지 논란이 있었던 건 오노가 부정출발을 했다는 것. 출발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상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으나 심판진은 그냥 넘어가버렸다. 500m에 항상 강세를 보이던 캐나다가 이에 대해 굉장히 열폭하기도 했다.


마지막 경기인 5000m 계주에서 미국은 1, 2위를 다투던 한국과 캐나다와는 거리가 한 바퀴나 벌어지며 홈버프를 받은 이탈리아 계주팀과 3위를 다투고, 마지막 2번 주자였던 오노가 마지막 2바퀴에서 분전해 미국은 동메달을 따낸다.

2.4.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2010년, 미국의 국가대표팀은 J.R. 셀스키사이먼 조가 합류되는 등 어느정도 물갈이가 됐으나 오노만이 살아남는다.[17] 오노는 새 대표팀멤버에대해 상당히 만족해했고 이번 역대최강의 미국대표팀이라며 좋아했다. 오노는 밴쿠버 올림픽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며 올림픽 이후 은퇴한다 선언한다.

첫경기인 1500m에서 동료인 J.R.셀스키와 함께 결승진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당시 결승진출에 성공한 한국인 선수들은 바로 토리노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2009 세계선수권 우긍자 이호석,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성시백이정수였다. 경기 내내 몸싸움을 걸며 거칠게 레이스를 펼친 오노였으나 이정수, 성시백, 이호석이 각각 오노를 제치며 1, 2, 3위로 자리를 잡자 오노에겐 희망은 없어보였는데...


이호석이 무리하게 성시백을 제치려다 충돌하는 바람에 4위를 달리던 오노가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5위였던 셀스키가 동메달은 딴다. 덕분에 원래대로였으면 비매너적인 스케이팅을 한 오노가 까였을 게 분명했으나 오히려 파벌 문제로 원래부터 이미지가 안 좋았던 이호석에게 한국의 관심이 쏠리며 오노는 오히려 묻히고 만다. 금메달을 차지한 이정수는 그 둘이 탈락한 후 2위가 된 오노와 경기하던 중에 심하게 몸싸움을 했는지 나중에 오노를 향해 '시상대에 올라와서는 안 될 선수다' 라고까지 비난했다

1000m에서 1500m에서의 일로 정신적 타격을 입은 성시백을 샤를 아믈랭과 함께 추월하며 1위로 골인해 결승진출에 성공한다. 결승에선 이정수,이호석, 그리고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프랑수아 아믈랭[18]과 맞붙게 되었는데, 한국 선수들에겐 고맙게도 아믈랭 형제들과 접전을 벌여준 덕에 이호석과 이정수가 아웃사이드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바로 이 장면.
오노는 레이스 막판에 분전하며 경기 내내 선두 지키느라 체력 다 빠진 아믈랭 형제를 차례대로 추월하며 결국 동메달을 목에 건다. 이로써 미국 동계올림픽 개인통산 최다 메달리스트 기록을 세워 미국에선 명실공히 영웅으로 추대받게 되었다. 동계올림픽 후 미국의 방송에서는 'Welcome Back, Our Hero' 하며 아폴로 오노의 귀국을 환영하고 칭송하는 광고들을 내보냈다.


마지막 개인전인 500m에서 다시 한번 더티 플레이를 작렬. 캐나다 선수인 트렘블리를 밀어버리고 2위로 골인했지만 제임스 휴이시가 소환되어 있지 않아[19][20] 반칙사유를 정확히 캐치해냈고 결국 결승전에서 실격당했다.


본인의 마지막 은퇴경기이자 올림픽 마지막 경기인 5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오노는 한국팀의 실수를 틈타 캐나다에 이어 중국과 함께 2, 3위로 자리를 잡아 은메달을 딸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 코너에서 4위로 들어오던 곽윤기에게 눈 깜짝할 새에 추월당해 3위로 골인했다. 오노는 이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3. 주요 수상경력

3.1. 동계올림픽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500m[21]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000m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1000m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500m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5000m 계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500m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1000m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0m 계주

3.2.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세계선수권
1999 소피아 500m
2001 전주 1500m
2001 전주 1000m
2001 전주 개인종합
2001 전주 5000m 계주
2003 바르샤바 3000m
2005 베이징 1000m
2005 베이징 3000m
2005 베이징 개인종합
2005 베이징 5000m 계주
2007 밀라노 1500m
2007 밀라노 1000m
2007 밀라노 3000m
2007 밀라노 개인종합
2007 밀라노 5000m 계주
2008 강릉 1000m
2008 강릉 500m
2008 강릉 3000m
2008 강릉 개인종합
2009 비엔나 1000m
2009 비엔나 5000m 계주
팀 세계선수권
2008 하얼빈
2009 헤렌벤

4. 기타

여담으로 원래는 안톤 오노라고 부르지 않고 아폴로 오노라고 부르는 게 맞다. 아폴로가 이름(First Name)이고 안톤은 보통은 쓰지 않는 Middle Name이기 때문. 자기가 안톤이라고 자칭하면 또 모르는데 한국에서 굳이 안톤이라고 부르는 건 역시 아폴로라고 부르기 민망해서...? 사실 솔트레이크 올림픽 당시에는 아폴로 오노라고 부르는 언론도 없지는 않았는데 안톤 오노라고 부르는 언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꼭 '헐리우드 액션' 이란 별명이 아니더라도 꽤나 쇼맨십에 능숙한 인간임에는 분명하다. "Dancing with the Stars" 라는 미국 TV쇼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다.

맥도날드, GE, 코카콜라, AT&T, 네슬레 등 굵직한 기업들의 후원도 많이 받는 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9년 오노는 150만 달러를 벌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중에서 다섯 번째로 소득이 높다고[22]. 그의 스폰서 중 하나인 알래스카 항공에서는 오노의 모습이 그려진 래핑 항공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오메가에서 2010년부터 그를 스폰서했다고 한다.

2012년 6월 6일 방송된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동성은 오노를 언급하면서 그가 자서전에 김동성으로부터 "네가 1등이고 최고의 선수다" 이라는 말을 들었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했다는 헛소리를 적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론은 영원한 천하의 개쌍놈 포지션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방송인 로버트 할리는 고향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올림픽에서의 안톤 오노의 부정행위에 대해 '우리 주의 명예를 더럽힌 놈' 이라고 시원하게 까주었다. 오오 로버트 할리 형님 오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NBC 해설위원으로 나왔는데, 마침 김동성이 KBS 해설위원으로 나온다. 결국 은퇴 후에도 라이벌 구도가 재현되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고, 지금은 서로 인사하고 다니고 기념사진도 찍고 한국에 대한 립서비스도 이것저것 해주고 오노가 NBC 센터에만 있는 스타벅스에서 김동성에게 커피를 사다주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일어난 중국의 실격에 대해, 중국 측은 왜 실격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는 심판의 판정이 옳았다고 해설했다는 게 알려져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동성은 대인배이고, 오노는 철이 좀 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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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빅토르 안과 더불어 쇼트트랙 남녀 통틀어서 최다 올림픽 메달(8개) 보유자이다.
  • [2] 올림픽 한번에 얻을 수 있는 메달이 최대 4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2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따거나 3회 이상의 올림픽 출전을 해야 가능한 기록이다. 참고로 역대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 중 3회 이상의 올림픽 출전을 경험한 선수는 이호석 한명 뿐이고, 한번의 올림픽에서 전 종목에서 메달을 경험해 본 선수는 전 세계에 빅토르 안 단 한명 뿐이다. 물론 한국에서야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천하의 개쌍놈 포지션을 면하지 못하겠지만 올림픽 커리어 하나 만큼은 끝내주는 선수다. 물론 본인의 기량도 출중했다.
  • [3] 단거리 500m부터 장거리 1500m까지 골고루 잘타는 올라운더였으며, 올림픽 전종목 메달은 마크 가뇽, 빅토르 안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으로 여자부 왕멍, 박승희까지 세계에서 다섯명밖에 없는 기록이다.
  • [4] 어머니가 어릴적 가족을 떠나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랐다고 한다.
  • [5] 500m는 체중이 많이 나가고 키는 175cm 이상 정도 돼야 유리하다.
  • [6] 물론 미국에서의 이야기는 아니고 해외(주로 캐나다), 특히 한국한정이다.
  • [7] 미국, 캐나다, 중국이 ISU에 끼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아서 다른 나라들 선수들이 불리한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다.
  • [8] 리자준이 종합우승을 거뒀다.
  • [9] 이로 인해 1000미터 진출권을 따낸다.
  • [10] 오노는 이 경기로 인해 쇼트트랙 첫 금메달리스트가 됐고 미국의 국민영웅이 되었다.
  • [11] 심판 양반 덕분에 이후 쇼트트랙에는 비디오 판정이 도입되었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못한 듯. 그 심판이 이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비디오 판정을 이용 한국 선수를 실격시켰으니 말 다했다(...)
  • [12] 미국의 체조선수 폴 햄, 스위스의 축구선수 알렉산더 프라이, 독일의 펜싱선수 브리타 하이데만, 영국의 쇼트트랙 선수 엘리스 크리스티가 한국인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지만 오노만큼은 아니었다.
  • [13] 여담으로 오노사태 10년 뒤인 2012년 1월에 김동성SBS 도전 1000곡에 출연하여 "오노를 위해 번호를 고르겠다" 며 곡 번호를 369로 선택김현식의 '사랑사랑사랑' 을 불렀다고 한다.
  • [14] 2005년 세계선수권 우승, 0506시즌 월드컵 종합우승: 세계랭킹 1위
  • [15] 0506시즌 월드컵 종합준우승: 세계랭킹 2위
  • [16] 토리노 올림픽까지는 자리배정은 "랜덤"이었다. 준결승에서 프랑수아-루이 트랑블레가 1위로 결승진출하고 같은조에 있던 오노는 2위를 기록했다. 괜히 논란이 나오는게 아니다. 만약 준결승 랩타임을 기준으로 했다면 트랑블레와 안현수가 각각 1,2레인을 받았어야했다.
  • [17] 사실 오노만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미국에 없었다.
  • [18] 성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두 선수는 형제다.
  • [19] 하루 전에 심판진이 교체되었다. 독일 심판이 심판을 보았다고. 올레!!!
  • [20] 성시백이 넘어진건 고질적인 발목부상으로 스스로 넘어진 것이다.
  • [21] 문제의 헐리웃 액션이 나온 경기.
  • [22] 1위는 750만 달러를 벌어들인 김연아(한국, 피겨스케이팅)와 화이트(미국, 스노보드)가 공동으로 차지. 다만 내셔널 하키 리그(NHL) 등 프로 선수는 제외한 통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