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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티밋 워리어

최종 변경일자: 2017-02-01 00:22:00 Contributors


The Ultimate Warrior

본명 Warrior (개명 후)
James Brian Hellwig (개명 전)
출생 1959년 6월 16일
사망 2014년 4월 8일
신장 188cm (6'2")
체중 127kg (280 lbs)
출생지 미국 인디애나 크로포즈빌
피니시 고릴라 프레스 - 워리어 스플래쉬
테마곡 Unstable
주요 커리어 WWF 챔피언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2회
NWE 월드 헤비급 챔피언
WCWA 텍사스 헤비급 챔피언
WC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그 누구도 혼자 전설이 될 순 없다. 얼티밋 워리어는 팬들이 만든 전설이다.
나와 같은 전설들이 탄생하기 위해선 팬들의 선택이 필요하다. 팬들은 또 다른 전설을 만들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심장이 마지막으로 맥동하는 날이 오고, 그 폐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해 마지막 숨결을 내뱉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일생 동안 다른 이들의 심장을 더 강렬히 뛰게 만들었고, 그들에게 삶 자체보다 더 웅장한 맥동을 안겨줬다면, 그의 존재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를 기리는 이야기꾼들에 의해, 사람들이 그에게 품은 의리에 의해, 그와 관련된 기억에 의해, 그에게 품은 경의에 의해, 그는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로 영원히 살 것이다.
얼티밋 워리어의 영혼은 영원할 것이다. - 2014년 4월 7일자 RAW에서

목차

1. 개요
2. 약력
2.1. CWA, UWF
2.2. WCCW
2.3. WWF
2.4. WCW, 잠정적인 은퇴
2.5. NWE
3. 만년 활동
4. 사망
5. 기타

1. 개요

WWF(지금은 WWE), WCW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인디언 부족의 마지막 전사라는 설정의 기믹으로 태어난 캐릭터이며, 역을 맡은 레슬러가 진짜 인디언인 것은 아니다.

WWF의 대표적인 원 패턴 레슬러인 헐크 호건과 같은 경기 스타일을 보여주었으나 워리어는 그 정도가 심해서, 헐크보다 더 짧은 시간(3~5분)에 대충 힘으로 밀어붙여서 경기를 끝내버렸기 때문에 평이 나빴다. 한두번 치고받다가 상대 피니시를 씹고서 무적 콤보를 날리는 것이 주요 패턴.

헐크 호건은 사실 일본 무대에서 검증받은 운영 능력이나 기술을 가지고도 미국식 쇼맨 레슬링을 한 것이지만 워리어는 애당초 레슬링 스킬이나 센스가 현저히 부족했다. 때문에 상대가 어지간히 운영 능력이 좋지 않으면 OME급 경기만 쏟아냈다. 이런 수준 미달인 레슬러를 당대 최고의 수퍼스타로 키워냈다는 자체가 WWF가 표방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의 대단한 점이자, 반대로 어두운 일면이기도 하다.

특징으로는 달리면서 들어오는 입장 씬과 분위기를 달굴 때 로프를 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동작으로, 나중에 등장한 레슬러인 바티스타가 오마주하기도 했다. 헐크 호건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워리어는 달려나와 로프을 흔드는 퍼포먼스를 하는 시점에서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다고 한다.

2. 약력

2.1. CWA, UWF

원래 바디빌더 출신으로 자그마치 로드 워리어즈(리전 오브 둠)을 누를만한 태그팀을 물색하던 릭 배스맨에게 픽업됐는데, 이때 파트너로 함께 뽑힌 인물이 스티브 보든이다. 훈련을 받은 이들은 파워팀 USA라는 이름의 선역 태그팀으로 제리 제럿의 CWA에서 데뷔하지만 반응이 시원찮았고, 몸자랑하는 악역 블레이드 러너즈로 기믹을 바꿨지만 여전히 반응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CWA의 올드비인 필 히커슨과 갈등까지 빚자 제리 제럿은 이 둘을 해고해버린다.

그렇게 흘러들어간 곳은 UWF였지만, 프로레슬링에 대한 의지가 높았던 보든과 달리 헬위그는 적극적이지 않은 자세와 동료들과의 불화로 구설수에 오른 끝에 결국 UWF를 떠나 보든과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2.2. WCCW

텍사스의 WCCW에 들어온 헬위그는 락커룸에서 흡사 전사 같아 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딩고 워리어라는 링네임을 얻게 된다. 1986년 랜스 본 에릭과 팀을 이뤄 태그팀 챔피언에 올랐지만 불과 1개월만에 타이틀을 잃었으며, 1987년 1월 WCCW 헤비웨이트 챔피언 토너먼트에 참가하여 결승전에서 밥 브래들리[1]에게 패배했으나 바로 다음달에 밥 브래들리를 꺾고 WCCW 챔피언에 오른다.

그렇게 한 단체의 챔피언에 오르긴 했으나 워리어의 기량 및 인간관계에 대한 백스테이지에서의 평가는 여전히 좋지 않았고, 워리어도 적은 수입에 대해 불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때 신일본 레슬링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줄 외국인 용병 레슬러로 워리어를 낙점하고 접근해왔지만 워리어는 이를 거절하고 WWF로 가게 된다. 이 때 신일본 레슬링에서 제안했던 캐릭터는 다름아닌 빅 밴 베이더.

2.3. W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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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중의 전사라는 의미로 후일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줄 얼티밋 워리어라는 링네임과 함께 1987년 테리 깁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르며 WWF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워리어는 당시 오락적인 요소를 중시하던 WWF의 흐름과 딱 맞아떨어졌으며 경쾌한 음악과 함께 달려나오는 인상적인 등장씬 등과 함께 큰 인기를 모았다.

1988년 레슬매니아4를 통해 레슬매니아 무대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허큘리스를 4분 30초만에 꺾어버리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고, 동년 썸머슬램에서는 15개월간 장기집권 중이던 홍키 통크 맨을 31초만에 초살시켜버리며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한다. 게다가 레슬매니아 3에서 헐크 호건에게 패배한 걸 제외하면 좀처럼 꺾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안드레 더 자이언트마저 서바이버 시리즈 1989때 시작하자마자 크로스라인으로 링 밖으로 보내 카운트아웃으로 제거해 버리는 등 강력한 푸시를 받는다.

수그러들줄 모르는 기세로 치고 올라가던 워리어는 1990년 레슬매니아 6 메인이벤트에서 WWF 챔피언 헐크 호건과 서로 타이틀을 걸고 경기를 펼치게 됐는데, 경기 막바지 고릴라 프레스에 이은 워리어 스플래시를 견디고 킥아웃한 호건이 헐크업 모드를 발동하여 빅 붓을 날린 뒤 레그 드랍을 날렸지만 이를 피하고 다시금 워리어 스플래시를 날리며 승리, WWF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2] 이것은 호건이 영화 촬영을 위해 자리를 비워야 했던 관계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훗날 호건은 이 경기에 대해 '워리어가 빨리 경기를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정작 호건의 대안으로 워리어가 챔피언에 오르자 예상외로 흥행실적은 하향세를 탔고, 게다가 워리어는 경기를 리드해나가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대립 상대가 커트 헤닉, 테드 디비아시, 릭 루드 같은 베테랑 워커들로 한정되었다.

결국 WWF에서는 호건을 다시 불러왔고 1990년 섬머슬램에서는 헐크 호건과 어스퀘이크의 일반 경기, 워리어와 릭 루드의 WWF 챔피언쉽 철창 경기가 더블 메인이벤트로 잡힌다. 분명 순서상으로도 메인이벤트는 워리어와 릭 루드의 경기였지만 이목은 호건의 경기에 집중됐으며 메인이벤트 수당 또한 호건과 어스퀘이크에게 돌아갔다. 메인이벤트를 뛰었음에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한 릭 루드는 불만을 품고 WWF를 나가게 된다.

이래저래 타이틀을 방어해나가던 워리어는 1991년 로얄 럼블에서 서전 슬로터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르던 도중 경기 막바지에 마초맨 랜디 새비지[3]가 셰리 마텔과 함께 링 근처에서 깔짝거리자 셰리 마텔을 잡아다 그대로 링 밖의 마초킹에게 내던졌다. 하지만 그 틈을 노린 슬로터의 니 스트라이크를 등에 얻어맞아 로프에 걸쳐 쓰러졌고, 마초킹이 이런 워리어의 머리를 셉터로 가격하며 경기를 슬로터의 승리로 이끈다. 경기가 끝난 뒤 도망가는 마초킹을 뒤쫓았으나 허사였다.

레슬매니아 7에서 워리어는 자신을 방해했던 마초맨과 패자는 은퇴한다는 조건을 걸고 싸워서 승리,[4] 마초맨을 은퇴시킨 뒤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언더테이커와 대립하게 되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던 건지 한창 대립에 물이 오르려던 찰나 워리어는 제이크 로버츠, 언더테이커는 헐크 호건으로 각각 상대가 바뀌면서 흐지부지되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로이드 파동이 WWF를 휩쓸면서 호건의 인기가 떨어진 반작용을 통해 워리어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사실 레슬매니아 7은 걸프 전쟁 역풍을 제대로 맞아 흥행에서 심각할 정도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PPV[5]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리어는 빈스 맥마흔에게 레슬매니아 7의 수당을 제대로 지급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다급해진 빈스는 워리어에게 55만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한다.

이외에도 빈스는 워리어의 이런 저런 요구를 다 들어줬고 이런 상황 속에 워리어는 호건과 팀을 이뤄 1991년 썸머 슬램의 메인 이벤트에서 서전 슬로터, 커널 무스타파, 제너럴 아단을 상대하게 된다. 특별 심판은 시드 비셔스였는데, 빈스는 썸머 슬램이 끝나자 바로 워리어를 해고한다. 시드가 워리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사그라들지 않은 스테로이드 파동으로 인해 호건의 인기는 나날이 추락했으며, 호건은 레슬매니아 8의 메인 이벤트에서 시드 저스티스를 상대로 은퇴전을 치뤄 하비 위플맨의 난입으로 DQ승을 거뒀지만 두 명에게 두들겨맞게 됐고 그 순간 워리어가 뛰어들어와 호건을 구해준다. 헐크 호건은 훗날 DVD에서 '타 경기장에 비해 엄청나게 긴 후저 돔의 출입구를 대번에 뛰어온 워리어는 링에 올라올 무렵 체력이 다 소진되어 있었다.'고 멘트를 덧붙였다.

예전과 같이 호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빈스의 판단으로 돌아오게 된 워리어는 레슬매니아 8을 계기로 시드와 대립하나 스테로이드 양성 판정으로 징계를 받게 된 시드가 불만을 품고 WWF를 떠나면서 허공에 붕 뜬 신세가 된다. 파파샹고가 시드의 땜빵으로 워리어와 대립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최악에 가까웠다.

당시 WWF는 스테로이드 파동이 아직 가시지 않은지라 약물 사용에 민감한 상태였고, 우람한 근육을 지닌 워리어와 브리티쉬 불독 데이비 보이 스미스는 그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당시 브렛 하트가 안정적인 인물로 낙점되어 하이 미드카더급에서 메인이벤터로 급부상하게 된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빈스는 1992년 11월 스미스가 영국에서 성장 호르몬을 구해 워리어에게 제공했다는 빌미로 둘을 함께 해고시켜버렸고 워리어는 이에 대해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걸었으나 결국 패소했다.

해고당한 워리어는 인디 및 일본 단체에서의 활동을 노렸지만 몸값을 너무 비싸게 부른 탓에 그를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주당 10만 달러를 요구하는 건 양반이거니와 어떤 이벤트에서는 아예 매출의 50%를 달라고 하기도 했으며, 이렇게 비싼 돈을 줘서 애써 섭외하면 이벤트 직전에 안 나가겠다고 땡깡을 부려서 추가 보너스를 줘야하는 등 악명이 자자했다. 또한 아리조나에 워리어 대학이라는 이름의 프로레슬링 도장을 차렸으나 오래 가지 못하고 망했다.

1996년 레슬매니아를 앞두고 디젤과 레이저 라몬의 WCW 이적이 확정되면서 WWF의 메인이벤터진에 큰 공백이 생길 위기에 처하자 빈스는 메인이벤터들이 받는 액수를 뛰어넘는 거액으로 다급히 워리어를 불러왔다.

레슬매니아 12에서 워리어를 상대하게 된 HHH는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기 위해 워리어와 경기 내용을 상담하려 했지만 거부당했으며, 결국 딸리는 짬밥 때문에 찍 소리도 못 하고 '시작하자마자 페디그리 - 씹힘 - 고릴라 프레스 - 워리어 스플래시'라는 경기내용으로 1분 30초 남짓한 시간에 허무한 패배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HHH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클릭 멤버들도 워리어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된다.

이후 워리어는 골더스트, 오웬 하트, 제리 롤러 등과 대립을 펼쳤으며 이때도 4~6분만에 초살시켜버리는 무적 패턴의 경기는 여전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취급은 좋지 않았다. 심지어 1996년 5월 PPV였던 비웨어 오브 독에서 워리어와 오웬 하트의 경기는 다크 매치로 돌려지기도 했다. 워리어는 자신에 대한 취급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는 워리어의 독선적인 성격과 높은 임금 등으로 인해 서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으며 이런 와중에 워리어가 6월에 열렸던 하우스쇼를 펑크내는 사태[6]까지 일어나자 빈스는 진짜 마지막으로 워리어를 해고하기로 마음먹는다.

기묘하게도 하우스쇼 펑크 사태 이후 1996년 6월 30일 부친이 별세하여 워리어는 7월 1일자 RAW에 나오지 못했는데, 워리어가 3살 때부터 아버지와 헤어져 살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기에 대부분은 이를 변명으로 치부했다. 그럼에도 워리어는 일방적으로 복귀를 주장하여 7월 8일 RAW에 등장, 오웬 하트에게 DQ승을 거두지만 WWF 회장 역할을 맡고 있던 고릴라 몬순이 등장하여 워리어의 징계에 대해 알렸다. 하우스쇼 불참에 대한 위약금 25만 달러를 내지 않는 이상 복귀할 수 없다는 게 징계의 골자였는데 이는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열받은 워리어는 다시금 부당해고에 대한 소송을 걸었고 덤으로 저작권 소송까지 얹었으며,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본명까지 워리어로 바꿔버리는 강수를 둔다. 흔히들 성을 바꿀 것을 강요당한 부인이 워리어와 이혼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워리어의 전처였던 샤리 린 타이리는 1982년에 결혼하여 1991년 3월, 불과 레슬매니아 7 이틀 전에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워리어는 2000년 다나와 재혼하여 두 명의 딸을 뒀는데 이들은 얌전히 워리어라는 성씨를 쓰고 있다. 부당해고에 대한 소송은 여전히 별 성과가 없었지만 저작권 소송에서는 성과를 거둬 얼티밋 워리어라는 이름의 소유권을 가져오게 된다. 대신 타 단체에서는 얼티밋 워리어라는 이름은 쓸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기에 완벽한 승리라고 보긴 힘들지만.

2.4. WCW, 잠정적인 은퇴

1998년 WCW에 스카웃된 워리어[7]는 9월 PPV 펄 브롤에서 DDP의 팀 WCW의 일원으로 등장하여 nWo 헐리우드 및 nWo 울프팩과의 워게임 매치에서 승리했으며 이후 nWo에 대항하기 위해 OWN(One Warrior nation)이라는 원맨 스테이블을 만들어 호건에게 맞섰으나 10월 PPV 할로윈 해벅에서 호건의 조카 호레이스 호건의 체어샷을 맞고 헐크 호건에게 패배한다. 워리어의 상품성은 이미 상할대로 상한 뒤였고, 애초에 계약도 단발성이었기에 이후 WCW에서는 워리어를 다시 기용하지 않았다.

이후로 은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냈기 때문에 과거의 인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퇴물. 우리나라에선 워리어가 알통이 터져 죽었다는 괴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멀쩡히 잘 살아있었다. 자금 사정이 곤궁해지다 보니 2004년에는 자신이 레슬매니아 6에서 따냈던 WWF 챔피언 벨트를 이베이에 내놓기도 했다. 경매 시작가는 23500 달러였는데 최종 낙찰가는 불명.

2.5. N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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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탈리아의 프로레슬링 단체인 NWE에서 깜짝 컴백, 챔피언이었던 올랜도 조던과 시합을 가져서 물론 이겼다. 하지만 이내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했다. 노년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의 경기를 소화해냈다는 점과 욕심을 버리고 타이틀을 반납했다는 점에서 사람이 많이 달라졌나 싶었는데 이 시합에서 착용했던 부츠를 또 이베이에 경매로 내놓았다. 최초 경매가를 25,000달러로 잡았다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자 10,000달러로 가격을 내렸으며 예의 챔피언 벨트와 마찬가지로 낙찰 여부는 불명.

3. 만년 활동

보수 정치단체 소속으로 초청 강연활동 등을 해왔다. 본인 자신이 스테로이드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부작용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고 당시 선수들에게 스테로이드를 권유했(다고 생각됐)던 WWE에 대해서 쓴 소리를 날리곤 했다.

저렇게 보면 멋있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무개념한 말도 안되는 헛소리가 많았다. 인터넷에도 글을 기고했지만 거의 다 헛소리라 레슬링 팬들이나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많이 까인데다가 예전부터 있었던 팬들까지 많이 등을 돌렸다. 일례로 특강 도중 아랍계 학생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발언을 하거나, 고인이 된 릭 루드나 데이비 보이 스미스를 폄하하는 등. 예전 Dcinside 등지에서 워리어 짤방을 개조해서 키보드워리어 짤방으로 만들어 쓰곤 했는데 실제로 워리어 본인도 반쯤 키보드 워리어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한때 사이가 좋지 않았던 WWE와의 관계가 점차 개선되었던 것인지, WWE 게임의 모델로 나오면서 점차 WWE에서 워리어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4 WWE 명예의 전당의 첫 번째 헌액자로 선정되어[8] 명예의 전당 당일레슬매니아 XXX, 연이어 그 다음날 RAW까지 3일 연속 WWE 쇼에 출연하셨는데...

4. 사망

불과 하루 뒤인 2014년 4월 8일 갑자기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전세계 프로레슬링 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애리조나의 호텔에서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러 가던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하고 말았다. 이 때 낸시 그레이스라는 앵커는 워리어의 사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스테로이드 오남용과 약물 사용으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성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영상

시작하마자 스테로이드와 약물로 사망한 것처럼 사인을 단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심지어 추락사고로 사망한 오웬 하트도 그 명단에 포함시키는 병크를 저질렀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이에 전, 현직 레슬러들이 아더 월드가 되어 낸시 그레이스를 깠고, 같이 출연했던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는 본인이 잘못한것도 없는데 오웬 하트의 유족들에게 사과를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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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마지막 프로레슬링 쇼 출연이 되어버린 2014년 4월 7일자 RAW에서의 모습을 보면 뭔가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 역력한데 팬이든 안티든 로프를 흔들어서 체력이 떨어진게 아니냐고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상황은 더 심각한 것이었다.

안드레 더 자이언트(47) - "미스터 퍼펙트" 커트 헤닉(45) - 빅 보스 맨(41) - 어스퀘이크(42) - 마초맨 랜디 새비지(59)에 이어 얼티밋 워리어(55)의 죽음으로 과거 WWF(현재 WWE)의 80년대의 주역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는 상황속에 프로레슬링 팬들은 애석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하나같이 60살을 못채우고 갔다. 그나마 헐크 호건이 2014년 현재 61살이고, 테드 디비아시가 60세이다. 참고로 같은 년도에 前 WWE 소속 선수 킹 V[9]도 43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다만 안드레 더 자이언트는 거인증을 고려하면 요절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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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는 트리플 H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추모를 하였으며 1주일 뒤 4월 14일 RAW에서 빈스 맥맨, 트리플 H 등이 참여한 가운데 워리어의 공식적인 추모행사를 가졌다. 이 때 워리어의 페이스페인팅을 따라해 만든 가면을 현장팬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고 한다.

사인은 죽상동맥경화성 심혈관질환(arteriosclerotic cardiovascular disease), 속칭 심장마비라고 부르는 심근경색증이다. 미국의 제일 흔한 사망 원인인 성인병이라서 외부 요인(스테로이드 약물)같은 것으로 사망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이로써 낸시 그레이스의 약물 사망 확답은 개소리로 판명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워리어는 현역에서 은퇴한지 오래됐고 이 나이가 되서 약물까지 써서 근육을 키울 이유가 없다. '프로레슬러=스테로이드 약물'이라는 편견으로 한 발언이 분명하다.

사실 굳이 워리어의 사망 원인에 대한 언급이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개소리였다. 이 정신나간 여자는 오웬 하트도 약물로 사망했다는 망발을 내뱉았기 때문. 오웬 하트의 사망 원인은 사고사이다. PPV 도중에 일어난 데다가 프로레슬링 계에서는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어지간해서는 모르기도 힘들텐데 이여자는 제대로 사전조사도 안하고 입에서 튀어나오는데로 지껄인거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유족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5. 기타

개인 홈페이지 및 블로그,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며 홈페이지에서는 의류, 직접 그린 그림, 헬스 프로그램, 추억팔이(…)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외에 트위터도 하고 있는데, 영어로 헐크 호건을 까는 내용을 올리면 즉시 워리어의 리트윗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2014년 워리어가 사망한 이후에도 다른 사람이 운영 중 인듯 하다.

헐크 호건과의 관계는 철천지 원수에 가까웠는데, 2011년 랜디 세비지의 죽음을 계기로 둘의 키배는 격화되고 있다. 호건은 인터뷰를 통해 레슬매니아 6에서의 경기를 회고하며 당시 워리어가 보여줬던 프로답지 않은 자세를 비판했고, 이에 워리어는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호건의 코카인 사용이나 호건의 전처인 린다가 다른 레슬러와 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중. 결국 빡친 호건이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근데 애초에 워리어와 같이 일했던 레슬러 중 사이가 좋은 이를 찾아보기가 더 힘들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철천지 원수와도 같았던 호건과의 관계도 워리어의 레슬매니아 30 출연과 명예의 전당 헌액 과정 중 해피 엔딩으로 정리가 되었다. 레슬매니아 백스테이지에서 호건이 워리어를 찾아가서 화해를 요청했고, 이를 워리어가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정리된 것. 이 일이 있고 불과 48시간 내에 워리어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다. 적어도 이 세상에 있는 호건이나 세상을 떠난 워리어에게 둘 간의 관계로 인한 더이상의 원한은 없다는 점에서 정말로 다행일 뿐.

WWE가 2005년에 워리어에 관한 DVD를 내놓았는데 DVD의 내용은 워리어를 대놓고 비방하는 내용이다. 제목부터가 "얼티밋 워리어의 자멸(The Self-Destruction of the Ultimate Warrior)"[10] 이 DVD가 무서운 것이 원래는 브렛 하트에 대해서도 이렇게 만들 계획이었다. 일종의 프로토 타입인 셈인데, 브렛 하트는 워리어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거물이었기 때문에 제작이 조심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개선되면서 DVD가 멀쩡하게 나왔다. 초기 제작의도만 보자면 브렛하트와 워리어의 DVD 제작 컨셉이 바뀐 셈이다. 그 차이는 역시 얼마나 거물인가와 제작시기 WWE와의 관계정도. 결국 만들어진 물건을 본 워리어는 이에 분노하여 WWE에 소송을 걸기도 했다. 이 소송은 3년여를 끈 끝에 워리어가 소송을 취하하면서 끝났고, 양자간의 관계도 어느 정도는 회복이 되었다. 그 대가로 WWE는 2010년 워리어의 명예의 전당 헌액을 추진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무산. WWE 올스타즈 게임에 워리어가 들어간 것도 WWE와의 관계가 그럭저럭 괜찮아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워리어가 돈이 궁했거나….

동료들에게도 불쾌하게 굴었는지 이 DVD에서 이런 저런 인물들이 워리어에 대해 내리는 평가들도 비방의 강도가 높다. 빈스의 "해고하고 싶어 기다리기가 힘들었다."라든가, 서전트 슬러터의 "인터뷰 하는 것을 보니 다스 베이더(…)와 얘기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보면 대략 어떤 성격인지 짐작이 가리라 생각이 된다. 다만 이 물건이 워리어 디스용이란 것은 고려해야 한다. 물론 경기력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 외의 디스는 대부분 당시는 그냥 먹히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서 워리어의 고향이 'part unknown'이라고 까고 있는데, 언더테이커의 고향은 지금도 death valley이며 이 데스밸리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실제 계곡을 말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덧붙여 더들리 보이즈는 WWE 시절 출신지가 '더들리빌'로 나오곤 했다.

youtube(Oz5-zDyEARY)
그래도 같이 활동한 적이 없었던 후배 레슬러들과는 사이가 괜찮은 듯도 싶다. 대표적으로 RVD. 위 동영상 중간 쯤에 나타나 RVD에게 말을 거는 스포츠 머리 아저씨가 바로 워리어다.

국내에서 WWF 인기가 최고조를 달리던 때가 딱 최전성기였던지라 국내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네이버에서 프로레슬링 최고 VS 최고라는 테마로 진행하던 투표에서는 초반 헐크 호건 VS 워리어[11]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커리어 및 기여도에서 한참 뒤떨어지는 워리어가 헐크 호건을 앞서는 괴이한 결과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일종의 추억보정.[12]

미국이나 일본 등 골수 레슬링팬에게 까이던 절대무적 속전속결 패턴이 당시 WWF 붐이 불던 한국에서는 "우와 쟤 존나 세구나"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지금도 가장 강한 레슬러를 꼽으라면 워리어가 들어간다.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베어 너클 시리즈에 보스로 등장하는 아바데데는 이 워리어를 그대로 본따서 만들어졌다.

2K에서 제작한 레슬링 게임 WWE2K14에서 프리 오더 특전으로 얼티밋 워리어를 사용 가능하고 워리어 본인이 직접 홍보 영상을 찍기도 하였다.#

2014년 WWE 측은 얼티밋 워리어가 비디오 게임인 WWE 2K14 홍보 차 2K 스포츠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부터 그와 계약에 대해 협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트리플 H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직접 워리어를 만나[13] 그를 설득했으며, 써머슬램 2013 주간에는 빈스 맥마흔과 워리어의 30분간의 비밀 회동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그들의 협상은 12월에 마무리 되어 WWE 명예의 전당 2014 입성과 레전드 계약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망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은 사후의 영광이 되었다. 그래도 죽기전에 WWE와 관련된 악감정들을 모두 다 해소하고 갔으니 해피엔딩 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마지막 RAW 출연은 아마도 그가 자신이 한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에 팬들에게 하고싶었던 말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여담으로 워리어 사후 그의 관련 상품들의 판매량이 큰 폭으로 올라서 심지어 존 시나를 능가했을 정도라고 한다. 아무래도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그래도 대단한 건 사실이다.

2015년 WWE에서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워리어의 업적을 기려, 몸이 불편함에도 이를 극복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된 장애우 및 난치병 환우 소아에게 주는 '워리어 상'(Warrior Award)을 만들었다. 1회 수여자로는 뇌암으로 투병했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고, 세상을 떠나기 전 소원이었던 WWE 선수들과 만남을 가졌던 코너 '더 크러셔' 미할렉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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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인 그 분이 아니다. 동명이인.
  • [2]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은 공석 처리.
  • [3] 이때는 마초맨이 아니라 악역 마초킹 기믹으로 활동했다.
  • [4] 이날 워리어는 평소처럼 전력질주로 뛰어오는게 아니라 걸어서 등장했다. 그래서 당시 중계를 맡던 고릴라 몬순이나 바비 히난 모두 "왜 안뛰어오지?"라고 의아해했다.
  • [5] 역대 레슬매니아 중 최저 관중수를 기록했다.
  • [6] 이 때 공교롭게도 또 시드 비셔스가 워리어의 대타로 나왔고, 이를 계기로 WWF에 복귀하게 됐다.
  • [7] 앞에 언급한 소송 판결대로 얼티밋 워리어가 아닌 그냥 워리어를 링네임으로 사용했다.
  • [8] 빈스 맥맨과는 사이가 공식적으로 화해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 실권을 장악한 트리플 H가 지속적인 구애를 하면서 회사의 홍보대사와 레전드 계약을 체결하고 화해를 했다고 한다.
  • [9] 비세라, 빅 대디 V로 활동했던 그 레슬러. 본명은 넬슨 프레이저 주니어.
  • [10] 이 시기 WWE는 추억팔이 상품 판매가 한창이었는데, 애초에 좋지 못하게 헤어진 워리어와의 협상도 엉망이 되면서 제대로 뒤끝을 보여준 결과물이기도 했다. 물론 처음 기획안은 멀쩡한 내용이었다고.
  • [11] 이 요소를 무한도전 2010년 달력 특집 7월 사진에서 써먹었다. 정준하가 워리어를 맡았고, 노홍철이 헐크 호건을 맡았다. 하지만 장소는 번지점프대...당시 정준하는 겁에 무척 질려했지만 사진은 의외로 잘 나왔다.
  • [12] 이런 워리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것이 바티스타다. 아직 WWE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기 전인 2005년부터 메인 이벤터로 각성한 것이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겨 이 후, 은퇴 후 복귀는 물론이고 현역 시절조차 그가 WWE에서 대단한 활동을 한 것으로 여긴 사람이 의외로 많다. 특히 존 시나의 최대 라이벌로 바티스타를 뽑는 사람들이 많다. 정작 시나의 최대 라이벌로 인정받는 선수들은 바티스타가 아닌 에지, 랜디 오턴, 그리고 CM 펑크이다.
  • [13] 위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레슬매니아 12에서 트리플 H는 워리어와 스쿼시 매치를 치뤘고 그일 덕분에 그 이후에도 악감정이 남아 있는걸로 알려졌었다.과연 영리한 암살자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