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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플루셴코

최종 변경일자: 2017-08-07 04:40:44 Contributors


03-04 트로피 랄리크(현 에릭 봉파르) 프리 프로그램 "니진스키에의 헌정" 중에서.


목차

1. 소개
2. 전설의 시작
3. 선수로서의 경력
3.1. 수상 경력, ISU 최고점수 및 프로그램 리스트
3.2. 첫 번째 현역시절
3.2.1. 야구딘과의 라이벌리
3.2.2. 솔트레이크 올림픽 이후부터 토리노 올림픽까지
3.3. 2009년 복귀 후
3.4.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3.4.1. 논란
3.5. 밴쿠버 이후
3.6. 2014 소치 동계올림픽
4. 여러 가지 신기록들
5. 연기에 대해
6. 또 다른 전설, 갈라
7. 플루셴코와 그의 코치,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미쉰
8. 그 외 잡다한 이야기


1. 소개

키릴 문자: Евге́ний Ви́кторович Плю́щенко
라틴 문자: Evgeni Viktorovich Plushenko[1]
한글: 예브게니 빅토로비치 플류셴코[2]

러시아의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1982년 11월 3일생, 신장 178cm. 코치는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미쉰.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은반의 지배자', '빙판 위의 셰익스피어', '남싱 피겨에 군림하는 황제 등의 수식어를 동반하는 남자 피겨 스케이팅의 전설이다.

세계선수권 3회 우승(2001, 2003, 2004), 유럽선수권 7회 우승(2000, 2001, 2003, 2005, 2006, 2010, 2012)(은메달 3개까지 합쳐 무려 10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그랑프리 파이널 4회 우승(1999, 2000, 2002, 2004),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준우승(2002),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우승,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준우승(2010),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우승(2014, 단체전)이라는(4회 연속 올림픽 메달리스트) 대기록 보유자. 1920년대 그라프스트룀(금 3/은 1)과 메달 개수에서 타이를 이루며 2번째로 올림픽 4회 연속 메달(금 2/은 2)를 획득한 선수가 되었다.

남자 싱글 부문에서 유럽선수권 7회 우승은 1900년대의 울리히 살코(9회)와 1930년대 칼 샤퍼(8회) 이후 최다 기록이며 살코, 샤퍼, 그라프스트룀의 기록이 싱글 점프가 갓 개발되기 시작하고 극소수의 선수들만이 참여하던 피겨 스케이팅 초창기에 이루어진 것임을 감안하면 그의 화려한 커리어는 피겨 역사상 비견될 선수가 없는 전무후무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냐, 차르(Царь, 세계 팬들은 나라에 따라 Tsar, Tzar, Zar, Czar 등 다양하게 표기하여 부른다), 플루시(Plush), 풀(주로 일본), 외계인(역시 주로 일본. 이유는 굇수급의 컨시와 함께 트레이드 마크인 바가지 머리) 등 여러 애칭과 별칭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제냐 혹은 차르라 불린다. 남녀 구분없이 예브게니(Евге́ний)의 애칭이 '제냐' 다.

인지도와 인기가 어마어마하지만 압도적인 온아이스의 존재감이나 직설적인 인터뷰들, 러시아 특유의 싸늘한 이미지 때문에 안티도 많다. 덧붙여 안티가 만들어지는 데엔 그에게 적대적인 북미 피겨계와 북미 쪽 언론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대부분 북미 쪽을 통해 그의 소식을 얻는 한국 언론에서 곡해한 적도 많다.

피겨 선수로서는 드물게 현역 시절에 젊은 나이로 결혼을 두 번 했으며 전처와의 사이에 아들 이고르, 지금 부인 사이에 아들 사샤를 얻었다.

2. 전설의 시작

볼고그라드 시골 출신[3]으로 워낙 잔병치레가 잦아 뭔가 운동을 시켜야겠다는 어머니의 결단으로 4살부터 피겨를 시작했다. 자서전에 우연히 같은 동네 여자아이로부터 스케이트를 받은 경위[4]등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11세 무렵 볼고그라드의 스케이팅 시설이 재정 부족으로 문을 닫게 되자 당시 코치의 추천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혼자 떠나서 피겨를 계속했다. 얼마 안 가 어린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었던 어머니가 곧 따라오지만 본래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힘들었던 듯. 당시 러시아의 피겨 교육은 국가에서 육성하여 무료였지만 그의 집은 너무 가난하여 허름한 공동 아파트에서조차 지내기 힘들었다. 어린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빈 병을 주워 팔아 빵을 사먹거나 사과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역시 자서전에 실려있는데 팬이라면 안쓰러움 없이 볼 수 없는 대목. 그 와중에 시골 출신인 데다 어리다는 이유로 여러 선배들에게 집단괴롭힘도 당했던 듯하다.[5] 정작 본인은 덕분에 나는 더 강해졌다 고 술회하고 있다.

11세에 이미 전 종류 트리플 점프를 마스터, 14세에는 쿼드러플 토룹(4회전) 마스터. 당시 미쉰 코치 아래에는 워낙 많은 주니어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목의 대상이 되어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나중에는 코치가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같은 코치 아래에서 트레이닝을 받던 알렉세이 야구딘은 미쉰과 결별하고 타라소바 코치 밑으로 들어갔다(...) 혹자는 코치의 편애라는 말하지만 사실 당시 미쉰 밑에 많은 선수들이 경쟁 상태였고 그 중 플루셴코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미쉰의 취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후 미쉰의 제자인 가친스키나 툭타미셰바에게로까지 이어지는 발레리노st 탐미적(...) 취향을 고려한다면... 사실 코치와 선수의 추구하는 방향이 맞지 않으면 서로 다른 길을 모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쉰이 가장 아끼는 애제자.

1996년 11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14세의 어린 나이로 사상 최연소 우승을 하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4살 챔피언의 LP '윌리엄 텔 메들리'. 어이없도록 쉽게 폴짝 뛰는 트리플 악셀-더블 토룹을 보면 저때부터 인남캐를 초월한 듯(...) 잘 보면 알겠지만 이 경기는 대한민국서울에서 치러졌다.

3. 선수로서의 경력

3.1. 수상 경력, ISU 최고점수 및 프로그램 리스트

너무 많으니 짤로 대신한다.

zhenyapodium.jpg
[JPG 그림 (Unknown)]

농담인지 진담인지 집에 있는 코끼리 인형의 코에 금메달들을 걸어두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팬들 중에는 전체 커리어에서 1등한 횟수를 세는 것보다 1위가 아니었던 횟수를 떠올리는 게 더 편하다는 경우도... 팬도 정확히 몇 개의 금메달을 땄는지 모른다[6]

ISU 최고점수

쇼트 프로그램 : 91.39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단체전)
프리 스케이팅 : 176.52 (2012 유럽선수권 - 영국 셰필드)
총점 : 261.23 (2012 유럽선수권 - 영국 셰필드)


스케이팅 프로그램
시즌 쇼트 프로그램(SP) 프리 스케이팅(FS) 갈라(EX)
1995-1996 - 돈 키호테 -
1996-1997 타란텔라-산타 루치아 윌리엄 텔 메들리 -
1997-1998 아랑후에스 장 미셸 자르 메들리 장 미셸 자르 메들리, 에니그마
1998-1999 Hava Naglia 장 미셸 자르 메들리 러시안 컨트리 댄스, 크레이지 버드
1999-2000 세이버 댄스 집시 댄스 러시안 컨트리 댄스, 크레이지 버드
2000-2001 볼레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집시 댄스 섹스밤, 파사데나
2001-2002 마이클 잭슨 메들리 카르멘, 물랑루즈 카르멘, 섹스밤
2002-2003 아다지오 카르멘, 상트페테르부르크 300 카르멘, 온리유
2003-2004 탱고 플라멩코 니진스키에의 헌정 아시사이
2004-2005 월광 대부 대부
2005-2006 토스카 대부 토스카, 카루소
2006-2009 - - -
2009-2010 아랑후에스 탱고 아모레 촛불, Je Suis Malade
2010-2011 - - -
2011-2012 스톰 (by Yanni) 록산느 탱고 Je Suis Malade
2012-2013 스톰 (by Yanni) Introduction et Rondo Capriccioso/The Swan/Danse macabre -
2013-2014 Taka yak ty (A Girl Like You) The Best of Plushenko -

보다시피 리스트 길이부터 장난이 아니다. 이 외에도 2003년부터 꾸준히 쓰지만 러시아 국내 대회에서만 보이는 갈라 "Town Which Doesn't Exist" 등 자투리 프로그램까지 합치면 더 많다(...)

3.2. 첫 번째 현역시절

시니어 데뷔 첫 시즌인 97-98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내 만 15세 최연소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 시즌 갓 시니어에 데뷔한 새내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실력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포디움에 오른다.

98-9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치고 올라오며 다른 대부분의 남싱들은 주니어에 머물 16세의 나이에 벌써 2년 8개월 위의 선배인 알렉세이 야구딘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성년도 되기 전 17세가 된 99-00 시즌에 이르러서는 내셔널, 그랑프리 파이널, 유로에서 우승하기에 이른다.[7] 이 기세를 이어 18세가 된 00-01 시즌은 내셔널, 그랑프리 파이널, 유로, 세계선수권 모든 대회를 우승한다. 이 시즌의 그는 프리 프로그램에서 두 번의 쿼드 콤비네이션을 구사하는 등(4-3 컴비네이션에 이어서 4-3-2 컴비네이션을 구사한다던가) 외계인 같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며 연기 또한 나이가 믿기지 않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어 진정한 먼치킨의 모습을 보여준다. 팬들조차 뿜어져 나오는 소년의 재능이 무섭다고 평가할 정도.


2001 세계선수권 LP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무르익을 대로 익어서 카리스마 넘치는 수행이 일품이다.

3.2.1. 야구딘과의 라이벌리

한때 같은 코치 아래에서 훈련하기도 했던 두 러시아 선수의 라이벌 관계는 피겨팬들의 엄청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러시아 선수끼리 치고박고 하는 통에 북미 언론들은 러시아의 플루셴코, 미국에서 훈련받는 야구딘의 대결로 자극적으로 포장하기도 했다(일명 '닥빙'). 솔트레이크 올림픽 때에 이르러서는 플루셴코에 대한 반감이 북미 언론을 장악했다.[8] 마침 여성 싱글 쪽에서도 미셸 콴이리나 슬루츠카야의 라이벌 구도가 조성되어 있던 상황. 피겨에서의 라이벌리는 카르멘 전쟁, 브라이언 전쟁과 같이 아주 흔한 이야기였다.

두 선수의 라이벌 관계는 98-99 시즌은 야구딘의 압승, 99-00 시즌은 호각지세(유로에선 플루셴코 승리, 월드에선 야구딘 승리), 00-01 시즌은 플루셴코의 압승(전승에 시즌 스윕까지)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플루셴코의 우위로 기울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01-02 시즌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몸으로 고난이도의 기술들을 구사한 부담이 터져쿼드에 무릎 나가고 비엘만에 등 나가고 유로와 월드를 스킵하고 수술하기에 이른다. 솔트레이크 올림픽에서는 쇼트에서 거하게 넘어지는 실수를 범해 쇼트-프리 종합 2위로 은메달에 그친다.

당시 플루셴코에게 은메달은 곧 패배였는데, 19살인데다 처음 나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놓고 그것을 패배라고 정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인식시킬 선수는 그밖에 없었다. 같은 나이의 남싱들과 성과를 비교해보면 극명하다.

3.2.2. 솔트레이크 올림픽 이후부터 토리노 올림픽까지

야구딘과의 라이벌리 시대인 10대 시절을 마치고 20대를 맞이하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빙판 위의 황제로서 홀로 군림하시며 무차별적 양민학살을 저질렀다. 당시 남성 피겨에 있어 플루셴코가 어떤 존재였는가는 '02-03 시즌부터 05-06 시즌까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두 번 빼고 전부 금메달 이라는 말로 요약될 듯(...) 말이 두 번 빼고 금메달이지 4년 동안 출전한 대회에서 두 번 빼고(...) 금메달이라는 것은 정말 압도적인 성과다. 04-05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는 컨디션 조절차 시리즈 경기 중 한 경기만 나갔으나 포인트 꼴찌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여 쇼트 1위 프리 1위로 우승한 일화도 있다(...) 다른 선수들은 정말 얄미웠을 듯. 게다가 이 대회에서 그의 월광, 대부 중에서도 가장 클린하고 가장 정석적인 수행의 명영상들이 나왔다.



02-03 시즌부터 05-06 시즌까지 한 번이라도 그를 이겨본 선수는 브라이언 주베르와 엠마누엘 산두밖에 없다. 산두의 경우 플루셴코가 자약 룰[9]을 잊어먹고(...) 당시 두 번까지 허용했던 콤비네이션 점프를 세 번(...) 뛰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 이 시즌 처음 도입되었던 신채점제로 인한 혼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프닝이 되었다. 정작 선수 본인보다 당시 신채점제를 선전하던 ISU와 친콴타가 더 멘붕에 빠졌다는 후문. 쥬베르에게 졌던 2004년 유럽선수권은 전에 없이 실수가 많았다. 03-04 시즌은 이전부터 계속돼온 부상이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을 때로 심한 무릎 부상이 시즌 내내 영향을 미쳤다.[10] 하지만 세계선수권은 프리 수행 중 한번 넘어진 걸 제외하고 훌륭한 경기력으로 심판 전원 만장일치 1위하며 월드 챔피언 타이틀 사수 성공. 설렜냐 이 다음 시즌 플루셴코는 유로 타이틀을 재탈환하며 4번째 유로 우승을 챙긴다.


2005 유럽 챔피언십 프리 프로그램 대부.

원형 스텝에서 통증과 싸우기 위해 소환된 광기가 일품이다. 병맛의 카메라 워크가 옥의 티지만 부상투혼이란 걸 잊을 정도로 황제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주체 못해 포효하는 경기로 무수히 많은 대부 프로그램 중 가장 사랑받는 광란의 수행이다. 다만 카메라 워크가 가장 좋았던 토리노 대부는 그때 플루셴코의 컨디션이 최악이었던 상황이라서 힘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결국 컨디션에만 문제가 없으면 대적할 자가 없다는 이야기지만 그 컨디션 관리를 잘 못한다. 어쩌면 컨디션 자체보다는 어릴 때부터 워낙 잔병치레가 심했고 쿼드 점프와 비엘만 같은 고난도 기술을 오랫동안 계속하다보니 부상이 진통제가 듣지 않을 만큼 심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중요 경기 전 독감에 걸리거나 폐렴에 걸린다거나 식중독에 걸리거나 했던 적이 잦았다. 걸어다니는 종합병동

2005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는 양쪽 서혜부 탈장으로(...) 쇼트 프로그램을 마쳤으나 결국 프리는 하지 못하고 기권했다.[11] 무릎 부상도 심각한 수준이라 이미 여러 번 수술을 받은 바 있다.[12]

05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기권 이후 자국 연맹과 언론에게 심한 비난을 받았고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대다수였으나 찌라시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술하고 다음 시즌에 돌아와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점수차로 금메달을 획득. 올림픽 때도 역시 식중독(...)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쇼트, 프리, 총점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그런데 그 올림픽에서의 프리 프로그램 연기를 두고 성의 없이 대강대강 했다고 안티들이 까고 있는 것을 보면 흠좀무. 성의 없이 대강대강 한 걸로 세계신기록 수립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면 성의 있게 할 경우 어떤 점수가 나온다는 건지...[13] 당시 올림픽에서의 프리 프로그램이 플루셴코의 다른 경기에 비해 비교적 심심한 연기였다는 것은 팬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완벽한 쇼트 경기에 이어 프리도 당시 식중독으로 며칠동안 링겔을 맞은 상태였음에도 시즌 중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의 4-3-2 점프를 시도하여 성공했고 하나의 실수를 제외한 모든 요소를 클리어하는 여전히 괴물같은 경기력을 보였다.

당시 점수는 쇼트 90.66, 프리 167.67, 총점 258.33으로[14] 이 중 프리와 총점은 다카하시 다이스케가 2008년 4CC 대회에서 경신했으나 쇼트의 90.66을 깬 다른 선수는 없으며[15] 2009년 12월 ISU의 총점 기록에선 2위부터 5위까지는 싹 플루셴코가 차지했다(...)

3.3. 2009년 복귀 후

2006 토리노 올림픽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로 잊을 만하면 복귀 떡밥을 뿌리며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으나 09-10 시즌 올림픽을 앞두고 진짜로 복귀하여 다른 의미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통적으로 대립 관계인 북미에서는 그만 좀 해먹어 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플루셴코는 오랜 기간 동안 모든 북미 선수들을 금메달 꿈도 꾸지 못하게 했던 소비에트 엘리트 중 마지막 세대로 러시아가 남성 피겨에서 우르마노프-쿨릭-야구딘-플루셴코 라인으로 장장 16년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독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그럴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소련 시대[16]의 페트렌코부터 세면 더 길어진다.

현역에서 물러나 있을 때 몸무게가 불어나버렸고 트리플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 팬들조차 복귀에 회의적이었으나 무릎 수술과 다이어트를 감행, 돌아온 복귀전이었던 09-10시즌 로스텔레콤(그랑프리 대회 중 하나로 舊 컵 오브 러시아)에서 전성기 못지않은 4차원적 점프들을 선보이며 우승하며 싱글 선수로서는 역사상 유래 없는 복귀 성공, 황제의 귀환을 선포하여 많은 선수들을 긴장 타게 만들었다.

09-10시즌 러시아 내셔널 쇼트 프로그램에서 100.09라는 괴악한 점수[17]를 기록했다.

플루셴코는 현역 시절 거의 매 시즌마다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무릎에 반월판이 없다. 수술 당시 여러 차례 잘라내고 찢어진 곳을 꿰멘 반월판은 떡이 져서 제거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현재 열흘이나 짧으면 사흘에 한 번 무릎에 주사를 주입하고 이틀 동안 걷지 못하고 다시 연습하는 비인간적 생활을 반복 중이다. 09 러시아내셔널 쇼트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진통제에 맛이 가 고통은 신의 소명 이라는 마조히스트스러운 말을 하여 팬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다.

4년만에 돌아와 09-10시즌 유로 챔피언십의 쇼트 프로그램에서 91.30이라는 점수를 세우며 그동안 아무도 깨지 못했던 4년 전 토리노 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90.66의 신기록을 자기가 깨는 기염을 토하며 여유롭게 통산 6번째 유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피겨팬들은 제냐의 미친 컨시의 4-3 점프에 경이로움을 넘어선 두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쇼트 프로그램의 정줄 놓은 음악 편집과 함께 빈 안무는 두고두고 까였다고 한다. 안무가 아브디쉬와 편곡가 마톤은 일해라

3.4.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2월 17일 쇼트 프로그램에서 90.85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으나 19일 프리 스케이팅에선 결국 기술 가산점 차이로 2위였던 미국의 에반 라이사첵에게 역전당해 총점 1.31점 차이로 은메달을 받았다. 미국은 22년만에 나온 동계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금메달인지라 무척 기뻐했으나 1994년 이후 처음으로 4회전 점프(쿼드)를 전혀 시도하지않은 금메달 리스트 탄생이라는 결과는 피겨계에 논란을 가져왔다. 예브게니 플루셴코는 벤쿠버 올림픽에서 쇼트와 프리 경기에서 쿼드를 넣어 모두 클린한 유일한 남자 싱글 선수였다. 그리고 출전한 남자 싱글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선수였다

3.4.1. 논란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후, 20여년만에 4회전점프 없는 올림픽 챔피언 등장이라는 경기 결과를 놓고 '쿼드러플 (4회전) 점프 논쟁'이 전 세계 피겨계에서 거세게 일었다. 주로 북미의 언론과 국내에서는 단순히 '플루셴코가 진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식의 보도와 이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단순히 쿼드러플 점프의 평가에 대한 정당성이나 선수들 개개인의 메달 색깔 논쟁 이상의 뿌리깊은 유럽/러시아 대 북미의 파벌 문제도 그 기저에 있었다. 쿼드러플 점프 논란은 토리노 동계올림픽 이후 수년간 유럽과 북미 사이에서 논쟁이 되어왔다.[18] 커트 브라우닝이 1998년 처음 쿼드러플 점프를 성공한 후 남자 싱글에서 쿼드러플 점프는 챔피언의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졌으나 신채점제 이후 이 점프를 시도하는 선수들의 수는 현저히 줄었고 이것이 기술퇴보에 대한 우려를 가져왔다. 1998년 이후 밴쿠버 올림픽까지 4 회전 점프 없이 세계챔피언을 획득한 선수는 모두 북미 선수이다.[19]

또 한가지 주목 받은 것은 올림픽 개최 직전에 프랑스 스포츠 신문 레퀴프(L'Equipe)가 폭로한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심판 조 인만(Joe Inman)이 개입된 승부 조작 의혹 사건이다. 조 인만이 밴쿠버 올림픽 개최 1주일 전에 60명이 넘는 심판들에게 플루셴코와 프랑스의 주베르를 특정하는 이메일을 보내서 이 둘의 점수를 -특히 트랜지션- 엄격하게 심사할 것을 주장했고 [20] 우연인지 아닌지 밴쿠버 올림픽에서 플루셴코의 트랜지션은 눈에 띄게 낮았고 이로인해 쇼트에서 2위였던 라이사첵과는 0.55의 점수차만을 얻어 결국 프리 프로그램에서 역전당했다.[21] 쇼트에서 플루셴코의 트랜지션은 6.80으로 확실히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상당히 낮고 본인의 올림픽 직전 유럽선수권에서의 점수 7.55보다 0.75나 낮다.[22] 채점표를 보면 9명의 심판 중 2명이 5점, 1명이 6점을 매겼는데 이는 탑선수에게는 거의 주지 않는 점수이다. 그 외 평균 PCS는 7.0~9.0까지로 심판들 간 편차가 무척 큰데 이렇게 편차가 큰 채점표는 사실 보기 힘들다. [23]

그러나 정작 플루셴코는 시상식 직후의 인터뷰에서 '은메달을 받아들인다' 고 말했으며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일관되게 말했다. 플루셴코가 주장한 것은 신채점제에서 채점 방식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24] 그러나 북미 언론의 기사가 널리 알려진 나라들에선 마치 금메달 못 받은 게 부당하다고 말한 걸로 퍼졌다. 신이 나서 몰아붙이는 북미 언론들에 당황한 다른 남싱 선수들이 "제냐는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닌 것 같다" 라고 말해도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덧붙여 플루셴코가 금메달을 받아야 했다고 말한 건 푸틴이다. 또한 플루셴코가 "우리 마눌님이 이건 플래티넘 메달이랬어여~" 라며 러시아 기자들 앞에서 귀엽게 은메달을 척 내밀었던 것이 은메달을 못 받아들이고 플래티넘 메달 운운한다는 오해의 발단이 되었다(...)

그리고 여성 싱글 경기가 끝난 뒤 그의 입장과 명성에 호가호위하려던 일본에서 아사다 마오와 관련 프로그램을 위해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고 그때 한 말이 일본의 절륜한 인터뷰 편집 신공으로 인해 부분만 부각되었다. 이에 한일 양국의 피겨팬들이 낚였다.

그는 이때 신채점제에 대한 불만과 함께 여자 싱글에 대해 말하며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엔 좀 더 많은 점수를 줘야했다고 말했다.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이 가진 문제점을 생각해보자면 사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신채점제하에서 선수들이 어려운 기술은 시도하지 않고 안전한 기술과 안무만으로만 점수를 따려는 경향을 질타하는 것인 듯하다. 그러나 일본 방송의 편집으로 인해 점프 하나만으로 아사다를 옹호하는 발언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일본 피겨팬들은 환호하고 한국 피겨팬들은 그를 엄청 깠다.

나중에야 플루셴코가 '이번 올림픽에서 경의를 표할 만한 선수는 김연아 뿐이다' 라는 호평을 남겼으며 일본 방송이 그의 아사다에 대한 발언을 미묘한 뉘앙스로 의역했다는 게 알려지자[25] 일본 피겨팬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딱히 여자 싱글 자체만 놓고 말한 게 아니었던 플루셴코의 말 한마디에 양국 여자 싱글 팬들이 낚였던 셈. 하지만 이전에도 딱히 플루셴코는 아사다가 금메달을 받았어야 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채점제와 남싱의 다른 피겨 종목과의 차별화 문제와 러시아와 북미간의 오랜 대립, 유럽, 북미간의 입장차가 뒤섞인 이 복잡한 문제로 인해 피겨팬들 사이에선 이번 남싱의 결과와 채점제의 문제에 대해 의견이 갈렸고 여기에 여자 싱글도 관련되면서 아사다 마오김연아란 라이벌 구도가 부각되는 바람에 복잡한 양상을 띄었던 거다.

기술 선도의 책임을 지고 있던 남자 싱글에서의 쿼드러플과 여자 싱글에서의 트리플 악셀은 역사와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오랫동안 남싱에서 챔피언의 상징이었던 쿼드러플과 달리 프로그램 자체의 예술성이나 완성도를 더 중시하며 한 번도 일반화된 적이 없던 여자 싱글에서의 트리플 악셀은 피겨 선수들에게 있어 차지하는 위치가 다르다.

첨언하자면 결과적으로 2014년 현재 남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은 지난 십수년간 그러했듯이 쿼드 전쟁의 시대로 복귀했다. 현재 거의 모든 탑싱들이 쿼드를 시도하고 있고 한때는 반 쿼드 진영의 선두(...) 중 한 명였던 캐나다패트릭 챈 선수마저 쿼드와 쿼드 콤비네이션을 장착하는 등 2008년 월드부터 2010년 올림픽까지의 쿼드의 필요성 논란은 불과 2년 만에 결국 신채점제 과도기의 한 현상이 되어 과거로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자 피겨 선수로서 현역에서 은퇴했다가 수 년 만에 돌아와서 다시 공식 경기에서 우승을 하거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전례가 없는 만큼 플루셴코의 복귀는 그의 운동 선수로서의 능력과 흥행보증수표임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다.

3.5. 밴쿠버 이후

월드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하다가 무릎 부상이 악화되어 2010년 토리노 세계선수권은 기권했지만 무릎 수술 후 2011-2012 시즌에 다시 두 번째 컴백을 감행, 러시아 내셔널과 유럽선수권을 석권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부상이 악화되어 다시 세계선수권은 포기.

소치 올림픽에 도전한다는 말을 남겨 지금도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많은 나이에 무너지기 직전의 유리몸이 2014년까지 버텨줄 지 많은 우려와 의심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2012년 유럽선수권에서의 화려한 컴백으로 대부분 불식되었다. 피겨 선수들의 선수 생명은 매우 짧은데 특히 특히 거의 미래의 건강을 깎아서 피겨하는 수준으로 초고난도 기술로 가득한 남자 싱글 피겨는 많은 선수들이 더 하고 싶어도 누적된 부상 등으로 몸이 못 버텨서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몸 상태와 ISU의 징계[26] 때문에 2010~2011 시즌을 건너뛰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쉬게 되었던 이 시즌에 수술도 하고 휴식도 취했지만(...) 아니 더 파낼 연골이 있었다고?!

그리고 2011~2012년 시즌에 복귀했다. 2011년 말 부상 악화로 골골대서 팬들을 정신고문하더니 정작 나온 2012년 러시아 내셔널에서 우승. 그 후 유럽선수권에 출전해서 프리 록산느의 탱고로 경기장 전체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고 우승을 했다.


2012 유럽선수권 LP "록산느의 탱고". 횽 왔다

이것이야말로 시니어 데뷔 15년차 대선배의 연기인가 싶은 여유만만함과 09-10시즌보다 더욱 유려해진 스케이팅과 카리스마가 인상적인 2012 유로 프리 프로그램 "록산느의 탱고". 여전히 쿼드를 뛴다(...) 2008년 이후 무릎을 안 깎아내고 넘어간 해가 없는 거 같은데 경기에선 훌륭한 퀄리티의 쿼드, 트악을 뛰는 게 이젠 불가사의의 경지에 이른 거 같다. 팬들이 봐도 괴물이다. 그리고 수술받으러 갔다(...)

2012-2013 시즌에는 러시아 내셔널에 출전, 전무후무한 10번째 러시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다. 경기 한 달 전에 척추 시술을 받아 완전하지 않은 몸상태로 진통제를 맞아가며 해낸 결과. 그러나 이후로 허리 부상은 계속 악화되어 2013 유로는 쇼트를 마친 뒤 기권하고 만다. 기권 직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이스라엘에서 인공추간판 삽입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이다.

척추에 인공디스크를 넣는 대수술 후 6개월만에 트리플 악셀, 7개월만에 쿼드를 뛰는 연습 영상을 공개했다.

2013-2014 올림픽 시즌에 올림픽 기술 최저 한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B급 대회 <Volvo Cup Open>에 출전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출전 예정이었던 컵 오브 러시아에 불참하고 12월 러시아 내셔널에 출전.

쇼트에서는 98.41로 1위에 올랐으나 프리에서 예전이라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후반 점프를 연달아 더블링하여 결국 1999년 이후 처음으로 2위에 그쳤다.[27] 때맞춰 소치 올림픽에 나가게 되더라도 자신은 단체전에 참가하고 개인전에는 다른 선수가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규칙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아서 취소했다.

어쨌든 원래 러시아 올림픽 대표는 내셔널과 유로선수권을 통틀어 평가 후 최종확정되는데 유럽선수권을 불참하고 대신 비공개 테스트를 받기로 했다.[28] 그런데 플루셴코를 러시아 내셔널에서 이기고 챔피언이 되었던 막심 코브툰이 막상 유럽선수권 프리를 거하게 말아먹으며 5위[29]를 하는 바람에 출전이 불투명해졌고 플루셴코는 그리고 비공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소치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었다.

3.6.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단체전 쇼트에서 91.39점으로 2위를 했다! 특히 단체전 금메달의 가장 강력한 경쟁국인 캐나다[30]의 가장 강력한 선수 패트릭 챈을 3위로 밀어내면서 러시아의 초반 기선제압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단체전 남싱 프리에서는 168.20점으로 캐나다, 일본을 제치고 1위를 함으로써 차르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단체전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자신의 2번째 올림픽 금메달, 4번째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4번이나 포디움에 오른 유일무이한 선수이다.

그러나 개인전에서 컨디션 문제인지 오전 연습에도 불참하고 이후 워밍업 때 착지 이후 무릎이 안 좋은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자기 순서 직전에 기권을 선언했고 갑자기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 경기장을 찾은 러시아 국민들은 갑작스런 기권에 멘붕했지만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개인전 연습에서 등에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왔고 경기를 수행할 수 없어서 관계자에게 기권의 의사를 밝혔으나 대기선수가 아픈데다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통보에 웜업까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경기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라 기권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러시아 남자싱글 출전권이 한 장밖에 없어 단체전에서 쇼트와 프리를 모두 수행해야 했던 탓에 수술한지 1년도 안 된 인공디스크에 부담이 가중된 결과였다.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31] 이젠 아마추어 스포츠와는 이별이라고 해 곧 정식으로 은퇴할 것임을 시사했다. 워밍업할 때 첫 번째 트리플 악셀를 한 직후 심한 통증을 느꼈고 두 번째 트리플 악셀을 한 뒤에는 아예 오른쪽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고. 결국 더 이상 현역으로 활동하기엔 한계가 왔음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아니 사실 한계는 옛날옛적에 지나갔지 애초에 수술만 12번에 허리 디스크를 인공 디스크로 갈아끼우고 충격을 흡수하는 무릎 반월판조차 없는 상황에서 부담 가는 쿼드 점프를 팡팡 뛰었으니... 아내는 그가 장애인이 될까봐 두려웠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그러나 이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다시 살만해졌는지 은퇴얘기는 들어갔다(..)

혹시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불태우는 갈라는 보여줄 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허리에 있는 인공 디스크의 나사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고... 결국 2014년 3월 3일 다시 이스라엘에서 척추 수술을 받았다.[32] 마지막 갈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당연히 갈라보단 사람 목숨이 먼저(...)이므로 팬들은 아쉬움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중.

허리수술 후 3달동안 휴식한 뒤 6월 일본 아이스쇼에 참가해 수술 3개월,연습재개 약 2주일만에 첫 트리플악셀을 뛴다. 흠좀무 쇼를 무사히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온 뒤 2014년 7월 2일자 인터뷰에서 2018년 평창올림픽을 준비한다고 밝혔으며 7월 10일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머라고요?!!

그러나 앞으로 두 시즌 정도 쉴 예정이며 자신도 평창올림픽 출전이 꿈 같은 얘기인 건 알지만 그건 벤쿠버나 소치 때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어떻게 될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니 2018년이 되어봐야 알 일이다.[33]

그러다가 2017년 3월에 타스 통신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라고 한다.

4. 여러 가지 신기록들

  • 1999년 그랑프리 시리즈 NHK 트로피에서 세계 최초로 4-3-2(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더블 룹) 착빙 성공. 공식 경기에서 총 26회 이상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콤비네이션을 경기에서 성공한 선수는 그 이후로도 극히 드물다.



세계 최초로 4-3-2 점프를 선보인 17세 소년의 집시 댄스.

  • 2002년 그랑프리 시리즈 COR에서 세계 최초로 4-3-3(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트리플 룹) 착빙 성공. 공식 경기에서 총 4회 이상 성공했다. 이 콤비네이션은 아직까지 플루셴코 이외에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다.[34]



가장 유명한 4-3-3 성공 영상인 03 그랑프리 파이널 LP '상트페테르부르크 300'. 화려한 기술 구성과 예술점수 만점 6개의 위용.

  • 남성 스케이터 최초로 비엘만 스핀에 성공. 시니어 데뷔 이후에도 8시즌 동안 비엘만 스핀이 가능했던 유일한 남성 스케이터였으나 05 세계선수권 기권 사태 이후로는 고질적 부상 문제 때문에 못하게 되었다.[35]

  • 남자 싱글 스케이터 최초로 베이글 스핀에 성공. 웬만한 여자 싱글 선수보다 아름답게 도넛을 구웠으며 시니어 데뷔 이후에도 9시즌 동안 선보인다.

  • 신채점제 도입 후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의 SP 토스카의 서큘러 스텝에서 레벨 4를 받은 세계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 구채점제 시절, 16세의 나이로 만점인 6.0을 받아 최연소 6.0 획득 기록.

  • 역시 구채점제 시절, 2003년 러시아 선수권에서 심판 전원으로부터 예술 점수 6.0을 받은 바 있다. 자국 선수권 대회였다고는 하나 유례가 없는 대기록이었으며 신채점제로 바뀐 지금은 깨질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당시의 연기가 유명한 '니진스키에의 헌정'.

  • 갈라에서 자기 기분이 내키면(...) 3-3-3-2, 3-3-2-2-2-2, 4-3-2-2 등을 뛰기도 했다. 흠좀무...



05-06시즌 러시아 내셔널 갈라에서 점프의 신이 직접 보여주는 3-3-2-2-2-2. 참 쉽죠? 앙코르 부분에 나온다.

  • 06 토리노 올림픽 갈라에서도 피날레에서 다른 선수들 다 보는 앞에서 트리플 악셀-트리플 토룹-트리플 룹을 냅다 뛰고 신난다는 듯 엉덩이춤을 추며 외계인 인증을 했다.



2분 36초경에 등장하는 남싱 금메달리스트의 위엄.

  • 3년 반 동안 은퇴 후 복귀전인 09 로스텔레콤컵 갈라에서도 쿼드를 훌렁 뛰는 데 그치지 않고 피날레에서 다른 젊은 선수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그 앞에서 웃으며 쿼드를 뛰는 양민학살 똘끼짓을 했다.

5. 연기에 대해

역대 최고라 불리울 만큼 압도적인 점프 컨시(회전축이 빗나가도 어떻게든 랜딩해낸다. 30대에 접어든 현재도 여전), 남자로서 하기 힘든 비엘만과 스파이럴, 도넛 스핀 등 유연성 겸비, 4-3-2, 4-3-3 같은 비인간적 콤비네이션 점프도 너끈히 소화하는 등 기술적인 면으로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지만 예술성도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먼치킨이다.

플루셴코의 연기는 주로 날카롭고 서늘하며 우아하며 힘이 있다. 음악을 타는 감각은 천부적이며 풍부한 표정 연기와 섬세한 신체적 표현력, 싸늘하고 압도적인 빙판에서의 존재감과 카리스마, 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빙판 장악력은 가히 차르라는 별명에 손색 없는 수준이다.

어린 시절 러시아 발레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마린스키 국립극장에서 러브콜을 받고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했을 정도로 발레에 재능이 있는 플루셴코는 손끝에서 발끝까지 예리하게 라인이 살아있는 뛰어난 바디컨트롤과 아름다운 포지션을 자랑한다. 발레풍의 프로그램은 의외로 니진스키 헌정과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정도로 많지 않지만 그 이외의 프로그램들에서도 그의 발레적 재능이 자연스레 발휘되어 동작 하나하나에서 섬세하고 우아한 발레의 풍취를 발견할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역시 직접 보는 편이 좋다.


2003년 러시아선수권 프리 프로그램 '니진스키에의 헌정'. 통칭 니진스키.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겸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에게 헌정하는 프로그램이며 플루셴코의 프로그램 중 가장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음악은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에드빈 마르톤, 안무는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노 유리 스메카로프가 맡았으며 중간중간 니진스키의 오리지널 안무 동작들이 들어가 있다. 특히 절정 부분에 보여지는 장미의 정령은 니진스키에의 헌정 중에서도 백미. 플루셴코와 스메카로프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직접 박물관을 찾아 니진스키의 일생에 대해 조사했다.

03-04시즌 연기된 많은 니진스키 중에서도 '가장 기술/예술적으로 완벽한 니진스키' 로 회자되었던 것이 위 영상의 러시아선수권 니진스키. 실제로 예술점수 전원 만점이라는 피겨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으며 플루셴코 본인은 관중들의 기립박수에 답하느라 키스 앤 크라이 존에 가지도 못하고 빙판에 선 채로 점수 발표를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는 다 일그러진 저화질 영상으로밖에 구할 수 없어 피겨팬들의 애간장을 태운 경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발레리노 니진스키의 춤이 사진과 기록으로만 남아있듯 가장 아름다운 니진스키는 이런 화질로밖에 볼 수 없는 것' 혹은 '신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을 금지했다' 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다행히 관대하게도 08~09시즌 러시아 내셔널 방송에서 남싱 경기 후 재방송을 하여 지금의 그나마 개선된 화질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36]


2002년 솔트레이크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에서 넘어진 다음의 프리 프로그램 '카르멘' 역시 일품. 야구딘이 프리에서 3위 이하, 본인이 프리에서 1위를 하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는(즉 거의 게임 끝난) 상황이었으나 도리어 그런 상황에 버프를 받았는지 새파랗게 독 오른 열연을 펼쳤다. 팬들 사이에서는 '독기 카르멘' 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그것도 올림픽 무대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4-3-3을 시도한 데다[37] 한 프로그램 안에서 콤비네이션 포함 쿼드러플 토룹 두 번에 트리플 악셀-하프 룹-트리플 플립을 넣는 등 기술적으로 이미 인간 한계를 초월한 구성의 프로그램. 거기다 잘 보면 돈 호세와 에스카밀로에 이어 남자 주제에 카르멘까지 연기하고 있는데 그게 또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흠좀무...

일부 유명 프로그램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플루셴코는 기술성과 예술성의 완벽한 조합과 특유의 오만함에 가까운 카리스마로 심판과 관객들을 열정적으로 사로잡는다.


2003 세계선수권 SP "아다지오". 전위적이면서도 무용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움직임이 예술이다.

니진스키와 카르멘 외에도 피겨를 하는지 발레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예술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02-03 SP "아다지오", 흠 잡을 데 없이 유려하고 청아해서 눈이 정화되는 02-03 LP "상트페테르부르크 300", 같은 시즌 니진스키의 위엄에 가려 존재감이 적지만 빙판 위에서 냅다 격렬하게 플라멩코를 춰대는 풋워크로 유명한 03-04 SP "탱고와 플라멩코", 아방가르드할 정도로 난해한 안무로 음악 자체를 타는 05-06년 SP "Tosca", 은반 위에 군림하는 냉혹한 황제의 카리스마로 심판이고 뭐고 죄다 갖고 노는 2004년부터 올림픽까지 써먹은 LP "대부" 등 대부분의 컴피 프로그램들이 팬들에게 두고두고 사랑받고 있다. 특히나 "대부" 프로그램은 매 경기마다 다른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팬이라면 모든 경기는 필견.

6. 또 다른 전설, 갈라

경기 때 압도적인 아우라를 내뿜던 모습과 비교하면 억만 광년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4차원적 갈라쇼로도 유명하다. 갈라쇼 하려고 대회 나온다 는 말이 있을 정도. 사실 피겨팬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갈라 쪽이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루셴코가 출전했다하면 피겨팬들 중에도 갈라쇼가 어떨지를 더 기대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고 한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2001년 세계선수권 갈라 프로그램 'Sex Bomb'.

만 18세의 나이로 인생 첫 세계선수권 우승 후 이런 짓을 했다(...) 이런 인간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다른 선수들이 살짝 불쌍해질 지경... 인데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이미 초월자 수준인 데다 근육 수트에 황금 빤쓰 팬티 바람으로도 점프는 환상적이다.[38] 이건 뭔가 더욱 지못미하지 않은가?

이 프로그램은 첫 공개 이후 하도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끌어 2008년까지도 아이스쇼에서 꾸준히 우려먹혔는데 아기로 분장하고 나와 형언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변형판도 있다. 통칭 베베섹밤으로 피겨갤의 3대 금지 영상 중 하나.[39] 2ch에선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 묻는 프로그램' 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를 니진스키로만 기억하고 싶다면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단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기억된다면 <Tosca(05-06 쇼트 프로그램)>가 좋겠다' 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일반인은 대부분 섹스밤으로 기억하는 상황(...) 사실 처음부터 본인이 제일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2001년 세계선수권 우승 후 갈라인 섹스밤을 포함해 2003년 세계선수권 우승 후 온리유, 2004년 세계선수권 우승 후의 아시사이 갈라는 모두 초연으로 충공깽을 선사하는 명작. 특히 아시사이의 자웅동체 연기는 압권으로 처음 노출시의 격뿜을 넘길 수만 있다면 플루셴코의 연기자로써의 재능에 감동하게 된다(...) 세계선수권에 뭔가 맺힌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미쉰의 취향이라는 사람도 있다.[40]

베이비 섹스밤 - 정신건강에 주의하면서 보도록 하자. 분명히 경고했다. 참고로 베이비 섹스밤 버전의 전에 나오는 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곡인 'Oops!... I did it again' MaxRaabe 버전이다.

러시안컨트리 댄스. 그의 싹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1998년도 세계선수권 갈라. 15세의 최연소 메달리스트, 월드 데뷔의 갈라 무대에서 무릎으로 기어 심판석 앞으로 들이대다(...) 유사품으로 빙판 위에 엎어져 날갯짓을 하며 온몸으로 미친 새를 열연하는 이팔청춘 16세의 미친 새가 있다.

2010년 유로 챔피언십에서 6번째로 우승했을 때는 첫번째 우승처럼 좋아하고는 얼음 위에서 혼자 러시안 뽕짝(?)에 미친 듯이 몰입해서 처절한 연기를 펼치는데... 가사의 번역이 스베차(촛불) 나오자 한국 팬들에게 이번 시즌 끝나고 죽을 거냐 란 원성 섞인 찬사를 들었다(...)

그리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갈라쇼.

시청자들은 처음에 의외로 평범해서 실망했으나 그야말로 열연을 펼쳐서 화제가 되었다. 일단 곡 이름부터 Je suis malade(나는 마음이 아파요) 에 관중을 휘어잡는 타고난 아우라와 마음을 흔드는 처절한 연기력, 끝에 가서 빙판에 벌렁 자빠지는 것까지 예술적인 나 죽었뜸 마무리(가사에 따르면 죽은 새를 뜻한다)까지 빙판을 말 그대로 지배했다. 밴쿠버 올림픽 갈라쇼에서 플루셴코는 가장 큰 환호와 유일한 기립을 이끌어내며 적지의 심장인 북미 올림픽에서 갈라쇼를 지배해 버렸다.

그가 두 번째로 복귀한 2011-2012 시즌에서는 아쉽게도(?) 예전 갈라를 재탕하는 수준에 그쳤다. 'Je suis malade' 가 명갈라긴 한데 너무 많이 우려먹는 것 같다(...) 그래도 빌리브를 볼 순 없잖아...

7. 플루셴코와 그의 코치,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미쉰


아빠다, 아빠!! 자자, 여기야 여기 아빠한테 오세요<-






가족사진(...) 플루셴코 옆은 역시 미쉰의 제자이며 올림픽 챔피언인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의외로 귀여우시다

플루셴코와 미쉰 코치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리그베다 위키 페이지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절대적인 신뢰와 애정관계를 자랑하는(...) 사제 관계다. 이 두 사람의 인생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사이이며 20년간의 사제 관계는 뉴비들이 넘볼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유대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고향과 가족을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훈련해야 했던 제냐에게는 미쉰이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미쉰 코치 역시 재능과 노력을 갖춘 그의 뮤즈(...)에게 그만큼 사랑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팬들 사이에서는 부인인 야나보다 더 질투의 대상이다.

2011년 3월에는 미쉰 영감님의 칠순을 기념하는 아이스쇼를 열었다. 미쉰 코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영감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였는데 정작 미쉰 영감의 가장 큰 제자인 제냐는 그날 감기에 걸려 열이 끓는 바람에(...) 원래 세 개를 할 예정이었던 프로그램을 하나밖에 하질 못했는데 그게 아주 백미. 미쉰 코치를 향한 플루셴코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미쉰 코치 생신 기념 아이스쇼, 일명 미쉰쇼(...)에서 보여준 카루소. 아다지오 스텝을 활용한 우아하면서 애절한 연기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연기가 모조리 그의 코치를 향한 것이라서 문제지(...)

이날 플루셴코는 그의 코치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당신을 아버지처럼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고 그의 코치는 '나도 너를 아들처럼 그 이상 사랑한다' 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2014년 5월 미쉰코치의 손자가 태어났는데 플루셴코에게 누구보다 먼저 그 사실을 전했다고 미쉰코치가 인터뷰에서 말하기도했다.

8. 그 외 잡다한 이야기

토리노 올림픽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로 대회에는 나오지 않고 주로 아이스쇼를 하며 보냈다. 이 기간 중 피겨 학교를 세우기 위한 예산을 얻기 위해 잠시 정치계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원에 당선되어 가끔 농담 섞인 애칭으로 '의원님' 이라 불릴 때가 있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 복귀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2011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에드빈 마톤과는 니진스키 이후 그 이상 죽이 잘 맞을 수 없는 친구 사이가 된 듯 이후 모든 프로그램의 음악은 마톤이 맡았다. 휴식 기간 중에는 마르톤과 함께 아이스쇼 공연을 했으며 러시아 국민 가수 디마 빌란과 그룹을 이루어 2008년 유로비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유로비전에서는 실로 몇십 년 만에 러시아가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했지만 사실 진정한 금지 영상은 이쪽이라 해야 할 정도로 손발이 오글라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정줄을 꼭 붙잡고 보자(...) 역시 그를 니진스키로 기억하고 싶다면 결코 봐서는 안 될 영상이다(...) 음치로서 유럽 가수왕을 꿈꾼다면 그처럼 해보라.

점프, 스텝, 연기가 모두 초일류인 굇수지만 유일한 약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이 스핀인데 선천적으로 반고리관이 약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에는 버스도 제대로 탈 수 없어서 중간에 내려가며 몇 번씩 갈아타야 했을 정도. 훈련을 거치며 많이 호전되었으나 역시 그때의 영향인지 '조금만 사랑하는 요소' 로 스핀을 꼽았다. 그러나 구체점제부터 훌륭한 포지션의 비엘만 스핀과 베이글 스핀을 구사하였고 특히 카멜계 스핀을 아름답게 구사한다. 신체점제에서는 무릎이 영 좋지 않아 고난도 싯스핀 시전 불가에도 불구하고 엣지 체인징을 잘하고 센터링이 좋아 레벨을 챙긴다(...) 복귀 후에도 꾸준한 연습 덕인지 스핀이 많이 좋아졌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하뉴 유즈루의 소치 올림픽 이후 새 코치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플루셴코 본인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플루셴코는 아직 현역 선수이고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듯.

2014년 10월 러시아교육부의 요청으로 학교체육수업에 쓸 교수법 프로그램을 만드는 중이며 또한 10월 23일 중국하이난에서 개최하는 2014 미션힐스 월드셀러브리티 프로암 골프대회에 참가했다. 2015년 1월 16일 일본에서 열린 ISU 공인 프로 대회인 메달 위너스 오픈 경기에서 1위를 차지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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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키릴 문자의 표준 로마자 표기로는 Yevgeny Viktorovich Plyushchenko이나 해외 활동의 편의를 위해 전자의 표기로 통일했다고 한다. 아직도 가끔 이런저런 곳에서 표기가 혼동되어 쓰이는 일이 있는 듯하다. 다만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표준식 이름으로 나왔다.
  • [2] 러시아어 표기체계에서 ю 자는 /ju/ 발음을 나타내며 한글로는 ㅠ에 가깝다. 현행 러시아어 표기법도 '플류셴코' 로 적도록 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플루셴코' 를 항목명으로 한다.
  • [3] 출생지는 오호츠크해 근방의 하바롭스크 크라이지만 어릴 적 심한 폐렴을 앓아 의사의 권유로 남쪽 지방인 볼고그라드로 이사했다. 어느 쪽이든 시골.
  • [4] 스케이트를 타기 싫어하는 엄마 친구딸의나라를 구했구나 여아용 스케이트화를 선물로 받았다고한다. 플루셴코나 그 어머니도 처음에는 스케이트를 어디서 타야하는지도 몰랐다고. 본인은 '운명이었다'라고 쓰고있다
  • [5] 주로 로커룸에서의 폭행과 나이키, 심지어 불에 달군 쇠꼬챙이까지 듣기만 해도 충공깽.
  • [6] 금메달만 63개(...)라고한다.
  • [7] 2000 세계선수권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정작 세계선수권에서는 실수 연발로 4위를 기록해 포디움에도 오르지 못했다. 당시 17세였던 그는 6연승으로 주요 타이틀을 차례로 따냈기에 이때의 세계선수권 프리 전날 밤 승리할 거라는 설렘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자고 경기를 망쳤다. 플루셴코는 이 경험을 통해 승리가 아니라 경기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다시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 고 다짐했다고 한다.
  • [8] 정작 솔트레이크 올림픽 시상식에서 미국 중계진들이 '러시안/아메리칸' 이라며 찬양하던 야구딘은 은퇴 몇 년 후 러시아로 되돌아간다. 안습...
  • [9] 선수들이 잘하는 점프 하나만 여러 번 뛰어 점수를 가져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규칙. 쇼트와 프리의 규정이 다르고 상당히 복잡하지만 간단히 줄이면 동일한 구성의 점프나 스핀을 두 번 수행할 경우 두 번째 점프나 스핀은 0점 처리하는 규칙이다. 이론적으로는 경우에 따라 몇십 점씩 깎여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 [10] 이때 프리 프로그램이 바로 전설적인 니진스키에 헌정. 하지만 이렇듯 클린하지 못한 적이 자주 있었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 [11] 03-04 시즌에서도 문제가 있었던 계속 누적된 부상이 끝내 2005년 세계선수권에서 터진 셈. 이때 플루셴코는 가축용 진통제를 맞고 쇼트를 출전했는데 환각과 시야 흐림, 구토와 발열의 부작용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프리 당일에는 결국 그것조차 듣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 [12]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회에서 보여준 SP "월광" 프로그램은 연기하는 선수가 어딘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른 세계에서 연기하는 듯한 광기의 직선 스텝은 백미. 팬들에게는 기피 영상인 동시에 최고의 월광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13] 2위를 차지했던 스위스의 스테판 랑비엘과의 점수차가 약 27점...당시 프리 프로그램 중계 영상에는 플루셴코의 경기 이후부터는 남은 선수들이 1위가 되기위해 필요한 점수가 아닌 2위가 되기위해 필요한 점수...가 떴다
  • [14] 토리노 올림픽이 끝난 후 1위부터 10위까지의 기록 중 8개가 플루셴코의 신기록이었다. 토리노 올림픽까지 플루셴코가 신채점제하에서 한 경기가 총 10번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 흠좀무.
  • [15]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패트릭 챈이 93.02.로 경신. 2015 현재 쇼트 신기록은 하뉴 유즈루가 소치 올림픽에서 세운 101.45
  • [16] 정확하게는 1991년 소련 해체 후 1992년에 구소련을 이어받아 출전한 독립국가연합.
  • [17] 내셔널의 점수는 어느 나라건 높기 마련이며 100점이 나오든 200점이 나오든 공식 기록으로 들어가지 않고 게다가 러시아 쪽 채점 방식은 어려운 점프를 구사할 경우 보너스 점수를 얹어주는 자체 채점 방식이지만 점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본인은 키크존에서 이 점수를 보곤 기분 나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내 점수가 아니었다고 냉정하게 인터뷰했다.
  • [18] 2008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이 점프를 성공시킨 프랑스의 브리앙 주베르가 쿼드 점프 없는 연기를 했던 캐나다의 제프리 버틀에게 2위로 밀리면서 판정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 [19] 2008년의 제프리 버틀과 2009년의 에반 라이사첵
  • [20] 유럽선수권 후 플루셴코의 인터뷰에서 '(나와 주베르는) 점프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랜지션은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라는 발언을 인용하면서 '선수 스스로가 신경 안썼다는데 심판들이 점수를 너무 후하게주는거 아닌가?...라는 내용. 물론 조 인만은 이 이메일이 그냥 아는 동료 심판들끼리 얘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북미 미디어들은 인만을 옹호하면서 오히려 러시아와 프랑스가 과잉반응을 보인다고 공격했다.
  • [21] 프로그램 구성상 플루셴코가 가장 높았고 유일하게 쿼드 토(4T)-트리플 토(3T)를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만을 뛴 2위 라이사첵과 점수차가 너무 적다는 의견이 많았다. (적어도 3-5점차는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90.85였던 플루셴코의 점수와 겨우 소숫점차를 받았던 2위(90.30)와 3위(90.25)의 점수차를 볼때 심판들의 전형적인 줄세우기 판정이라는 의혹의 여지가 있다.
  • [22] 이 당시 연기를 유럽 선수권때와 비교해보면 명백히 의식적으로 트랜지션을 늘린 것을 알 수 있는데 점수는 오히려 크게 낮아졌다. 대게 올림픽에서 점수는 기타 국제 대회보다 후하다는 점을 생각할때 이상한 점이다.
  • [23] 프리에서도 역시 트랜지션에서 3명의 심판이 6점, 6점, 6.5점의 낮은 점수를 매겼다. 주베르도 쇼트에서 두명의 심판에게서 5.75, 한명에서 5.5 라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 [24] 현재의 신체점제를 비판하며 "고난도점프를 구사하는 선수들에게 좀 더 많은 점수를 주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고점과 최저점을 준 양극단의 심판 점수를 제외하고 평균을 내는 구채점제 방식에 비하여, 랜덤으로 두 명의 심판의 점수를 제외하는 현행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 [25]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아사다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고 말했다고 전했다.
  • [26] 1년간 공식 경기 출전 금지. 실제로는 무기한이었지만 금지 처분 다음해 총회에서 금지를 풀어줬다. 밴쿠버 전후로 러시아 피겨연맹을 공개적으로 지탄한 데다가 감히(?) 2010년 세계선수권을 막판에 기권해버린 괘씸죄로 ISU의 골 때리는 아마추어 선수 자격 규정(간단하게 말해서 ISU에 자국 연맹을 통해 허락을 맡지 않고 ISU가 아마추어 선수가 공연해도 괜찮다고 지정하지 않은 상업적 쇼에서 공연하면 훅 간다)을 이용한 러시아 피겨연맹의 보복성 플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물론 플루셴코 이후 국제대회 우승이 보장된 남자 선수가 없다시피 한 러시아가 소치를 앞두고 스스로 진짜 무덤을 팔 리는 없기 때문에(...) 1년 만에 출전 자격 복귀.
  • [27] 플루셴코는 16살 이후부터는 러시아내셔널에서 챔피언을 놓친 적이 없다.
  • [28]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의 미셸 콴의 경우와 비슷하다.
  • [29] 게다가 러시아 출전 선수 3명 중에서도 꼴찌를 했다(...)
  • [30] 미국은 페어, 일본은 페어/아이스댄스의 수준급 선수가 없어서 단체전 금메달을 노리기 힘들다.
  • [31] 나는 끝까지 버티려고 노력했다...신께서 예브게니, 스케이트는 이제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는것 같다. 모두에게 죄송하지만 나는 정말 울고싶어질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https://www.rt.com/news/pluschenko-withdraw-sochi-olympics-905/
  • [32] 다행히 뼈가 잘 붙어 소치 올림픽에서 부러진 나사를 포함해 채 붙지 않은 인공 디스크를 지지하고 있던 나사 모두를 제거했다고 한다.
  • [33] 현재 2015-2016년 시즌에서 플루셴코는 러시아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특별 승인된 상태이다.
  • [34] 마지막 점프가 좀 더 쉬운 점프인 트리플 토룹으로 구성되는 4-3-3은 벨기에의 케빈 반 더 페랭 선수가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 성공한 적이 있다.
  • [35] 플루셴코로 인해 남자 싱글에서 비엘만 스핀이 유행했으나 대부분 성인이 되기 전에 잃어버렸다. 확률 낮은 로또를 긁게 하다니 참 나쁜(...) 선배다.
  • [36] 당시 플루셴코의 니진스키에의 헌정과 압트의 볼레로가 방송되었다.
  • [37] 마지막 트리플 룹에서 스텝아웃되는 바람에 공식 인정되지는 못했다. 공식 인정은 그 해 2002 COR 프리 경기.
  • [38] 2001년도 갈라 영상에 보면 앙코르 요청을 받은 후 이 근육 수트 차림으로 3-3-2를 뛴다(...)
  • [39] 3대 금지 영상 중 가장 파괴력이 크다는 평가도 있다. 일단 다른 두 영상들은 그 선수 커리어에서 '10대 소년의 재롱' 으로 넘길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영상이나 저때 제냐는 이미 이룰 걸 다 이룬 탑싱이었는 데다 선수 개인적으로도... 저때 성인인 건 물론이고 애아빠였다(...)
  • [40] 가친스키와 뚝따미쉐바가 성년이 된 세계선수권 갈라도 기대해보자. 일단 가친스키는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적인 갈라를 선보였지... 만 우승한 건 아니었다. 뚝따미쉐바가 2012-2013년에 시니어 세계선수권 참가 자격이 생기니까 기대해보자. 근데 문제는 이 언니가 복귀를 해서
  • [41] 2위 오다 노부나리, 3위 제프리 버틀, 4위 조니 위어, 5위 에반 라이사첵, 6위 혼다 다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