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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최종 변경일자: 2016-06-10 00:37:2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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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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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검거 당시 언론에 공개된 모습

이 일로 인해 부자들이 각성했으면 좋겠고[1]
여자들이 함부로 몸을 놀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2]

저게 얼마나 개소리인가는 도가니 하나만으로도 설명이 끝난다.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잘린 머리가 수건걸이에서 떨어졌던 순간도,
머리 없는 몸뚱아리가 나에게 달려들었던 순간도 아니였다.
그 순간 걸려온 아직 아들의 감기가 안 나았느냐는 전화가 가장 무서웠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일 연쇄살인마.단순 희생자 숫자로 치면 우범곤같은 인물보다는 적으나 본질은 그의 엽기적인 살인 방법과 희생자들을 주로 어떻게 골랐는지에 있다.

목차

1. 소개
2. 범행 일지
3. 체포
4. 기타

1. 소개

유영철(1970년 -)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20명을 연쇄살인한 범죄자이다(21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20명이다). 참고로 연쇄살인 이전에는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왔다. 한마디로 걸어다니는 교도소.

유영철의 엽기적인 범죄 행각으로 인해 사이코패스의 개념이 대중에게 알려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코패스 판정 테스트인 PCL-R 검사에서 40점 만점에 34점을 맞았다고 한다[3]. 하지만 이 검사는 대중들에게 잘못 알려진것처럼 무슨 만능 테스트가 아니다. 관심법이나 무당도 아니고 그리고 유영철은 사이코패스나 그것과도 구별되는 쾌락살인자라고 보기도 힘들다. 주된 동기에 따라 분류하면 증오범죄라고 봐야 한다. [4]

2. 범행 일지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13일 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명예교수 부부를 살해했다.[5] 이 사건 이후 2004년 7월까지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6]

다음은 그의 범행 일지.

-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S여대 명예교수 이모씨(72세)와 부인 이모씨(67세)를 둔기로 살해

- 2003년 10월 9일,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관리원 고모씨(60세, 남)의 집에 침입해 고씨의 어머니 강모씨(82세, 여)와 고모씨의 아들(35세, 남)을 둔기로 34회를 강타해 살해.

- 2003년 10월 16일 강남구 삼성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최모씨(70세)의 부인 유모씨(60세, 남)를 둔기로 살해

- 2003년 11월 18일 종로구 혜화동의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집주인 김모씨(87세, 남)와 파출부 배모씨(53세, 여)를 둔기로 살해. 증거 인멸을 위해 금고에 불을 지름.

- 2004년 3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7]에서 맛사지도우미 김모씨(25세, 여)

- 2004년 4월 14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모씨(44세, 여)를 자신의 승합차로 유인해 성폭행 한후 살해. 시신은 월미도에 유기.

- 2004년 4월부터 7월까지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전화방도우미, 맛사지도우미 등 여성 11명을 살해.


초기에 저지르는 범죄와 후기에 저지르는 범죄가 어느정도 차이점을 보이는데, 초기에는 타인의 가택에 불법침입하여 둔기를 휘둘러 살해하는 방식을 사용한 반면에, 후기에는 주로 출장마사지사 여성을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 불러들여 살해 후 사체를 훼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주택가 CCTV에 자신의 뒷모습이 완벽히 잡혀서 신고 있던 신발 종류부터 해서 머리에 쓴 모자까지 완벽히 나열된 채로 수배되자 두려움으로 인해 범행에 소극적이 된 것이고 이후 은둔생활을 하다 돈이 궁해진데다 이혼 통보를 한 아내에 대한 원한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불러 금전을 빼앗은 뒤 가짜 알리바이[8]까지 만들어 놓고는 손망치로 살해한 것이다.

유영철이 체포된 뒤 경찰에서는 프로파일링의 승리라고 자화자찬을 벌였으나 실제로 유영철을 붙잡은 건 보도방 업주들. 특정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간 여인들이 돌아오지 않자 몇몇 보도방 업주들이 회담을 했고 전화번호를 요주의로 분류하고 그 결과 유영철을 유인해 붙잡았다[9]. 유영철은 꼬리가 밟힐걸 우려해 한번 걸었던 업소 전화번호로는 두번 여자를 부르지 않았지만 그 각기 다른 전화번호들이 최종적으론 한 업소로 수렴된다는 걸 몰랐던 거다. 그 때 경찰은 업주들의 요청에 따라 한 명을 딸려보냈는데 그 때문에 자신들이 체포했다고 광고하고 관계자들을 승진시켰다가 사실이 밝혀지자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보도방 업주들은 반년 후 모조리 다 구속. 처벌된다. 이것이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3. 체포

한편 유영철은 2004년 7월 18일 체포되었는데 현장검증에서 26명을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10] 하지만 26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추후에 유영철 본인이 이를 부인하고 정황도 맞지 않아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수사 담당자가 밝히기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살해한 희생자는 20명으로 확인이 되었다. 이후 8월 13일 구속 기소 되어 이문동 살인 사건을 제외한 20명에 대한 살인죄의 유죄가 인정되어 2005년 6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현재도 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여기서 검찰의 병크를 확인할 수 있다. 유영철이야 어차피 이문동 살인사건이 유죄가 되건 말건 똑같은 사형이지만 희생자 유가족들의 처지가 문제인데, 만약 여기서 이문동 살인사건을 유죄로 판결하면 희생자 가족들은 영영 진범을 알지 못한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으면서 상고심까지 끌고 갔고 결국 확정판결 이후인 2006년에야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이 사건을 저지른 것을 자백하고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됨으로써 뒤늦게 진범이 밝혀졌다. 표창원의 "한국의 연쇄살인(2005)" 에서도 경찰수사방향을 따라 이문동 살인사건을 유영철에 묶어 다뤘지만 당시 여기서도 범죄의 대상과 방식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밝히면서 의혹을 나타내며 서술해놨다. 물론 이때는 정남규가 잡히지 않았을 때.

유영철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얌전히 있지 않았는데 우선 감방에 들어와서 동료 수감자들을 훑어보더니 이 중에서 조폭 하나와 경제 사범 하나를 죽이겠다고 선포해서 교도소를 발칵 뒤집어놨고 교도소 측은 유영철에게 4,5명의 교도관을 상시 붙여놨다. 2011년에는 교도관들의 목을 조르면서 나 싸이코인거 모르냐!라고 소리치며 난동을 부렸다가 독방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지금도 구치소에 적응을 못해 교도관들의 가발을 벗겨 망신을 주고 화단을 파괴하는 행위를 자꾸 저지른다고...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아 사형 미결수로 분류되어 있지만 2007년 1월경 법무부에서 유영철에 대한 사형을 추진하다가 청와대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11] [12]

2014년 11월에는 교도관에게 뒷돈을 주고 일본 성인 망가나 성인 화보집, 야설을 밀반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4. 기타

  • 후일 2008년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유영철의 판결문 전문이다. 그런데 왜 다른 범죄자와 달리, 이렇게 판결문이 긴지 궁금하겠지만 왜냐하면 사람을 한두명도 아니고 20명이나 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판결문이 길 수밖에.[13]

  • 사진 잡지 '라이프'지에서 세계 30대 살인마에도 올랐으며 연쇄살인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면 어지간한 곳에서는 다 그의 이름을 거론한다. 심지어 유영철이 한국에서 1997년 이래 8년 만에 사형을 선고받은 경우라는 잘못된 정보도 나오고 있는데 그의 악명이 얼마나 높은가를 말해주는 좋은 사례.

  • 구치소 내에서도 전혀 반성이 없었으며 난동 사건도 있었다. 결국 독방으로 직행, 언론에서는 '콩밥도 아깝다, 닥치고 사형시켜라' 등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으며 현재도 사형집행 이야기가 나오면 강호순, 정성현 등과 더불어 1순위로 거론된다.

  • 이란성 쌍둥이로 누나가 있다. 하지만 누나 쪽은 어려운 환경에도 공부를 독하게 해서 대기업을 들어갔지만 정작 자신은(..)

  • 과거 개신교인이었다.

  • 자신의 범행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뉴스에 댓글을 단 적도 있다고 한다.

  •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원래 이 인간을 모티프로 한 등장인물이 나올 계획이었지만 세간의 비판을 인식하여 그만 두었다고 작가 본인의 언급이 있었다. 공지영 본인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유영철을 보면서 '저런 인간은 죽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느꼈다고.

  • 각종 괴담에 등장하기도 했다. 유영철에 관련된 괴담 항목 참조. 하지만 위의 괴담은 전부 거짓이다. 실제로 유영철은 칼을 흉기로 사용한 적이 없으며 전부 자신의 손에 알맞게 제작한 손망치로[14] 피해자를 살해하였고[15] 아파트에서 살인을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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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발언 때문에 그를 존경시하고 의적 취급하기 시작한 미친 팬덤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존재 한다. 하지만 그가 살해한 희생자들은 대부분 금전에 상관없이 그저 그가 죽이기 만만한 사람들이었단 것을 모두들 생각해 봐야한다.물론 알고서도 존경한다면 답 없는 미친 놈.
  • [2] 유영철은 경찰 조사 중 윤락녀처럼 보이는 여성을 주로 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고한 사람도 있었고 오히려 여성의 옷차림이 강간 및 살인에 아주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잘못된 통념을 불러오게 되었다. 예전에는 희생자들한테 미안해서라도 대놓고는 못 말하던 헛소리였지만 이사건을 기점으로 공적인 자리에서조차 자랑스럽게 이런 말을 지껄이는 공직자들까지 생겨났다.
  • [3] 25점부터 사이코패스다.
  • [4] '흉악한놈=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지 말자. 정남규도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쾌락살인자이다.
  • [5] 이 때부터 정두영 등 일반적인 강도 살인범과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는데 재물에는 손을 안 대고 사람만 죽였다. 즉 살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이야기.
  • [6] 이외에도 위조한 경찰수첩으로 경찰을 사칭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업종(위에 말한 출장마사지라든가)의 사람들로부터 금전을 뜯기도 했다. 살인을 시작한 후 단순절도로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는데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위조 경찰수첩이 들통나면 조사가 철저해져 연쇄살인범이라는 게 들통나 사형당할 거라 생각, 경찰서 2층에서 뛰어내려 도주를 시도하는 등 별 발광을 했다고.
  • [7] 유영철의 자택.
  • [8] 여성이 업주에게 스스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만둔다는 전화를 하게 했다.
  • [9] 언론 공개 모습에서 마스크등을 쓰고 있는 이유가 체포과정에서 업주들에게 당한 폭행 때문에 눈이 부어오른 것 때문
  • [10] 내장이 모자라는 사체가 몇구 있어 추궁했더니 식인도 했다고 자백했다.
  • [11] <단독>"지난해 유영철 사형집행 추진...청와대가 반대, 무산"...당시 법무부 고위 관계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014188
  • [12] 한국은 김영삼 정권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23명 사형집행 이후 10년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2007년부터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구분되어 있다. (2010년 현재 사형폐지 혹은 사실상폐지 국가는 총 133개국이며 사형집행국은 중국, 베트남,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지 및 미국, 일본 정도이다.) 유럽연합은 사형제 폐지가 가입조건이며 한국은 EU와의 범죄인인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인도자에겐 사형집행을 포기한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 물론 유럽에서 넘어온 범죄자만 사형집행을 않겠다는 얘기지만. 여담으로 외교 조약은 호혜주의가 원칙이므로 이로 인한 형평성 문제는 적은 편이다. 실제로 중국의 경우 최근까지 마약류 유통의 혐의로 자국에 수감된 한국인을 사형 선고 및 집행을 하고 있다.
  • [13] 서울중앙지방법원 2004.12.13 선고 2004고합972 2004고합973 2004고합1023 판결 【살인·현주건조물방화·사체손괴·공문서위조·위조공문서행사·공무원자격사칭·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야간·공동공갈)(일부 인정된 죄명 : 공갈)·사체유기·도주·일반자동차방화·사체은닉·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절도)】
  • [14] 속칭 '오함마'의 손잡이를 개조한 것
  • [15] 판결문에도 나오지만 칼로 죽이면 사람이 느리게 죽는다고 쓰지 않았다. 애초에 살인범 중에서 칼을 순수하게 살인의 목적으로 쓰는 경우는 살인 경험이 없는 사람이거나 완전히 숙달된 사람 둘 중 하나. 생각보다 칼은 사람을 단번에 죽이는데 좋은 무기가 아니다. 대개 칼로 살해된 사람의 경우 손, 팔 등에 방어흔이 많이 보이는 것이 그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