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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최종 변경일자: 2017-11-17 14:32:5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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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이름 : 李小龍(리샤오룽, 이소룡), Bruce Lee(브루스 리)
본명 : 李振藩(리전판, 이진번)
출생 : 1940년 11월 27일
사망 : 1973년 7월 20일
신체 : 173cm, 61kg
학력 : 워싱턴 대학교 심리학부 철학과 중퇴[1]
가족 : 아내 린다 에머리, 아들 브랜든 리(이국호), 딸 섀넌 리(이향응)[2]
중화권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70년대 대표적인 액션배우
한국에서는 싱하형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이소룡이랑 싱하형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인물이다[3].

목차

1. 개요
2. 절권도
2.1. 영화 속 격투모습
2.2. 현실적인 평가
2.3. 무술의 대중화에 끼친 영향
3. 웨이트 트레이닝
4. 죽음과 그에 얽힌 소문
5. 그 외
6. 주요 출연작
6.1. 이소룡의 패러디, 오마쥬 또는 영향을 받은 캐릭터
7. 트리비아


1. 개요


스타스크림 아니 나쵸가 더 정확할지도

이소룡은 중국계 미국인 영화배우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으며, 중국인 아버지인 경극배우 이해천(李海泉)과 중국계+독일계 혼혈인[4] 어머니인 하애유(何愛瑜)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하애유가 홍콩의 4대 명문 가족 중 하나인 하동가족(何東家族)[5]의 자손 중 하나라고 한다. 명문가의 자손인 셈.

아버지가 제법 유명한 경극배우라서, 매우 이른 나이에 영화계에 데뷔를 했는데 갓난아기 시절부터 영화에 나왔을 정도였고, 아역배우로도 꾸준히 활동했다. 이소룡이란 예명은 아버지 친구가 길을 지나다가 길거리 경극 공연에서, "…대룡이 소룡을 낳으니 곧 이어지는구나!"라는 대사를 듣고, 대룡이 이해천이라면 진번은 소룡이 어떻겠느냐고 권해서 지었다고 한다.

전설적인 영화배우이자 대단한 독서가로, 어릴 적에는 몸이 약해서, 7살 되던 무렵 약한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태극권을 연마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술의 길에 입문하게 됐다. 이소룡의 아버지 이해천은 원래 과거 홍가권(洪家拳)을 배운 사람이었고, 본격적으로 무술을 배우기 시작할 때에는 자신의 무술의 기본이 된 영춘권(詠春拳)을 엽문에게 배웠으며, 그 외 같은 남권계열로 광동성의 유명한 권법이었던 채리불권(蔡李佛拳)을 익혔다.[6] 이후로도 복싱, 유도, 말레이시아 권법 등의 무술을 계속 익혀 나아갔다. 다만 쿵푸 고수라는 그의 겉보기 이미지와는 달리, 어렸을 때는 끈기가 없어 한 가지 무술을 깊이 있게 오래 배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며, 그나마 오래한 무술은 영춘권 정도였다고 한다.[7] 그러나 이런 성격이 특정 무술의 형태나 한계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신체특성이나 스타일에 맞는 프리 스타일 파이팅을 추구하는 배경이 되었고, 나중에 절권도의 이념이 되기도 하였다.[8]

중고등 시절에는 부모조차도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는 불량아였다. 매일같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다니던 학교에서 결국 퇴학 직전까지 몰렸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소룡을 설득해서 미국에서 공부하라고 한 것. 단돈 300달러를 쥐어주고 샌프란시스코의 사촌의 집으로 이소룡을 보냈다.[9] 그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접시닦이 등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은 듯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싱턴 주립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다.

그는 상당히 사색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철학, 심리학 등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10] 그래서인지 서양에서는 액션스타는 물론 정신적인 스승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좋은 예로, 기타리스트인 잭 와일드가 기타 잡지에서 "이소룡이 말하길, '자주 쓸 동작이 아니면 잊어버려라'라고 했다."라며 인용한 것만 봐도[11] 이소룡의 문화적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2005년에는 보스니아에서 내부의 민족 갈등을 치유할 상징적 인물로 이소룡을 선정하여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조선일보 기사보기 그러나 하루 만에 훼손당했고, 그 뒤로도 총격을 당하기도 하고 낙서와 오물이 버려지면서 동상을 철거해야 했다고 한다. 사실 상관도 없는 동양인 동상은 왜 만드냐는 반발이 엄청나게 거셌다.세운 사람이 이소룡 빠였던가?

철학은 도가 사상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며, 생각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행동이 있어야 한다[12]라는 말을 했던 것처럼 수동적이기 보다는 능동적인 삶을 더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물이 되십시오#와 같은 말을 미국의 방송에서 언급해,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강조하기도 하였다.[13][14] 그의 이런 발언들은 여러 분야에 영감(靈感)을 줬다. 무술인은 물론, 배우, 영화감독, 음악가, 프리러닝 선수들까지 "나는 이소룡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15].

예를 들어 가라데 대회에서 공연시간을 얻어 두 손가락만으로 한팔 팔굽혀펴기를 한다든가[16], 유명한 원인치 펀치를 시전하는 등 육체적 능력을 가꾸는 데 열심이었다. 아예 친구에게 부탁해서 악력을 기를만한 도구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또한, 전통을 배제하고 철저히 실전을 위주로 한 싸움을 강조했으며, 동작도 자신에게 맞고 효과적인 것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고 할 정도로 실질주의를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동양무술에서는 상당히 인위적인 훈련으로 여겨지던 웨이트 트레이닝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영화에 나오는 서머솔트 킥이나 드래곤 킥 등은 영화니까 스펙터클함을 위해 넣은 것이다.

머리도 좋고 건강한 사내였지만, 아내의 말로는 심각한 기계치였다고 한다. 베트남 전 때문에 징병검사로 끌려갔을 때, 공군이나 해군이 되면 어쩌나하고 아내가 걱정했다고. 하지만, 어이없게도 럭비선수 한 명과 함께 신체검사 불합격을 받았다고 한다.[17]

2. 절권도

절권도는 무술이라기보다는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이소룡은 이 개념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싫어했으며, 본디는 과학적인 길거리 싸움이라 부르려 했다. 개념 자체는 다분히 실전 격투기인데, 문제는 수련 체계가 제대로 잡히고 제자들이 어느 정도 실력에 다다르기 이전에 이소룡이 사망하는 바람에, 현재에는 상당히 복잡한 사정을 갖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이소룡은 어느 날 자신이 가르치던 도장에 온 도전자와 싸우게 되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비(非)중국인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이소룡을 못마땅하게 여겨 끊임없이 도전자를 보내왔었다. 때문에 이때도 대수롭지 않게 대련(?)을 펼친 이소룡은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것에 3분이나 걸렸다는 것에 충격 받고[18], 금방 싸움을 끝내지 못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 웨이트 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절권도 개발에 힘썼다.

물론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척추를 다쳐[19] 무술 스타일을 변화시킨 것도 포함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동적인 방어보다 능동적인 공격으로 우선권을 잡고 최대한 빨리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이소룡은, 곡선보다 직선,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강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간단한 예를 들면, 상대에게 복잡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보다 닥치고 면상에 정권 한 방 날리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여기게 된 것…. 또한 손목이 잡힐 때도 다른 무술처럼 복잡하게 팔을 틀고 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발을 밟거나 낭심을 차버리는 식으로 간략하고 경제적인 움직임을 선호한다.인디아나 존스시리즈에서 웬 아랍인이 내래 아랍의 검술을 보여주갔어하다가, 뭐야, 이거? 하는 표정의 해리슨 포드의 권총에 맞는 식… 이랄까? 간단의 미학

2.1. 영화 속 격투모습

영화 속 모습이 워낙 강렬했던지라, 절권도 수련생들은 영화 속 이소룡의 동작과 자세를 따라하면 절권도 고수가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거야말로 생전 이소룡이 들었다면 한 대 때렸을엄청나게 아팠겠네. 아냐, 이소룡이면 죽을지도 몰라. 기절하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소리… 영화 속 퍼포먼스와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영화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를 바탕으로 이소룡의 강함을 주장할까? 어디에나 무개념 초딩들은 있는 법이니 너그러이 넘어가자.

이렇게 무술적인 면 외에, 영화적인 측면에서 절권도의 특징격투액션물에 후까시를 넣는 걸 유행시키는 데 있어 최초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20]

과묵하고 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괴조음[21]과 함께 강력하고 재빠른 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이소룡의 모습은 수많은 남자들을 열광시켰다. 거기다가 적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먹이고 짓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표정 또한 트레이드마크.[22]

그 외에 이소룡이 유행시킨 쌍절곤 등의 무기는 동양무술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알려지기까지 했고, 몸에 난 상처의 피를 찍어 맛보는 제스쳐 등은 카리스마적인 모습을 보여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되었다.

현대에도 이소룡하면 생각나는 스타일리쉬함이 아직도 그 멋을 유지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가 영화상에서 보여준 절권도의 매력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소룡이 입는 노란 쫄쫄이는 그 자체가 멋있는 게 아니라 이소룡이 입었기 때문에 스타일리쉬하게 보이는 거라고….[23]

이소룡이 액션 영화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아니, 컸다. 다만 지금의 액션 영화는 또 많이 달라졌다.

이전까지의 중국무술영화는 주로 (套路)[24]와 같이 화려한 움직임은 보여주지만, 서로 정말로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은 잘 들지 않는 액션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소룡 이후에는 정말로 서로 두들겨 패는 듯한 느낌을 살린 액션이 주류(主流)가 되었다. 덕분에 배우들이 엄청나게 고생하게 됐지만.(…) 중국 무술 영화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25]

중국 영화뿐 아니라 서구 영화 쪽에서도 맨손 격투 장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26]. 사실 서구 영화의 맨손 액션(총이나 무기를 쓰지 않는 경우)은 별다른 "기술"이 없는 아마추어적으로 드잡이질 하거나, 서로 대충 주먹질을 날리는 "막싸움"인 게 보통이었다. 애초에 싸우기 전에 총으로 쏴버리는 게 전부였으니[27]….

중국무술영화는 이소룡 이전에는 아무래도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 많다 보니, 소설을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와이어 액션과 특수효과가 주를 이루었지만, 이소룡은 현실적으로 보이는 액션을 추구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선 연속 발차기나 섬머솔트가 사실적이냐고 비판하겠지만, 그런 기술은 과거 중국 영화의 칼 들고 날아다니거나, 장풍을 쏘는 거에 비하면 사실적인 게 맞다. 적어도 특수효과를 빌리지 않고, 실제로도 가능한 기술이긴 하니까.[28]

이후 절권도는 더욱 발전을 거듭해 나아갔으며, 이소룡 말년의 경우, 《용쟁호투》 등에서는 이소룡의 캐릭터가 관절기를 쓰는 것을 볼 수 있고[29], 《사망유희》에서 카림 압둘 자바와의 싸움을 끝낸 것도 목조르기였다.

현대 액션 영화에 나오는, 현실적으로 치고 박는 액션의 시초도 사실상 이소룡이라 봐도 무방하다http://zoc.kr/988.

《정무문》 때부터 매 작품마다 서양인 고수와 대결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이소룡의 친구다.[30]

영화배우 에디 그리핀이 처음 본 이소룡 영화는 《정무문》이었는데, 그가 영화관에 갔을 때 반대편에 포르노(…) 상영관이 있었는데, 정무문을 상영하는 극장은 꽉 찬 반면, 포르노 영화관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교차검증을 통해 증명된 건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만도 한 게, 이소룡은 당시 메인스트림(main stream: 주류(主流))에서 최초의 아시안 히어로[31] 덕분에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히스패닉이나 백인이 아닌, 이소룡이 활약하는 것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것[32]였다. 랩퍼인 LL Cool J[33]는 백인만이 히어로인 게 당연하던 시절, 동양인 이소룡이 대활약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내의 모습을 보면 중화주의적인 면이 자주 나오고, 백인에 맞서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백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이에 대해선 작중 그가 맡은 역이 대개 underdog[34]이라 불리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의 캐릭터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본에선 왠지 그가 출연한 영화를 수입할 때 제목에 전부 "드래곤"을 넣었다.[35] 《당산대형》은 "드래곤 위기일발", 《정무문》은 "드래곤 분노의 철권", 《맹룡과강》은 "드래곤의 길"[36], 《용쟁호투》는 "불타라 드래곤". 게다가 순서도 오락가락이었는데, 이는 제일 처음 《용쟁호투》가 수입 개봉되어서 빅히트를 치자, 급히 이소룡의 다른 작품들을 수배해 개봉했기 때문.[37]

《엠파이어》 지에서 뽑은 최고의 영웅들 중에 이소룡이 《용쟁호투》에서 맡은 "리"가 20위에 올랐다. 사실 이런 무술가 캐릭터들의 원조 격이 이소룡이고, 현재까지 이소룡의 캐릭터에 비견될 만큼 인상 깊은 캐릭터는 지금도 많지가 않다.

이소룡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 속에서 나온 기믹이나 설정 등도 이후 많이 오마쥬되었다. 《모탈 컴뱃》 1편의 경우, 《용쟁호투》의 컨셉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으며, 《Dead Or Alive》 5편의 스테이지중 하나는 《사망유희》에 나온 탑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2.2. 현실적인 평가

그의 철학적이나 영화인으로써 보여준 모습은 지금도 회자되지만, 실제 무술실력은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고급떡밥이다. 영화 속의 인상적인 모습과 각종 대중매체에서 비롯한 유명세 때문에, 최강자 논쟁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소룡 vs'로 검색해보면 그 떡밥의 위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이소룡은 싸움을 상당히 잘하던 사람이 맞지만, 어디까지나 운동한번 안 해본 일반인과 비교해서이다. 확실히 그가 싸움을 잘했던 사람인 건 맞다. 매일 규칙적으로 시행하던 실전적인 연습, 웨이트 트레이닝 등은 그가 잘 훈련된 파이터라는 것을 보여준다. 무술감독이 짜준 합대로 카메라 앞에서 체조하는 액션배우인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일반인이 이소룡 앞에서 깝쳤다면 실제로 개발살났을 확률이 높다. 실제로 이소룡 주변 인물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사건이 간간히 있었다는 증언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 이상으로 그가 현대에서 가장 강한 파이터라느니, 프로 파이터를 이길 수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따져볼 때 이소룡의 강함을 증명하려고 하면, 무엇보다 증거자료가 부족하다 못해 없다고 해도 될 정도이니까. 이소룡의 강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그의 활약상은, 이소룡의 지인들로부터의 "이소룡이 누구와 싸우는 것을 봤는데 대단하더라" 식의 카더라 통신에 불과하고, 그의 기술 시연 영상 역시도 어디까지나 기술 시연(試演: 시범, 공연, performance)일 뿐이다[38]. 심지어는 영화 속의 모습을 예로 들면서 이소룡의 강함을 주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소룡이 활동하던 60년대엔 이미 많은 격투기가 체계를 잡기 시작하거나 혹은 체계를 완성한 시점으로, 근대 격투기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복싱의 경우 20년대부터 라이트급(이소룡의 체급) 세계 챔피언전을 치를 정도였다.[39] 레슬링도 20세기 초부터 체계적으로 내려져왔다. 애당초 복싱과 레슬링은 19세기부터 프로대회는 모두 기록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에서도 미후네 코죠나 사이고 시로, 기무라 마사히코 등의 유도 영웅들이 있었고, 1961년에는 최영의가 자신만의 가라데를 완성하여 극진회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 이전부터 다양한 무술의 선구자[40]들이 세계각지에서 활동하며 본인의 무술을 홍보하고 있었다. 태국 같은 동남아에서는 소년 시절부터 무에타이웨이, 레달 세레이 등을 익혀 온 선수들이 목숨을 걸고 치고받고 있었고, 브라질에선 그레이시 가문이 타 무술 선수들을 박살내고 있었으며, 다른 곳에선 발리 투도의 초석을 쌓고 있던 시대였다. 이렇듯, 격투기를 업으로 삼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던 격투가들이 즐비하던 시대에,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 공식 전적은 하나도 없는 이소룡을 최강자라 칭송하는 것은 다른 격투가에 대한 모욕이다.

이소룡의 중요성은 여러 격투기를 혼합하여 자신만의 격투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상을 통해 현대 격투의 토대를 만든 것이지, 이소룡 자신의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토대를 만든 게 이소룡 한 명뿐인 것도 아니다. 워낙 유명했던 사람이라 그의 저서나 작업 등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을 뿐이지, 일반인들은 모르거나 관심도 없지만이소룡보다 더더욱 앞서거나, 더 뛰어난 토대를 구축했던 사람들이 즐비했던 것이 현실이다. 다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 뿐이지, 이소룡이 아닌, 그런 사람들이 구축한 토대 위에서 현대 격투기가 꽃을 피웠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만 이소룡이 그들 중 몇몇에게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소룡의 북미(北美) 등지에서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를 언급하며 홍보하는 것은 장점이 있기도 하다.[41]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서 추앙받는 면도 있다. 실제로 어록 중에 적극적인 삶이나 자신에 대한 구속을 푸는 자유 등을 중시하는 말이 많은데, 이는 특히 북미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말이 많기에 영감(靈感)의 보고(寶庫)로 여겨지기도 한다. 무술가로서는 정확히 검증된 바 없지만, 대중에 널리 알려진 무술 철학가로서는 공이 크다[42] 그리고 영화를 통해 무술의 대중화를 촉진시킨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실제로 《용쟁호투》 이후 무술 도장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2.3. 무술의 대중화에 끼친 영향

이소룡을 몇 가지 부분에서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그의 무술실력 덕분이라고 하기엔 무리다. 사실 그는 영화를 본격적으로 찍기 전부터 TV 드라마 등에 등장해 무술의 대중화에 적극적이었다.[43]린 호넷》뿐 아니라 TV 토크쇼나 드라마의 게스트 출연 등으로 무술 철학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눈 여겨봐야 할 것은 이소룡은 무술을 통해 단순히 강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철학적 깊이를 부여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소룡의 업적을 따질 때 그의 강함이 아니라[44] 철학적 깊이를 따져야 되는 게 이런 이유이다.[45]

그 전까진 중국 무술 등이 너무나 신비화되었고 폐쇄주의적이었던 데 비해[46], 이소룡은 절권도를 처음에 과학적인 길거리 싸움으로 부르려 했을 정도로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노선을 택했다. 한편으론 복싱 등의 서구 무술은 불한당들이 깡패 짓하면서 쓴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다.[47] 이런 와중에, 이소룡은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무술 체계를 제기하여 무술이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 그리고 그가 영화배우로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 크게 작용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그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간, 그렇고 그런 액션배우였다면, 그의 저서나 철학 등이 오늘날까지 이리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릴 수 있었을까?[48]

사실 이소룡은 전통적 무술이 난장판이 되기 쉬운 길거리 싸움에는 불리하다는 의견이었기에, 그런 혼잡한 상황에서도 쓰일 수 있는 무술 체계를 원했고, 그 결과가 절권도이다. 시각에 따라선 이소룡의 궁극적 목표는 자기가 최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무술이 전파되어,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깡패나 불한당이 그런 기술을 익힌다면 어쩌고? 응?!?

여하간 이렇게 이소룡이 영상매체에서 무술가를 Bad Ass한 히어로로 만들자, 《용쟁호투》 이후 무술 도장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는 등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절권도 철학은 이종 격투기의 철학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기에, UFC데이나 화이트등은 이소룡을 이종 격투기의 아버지라고 극찬하기까지 한다.[49]

즉, 자신이 최강이 되는 것보다 모두가 최강이 될 수 있는 길을 추구함으로써 불멸로 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3. 웨이트 트레이닝

이 사람이 후대에 끼친 영향들 중에 하나는, 무술에 현대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부감 없이 접목시켰다는 것.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근육이 있으면 몸이 둔해져서 싸움을 못한다는 개드립을 치는 무술가가 사방에 널려있는 판에[50][51], 1960년대에 당시 동양에서는 미지의 분야였던 웨이트 트레이닝을 무술 훈련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은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다. 그래서인지 이소룡의 몸은 아직까지도 남자들이 선망하는 멋진 몸의 좋은 예로 꼽힌다. 보디빌더들 중에서 이소룡의 몸을 보고 감명 받아 보디빌딩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52]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당시로서는 꽤나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 모양. 당시에는 단백질 가루나 비타민제 같은 게 거의 없어서, 일일이 여러 가지 재료를 먹어보면서 그 효과를 실험했다고 한다. 그의 중국인 친구들은, 그가 집에서 날 쇠고기와 계란 등을 갈아서 먹는 걸 보고 기겁했다고.(…) 과일이나 한의학에서 쓰는 약초 등을 섞기도 했다고 하는데, 린다 부인은 도저히 먹을 엄두가 안 나서 입에 대지도 못했다고 전해진다. 거기다가 근육을 빨리 회복시키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하는 방법도 썼다고 하는데, 이는 후에 북미에서 손상된 근육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으로 쓰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소룡 이전에도 비슷한 방법이 있었고, 이소룡 역시 의료계에서 논의되고 사용되던 방법 등을 보고, 이를 응용하여 자신의 몸에 실험해본 것이다. 이를 거꾸로 뒤집어서 주장하면 곤란하다. 여하간 자신의 육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시 보통 사람은 잘 안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시도해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꽤 겪었다고도 한다.

이소룡은 몸집을 불리기보단, 자신의 몸무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한도에서 근육의 강함을 키워 몸매를 가꾸는 방법을 연구했고, 자신이 스피드와 파워가 가장 밸런스가 잘 맞는 몸무게라고 생각한 61Kg의 몸무게를 항상 유지했고, 등근육이나 팔목 근육 등을 중점적으로 강화시켰다.

그렇지만 근육에 대한 그의 이론이나 주장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이소룡도 그걸 믿었다기 보다 실험으로 행한 경우가 많았고, 그 당시는 웨이트 트레이닝 이론들이 아직 체육생리학적으로 완전히 검증되기도 이전이었다. 그의 시도들 중에 의미 있었던 것도 있지만, 틀린 것과 터무니없는 것도 많다. 그리고 그건 당연하다. 그는 생물학자도 의학자도 아니었으니까. 너무 왜곡된 맹신으로 치달은 결과 '실전근육'이나 '압축근육' 같은 떡밥이 탄생했다. 골밀도, 근밀도 등이 개인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소룡은 보통 사람 몇 배나 되는 밀도의 압축근육을 가진 사람이라는 주장 자체가 의학적, 생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유사과학이다.[53]

현실은 이렇다. 이소룡 탄생 이전에도 보디빌더나 웨이트 트레이닝이 없던 것이 아니다.[54] 이소룡에게 웨이트 트레이닝의 의의는 그가 최초로 웨이트트레이닝을 도입했다거나 크게 발전시켰다는 게 아니라, 당시에 무술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이질적으로 보던 대중에게, 그 두 가지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조화가 가능하다는 신선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4. 죽음과 그에 얽힌 소문

제작 단계에 있던 《사망유희》를 끝내 완성 못하고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이 예상치 못한 죽음의 원인은 공식적으로는 복용 약품 부작용이지만, 부검의나 다른 전문가들에 의해 상당히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복상사라느니 마약중독사라느니 등등 각종 소문이 무지하게 많다. 심지어 중국 무술계 또는 삼합회에서 보낸 암살자(…)에 의해 살해되었다든가, 더러는 쌍절곤으로 연습을 하던 중 중요 부위(…)를 맞아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소룡 가문의 저주라는 판타지스러운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55] 이소룡의 친구였던 이준구는 누군가[56]가 그를 죽인 거라고 주장했고, 쇼 브라더스에 스카우트되었다가 나중에 골든하베스트로 이적한 정창화 감독은, 이소룡을 붙잡아 두기 위해 제작자 레이몬드 초우가 미인계와 마약까지 사용하다 부작용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57] 심지어는 여자와 검열삭제중 복상사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이소룡은 자신이 오래가지 않아 죽을 것을 예상했다는 주장도 많은데, 《용쟁호투》 출연 당시 악당 두목 한을 맡은 석견에게, "아저씨(석견은 이소룡 아버지와 친구였음), 아무래도 제가 아저씨보다 먼저 죽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58]. 그리고 죽기 몇 달 전에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었고, 아내에게는, 내가 죽으면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를 비롯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장례식에 틀어달라고 말했다. 실제로 장례식 때 그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울려 퍼졌다.

2006년부터 의학계에서는 '돌발성 간질로 인한 급사'(SUDEP)를 그의 사인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SUDEP는 그가 쓰러진 지 22년 뒤인 1995년 의학계에 처음 알려졌기 때문에 그의 사망 당시에는 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는 미스테리도 없고 환상도 없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 중에 '굿모닝'이라는 동작을 하다가 허리에 큰 부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오랜 기간 병상에 있게 되었다. 그가 병상에서 일어난 이후에도 만성적인 통증은 계속되었고, 이를 견디기 위해 진통제를 남용하다가 화를 입은 것. 상당히 신화적인 인물이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버려서 쓸모없는 음모론들이 양산되어 버렸다. 실제 WWE 프로레슬러들 중에도 진통제 남용으로 요절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워낙 프로레슬링이 험하고 시합이 많아서 자주 출전하다보니 여기저기 잔부상이 많아서, 진통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한때 WWE에서 마쵸맨과 숀마이클의 악역 여자 매니저로 유명했던 퀸 셰리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했었는데, 역시 진통제 남용으로 사망했다.

5. 그 외

본디 《사망유희》는 이소룡의 무술철학을 집결시킨 작품이 될 예정이었으나, 격투장면 정도[59]만 촬영한 상태에서 이소룡이 사망하는 바람에 반쯤 미완으로 제작되었다.

여기서 이소룡이 입는 노란 츄리닝은 이소룡의 캐릭터가 전통적인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캐릭터임을 강조하는 것이고[60], 쌍절곤과 봉을 가지고 싸우는 댄 이노산토는 고난에 대처하기 위한 유연함, 합기도의 지한재는 실수에서의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의 카림 압둘 자바는 무형의 강한 고난을 상징한다고 한다.

문제는 대역 배우[61]와 이소룡의 외모가 상당히 차이가 나서, 이를 처리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다소 괴작스러운 부분이 보인다는 것….

《사망유희》의 원래 배경은 한국 법주사 팔상전 5층탑이었으나, 이소룡 사후에는 홍콩의 유명 음식점인 남북루(Red Pepper Restaurant)가 되었다.

참고로 《사망유희》에서 실제 이소룡은 노란 츄리닝(혹은 바이커복)을 거의 입지 않았으며, 그의 사망 후에는 대역이 츄리닝을 입고 헬멧을 쓴 채 스턴트 연기를 했다. 그러니까 《사망유희》에서의 모습은 대역이 많다는 것. 때문에 잘 보면 대역의 얼굴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6. 주요 출연작

  • 그린호넷(The Green Hornet)》(1966) - TV 드라마로 명탐정 그린호넷의 조수이자 운전수인 가토[62] 역으로 출연. 당시 이소룡이 처음으로 맡은 큰 역할로 작중 내 비중도 높았으나[63] 대부분의 경우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녀야 했기에[64], 얼굴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을 꽤나 억울해 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린 호넷》이 유명한 작품으로 남은 것은 이소룡의 열연 덕분이나 다름없었다고 하고, 나중엔 "Kato's Revenge: featuring Green Hornet"이라는 색칠공부책이 나올 정도로[65] 주/조연 전도가 심했다. 극을 휘어잡는 이소룡의 카리스마는 이미 이때부터 끼가 있었던 것. 조연인데 너무 튄다고 발차기를 못하게 윗분들이 제제를 가했다고 한다. 이때 제작자가 이소룡을 하인 취급[66]해서 같이 있던 여배우가 괜찮냐고 묻자, "겨우 저 정도에 열 받으면 내가 Bruce Lee가 아니죠"라고 대답했다 카더라.

  • 당산대형(唐山大兄, The Big Boss)》(1971) - 이소룡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키는 것에 성공한 첫 번째 작품. 당시 홍콩에서 역대 흥행 1위이던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치며 400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67]

  • 정무문(精武門, Fist Of Fury)》(1972) - 여러 번 리메이크된 작품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쌍절곤이나 괴조음 등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500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였고, 경찰이 극장에 상영을 미뤄달라고 할 정도로 매진 사태가 이어졌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성룡은 자신이 이 영화에서 이소룡의 발차기를 맞고 집 밖으로 날아가는 일본인 무술가의 대역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대역이니까 당연히전혀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이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 맹룡과강(猛龍過江, The Way of the Dragon)》(1972) - 콜로세움에서 척 노리스와 1대1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게임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패러디되었다.

  • 용쟁호투(龍爭虎鬪, Enter The Dragon)》(1973) - 이소룡이라는 배우를 전 세계에 알린 작품으로 워너브라더스사에서 배급. 85만 달러라는 저렴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만 2,50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는 9,0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흥행기록을 수립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성룡엑스트라로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하며, 이소룡은 이 영화를 통해서 성룡을 발굴해냈다고도 전해진다.[68]싱하형이 탄생한 영화로도 나름 유명.

  • 사망유희(死亡遊戱, Game of Death)》(1973) - 무술고수들과 탑에서 벌이는 마지막 결전이 인상적인 작품. 사후에 땜빵으로 이소룡의 대역을 했던 사람은 당룡이다.

6.1. 이소룡의 패러디, 오마쥬 또는 영향을 받은 캐릭터


또한, 드래곤볼손오공마저도 이미지는 이소룡에서 빌려온 게 많다고 한다. 스탠 리는 무술을 쓰는 캐릭터는 다 이소룡의 영향을 받는다고 얘기하기까지 했다.

이소룡을 모르는 한국의 수많은 초딩들은 그의 사진을 보면 싱하횽인 줄 아는 애들이 상당수. 그저 지못미.

7. 트리비아

어느 기자가 최영의에게 '당신과 이소룡 중 누가 더 강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살기를 뿜으며, "지금 날 영화배우랑 비교하는 겁니까?"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77] 혹은 "이소룡은 체중을 더 불려야 한다"는 간단한 말로 대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진위여부는 불명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당연한 얘기로, 둘의 절정기 체중 차이가 30kg 이상이다. 절정기 이소룡은 체중이 70kg를 넘은 적이 없고, 대개 60kg대 초반대를 유지했으며[78], 절정기 최영의는 100kg 정도의 체중이었던 적도 있고, 80kg 아래로 체중이 떨어진 적이 없다. 복싱체급으로 따지면 최영의는 헤비급 이상, 이소룡은 평소체중으로는 라이트급 정도. 사실 이 정도로 체급에서 차이가 나면 "승패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위와 관련하여,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갓 오브 하이스쿨 190화에서 간접적으로 최영의와의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는데, 댓글들을 보면 이소룡이 국내 청소년들에게 어느 정도로 신격화 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79]

바스 루텐은 인터뷰에서, 이소룡이 UFC에 데뷔하면 처음에는 당연히 패배하겠지만, 시간을 주어 현대식 훈련을 한다면 경량급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얘기했다http://ruliweb.daum.net/mypi/mypi.htm?id=sayyes99&num=1817. 우선 《용쟁호투》에서 초반에 보여준 암바는 정확히는 암바가 아니었고, 압둘 자바에게 건 초크도 섬세하지 못했다. 영화니까 그렇지 상대가 그렇게 쉽게 탭하지 않을 테니 그런 부분을 보강하면 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

《용쟁호투》 촬영 때 웬 엑스트라가 와서 자기랑 싸우자고 시비를 걸었고, 이소룡은 귀찮아하면서 그러자고 했었다. 몇 분 후 이소룡은 영화촬영을 시작했고, 그 상대는 쓰러져있었다고 한다. 이때 부인인 린다와 친구인 밥 월의 증언이 엇갈리는데, 린다는 이소룡이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제압했다고 하고, 밥 월은 이소룡이 상대를 개 패듯이(…) 팼다고 한다. 참고로 《용쟁호투》 촬영 때 엑스트라들은 모두 진짜 길거리 깡패들을 불러온 것이었고, 이들은 이 격투 이후 모두 이소룡에게 존경을 표시하기도 했다 카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80]

앞서 나온 대로 《사망유희》는 이소룡이 촬영하다 중단되었기 때문에, 대역이나 뱅크필름을 이용하여 짜깁기처럼 만들어진 영화. 그 때문에 편집에 시간이 많이 걸려 짝퉁영화인 《신사망유희》가 오리지널보다 먼저 개봉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인터넷에 이소룡 어록이라 하여 이소룡이 한 말들이라고 여러 곳에 돌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나는 내가 1인자라고 하지 않지만, 2인자라고 인정하지도 않겠다였다. 이를 보면 다소 호전적인 성격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싸울 때는 적극적인 공격을 권장하는 동시에 평상시에는 성격을 다스려야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유명해지기 전 아역이나 단역으로 다수 출연하였다. 가장 유명한 역은 전술한 《그린호넷》의 가토 역. 주인공 그린호넷의 부하역인데 그린호넷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고.

간혹 그를 아메리칸 드림으로 엮는 경우가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씁쓸하게 포기하고 홍콩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미국으로 쫓겨나듯 후닥닥 가서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별별 일을 해가면서 살다가, 아내인 린다와 만나 결혼할 당시, 아내의 안경이 깨졌을 때도 고칠 돈조차 없어, 아내가 깨진 안경을 쓴 채로 지내야 했다. 참다못해 어느 정도 알던 사이인 재미교포 태권도 사범 이준구에게 부탁해 돈을 빌리기도 했다.[81]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아시아인의 이미지를 새롭게 세운다고 각오를 다졌다지만, 사실 조연 외 그 어느 배역도 어려웠다. 《그린 호넷》의 가토 역으로 이름을 좀 알렸지만, 그의 액션을 TV 화면으로 비추기에는 스스로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당시 몇몇 영화가 그가 주연으로 나올 예정으로 기획되었으나, 이런 동아시아 조그마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와 발차기나 하는 영화가 뭐가 성공한다고? 라면서, 할리우드 어디에서도 제작에 나서지 않아 결국 좌절되었는데, 그 가운데 《소리 없는 피리》 같은 몇몇 영화가 그의 팬[82]을 자처하던 배우 제임스 코번이 나서서 제작 단계에 이르기도 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데이빗 캐러딘 주연으로 유명한 TV시리즈 《쿵후》도 원래 이소룡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다가 할리우드에서 평생 허수아비 같은 조연에 매달리느니, 홍콩으로 가서 이름을 알리자는 지인들의 설득으로 홍콩으로 돌아가서 비로소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것[83]이기에, 할리우드와 미국에서 당당하게 크게 이름을 알렸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할리우드의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왔을지도 모르지만.[《용쟁호투》는 85만 달러라는 제작비만 봐도, 저예산 영화로서 결코 제작사가 야심차게 투자한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예상을 아득히 초월해버리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므로, 영화사는 거의 틀림없이 후속편을 제작했을지도 모른다.]

과거 이소룡이 악역으로 등장한 영화[84]인 《말로우(Marlowe)》(1969)가 있는데, 이 영화 내에서의 배역과 최후가 흑역사 수준이다. 비열한 악당인 이소룡이 주인공을 상대로 깽판 치다가 결국 주인공의 꾐에 빠져 죽는다는 내용인데…

안습한 최후를 맞이하기 전 깽판 치는 장면에서, 영화감독은 이소룡의 재량에 맡겨 적당히 깽판을 부려달라고 주문했고, 이소룡은 방 안에 있는 기물들을 온갖 몸놀림으로 박살내며, 놀라울 정도로 그 역할을 수행해냈다. 이때 감독, 촬영스탭, 배우들 등등 모두는 '음…' 하는 심정으로 쳐다보다가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아스트랄하게 과격하게 때려 부수는 모습에 컬쳐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Enter the office

영화상에서 척 노리스를 이긴 유일한 남자다.하지만 이 싸움의 후유증으로 얼마 안 가 죽고 만다. 덕분에 인터넷상에선 누가 더 강한가 도토리 키재기 키배도 활발하다. 실제의 둘은 친한 친구사이였다. 원래 무술시범을 하러 다니던 척 노리스를 발견한 게 이소룡이라고 하는데, 척 노리스의 몸놀림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한 이소룡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간청했고, 이게 척 노리스가 영화배우가 된 계기이다.

명언으로는 "당신이 그 어떤 삶을 산다고 해도 당신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결코 인생의 그 어떤 달콤함도 맛보지 못할 것이다.""나는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것이고 멈추지 않을 것이며 전진할 것이다. 비록 내가 품은 모든 야망을 이루지 못한 채 언젠가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모든 성의와 능력을 다 바쳐 내가 원하는 것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등이 있다.

그의 생애를 다룬 《드래곤: 브루스 리 스토리》도 있는데 저주설을 중심 스토리에 집어넣었다. 2010년에 또 이소룡의 삶을 다룬 영화가 나왔는데, 《드래곤》의 경우는 볼만한 영화였다는 평이 있었지만, 이번 작은 좀 별로라는 듯. 2011년엔 그의 일대기를 드라마화한 《이소룡의 전설》이라는 TV 시리즈도 나왔다. 《소림축구》의 골키퍼 진국곤이 이소룡 역할을 맡았다. [85]

이소룡의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인 소기린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린장》을 찍던 도중에, 이소룡이 가서 무술 연기를 도운 적 있는데, 멋대로 감독이 그 장면을 촬영하여 영화에 삽입한 적이 있다. 당연히 이소룡은 물론이요, 소기린도 분노했다.(이소룡 주연인양 영화를 홍보했으니) 결국 소송을 제기하여 개봉판에선 삭제했으나, 이소룡이 죽으면서 그가 조금이라도 나온 영화들이 희귀성을 인정받으며, 이 영화의 그 잘린 장면도 빛을 봤다고. 이런 식으로 필름에 이소룡의 얼굴만 찍혀 있으면 마구잡이로 여기 저기 영화에 무단 삽입하는 일이 홍콩에선 자주 있었다.


니 스타일스 주연으로 그를 패러디한 포르노(…)가 2011년에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취소된 듯하다. 북미에서 동양인 남성의 위치가 좋지 못하다 보니, 이 뉴스는 미묘한 반응을 얻었다. 좋게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배우인 케니 스타일스가 영국 출신이라 북미에서의 인종간의 알력에 대해 민감하지 못하다보니,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성룡은 이소룡이 발굴한 배우이다. 상술(上述)했듯이, 《정무문》 마지막 장면에서 스즈키 관장이 이소룡의 발차기에 얻어맞고 날아가는 장면의 대역을 맡은 사람이 바로 성룡이었다. 《용쟁호투》에서는 한의 경비원 중 한 명으로 나왔다. 성룡은 맨 마지막으로 이소룡에게 공격을 당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촬영 전에 맞춘 합이 어긋나, 실제로 이소룡이 성룡을 호되게 때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이소룡은 성룡에게 굉장히 미안해하며, 《용쟁호투》를 촬영하는 틈틈이 성룡을 여기저기에 출연시켜줬다. 그리고 이소룡은 성룡에게 《용쟁호투》 후속작에서는 자신과 공동 주연을 시켜주겠다고까지 약속했다고 하나, 《용쟁호투》를 촬영하면서 이소룡이 사망하는 바람에 이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성룡의 무술솜씨를 눈여겨보았던 라유 감독이 《 정무문》에 그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등 제 2의 이소룡으로 키우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하지만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고, 결국 대성공을 거둔 《취권》 이후로 이소룡과는 다른 길을 갔지만, 성룡은 이소룡의 공백을 너끈히 메울 정도로 대성공했다.


킬빌》을 "백인들에 대한 이소룡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우선 주인공인 우마 서먼이 입은 이소룡 복장은, 생전에 이소룡 본인이 원해서 입은 것인데 비해, 1부에서 나온 적들의 의상은 이소룡이 백인의 부하인 케이토(Kato, 카토오, 가토) 역을 맡았을 때의 복장이며, 최종보스인 빌은 이소룡이 주연으로 나오려던 자리를 빼앗은 셈이 된 데이빗 캐러딘이다. 결국 킬 빌에서 이소룡의 복장을 입고 그의 철학을 이은 키도가, 백인들이 이소룡에게 뒤집어씌운 이미지(케이토)와 이소룡의 자리를 빼앗아 간 백인(빌)을 죽이는 셈이니, 졸지에 타란티노가 이소룡의 복수를 대신 해준 셈이 되었다는 것.(…) 197~80년대 홍콩 시네마키드였던 타란티노의 매니아 기질이 발휘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이 중국, 미국 측 양쪽에서 인종차별을 당해서인지, 인종에 대해선 따지지 않고 사귀었다고 한다. 우선 독일계 쿼터라 영춘권을 배울 때 불이익을 당했고, 미국에선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드라마/영화계에서 차별을 당했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인종차별에 대해선 상당히 민감했고, 덕분에 비중국인에게 무술을 가르치지 말라는 중국 무술계와 갈등이 있었다. 물론 결과는 위에 서술한 대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무술 영화 각본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설마 《북두의 권》은 아니겠지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하나 나올 예정이라고.

EA의 PS4용 타이틀 UFC 2014에서 이소룡이 등장한다. 그것도 DLC가 아닌 ULC로. 언락 조건은 예판 특전으로 언락하거나 커리어모드(난이도 프로 이상)을 클리어 하면 추가 된다. 사용 가능한 체급은 플라이급, 밴텀급, 페더급, 라이트급. 다만 그의 능력치가 실제 능력보다는 그의 이름값에 맞춰서 측정돼서 논란이 있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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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철학과는 부전공이고 전공은 연극학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 [2] 현재 미국에 있으며, 딸 하나를 낳았다. 설령 그녀가 죽어도 이소룡의 모친인 하애유가 이소룡 말고도 몇 명을 더 낳았고, 이소룡 계열 가족들의 나머지 구성원들은 모두 잘 살고 있으니 직계 자손만 끊어질 뿐, 이소룡과 관련된 핏줄이 끊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 [3] 싱하형은 이소룡의 사진을 짤방으로 쓴 네티즌이다.
  • [4] 이 때문에 영춘권을 배울 때 선배나 스승들이 한동안 못 배우게 했다고 하기도 한다.
  • [5] 나머지 세 곳은 나문금(羅文錦), 고가녕(高可寧), 이희신(利希慎) or 부노용(傅老榕). 이중 하동가족이 제일 세가 크다. 여기서 하동가족은 하계동(何啟東)이라 불리기도 한다.
  • [6] 원래 남권 유파들은 각별하게 지내는 것이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풍속이었고, 이런 분위기에서 영춘권과 가까웠던 채리불권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실제로 이소룡의 하단 공격기술들은 영춘권이 아니라 채리불권의 초식에 가깝다고 한다.
  • [7] 근시라서 접근전에 유용한 무술을 찾다보니 영춘권을 택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 [8] 다만, 20대 초반 진번쿵푸의 주요한 골격은 영춘권을 기반으로 채리불권, 홍가권 등등의 남권에 기반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의 다양한 무술에 비해 건설적인 변화와 발전이 부족했던 중국의 남파권법을 크게 개신(改新)한 인물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어 기존의 무술철학을 없애버리고 절권도를 만들 때는, 기존에 존재하던 펜싱+복싱조합의 뼈대를 기준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 [9] 이소룡의 어머니는 이소룡의 아버지 이해천의 본처가 아닌, 첩 같은 것이었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 이소룡에게는 형제들이 있는데, 그의 형제들의 외모는 이소룡과 완전히 딴판이라고 한다. 이는 어머니가 달라서였다고 하면 쉽게 설명이 된다. 그가 불량아가 된 것엔 이런 이유도 작용한 건 아닐까? 그리고 미국으로 보낸 것도, 미국은 속지주의(屬地主義)를 택하고 있었기에, 미국에서 태어난 이소룡은 미국 시민권이 있었던 점도 작용했다는 것.
  • [10] 철학과 학력은 논란이 있는 부분으로, 실제로는 연극학을 전공했다고도 한다.
  • [11] 기사가 기타를 잘 연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 [12] 미야모토 무사시와 최영의도 유사한 이야기를 했다. 다만 그 두 사람은 이소룡처럼 인기 영화배우가 아니었기에 널리 퍼지지 않은 거지.
  • [13] 동양철학에서는 널리 알려진 '상선약수(上善若水)'는 그렇게 이소룡의 입을 통해 서구에 전파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소룡이 영화배우로 인지도가 높았던 덕에, 그의 말을 통해 북미(北美)의 일반대중들에게 전파되었다는 게 맞다. 학자들이나 전문가, 명상 수련자 등에게는 이전부터 도가사상 등이 꽤 알려져 있었다.
  • [14] 실제로 이소룡 대련 영상이나 영화를 보면, 상대의 공격을 물처럼 자연스레 받아넘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할 것. 대련이나 영화가 아닌, 실제 실력 있는 무술가들과의 시합 등에서 이소룡이 그런 것을 실제로 증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15] History Special: How Bruce Lee changed the World
  • [16] 한 손가락이라고 이전엔 써져 있었는데, 당시 롱비치 무술대회 등에서의 시범영상 등을 보면 두 손가락으로 하고 있다. 다만 개인수련 등에서 두 팔로 할 경우는 한손가락만으로 하기도 했다. 참고로 극진 가라데 등의 실력자들 중에서는 헤비급 체중인데도, 한손가락만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첨가한다.
  • [17] 사실 전문적인 운동선수 같은 경우는 그 자체로 신체를 심하게 혹사하거나, 시합에 필요한 특정부위만 발달하는 경우가 많아서, 특정부위를 제외하고는, 선입관과 달리 군의 신체검사를 통과 못할 정도로 여기저기 안 좋은 경우가 많다. 군대에서 원하는 것은 강함이 아니라 표준적인 건강함이다. 그래서 프로야구선수가 시합에선 펄펄 날아다니면서, 징병검사에서는 면제판정을 받는다는 것도, 대중들의 상식과는 달리, 경험 많은 전문의들의 시각에서는 흔한 일이 되는 것이다.
  • [18] 이때 상대는 겁을 먹은 상태라 소극적으로 싸웠다고 전해진다.
  • [19] 과도한 중량으로 척추기립근 운동을 하다가 척추기립근에 심각한 손상이 왔다고 한다. 이때 엄청난 고통을 겪고 난 후, 주위에 그 운동의 위험성을 열성으로 전파했다고.(…) 그 운동은 굿모닝 리프트라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는데,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정말 자칫하다가는 허리가 뽀각날 수 있을 위험성이 데드리프트보다 높은 운동이니 함부로 하지 말자.
  • [20] 착각 말자. 이런 게 그 이전 영화들에는 없었던 게 결코 아니다. 주인공이 적을 상대로 검을 휘두른 뒤, 멋진 자세를 잡고 가만히 있다가, 검을 검집에 탁 넣고 나면, 그때서야 악당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다든지 하며 소위 후까시를 넣는 연출은, 1960년대의 무협영화 등에서도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다만 이소룡이 한 것은, 바로 그 이소룡이 했고, 그것이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일 뿐이다.
  • [21] 와다아~ 라든지 아뵤오우오우오우~~, 일본에서는 아쵸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싸움닭이 우는 소리 같다고도 하는 사람들도 있다.
  • [22] 싱하형 짤방으로 유명하다. 이소룡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을 표현하기 위해 연기했다고 한다. 드라마 쿵후의 시대배경을 서부시대로 설정한 것도, 상대적으로 법이 느슨해서 살인을 한 캐릭터가 쉽게 잡히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이라고….
  • [23]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의 인지체계의 초입만 봐도 간단명료해진다. 사람은 무슨 행동, 무슨 말을 하느냐보다, 누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되니까. 간단히 말해서,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머리를 깎는 모습을, 일반인이 그걸 흉내 내어 촬영해 유튜브 등에 올렸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보자.옹박》으로 유명해진 니 쟈의 시연을 보고, 그가 무지무지하게 강한 무에타이 선수라거나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그 시연을 이소룡이 아닌 토니 자가 했기 때문은 아닐까?
  • [24] 투로(鬪路)가 아니다. 여러 기술들을 호흡과 힘의 흐름 등을 고려해 한 벌(套: 투)로 짜 맞추어, 길(路: 로)을 걷듯 반복 수련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라 하여, 투로(套路)라 한다.
  • [25] 이소룡 이전의 영화들을 보고 《당산대형》을 보면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지만, 이는 고전무협영화나 무술영화들이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한 경우가 많았기에, 소설의 재현을 위해 여러 특수효과를 사용하며,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그렇기도 하다.
  • [26] History Special: How Bruce Lee Changed the World
  • [27] 이소룡의 영화와 동시대에 나온 영화계의 끝판왕 《대부만 해도 《대부1》에서 소니(산티노 꼴레오레)가 매제를 폭행할 때의 합을 보면, 영화의 명성에 비교하면 상당히 엉성하다. 이 영화의 유일한 옥의 티라고밖에 볼 수 없는 부분. 이 정도로 서구영화에서는 맨손격투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던 게 현실이었다.
  • [28] 이소룡을 영입한 골든 하베스트사의 영세함이 또 다른 이유였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에는 쇼 브라더스가 주축이 된, 무협소설이 원작이거나 무협소설작가가 각본을 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시대극이 인기였다. (쇼 브라더스사는 자체 스튜디오와 대형 세트장이 있었다) 그러나 의상, 분장, 배경세트, 말, 마차, 무기 등의 조달은 신생 영화사였던 골든 하베스트로서는 절대로 무리였다. 그러니 돈이 훨씬 덜 드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맨손 격투물을 택한 건 어찌 보면 어쩔 수 없었던 것. 《당산대형》도 극의 배경에 맞춰 태국에 가서 찍었다기 보다는, 제작비와 인건비 등이 저렴했기에 태국에서 촬영했다는 게 더 맞는 말에 가깝다. 이소룡을 보지 말고, 《당산대형》의 분위기와 배경에 주목해서 보면, 어떻게든 돈을 적게 들이려고 한 티가 난다. 하지만 그게 대박이 났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이득은 더 크게 냈으니.
  • [29]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선 "사람들이 암바가 뭔지도 몰랐을 때 이미 이소룡은 암바를 쓰고 있었다"라고 언급. 다만 절대 오해는 금물. 사실 암바라는 것은 이전부터 존재했지만(예: 유도의 십자굳히기), 무술에 대해서 모르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암바라는 기술을 처음 본 건, 이소룡이 영화에서 쓰는 걸 본 것이었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전 영화들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기술을 아주 안 쓴 건 아니다. 금나술(擒拿術)이라는 명목 하에, 관절을 꺾어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거나 무기를 빼앗는 장면 등은 고전영화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온다. 다만 조르고 꺾고 하는 것보다는, 호쾌하게 때리고 차고 칼로 베는 게 관객들 보기에 더 시원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소룡은 유명세와 인기가 있으니, 《정무문》에서부터는 어느 정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유 감독과 결별한 후, 골든 하베스트와 공동으로 하긴 했지만, 자신이 세운 영화사인 콩코드 프로덕션(Concord Productions, Inc.)에서 만든 《맹룡과강》부터는 감독이 자신이었으니, 아예 자기 맘대로 연출할 수 있었다. 또 이소룡은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아주 그럴 듯하게 연출하기도 했고, 또 이소룡이 해서 유명해진 거라는 게 보다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 [30] 《정무문》의 서양인 배우는 시사회에서 반응이 좋자 이소룡과 손을 맞잡고 기뻐했다고 하며, 《맹룡과강》의 척 노리스도 이소룡과 친구, 《용쟁호투》의 오하라 역인 밥 월도 이소룡의 친구였으며, 카림 압둘 자바는 《사망유희》 때 이소룡의 부탁 때문에 시즌 도중에 시간을 내서 몰래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다. 자바가 이소룡 집에 놀러 온 것을 기회로 영화를 찍었다는 것. 그리고 이는 흥행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청나라 말기 구미(歐美)인들의 열병기에 무너졌었던 중국인들의 자존심과 중화사상을 고려하면, 백인들이 중국인 주인공에게 무술로 박살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는 역도산이 전후(戰後) 일본에서 백인 레슬러들을 박살냄으로써 일본인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낸 것과도 통한다 할 것이다.
  • [31] 물론 그전에도 메인 스트림에서 비백인 남성 영화스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3년에 흑인으로서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시드니 포이티어나, 인기를 끌던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아버진 흑인, 어머니는 중남미계)가 있었다. 또한 아랍인(이집트)으로서 1965년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오마 샤리프, 히스패닉계로 1952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퀸 등은 당시에도 대스타였고, 백인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었다.
  • [32] 반론이나 이견(異見)도 많다. 이소룡이 서구, 특히 북미(北美)에서 비교적 잘 먹힌 것은, 백인의 피가 섞인 덕을 봤다는 것이다. 부정하기 힘든 것이, 이소룡의 외모는 혼혈인 탓인지, 전형적인 동북아시아인, 즉 북미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얼굴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디즈니의 《뮬란》의 여주인공, 《미녀 삼총사》, 《킬 빌》의 루시 리우(Lucy Alexis Liu)가 북미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얼굴이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지금도 북미(北美)에서의 인종차별과 편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데, 1960~70년대는 어땠겠는가? 하긴 북미 지역에서는 아시아계 혼혈을 아시아인이나 다름없이 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 [33] 상어가 나오던 호러영화 딥 블루 씨에서 바로 흑인 주방장으로 나오던 배우이다. 그 밖에 할로윈 7편인 H20에서도 흑인 수위로 나와 살아남는다.
  • [34] 생존 경쟁 등에서 낙오한 자, 패배한 자, 싸움에 진 개 등으로 보면 되는데, 굳이 비유를 들자면 런닝맨이광수 씨가 그나마 비슷하달까?
  • [35] 다른 홍콩 무술 영화도 수입 제목에 드래곤이 많이 쓰인다.
  • [36] 영어 제목은 《The Way of the Dragon》
  • [37] 일본에서는 이소룡이 죽은 뒤에 모든 작품이 개봉되었다.
  • [38] 시연만으로 따지자면 이소룡보다 더 멋있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꽤 나온다.빠들의 눈에는 전부 다 이소룡보다 못하게 보인다는 게 함정
  • [39] 60년대 당시 헤비급 챔피언은 무하마드 알리였다.
  • [40] 일례로 마에다 미츠요
  • [41] 반론도 있다. 이소룡이 그 모든 토대를 만든 건 아니지만, 이소룡의 덕분에 일반인들이 그런 격투기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었으므로 그 공이 크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K-1이나 프라이드, UFC 등이 방송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고 비교적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후반이다. 근데 이소룡이 죽은 것은 1973년이다. 20년이나 지난 후에, 그의 업적이 꽃을 피웠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억지로 보인다. 20년 이상 그의 영화나 작업 등이 계속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쳐왔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역시 심한 무리수다. 그리고 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현대 이종격투기와 비슷한 경기나 대회 등은 이소룡 이전에도 세계 곳곳에 있었다.
  • [42] 주의하자. 다른 무술 철학가들은 없었고, 있었다 해도 이소룡보다 수준미달이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다른 이들도 있었지만, 이소룡은 베스트셀러였고, 다른 이들은 망했어요 수준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훌륭한 작품이 다 흥행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졸작이라고 다 흥행실패하는 것은 아님을 생각해보자.
  • [43] 냉정하게 따지면, 자신을 배우로서 써달라고 홍보하는 목적이 그 안에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스스로도 말하길, 미국에 있을 때는, 연줄을 만들고 여러 곳에서 무술실력을 내세워 자신을 홍보하며, 할리우드 영화, TV 등에 출연하려고 여러 가지로 애썼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 [44] 강함에 대한 근거가 하나도 없다는 게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 [45] 반론도 있다. 이소룡이 실전에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고 누차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그 무술을 익혀 강해지느냐 아니냐를 따져야지, 철학적 깊이를 따진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술이건 다른 운동종목이건, 그런 걸 수련하고 연습하는 데 있어서, 중심철학이 없으면 결코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많은 숙련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생각을 하며 하는 축구와, 그냥 무조건 열심히 뛰고 차는 축구를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 통할 듯.
  • [46] 실제 이소룡은 비(非)중국인에게 무술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중국 무술가들에게 도전받았다고 한다.
  • [47] 사실 30대 넘어서 그가 가장 중요시 생각하던 무술은 공교롭게도 복싱이었다.
  • [48] 그의 철학과 그의 윤리성을 동일시하지는 말자. 그의 철학은 무술과 자기단련 등에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그의 생존 당시, 린다 부인은 유명해진 이소룡의 여성행각을 단속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 지쳐서, '결코 다른 여자들을 (우리) 집 안에는 데려오지 않는다'는 약속을 이소룡에게 받아내는 것을 끝으로, 그의 여자문제에 대해서는 포기해버렸다고 술회했었던 적이 있다. 거참, 부인이 성인군자일세그려. 그리고 이소룡이 죽은 곳도, 자신의 집이 아닌, 정패(丁珮 Betty Ting Pei)라는 여배우의 집 침대 위였다고 알려져 있다. 역시 영웅호색인가?
  • [49]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다큐방송에서 홍보 등을 노려, 그런 맥락으로 하던 말일 가능성이 크다. 데이나 화이트는 UFC 자체를 이종 격투기와는 다른 종합격투기로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니깐.
  • [50] 근육이 많으면 많을수록 몸은 둔해지기는커녕 더 빨라진다. 애초에 인체의 속도라는 개념 자체가 '근력으로 몸을 움직이는 속도'이다. 물론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등 뒤의 검집에서 칼도 못 뽑을 정도로 근육이 많으면 약간 곤란하겠지만, 그런 경우에서조차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약간의 유연성 희생이지 속도가 아니다. 실제 《코만도》 영화를 찍을 때, 겉보기와 달리 매우 빠른 아놀드의 움직임을 보고 스탭들이 다들 놀랐다 한다. 그리고 무술가라고 하기에는, 근육은커녕 지방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았는데도(근육이 많아야 지방 무게까지 지탱하며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유연하고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준, '(하늘을)나는 돈까스'의 원조 홍금보나,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만 같은 보디빌더형 근육을 보여줘 '중국의 헤라클레스'라는 영화 제목 겸 별명까지 얻은 볼로 영(양사)같은 무술가들이 그걸 증명해준다.
  • [51] 하지만 근육이 많을수록 빨라진다면 UFC헤비급이 가장 빠르고 플라이급이 가장 느리다는 말이 된다.(…) 완전 힘도 없을 정도로 비리비리한 몸보다는 적당한 근육을 붙여주는 게 속도가 빨라지지만, 그게 어느 한도를 넘어가버리면, 상대적으로 느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격투가가 윗체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증량(增量)을 할 때, 속도 손실을 최소화하고 증량하면 성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격투가들이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와 기술에 적합하게 근육이 짜여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증량한다면 아무래도 속도 손실이 좀 있게 될 것은 당연할지도. 물론 위력은 증가하게 된다. 근육이 있으면 몸이 둔해진다는 말은 아무래도 격투가들이 증량하면 속도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한 보디빌더처럼 둔할 정도인 근육덩어리들을 보고 나온 얘기인 듯한데, 이건 어디까지나 이미 적당한 근육이 있는 파이터들의 예니까 그런 것이지, 비실한 일반인 입장에선 적당하고 탄탄한 근육을 갖게 되면 속도가 증가하게 된다.
  • [52] 하지만 인터넷상의 널리 퍼진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 [53] 동일한 크기의 근육에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을까? 문제 자체는 고찰 가치가 있다. 역도 경기에서는 두 선수가 같은 무게를 들어 올리면, 체중이 단 1kg이라도 가벼운 사람에게 메달이 돌아간다. 체중은 격투기에서도 민감한 문제이다. 권투는 플라이급(48kg이상~51kg미만)이면 플라이급끼리만 경기를 하지, 51kg만 넘어도 밴텀급이 되어 플라이급과는 경기를 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체중 2~3kg차이가 이렇게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런데 이소룡과 관련해서 압축근육이라는 말이 나오면, 위와 같은 의문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이소룡 광신도들의 작품이라는 게 맞다. 이소룡의 근육은 압축근육이기 때문에, 60kg의 체구로도 100kg가 넘는 효도르 같은 격투가를 이길 수 있다는 그들의 믿음을 정당화하려고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게 정확하다.
  • [54] 당장 현대 보디빌딩만 해도 19세기부터 역사가 시작됐다.
  • [55] 아들인 이국호, 즉 영어명으로 브랜든 리가 영화 《크로우》 촬영 중 총기 오발 사고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을 계기로, 게다가 영화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의 캐릭터가 사경을 헤맨 것과 같은 방식으로 죽어버린 탓인지, 저주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 [56] 예를 들어 그의 출연으로 인기가 떨어진 홍콩배우가 독살했다든지, 경쟁 영화사가 죽였다든지 등의 주장이다. 다만 이준구 선생은 암살의 주체를 누군가로 딱 집어서 지칭한 적은 없다고 한다.
  • [57] 아시아인이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성공하는 걸 용납할 수 없는 할리우드 백인우월자가 죽였다는 주장도 있다. 비슷한 맥락의 얘기는 《고르고13》에서도 나온다.
  • [58] 사실은 아내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 [59] 원래는 탑에서 카림 압둘 자바를 쓰러뜨리고, 뒤에 무술 대회가 나오는 시나리오였다고도 한다.
  • [60] 그 외에 이소룡의 움직임을 캐치하기 쉽기 위해 튀는 색인 노란색을 썼다고 한다. 그의 움직임을 찍은 영상들을 보면 재생 속도를 줄여도 캐치하기가 힘들다. 다만 오해는 말자. 당시 촬영기자재 등의 한계나 움직이는 물체 등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의 기술 등의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 실제 이소룡과 비슷한 시기에 촬영된 다른 무술가들의 시범이나, 공식 시합 등을 보면, 이소룡보다 더 빨라 보이는 영상들도 적지 않다. 네이버에서 이소룡 속도 무예동 등으로 검색해보자. 꽤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한 듯한 상당히 과학적인분석 자료를 볼 수 있다. 이소룡을 추앙하는 사람이라면실망이 클 수도 있으므로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일 듯.
  • [61] 당시 고(故) 김태정과 원표 등의 배우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 [62] 가토, 가토오, 카토오, 賀東? 加藤? 등이 맞는 말이지만, 북미(北美) 지역이다 보니, 극 속에서는 알파벳 표기인 Kato를 그들 방식으로 케이토라고 읽어서 다들 케이토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오만한, 혹은 자신감 충만한 미국중심주의??
  • [63] 《그린호넷》이 당시 방영하던 《배트맨》의 안티테제(anti-thesis: 정반대, 반(反))적인 면이 있어, 사실상 짐 덩어리였던 로빈에 대비돼서 싸움도 잘하고 유능한 인물이 되었다.
  • [64] 가끔 가면이 없던 때도 있었다.
  • [65] 주연인 그린 호넷이 겨우 featuring밖에 안 되었다는 걸 보자.
  • [66] 다른 여배우를 차로 태워오라고 명령했다. 같이 있던 여배우는 황당해서 이 사람은 배우라고 하자, 그 제작자는 "그게 뭐 어쨌다고?"하는 식으로 씹고 갔다고.
  • [67] 이소룡 작품치고 상당히 잔인한 묘사가 많고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코믹스런 장면도 있을 정도로 이소룡의 작품들 중엔 희귀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데, 그의 최초 주연작이었기에, 그의 영향력이 클 수가 없었다. 감독은 무술영화를 많이 감독한 유명 감독, 라유(羅維)였는데, 그는 이후 촬영 도중 경마중계를 듣는 등 태업으로도 유명해졌다.
  • [68] 반론이 있다. 성룡을 주연으로 발굴해낸 건 《당산대형》, 《정무문》을 감독했던 라유 감독이라는 것이다. 이소룡 사후(死後) 그의 후계자를 찾아내려고 했던 라유 감독은, 《소림문(少林門: Hand of Death)》(1975)에서 무술지도를 하기도 했고 실력이 인상적이었던 성룡(당시의 예명은 진원룡(陳元龍))을 그의 아내가 추천하자, 바로 그를 불러 이소룡의 뒤를 잇는 용으로 성공하라며 성룡이란 예명까지 지어주고는, 그를 주연으로 하여 《신(新)정무문》을 만드는 등 성룡을 키우려고 이소룡 흉내를 내게 하거나 진지한 연기를 시켜서 이후의 영화들도 줄줄이 실패하긴 했지만무척 애를 썼다. 그러므로 이소룡이 한 건 성룡이 영화계로 뛰어드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고, 이소룡이 그랬던 것처럼, 성룡도 다른 영화사로 가긴 하지만 성룡을 본격적으로 키운 건 라유 감독이며, 성공시킨 건 성룡을 라유에게서 빌려와 《사형조수(蛇形刁手)》, 《취권》을 제작하여 대박을 낸 오사원 감독일 것이다. 이 와중에 성룡을 놓고 흑사회까지 얽힌 다툼이 벌어지고, (단순히 성룡을 데리고 라유 감독이 외국으로 달아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성룡납치사건이라 불렸던 사건까지 일어난다. 이때 끼어들어 다툼을 중재해서 성룡이 골든 하베스트에 자리 잡게 해준 것이 외팔이 검객으로 유명했던 천황거성(天皇巨星) 왕우(王羽)이다. 그리고 이후 《사제출마》의 기록적인 대성공으로 시작하여, 성룡이 세계적인 대스타가 되게 후원한 건 골든 하베스트의 추문회 사장이라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할 듯하다.
  • [69] 용의 권 리 신 스킨 한정
  • [70] 파이팅 스타일은 절권도에 이소룡 특유의 기합을 내지르며 싸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이소룡의 원인치 펀치(촌경)와 똑같은 자세의 펀치를 날린 것.
  • [71] 파일럿인 히비키 카미시로가 절권도 실력자란 설정 때문인지 기술 연출에 이소룡의 오마쥬가 많이 들어가 있는 편. 특히 제니온 가이의 최종기술인 니벨룽 어나일레이션은 대놓고 이소룡의 오마쥬다.
  • [72] 본편에선 잘 드러나지 않고, DLC에서 이소룡의 오마쥬임이 많이 부각되는 편.
  • [73] 이소룡과 실베스타 스탤론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
  • [74] 특이하게도 영화배우로서의 이소룡을 모티브로 삼았다.
  • [75] 초반~중반까지 영삼의 누나 윤영의 선물로 이소룡의 노란색 쫄쫄이를 항상 입고 다녔다. 나중에는 본인이 질려서 버리지만.
  • [76]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실베스터 스탤론(헤어스타일, 벌크업 된 근육질 몸매) + 이소룡(특유의 기합소리와 괴성)이라고 한다. 켄시로는 작중에서 쌍절곤을 쓰기도 한다.
  • [77] 최영의가 이소룡과의 비교를 불쾌해 했다는 것은 국내 출간된 가라데 교범에 있는 이야기다.
  • [78] 처음 보디빌딩을 시작했을 땐 72kg정도였었다고 한다.
  • [79] 현실을 알자. 금방 와 닿을 규모로 현실적인 비유를 해보면, 새로 태권도 도장을 연 헤비급(84kg 초과) 국가대표 출신의 관장에게, 기존에 있던 동네 태권도장의 에이스로 추앙받던 웰터급(61~65kg: 중학생 선수 기준)의 중학생 부원이 도전하는 거와 비슷하다.
  • [80] 반론도 있다. 단역배우가 주연배우에게 싸움을 건다? 그로 인해 촬영이 멈추기라도 하면, 하루에 깨지는 돈이 얼마인 줄 아느냐? 저런 상황을 주변에서 놔둘 리가 없으므로 비현실적이라는 것. 영화판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수긍하는 반론이긴 하다. 목격자라고 전해지는 사람들의 얘기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이런 얘기가 카더라에 불과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이겠지만, 《용쟁호투》 엑스트라들이 주변에서 모은 길거리 깡패나 양아치들이었다는 얘기는 당시에는 나오지 않았던, 즉 저런 반론에 대항하기 위해 뒤늦게 나온 얘기라는 것이 반론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 반론에도 적지 않은 근거가 있는데, 홍콩영화에 일가견이 있고 눈썰미 좋은 사람은 《용쟁호투》 곳곳에서 단역으로 나온 원표(元彪), 화성(火星: 성룡의 스턴트 팀, 성가반의 일원이기도 하다. 《용쟁호투》에서는 야간경비 실책으로 볼로(양사 분)에게 처형당한다), 임정영, 종발(鍾發: 역시 볼로에게 안겨서(?) 처형당하는 역할), 원화 등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고, 샅샅이 뒤져보면 더 나온다. 물론 반론 측에서도 반대근거를 완전히 댈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는 카더라 류의 얘기가 겪어야만 하는 숙명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원래 주장의 입증책임은 주장한 쪽이 지는 것이기에, 주장한 측이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이상, 반론자 측이 일부 반대근거라도 대면 그건 반론 성공이다.
  • [81] 이준구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밥을 얻어먹으러 자주 찾아왔다고….
  • [82] 이소룡이 줄기찬 자기홍보 등을 통해 제자 비슷하게 끌어들인 사람에 가깝다는 말도 있다. 이소룡은 실제로 배우로서의 자기홍보에 무척이나 열심이었다. 《롱 스트릿(Long Street)》 등에서 그와 함께 출연한 적도 있다.
  • [83] 당시 홍콩 최대의 영화사인 쇼 브라더스(Shaw Brothers: 소씨제편창 邵氏製片廠)로 가서 면접을 보았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웬 바짝 마른 건달 비슷한 놈이 (미국물 먹었답시고) 예의도 안 차리고 건들거리면서 들어와서는, 자기를 주연으로 해서 영화 찍으라고 해대니, 사장이 불쾌해 하면서 화를 내며 내쫓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소룡을 잡은 게 쇼 브라더스에서 독립해 나와 가화오락유한공사(嘉禾娛樂有限公司)를 세운 추문회(鄒文懷)였다. 누군지 모르겠다 해도, 골든 하베스트(Golden Harvest)사의 사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아~!’할 것이다. 이후 쇼 브라더스는 성룡에게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성룡을 붙잡아 적극 후원한 것도 추문회였다. 쇼 브라더스는 두 마리 용을 다 놓치고, 추문회는 두 마리 용을 다 붙잡은 셈이다. 참고링크(여배우 정패에 대해서도 좀 더 알 수 있다.)
  • [84] 하드보일드 류의 전설이 된 '필립 말로' 시리즈가 영화화된 것들 중 하나.
  • [85] 이 TV 시리즈에서 눈에 띄는 건 이삼각(李三脚)이다. 그런데 이소룡이 유명해지기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태권도 유파들 중 하나인 무덕관 등에서는 유급자 과정의 기본 발차기들 중에, 앞후려차기→앞돌려차기→뒤돌려차기 같은 식으로 연속하는 발차기가 있었다. 이를 이소룡이 도입해 《당산대형》에서 보여주어, 당시 이에 놀란 관객들이 그 발차기 기술에 붙인 이름이 이삼각(李三脚)이었다. 이 TV 시리즈에서는 이런 이삼각을 무슨 무협영화스러운 기술로 묘사했다. 예비동작이 없는 낮고 빠른 앞차기에 가까운 무영각(無影脚)이 이연걸의 《황비홍》에서 공중을 날아가며 여러 번 차는 발차기로 왜곡과장된 것과 비슷하다. 영화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자. 영화와 현실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 [86] 다만 이견(異見)도 있다. 이소룡 전성기 시절의 그를 알던 이들이 이소룡에 대해 방송매체 앞에서 하는 증언과, 개인적으로 그들끼리 하는 얘기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걸 취재한 홍콩 신문 등을 통해 몇 번 논란이 된 적도 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