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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최종 변경일자: 2015-02-21 18:02:34 Contributors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부문 아시아의 자존심


좌측은 러시아의 이반 스코브레프, 우측은 네덜란드보프 더 용.

대한민국쇼트트랙 선수, 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5000m 은메달 / 10000m 금메달리스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팀 추월 은메달리스트.

생년월일: 1988년 3월 6일
키: 177cm
체중: 70kg
별명 : 氷神(…)[1], 인간계 1위[2]
출신학교 : 리라초-신목중고교-한국체육대학교

목차

1. 쇼트트랙
2. 스피드 스케이팅
3. 수상이력
3.1. 쇼트트랙
3.2. 스피드 스케이팅
4. 기타


1. 쇼트트랙


어릴 때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으나, 신목중고교 시절 때 쇼트트랙으로 전향했다. 즉, 스피드 스케이팅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으로 회귀한 독특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안현수, 이호석의 장벽이 너무 높았고, 송경택, 성시백을 비롯해 쟁쟁한 경쟁자들 때문에 밀리는 감이 많았다. 하지만 2006/2007 시즌부터 동계 유니버시아드[3]에서 1500미터와 1000미터에서 은메달, 계주 금메달, 그리고 2008년 강릉 세계선수권 에서 3000m/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긴했지만 사실 이승훈의 활약이 상당히 미미했던 대회였다. 3000미터 슈퍼파이널에서 금메달을 따긴했지만 이승훈 본인이 다른 개인전 종목에서 제대로 죽을 쒔으므로 종합 3위에도 들지 못해보고 대회를 마친다. 사실 원래 개인전을 뛸 선수가 아니었으나 안현수의 부상으로 차순위였던 이승훈이 대신 출전하게 된것. 하지만 이 대회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종합우승을 내준 이호석이 까이느라 이승훈은 거의 관심밖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후 2008년 4월에 열린 국대선발전에서 탈락하고, 2008/2009시즌에 열린 2009년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해 1000m/1500m/3000m 금메달을 휩쓸어 3관왕을 차지했다.[4]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서서히 자신의 기량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하지만 2009년 4월에 열린 국대선발전[5]에서 탈락하며 쇼트트랙 선수로는 밴쿠버 올림픽 진출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재능은 있었지만 어느 한 가지에 특출나거나 아주 뛰어난 쇼트트랙 선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무릎팍도사에서 꽤나 실력이 있는 선수였는데 안타깝게 불운으로 올림픽 국대선발에 탈락한것으로 잘 포장이 되었지만 사실 그 당시 한국 쇼트트랙의 흐름상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던 성시백곽윤기는 물론 이정수나 심지어 송경택에게도 밀릴께 뻔했다. 스케이팅 스타일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이정수노진규의 스타일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의 역전 드라마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2. 스피드 스케이팅


쇼트트랙 대표팀 탈락 후 본업이었던 롱 트랙으로 돌아왔다. 쇼트트랙 선수였을 때에도 강점을 보인 장거리에 도전하여 쇼트트랙 대표팀에 탈락한 지 불과 6개월 만인 2009년 10월 롱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뒤이어 11월 월드컵 2차대회에서 5000m 6분 28초 49로 한국신기록을 경신했으며 이후 두번 더 대한민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5000m 개인기록이자 한국 신기록은 6분 14초 67이었다. [6]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0m에서는 6분 16초 9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이 은메달은 밴쿠버에서 대한민국이 획득한 첫번째 메달이 되었다.

10,000m은 더 드라마틱하다. 2009년 12월 국내대회인 빙상선수권대회에서 14분 01초 64를 기록한 이후, 이듬해 1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13분 21초 04로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더니, 또 그 다음 달 펼쳐진 올림픽에서는 최강자인 네덜란드스벤 크라머가 실격당하는 운이 겹치며[7] 12분 58초 55로 올림픽 신기록까지 바꿔버리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게다가 같이 경기를 펼친 네덜란드의 반 더 키에프 선수를 마지막 코너에서 한바퀴 차를 내며 제치는(!!) 퍼포먼스[8] 3분부터 보자를 선보이며 기적의 콩라인 탈출과 동시에 10000m 공식대회 단 3번째 출전에 올림픽 금메달. 헐 뭐야 이거... 상단 사진에서 3위를 기록한 네덜란드보프 더 용[9]과 함께 시상식에서 저런 포즈를 취했다.

비록 코스 착각 때문에 메달을 뺏기긴 했지만 스벤 크라머도 5,000m 경기를 본 뒤에 '5,000m 하던 대로만 한다면 은메달을 땄었을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 다음 달 19일에 열리는 2010 월드올어라운드챔피언십에 이승훈선수가 나간다면 올림픽에서 대결한 지 3주 뒤에 리벤지 매치가 확정이 되는것인데, 체력문제를 이유로 올해는 올림픽을 끝으로 시즌종료를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플라워 세레모니에서 은메달리스트 스콥레프와 동메달리스트 보프 더 용은 이승훈을 들어올리며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축하했다.(위 사진) 금은동 메달리스트 모두가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훈훈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같은 나라 선수들도 아니고 서로 다른 나라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올림픽 화합의 정신에 들어맞는 명장면.[10]

1988년생으로 아직 나이가 어리며(빠른 1989년생인 모태범, 이상화와 한체대 동기이자 친구), 무서운 성장속도[11]를 보여주고 있어 앞으로의 미래도 매우 밝다.

5000m 은메달 획득 이후에도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을 내비치는 등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 실제로 라트비아에서는 스피드 장거리와 쇼트트랙을 병행해서 하는 선수도 있는 만큼 불가능한것도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위 쇼트트랙선수 시절 서술된것에서 볼 수 있듯이 쇼트트랙 선수로써는 탑급선수는 절대 아니었고, 성시백, 곽윤기, 이정수과 비교했을때 실력적에서 이미 밀린다.
그렇다하더라도 쇼트트랙 국가대표 탈락 후에도 스케이팅을 포기하지 않은 의지와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여 올림픽 메달 2개라는 최고의 성과를 거둔 성공신화는 앞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듯하다.

빙상계열 선수로는 최초로 무릎팍도사에 출연이 확정되어 쇼트트랙->스피드의 전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소개되었다.

2011년 2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5000m와 100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홈의 이점을 앞세운 드미트리 바벤코를 아시아 스피드스케이팅 무대의 콩라인으로 등극시켰다. 물론 매스스타트에서도 막판 질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아시아 장거리 무대에서는 이제 독재자가 될 듯하다.(앞으로 10년 정도 자기관리만 잘해준다면.) 그 뒤 모태범과 함께 새로 창단한 대한항공 빙상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훈련 방식을 바꾼 것이 독이 되어 훈련량이 부족해지고, 무릎 부상이 겹치면서 2012년 들어서부터는 부진을 거듭했다. 2011-2012 시즌은 이승훈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트트랙 훈련비중을 줄였는데, 그게 오히려 부작용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스케이트 구두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에게는 구두와 날도 아주 중요하다. 다행히 2013년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0000m 4위를 차지하면서 회복하는 추세. 여기에 팀 추발 같은 단체 종목에서는 아직도 한국의 에이스급 선수다.

2013-14 시즌, 5000m/10000m 종목에서는 스벤 크라마와 요리트 베르그스마와 같은 네덜란드 선수들이 상위권을 독점하지만, 그 속에서 메달을 항상 따내면서 기량을 많이 회복했다. 팀 추발 부문에서는 단연 한국팀의 에이스. 김철민, 주형준과 팀을 구성하여 출전하는 팀 추발은 소치 올림픽 전까지 열린 월드컵 3개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전 대회 메달을 따면서 네덜란드에 이은 포인트 2위를 기록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5000m에서는 6분 25초 61이라는 부진한 기록으로 12위에 머무르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 다음날 이승훈은 인터뷰에서 "현지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 내 불찰이다"라며 아쉬운 심경을 밝혔다. 경기 대기를 하면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얼굴이었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 하는 것이 화면에 비쳐졌는데 심적 부담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자랑스럽기만 한데 뭐가 죄송하냐는 반응. 기자들도 이승훈의 노력을 인정하여 가십성 기사는 삼가하고 있다.모태범에 대한 설레발을 보면 그냥 금메달 가능성이 낮아서 그럴수도 있지만

그리고 절치부심을 한 덕분에 2월 18일에 벌어진 10000m 경기에서는 마지막조인 7조로 스벤 크라머와 함께 출전해서 4위를 기록했다. 6조로 출진한 네덜란드의 베르흐스마가 세계기록에 가까운 올림픽기록을 세우며 들어오자 스벤 크라머가 초반에 페이스를 빨리 가져갔는데 이 탓에 페이스가 살짝 흔들린것으로 보인다. 금은동은 또다시 네덜란드칰덜란드가 싹쓸이했다. 그러자 웹상에서는 모태범에 이어서 이승훈에게까지 지구 최강 드립을 열심히 시전하고 있는 중. 게다가 10000m 출전 선수 중 유일한 동양계 선수이기도 했다. 5000m 컨디션 난조는 아쉽지만, 2011 아시안게임 두 종목 은메달리스트2연콩인 드미트리 바벤코의 성적[12]과 비교해보아도 이승훈의 성적은 대단하다. 그리고 바벤코는 동양인이 아닌 백인이다.누군가에 의하면 스벤 크라머를 같이 저승으로 보냈다고 저승훈이라 카더라.

그리고 마침내, 이후에 벌어진 팀 추월 경기에서 병억브로커 다운 모습을 보이며 김철민, 형준과 함께 출전하여 8강에서 러시아, 그리고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캐나다[13]를 잇따라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 결승에서 사이어인 종족 네덜란드에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을 거머쥐었다.이종목은 제일 앞서타는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가장 많은 체력이 들며 앞에서 잘끌어줘야 기록이 잘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로 이승훈이 앞에서 이끌며 기록을 단축 시켰다.[14]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5000m와 4위로 아슬아슬하게 동메달을 놓친 10000m의 아쉬움을 만회할 만한 성과이며 후배들의 군 면제를 이끌어낸 것은 덤이다. 이리하여 팀 추월에서 진짜로 러시아를 저승으로 보내버리며 저승훈 확정 합법적 병역 브로커 타이틀까지도 획득 이와 더불어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사상 금 1, 은 2개의 성적으로 올림픽 최다 메달 보유자가 되었다.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5000m에서 9위를 기록했다. 동계올림픽 때도 그렇고 5000m에서 계속 아쉬운 성적을 내고 있다. 그래도 11월 15일 팀추월에서 다시 한 번 은메달을 획득하며, 새로운 전략 종목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게다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되는 매스 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전략 종목을 넓히고 있다.

11월 23일 2차 월드컵에서 10000m 8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매스 스타트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네덜란드를 피해 매스 스타트에 정착했다.3차 월드컵에서 팀추월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매스 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다시 한번 따냈다. 2014년 마지막 월드컵인 네덜란드 헤렌벤 4차 월드컵에서 5000m 13위를 차지했다. 소치 동계 올림픽 이후로 점점 장거리 부문 메달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 현재 5000m 10위로 많이 밀려났다.그래도 아시아 1위인건 비밀딱히 이승훈을 이을 선수가 대한민국에서 보이고 있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우려된다. 대신 매스 스타트에서 은메달, 팀 추월에서 금메달을 따냈다.다 비켜! 매스 스타트는 내가 짱이야!

2015년 첫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인 5차 노르웨이 월드컵에서 매스 스타트 금메달을 다시 획득했다.

3. 수상이력

3.1. 쇼트트랙

  • 세계 선수권
금 2008년 강릉 3000m
금 2008년 강릉 5000m계주
은 2005년 베이징 5000m계주
동 2005년 베이징 3000m
동 2005년 베이징 1500m
  • 동계 유니버시아드
금 2009년 하얼빈 1000m
금 2009년 하얼빈 1500m
금 2009년 하얼빈 3000m
동 2009년 하얼빈 5000m계주
  • 세계 팀 선수권
동 2008년 하얼빈 종합

3.2. 스피드 스케이팅

  • 동계 올림픽
금 2010년 밴쿠버 10000m
은 2010년 밴쿠버 5000m
은 2014년 소치 남자 팀 추월
  • 세계 종목별 선수권 대회
은 2011년 인젤 5000m
은 2013년 소치 팀 추월
  • 동계 아시안게임
금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5000m
금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매스 스타트
금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10000m
은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팀 추월

4. 기타

이승훈과 비슷한 유사종족 케이스 중에 아예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을 병행하는 이도 있다. 네덜란드요리엔 테르 모르스가 대표적인 사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양종목 모두 출전, 쇼트트랙에서는 1500미터 결승까지 올라 4위에 입상했고 스피드 스케이팅에선 1500미터와 팀추월 (6바퀴)에서 각각 올림픽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특히 팀추월에서는 8강,4강, 결승에서 매번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는 충공깽한 위엄을 과시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는 쇼트트랙에만 출전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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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 아닌 별명. 벤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이걸로 인터넷에 기사를 올리는 기자들도 꽤 많았다.
  • [2] 소치 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부분을 히딩크 동네가 싹쓸이하자 생겨난 별명이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초 사이어인. 그리고 4위를 랭크한 선수들이 인간계 1위라는 이야기(…).
  • [3] 성시백이 이 대회에서 5관왕을 했다.
  • [4] 물론 정상급 선수들한테 유니버시아드에서 3관왕을 하는게 그렇게 대단한 업적은 아니다.
  • [5] 선발전이 원래는 1년에 2번 열렸지만 빙상연맹이 2008년부터 선발전을 줄였기 때문에 이승훈도 두 번의 기회는 받지 못한채 고개를 떨궈야 했다. 빙상연맹이 선발전을 2회에서 1회로 줄인 것을 당시 안현수 등 많은 선수들이 부상의 위험으로 선발전 축소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 [6] 2013년 11월 11일 (현지시간으로는 11월 10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남자 5,000m에서 6분 07초 04로 한국 기록을 경신하였다.
  • [7] 크라머가 인코스를 2번 탄 후의 기록이 이승훈보다 4초 정도 빨랐다. 만약 제대로 타서 1~2초 정도 늦게 들어왔더라도 이승훈의 금메달은 어려웠을 상황이었다.
  • [8] 그 땐 네덜란드 사람들도 환호하였다. 이거야 말로 위아더 월드 ㄷㄷ 그런데 원래 스포츠 경기를 보는 올바른 방법이란 이런 게 아닐까... 일단 네덜란드대한민국과 친숙한 나라 아닌가.
  • [9] 밥데용으로도 표기했었다. 오렌지색 유니폼 입은 선수. 2014 소치 대회에서도 동메달 딴 선수인데, 1976년생이어서 한국나이로 무려 39세 때 딴 동메달.
  • [10] 이승훈이 말하길 2,3위가 1위를 저렇게 들어올려주는 것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례가 있다고 했다. 더군다나 크라머의 실격으로 메달 등급이 하나씩 올라간 격이니 분명히 셋 다 기분이 좋을 상황.
  • [11] 5000m 6분 29초 99(2009/11/9) - 6분 14초 67(2009/12/13), 10000m 14분 01초 64(2009/12/24) - 12분 58초 55(2010/2/23). 장거리임을 고려해도 엄청난 기록단축 페이스이다.
  • [12] 5천m 15위, 1만m 12위
  • [13] 이전 대회 우승자를 말한다. 캐나다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 종목에서 우승했기에 이리 불리는 것.
  • [14] 이 메달은 대한민국이 2014 소치 올림픽에서 확보한 메달 중 유일하게 남자가 딴 메달이다. 설상이나 썰매는 봐줘도 쇼트트랙 남정네 뭐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