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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최종 변경일자: 2015-04-07 01:16:59 Contributors

人文學
Humanities/Arts[1]



인문학의 발전이 꼭 풍요롭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역사상의 풍요롭고 행복했던 나라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가장 융성한 인문학을 꽃피운 나라들이었다.

공학자가 배를 만든다면 인문학자는 그 배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 그들은 힘만 센 '강대국'과 달리 왜 국민 윤리의식에서 공직자들의 청렴도까지 모두 높은 수준에 있는가? 근데 사실 지금 강대국도 시궁창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낫다


목차

1. 개요
2. 인문학이 다루는 문제
3. 인문학의 중요성
4. 인문학의 위기
4.1. 한국
4.2. 외국

1. 개요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TV 프로그램 말고, 즉 인간다움의 특징, 인간의 삶과 사고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더불어 기초 3과 학문에 속한다. 사회과학/자연과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은 인간을 둘러싼 사회계와 자연계의 현상에 대해 경험적으로 접근하여 일반법칙을 유도하나,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해 사변적이고 비판적이며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에 해당하는 영단어는 Humanities나 Arts인데, 두 용어의 뜻은 서로 비슷하다. 불행하게도 잘 모르면 아츠가 써져있는 졸업장을 보고 미술 전공이라고 한다 카더라

굳이 따지자면 Arts가 더 오래된 표현으로, 이는 현재 인문학에 해당하는 학문들이 중세 대학에서 Ars Liberalis[2]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현재 인문대학을 뜻하는 영어명칭인 Liberal Arts으로 남아있는데, 앞의 Liberal을 생략해서 그냥 Art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중 Liberalis는 "자유로운 사람의"라는 뜻이고, Ars[3]는 "기술"내지는 "학문"을 뜻한다. 즉, 본래 인문학은 "자유로운 사람들을 위한 기술(학문)"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반면에 Humanities는 르네상스 시기 이후 인문주의자들[4] 사이에서 새롭게 재발굴된 용어 Humanitas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이 Humanitas 역시 키케로가 수사학에서 연설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그가 생각했던 것, 즉 로마 시민의 교양지식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므로, 사실상 본래적 의미는 Ars Liberalis와 다르지 않다. 단, 이쪽은 프랑스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인본주의 등의 색채가 덧입혀지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그야말로 별의 별 학문들이 죄다 인문학에 속했는데, 처음에 로마시대에 정립될 때에는 수학[5], 음악[6], 기하학, 천문학[7]의 4학[8]으로 출발하여, 이후 중세대학에 이르면 문법, 수사학, 논리학이 합쳐져 총 7개 분과학문이 운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중세의 학문체계가 붕괴됨에 따라 이리저리 편집되고 자연과학을 필두로 안돼!! 다수의 분과학문들이 독립해나갔다. 왠지 남겨진 인문학들이 독립하지도 못하고 남겨진 인류지성의 짬통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이다 현대 한국에서는 인문학의 분과를 흔히 문사철(文史哲)로 나눈다. 이는 인문학에서 인간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을 크게 나눈 것과 동일한데, 대략 인간에 대해 언어적 사유/문학적 관찰과 묘사를 통해 접근하기(문학), 인간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읽기(역사학), 인간의 사고체계 그 자체에 대한 탐구(철학)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연구대상을 세분화하는데, 국내에서 가장 큰 인문대학을 운용하는 서울대학교의 분과학문 구성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 문: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서어서문학과, 노어노문학과, 언어학과 [9]
  • 사: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고고미술사학과
  • 철: 철학과, 미학과, 종교학과

위의 분과학문들 외에도 신화학, 민족지학 등이 있는데, 현대에 들어 민족지학이나 위의 언어학 등 몇몇 학제들에서는 과학적 방법을 수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지 않은 분과학문이라도 인간,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특성상 심리학의 연구 결과들을 많이 참고하고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완전히 인문학에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게 학자들의 대체적인 평. "사람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생성되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과학쪽 학문들이고[10],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 심리학이라면, 인문학 쪽은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가?"[11],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람다운가?"[12],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가장 올바른가?"[13]를 연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14]

또한 인문학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과는 달리 분과 간 통합적 사고를 대단히 중요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에서도 물리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없이는 화학을 공부할 수 없고, 경제학에 대한 지식 없이 정치학을 깊이 논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문학은 분과학문 간 상호연계성이 이것보다 훨씬 강해서, 문사철 중 어느 한 분야를 전공하더라도 다른 분야에 대해 모르면 연구 자체가 진행이 되지 않으며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만 할 확률이 높다. 또한 자연과학의 여러 분과학문 간 경계에 비해 인문학의 분과학문 간 경계는 훨씬 희미한 편으로, 예컨대 근대성(modernity)과 같은 주제는 문사철 중 어느 한 학문을 전공하든 반드시 마주쳐야 할 주제이다.

인문학은 학문 가운데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문으로, 모든 인간이 학문적 탐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분과라고 봐도 무방하며 오히려 다른 분과학문들이 이 쪽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자연과학이 인문학에서 갈라져 나온 것은 대략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며, 사회과학이 본격적으로 체계를 잡기 시작한 것도 제아무리 높이 거슬러 올라가야 19세기 정도로, 그 전까지는 그야말로 인문학이 학문의 본류이자 처음과 끝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전통이 세계 각 대학에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세계의 많은 대학에서 인문대학(college of humanities)은 항상 단과대학 리스트의 맨 앞에 오며,[15] 입학식이나 졸업식 등 공식적인 학교 행사에서 최선두에 선다.

또한 인문학은 그 깊이(depth) 차원에서 매우 심오하며 다른 분과학문과 비교하여 고전(classics)이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16] 예컨대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물리학사(史)를 전공하지 않는 한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전부 볼 필요는 없으며, 그 주요 개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고전역학 교과서를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히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치철학을 전공하려는 학생은 한 번이라도 반드시 플라톤의 "국가"를 제대로 읽을 필요가 있으며, 이와는 별개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플라톤에 대한 해석도 눈여겨 봐야 한다. 따라서 마음먹기에 따라 인문학은 그야말로 평생을 파고들어가도 모자랄 정도의 엄청난 독서량과 생각의 깊이를 요구하는 학문이 된다. 실제로 유명 철학의 원전을 강독하는 대학원 수준 수업의 경우 1시간 강의에 채 2페이지를 못 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구절 한 구절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니 완벽히 가치중립적인 자연과학이나 가치중립을 지향하는 사회과학과 달리 필연적으로 어떠한 가치나 사상이 공부에 내재되는 것이 인문학이다. 따라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같은 문과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사회과학 전공 학생들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하고 삶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17] 실제로 인문학을 동경하여 인문대학에 진학한 대학생들 중에는 문학소녀나 청년 철학도 같은 희귀종들이 꽤 있다. 이와 같은 인문학적 감수성을 극도로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아래에 인용된 시.

내가 박식한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증거와 숫자들이 내 앞에 줄지어 나열되었을 때,
차트와 다이어그램들이 더해지고 나누어지고 측정되는 것을 보았을 때,
강의실에 앉아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천문학자의 강의를 들었을 때,
알 수 없게도, 갑자기 피곤하고 싫증이 나서
슬그머니 자리를 떠 밖으로 나와 홀로 거닐며,
신비로이 촉촉한 밤 공기 속에서, 이따금씩,
깊은 고요 속에서 별들을 바라보았다.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When I heard the learn'd astronomer》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는데, 그 이유는 따질 필요가 없다네.
(Minus times minus equals plus, the reason for this we need not discuss.)
 
위스턴 휴 오든(Wystan Hugh Auden)의 시 중에서[18]

여러 인문학도들의 더 정확한 번역바람.

2. 인문학이 다루는 문제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해 프랑스 고졸자격시험(바칼로레아)에서 출제된 문제들을 첨부한다. 대략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고민한다는 걸 알면 되겠다. 출처는 이곳


1장 인간(Human)
질문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질문2-꿈은 필요한가?
질문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질문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질문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질문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질문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질문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질문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질문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질문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질문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질문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질문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질문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질문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질문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질문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질문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질문3-예술 작품의 복제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질문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질문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질문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질문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질문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질문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질문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질문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질문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질문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질문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질문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질문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질문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질문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질문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질문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질문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질문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질문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질문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질문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질문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질문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질문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질문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질문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질문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질문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질문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질문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프랑스 고졸자격시험문제지만, 대한민국 기준으로 보면 대학생들조차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문제로 내놓고 있다. 참고로 이 시험은 프랑스에서는 실업계 진학자 외에는 대부분 보는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제시되는 문제 중에 하나를 골라 쓰는 방식의 시험이고, 자기의 개인적인 의견을 쓰는 문제가 아니라 질문에서 담고있는 철학적인 문제설정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시험의 목적이다. 당연히 자기가 배운 지식이나 고전들을 동원해 논거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채점하나 객관식이 아니잖아! 묻는 사람이 있을텐데, 어느정도 글을 형식화시켜서 써야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거를 수 있다. 문제설정 발견->테제->안티테제->종합 심화->결론 순으로 써야 한다는 듯.[19]

예를 들어 4장 과학 장의 7번 질문인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대한민국 인문계 대학원생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쓴다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 문제설정 발견 : 이 문제는 과학은 단순히 진리 확인에 그치는 학문이어야 하는가? 공학같은 실용학문의 발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류 공동체의 행복을 보장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하는가?의 논란과 연관되어 있다.
  • 테제 : 우선 과학은 단순히 진리 확인만 하면 된다고 치고 논거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사례를 예시로 들며 과학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근데 대한민국 인문학도들이 이런걸 깊이있게 알까?
  • 안티테제 : 그러나 당연히 이에 반하는 여러 사례들이 나올 수 있다. 우생학,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같은 흑역사 사고들을 예시로 들면서 과연 진리만 추구하는 과학이 올바른 거냐고 반문하며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 종합 심화 : 허나 그렇다고 과학을 잠재적 문제아로 매도하고 거부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과학이 오늘날 인간 문명을 풍요롭게 만든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이나 클레어 페터슨[20] 지구 같이 무분별한 과학적 결과물의 남용을 경계하고 조언한 사례를 들수도 있을 것이다. 예시로 든건 약간 양비론, 양시론적 접근이긴 하지만, 종합심화는 이런 식으로 입장을 전개하는 단계이다.
  • 결론 : 따라서 우리 인간은 과학의 부정적 측면을 억제하고 긍정적 측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같은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다.

중요한건 이런 인문학적 물음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21] 이건 객관식이 아니다 단답형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얻게 되는 효용이나 효과가 중요한 것이다. 이런 물음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들이라면 해당 질문과 관련된 문제에서 판단력이 설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앞서 설명한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사람이라면[22] 적어도 '과학이 발견한 진리는 무조건 인간을 이롭게 할거니까 닥치고 지원해라'같은 망발을 늘어놓진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고도로 발전해도 인간을 괴롭게 하는 고통은 여전히 존재한다. 혹은 새로 생기거나. 잘 모르겠다면 이 글을 보고 있는 위키니트 여러분 살림살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대다수 인문학자나 철학자들이 그래서 나중에는 거의 초탈해탈한 마냥 행동하는건 그런거에 정나미도 미련도 떨어지기 때문 아닐까?

문제는 현실의 벽이 굉장히 높다는 것. 물질적 재화 생산에 직접적으로 활용할 구석이 많지 않은 학문이 인문학이다 보니, 대부분의 기업에서 인문학 전공자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으며, 문과학문 내에서도 경영학, 경제학, 정치학, 행정학 등 실용성을 겸비한 사회과학 분야에 비해 여러 모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를 "인문학의 위기"라고 칭하는데, 흔히 이공계가 위기라면 순수인문계는 오래 전에 다 굶어 죽어서 뼈도 안 남았다는 인문학 전공자들의 한탄이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의 문제점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인문대학 항목에서 이러한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다음의 기사가 그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인문계와 관련한 온갖 자학 드립이 난무한다.# 안습

사실 이러한 현상은 외국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장 시민권 자격 부여만 봐도 소위 '스템'(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계열 전공자를 우대하지 인문계 전공자를 우대하진 않는다. 옆나라 일본만 해도 최고대학인 도쿄대학의 문과 1(법학/정치학), 문과 2(경제학)에 비해 문과 3(광의의 문학)은 선호도나 취업률이 떨어지며, 미국 또한 "인문학의 위기"라고 말할 정도로 인문학은 찬밥신세를 면치못하고 있다. 세계 최고 명문인 하버드 대학교마저 인문계열 학생수가 감소하였고 그나마 있던 다른 학생들도 다수가 전공을 바꾸려는 경향을 보이는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대학들도 인문학의 위기 이는 일본이나 미국이 기술중심 사회[23] 라서가 아니다. 인문학의 위기 전세계적 현상 그렇기 때문에 유수의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밥벌이용으로 경제학이나 경영학 복수전공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졸업생에게 전부 높은 연봉의 정규직 교사/교수 직위를 보장해 주는 그랑제꼴 고등사범학교가 개설되어 있는 프랑스가 조금 나은 형편이랄까.[24]

3. 인문학의 중요성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거칠게 말하면, 인문학이 무시될 경우 매드 사이언티스트독재자나 악덕 기업가가 등장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게 된다. 인문학적 사유의 본질은 결국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포함한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성적이고 공정하다 생각하겠지만, 사람 욕심이란게 결코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욕심이 판단력을 흐트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친 사례는 너무나 많다. 게다가 인간이 불확실한 미래의 변수들을 모두 다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건 현재로선 자만일 뿐이다.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라 이다. 만약 과학자들이 모두 다 예측하고 대응할수 있었다면 환경호르몬같은 문제가 생겼을까? 유감스럽게도 일부 과학계통 종사자들은 일반인들의 반응에 공감하거나 예측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계산에만 근거해 중대사안을 처리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관악산에 방사능 폐기장을 짓는다는 주장을 한다던지. 뭐라고요? 설령 저 정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쳐도, 기본적으로 기술맹신은 굉장히 위험하다. 사실 이런 경향은 과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 군인, 정치가 등 효율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더 심한데 그들은 아주 가끔 극단적으로는 일반인들의 상식이나 심리와 어긋난 주장을 할 때가 있다. 저소득층을 죽여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군사행동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표현한다거나, 국뽕에 완전히 빠져서 다른 민족이나 약자는 죽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거나 하는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기본적인 인문학 소양조차 없을 때 생기는 불상사가 이런 것들이다.

여기에서 독일 제 3제국이야기로 비판할 수 있다. 이전 각주에서도 달렸던 것인데 독일은 라이프니츠,몸젠,칸트,바움가르덴 등 철학자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무수한 인문학자들이 있었으며 인문학의 최선두를 달리고 있었지만 결국 파시스트가 집권하여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간 반면 실용주의가 강했던 미국은 오히려 그 파시즘을 막은 예를 들며 인문학의 제어 역할을 부정할수 있다. 그러나 "그 나라에 유명한 철학자 있음=그 나라 사람 모두 철학 잘함"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면 그 정보는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의미없는 것이 된다. 아무리 유명한 철학자가 나와도 정작 그 나라 사람들이 그 철학자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면 의미가 없다는 걸 고려하지 않았다. 칸트, 헤겔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이들의 사유 결과물은 일반 하층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사실 지금도 어렵다 우리가 공자, 맹자의 말씀을 그냥 영험한 주문처럼 여기는 것처럼, 당시 하층민들도 그냥 이 사람이 유명하구나 하고 아는 정도였다. 이건 시대가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나치 독일 시대 사람들이 추구했던건 쾌락, 국가주의, 영웅주의 같은 것이었지, 니체같은 과거 철학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나치 시대의 독일인들이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더 많이 읽었을까, 플라톤의 『국가론』을 더 많이 읽었을까? 설령 국가론을 읽은 사람이라도, 과연 얼마나 플라톤이 지적한 내용을 생각하면서 행동했을까? 플라톤의 기준으로 보면, 바이마르 공화국은 중우정치였고, 나치 독일은 독재정치였을 것이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1차 세계대전에 져서 받게 된 배상금 때문에 억울해하기만 했지, 그게 싫다고 히틀러가 하자는 대로 무기를 만들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독일 사람들은 유태인이나 장애인들을 죽여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드높이겠다는 생각만 했지, 자기들이 만든 체제에 자기들이 통제당하고 죽을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후에 한나 아렌트는 파시즘 같은 '악'이 생겨나는 이유는 선과 악이 구별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뭐가 나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란 전직 나치 간부를 재판하는 자리에 참석했고, 거기서 아이히만이 "위에서 명령했으니까 나는 따랐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이 생각한 것이다. 나치 독일 당시 국민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이런 비극을 낳은 것이다. 과연 그 사람들이 조금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을 했다면 이런 짓을 했을까?


나치의 반례로 든 미국의 사례도 생각해보면 말이 안된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미국은 파시즘을 막으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원숭이 때문에 전쟁에 휘말려 든 것이다. 이걸 '실용적인 기술'이 이끈 결과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저 글쓴이가 글의 맥락상 주장하려 하는 것은 '인문학이 뛰어났던 독일은 나쁜 짓을 했는데, 실용적인 기술이 뛰어났던 미국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문학은 필요없고 실용적인 기술만 뛰어나면 된다.'이거나, '인문학이 뛰어났던 독일은 멍청한 짓을 했고, 실용적인 기술만 발전했던 미국은 현명한 짓을 했다. 따라서 인문학이 없고 실용적인 기술만 뛰어나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다.'인 것 같다. 두가지 생각의 반례로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이나 흑인 인종차별을 들 수 있다. 미국은 그 '실용적인 기술'을 키우기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전례가 있다. 각종 금속이 매장된 땅을 빼앗은 결과, 미국 철강업자들은 커다란 제철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 제철소 덕분에 미국은 군수물자를 찍어낼 수 있었고 말이다. 그렇다고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미국의 흑인들은 노예무역을 통해 미국에 건너왔고, 흑인들은 중국인들과 함께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다. 이들은 농장과 탄광 등에서 일했고, 이들 덕분에 '실용적인 기술'에 필요한 생산력이 뒷받침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노예무역과 인종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두 사례는 착한 짓도 아니고 현명한 행동도 아니다. 나쁜 짓이고 멍청한 짓이다. 파시즘의 준동을 막을 수 있었던 원인 중에는 미국의 '실용적인 기술' 덕분도 있다. 이는 분명하다. 하지만 '실용적인 기술'만 있어서 나치와 이길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또한 그 '실용적인 기술'만 뛰어나면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당장 이라크 전쟁만 봐도, 미국의 '실용적인 기술'이 자국민과 중동 사람들 모두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요한건 자주포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민가를 부수느냐가 아니라, 왜 중동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지, 그리고 왜 중동 사람들이 서방과 미국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문학적 사고의 한 예이다. 오늘날의 인문학은 형이상학적이지 않은 것도 있다. 당장 인문학에 문학, 역사, 철학이 들어가는데, 역사는 형이상학적이지 않고 도리어 실증적이라는걸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철학은 어느 정도 역사를 레퍼런스 삼아서 '사유'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아무런 근거 없이 망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의 경우, 세부 분야는 다르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연구 대상인 어떤 것이 모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지, 만족스러운지를 따지게 된다. 위에 적은 글은 결국 "나치 독일과 그 국민들은 과연 비슷한 과거의 사례나 과거 철학자들의 생각을 고려하고 생각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렸는가? 그 판단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는가?", "'실용적인 기술'이 곧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열쇠인가? 도리어 불만을 유발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가?"를 따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고 결과 둘 다 "나치 독일은 사례나 과거 철학자들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판단을 내렸다." "'실용적인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으며, 때때로는 도리어 불만을 유발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는 과정인 셈이다. 사실 이런 사고는 조금만 연습하면 굳이 인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하려면 역사적 정보, 과거 학자들의 생각이나 판단, 최신 연구 결과 등을 고려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건 어렵다. 자료 모으는 것도 일이고, 그 자료를 해석하는 것도 일이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도 일이다. 때문에 보통은 (심지어 인문학자조차도) 자기 분야만 파게 되고, 이러면 사고가 편협해진다.

물론 인문학 배워놓고도 제 욕심을 채우려 몰지각한 짓거리를 일삼는 사람들 분명 있다.[25] 이 경우 말빨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말릴 수 없게 되기 때문. 사실 제대로 인문학을 지키려 한다면, 아니, 다른 학문종사자라도 최소한의 자체윤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되도록이면은 안하려 할 것이다.결국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나쁜사람이 악용하면 위험하단거잖아 또한 전문가들의 과학적 의견이 일반인의 상식과 맞지 않는다고 배제하는것도 옳지 못하다. 상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역사,문화에 항상 영향을 받는 것이다. 핵폐기장에 관한 문제만 봐도 많은 사람들의 상식은 자연적 방사선수치보다 인공적 방사능수치가 배 이상 낮아도 자연적인 것보다 위험하다고 착각하며 카제인나트륨,게임뇌 가설만 봐도 상식이 때로는 틀렸다는것을 알수 있다. 오늘날 뉴턴의 3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상식이듯, 미래에는 양자역학이 상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과학이 뭔지도 모르면서 기술맹신을 들먹이는 일부 인문학자들의 행태는 과학을 어느정도 알면서 행동하는 인문학자들까지 싸잡아 욕하게 되는 꼴이다. 결국 결론은 다 잘하면 된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얕은 지식만 가지고 인문학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행태도 마찬가지다.|예를 들어 이분이라든가

현대에는 인문학적인 당연한 지적을 쓸데없는 딴죽이나 전문지식도 없는 것들이 참견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풍토가 있다. 한 예로 미 현대언어협회 필 집행이사는 "40여년간 인문학 분야에서 일하면서 크던 작던 인문학을 비웃는 소리를 듣지 않은 적이 없다"면서 분노가 느껴진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나가서 돈이나 벌어오라는 소리 들은 게 분명하다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비전문가와 일반 대중에게 용어가 이해되지 않고 효용성도 분명하지 않은 '과학'분야에 대해서는 인문학이 받는 것과 같은 비난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하긴 양자역학같은 건 그렇긴 하지 이게 농담으로 끝나면 문과 놀리기로 그치겠지만… [26]

물론 이런 비판이 전부 근거 없이 기분에 따라 이뤄지는 건 결코 아니다. [27] 하지만 본문에 쓴 예들을 보면, 사실 인문학 쪽이 다 근거 없이 비판하지는 않는다.(…) 나름의 근거가 있고 나름의 논리가 있다. 단지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 연결하기 때문에 엄밀한 개연성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공계 입장에선 마치 뜬금없는 내용으로 워프하듯 보일거다 애초에 연구 타겟 자체가 수학공식처럼 엄밀하게 떨어지고 물리실험처럼 재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문제인 것. 이들 중에도 사회학,인류학 등 소위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이용해서 나름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학자들도 일부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과학적 객관성을 공격하는 것을 비판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대다수 인문학자들이 지적하는 건 과학적 객관성이라는 기저에 깔려있는 이성중심주의의 위험성이나, 과학적 방법론이나 부산물이 권력을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다. 지구는 평평하다거나(…) 인간은 신이 창조했다거나(…) 하는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28][29] 과학계가 이런 비판을 싫어하는 데에는 그런걸 다 신경쓰며 연구활동을 할 수 없다한마디로 귀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30] 이런 점을 비판하면 반발하고 너희도 과학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 이율배반적인 행태를 보일거냐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인문학자들이 주장하는건 기술은 혜택뿐 아니라 부작용도 주며, 그 부작용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해야 한다라는걸 명심하자. 혜택 누리면서 딴소리 하지 마라 식의 주장은 너네도 공범이니 잠자코 따라라 하는 말과 하등 다를게 없다. 기왕이면 당연히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나가는게 좋지 않겠는가?



4. 인문학의 위기

4.1. 한국

방송이나 일부 강연에서 인문학 콘서트 등이 우후죽순 열리면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사유가 동반되지 않은 요점정리식 신변잡기에 불과하다는 지적[31] 도 있다.

그리고 인문학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 그리고 통섭의 능력을 키우는 데 유용한 특성 때문에 모든 학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의 이러한 성격은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리더십의 뼈대이기도 해서 인문학은 사회지도층들이 자신들의 후계자들을 육성할 때 가르쳤던 제왕학 코스에서 제외된 적이 거의 없다. 가까운 데서 예를 찾자면 삼성그룹 차기 회장 후보인 이재용[32]과 신세계그룹 차기 회장인 정용진[33]이다. 물론, 최근에는 경제학이나 경영학 같은 실용학문만 전공케 하는 가문도 있지만 아직도 인문학은 사회지도층들이 사랑하는 학문 중의 하나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음의 글들 참고. 인문학의 위기 혹은 가로지르기 인문학의 위기, 진단 그리고 대책 한국의 인문학은 조금씩이나마 서서히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인문학이 처한 가혹한 환경에 비추어 볼 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여전히 유수의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에서는 어렵고 힘든 학문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인문학도들이 결코 적지 않으며, 이들이 사실상 전력으로 한국 인문학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외일지는 모르지만, 서로 다른 학제간 통섭이 필요하다는건 한국의 학자들도 다 인정하고 있다. 인문학이 살아야 과학이 산다 이런 일도 하는걸 보면 분명 인식하고 있다.

4.2. 외국

그렇다면 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인문학의 현상태와 향후 전망은 매우 좋지 않다. 오죽하면 "인문학의 위기는 전세계적 현상이다." 라는 뉴스기사가 나올 정도이다.# 미국에서는 인문학 연구 자금 지원금이 2009년부터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2011년 기준으로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비의 0.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자금이 별로 없는 공립학교에서는 인문학과 정원을 줄이거나 아예 폐과하는 일도 허다하다. 세계적 명문대인 하버드 에서도 지난 10년간 인문계열 학생수가 20% 정도 감소하였으며, 인문계열 학생 다수가 다른 전공으로 바꾸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체에서의 인문학 전공비율도 1966년부터 2010년 기간에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세계적으로도 인문학에 대한 자금지원은 2009년부터 계속 감소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 인문학 연구소장은 인문학이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 모두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는 2011년부터 인문학 분야에 대한 정부 직접 지원을 끊어버리고 수업료로 대체하였으며, 호주에서도 1억 300만 호주달러(한화로 약 995억원)의 인문학 연구 자금을 의학분야로 돌리겠다고 발표하였다. 인도 또한 인문학은 빈사 상태이며 반대로 직업학교와 경영,기술분야 연구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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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때문에 문과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받는 학위가 B.A.가 Bachelor of Arts이다. 문과대학이라 과잠바에 'College of Liberal Arts'라고 새겼는데 뒤에서 고등학생들이 미대인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있다(...). 오해하지 말자.
  • [2] 복수형은 Artes Liberales
  • [3] 그리스어 technē를 번역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로, 본 의미는 원래는 Scientia(생김새를 보면 알겠지만 현재 이학을 의미하는 영단어 Science의 어원이다. 주로 "지식"을 의미하는 epistemē를 번역하기 위해 차용되었다.)와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의술은 길고, 생명은 짧으며…(하략)"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와 유사하게 손자병법의 영어번역제목이 The Art of War인 것도 이 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이후 자연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구분이 엄밀해진 것이 오늘날에 정착되었다. 어쨌든 그 결과 현재는 arts와 sciences(이학)이 보통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이게 되었다.
  • [4] 사실상 이 사람들이 오늘날의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즈음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당시 교회의 권위에 반항하면서 고전을 원어로 직접 읽고 직접 연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학풍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가 르네상스 이후 자연과학의 발달과 종교개혁이다.
  • [5] 정확하게는 현대의 "수론(Arithmetic)"에 해당한다.
  • [6] 정확하게는 화성학이다. 황당하게도 왠 음악이냐고 할지도 모르는데, 처음에 음악은 음과 음 사이의 수적 비율을 다루는 어엿한 학문이었다. 따라서 음악은 수학을 기초학문으로 삼는다.
  • [7] 현재와 같이 천체만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물 일반의 물리법칙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당연히 수학과 음악, 기하학을 모두 사용하는 응용학문으로, 당대 학문의 끝판왕에 가까웠다.
  • [8] 이는 로마시대 보에티우스의 편집으로, 이 네 학문을 보편수학이라고도 부른다
  • [9] 인문학과에 속해있긴 하지만 사실 언어학은 과학이다.언어학 참조
  • [10] 한 예로 물리학에서는 인간을 구성하는 분자구조를 따질 것이고, 발생학이라면 DNA나 효소나 단백질이 어떻게 인간을 구성하는지 따질 것이다.
  • [11] 역사
  • [12] 문학
  • [13] 철학, 특히 윤리학
  • [14] 대체 이 셋이 무슨 차이냐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과학적으로 연구된 데이터나 이론에 따라 행동하면 그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성욕을 가진 동물이니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것도 동물적 본능의 하나로 인정해야 하는가?",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어린아이보다 어른을 구하는게 올바른 일인가?"(영화 이로봇에 소개됐던 사례), "자녀에게 유전적 결함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금지시켜야 하는가?" 등과 같은 문제를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걸 금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15]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들도 마찬가지이다. 단 고려대학교의 경우는 그 전신인 보성전문이 법과와 상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과대학경영대학이 가장 앞에 오며, 한양대학교 역시 그 전신이 동아공과학원-한양공대이기 때문에 공과대학이 가장 앞에 온다. 성균관대학교의 경우 조선 성균관의 후신임을 표방하기 때문에 그 정신을 계승하는 유학대학(儒學大學)이 맨 앞에 온다. 물론 이 대학들도 그 다음 순서는 자연스레 인문대학이 위치한다.
  • [16] 고전을 통해 과거 사람들(학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비판하며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요시한다. 사실 혼자 생각하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많은 학자들이 이미 과거에 누군가 생각했던 것들을 참고한다. 어떤 철학자는 "열심히 사유했는데 어느날 플라톤의 책을 열어보니 이미 플라톤이 내가 했던 생각은 다 했더라."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석철학 등 현대에 발생한 인문학 분야들은 상대적으로 고전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철학자인 길버트 하먼은 사무실 문에 철학사 꺼져라는 식의 문구를 붙여놓기도 했고, 분석철학의 거장 콰인은 철학사 강의를 지루한 작업으로 평가하면서 진짜 철학(즉 자기 연구)을 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고전 중심의 커리큘럼이 인문학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좀 비약이다. 어떤 이는 고전에 대한 반발조차 고전의 영향 하에 있다는 증거로 아전인수하지만 이는 그가 현대 분석철학 등의 연구 동향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증거일 뿐이다. 콰인이나 하먼의 연구는 고전의 해석이나 비판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고전을 몰라도 그들의 연구를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그들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필요한 것은 동시대의 동료들의 연구 성과와 타 학문 분야의 연구 성과들이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이라고 간주되던 여러 학문 분과들이 이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전이 인문학 커리큘럼에서 당장 빠지는 일은 없겠고 여전히 자주 마주치긴 하겠지만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고정관념에 가깝다.
  • [17] 물론 이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비교언어학이나 영미 분석철학, 경제사학처럼 여느 사회과학 못지않게 건조한 느낌의 인문학 분과도 있다.
  • [18] 어디까지나 농담성으로 인용한 것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해당 시구의 정확한 출처는 http://en.wikiquote.org/wiki/W._H._Auden 참조
  • [19] 참고로 테제, 안티테제, 종합은 헤겔이 변증법을 논하며 제시한 대표적인 논거전개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그 이전에도 변증법은 있었지만.
  • [20] 납의 반감기를 측정해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는 걸 밝혀냈다. 연구 과정에서 납오염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무분별하게 납을 사용하는 기업들을 비판했다.#
  • [21] 그렇기 때문에 과학에서는 가설의 검증 후 채택 혹은 기각으로 깔끔하게 끝나는 문제라도 이 동네서는 다수설, 소수설 이런 식으로 표현하며, 쪽수에서 밀리는 쪽도 완벽히 내치지는 못한다.
  • [22] 인문학자든 과학자든 상관없이 저런 생각을 해본 사람들을 말한다. 사실 이런 고민은 과학쪽에서도 과학철학이나 연구윤리쪽에서 심도있게 고민하고 있다. 단지 인문학자들처럼 이런 고민과 연구주제가 일치하진 않아서 문제지.
  • [23] 영미권이나 이에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강조되는 풍토이다.
  • [24] 오히려 박노자의 회고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구 소련의 경우 취업걱정이 원칙적으로는 없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먹고 살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원하는 인문학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이 곧 구 공산권 국가들의 인문학 연구 성과가 자본주의 국가보다 뛰어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일당독재로 검열이 이뤄지고, 외국 학계와 교류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제대로된 학문발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때문에 북한의 인문학 사정은 그야말로 시궁창. 학문 수준은 초보 수준이고, 거의 정권의 나팔수 수준으로 전락했다.
  • [25] 어떤 사람이 나쁘다고 다른 사람이 착한건 아니다. 이는 이분법적 오류다.
  • [26] 이 글에선 문과VS이과 구도로 써놨지만, 사실 인문계는 정치계나 경제계와 더 많이 대립한다. 사실 생계 문제는 사람을 가장 사람답지 못하게 괴롭히는 문제다 보니.(…)
  • [27] 대표적으로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 참고. 소칼이 가짜 논문으로 낚아서 의도했던건 현대 인문학계 학자들, 특히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논리도 없는 말로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지적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도 일리가 있기도 하고. 헌데 사실 소칼이 한 짓에도 논리적으로 오류가 있다. 논문으로 낚은 건 좋은데, 그건 듀크 대학이 병X이라는 것과 함께 앤드류 로스 등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한 과학의 문화학,파이어아벤트주의가 학문적 깊이가 얕다는 증거가 될순 있지만, 인문학 전체나 포스트모더니즘 전체가 학문적으로 엉터리라는 논리로 비약시킬 순 없으니 말이다.(…) 어떤 집합 속의 요소 A가 검다고 그 집합 속 요소들이 모두 검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28] 다만 그럼에도 논쟁은 남는데, 객관적인 진리가 과연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두 분야가 완전히 태도입장이 다르기 때문. 당연히 과학은 있다고 보겠지만, 인문학은 없다. 상대적이다.라고 볼 것이다. 근데 이 말도 수식하는 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찰을 통해 살펴보면 객관적 진리가 발견된다그것이 초래할 결과로 미루어보면 특정 집단의 관점에 따라 진리는 상대적으로 정의된다.로 차이가 있다. 애초에 전제조건부터 꽤 차이가 있다. 과학이 과거지향적(일어났던 일에 대한 사실)이라면, 인문학은 미래지향적(일어날 만한 일에 대한 예상)이다. 과학이 존재론에 초점을 맞춘다면, 요즘 인문학은 윤리학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 [29] 그리고 여기서 너무 경도되어서 파이어아벤트처럼 과학 전체를 이성중심주의로 몰아붙이고 유사과학도 또다른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인문학자들이 선빵을 때린 것도 있다... 과학자 입장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인문학이라 착각하고뭐라고? 다 공격하는 것.
  • [30] 과학계에서 예를 들자면 대표적으로 명윤리 문제와 동물실험 문제. 그 외 분야에서 예를 들자면 군대의 존재 문제.
  • [31] 진성 인문학도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문학 열풍은 똥폼에 취한 뻘짓거리나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평생을 바쳐서 공부를 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깊이가 깊은 학문이다. 그런데, 고작 그런 콘서트 몇 번으로 인문학을 이해한다? 지랄도 풍년이라고 골백번 욕을 퍼부어도 시원치 않은 소리다.
  • [32]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게이오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경영학대학원을 수료했다.
  • [33]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2년 공부한 뒤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