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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최종 변경일자: 2018-08-29 03:29:57 Contributors

관혼상제
관례혼례상례(장례)제례

葬禮
Funeral(Ceremony)

목차

1. 개요
2. 현대 한국 사회통념
2.1. 참조 : 한국 장례 문화에 스며든 일제의 잔제
2.2. 인터넷 데이터
3. 동물과 인간의 장례
4. 장례방식
5. 종교별 장례방법
5.1. 불교
5.2. 유교
5.3. 그리스도교
5.4. 조로아스터교
5.5. 유대교
5.6. 이슬람교
6. 기타 장례방법
7. 장례식 풍경
7.1. 서브컬쳐에서의 장례식 풍경
7.2. 문상방법
7.3. 조의금

1. 개요

죽은 자를 위해 치러지는 의식.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시신이 위치한 곳을 무덤이라고 한다. 지방, 문화권, 종교 교리에 따라 그 방식과 절차가 다르다.

2. 현대 한국 사회통념

현대에 이르러서도 관혼상제 중에서 혼례와 함께 난이도가 극악하기로 손꼽히는 의식이다.(…) 과거에는 장례에 필요한 모든 절차적 지식과 풍습들을 가문의 연장자에게 전수받는 형태였으나, 점차 사회가 핵가족화되고 세분화되면서 이 역할이 시장으로 넘어가며 상조회사가 생겨났다. 상조의 폐해는 항목 참조. 그래서 장례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하지 않았어도 상조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장례식장에는 전문 장례지도사(장의사)들이 상주하므로 그냥 장례식장만 가면 장례식장의 의전팀장이 알아서 다 해준다. 장례식장의 장례지도사들은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을 받은 전문가들이다. 장례식장에는 사장을 포함한 전직원이 반드시 국가장례지도사이도록 입법화되어있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콘티를 짜주며, 시키는대로만 하며 되지만 아주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 절차를 결혼식장에서 전부 도와주지만 신부와 신랑이 넋놓고 있어도 되는게 아니듯이. 특히 상주는 슬플 여지도 없이 매우 바쁘다. 3일장을 치루는 동안, 장례지도사는 휴식은 커녕 수면 시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토나오게 바쁘다. 당연하지만 3일간 장례지도사들은 장례식장에서 외박해야하며 집에 가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 365일 일하는데다 시신을 만지는 더러운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살인적인 근무시간과 환경, 최저시급을 겨우 받는 수준, 웬만한 3D업종 빰치는 탓에 꺼려지는 직종이다. 이는 상조회사가 더욱 악독하다고 한다.(…) 대학의 장례지도학과가 줄줄이 문을 닫는 추세다.

장례식을 치르거나 상주가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국가유공자나 기초생활수급자는 그에 알맞은 증명서를, 또한 의사에게 공식적으로 발급받은 고인의 사망증명서를 반드시 장례식장에 제출해야한다. 관, 유골함, 수의, 화장터, 납골당 역시 장례식장에서 알아서 카탈로그로 가지고 있다. 맨손으로 찾아가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단, 매장은 수목장림등이 아니라 개인적인 매장터가 필요한 경우 직접 산역꾼[1]을 고용해야 한다.

미리 수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식의 경우 한분의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는 20~30가지의 물품과 옷이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수의를 만드는 사람들은 전문 장례지도사가 아니기 때문에 무슨 무슨 물품이 들어가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상주가 가져온 수의로는 서양식 복장 혹은 특수직업 종사자 (군인, 성직자 등)가 아닌 한 장례를 치룰 수가 없어(물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수의는 그대로 쓰레기가 되고 정식 수의를 다시 구매해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수의를 팔기 위해 트집잡는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부족한 물품으로는 아예 장례를 치룰수가 없다. 부케도 면사포도 신부화장도 신부헤어도 없이 코르셋도 속치마도 없이 드레스만 덜렁 입은 결혼식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수의를 한국식이 아닌, 정장이나 드레스, 교복, 평상복 등 서양식 복장으로 할 경우에 한해 생전에 정장이나 드레스 등을 입는 절차 및 겉옷/속옷이 동일하고 한국의 장례식장에는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이 경우 수의로 사용할 겉옷과 팬티, 브래지어 등 속옷, 양말/스타킹, 신발 등은 반드시 가져가야된다. 보통 수의가 서양식이라고 하면 고인이 외국인이거나, 한국인임에도 한국식 수의를 입기 싫다는 유언을 남기는 등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고인이 성직자 (스님, 신부 등), 군인 등 특수직업 종사자[2]인 경우에도 해당하는 수의를 반드시 챙겨야한다.[3]

즉, 사망진단서[4]를 가지고 고인의 시신을 운구하여[5] 장례식장에 가기만 하면 된다. 장례식장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알아서 해준다. 여기서 상조의 무의미함과 폭리를 알 수 있다. (…)

개인이 준비해야 할 것은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 뿐이다. (그것도 자연사가 예상되는 사람의 경우 일정 시기에 본인들이 알아서 사진을 찍는다.) 영정사진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확대하여 영정사진으로 대용한다.

2.1. 참조 : 한국 장례 문화에 스며든 일제의 잔제


상장과 완장, 꽃장식, 삼베 수의는 일본 식민통치의 산물이다.

1934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에 따라 눈에 띄게 변한 건 상복이다. 전통 상복인 굴건제복(屈巾祭服·거친 삼베로 만든 옷)을 생략하고 두루마기와 두건을 입도록 만들었다. 유족이 한복이나 일본 전통복장을 입었을 때 왼쪽 가슴에 나비 모양의 검은 리본을 달도록 했다. 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왼쪽 팔에 검은 완장을 달게 했다. 이것이 상장(喪章)과 완장의 시작이다. 상장과 완장은 항일인사들이 장례식에 모여 집회를 열지 못하도록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복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69년 ‘가정의례준칙’은 삼베로 만든 상장을 가슴에 달도록 규정했다. 2009년 ‘건전 가정의례준칙’에도 상장 조항이 있다. 완장은 가정의례준칙에선 빠졌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았다.[6]

장례식장의 꽃도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 26년 순종 국장 장례식 사진첩에 따르면 영좌 주변에 화환이 놓인 장면을 볼 수 있다[7] 국내전통장례에 사용된 꽃은 수파련(水波蓮)이라고 상여에 다는 종이꽃이 전부였다. 헌화나 화환 문화가 서양에서 비롯된 것이라 치더라도 요즘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는 꽃 장식은 100% 일본식이다. 우리 전통은 영좌 뒤에 병풍을 치는 것이었다.

삼베 수의가 전통 수의(壽衣)의 대표가 돼버린 배경에도 일제가 있다. 우리 전통은 수의는 생전 입던 옷 가운데 가장 좋은 걸로 마련하는 거였다. 그래서 묘 이장(移葬) 과정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수의를 보면 화려하다. 대개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어졌다. 부모를 여읜 자식이 ‘나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삼베 상복을 입었다. [8]

2.2. 인터넷 데이터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장례절차 중에 고인의 생전 인터넷 활동기록이나 데이터도 함께 처분해야 한다는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고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카페 가입내역, 각종 사이트 계정, 기타 등등의 흔적들을 일일이 찾아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태. 간혹 유족의 결정으로, 또는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지우지 않은 흔적은 하나의 작은 분향소(?)가 되어 네티즌들의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그 유족들에게는 중요한 문제.

또한 이와 유사하게 소위 "디지털 유산" 에 대하여 상속권을 요구하면서 법정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즉 남겨진 고인의 정보들을 보호해 주거나 내지는 삭제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까운 가족들에게 유산상속 개념으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을 흔히 "잊혀질 권리 논쟁" 이라고도 하며, 국내에서도 의외로 발빠르게 법제화 논의를 밟고 있는 중이다. # 일부는 그것들에 대한 당연한 상속을 주장하지만, 고인의 사생활일 수 있는 디지털 유산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고인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태. 유럽에서는 이미 이러한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이며, 디지털 장의사라고 하여 고인의 가입정보 및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지워 주는 직업도 등장했다.

3. 동물과 인간의 장례

흔히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사망자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면서 다루기도 한다.[9] 동물도 지능이 있으면 죽음 자체를 인식하긴 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물들 역시 제대로 된 의례는 아니지만, 시체를 그대로 버리지는 않기도 한다. 코끼리의 경우, 건기에 새끼가 견디지 못 하고 죽으면 뼈를 냄새맡고, 모여서 애도한다. 죽은 동료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지 않은 동물들의 특성이나, 엄밀히 말하면 인간만의 특별한 장례라 한다면 역시 "의례로서의 장례" 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는 네안데르탈인이 최초의 매장풍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왜 이와 같이 매장이라는 새로운 행위를 했느냐에 대해서는 몇몇 의견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 망자의 시신은 썩은 고기를 먹는 육식동물들을 네안데르탈인의 거주지로 유인하는 미끼 역할을 했기에, 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시신을 땅 속에 묻는 행위가 나타났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후 시간이 흘러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면서 비로소 현대적인 의미의 장례라 할 수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동굴 밖 따로 지정한 곳에 망자의 시신을 묻고, 망자가 생전에 즐겨 사용하던 석기 도구류, 망자가 생전에 즐겨 착용하던 장신구 종류를 시신과 함께 묻어 주었다고. 즉 망자의 소유물이나 재산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죽어서까지 사용하라고 함께 넣어 준 것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들에게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까지 있었는지는 딱 잘라 확신하기 어렵다.

4. 장례방식

  • 국장(國葬) - 국가원수(대통령, 국왕, 수상 등) 또는 국가에 헌신하여 순국한 위인들을 추모하는 장례식.
  • 사회장(社會葬) - 사회에 헌신하거나 공헌 또는 공로를 인정받은 사람 또는 사회 유명인사를 추모하는 장례식.
  • 가족장(家族葬) - 가정 또는 가족중심으로 진행되는 일반 장례식.
  • 그 외 장례방식
    • 회사장(會社葬) - 회장, 사장 등이 순직 또는 사망하였을 때. 경우에 따라 말단 직원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10]
    • 행정장(行政葬) - 시장(市長), 군수, 구청장 및 공무원이 순직하였을 때.[11]
    • 학교장(學校葬) - 교장, 교감, 교사가 순직하였을 때. 경우에 따라 학생이 순직했을 때 하기도 한다.[12]
    • 부대장(部隊葬) - 사령관, 사단장,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 및 특무장교나 특무사관 또는 부사관급 군인이 순직 또는 전사(戰死)하였을 때. 경우에 따라 병사가 전사 혹은 순직했을 때 이루어지기도 한다.[13]

5. 종교별 장례방법

5.1. 불교

불교화장을 주로 한다. 불교의 화장은 장작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종이로 만든 연꽃 등으로 가린 후 불을 놓는다. 종파에 따라서 칠공을 한지로 막고 그 위에 먹으로 눈, 귀, 입 등을 표시하는 법도 존재한다. 이후 유골을 부수어 유골함을 만들고 부도에 안치한다. 덕망이 높은 승려는 생전에 업적을 필적하여 탑에 모셔두곤 한다.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진 사리는 공덕의 표시로 사용되며 유골과 함께 보관되거나 사리와 유골을 따로 안치한다.

이는 신자(신도)가 아니라 스님들의 장례를 치루는 방식이며, 불교 신자의 경우에는 유교 장례 방법과 같은 방식으로 장례를 치루되 나무로 된 염주[14], 다라니경을 관에 넣거나 명정[15]에 연꽃을 그려넣는다. 고인이나 유가족과 친분이 있었던 스님들이 빈소에서 경을 외는 일은 있으나 기독교(천주교)와 달리, 염습이나 제사를 지낼 때에 스님이 제례를 주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간단히 말해 유교와 장례 방식은 같되, 입관에 쓰이는 물품이 조금 다르다.

5.2. 유교

유교매장의식을 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화장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화장 후 매장하는 경우도 많다.

매장 방식이 굉장히 복잡한 편인데,[16]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 큰소리로 죽음을 알린다. 이를 '부음'이라고 한다. 사극이나 중국역사드라마에서 황제나 큰 인물이 죽으면 내관이 지붕에 올라가 웃옷을 흔들면서 죽음을 알리는것이 이것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시신을 잘 씻기고 수의로 갈아 입힌 후 가지런히 수습한다. 이를 '염습'이라고 한다. 이후 염습한 시신을 3일 혹은 5일간 살아 있는 이와 같이 대한후 관에 집어넣는데 이것을 '입관'이라고 한다.

입관후 처음 제사를 올리는데 이것이 '초상'이다.

그 후 관을 상여에 옮기고 장지(시신을 매장할 위치)로 가기 전에 하는 의식을 '발인' 이라고 한다. 그 후 죽은 사람과 깊이 관련 있는 곳을 둘러보는데 이것을 '노제'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발인 전날을 일포라 하여 일포날 문상을 간다.

그 후 무덤을 파고 관을 넣은 뒤 흙을 다져 봉분을 만드는 것을 '달구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후 1년이 지나 처음 돌아오는 기일에 지내는 제사를 '소상'이라고 한다. 대개 이날을 기하여 탈상을 한다.

죽은 뒤 1년 또는 3년 간[17]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18]를 지내고 그 기간 동안 베옷을 입었으나 최근에는 흰 천 등을 옷에 달아 상중임을 표시하거나 간소화하여 초상까지만 표시한다. 상례 시간을 벗어나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의례를 '탈상'이라 하는데, 전통적으로는 대상을 지낸 뒤 몇 달 뒤에 이를 행하였다.[19] 현재는 달구질까지 제사를 지내고 49재[20]때 탈상을 하기도 한다. 삼우탈상이라고 하여 장례를 치른 후 사흘 뒤에 탈상하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장례식을 치른 당일에 탈상하기도 한다.


5.3.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교파별 의식에 따라 다르지만 성직자가 집전한 뒤 시신을 매장하고 묘비를 세우는 매장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장도 부활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여 존중하는 추세다. 장례에 대해서는 교파별로 명칭이 다르다.

기독교 일각에서는 장례예배라는 표현 자체가 교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예배의 목적은 어느 때나 절대자에 대한 것이어야지 특정 개인을 주인공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개신교계의 주류는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것이다. 비신자의 사망에 있어서도 가족이 신자일 경우 가족의 요청을 받아 목사가 장례예배를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한국 천주교에는 연도라는 고유한 장례 의식이 있는데, 전통적인 장례 예식과 천주교의 위령기도가 결합하여, 특유의 가락에 맞춰 시편과 성인호칭기도 등을 이어 바치며 망자의 안식을 기원하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식의 장례예식에서는 장례미사는 발인 때 장례의 마무리 느낌으로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내고, 장례의 처음부터 발인할 때까지는 자녀와 문상객들, 성당 연령회를 중심으로 한 같은 성당 신자들이 돌아가며 연도를 반복하는 것이 장례 예식의 중심이 된다. 현재의 양식이 정립된 시기가 무려 18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천주교만의 독특한 기도 양식으로 손꼽힌다.

또한, 근대 이후 엠버밍 기술의 부활 및 발전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5.4.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불에 더러운 것을 태우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여겨서 이나 조장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런 장례의식은 많이 쇠퇴하였다.

5.5. 유대교

부활교리에 의거하여 동굴에 시신을 모신 뒤 시체가 썩으면 그 유골을 관에 담는다. 성경에 나와있는 예수 역시 이 장례방식을 따랐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였다고 한다.

5.6. 이슬람교

마찬가지로 부활신앙에 따라 땅에 시신을 모시는 매장을 하는데, 염을 한 시신에 수의를 입혀 무덤안 묘실에 모신다. 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터키의 장례문화를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고인이 사망하면 의사를 통해 사망을 확인하고, 가까운 모스크에서 이맘을 불러서 장례식을 준비한다. 다만 이곳 풍습이 유교식 매장례와 달리 최대한 빨리 매장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기때문에, 부고를 요란하게 돌리지는 않으며 대개 아침에 죽은 사람은 그날 저녁에, 저녁에 죽은 사람은 다음날 아침에 매장하는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고인의 친족이라 할지라도 타지에 나가있으면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흔하다.

장례식은 모스크에서 예배후에 치뤄지며, 이때 이맘은 모인 조문객들에게 "고인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라고 묻는데 조문객들은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세번 대답한다. 상갓집에서는 헬와라는 달콤한 과자를 대접하는데, 상갓집 일손이 바쁠때면 고인의 이웃들이 과자와 음식을 준비해서 부조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영결식 전에는 조문객들과 유족들이 다함께 모여서 헬와를 만들어 나눠먹는데, 헬와를 만들때 냄비속의 헬와를 한 사람씩 나와서 숫가락으로 저으며 "그는 생전에 내 빚을 탕감해주었다."와 같은 고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나누며 추모하는 의식을 한다. 이때 울거나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금물인데, 사람이 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데다가 지나치게 슬퍼하면 고인에게 누를 끼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결식때는 남자들만이 장지로 향하며, 묘지에는 널판을 깔고 시신을 관 없이 안치한 다음에 널판으로 그 위를 잘 덮고 그대로 흙으로 덮는다. 봉문은 대개 관모양으로 돌벽을 쌓는식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생전 고인의 지위를 본딴 '터번' 모양의 비석을 세웠지만, 오늘날은 고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쿠란의 구절을 담은 비석을 세운다. 장례식이 끝나면 다시 한번 조문객과 고인의 이웃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열고 상복은 입지 않는다.

6. 기타 장례방법

매장된 시신 근처에 나무를 심는 목장이 있다.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유골(뼛가루)을 고인이 생전에 가장 가고 싶어하던 곳에 뿌려주는 형태가 있지만 아무데나 뿌리는 건 불법이다.

스웨덴에서는 빙장(氷葬)이 개발되었다. 시신을 액체질소로 얼려서 작은 입자들로 만든 다음에 매장한다. 이렇게 매장한 유골의 완전분해는 1년이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화장과 달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며, 토양의 오염도 적어서 친환경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녹색장이라고도 한다.

티베트에서는 시신을 토막내어 독수리들에게 주는 조장을 시행한다.[21] 이를 두고 야만적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는 지리적 특성에 의한 문화적 특징이니 이해해야 한다. 산지라서 땅이 거칠어서 제대로 파기도 어려워 매장할 수도 없고 나무가 없어서 화장도 하기 힘들기에 택한 장례 문화이다. 예전에 몰지각한 외국인들이 이 장례식을 마구 촬영한 후 야만적이라 어그로 비난하기도 했지만 해외 다큐멘터리로 알려져서인지 요즘은 그런 비난이 없어졌다.[22] 더불어 이 조장은 티베트 말고도 과거 흉노나 미국 원주민들, 많은 지역에서도 흔한 장례[23]였다. 또한, 그들은 시신을 먹은 독수리가 하늘을 날면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간다고 믿는다.

그 밖에도 극지방 이누이트들은 똑같이 죽은 사람을 북극곰에게 줬다. 여기도 추운 지역이라 시체를 묻을 수도, 묻어봐야 썩지 않고 땔감도 없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기에 생겨난 장례였다. 이쪽도 곰에게 시신을 먹힌 사람은 곰으로 다시 태어나고, 그 곰이 사람들에게 사냥당해 먹히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어느 섬에서 죽은 이를 깨끗히 씻은 다음에 먹는 식인 장례도 있었다. 백인들이 이걸 야만스럽다고 비난하자 현지인들은 그러는 늬들은 시체를 어찌 장례하냐고 하기에 묻거나 태운다고 답변하자 구역질난다는 투로 "아니? 죽은 시신을 묻어서 벌레들이나 먹히고 썩히는 게 그렇게 자랑스럽냐? 아니면 시체가 무슨 땔감이냐? 불로 태우게? 너희들이야말로 야만적이다!" 라고 아연실색하는 통에 백인들이 멍때렸다는 일화도 있다. 어찌 보면 자문화 중심주의의 폐해.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장례방식으로 '풍장'(風葬)이란 것도 있다. 시신을 외딴 곳에 방치해 썩게 놔두는 방식으로, 위의 조장과 다른 점은 짐승이 함부로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높게 지은 오두막에 시신을 안장하고 거적 등으로 가리거나 또는 동굴, 높은 나뭇가지 위 등의 장소에 시신을 안장한다.

형벌 중에서는 죽은 후 장례를 금지시키는 형벌도 존재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사형수인데 사형으로도 죗값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되는 범죄자에게 내리는 극악무도한 형벌이였다. 소포클레스의 희곡 <안티고네> 역시 반역자인 오빠의 시신에 장례를 치러주는 것을 외숙부 크레온이 금지하자 이에 안티고네가 반발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갈등 구조.

고대에 순장이라는 잔인한 장례가 있었다.

7. 장례식 풍경

어느 외국인 기자가 우리나라의 장례식장을 직접 가 보고 "축제와 같은 느낌이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하긴 그냥 암울한 분위기의 다른 나라의 장례식과는 달리, 육개장수육소주 등을 먹고 마시면서 한쪽에서는 화투를 치고 있고[24] 밖에서는 윷놀이를 하고 있고. 서로 싸우고(...), 웃고, 울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나보다. 이러한 한국 특유의 장례 분위기를 소재로 다룬 장편소설 <축제(祝祭)>가 있다(임권택 감독의 동명의 영화의 원작). 실제 진도에서는 '다시래기'라 하여 출상 전날 밤에 춤추고 노래하면서 논다. 일종의 재담극.[25] 뿐만 아니라 출상 때에도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상여를 따라간다. 꽹과리 등 악기 필수.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장례식에서 너무 슬퍼하는 것도 돌아가신 분 및 유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슬퍼해야 하는 유족들도 애써 손님 맞이를 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너무 슬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에 와서 가족들과 조문객들이 너무 슬퍼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이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되어서 쉽게 저승으로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즐겁게 놀면서, 저승에 가서도 즐겁게 잘 지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노환연사로 사람이 편히 죽으면 호상(好喪)이라 하여 장례식 분위기를 밝게 하는 게 예의이다. 조선 시대에도 장례 후에 장구 치고 북 치면서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있었다. 만약 친가족이 아닌 먼 친척이나 지인의 장례식에 가게 되면 아무리 슬프더라도 적당히 슬퍼하고, 만약에 호상[26]이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가벼워질 테니 적당히 웃자.

참고로 노환으로 죽은 사람의 장례식 풍경이 의외로 가벼워지는 것은 서양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장례식에서는 친척들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이 예의상 참가하므로 가족끼리 오랜만에 만나기도 하고 수십년만에 친구를 만나기도 하니[27] 의외로 분위기가 가벼워진다.

를 매고 가면서 부르는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상여소리가 유명하다.


2002 월드컵 때는 한국 팀이 4강에 가자, 상갓집에서 춤추고 만세를 부르는(...)고인드립이라지만, 돌아가신 분들도 관속에서 월드컵을 보고 저승에서 같이 만세를 했을 것이다. 난리법석이 벌어진 것이 TV 뉴스를 타기도 했다.

필리핀에서는 상갓집에서 노름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동네에 장례식이 열리면 그 쪽으로 몰려가서 도박판을 벌인다. 물론 판돈 중에 일부는 걷어서 부의금으로 상주에게 전달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관이 묘지 안으로 들어갈 때 문상객과 유족이 손뼉을 치고 환호를 한다고 한다. 진정한 고인드립 그 이유는 고인이 그동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현실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천국으로 간다고 믿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을 축하하는 뜻이라고.

아프리카 남부의 장례식도 일종의 축제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즐겁게 노래를 부를 모습이 보여지는데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7.1. 서브컬쳐에서의 장례식 풍경

장례식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가 죽었다는 뜻이므로 스포일러 주의하자.

  • 마마마 : 미키 사야카의 장례식에 카나메 마도카가 참석한다. 눈 부분이 잘린 미키 사야카가 미소짓는 흑백 영정사진이 인상적이다. 이 때 흐르는 bgm은 쿄코 테마곡인 anima mala... 그 때 마도카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보고 무언가 심상찮은 것을 짐작한 마도카의 엄마 카나메 준코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계기가 된다.

  • 시문 : 마미나의 장례식 당시 귀족 출신이 아닌 아엘 등의 시뷰러들은 같은 콜임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할 수 없었다. 마미나의 유해를 운송하던 시빌레는 적국의 공격을 받아 추락하고 마미나의 시체는 관에서 빠져나와 꽃밭에 떨어지는 연출이 나온다.

  • 스파르타쿠스(드라마) : 여기에서는 화장을 주로 한다. 바티아투스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훈련소 공터에 화장할 준비를 갖춰 놓은 후 피와 함성으로 고인을 천국에 보내겠다며 고인의 시체가 불타는 동안 검투사들이 격렬한 검투를 벌인다. 스파르타쿠스의 아내 수라나 바로 역시 화장을 했다.

  • 스프링 어웨이크닝 : 학교 진급 시험에서 낙제를 한[28] 모리츠가 자살을 해 그의 학교 친구들과 마을 소녀들, 모리츠의 아버지와 멜키어의 어머니가 장례식에 참석한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 멜키어가 장례식을 지켜보며 Left Behind를 부르는데, 넘버 막바지에 멜키어가 모리츠 아버지의 가슴에 손을 얹자 모리츠 아버지가 오열을 터뜨리는 것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 참고로 원작 희곡인 사춘기[29]의 해당 장면에서는 어른들이 자살한 모리츠에 대해 악담과 저주, 비아냥을 흘리고 심지어 아버지마저 그 놈은 내 자식이 아니었다는 대사를 한다. 흠좀무.

  • 은하영웅전설 : 제국측 장례식에서는 저승사자 파울 폰 오벨슈타인이 거의 항상 장례를 맡는다.[30] 정작 그 오벨슈타인의 장례식은 작중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 전에 애니가 끝난다 그 날 국장를 치를 또 다른 사유가 발생했으니 오벨슈타인의 장례따윈 아웃오브안중이다 양 웬리의 장례식에는 적장 나이트하르트 뮐러가 와서 경의를 표했다. 후반에 죽은 인물은 렌넨캄프 같은 조연에 가까운 인물에도 장례식 풍경이 등장한 반면, 초반에 죽은 키르히아이스나 장 로베르 라프 등의 인물은 주연에 가까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장례식 풍경이 싹 잘려 있다 (...)그 사례가 아니더라도 죽어 나가는 주요 인물이 너무나 많은 작품의 특성상 시기가 안좋다면 장례식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 셜리 페넷의 장례식에 그녀의 학교 친구들이 참석한다. 이 때 아냐 아르스트레임의 상복이 심히 인상적인데, 원래 나이트오브라운즈 의상에서 팔레트 스왑만 흑백으로 한 의상을 입고 있는지라 장례식에서 배꼽을 노출한 핫팬츠 차림을 하고 있게 되었다 (...)

  • 후궁견환전 : 심미장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연인인 온실초가 감히 영전에 똑바로 서지 못하고 안쓰럽게 상체만 빼곰히 내밀고 쳐다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후 옹정제(후궁견환전)의 장례식에서는 후궁들의 흰 옷과 은색이 주가 된 대랍시, 가자두를 감상할 수 있다. 흰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태감과 흰색으로 포장한 듯한 자금성 분위기도 감상포인트.

  • 흑집사 : 장의사가 동네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마지막이자 최고의 세레모니, 장례식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7.2. 문상방법

1. 장례식에 참여할 때는 상주를 만나기 전에 정장 상의를 제외한 외투와 모자를 벗는다.[31]
2. 상주에게 목례를 하고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3. 국화가 아닌 분향일 경우 오른손으로 향을 잡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친 상태에서 초로 불을 붙이고 향로에 꽂는다.[32]
4. 일어나서 영정에 두 번 절을 한다. 이때 상주의 종교에 따라 절을 하지 않는 경우 묵념을 한다.
5. 영정에서 물러나서 상주와 맞절[33]을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종교에 따라 고개를 숙여서 예를 표하는 경우도 있다.
6. 평소 안면이 있는 경우 상주에게 짧은 위로의 말을 하되 고인과 관련된 질문은 삼가야 한다.
7. 끝나고 나올 때는 두세 걸음 뒷걸음질로 물러난 뒤 몸을 돌려 나오는 것이 예의이다.

이는 기본적인 절차이고, 기본 티켓 정도로 알아두면 좋다. 처음 문상을 가는 경우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대게 고인을 찾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지 실수를 가지고 흠을 잡는 상주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른들도 '이런거 잘 안 해보니까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다만, 위 항목에서 설명한 호상이나 잘 돌아가셨다 같은 말은 절대 함부로 꺼내지 말 것. 이후 상주나 그 가족들의 안내를 받아서 식사를 대접받고 나오면 된다. 그리고 당연히 알겠지만, 아는 지인을 상갓집에서 만났다고 하더라도 건배는 하면 안 된다.

7.3. 조의금

조의금 봉투에 이름을 쓸 때는 '조의(弔儀)' 또는 '부의(賻儀)'라고 적힌 봉투 왼쪽 끄트머리에 이름을 세로로 적는다. 조의금을 낼 때는 헌 지폐로 내는 것이 좋다. 새 지폐는 축하의 의미가 있어 고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서이기 때문에, 새 지폐를 내야 할 경우 한두 번 접어서 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액수의 경우 기본은 집안 사정을 잘 생각해서 내주어야 한다. 나중에 조의금을 낸 사람의 집에 일이 생겼을때 어느정돈 금액을 맞춰서 주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무작정 많이 내면 부담스럽기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축의금과 마찬가지로 홀수 액수에 10 단위가 넘어가면 10,20,30 순으로 맞춰서 내는 것이 좋다. 학생은 어른 대신 온게 아니라면 자기 돈으론 내지 않아도 된다.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게 상주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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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관을 묻기 전에 미리 매장터에 가서 산신제를 지내고 포크레인 등으로 땅을 파두는 직업. 개장·이장 전문이라는 현수막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산역꾼이다.
  • [2] 사망 당시 현직에 한함.
  • [3] 군인의 경우 각 군 규정에 있는 최상급 피복군용속옷이 지급된다고 한다.
  • [4] 장례식장, 화장터, 봉안당, 상주 및 유가족의 결석계 등 수많은 곳에서 요구하므로 사망진단서(사망신고서)를 최소 10장은 구비하자.
  • [5]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를 보내주기도 하고 그냥 앰뷸런스를 부르면 된다.
  • [6] 박태호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은 “최근엔 아예 완장이 군 계급장처럼 변질됐다”며 “넉 줄 완장은 맏상주가, 석 줄은 나머지 아들들이, 두 줄은 사위가, 한 줄은 손자·형제 등이 각각 차는 게 마치 전통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 [7] 이철영 을지대 교수(장례지도학)는 “영좌를 꽃으로 장식하는 건 일본 문화”라며 “80년대 일본의 상조문화가 부산에 처음 상륙했을 때 꽃 장식이 함께 유입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장례업자는 “장례업계에선 매년 일본 전문가를 불러오거나 일본으로 건너가 최신 꽃 장식을 배운다”며 “요즘 꽃 장식이 더 화려해지고 있는데, 이 역시 일본을 따라 한 것”이라고 말했다.
  • [8] 박성실 단국대 명예교수(의상학)는 “조선의 일부 극빈층이 삼베 수의를 썼을 수도 있지만 현재 발굴된 건 없다”며 “수의가 생전에 입던 옷이라 목덜미나 소매에 때가 탄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9] 실제로 연세대학교 수시 논술로 출제되기도 했다(...)
  • [10] 임기 또는 현역에 한정하며 임기종료로 인한 전임자나 이임자 및 퇴임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 [11] 임기중 순직한 자에 한정하며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전직 행정수반이나 전직 공무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 [12] 임기중 순직한 자에 한정하며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 및 이임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 [13] 임기 및 현역자에 한정하며 전역자 및 퇴역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 [14] 옥이나 돌로 되어 타거나 썩지 않는 제품은 관에 함께 넣을 수 없다. 불법이다.
  • [15] 관을 덮는 붉은 천. 관보(관싸개)와 별개의 물건이며, 위에 고인의 성명이 한자로 적혀져 있다.
  • [16]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 배운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묵자가 이를 비판하고 맹자가 반박한다. 묵자vs맹자는 윤리와 사상에서 흔하디 흔한 떡밥이다.
  • [17] 1년간 치르는 것을 소상, 3년간 치르는 것을 대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3년은 사실 햇수로 3년이지 실제로는 만 2년을 의미한다. 예송논쟁 할 때 헷갈리게 만드는 주범.
  • [18] 삭망제(朔望祭). 각각 삭제와 망제로 엄격히 구분하기도 한다.
  • [19] 보통은 25개월, 혹은 27개월째에 하였다. 만 2년을 넘어 3년차인 해에 탈상했기 때문에 3년상이라고 불렀다.
  • [20] 제(祭)가 아니라 재(齋)다! 항목 참조.
  • [21]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글판에서 생생하게 촬영한 바 있는데 그야말로 원초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참 특이하게도 독수리들이 사람이 죽으면 알아서 모이고 시신을 가지고 오면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시 잡지에선 조장이 아니라 천장(天葬)이라고 부른다고 나온 바 있다.
  • [22] 한비야도 한 백인 관광객이 조장을 비난하다가 현지인들에게 당신들은 이런 배경이라면 어찌할 건가? 죽은 시체를 그냥 당신의 집안에 두고 방치할 건가? 라는 분노어린 반박을 듣고 데꿀멍하고 그냥 물러선 걸 본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 [23] 소설 <마지막 모히칸>에서도 친구이던 원주민 운카스가 죽자 이렇게 장례를 한다. 이걸 보고 백인들이 야만인이라고 하자, 황량한 배경에서 저것처럼 아름다운 장례는 없다는 주인공(백인이지만 원주민들과 자라났다)의 반론에 백인들은 반론도 못했다.
  • [24] 단적인 예로, 장례식에서 섯다를 하면 10과 4의 "장사"를 제일 높은 족보 "38광땡"보다 패를 더 높게 쳐주는 암묵의 룰이 있다. 상주에게 돈을 빌리면 끗발이 좋다는 속설도 있는데, 이쪽은 아무리 같이 밤샘을 해주는 친구라도 안 좋게 보는 경우가 많다.
  • [25] 중요 무형문화제 제 81호.
  • [26] 대부분의 장례식은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신 분의 것이기 마련이며, 병사(病死)여도 나이가 많아서 병사하였으면 호상(好喪)으로 치루는 것이 관례이다. 주의해야할 것은 장의를 관리하는 이른바 장의사를 뜻하는 호상(護喪)과 겹치기 때문에 사용의 주의를 요구한다. 애초에 돌아가신분에게 잘 돌아가셨다 할 수 있을까?
  • [27] 예를 들어 50넘은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을 30년 넘어서 재회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
  • [28] 뮤지컬 작중의 묘사로 보았을 때, 모리츠를 못마땅하게 여긴 학교 선생들이 부당하게 낙제시켰다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 [29] 혹은 '눈뜨는 봄'(Fruehlings Erwachen)
  • [30] 오벨슈타인의 직책은 신제국 성립 이전에는 총참모장, 그 이후에는 국방부 장관이니 군 고위 간부의 장례를 주관하는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다.
  • [31] 당연한 것이겠지만, 장례식 복장은 검은색 계열의 정장 혹은 단정한 옷이 좋다. 정장 색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넥타이를 검은 색으로 해도 좋다. 다만 화려한 색상의 정장은 입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한정으로 흰색 계열의 옷도 좋다. 학생의 경우 교복을 입어도 좋다.
  • [32] 이때 향에 불꽃이 꺼지지 않을경우 입으로 불어 끄는것을 삼가자. 신경안쓰는 사람도 많지만 예의가 아니라 보는 사람들 역시 많으므로 살짝 흔들거나 왼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끄자.
  • [33] 당연하지만 한 번만 절한다. 두 번은 고인에게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