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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최종 변경일자: 2017-10-07 01:09:51 Contributors

목차

1. 개요
2. 발단
3. 연표
3.1. 개전 이전
3.2. 1939년
3.3. 1940년
3.4. 1941년
3.5. 1942년
3.6. 1943년
3.7. 1944년
3.8. 1945년
4. 주요 전선
5. 참전국
5.1. 연합국
5.2. 추축국
5.3. 중립국
5.4. 중립을 표방하였지만 추축국에게 점령된 나라
5.5. 중립을 표방하였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 나라
6. 전쟁 범죄
7. 참조항목
7.1. 관련 인물
7.2. 관련 용어, 사용 병기, 기타
7.2.1. 병기
8. 생산물
8.1. 1차 생산물
8.2. 2차 생산물
8.3. 게임
8.4. 영화
8.4.1. 서유럽 전선
8.4.2. 동유럽 전선
8.4.3. 태평양 전선(동아시아-태평양)
8.4.4. 아프리카
9. 전후 상황
9.1. 연합국
9.2. 추축국
10. 후폭풍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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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Unknown)]

유럽 전선에서의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최대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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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그림 (197.74 KB)]

태평양 전쟁에서의 추축국(일본) 최대 판도. 두 지도 모두 붉은 색은 추축국에 맞서 전쟁을 하는 나라, 푸른색은 추축국과 추축국에 점령된 나라들이다.

시기 1939년 9월 1일[1] ~ 1945년 9월 2일

내가 유일하게 배우지 못한 말 그것은 바로 항복이라는 말이다. 우리 도이칠란트 역사에 항복이라는 단어가 적히지 않을 것을 온 세계에 선언하노라.
- 아돌프 히틀러

인류 역사상 무적의 군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이오시프 스탈린

우리는 사악한 세력과 맞서 싸울 것이다. 우리의 적은 폭력과 불신과 불의와 억압과 박해다.
- 네빌 체임벌린[2]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 , 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써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 윈스턴 처칠[3]
하지만 처칠에게는 히틀러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처칠은 대영제국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쿠르드족을 학살했고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벵골 대기근의 원인을 제공했다. 처칠은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에 사로잡힌 학살자일 뿐이다.

각하, 제가 확신하건대 폴란드프랑스는 이길 수 있습니다. 다만... 영국소련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전쟁하신다면 독일은 다시 세계 1차 대전 직후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비참한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 얄마르 샤흐트

우리가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사악한 세력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하나는 확실하네. 우린 이제 망했네.
- 프란츠 귀르트너[4]

우리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 파울 요제프 괴벨스
근데 이건 만약 나치독일이 승리했으면 말 그대로 위대한 정치인이 되었을 것이고 패배했다면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니 어떤 결과가 나던 맞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음... 아디(아돌프 히틀러의 애칭), 자네가 전쟁을 벌인 것은 상관없고 전쟁의 과정은 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결과는 쉽게 알겠군. 독일 역사상 최악의 패전을 경험할 거야.
- 안톤 드렉슬러[5]

하아~ 전쟁이라? 이제 우리 나치당도 멋지게 박살날 일만 남았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고트프리트 페더[6]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온 전장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지들, 우리가 해냈소!'
- 베를린 전투에서 인용되어진 한 소련군 참전용사의 어록

황국이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는 바로 오늘날에 있으니, 공들은 기꺼이 백성들보다 앞장을 서서 분노를 새로이 하여 단결을 굳건이 하고 떨쳐 일어나 적국의 야욕을 분쇄함으로써 황운을 무궁히 도울지어다.
- 히로히토

동아시아와 일본의 보호를 위해 많은 군인과 국민이 희생했는데 끝을 보지 못하고 섣불리 화평을 맺는 것은 적에게 종속되는 길이다.애초에 전쟁을 안 일으켰으면 아무도 희생 안되는거였잖아
- 도조 히데키

우리는 승리할때까지, 우리의 두 다리가 정말로 부러질때까지, 설령 우리의 아름다운 땅과 유구한 역사 그리고 중화의 갈망이 피로 물들고 화염에 삼켜져 멸망할지라도 줄곧 싸울 것입니다.
- 쑹메이링

태양에서 나오는 힘이, 이제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옥좌가 있는 땅 일본 전체를 일식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 해리 트루먼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광기에 물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최악의 광란, 그 무대
1939년(혹은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연합군추축국 진영 사이에 벌어진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
좁게는 냉전 시기와 20세기 전체, 넓게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015년과 미래까지 쭉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무후무한 대전쟁.
현대의 모든 것을 규정한 인류 최대의 단일 사건.

제1차 세계대전과 달리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전이었다. 더불어 세계의 역사를 구미열강 중심의 근대에서 미/소 중심의 현대로 넘어가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근대를 무덤으로 보내버린 대사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7] 당장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은 분명 전세계를 휩쓸었지만, 정작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국가는 태반이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과 주변국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 오세아니아(호주)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고, 직접 전장이 되었으며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하와이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전장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해안가나 주요 항로가 추축국 잠수함들의 게릴라전에 시달렸고 미국의 태도도 지난 세계대전에 비하면 매우 적극적이었다. 아울러 한국의 모 철학자는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유럽 국가들끼리의 국지전'으로 치부하는데, 당장 세계지도를 꺼내서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을 색칠하기만 해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거대한 흐름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도 1차 세계대전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할 수는 있다. 큰 흐름으로 보면 1차 세계대전은 2차 세계대전의 에피소드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너무 거대하고 장렬한 에피소드였지만. 어떤 전쟁이든 전쟁은 보는 바와 같이 끔찍하다.

원래 독일의 계획은 폴란드만 공격하는 것이었는데, 폴란드를 공격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세계 대전으로 번졌다. 추축국이 도화선만 준비했다가 불 붙이고 터트린 건 연합국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당시 독일은 이미 오스트리아를 병합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굴욕적인 뮌헨 협정을 체결하면서까지 전쟁을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협정을 어기고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폴란드마저 침공할 경우 선전포고할 것임을 여러 번 히틀러에게 전달했으며, 이를 무시하고 폴란드를 침공한 건 분명 독일이다.

참고로 원칙적인 띄어쓰기제2 차 세계 대전이다.[8]#

2015년 종전 70년이 되었다.

2. 발단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독일의 붕괴, 영국프랑스의 경제적 혼란, 공산주의 세력 확대에 대한 불안 등 매우 복잡한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세계 대공황에 따른 경제 위기로 부상한 파시즘과 이에 따른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독일의 반발 및 일본 제국의 보상심리 등을 원인으로 본다.

추축국 중 일본과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었으나 승전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독일(제2제국)의 경우 1차 대전 중 자국 영토에 한 명의 적군도 들어오지 못한 상황에서 독일 혁명으로 스스로 무너져 버려 유태인공산당뒤에서 칼을 꽂아서 졌을 뿐이라는 떡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추축국의 일방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일단 일본의 경우는 실제 1차 대전에서 거의 한 것이 없는 것 치고는 얻은 게 많았다. 국제연맹 상임이사국, 경제 호황, 예전 독일이 차지했던 산동성의 교주만과 남양군도 등... 따라서 이익이 없었다기보다는 애초에 일본 자체가 경술국치 이래 남을 침략해서 자신의 제국을 팽창하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며, 훗날 30~40년대의 정치적 상황, 경제적 불황 정도가 원인이라고 봐도 되겠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이 대변해주듯이 군대를 동원해서 열심히 싸우긴 했으나, 소수의 적에게 역관광이나 당하고 본토의 일부를 상실하기까지 해서 별로 도움이 된 것이 없었으니 당연하게도 이득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능력도 없는 국가가 땅욕심만 무지하게 많아서 1차대전에 참전하는 대가로 별로 연관없는 터키의 일부 지역까지 요구할 정도였으니...독일의 경우 매우 모범적인 총력전을 이행하고 깨진 결과, 종전시점이 되면 과장 좀 붙여서 곳간이고 창고고 먼지밖에 없고, 남아있는 거라곤 사람과 건물뿐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계속되었다간 연함군이 독일 전역을 무인지경으로 돌아다니며 군화발로 짓밟는 일만 남게 되며, 그 경우 기껏 남아있는 건물과 사람까지 다 털려 아예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니, 그걸 막고자 항복했던것으로 저 '뒤에서 칼을 꽂아서 졌다'는 한마디로 개뻥정신승리.
이렇듯 추축국들의 개전 사유는 상당 부분이 개인 대 개인이었다면 정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로 치부받았을 이유들이었음에도 이를 내세우며 전쟁을 벌인 셈이다. 괜히 악의 축 취급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에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물려 경제가 파탄난 것이 주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독일의 배상금은 크게 두 번의 대규모 삭감과 지급중단 협약으로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다시 말해서 독일이 전후에 몇번씩 열린 전후처리 국제회의에서 독일 : "빚이 너무 많음 징징" → 미국: "그래. 그러면 깎아주지" → 프랑스 등: "절대 안됨. 네버" → 미국: "그럼 니들이 알아서 받아내든가" → 프랑스 등: "알았음.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깎아줄게" 이 루트로 대략 3~4회 반복해서 빚이 대규모로 삭감되었다는 것. 사실상 배상금의 지급중단이 1932년 로잔 협약에서 중단되기로 결정되기까지 독일의 배상금 지급은 1921년 최종 집계된 배상액의 1/8 수준이었다. 그러나 베르사유 조약 이후 1921년 연합국 배상금 위원회에서 200억 마르크였던 배상금이 1921년에 1320억 마르크로 6배나 증액되었다. 이는 이미 패전으로 경제가 파탄난 독일의 지불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며, 독일이 이를 지불하려 하지 않자 1923년에 프랑스는 정말로 알아서 받아내기 위해 자국 군대를 동원하여 루르 공업지대를 점령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많이 경감되었지만 과중한 배상금인 건 사실이었고, 이를 갚기 위해 화폐를 남발한 결과 금 본위제 독일 마르크였음에도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나름대로의 불만도 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적군이며 동맹국중 한 나라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에서 벗어난지 얼마안된 국가로서 적국 오스트리아에 맞설만한 해군력과 끈기로 나름대로 전과를 쌓았고, 오스트리아가 항복 문서에 도장을 찍게 된 결정적 계기도 이탈리아 방면의 전선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선전했다고 할 수 있으나 잦은 패배로 전과가 무시를 당했으니 이탈리아의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던 일본 역시 서양 열강들을 보면서 근대화를 배움과 동시에 같이 배운 제국주의를 토대로 주변국을 침략했다.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국주의식 침략과 공격적인 태도가 아직 남아있던 시대였기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었던 것을 발판 삼아 더욱 식민주의에 박차를 가하면서 기존 강대국으로의 확장도 생각했던 듯 싶다.

이탈리아와 일본이 나름대로의 시간을 보낼 동안 미국에서 도스 안(Dawes Plan)이 1924년에 통과되어 독일로 대량의 미국 차관이 들어오고, 그 후 약 5년간 독일의 경제는 호황을 누렸지만 세계 경제가 망했어요. 이후 독일은 혼란에 빠지고, 공산주의자가 득세하기 시작한다.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은 이 틈에 끼어들어 대체로 공산주의자를 때려잡아 보수층에게 어필하며 세력을 모았다. 결정적으로 보수의 거두 프란츠 폰 파펜이 쿠르트 폰 슐라이어를 견제하기 위해 파울 폰 힌덴부르크까지 설득하며 기어이 1933년, 아돌프 히틀러총리로 만들어줬다. 그렇게 나치당은 날개를 달았다.

이후 독일의 라인란트 재무장, 오스트리아 병합, 뮌헨 협정, 체코슬로바키아 병합에 대해 주변국은 적절히 대처하지 못 했다. 마침내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개시하자 폴란드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영국,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의 막이 올랐다.

3. 연표

3.1. 개전 이전

3.6. 1943년

5. 참전국

기준은 제2차 세계대전 개전부터 종전까지 한 번이라도 선전포고를 한 후 연합국이나 추축국에 가담한 국가를 기준으로 한다.

해당 기준이 만들어진 이유는 전쟁의 상황에 따라서 연합국과 추축국에 소속된 국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단 양자 모두 국가에 따라서 전쟁에 뛰어든 시기가 다르며, 연합국은 나중에 줄서기로 가담한 국가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5.1. 연합국

국가 참전일 참전계기
중화민국[14] 1937년 7월 28일 일본의 기습적인 선제침략, 중일전쟁
몽골 1939년 5월 11일 일본과 만주국에 대한 기습공격, 할힌골 전투
폴란드 → 폴란드 임시정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선제침략, 폴란드 침공
프랑스자유 프랑스 1939년 9월 3일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영국 1939년 9월 3일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오스트레일리아 1939년 9월 3일 본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뉴질랜드 1939년 9월 3일 본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영국령 인도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네팔 1939년 9월 4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15]
남아프리카 연방[16] 1939년 9월 6일 본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캐나다 1939년 9월 10일 본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노르웨이 1940년 4월 9일 독일의 선제 침략, 노르웨이 침공
네덜란드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벨기에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룩셈부르크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체코슬로바키아 임시정부 1940년 7월 18일 독일에 강제병합된 본국 탈환 노력
그리스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의 선제 침략, 그리스 침공
소련 1941년 6월 22일[17][18] 독일의 선제 침략, 독소전쟁
탄누투바 1941년 6월 25일 종주국(소련)의 전쟁 수행에 합류
몽골 1941년 8월 9일 종주국(소련)의 전쟁 수행에 합류
파나마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미국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기습 공격, 진주만 공습
코스타리카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도미니카 공화국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엘살바도르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아이티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온두라스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니카라과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과테말라 1941년 12월 9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쿠바 1941년 12월 9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대한민국 임시정부[19] 1941년 12월 10일 일본에 강제병합된 본국 탈환 노력, 중화민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하지만 정식정부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이기에 끝내 승전국 대접을 받지 못했다.]
멕시코 1942년 5월 2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브라질[20] 1942년 8월 22일 U-Boat의 자국상선 공격에 격분하여 참전
선독립동맹[21] 1942년 7월 10일 일본에 강제병합된 본국 탈환 노력, 중화민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에티오피아 1942년 12월 14일 영국군에 의해 독립한 후 참전
볼리비아 1943년 4월 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콜롬비아 1943년 7월 26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라이베리아 1944년 1월 2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페루 1944년 2월 1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조선건국동맹[22] 1944년 8월 10일 일본에 강제병합된 본국 탈환 노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투쟁 수행에 합류[23]
산마리노 1944년 9월 21일 연합군에 의해 보호받은 후 참전
알바니아 1944년 10월 26일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 참전
바하왈푸르[24] 1945년 2월 2일 종주국(영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에콰도르 1945년 2월 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파라과이 1945년 2월 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우루과이 1945년 2월 15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베네수엘라 1945년 2월 15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터키 1945년 2월 23일 줄서기[25]
레바논 1945년 2월 27일 줄서기
사우디아라비아 1945년 3월 1일 줄서기
아르헨티나 1945년 3월 27일 줄서기[26]
칠레 1945년 4월 11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그리고 비정규 연합군(?)으로 소만악어있다.

5.2. 추축국

국가 참전일 참전계기
일본 1937년 7월 28일 중국에 대한 전면 기습공격
조선[27] 1937년 7월 28일 본국 정부의 전쟁수행에 합류[28][29]
만주국 1937년 7월 28일 일본의 전쟁 수행에 합류
몽강자치연합정부 1937년[30] 일본의 전쟁 수행에 합류
독일 1939년 9월 1일 폴란드에 대한 전면 기습공격
오스트리아[31] 1939년 9월 1일 본국 정부의 전쟁수행에 합류
슬로바키아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전쟁수행에 대한 동조
핀란드[32] 1939년 11월 30일 소련에 대한 기습공격, 겨울전쟁
이탈리아[33] 1940년 6월 10일 대프랑스/영국 전쟁에서의 전리품 획득
이라크[34] 1941년 4월 18일 영국의 강압적 통치에 대한 반발
헝가리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에 가담
루마니아 1941년 6월 22일 소련에 빼앗긴 몰도바 지방 회복
불가리아 1941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크로아티아 1941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태국[35] 1942년 1월 25일 일본의 남방작전에 가담, 인도차이나 지방 회복
자유인도 임시정부 1942년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36]
보면 알겠지만 당시 추축군연합군의 수와 물량의 차이가 크다. 1차 대전의 동맹과 같은 수준(...).

5.3. 중립국

개전부터 종전까지 형식상으로라도 중립을 유지한 국가에 한해 기술한다.

이유는 추축국의 침략으로 점령된 벨기에처럼 중립의사는 있으나, 침공을 당해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참전한 국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중립국에서 제외되고 참전국으로 분류된다.

국가 중립사유
스위스 지리적으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사이에 낀 최악의 조건이었는데도 용케 중립 유지에 성공했다. 물론 독일이 '어이쿠 중립 스위스시네요'해서 중립을 유지한 것이 아니고,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 점령해서 이득보는 것이라곤 이탈리아 북부와의 교통 정도인데 의외로 병력이 많아 알프스 등지에서 버틸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컸다. 결정적으로 항복 직전이 되면 사회 인프라까지 자신의 손으로 다 붕괴시키겠다는데…. 그냥 두는 편이 돈세탁 등 으로 쓸모가 많아서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한 이후 꾸준히 국토 사수에 성공, 영세 중립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아예 전투가 없던 것은 아니고, 스위스 영공을 침입한 독일 공군과 스위스 공군이 몇차례 소규모 공중전을 벌인 적이 있다. 연합군의 경우 스위스의 중립을 보장해주긴 했지만 독일을 폭격하려던 폭격기대가 스위스 도시를 오폭한 사례가 소수 있다.
스페인 당시 프랑코 정권은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덕을 많이 봤지만, 나라 안이 어수선하여 누구 편을 들 처지가 아니었다. 독일의 압박에 의해 의용군 1개 사단[37]을 동부전선에 파병했고 상당한 활약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의용군이다. 나중에는 은근슬쩍 연합군 편을 들어서 히틀러가 분노하기도 했다. 일본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했지만 1945년 4월에 단교했다. 이미 전황이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서 그 쪽 눈치를 본 것도 있지만 필리핀 전투 당시 일본군이 마닐라에 있던 스페인 영사관을 공격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막장짓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
안도라 현재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스페인과 프랑스의 보호령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이 중립을 지키자, 스페인에 묻어가기 식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포르투갈 역시 독재정권이며 지리적으로 스페인에 둘러싸여서 스페인에 묻어간 셈. 연합국과는 해상통로로 연결되고, 추축국과는 스페인을 거쳐서 육로로 연결되므로 전쟁 기간 내내 양측의 스파이 활동이 성행했다. 다만 파시즘 국가는 아니어서 전쟁 중반 이후에는 아소르스 제도 등의 주요 거점을 연합국에게 개방해서 사실상 연합국이 된다. 사실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이 몰락하고 영국이 힘을 가진 뒤부터 전통적인 영국의 동맹국이었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전쟁 때 틸지트 조약 후 전 유럽이 나폴레옹의 동맹이나 밑에 있을 때 영국편에 서서 프랑스와 싸운 단 하나의 국가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1차대전에서도 영국편으로 참전했던 걸 생각하면 중립인 게 오히려 별난 상황.
스웨덴 형식적으론 중립국인데 나치 독일의 편의를 굉장히 많이 봐줬다. 당장 독일의 철광석 수요의 상당부분을 스웨덴이 메꿔줄 지경이었다. 물론 당연한게, 이웃국가 중 노르웨이-덴마크는 독일에 점령, 핀란드는 추축동맹에 가담하여 독일에 의해 국토가 포위되어 있었으므로 독일이 맘만 먹으면 단번에 밀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노르웨이는 스웨덴이 길을 비키지 않겠다면 공격하겠다는 독일의 협박에 밀려서 길을 내줘 점령당했는데, 이때문에 안 그래도 깊었던 노르웨이의 반스웨덴 감정이 더 심해졌다.
아일랜드 과거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했던 영국 때문에 독일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옆에 있어서 영국의 견제가 심했으며, 미국과 영국간의 통상항로 중간에 버티고 선 관계로 전략적인 요충지에 있는데다가 독일이 은근슬쩍 아일랜드를 점거하려는 계획을 만들다가 몇 번 들켜버리자 아예 미군이 아일랜드를 무혈침공해서 사실상 연합국의 점령지로 바꿔버린다. 그 외에 아일랜드인이 개인적으로 영국군 등 연합군 측에 참전한 사례도 있었다.
리히텐슈타인 이 쪽은 스위스에 묻어간 식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사실상 스위스의 보호령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이란이 소련과 영국에게 사실상 분할점령되면서 일종의 완충지대로 중립국임을 인정받았다. 물론 유사시 연합국이 진주할 수 있었긴 하지만 이 지역이 원래부터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집단적으로 반항하는 곳이었으므로 긴급사태가 터지지 않는 한 사실상 방치하는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티베트 일본과의 사이에 중국이 있고, 중국의 상황이 어수선한데다 사실상 당시의 중화민국은 티베트를 건드릴 생각 없이 엄연히 다른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청나라의 붕괴 이후 중국과는 이웃한 다른 국가로 존재하며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나 종전 뒤 중화인민공화국이 침공해와 먹히게 된다.
바티칸 시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4. 중립을 표방하였지만 추축국에게 점령된 나라

국가 점령사유
덴마크 1940년 4월까지 중립을 유지했으나 독일이 노르웨이 침공을 위한 그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침공했다. 지리적으로 연합국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독일의 군사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며 군사력 격차도 심했기에 침공 당일 새벽,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국 영토에 독일군 주둔과 군시설 사용을 허가했다. 덕분에 덴마크는 독일군 점령지이면서도 어느정도 개입은 받지만 그래도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정부가 존속할 수 있었다. 또한, 독일의 침략을 받았음에도 연합국에 가담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에 전황이 불리해지는 1943년 후반부터 독일도 덴마크에 대대적으로 개입을 시작하였으며 수탈이 강화되었다. 이를 교훈삼아 덴마크는 대전 종식 후 NATO에 가입한다.

5.5. 중립을 표방하였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 나라

국가 점령사유
이란 1941년 초까지 정부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정부와 별개로 국민여론은 영국과 소련에 대한 반감이 강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친독정서가 상당했다. 한편, 영국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전황 악화에 이에 호응하는 이라크의 반영 폭동으로 중동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소련은 독소전쟁 발발 후 영국으로부터의 군수물자 지원루트 확보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페르시아 침공이 개시, 이란은 항복하고 국왕이 퇴위당했으며 대전 기간동안 영소군의 점령을 받게 된다.

6. 전쟁 범죄

전쟁으로 밝혀진 추축국의 범죄들 때문에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을 가리켜 역사에서 유일하게 선과 악이 분명한 전쟁이라고까지 칭하기도 한다.

다만 이는 전쟁 중 한정. 연합국도 전쟁 발발 전까지 행한 범죄를 따져보면 장난 아니다. 연합국 소속이었던 식민제국들이 자기 식민지를 학살, 착취를 통해 전쟁때까지 잘만 쥐어짜댔는데...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여기에 사과를 요구하면 그냥 씹는다. 잘 부각되지 않는 사실. 이중에서도 특히 벨기에나 프랑스는 식민지에 저지른 잔혹행위만 놓고보면 정말 추축국 못지 않았다. 그리고 영국은 다들 알다시피 식민제국계의 최종보스였다. 다만 이 사실 가지고 추축국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사람이 가끔 가다 출몰한다. 다른 놈이 먼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자기 죄가 정당화되는건 절대로 아니다. 양쪽 다 도 긴 개 긴이라 한다면 모를까.

7. 참조항목

7.1. 관련 인물

8. 생산물

8.1. 1차 생산물

8.3. 게임

8.4. 영화

위에서부터 아래로 개봉순.
제목-개봉년도-제작국가-소재와 배경 순으로 기재함.

  • 일 영년(Germania, anno zero) - 1948년, 이탈리아.
    전후 베를린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년 에트문트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 네오 리얼리즘 영화.

  • 쉰들러 리스트 - 1993년, 미국.
    나치의 홀로코스트로부터 유대인들을 빼돌린 공장주 쉰들러 리스트.

  • 인생은 아름다워 - 1997년, 이탈리아.
    홀로코스트와 가족애.

  • 스피러시 - 2001년, 미국&영국.
    나치 고관들의 유태인 학살을 위한 비밀회의.

  • 타우펜베르크 - 2004년, 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 어톤먼트 - 2007년, 영국.
    누명을 쓰고 전쟁터로 끌려간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인. 장르는 로맨스로 되어 있고 영화 정보를 보면 전쟁은 들어가 있지도 않지만(...), 사실 일단 영화를 보면 전쟁의 참혹한 아비규환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전쟁 영화로서도 수작이라 할 만 하다.

  • 작전명 발키리 - 2008년, 미국&독일.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 마이웨이 - 2011년, 한국.
    동, 서유럽 전선의 전쟁이 나오는 몇 안되는 한국 영화.

8.4.1. 서유럽 전선

  • 무방비도시 - 1945년, 이탈리아.
    나치 치하의 로마가 연합군에게 해방되기 직전의 시기에 활동하던 이탈리아 레지스탕스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 네오 리얼리즘 영화.

  • 사막의 여우 - 1951년, 미국.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사령관 에르빈 로멜의 활약상과 일생을 다룬 영화.

  • 막의 쥐 - 1953년, 미국.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과 분투한 호주군을 다룬 영화.

  • 과 하(The Enmey Below) - 1957년, 미국.
    독일군 잠수함과 미군 구축함의 대결을 다룬 영화.

  • 공군 대전략(Battle Of Britain) - 1959년, 영국.
    영국 본토 항공전.

  • 다리(Die Brücke) - 1959년, 서독.
    독일군에 입대한 소년병들이 어느 한 다리에서 미군과 공방전을 벌이는 영화. 전쟁의 광기 속에서 희생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잘 드러낸 영화다. 2008년에 리메이크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지상에서 영원으로2'란 병신같은 제목으로 나왔다.바보들 아냐

  • 상 최대의 작전 - 1962년, 미국.
    노르망디 상륙 작전.

  • 벌지 대전투 - 1965년, 미국.

  • 마겐의 철교 - 1969년, 미국.
    대전 말기 독일 라인 강에 유일하게 남은 다리를 차지하려는 미군과 다리를 지키려는 독일군의 공방전을 다룬 영화.

  • 패튼 대전차 군단. - 1970년, 미국.
    패튼 장군이 어떤 양반인지 제대로 표현해낸 걸작. 패튼의 외손자는 이 영화를 보고 할아버지랑 똑같다고 말했다.

  • 켈리의 영웅들 - 1970년, 미국.
    유명한 마카로니 웨스턴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보물금괴찾기 전쟁소풍 이야기. T-34를 분장한 티거 전차가 등장하며 고증이 꽤 우수하다.

  • 머나먼 다리 - 1977년, 미국&영국.
    마켓 가든 작전.

  • 지옥의 영웅들 - 1980년, 미국.
    미육군 1보병사단 소속 1개 분대의 활약이 나온다. 영화 자체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시작해 서유럽에서 끝난다. 영어 원제는 'Big Red One'. 특별한 의미가 있는건 아니고, 미육군 1 보병사단의 별명이다. 별명의 유래는 사단 마크가 '크고(Big) 빨간(Red) 숫자 1(One)이라서. 원제는 제목 자체가 주인공이 누군지 알려주는 셈이다. 그리고 스타워즈에서 루크 스카이워커 역을 맡은 마크 해밀도 비중있게 출연한다.

  • 특전 U보트 - 1981년, 독일.
    제목 그대로 U보트 부대.

  • 랑과 슬픔의 볼레로(Les uns et les Autres) - 1981년, 프랑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네 명의 음악가의 삶을 그린 영화. 이름은 가상이지만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하였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남자 무용수의 춤과 함께 흐르는 모리스 라벨(Mauris Ravel)의 볼레로(Bolero)의 환상적인 선율이 유명하다.

  • 멤피스 벨 - 1991년, 미국.
    공군 폭격부대.

  • 터스키기 에어맨 - 1995년, 미국.
    흑인 조종사들로 구성된 332 비행대.

  •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년, 미국.
    노르망디 상륙 작전.

  • When Trumpets Fade - 1998년, 미국.
    휘르트겐 숲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처절한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주인공 매닝의 비열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배급사가 제멋대로 햄버거 힐2라는 제목을 바꿔서[47] 이상한 제목으로 더 유명하다.

  • 밴드 오브 브라더스 2001년, 미국&영국.
    정확하게는 드라마.

  • 더 벙커 - 2001년, 영국.
    1944년 독일, 벨기에 국경에서 연합군을 피해 벙커에 숨은 7명의 독일 병사가 주연인데...전쟁물 보다는 폐쇄공포증, 악령등이 주 소재인 호러 스릴러다.

  • 렐리의 만돌린 - 미국&영국&프랑스.
    이탈리아군에게 점령된 그리스가 배경.
    이탈리아군의 민간인 학대 그딴건 없고 침략,점령군 주제에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노는 이탈리아군과 동네 아가씨랑 연애질 하는 이탈리아군 장교를 볼수 있다. 오히려 독일군으로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모습도 나왔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전쟁보다는 로맨스에 가까운 영화.

  • 트의 전쟁 - 2002년, 미국.
    소설을 영화화 했다. 미군 포로들 간의 인종갈등으로 인한 포로 수용소 내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진상은...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2차대전 영화로도 유명하다.

  • 인트 앤 솔저 - 2003년, 미국.
    말메디 학살로부터 도망친 미군 포로들의 탈출기와 전쟁으로 인한 병사들의 정신적 피해와 고통이 주 소재.

  • 스트 드롭 - 2005년, 영국.
    마켓 가든 작전중 네덜란드 미술품을 손에 넣기 위한 영,미,독일군의 다툼.

  • 랙북 - 2006년, 네덜란드&벨기에&독일.
    베네룩스의 레지스탕스 조직과 레지스탕스 아가씨 이야기.

  • 광의 날들 - 2006년, 프랑스.
    프랑스가 식민지에서 모아 유럽에 투입한 식민지 부대가 주 소재. 주 소재는 전쟁보다는 식민정책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다.

  • 운터 페이퍼 - 2007년, 독일&오스트리아.
    나치의 위조지폐 제조 작전. 주 배경은 위폐제조에 동원된 수용소의 유대인 들이고, 딱히 전선이라고 할순 없지만 위폐 제조작전의 목표가 영미등의 서유럽쪽의 연합국들이라 서유럽 전선으로 분류.

  • 죽음의 다리(Die Brücke) - 2008년, 독일.
    1959년 서독에서 제작된 영화 <다리>의 리메이크판.

  • 스 마누스 - 2008년, 독일&노르웨이&덴마크.
    노르웨이의 레지스탕스 전쟁영웅 막스 마누스가 주 소재. 맨 오브 워라는 부제목이 있다.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 2009년, 미국&프랑스&독일.
    연합군이 흉악범 12명을 특별 훈련을 시켜 특수부대를 만들어 히틀러 암살에 투입한다는 이야기.

  • 레드 테일 - 2012년, 미국.
    터스키기 에어맨과 같은 흑인 조종사들의 332 비행대가 소재인데 에어맨과 달리 평은 영 좋지 못하다.

  •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 - 2014년, 미국&독일
    패전을 앞둔 히틀러에 의해 폐기될 위기에 처한 약탈상태의 미술품을 지키기 위한 부대의 이야기. 실화 기반이다. 다만 다른 2차대전 영화와는 달리 수수한 편. 건너편의 소총수를 잡으러 갔더니 소총수가 히틀러 유겐트였던 등 깨알같은 장면이 나오지만 본격적인 액션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초반에 나치와 미술품의 관계하면 빠질수 없는 김괴링도 초반에 조금 나온다.

  • 퓨리 - 2014년, 미국.
    브래드 피트 주연의 전쟁영화. 1945년 독일 본토에서 셔먼 전차의 전차병들과 독일군과의 전투를 다뤘다. 영국 보빙턴 근처에서 촬영했기에 기동 가능한 실물 티거가 등장한다!!!! 밀덕들이 환장할 만한 영화(당연히 셔먼도 실물). 본격 주인공보다 적군이 더 인기있는 경우

8.4.2. 동유럽 전선

  • 를린 함락 - 1949년, 소련.
    물론 시대에 걸맞은 스탈린 숭배 영화다. 베를린 전투만을 다루진 않고, 독소전의 시작과 끝까지 다루었다. 그래도 소련군의 복식이나 무기들은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어서 제대로 고증되어 있다. 잘 관찰하면 대전기간 중의 소련군 제복의 변쳔사를 볼 수 있다. 얄타회담에 가는 스탈린을 보면 신처럼 매우 굉장하게 묘사되어 있다.

  • 인간의 운명 - 1959년, 소련.
    전쟁의 참혹함과 전쟁고아 등 피해자들의 고통, 그리고 가족애와 인간애를 다룬 영화. 미하일 숄로호프의 소설을 영화화 한것이다. 미하일 숄로호프는 인간의 운명으로 레닌상을 받았고, 여러 소설들을 저술해 196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벽의 7인 - 1975년, 영국.
    체코슬로바키아총독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암살하는 레지스탕스의 모습을 다룬 영화.

  • 철십자 훈장(2번 항목) - 1977년,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않는 독소전을 다루었다. 이미 전황이 기울어진 1944년 산전수전을 다 겪고 철십자 훈장을 탄 독일군 고참 부사관 슈타이너 중사가 훈장을 위한 공명심에 들뜬 귀족 장교 슈트란스키 대위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전쟁의 허무함을 나타낸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현지에서 로케를 해서 T-34들과 함께 몰려나오는 우라 돌격이 이 영화의 백미. 슈타이너가 실전에서 허둥대는 상관을 보고 미친 듯이 웃어대는 모습 또한 명장면이다.

  • 더 벙커 - 1981년, 미국.
    2001년작 벙커와는 그냥 제목만 같다.
    몰락과 마찬가지로 베를린과 히틀러의 최후를 표현한 작품. 사족으로 여기 히틀러의 배우가 한니발 렉터의 안소니 홉킨스다.

  • 컴 앤 씨 - 1985년, 소련.
    어린 소년을 화자로 독일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다.

  • 모스크바 전투 - 1986년, 소련.
    제목 그대로 모스크바 전투를 다루었다.

  • 겨울전쟁 - 1989년, 핀란드.
    제목 그대로 겨울 전쟁.

  • 스탈린그라드 - 1993년, 독일.
    스탈린 그라드 전투. 전쟁의 참상을 깨달아가며 절망하는 소위 역은 독일군 장교로 자주 등장하는 토머스 크레취만이 맡았다. 근데 내용상 오류가 꽤많다.

  • 묵의 사선 - 1999년, 핀란드.
    겨울전쟁의 뒤를 이어주는 계속 전쟁.

  • 에너미 앳 더 게이트 2001년, 미국&독일&아일랜드&영국. 감독은 프랑스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주인공은 유명한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

  • 즈베즈다 2002년, 러시아.
    1944년 독일군 후방에 침투한 소련군 정찰대. 즈베즈다는 영화에 등장하는 소련군 정예 정찰부대명이자 암호명이다.

  • 피아니스트 2003년, 폴란드&독일&영국&프랑스.
    독일군 점령하의 바르샤바와 게토에 갇힌 유대인들의 비참한 상황이 주 소재.

  • 몰락 2004년,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베를린 전투. 베를린과 히틀러의 최후가 묘사된 작품이다. 히틀러에 대해서 가장 잘 묘사된 작품이란 찬사를 들은 문제작.

  • 리-이한탈라 1944 - 2007년, 핀란드.
    1944년의 탈리-이한탈라 전투가 배경. 핀란드는 이 전투에서 소련군을 격퇴했지만, 몇달후 GG치고 독일과의 동맹을 끊는다. 그러나 자국의 이러한 결정에 분노한 독일군내의 핀란드인들은 대부분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계속해서 독일군의 편으로 전투를 치루었다.

  • 디파이언스 - 2008년, 미국.
    독일군 점령하의 벨라루스에서 지역 농부들이였던 비엘스키 형제들이 이끈 유대인 게릴라가 주 소재. 이들은 천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보호했고, 소련군 유격대와 협력해 독일군을 공격하기도 했다. 소련군 유격대 사령관도 이들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아서 많이 도와줬다. 그러나 최근엔 독일군에게 물건을 납품하던 농민들을 집단학살하거나 항복한 독일군 포로들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일부 사실이 드러났다. 게다가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 혹평을 했다. 보면 알지만 그냥 유대인 만세...사실 최근 이스라엘의 만행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영화를 좋게 생각할리가 없긴하다.자업자득, 너희들이 그러고도 나치랑 다를게 뭐냐?

  • 를린의 여인 - 2008년, 독일&폴란드.
    베를린 전투가 배경. 점령군으로서의 소련군과 독일인의 복잡한 감정을 다루었다. 이 영화에서 초반부에 소련군의 범죄(약탈, 강간)같은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련군 병사들의 인간적 모습이 잘 나타난다. 다큐멘터리나 전쟁물 같지만 실제로는 점령군 장교와 피점령국 여인사이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그린 멜로물이다.

  • 레닌그라드 - 2009년, 러시아, 영국 합작.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배경이다. KGB에 의해 스파이로 오인 받아 붙잡힌 영국인 기자(미라 소르비노)가 여자 민병대원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독일군에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추위, 굶주림 속에서 생존의 투쟁을 하는 내용.

  • 레스트 요새 - 2010년, 러시아.
    브레스트 요새 전투. 바로바롯사 작전 개시 직후 독일-소련 국경지대에 위치한 브레스트 요새의 함락을 다루고 있다. "나는 여기서 죽지만 조국이어, 절대 항복하지마라"라는 글귀가 적혀있던 요새로 유명하다. 반자이 돌격을 뛰어넘는 막장 우라 돌격도 볼수 있다.[48] 창틀,의자 등등을 들고 독일군에게 돌격 (...) 근데 이 요새는 구데리안이 폴란드에게 뺏어서 소련에게 준 것.

  • 마이웨이 - 2011년, 한국. 독소전이 주 배경은 아니지만 주연 둘이 포로로 잡혔다가 독소전에 투입된다.

  • 화이트 타이거 - 2012년, 러시아.
    고증 하나는 최고인 영화. 전차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게 볼 수 있다. 재미있는건 여기에서 나온 티거는 실물이 아니고 IS-2를 개조하여 만든 레플리카.[49]

  •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 2013년, 독일.
    1941년 6월부터 1945년 5월까지를 5명의 시점에서 다룬다. BoB와는 다르게 '승리의 영광'이 아닌 '처절한 패배'를 다루는 것이 특징. 초반에는 "모스크바까지 OOkm"이었지만 독일이 밀리기 시작하는 중반부 부터는 "베를린까지 OOkm"로 바뀐다. 전쟁을 지속하며 결국 인간성이 마비되어 가는 인물들, 전쟁에 광기에 휩쓸린 사람들과 처절하게 죽어가는 병사들을 주로 보여준다.

8.4.3. 태평양 전선(동아시아-태평양)

  • 콰이강의 다리 - 1957년, 영국&미국.
    타이에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영국 공병대의 다리 건설.

  • 도라 도라 도라 - 1970년, 미국&일본.
    진주만 공습.

  • 태양의 제국 - 1987년, 미국.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을 멋진 비행기의 활극으로 여기던 주인공이 어린 시절과 작별하게 된다.

  • 씬 레드 라인 - 1998년, 미국.
    과달카날 전투.

  • 진주만 - 2001년, 미국.
    진주만 공습.

  • 퍼플 선셋 - 2001년, 중국.
    소련군의 만주 진격을 배경으로 중국인, 소련인, 일본인의 기묘한 만남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

  • 윈드토커 - 2002년, 미국.
    사이판 전투중 나바호 원주민 작전이 배경.

  • 레이트 레이드 - 2005년 미국,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카바나투안 포로수용소에 잡혀있는 포로구출을 다룬 작전이 배경

  • 아버지의 깃발 - 2006년, 미국,
    이오지마 전투. 아버지의 깃발은 수리바치산에 두번째로 게양된 성조기를 가리킨다.
    주 소재는 성조기를 세웠던 병사들로, 영웅으로 만들어져 이용되다 필요 없어지자 버려진 인물들의 심리가 주 소재다.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2006년, 미국,
    이오지마 전투. 아버지의 깃발과는 같은 제작진이 같은 장소, 소품 등을 써 함께 찍은 형제 영화. 사실 예정에 없다 추가된 형제인데 정작 형보다 평이 좋다.

  • 오스트레일리아 -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군다윈시 공격을 다룬 영화.

  • 욘 라베 - 2009년, 중국&독일&프랑스.
    난징 대학살때 일본군으로부터 난징 시민들을 보호한 나치당원(...) 욘 라베가 소재.

  • 더 퍼시픽 - 2010년, 미국.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후속작이며 이 역시 드라마다. 전작보다는 인기가 없었다. 그 이유중 하나가 최전선의 끔찍함을 잘 표현해서 보기 괴로운 것(...).

  • 혈고성 - 2010년, 중국.
    1943년 상덕성 전투가 배경이다. 이 전투에서 민간인 30만명이 죽었다.

  • 스트 오브 바탄 - 2010년, 미국.
    바탄의 죽음의 행진에 대한 전범 재판 영화.

8.4.4. 아프리카

  • 카사블랑카 - 1942년, 미국
    제작 당시에는 전시 선전영화를 목표로 제작했으나, 예상외의 흥행을 거두었다. 직접적으로 전쟁이 묘사된건 아니지만, 시대적 배경과 북부전선 특성상 간접적으로 전쟁이 언급된다.

  • 사하라 - 1943년, 미국.
    제작년도에서 짐작할수 있겠지만 전시 선전영화였다.

  • 사하라 - 1995년, 오스트레일리아.
    1943년작 사하라의 리메이크판.

  • 알라메인 - 2002년, 이탈리아.
    알 알라메인 전투와 그 전후.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세계 대전에 참전한 부패하고 무능한 지휘부에 의해 사막에 내몰린 이탈리아 병사들의 고통이 주 소재다. 여기 보면 당장 하루 한끼와 휘발유 섞인 못먹을 물조차 제대로 배급되지 않고, 약조차 없이 리비아에 갇혀 있는데 알렉산드리아 입성 퍼레이드때 군화 광내라고 구두약이나 보급하는 무개념 상층부와, 최전선에서 갈증, 굶주림, 질병, 영국군 혹은 지역 거주민들의 공격에 죽어나가는 이탈리아 병사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

9. 전후 상황

9.1. 연합국

연합국은 매우 많지만 일단 전쟁 중 파시스트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박터지게 싸웠던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폴란드, 중국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미국은 승전 이후 해리 트루먼 행정부 체제를 통해서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에 힘쓰기도 하였으나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와의 동서냉전으로 한때 같은 연합국으로 활동했던 소련과 정치적 대립을 하게 되었으며 1990년대에 가서야 동서냉전을 종식하게 되었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부상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소련이 망하면서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을 무기로 다시 성장 중.

영국은 승전 이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쓰게 되었고 프랑스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쓰는 등 전후 사정이 여러가지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영국은 이 과정에서 식민지가 죄다 독립해버린데다가 복지 예산 문제로 일명 '영국병' 문제에 시달리며 이빨빠진 제국의 설움을 제대로 보게 된다. 다만 후에는 마거릿 대처의 활약으로 영국병을 극복하고 포클랜드 전쟁에서 르헨티나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면서 이빨빠진 제국의 힘을 아주 톡톡히 보여주었다. 한편 프랑스독일과 함께 EU의 초기 창립 멤버이자 주축이 된다. 하지만 에즈 위기로 영국과 함께 초강대국 지위에서 강제 탈락하게 된다. 물론 초강대국에서만 탈락했을 뿐이지 아직도 상임이사국으로 승승장구중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영국보단 상황이 나아서 아직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그 영향력을 뽐내고 있다. 지지부진하던 말리 내전도 콧바람 하나로 종식시켜버렸을 정도로.

폴란드는 이후 소련군과 그에 협력한 폴란드 공산당에게 넘어가 좆된다(...) 소련과 폴란드 공산당은 이 과정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던 망명정부 및 폴란드 국내군 소속 장교들을 서방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시키는 희대의 병크를 일으키고 만다. 기껏 싸워서 나라 다시 살려놨더니 돌아오는건 러시아산 총알 이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를 위시한 소련의 간섭을 겪다가 이에 반발한 무우카가 집권하고 또 이에 반발한 세력으로 인해 쫓겨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으로 마침내 공산당 독재가 종식된다. 폴란드는 냉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NATO와 EU에 가입하는 등 서방 세계로 화려하게 다시 돌아온다. 덕분에 하인드아파치와 같이 날아다니고 레오파르트2와 함께 작전을 하는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뒤진 일본 제국 대신 아시아의 주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뻔 했으나 국공내전이 재발발하여 공산혁명으로 기존의 중화민국타이완으로 철수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1970년대까지 고립된다. 그리고 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같은 충격과 공포OME급 사건을 겪다가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사실상 말만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다.

보면 알겠지만 소련에게 좆되서 더이상 활약할 수 없는폴란드를 제외한 5개국은 현재 UN 상임이사국들이다.

9.2. 추축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고, 추축국들이 당시는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추축국의 상당수는 기존 정부가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였고, 특히 추축국 삼인방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연합군이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등 일시적으로 국가가 소멸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UN의 규칙중에 옛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포고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남아있을 정도다. 해당 조항은 유엔헌장 53조와 107조로 이곳을 참조하라.

1943년 조기에 항복한 추축국 이탈리아무솔리니 정권이 붕괴된 후에 신정부가 들어서서 연합군에 가담하였고, 무솔리니가 북쪽으로 도망가서 세운 정부와 독일군을 상대로 1945년 5월까지 혈투를 벌렸다. 1946년에 들어서 1861년 통일 이후 유지했던 왕정을 폐지하고 입헌공화정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하고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1936년에 탈퇴했던 국제연맹의 후신 UN에도 1955년에 공식 가입하였다. 추축국 3대 국가 중 피해는 제일 적은 편. 잃은 영토도 거의 없다.

독일은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후, 칼 되니츠가 후임자가 된 다음에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하게 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정복하게 되면서 전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되니츠 정부가 해산당하면서 국가가 일시적으로 소멸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연합통치에 의해 영토를 상당수 잃고, 남은 국토는 동서로 분단되어 이른바 서쪽에는 서독이, 동쪽에는 동독 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으며 이후에 베를린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 10월 드디어 동서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에는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옛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범들을 잇따라 체포하는 등 전범시절 청산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전쟁 때 침략했던 국가들에게 전후보상을 했으나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나 배상은 일절 없었기 때문에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싸웠던 강대국들에게는 제대로 배상한 덕분에 좋은 이미지가 널리 퍼져있는 씁쓸한 상황이다. 심지어 2014년에는 전세계 국가 이미지 1위까지 해드셨다. 과거 식민지 국가들 입장에서는 씁쓸한 정도가 아니라 분통이 터질듯하다.

일본은 위의 두 국가가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국과 성전을 결의하며 끝까지 전쟁에 끼어드는 등 끈질기게 저항하다가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국가적인 피해와 손실을 입게 되었고 경제까지 파탄될 위기에 처하자 일왕의 명의로 항복선언을 발표하면서 최후에 가서야 전쟁의 종식을 고하였다. 그 이후로 미 군정의 통치를 받게 되었으나 1951년 경제적 부흥과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고 이후로는 경제적인 선진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전후 전쟁을 일으킨 기존 세력들의 후손들이 다시 정치권력을 잡아 정치적으론 독일처럼 과거사 청산 및 단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에 한일기본조약 등으로 전쟁범죄에 대한 배상을 하고 총리들의 담화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도 했으나 현재는 이전 총리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몆몆 정치가들과 사회 인사들이 과거사 관련 망언을 일삼고 전쟁에서 패배해 전승국 땅이 되어버린 지역이나 엄연히 타 국가의 영토인 곳을 뻔뻔하게 자국 영토라 주장하며 영유권 분쟁을 유발하는 등 러시아, 한국, 중국 등 주변국가들과 대립하고 있다.

10. 후폭풍

애매모호하게 전쟁이 종결되어 불안불안했던 질서가 유지되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간기와는 달리 제2차 세계대전은 누가 봐도 대립구도가 명확했고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와 세계질서를 완전히 결정짓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미친 영향이 워낙 커서 영향을 안 받은 곳이 없다.

간략하게 봐도 참전국들의 신병기와 신전술의 개발로 인한 전쟁양상의 변화, 식민제국의 지배체제 붕괴와 이로 인한 독립열풍, 소멸해버린 인간성을 보고 충격에 빠진 철학계와 전쟁으로 갑작스레 발전해버린 과학계의 대혼돈, 동유럽과 제3세계에 몰아친 공산주의 열풍, 유럽의 몰락과 이로 인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구도 성립,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그리고 주변의 우호국)이 미국의 쇼미더머니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하는 등 엄청난 변혁의 바람이 불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장기 20세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 다만, 이 경우에는 1990년 동구권의 붕괴나 2001년 9.11 테러 등의 사건을 기준으로 기존의 정세가 뒤집히고 이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애초에 어떤 시대를 칼같이 나누는것이 무리기도 하고.

긍정적인(..)영향도 없지는 않다.총력전을 겪고 난 사람들은 더이상 전쟁이 집 지키는 개들군인들만이 아닌 전 국민이 겪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전쟁이란게 인류 전쟁사의 온갖 기록을 다 갈아치울만한 거대한 전쟁이었기에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엔 '이런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인식은 2차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인한 대립구도가 전면전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아무튼 여러가지 면에서 연구할 거리가 많아 많은 밀덕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적 배경이며 각종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에 있어서도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이기도 하나 실제 전쟁에 맞지 않는 묘사 또는 편파적인 시각으로 만든 작품이나 이걸 모에로 포장하고 미화한 작품이 여럿 있어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실제로 전쟁을 겪은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전쟁 영화나 만화는 절대 안 본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50] 해석은 알아서 하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남긴 전쟁이다. 이는 아주 무겁고, 굉장한 비극이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다루지 말기를 권한다.

한국에는 비록 강제징용위안부 문제라는 아픔을 안겨주었으나, 동시에 일본의 패전을 불러옴으로서 지긋지긋한 일제강점기에서의 독립이라는 열매를 얻게 한 미묘한 전쟁이다.만약에 전쟁이 없었으면 계속 일제에게 착취당했을 것이라는 점은 일단 넘어가자 거기에 지금까지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족쇄를 제공하고, 또한 미국과 더불어 2차 대전의 승리로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소련의 영향력때문에 국토가 반토막 나버렸으니, 우리와는 굉장히 미묘한 관계에 놓인 전쟁이기도 하다. 김구 선생은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일본을 몰아내지 못하고 남의 힘으로 독립을 얻었으니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우리 목소리를 내냐."라 했다고 하는데 실상 그 당시 독립군의 전력을 볼때 최대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 해도 중국의 지원으로 독립을 얻으면 얻었지 사실상 자력으로 독립을 얻을 가능성은 없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귀중한 것을 얻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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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en.wikipedia.org/wiki/World_War_II
  • [2]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1939년 9월 3일 영국 국민들에게 한 말이다.
  • [3] 그 유명한 전시 수상 취임 연설.
  • [4] 나치 독일 법무장관
  • [5] 나치당 창당인.
  • [6] 나치당 창당 멤버.
  • [7] 외교정책 같이 국제정세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세계 2차 대전의 종전을 기점으로 싹 갈아엎어졌다.
  • [8] 물론 원칙이 그렇다는 것이고, 제2차 세계대전도 틀린 표현은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각주 옆에 있는 링크를 참조.
  • [9] 중국이 연합국에 가입한 것은 진주만 공습 뒤인 1941년 12월 9일이다. 1937년부터 1941년까지의 중일전쟁은 중-일 양국 간의 전쟁이지 '세계'대전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으므로 2차 대전의 시작으로 보지는 않는다. 중국 학자들은 여기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는데, 2차 대전에서의 나치 독일의 지분을 보면 이는 억지다.
  • [10] 1939년 9월 3일에 연합국을 구성하는 영국(영연방 포함)과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추축국인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보통은 여기서부터 2차 대전의 시작으로 본다.
  • [11] 엘베 강에서 연합군과 소련군이 조우한 날
  • [12] 8월의 폭풍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 [13] 같은 시간이나 시차로 인해 차이가 나게 됨.
  • [14] 중국 공산당과 일부 군벌(주로 광서군벌과 서북군벌, 동복군벌)들은 중화민국의 이름으로 같이 참전했다.
  • [15]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 보면, 히말라야 등정에 실패하고 내려오던 독일산악인 하인리히 하러(브래드 피트)가 네팔에서 영국군에게 체포되는 장면이 나온다.
  • [16] Union of South Africa.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
  • [17] 소련이 연합국에 가담한 시점을 기준으로 함.
  • [18]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이 1939년 5월 11일, 소련의 폴란드 공격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은 1939년 9월 17일.
  • [19] 주로 중화민국과 공동작전을 수행함.
  • [20] 남미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지상군도 파병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되었다.
  • [21] 독립동맹은 흔히 연안파라고 불리우는 조직이다. 중화민국의 이름 아래에 의용군 형식으로 중화민국과 같이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마찬가지로 승전국에 합당한 대우를 받진 못하였다.
  • [22] 일제 말기에 유일하게 국내에서 독립활동을 벌였기에, 조선총독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치안권도 양도받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여운형과 조선총독부의 비 합법적인 거래가 있었기에 독립세력 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해방 직후에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설립해서 조선총독부로부터 정식적인 항목과 인계를 받았지만,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미국과 소련이 일본의 내선일체 때문에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일본의 영토로 보았으며, 조선총독부를 일본의 지방정부로만 간주하였기 때문에 전후 미군정으로부터 배제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같이 대한민국에 흡수되었다. (이 쪽도 임정과 같은 사정으로 승전국의 주체로서의 대우를 얻진 못했다.)
  • [23]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계획했던 국내진공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외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격하고, 내부에서는 조선건국동맹이 이에 호응하는 역할을 맡았다.
  • [24] 파키스탄에 있던 토후국가
  • [25] 영국, 소련 등 연합국 세력과 추축국 세력의 가운데에 끼인 묘한 위치에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 내내 친독적인 자세를 계속 유지했지만 이는 표면상일뿐 실제로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이후에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소련의 압박으로 형식적 선전포고를 했다. 자세한건 무스타파 케말터키/역사항목 참조.
  • [26] 남미의 대표적인 친독국가였으나 전황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해지자 역시 형식적 선전포고를 했다.
  • [27] 이전 문서에는 '식민지 조선'이라고 표기되어있었지만, 조선은 내선일체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자치권을 가진 일본의 본토 취급 받았으며, 조선도 총독부 휘하에서 사실상 별도로 전쟁준비를 했기에, 별도로 '조선'이라고 표기함.
  • [28] 주로 관동군이나 만주국 휘하에서 활동했다.
  • [29] 많이 알려지지 못한 사실이지만, 당시 민족 반역자라고 불리우는 친일파들은 일본 휘하에서, 전쟁범죄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독하게 저질렀다. 비인간적인, 생체실험으로 악명높은 731 부대 소속원들 중에서도 특히 잔혹한 이들이나, 간도 특설대의 상당수가 민족 반역자로 구성되어있었고, 이들의 악행은 일본인보다 훨씬 더 악독해서, 당시 만주 지역 사람들과, 항일 운동을 수행하시는 분들께 엄청난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 [30] 정확한 시기를 아시는분은 수정바람.
  • [31] 주로 제3제국이라는 이름 아래에 독일 아래에서 활동했다.
  • [32] 추축국이긴 한데 소련 말고는 연합국에서 적성국 취급을 안했다(…). 형식상 선전포고는 하긴 했는데 교전한 적도 없고…. 오히려 미국과 영국의 비밀요청으로 무르만스크 공격에 소극적으로 나서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나중에 항복할 때는 미영이 중재를 자처하며 소련에게 너무 많이 삥뜯지 말라고 할 지경. 소련조차도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에서 핀란드에게 호되게 당했던 것 때문인지 카렐리야 및 페차모(Petsamo)의 할양과 전쟁 배상금 지불,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동구권 국가들을 2차대전 이후 속국화했던 소련의 외교정책을 생각한다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 [33] 메이저 추축국 중 1943년 연합국에게 가장 먼저 항복하였으며 1946년에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개편하였다.
  • [34] 이전 문서에서는 이미 독립했다고 나오지만 사실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의 심한 내정간섭을 받아야 했다. 참전하고 얼마 안 가서 영국군에의해 점령당했고 영국은 1947년끼지 이라크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 [35] 가장 늦게 항복한 추축국. 일본이 항복한 뒤 우리는 싸울 맘 없었는데 일본이 강제로 시켰어여ㅠㅠ 신공으로 미국에 무릎꿇고 싹싹 빌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연히 태국을 밟아버리려고 생각했으나 태평양 전쟁의 연합군 핵심은 미국이었던지라 발언력이 없어서 미국이 태국을 용서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 [36] 단, 대부분의 인도 지원병들은 종주국인 영국을 따라서 영국 인도주둔군 휘하 인도 여단에 합류했고 그 병력은 250만명에 달했다. 찬드라 보세가 이끈 병력은 4만을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해 일반적으로 인도는 연합군 쪽으로 보는 편이다. 사실 자유 인도(Azad Hind)의 통치영역은 인도 본토가 아니라 인도에서 한참 동쪽의 안다만 제도의 섬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 [37] 청색 사단(División Azul, 정식 명칭은 제 250 에스파냐 의용사단(250.a División Española de Voluntarios)이고, 독일에 도착하고 나서도 고집부리면서 입던 에스파냐군의 청색 군복 색에서 유래했다. 국방국 군복으로 결국 갈아입긴 했지만...) 1943년에는 연합군의 압력에 귀국시키긴 했지만 수천명 가량은 베를린 전투까지 독일에 남았다. 특이한 점으론 사단의 구성원중 몇몇 인원은 스스로 혹은 친지가 내전 때 공화국에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 사단은 항상 선봉에 서는 것은 물론 심지어 고기방패 역할까지 하는등 의용군을 골수까지 빨아서 활용하자는 독일군에 의해 엄청 빡빡하게 굴려진다...
  • [38] 독일군의 학살에 보복하는 성격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 [39] 1944년 7월 20일 있었던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을 말한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
  • [40] 운 좋게 살아남아서 아르덴 대공세를 지휘하기도 했다.
  • [41] 나머지 배틀필드 시리즈들은 현대전 또는 베트남 전쟁
  • [42] 배경은 동부전선, 즉 독소전쟁이다.
  • [43] 다만 블랙 옵스 시리즈 중 첫 번째 작인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태평양 전쟁독소전쟁을 다뤘다.
  • [44] 최대 6인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지휘하여 전투를 하는 턴제 전략게임이다. 게임플레이는 기드 얼라이언스폴아웃과 비슷하다. 추축군 진영과 연합군 진영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스팀에서도 판매 중.
  • [45] 국내에서 만들어진 2차대전 게임인데 진영이 연합군과 독일군으로 나누어진다. 소련군은 양쪽에서 영입가능
  • [46] 독일군도 적으로 나오긴 하지만 이 게임의 주적은 특이하게도 전쟁 도중의 소련군(?!)이다. 1편에서는 전쟁을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등 서방측 연합국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2편에서는 V2 로켓으로 영국을 작살내려는 소련군을 저지하기 위해서이다. 덕분에 러시아측 유저들은 이 게임을 할때 아주 뒷목을 잡는다고..
  • [47] 근데 햄버거 힐은 베트남 전쟁영화다. 어째서 2차대전인데도 햄버거 힐인것인가?
  • [48] 2차세계대전 초창기라 충분히 가능성 있긴 하다. 이전의 전쟁들을 보았을때 기관총이 위치 하지 않은 상태에서 볼트액션을 상대로 우라돌격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다. 영화속에서도 100m이하의 근거리였기에 우라돌격을 한것이었다.
  • [49] 스포일러 주의. 고증자체는 좋으나 미스테리물인지 전쟁물인지 아리송한 영화. 내용은 신경쓰지 않고 전차만 본다면 볼만하다.
  • [50]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 코멘트 중에도 이런 언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