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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염

최종 변경일자: 2016-04-29 20:51:31 Contributors

목차

1. 후한 말, 삼국시대의 여류문학가
1.1. 창작물에서
1.1.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1.1.2. 진삼국무쌍 시리즈
1.1.3. 창천항로
2. 후한 말의 인물
2.1. 창작물에서

1. 후한 말, 삼국시대의 여류문학가



蔡琰
(177? ~ 239?)

는 소희(昭姬). 채염, 또는 채소희라고 불러야하지만 본명이 서진무제 사마염과 겹치고 자가 사마소와 겹쳐서 피휘를 하고보니 문희(文姬)가 되어 흔히 "채문희"로 알려졌다는 이야기가 있다.[1] 그렇다고 채염을 최염과 햇갈리면 그건 그것 나름 곤란하다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흉노 노래를 다뤘다)' 등 수많은 노래나 책을 썼다. 단, 호가십팔박은 후대의 창작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자체는 절품이다.

대학자 채옹의 딸로 위중도에게 시집갔지만 위중도가 요절해서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낙양에서 살았다.

195년 동탁의 잔당들이 난을 일으키고 흉노족이 이들을 격퇴하기 위해 낙양에 쳐들어왔는데 이 때 그녀의 미모가 출중해서 흉노의 기마병에게 납치되어 남흉노 좌현왕(左賢王) 유표에게 바쳐졌다. 유표의 첩으로서 총애를 받아가며 12년 지나는 동안 그 사이에 1남 1녀를 낳았다.

그 뒤 조조가 흉노족에 사신을 보내 거액을 지불하고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데려오도록 교섭했지만 아이들은 결국 데려오지 못하고 그녀 혼자 돌아오게 되었다. 한편 돌아온 후에 관리 동사(董祀)와 결혼하여 살다가 동사가 형벌을 받아 죽게 되었을 때 조조에게 간청하여 형을 면하게 하기도 했다. 덕분에 다소 불편했던 동사와의 사이가 매우 화목해졌다고 하지만 그 동사도 얼마 안 가 죽어서 또 재혼을 했다(…).

채염의 여동생은 양휘유를 낳아 사마사와 결혼했으며, 채염의 외조카이자 채염의 여동생의 아들이 바로 진나라 명장 양호다. 그러니까 사형과 사형 아들놈 때문에 이름이 망했다

동탁이 죽고 낙양이 이각, 곽사가 싸움을 벌인 삼보의 난으로 채옹의 저술도 많이 사라졌는데, 조조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 자신의 기억에 의지해서 아버지의 저술을 복원하는 것에 힘썼다.

세설신어에는 끊어진 현을 맞춘 일화와 채옹의 저술을 복원한 것에 대한 일화가 있다.

  • 끊어진 현을 맞춘 일화
채염이 여섯 살 때부터 채옹과 밤에 금을 타다가 현이 끊어지자 채염이 두 번째 현이라고 말했으며, 채옹이 다시 일부러 현 하나를 끊어놓고 물었더니 네 번째 현이라고 하자 채옹이 우연히 맞혔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자 채염은 "오나라의 계찰이 여러 나라의 노래를 관람하고 흥성할 나라와 망할 나라를 알았으며, 사광이 율관을 불어 남쪽 노래가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이로써 살펴보건대 어찌 족히 알지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 채옹의 저술을 복원한 것에 대한 일화
조조 덕분에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 조조가 채문희에게 이전에 옛 전적이 많이 있었다고 들었다면서 그것을 기억했냐고 물었다. 채염은 예전에 4천여 권의 책을 주셨지만 난리통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남아 있는 것이 없다면서 자신이 기억해 외울 수 있는 것은 겨우 400여 편이라고 했으며, 조조가 열 명의 관리를 보내 베껴오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채염은 남녀는 구별이 있어서 예법상 친히 주고받지 않는다 해 종이와 붓을 주면 진서(해서)든 해서든 분부한 대로 따르겠다고 하면서 전적을 깨끗이 써서 보내 바쳤는데, 문장에 빠지거나 틀린 부분이 없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의 여성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몇 안 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삼국지에도 손상향, 축융, 초선, 황월영 등 이름이 나오는 유명한 여성캐릭터가 많기는 하지만, 축융초선은 가공의 인물이고 손상향황월영은 성밖에 알려져 있지 않다. 이름 부분은 후대의 창작. 참고로 이 시대에서 이름이 전해지는 여성은 왕이와 채염, 그리고 사마소의 부인인 왕원희, 손권의 두 딸들, 대호(大虎) 손노반과 소호(小虎) 손노육이 정도.[2]

참고로 이 시대에는 이름은 모두 한 글자이고 두 글자 이름이 없다는 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고 리그베다 위키에서도 곳곳에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을 세운 왕망 이래로 두 글자의 이름을 쓰게 하는 것은 죄인에게 모욕을 가하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돌아다니지만 이건 '혹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하고 한 중국 네티즌이 내놓은 가설일 뿐이다. 후한 시대의 이름이 실제 대부분 외자이기 때문에 두자 이름이 없다는 설은 상당히 예전부터 있었지만 삼국지집해의 편저자 노필(盧弼)은 후한시대에 두 글자 이름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후한 시대에 이름이 전부 외자라는 건 깊이 살피지 않은 잘못된 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마일제가 대표적인 두자 이름이고 남성이 아닌 여성이지만 신헌영, 장춘화, 왕원희 등도 두자 이름이다.

1.1. 창작물에서

1.1.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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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삼국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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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삼국지 10, 삼국지 11 # 능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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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그림 (Unknown)]
삼국지 12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직접 무장으로 사용하지는 못한 NPC 역할이 대부분.
  • 삼국지 9에서는 207년 이전에 낙양의 평양을 수색하면 채염 귀환 이벤트가 뜬다. 금 1000을 소비하여 채염을 귀환시키면 채염을 귀환시킬 수 있는 데 실행무장의 지력과 세력의 신망이 오른다. 이후에 낙양을 수색하면 채염을 만나는 이벤트가 나오며 혼란, 연사, 덫, 투석 순으로 병법을 알려준다.
  • 삼국지 10에서는 설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 외에도 가끔 이벤트 중에 등장했는데 삼국지 8에서의 결혼 이벤트 때문인지, 왜 채염과는 결혼할 수 없냐고 항의하는 유저들이 간혹 있었다.[3]
  • 삼국지 11에서는 드디어 무장으로 직접 사용 가능. 하지만 능력치는 기대하지 말자. 일러스트가 예쁜 편이기 때문에 감상하고 싶다면 뭐 상관 없지만(...). 그러나 특기가 시상이라서 군악대 만들고 기력회복에 도움이 된다.
  • 삼국지 12에서의 전법은 뜨금없이 화계...

1.1.3. 창천항로

창천항로에서는 북방을 토벌한 조조의 대사 속에서 언급된다. 상기의 이유로 흉노에게 있었고 채옹의 시가 흉노인들의 발음으로 남아있다는 이야기.

2. 후한 말의 인물

蔡琰

생몰년도 미상

자는 문규(文珪).

후한 말에 여러 채씨들이 가장 번성했는데, 파서태수를 지냈고 채모와 같은 할아버지였다고 한다.

2.1. 창작물에서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는 채모의 종제로 형주의 팔대명가에 해당하는 진가는 유기를 지지하면서 무력을 바탕으로 나머지 일곱 가문을 위협하고 있었는데, 진가를 견제하기 위해 채염은 신야에 군 지휘관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채씨 소생에게서 유종이 태어나자 진가가 채가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진가에게 살해당했으며, 문빙은 진가에 파견되는 고수 두 명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 자인했다. 진가에서 형남 4군 공략을 구실로 황충을 남쪽으로 내려보낸 상황이라 채염이 죽자 채모는 마땅히 신야에 보낼 장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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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사마염은 불꽃 염(炎)이고, 채문희는 염(琰)을 쓴다. 최염(崔琰)을 그대로 최염으로 표기하는 걸 보면 의미에 차이가 있는 문희로 피휘했다고 믿기도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소는 확실하게 겹친다.) 실제로 중국 위키 등에서는 항목 명을 채문희로 두고, 자를 문희와 소희 두가지를 모두 병기하고 있다.
  • [2] 조비의 곽황후는 만 알려져 있다. 자가 여왕(女王). 이쪽은 이름이 진짜 이상해서 대신 자가 남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자도 충분히 굉장하지만
  • [3] 여기서는 홀로 여도사로 나와 결혼은 불가능하다. 장안에 붙박이로 체류해 여러 기술을 가르쳐준다. # 대신 낡은 칠현금(금 3천)을 가지고 있으면 외모가 별로인 장용을 아내로 삼을 수 있다. # 이제 보니 소개팅 전문 주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