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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최종 변경일자: 2015-04-02 21:41:48 Contributors


Camera

목차

1. 개요
2. 리그베다 위키에 등재된 카메라 일람
3. 기타 항목


1. 개요

사진이나 영상물을 찍기 위한 기계(전자제품). 사진만 찍는 것은 따로 '사진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메라의 어원은 라틴어인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이라는 뜻)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두운 방'이 카메라의 어원이 된 이유는 어두운 방의 벽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반대쪽 벽에 외부의 풍경이 비치는 것을 토대로 사진기가 발명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원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고안하였다고도 하나, 사진사학자인 H. 게른샤임의 설명에 의하면, 영국의 로저 베이컨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일식·경치를 관찰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일식이나 풍경 관찰용과는 달리, 애초에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카메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게레오타입 카메라이다. 이것은 2개의 나무상자가 포개어져 있고, 상자 뒤쪽에 감광지를 밀어넣어 비춰진 화상이 고정되게끔 하여 사진을 찍었다. 초창기 인물 사진 한 번 찍으려면 날씨가 좋은 날에 1~2시간 정도 고정된 자세로 있어야 한다고 하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뭐 사실 초상화 그리는데 걸리는 시간 생각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그다지 힘들다고 생각 안했을지도?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데 카메라의 작동원리가 인간의 안구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인간의 안구는 약 1억 2천만 화소인데 500억 화소 카메라가 나와 인간의 안구를 뛰어넘었다. 근데 500억 화소 카메라 크기가 사람만하단게 함정

덕후세계에서는 스피커덕질, 시계덕질과 함께 돈 잡아먹는 3대 덕질 중 하나로 카메라 덕질을 꼽는다.[1]

우리나라에는 1883년에 최초 도입되었다[2]. 황철이란 사람이 들여왔는데, 카메라를 이용하면 후대에 기록이나 자료를 남기는 데 편리하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세우고, 날마다 카메라를 들고 도성을 돌아다니며 저잣거리 풍경이나 궁궐을 찍었다. 하지만 당시 관료들도 서양문물에 그리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국가보안상 대략 조치않다고 판단하여 황철을 의금부에 잡아 가두고 카메라와 기자재를 압수했다.
이런 보안상의 문제도 있지만, 초기 사진관들은 애들 살과 뼈를 녹여 사진의 재료로 삼는다는 유언비어에 시달리곤 했다. 그러다 사진이 대중화 된 것은 단발령이 떨어진 뒤부터였는데, 상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또렷히 남기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진관도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고... 본격적인 상업용 사진관의 시초는 1907년 개업한 '천연당 사진관'이다.

창작물에서는 사진에 나온 인원수와 실제 인원수를 헤아려보고서 '그럼 카메라를 든 사람은 누구지?'라면서 의문을 주는 것이 클리셰로 많이 사용된다.
ex) "우리들은 4명인데. 영상에 찍힌 사람도 4명이야! 그럼 카메라는 누가 들었지?" 셀카봉이요. 삼각대타이머도 있다. 잠깐 세는 사람은 포함시킨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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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물건들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있지만 싸구려는 아예 몇만원 짜리도 있기 때문. 아예 저가품도 최소 천만원은 잡아야 하는 차덕같은 취미는 물론 돈이 많이 들지만 위의 이유를 들어 안끼워 주는 분위기가 많다.
  • [2] 이때 도입되었다는 것일 뿐, 한국인을 찍은 사진은 신미양요 때 조선군 포로 사진이나, 러시아인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온 조선관료를 찍은 사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