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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16세 구스타프

last modified: 2015-04-15 17:34:15 Contributors


Carl XVI Gustaf of Sweden

Contents

1. 소개
2. 기타

1. 소개

스웨덴 베르나도트 왕조의 국왕. 1946년 4월 30일생. 풀네임은 칼 구스타프 폴케 후베르투스(Carl Gustaf Folke Hubertus)이다. 키 179cm.

스웨덴 북쪽에 있는 하가 궁에서 베스테르보텐 공작 구스타프 아돌프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녀 시빌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담으로 어머니 시빌라 왕자비는 후에 시누이가 되는 잉리드 공주[1]의 주선으로 베스테르보텐 공작 구스타프 아돌프와 만났다. 근데 둘이 결혼할 당시 독일나치가 대두되었고, 시빌라 왕자비의 아버지이자 칼 구스타프의 외할아버지인 카를 에두아르트는 나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한 사람[2]이였다.[3] 둘의 결혼은 나치 행사로 치루어졌기에 스웨덴 왕족들 모두 둘의 결혼식에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고...

근데 시빌라 왕자비가 결혼한 후 딸만 내리 넷을 낳는 바람에 왕위계승자를 낳아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막내인 칼 구스타프가 태어났지만, 태어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아버지 베스테르보텐 공작 구스타프 아돌프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다섯아이를 데리고 홀로 살아가는 시빌라 왕자비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던 사람은 시아버지이자 국왕의 할아버지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였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군사 교육을 받았으며 1968년에는 장교로 임관해 군 생활을 했다. 그리고 1972년 올림픽이 열리는 뮌헨에 갔다가 3살 연상의 독일/브라질 여성 실비아 좀멀라트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으나 당시 스웨덴 왕위 계승법은 여자는 왕이 될 수 없고, 남자는 왕족이나 왕족에 견줄만큼 신분이 높은 여성이 아닌 다른 여성과 결혼하면 왕위계승권을 박탈하는 엄격한 귀천상혼제가 적용되었었다. 이는 여성 왕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하여 그 때 스웨덴에는 칼 구스타프와 그의 삼촌인 할란드 공작 베르틸 이외에는 모두 왕자 칭호를 박탈당하거나 사망하여서 왕위계승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할란드 공작 베르틸은 릴리안 데이비스라는 웨일즈 출신의 평민 이혼녀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베르틸의 아버지 구스타프 5세는 고령이었고, 형 구스타프 왕태자(후에 구스타프 6세)도 나이가 많았으며 형 시그바르드와 남동생 칼 요한은 평민과 결혼하면서 왕자 칭호를 박탈당하는 바람에 릴리안과 결혼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놈의 귀천상혼이 원수여, 원수... 시빌라 왕자비가 칼 구스타프를 낳으면서 왕위 계승자에서 좀 멀어졌으나 형의 사망으로 베르틸 왕자가 1살밖에 안된 어린 칼 구스타프에 이어 다시 스웨덴의 제 3왕위 계승자가 되어버렸다.

또한 만약에 노령의 국왕과 왕태자가 연달아 사망할 경우, 어린 칼 구스타프가 왕위에 올라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섭정이 필요하고 결국 남아있던 스웨덴 가족중 섭정이 될만한 인물은 베르틸밖에 없었다. 결국 베르틸은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해야했고 이런 삶은 받아들였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릴리안과 헤어진 건 아니고 결혼하지 않은 대신 동거를 시작했으며, 릴리안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 법적으로 그의 아내가 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였다.[4] 또한 아버지가 없는 칼 구스타프의 아버지 역할을 했었다.[5]

칼 구스타프의 친할아버지 구스타프 6세 아돌프는 당연히 왕족과 결혼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방해했는데, 칼 구스타프는 실비아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구스타프 6세가 승하하자 칼 16세 구스타프로 즉위하면서 계승법을 바꿨으며[6] 결국 의회의 승인을 얻어 1976년 6월 19일에 결혼했다.[7] 덕분에(?) 스웨덴에서 군주의 역할이 엄청 감소했다.[8] 그 다음엔 부모같이 길러준 숙부 커플을 정식으로 결혼시켰고, 릴리안은 '할란드 공작 부인'이라는 칭호를 얻어 정식으로 스웨덴 왕실에 입성했다.

2. 기타

실비아와의 사이에 두 명의 공주(빅토리아, 마들레이네)와 한 명의 왕자(칼 필립)을 두고 있으며 2명의 손녀(에스텔, 레오노르)가 있다. 1980년 스웨덴 의회에서 장자상속법을 폐지했기 때문에 현재 딸인 빅토리아 공주가 차기 왕위 계승자로 지명되어 있다. 사실 칼 16세 구스타프 본인은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지만 의회가 이를 무시하고 밀어붙여서 된 결과이다. 역사적으로도 스웨덴은 군주보다 귀족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한 경우가 많았던지라 아무리 왕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듯. 하지만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서 칼 필립 왕자를 매우 편애했으며 정작 왕세녀인 빅토리아는 홀대를 받았다. 이렇게 대놓고 편애를 받으며 자란 칼 필립 왕자는 철딱서니없고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여동생 마들레이네 공주와 열심히 놀아제꼈으며 그나마 마들레이네 공주는 나이 먹으면서 정신차렸지만 칼 필립 왕자는 그럴 기미도 안보인다.[9]

여담이지만 칼 16세 구스타프가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하얀 데다가 탈모 때문에 실비아 왕비보다 훨씬 늙어보인다... 근데 탈모는 젊었을 때부터 있었다(…)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보이스카우트 세계잼버리 참석차 비공식 방한한 적이 있다. 2009년 7월에는 국빈 방문한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을 영접했다. 2012년 5월에는 대한민국을 국빈으로 답례 방문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영접을 받았고, 여수 엑스포를 시찰했다.

자동차를 매우 좋아한다. 아들 칼 필립 왕자도 그의 이런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자동차광으로 유명하다.

준수한 외모덕분인지는 몰라도 실비아 왕비와 만나기 전에 난봉꾼으로 아주 유명했다. 법까지 바꿔가면서 결혼하고도 난봉꾼 기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은 모양인지(…) 1990년대 후반에는 모델 카밀라 헤넨마르크와 불륜 관계였으며, 2010년 출간된 <칼 구스타프 16세 - 군주가 되길 원치 않은 군주>라는, 구스타프 왕에 대한 소문들을 추적 및 정리한 책에 의하면 "스트립 클럽과 불법 클럽, 그리고 모피 코트 속으론 알몸인 여인네들. 여자들은 그저 식후에 커피와 함께 제공되는 디저트용이었다." "구스타프 왕은 또 세르비아 갱 밀레 마르코비치가 스톡홀름의 국립 경찰청 아래 지하 클럽에서 베푼 파티에 친구들과 함께 참석해 벌거벗은 여성들과 섞여 자쿠지를 즐기고 짝을 맞춰 '문에 이름표가 붙여진 방들'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래전부터 국왕 부부가 체면으로 산다는 얘기는 심심찮게 나왔었으며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함께할 뿐, 사적으로는 완전히 남남이며 아예 오래전부터 별거하고 있다는 듯. 물론 이러한 건 당연히 대놓고 거론하진 않지만, 스웨덴내에선 이미 암암리에 알려져있다. 부부가 각자 스캔들도 있었다.

그러나 책이 나온 후에 80% 이상의 국민들이 왕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고 답변했으며, 50% 이상의 국민들이 왕가의 사생활을 조사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웨덴내에서도 분위기가 제법 험악했으며 조기 퇴위 압력도 받았으나 마침 타이밍 좋게 현재 스웨덴 왕족들 중 가장 평판이 좋은 빅토리아 왕세녀가 에스텔 공주를 낳으면서 일단 입헌군주제 폐지는 없던 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로인해 전세계적으로 그의 이미지는 작살났으며 그동안 다소 조용했던 스웨덴 왕실 이미지에도 먹칠했다. 그래도 에스텔 공주의 탄생이후로 조금씩이나마 분위기가 나아질려는 찰나 칼 필립 왕자가 전직 누드 모델 소피아 헬퀴스트와 약혼을 발표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여담으로 이 양반에게 굴욕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상점에서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수표로 지불하려고 했는데, 수표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상점 점원이 물건을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칼 16세 구스타프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을 꺼내들어 점원에게 보여주고 나서야 수표 확인을 한 걸로 간주하고 겨우겨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10] 200년 전에 그랬으면 왕실 능멸죄로 사형 크리를 맞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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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후에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9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었다. 현재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의 베네딕트 공주, 그리스의 안나 마리아 왕비가 잉리드의 딸들이며 칼 구스타프하고는 사촌 사이.
  • [2] 게다가 T-4 프로그램에 가담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이다.
  • [3] 이때문에 안티 나치였던 시빌라 왕자비는 나치 지지자였던 아버지때문에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 [4] 여담으로 이러한 사례는 스웨덴 왕실에서 베르틸과 릴리안 이전에 이미 있었는데, 베르틸의 숙부였던 쇠데르만란드 공작 빌헬름은 아내인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과 이혼한 뒤, 평민 이혼녀인 잔느 드 트람코트와 사랑에 빠졌다. 허나 구스타프 5세는 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결국 빌헬름은 결혼하지 않고 그녀와 동거했다.
  • [5] 시빌라 왕자비는 아들에게 정을 안줬다.
  • [6] 그래서 귀천상혼이 폐지되자마자 귀천상혼으로 계승권을 잃었던 친척들이 자기들의 계승권을 돌려달라고 한 일도 있었다.
  • [7] 즉, 타이밍 좋게(?) 친할아버지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왕위계승 서열 1위의 왕세손이었던 칼 구스타프는 평민과 결혼했다가 귀천상혼에 걸려서 계승권을 잃을 판이었다.
  • [8] 스웨덴에서는 1975년부터 총리(국회에서 선출)를 국회의장이 최종적으로 임명·면직하고, 총리가 직접 장관을 임명 및 면직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바로 법률로 성립되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국왕이 총리·장관을 임명 및 면직하고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을 승인하는 등 상징적인 절차를 밟았다. 실제로는 이미 결정된 걸 국왕이 상징적으로 추인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스웨덴 국왕은 이런 형식적인 권한도 빼앗겼다. 물론 신임장(특정인을 외교사절으로 파견하는 내용을 담은 문서)에 사인을 하는 등 국가원수로서 몇 가지 역할이 남아 있긴 하지만, 다른 입헌군주국의 군주들에 비하면 역할이 훨씬 적다고 할 수 있다. 안습.
  • [9] 착하고 소박한 성품에 열심히 공무를 수행하고 일하는 누나 빅토리아 왕세녀나 비록 왕년에 철딱서니없이 굴고 왕족로서의 의무보다 파티를 더 좋아해서(…) 가십을 장식하는 등 말이 많았지만 약혼자와 깨지고나서는 정신 차리고 현재 뉴욕에 있는 아동단체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생 마들레이네 공주에 비해 칼 필립 왕자는 스웨덴인들 사이에서도 "대체 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자동차만 좋아한다." 등의 사실상 백수 취급할 정도. 공무를 아예 안하는 건 아니지만 유독 스포츠 관련 이벤트에 많이 참여하는지라 스웨덴내에서도 비판이 많고, 스스로도 누나가 왕위계승자 1위여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
  • [10] <세계의 대중매체3> 212p (강준만 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