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한나라당

최종 변경일자: 2014-08-24 12:38:10 Contributors

비회원 기여자는 이 문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HELP!

이 문서는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까지 위키 회원으로 등록한 기여자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위키워크샵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1. 대한민국의 거대정당(1997~2012)
1.1. 계보
1.2. '잃어버린 10년'
1.3. 야당으로서의 행보
1.4. 다시 여당이 된 후
1.5. 성 도덕 스탠스
1.5.1. 동성애
1.6. 역대 선거결과
2. 대한민국의 군소정당(2012)
3. 대한민국의 군소정당(2014~)


1. 대한민국의 거대정당(1997~2012)

b0034826_48439bea5e3cd.jpg
[JPG 그림 (Unknown)]


대한민국정당. 여기서 한은 '크다'는 뜻과 '한韓국'을 동시에 의미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漢)나라와는 다르다 영문 명칭은 Grand National Party. 약어가 GNP다(…). GOP(Grand Old Party)를 또하나의 별칭으로 쓰는 미국공화당과 당명이 비슷한걸 보면 이쪽을 의식했던지도?

당의 공식 노선은 반공 색채를 띈 보수주의[1].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10년만에 여당으로 복귀하였으나, 돈봉투나 대표자 선발에 관련된 비리등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기에 설상가상, 혹은 사면초가라는 정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져 사건의 진위여부를 떠나 민심이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었고 2012년 열릴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패색이 진해졌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게 됨에 따라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당전체 쇄신안을 발동하나 실패, 결국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위해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교체하게 된다.

1.1. 계보


이 정당의 직접적인 시초가 된 것은 1990년 1월 창당된 민주자유당(민자당)이다. 당시 대통령 노태우가 총재로 있던 여당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김영삼)과 신민주공화당(김종필)의 이른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것. 특히 민정당의 경우 1981년 전두환이 창당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깔 때 뿌리가 민정당(전두환)이라는 공격이 많은 편이다.[2] 다만 YS가 집권한 후엔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민정계가 가차없이 축출당함으로써 실질적인 민정계는 절멸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어찌됐든 민자당은 1992년 말의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성공하지만, 2년여 지난 1995년 초 김종필이 김영삼과의 갈등 끝에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을 창당하면서 떨어져 나가고 그 해 말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비자금 문제와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구설수에 오른다. 결국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는 139석을 얻으며 상당한 선전을 한다.

15대 대선 국면이었던 1997년 11월 21일에는민주당[4]과 합당하면서 지금의 당명인 한나라당을 쓰게 되었다.[5]

1.2. '잃어버린 10년'


한나라당 초기 로고(1997~2004)

그러나 새정치 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 후보 김대중과 자유민주연합 김종필의 연대(일명 DJP 연합)에 패하면서 한나라당은 자칭 잃어버린 10년의 세월을 겪게 된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161석의 과반의석을 점하던 한나라당은 철새들의 국민회의 및 자민련으로의 이적으로 과반의석을 상실하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후 2000년 제 16대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과반에 육박하는 제 1당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사실한 승리하게 된다. 재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하였으나 이어 치뤄진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그리고 병풍의혹 등으로 패하고, 특히 96년 안풍사건, 97년 세풍사건에 이어 02년 차떼기 의혹이 그야말로 결정타.[6]

1.3. 야당으로서의 행보

이후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던 2004년 3월, 그들에게는 최대의 총선 카드이자 회심의 일격으로 삼았던 노무현 탄핵을 꺼내든다. 그도 그럴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언행 자체가 워낙 자극적인게 많았던데다 쪽수도 야당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탄핵 소추를 하여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컸다[7].

그런데 막상 탄핵 소추안을 밀어붙여 가결시켜놨더니 전국적으로 탄핵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심지어는 한나라당 초강세지역인 대구경북에서마저 대통령은 국민이 뽑았지 국회의원이 뽑은게 아니다. 국민들의 말을 들어야지 왜 자기들 멋대로 탄핵하느냐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게다가 여론조사 결과 전지역에서 여당이 앞서는 상황이 되었고, 이후 총선에서 결국 여당에 과반인 152석[8] 을 내주며 패배하고 만다. 이때 너무나도 심하게 깨져서, '노무현이 오히려 탄핵을 유도했다'는 음모론이 돌았다고도 한다[9].

1.4. 다시 여당이 된 후

그러나, 이런 흑역사를 뒤로 하고 천막당사 시절을 거쳐 지방 재보선의 승리로 다시 힘을 비축해 여소야대를 이루어냈으며[10], 차곡차곡 비축해둔 힘과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경제살리기 공약으로 17대선에서 승리하게 되어 10년만에 여당이 된다. 이후 총선에서도 과반수의 의석인 153석을 확보하게 된다.[11]

하지만 광우병 우려로 인한 촛불시위, 당내에서 갈라진 자유선진당과 친박(박근혜)계열, 그리고 친이(이명박)세력의 내부 다툼 등으로 인해 2009년 4/29 재보선에서 5곳의 선거구 중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단 한곳에서도 당선되지 못하는 참패를 당해서 긴장 중. 같은 해 10/28 재보선 역시 5곳의 선거구에서 치러졌는데, 수도권 2곳을 민주당에 내주고, 텃밭인 경남 양산에서도 고전 끝에 신승을 거두는 등, 야당에 3:2로 패배하여 심상찮은 민심을 겪어야 했다[12]. 당사자들은 재보궐에서 이만하면 잘했다고 자축하는 모양인데, 한나라당이 확실히 승리한 곳은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강원 강릉 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심하긴 어려운 듯.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과도한 네거티브 선전이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한몫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정동영은 과도한 네거티브 선거 정책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남을 까기만 하고 자신의 장점은 거의 부각을 안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히도) 이명박에게 압도적으로 참패하는 비참한 말로를 당했지만.

  • "진짜 인터넷상에서 정당에서 여론몰이하는 알바가 있다면, 민X당, 민X노X당, 진XX당 등에서 더 많은 알바를 쓰는거 아닐까?" 하는 음모론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보수진보 따지지 않고 모든 정당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현실성이 있다. 열린우리당은 둘러서 말하긴 했지만 자기들이 직접 운영한다고(…)밝힌 적이 있었다. 한나라당 또한 알바 사례 아이피나 아이디를 추적해서 밝혀낸 사례가 두 건, 그 중 한 번은 위키백과반달하려다가 들통난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알바짓을 하다가 걸린 선례가 한나라당이 가장 많은 사례를 보아 하면, 적어도 다른 당보단 한나라당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풀고 있거나, 아니면 IP라는 개념 자체도 모르면서 알바를 풀고 있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2008년 7~8월에 여대생 12명을 1천 349만원에 고용, 30개의 정치 기사에 9천 717개의 댓글을 단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알바 의혹이 실제로 드러났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수도권을 주축으로 혼전이 예상되었다. 야당 측에서는 단일화에 성공하면 해볼 만하다고 낙관 중이었으나, 이 단일화라는 것부터가 현실은 시궁창. 그나마 세종시 문제 등 몇가지 이슈로 인해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던 2006년보다는 고전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선거전까지는 상당한 우세를 자신하였으나 막상 선거가 끝나고 보니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서울시장마저 한명숙이 상당히 따라왔으며[13] 부동의 텃밭이라고 생각했던 경남과 강원도[14]에서도 져버렸을 정도다.

그리고 패배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당내 내분이 다시 불붙었다. 친이 계열은 패배의 책임을 추궁받고 있으며 친박도 사정은 좋지 않은게 박근혜가 친박 계열 후보들만 지원 유세를 해줬기 때문에 당 내에서도 이에 대한 불만이 많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지원해줬는데도 친박은 단체장 자리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결국 친이 친박 둘다 지지율 동반 하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고 이것도 모자라 한나라당은 다시 친박과 친이간의 책임 떠넘기기로 다시 싸우며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나라당 내에서는 세대교체론이 불거졌다. 사실 한나라당 중진들은 친노 열풍으로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민주당에 비하면 좀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고 젊은층에 어필할 수 있는 후보가 많지 않았다[15].

결국 2010년 7월 14일의 전당대회에서도 친이명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대거 대표와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면서 현황 유지로 갈 느낌이었다. 친박근혜계 의원은 하나 뿐이며 그나마도 꼴찌였다. 가능성 있던 무당파나 개혁적 후보들도 당선되지 못했다. 이후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김태호 의원을 제외한 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패하고, 한나라당은 원내대표에 황우여 의원, 당대표에 홍준표 의원을 선출하며 당을 일신하려는 노력을 해 보았지만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발의한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인하여 그야말로 나락의 길로 떨어지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측했듯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투표율 미달로 개봉도 하지 못한 채 끝나버렸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속한 대로 서울시장을 사퇴하게 되었다.

이후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중구를 지역구로 하는 나경원 의원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시켜 재기를 노려보았지만 20~40대 유권자들의 이반과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과 그에 대한 반박(현재 재판 진행 중) 등으로 인하여 여론이 좋지 않아졌고 결국 패배하였다. 그 여파는 커서, 당 내부에서는 백가쟁명식으로 당 쇄신 요구가 분출하기 시작하였고, 도중 한미 FTA 강행 처리까지 겹쳤다. 게다가 설상가상, 혹은 사면초가라는 정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분당설, 지도부 퇴진 등 큰 위기를 맞았다. 결국 12월 8일 남경필, 원희룡, 유승민 최고의원이 사퇴한 데 이어, 9일에는 홍준표 대표까지 사임하면서 최고위가 사실상 와해되었다.관련 기사 이에 결국 박근혜가 구원투수로 재등판하게 되었다.

2011년 12월 이후 비대위가 설치되어서 위원장에 박근혜가 임명되었으며 각종 쇄신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수습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 폭로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관련기사 결국 상황을 타개하고자 2012년 2월 당의 이름을 바꿔 재결성하게 되었고, 기본적인 당헌과 규칙, 당원들은 새누리당으로 옮겨가게 된다.

1.5. 성 도덕 스탠스

미국 공화당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1.5.1. 동성애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는 동성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군 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표시하기도 했다.

1.6. 역대 선거결과

선거 년도 선거종류 출마직위 및 총 지지율 결과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후보 - 회창 38.7% - 낙선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6명/16명
74명/232명
224명/616명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39.8% 133명/273명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11명/16명
155명/232명
467명/682명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후보 - 회창 46.6% - 낙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 35.7% 121명/299명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12명/16명
165명/230명
557명/733명
1627명/2888명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후보 - 이명박 48.7% - 당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37.8% 153명/299명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6명/16명
82명/228명
287명/762명
1247명/2888명

2. 대한민국의 군소정당(2012)

The Hannara Party

hannara.png
[PNG 그림 (Unknown)]

한나라당이 선거당시 내놓은 당로고


트위터나 당 홈페이지등 공식적으로 내건 로고만 서너가지. 거 실험정신 한번 충만하군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이후, 2012년 3월 5일 ‘영남신당 자유평화당’이라는 군소 정당이 선관위에 당명 변경을 신고하여 한나라당이 되었다. 배배 꼬인 족보

영남신당자유평화당은 2006년 자유평화당으로 이태희가 창당했다. 이용휘는 친박연합에서 쫓겨난 이후 영남신당을 만들려고 하다가 여의치 않아 합치면서 영남신당자유평화당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 두명은 친박연합의 전신[16]인 한국의미래를준비하는당에서 함께뛴적이 있다.

새누리당 측은 법적 대응을 할 생각이라고 하지만, 선관위 관계자의 발언에 따르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오히려 한나라당 측에서는 새누리당 관계자들에게 '한나라당' 명칭을 쓰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적반하장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1명의 례대표 후보를 공천했다. 과연 비례대표 3%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성사되면 주워먹기류 최강 비례대표 선거 기호는 가장 마지막인 20번이다. 만에 하나, 비례대표 투표를 너무 많이 주워먹어서얻어, 비례대표를 2명 이상 배정받는 사태가 생긴다면, 초과된 비례대표 자리는 19대 내내 공석으로 남는다.[17]
'영남신당'이라는 옛 이름과는 달리, 정작 영남에서 출마한 후보는 없고, 충남 보령·서천에서만 1명의 지역구 후보가 나왔다.

선거 결과, 지역구에서는 진작에떨어졌고, 비례대표는 0.85%의 득표율로 결국 1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 하고, 비례대표 득표율이 2%가 안 되기 때문에 당이 등록취소되어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은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선거가 끝난 뒤 이태희 총재는 인터뷰에서 조선일보가 당명이 바뀐 줄 모르고 한나라당으로 투표한 해외교포가 있었다는 보도를 해서 표가 떨어져 나갔다며 조선일보를 원망했다는 후문. 그래도 네임드(?)정당인 국민생각을 제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경북에서는 4위를 했고 경북 울진군에서는 3.99%, 영덕에서는 3위![18]를 했다.

한나라당은 이후 이태희 대표와 이용휘 쪽이 갈라졌다고 한다. 이것은 이태희 대표가 민족전통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태희는 새한나라당, 이용휘는 희망!한나라당으로 재창당에 나서고 있다. 이 중 희망!한나라당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

3. 대한민국의 군소정당(2014~)




the Grand National Party

2012년 등록 취소된 한나라당의 후신이다. 이태희는 등록 취소 직후 새한나라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나 활동기간만료로 해체된뒤 2013년 등록에 성공하였다.

2014년 1월 진보신당, 청년당, 녹색당의 정당이 낸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져 원래 당명을 쓸 수 있게된 뒤 당명 변경 신청을 냈으며 2월 6일 수리되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지 의문이다. 2014년 5월 현재 서울시장 선거와 인천 남구 구의원 선거에 각각 예비후보가 한명씩 등록한 상황. 세종시장 선거에도 예비후보가 등록했다가 막상 정식 후보등록을 앞두고 사퇴 및 탈당했다. 5월 12일 홍두환 구리시장 예비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하는데 아직 선관위 홈페이지에 한나라당 예비후보라고 나오지 않는다. 결국 홍두환 후보는 새누리당에 복당하고, 서울시장 예비후보였던 박호원 후보도 정식 등록은 하지 않으면서, 인천 남구 구의원 후보인 오흥범 후보와 서울시의원 비례대표인 주경숙 후보, 이상 2명의 후보가 출마하게 되었다. 물론 두 후보자 모두 낙선. 하지만 서울시의회 비례대표에서는 무려 35,488표를 받아서 나름 네임드 정당인 노동당녹색당을 제치고 9개 정당 중에서 5위를 차지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는 대표자인 이태희가 수원시 을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 사람은 이전에도 광진구 갑, 광주시, 진천군음성군괴산군증평군 등 국회의원 선거를 여러 곳을 전전하며 출마했던 데다가 종로구청장 후보에도 나선 적이 있는 등 이곳 저곳 막 옮겨다니며 출마하는 모습을 보인지라... 그런데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명함을 살포한 것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해서 벌금 150만원 형을 확정 판결받아 피선거권을 상실해 등록 무효가 되었다.

그런데 이 당...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알겠지만 역사관이 좀 메롱하다. 환국의 정치를 다시 재현하여 국민 여러분을 5차원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한다. 읽다 보면 정신이 5차원으로 가게 된다.

----
  • [1] 다만 진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와 의미가 상당히 변했다. 보통 보수/우국주의에서 많이 주창되는 자주/자국우선주의는 대놓고 씹힌다.
  • [2] 민정당의 인적구성은 대부분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인사들이었다. 다만, 민주공화당의 인적구성은 이승만의 자유당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 [3] 군부정권시절 주류는 육법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군인 출신과 법조인이 주류였는데,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 역시 당내에 법조인과 관료, 교수 및 전문가 출신 의원이 많다. 이는 운동권 투사 출신이 많은 민주당과 대조되는 면이다
  • [4] 여기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간략히 설명하자면 원래 김대중이 한축을 이루던 당이 민주당이었는데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떨어져 나갔고 이 때의 잔류 세력이 민주당 간판을 지키다가 신한국당과 합당한 것. 현재의 민주당은 엄밀히 말하면 새정치국민회의가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 개편된 것이 이어진 정당이다.
  • [5] 초대총재인 조순이 작명했는데, 순우리말이라 처음에는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을 쓰는데 저항이 많았다 한다
  • [6] 비록 조직의 일부라도 하더라도 그 일부가 조직의 중추부니 욕 먹어도 싼 것은 맞지만, 그것 때문에 애꿎은 하부 조직은 아무 것도 안 해도 싸잡혀서 욕 먹는게 문제고 내부에서 불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 [7]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위를 차지했고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2~3위였다. 여당이 과반수까지는 좀 힘들어도 상당한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당시 야당으로서는 불안불안한 상황.
  • [8] 그나마 이것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투표 관련 폄하 발언이 나와 영남권을 중심으로 대폭 줄어든 수치였다. 뒤집어말하자면 당시 정동영 의장의 실언만 없었을 경우 영남권을 비롯해 훨씬 더 많은 의석을 여당에 내줬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
  • [9] 이 음모론을 100분토론에서 꺼내고 나온 모 국회의원에게 손석희 사회자가 한 핀잔인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는 두고두고 거론되는 명대사.
  • [10] 지금도 한나라당 내부에서 뭔가 일이 터지면 당의 일부에서는 '천막당사 시절을 생각하라!'는 투의 반성조의 발언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당 내부에서도 충분히 반성을 하고 되새겨 볼만한 과거였던 듯하다.
  • [11] 이후 친박연대 지역구 당선자들이 복당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는 180석 남짓된다.
  • [12] 그러나 민주당 역시 텃밭인 전주에서 무소속 출마한 정동영에게 참패해 이미지를 크게 구겼다.
  • [13] 개표 결과 0.6% 2만 6000여표 차이였다. 하지만 끝내 강남몰표를 이기지 못하고 져버렸다.(강남 세개선거구에서만 12만6930표 차이가 나왔다. 참고로 다른 22개 선거구에서는 1만표 이상의 차이가 난곳은 불과 3곳이며 3만5245표 차의 관악구를 제외하면 1만 1000표 정도차이 였다.)
  • [14] 북한과 가까워서인지 친한나라당 성향이 강한 곳이다.
  • [15] 지방선거에서 20~30대가 두배 가까이 민주당을 지지했다.
  • [16] 정치적인 성향으로는 관련이 없다.
  • [17] 사실 비례대표 3%를 확보하면 사실상 2석은 확보하게 되어 있다. 3%를 득표하면 1.6석이 돌아가지만 정수 의석을 배분한 나머지 의석은 소수점 득표율이 높은 당부터 배분하기 때문.
  • [18] 녹색당이 후보를 내면서 통합진보당 표를 갉아먹은 것을 넘어 더 많이 뺐어온 덕도 있다.